최근 수정 시각 : 2024-11-23 07:02:04

김호영(축구)

김용갑(축구)에서 넘어옴
김호영의 역임 직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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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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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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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의 축구 감독
파일:S5Antp.png
<colbgcolor=#eeeeee,#191919><colcolor=#000000,#e5e5e5> 이름 김호영[1]
金昊榮|Kim Ho-young
출생 1969년 10월 29일 ([age(1969-10-29)]세)
광주직할시
국적
[[대한민국|]][[틀:국기|]][[틀:국기|]]
신체 신장 171cm|체중 71kg
직업 축구 선수 (미드필더 / 은퇴)
축구 감독
학력 동국대학교 (학사)
소속 <colbgcolor=#eeeeee,#191919><colcolor=#000000,#e5e5e5> 선수 일화 천마(1991~1995)
전북 다이노스-전북 현대 다이노스(1996~1999)
감독 대한축구협회 (2001 / 유소년 전임지도자)
대한민국 U-17 대표팀 (2002~2003 / 코치)
대한민국 U-20 대표팀 (2004~2005 / 코치)
FC 서울 (2006~2008 / 코치)
광저우 헝다 (2010~2012 / 수석 코치)
강원 FC (2013 / 감독)
동국대학교 (2015~2016 / 감독)
FC 서울 (2020 / 수석 코치)
FC 서울 (2020 / 감독 대행)[2]
광주 FC (2021)
기타 전북 현대 모터스 (2000 / 트레이너)
대한축구협회 (2009~2010 / 기술 발전 위원)
한국프로축구연맹 (2017~2019 / 경기 감독관)
한국프로축구연맹 (2022~ / TSG 위원)
국가대표 없음

1. 개요2. 선수 경력3. 지도자 경력
3.1. 코치3.2. 강원 FC 감독3.3. 동국대학교 축구부 감독3.4. FC 서울 수석 코치, 감독 대행3.5. 광주 FC 감독
4. 지도 스타일5. 여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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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대한민국축구 선수 출신 감독. 2013년 중후반기 강원 FC의 감독을 했고 동국대 감독과 K리그 경기 감독관을 거쳐 2020년 중반부터는 K리그1 FC 서울의 감독 대행을, 2021년에는 광주 FC의 감독을 맡았다.

2. 선수 경력

1991년 일화와 계약하며 프로 생활을 시작했다.

당시 일화의 미드필더진은 신태용, 고정운, 박남열등의 진용을 갖추고 있었고 그는 백업 미드필더로 출장하는 경우가 많았다. 결국 5시즌 간 일화에서 36경기 출장에 그친 그는 1996년 전북 다이노스로 이적하게 된다. 이적료는 0원, 연봉 2,280만원에 불과한 조건이었다.

하지만 창단 2년차로 미드필더진이 약했던 전북에서 그는 중앙과 측면을 가리지 않고 출장하였고, 공격력을 선보이며 1996년 4경기 연속골을 기록하는 등, 총 9골 5도움의 맹활약을 펼치게 된다. 이후 전북에서 4년 간 활약한 그는 1999년을 끝으로 은퇴하였다

3. 지도자 경력

3.1. 코치

은퇴 후인 2000년 전북 현대 모터스의 트레이너로 일하다가, 2001년에는 대한축구협회의 유소년 전임 지도자를 맡았다. 이후 대한민국 청소년 대표팀의 코치[3]를 역임하였으며, 2006년부터 3년간 FC 서울의 코치로 있었다. 2010년 광저우 헝다의 수석 코치로 부임하며 이장수 감독을 다시 한번 보좌하게 되었다.

3.2. 강원 FC 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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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시즌 중반 사임한 김학범 감독의 후임으로 강원 FC 감독으로 부임하였으며, 대전 시티즌과의 리그 30라운드에서 감독 데뷔승을 거두었다.

전임 김학범과는 다르게 최승인 등 젊고 패기있는 선수들을 적극 기용하며 선수단 분위기를 일신했고 이후 대구 FC, 대전 시티즌 간의 강등권 싸움에서 아슬아슬하게 우위를 점하며 K리그 12위로 시즌을 마무리해 강원 팬들에게 ‘용갑매직’이라는 별명을 받으며 호평을 얻었다.

하지만 상주 상무와의 승강플레이오프 결정전에서 종합 스코어 2:4로 패배해 강원의 2부리그 강등을 막지 못하였고, 결국 김호영 감독은 2013시즌 종료 후 강원 감독직에서 물러났다.

하지만 좋은 성적으로 희망을 보여준 김호영 감독을 내친 것에 대해서는 팬들 사이에서 말이 많았다. 강원 구단 측은 당시 김 감독의 자택 인근에서 만나 설득했음에도 사퇴 의사를 막을 수 없었다고 설명했다.

3.3. 동국대학교 축구부 감독

2015년 모교 동국대학교의 감독으로 부임해 2년간 역임한 뒤 2017년 1월 후배 안효연에게 감독직을 넘겨주고 물러났다. 개명은 이 시기 즈음 이루어진 것으로 보인다.

이후 K리그 경기에서 경기감독관으로 활동했다.

3.4. FC 서울 수석 코치, 감독 대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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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기존 김성재 수석 코치의 사임 이후 비어있던 FC 서울의 수석 코치 자리에 부임했다.[4]

부임 이후 첫 경기인 6월 20일 울산 현대와의 홈경기에서 2018년 막판 최용수 감독 부임 이후 한 번도 빠지지 않고 계속됐던 스리백 대신 포백으로 출전했는데, 이게 김호영 수석 코치의 영향을 받은 전술이라는 이야기가 많다.[5]

2020년 7월 30일 최용수 감독이 대한축구협회 FA컵 포항전 패배를 책임지고 자진사퇴하자, 일단 최용수 감독 사퇴 후 첫 경기인 성남전을 대행으로 지휘하게 되었다.

이 경기에서 상당히 많은 부분에 변화를 주며 주목받았다. 프로 0경기였던 신인 정한민을 레프트윙으로 선발 기용했고, 내내 싱글 볼란치였던[6] 중원 조합은 오스마르가 못 나오는 김에 김원식-정현철의 더블 볼란치로 바꿨으며 한승규에게 프리롤을 부여해 전징성을 맘껏 발휘할 수 있게 안배했다. 또한 체력이 쌩쌩하다는 점을 들어 주로 벤치에서 출발하던 윤주태를 선발로 기용했다. 가장 큰 변화는 부진에도 계속되던 스리백을 버리고 포백으로 전환한 것이었다. 경기 도중에도 기존의 전술을 쓰지 않고 새로 만드는 건 계속됐는데, 박주영이 교체투입되자 윤주태와의 투 톱을 쓰는 대신 윤주태를 레프트윙으로 보냈다. 그리고 이게 결승골로 돌아온다. 결국 과감한 변화가 적중하면서 윤주태의 멀티골로 데뷔승을 거두었다. 경기 후 김호영 대행은 "풀타임을 계속 뛰던 선수들[7]에게 휴식을 부여하고 싶었고, 경기출전이 많지 않아 에너지가 남아있던 윤주태를 선발로 쓰면 적격이라고 생각했다. 정한민은 포백을 하려면 윙어가 필요하다고 판단해서 넣었는데 잘해줬다."고 자평했다.

성남전까지는 거취가 결정되지 않은 상태로 일단 경기가 급하니 지휘한 모양새가 됐지만[8] 2020년 8월 4일, 공식적으로 FC 서울의 감독 대행으로 선임됐다.

8월 7일, 강원 FC와의 경기에서도 정한민을 2경기 연속으로 선발 출전시키는 등 젊은 선수들을 적극적으로 기용하며 2-0 완승을 거뒀다.#

이어 상위권을 달리던 상주 상무를 상대로 2-1 역전승을 거두며 감독 대행을 맡은 이후 3연승의 파죽 지세. 김호영 감독 대행 이전의 서울과 이후의 서울은 수비부터 공격까지 모두 몰라보게 변모했으며, 이 모든 게 오스마르와 기성용, 그리고 마땅한 외국인 공격수 없이 이뤄낸 성과인지라 서울팬들의 엄청난 지지를 받고 있는 상황이다.

우선 13경기에서 무려 29실점을 기록할 정도로 엉망이었던 수비가 포백으로 전환되면서 상당히 개선되었고, 쓰리백에서는 폼이 극악을 달리던 김원식을 정현철과 함께 미드필더 조합으로 넣으면서 갱생 수준의 극적인 폼 상승을 이끌었다. 답답하던 공격 전개 역시 김진야, 조영욱, 정한민과 같은 윙어(윙 포워드)와 공격형 미드필더 자리에서 프리롤로 전환한 한승규의 전진성을 활용하면서 극적으로 개선되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볼 전개 역시 상당히 직접적인 형태로 변모했으며, 상대팀을 향한 압박 역시 효율적으로 이루어지게 되었다.

강원 시절처럼 팬들에게 주목받지 못하는 신예들을 쓰는 데에도 주저하지 않았는데, 우선 만 19살의 정한민은 윙 포워드가 없는 와중에 주전 자리를 꿰차며 한 골을 기록했다. 이외에도 후반 교체 카드로 차오연을 중용하고, 상주전에서는 양쪽 윙 자리에 수비에 강점이 있는 강상희와 양유민을 기용하며 상주의 지공 상황을 잘 막아냈다.

다만 김호영 감독대행 하의 전술은 선수들에게 엄청난 체력 소모를 요구하는 전술이고, 라운드가 지나면서 선수단의 전체적인 체력저하로 이어질 수 있다는 점도 간과해서는 안된다. 본인도 그걸 아니까 터줏대감들 대신 체력 좋고 많이 뛰는 젊은 피들을 교체카드로 중용하고 선발에도 체력이 남아있는 선수로 꽂아넣는 거겠지만. 단축 시즌인데다 FA컵도 떨어졌고, 다음 시즌 아챔 진출 실패한다고 뭐라 할 팬도 없는 대행신분이라 20시즌만 꾸려나갈거라면 크게 염려할 문제까진 아니긴하다. 기성용, 오스마르, 한찬희 등 추후 복귀가능한 자원들이 남아있기도 하고. 다만 간과하면 안되는 사실은 서울 역시 10월에 아챔 잔여일정을 치른다는 점.

8월 22일 치러진 광주 원정에서는 0-0 무승부. 경기 내용에서는 완전히 밀렸지만 광주 스리톱이 찬스들을 거하게 말아먹은 덕분에(...) 무실점으로 경기를 마치며 감독 대행 체제 이후 4경기 무패행진을 달렸다.

8월 30일 울산 원정에서는 0-3으로 패하며 감독 대행 체제 후 첫 패배를 당했다. 그러나 경기 내용은 세트피스로 전반에 허무하게 2골을 먹히고, 후반에는 잠시지만 경기를 주도하기도 하는 등 0-3까지 나올 경기력은 아니었다는 것이 주된 평가.

9월 5일 부산과의 홈 경기에서 1:0으로 경기를 리드하다가 막판에 코너킥에서 나온 헤딩 슛으로 동점골을 얻어맞고 1:1로 비겼다. 팬들 사이에서는 파이널A에 충분히 올라갈 수 있는 상황이고 거의 잡은 경기였기에 아쉽다는 이야기가 많았다. 또한 울산전부터 지적됐던 고질적인 문제점인 세트피스 수비가 시즌 내내 불안했던데다 센터백들이 줄부상을 당하는 바람에 어쩔 수 없다는 의견도 일부 있었다.

9월 13일 수원과의 홈 경기이자 감독 커리어 첫 번째 슈퍼매치에서 상대 자책골한승규의 골을 묶어 2:1 승리를 거뒀다. 5년/1900일이 넘게 K리그1에서 수원을 상대로 지지 않은 좋은 징크스를 이어갔다. 또한 무패기간 동안 10승(8무)째를 김호영 감독대행의 이름 아래 달성하면서 의미있는 기록을 남겼다.

9월 16일 인천 원정에서 송시우에게 결승골을 내주며 1:0으로 패하며 다시 7위로 떨어졌다.

9월 20일 대구와의 경기에서 0:0 무승부를 거두며 7위를 유지, 파이널 A 진출에 실패하였다.

9월 24일 돌연 자진 사임을 발표하면서 FC 서울의 지휘봉은 다시 공석이 되었다.

기사에 따르면 본인의 정식 감독 선임을 놓고 구단과 이견이 생겨서 사퇴를 택했다고 한다. # 김호영 전 감독 대행은 파이널 라운드 시작 전에 감독으로 선임되길 원했고 구단은 시즌 종료 후 논의할 생각이었는데 의견 차이가 좁혀지지 않은 것이 사임의 계기가 되었다고 한다.

이에 대해 적지 않은 팬들은 김호영 감독 대행을 런호영, 런용갑, 런동님이라 부르며 강하게 질타하기도 했다.

이후 슈퍼매치에서 5년만에 수원에게 패하는 상황이 되었다.

3.5. 광주 FC 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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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12월 21일, 박진섭 감독의 FC 서울행과 프런트의 비리 의혹 등 여러 문제가 뒤얽힌 광주 FC의 새 감독으로 부임이 유력하다는 기사가 보도 되었다.[9]

2020년 12월 22일 정식으로 광주 FC의 감독으로 선임되었다#.

한편 남기일 감독에 이어 4년 만에 지역 출신 감독이다.

수원 삼성과 개막전에서 광주 감독 데뷔전을 치렀으나 0-1 패으로 패했고, 연이은 2라운드 울산 현대전에서도 0-1 패했다.

하지만 울산 현대전에서는 90분 평균 위치가 상당 부분 올라서 있었는데, 비록 패하긴 했으나 ‘우승 후보’이자 막강 화력을 뽐내는 상대 공격을 효과적으로 제어했다. 그리고 공격 과정에서도 키패스 10개를 기록했고, 유효 슛도 5대6으로 울산에 근소하게 뒤질 정도로 위협적인 모습을 보였다.

수원 삼성과 첫 경기는 원정이고 개막전이어서 조심스러운 게 있었는데, 다소 전체 라인을 내려서서 플레이한 게 적지 않았는데 울산전부터는 라인을 끌어올려서 전방 압박을 지시했다고 하며, 그러면서 상대 공격수가 광주 수비 지역 깊숙한 곳으로 들어오는 횟수가 줄어들었고, 볼을 상대 위험 지역에서 빼앗는 수가 늘었고 전방 선수들이 부분 전술을 기대 이상으로 잘 소화하면서 가능성을 봤다고 인터뷰에서 밝혔다.

대구 FC와의 리그 3라운드전에서도 강한 전방 압박으로 상대 패스 줄기를 끊었냈으며, 볼을 탈취한 뒤엔 김주공, 엄원상 등을 앞세워 맹렬하게 상대 배후를 공략했다.

볼을 빼앗은 뒤 상대 측면 깊숙한 공간에서 부분 전술을 이행하는 게 있는데 김주공의 동점골이 딱 바라던 장면이었다고 한다.

또한 선수들에게 너무 안전한 플레이만 하지 말고 모험적으로 시도하라고 주문했다고 하며, 그것이 결실을 맺었는지 4-1 완승을 거두며 광주 감독 부임 이후 첫승을 거두었다.#

그러나 이후로는 쭉 부진하며 좀처럼 최하위에서 벗어나지 못했는데, 9월 18일 제주 유나이티드전에서는 후반에만 4차례에 걸쳐 교체를 단행하며 하프타임 교체를 제외하고는 3차례의 교체 기회만 허용하는 규정을 위반한 것으로 결론지어지면서 1-1 무승부에도 불구하고 공식적으로 광주의 몰수패로 처리되는 악재가 이어졌고, 그 뒤 4연패를 추가하며 부진의 늪에 빠졌다.

11월 3일 있었던 FC 서울과의 K리그1 35라운드 경기에서 3:0으로 이기고 있던 경기가 알렉스의 자책골을 시발점으로 3:2까지 추격당한 뒤 수비수를 빼고 공격수를 투입하는 이해할 수 없는 전술을 펼쳤고 결국 3:0으로 리드하던 경기를 3:4로 역전패하며[10] 이제껏 응원해오던 팬들도 등을 돌리게 되었다.

광주는 이 경기로 인해 스플릿 B 상위권 팀들과 진행하는 남은 3경기에서 최소 두경기를 이겨야 11위로 승강 플레이오프라도 치러볼 수 있는 상황으로 내몰렸고, 서포터들 사이에서는 사실상 강등이 확정된 분위기이지만, 그래도 36라운드에서 포항 스틸러스를 2:1 꺾고 광주 창단 후 첫 포항전 승리를 확정짓는 등 반등의 여지도 아직은 남아 있는 듯 했다. 그러나 연이은 11월 27일 성남 FC전에서 1:0 패배하면서 마지막 경기인 인천전을 무조건 이겨야하는 것은 물론 승점차가 3점차인 11위 강원 FC가 남은 두경기를 모두 져야만 최하위를 피할수 있게 되었다.

그리고 37라운드에서 강원과 FC 서울이 0:0 무승부를 거두며 리그 최하위로 강등이 확정되고 말았다.

2021 시즌 김호영 감독의 광주는 그렇게 나쁜 편은 아니었는데, 김호영은 중원을 두텁게 하는 4-2-3-1 포메이션을 기반으로 빠른 공격 전환을 선호했던 탓에 엄원상, 엄지성, 허율, 이희균 등 유스 출신의 이른바 광탄소년단을 적극 활용하며 공격적인 경기를 펼치며 최하위 팀이지만 3득점 이상의 경기를 5차례나 하는 등, 거의 시즌 내내 경기력만 보면 강등팀의 경기력이 아니라는 호평을 받기도 했다.

하지만 이것과 별개로 광주가 강등을 피하기는 쉽지 않았다. 시즌 전 홍준호 여름 등 주축 선수들이 팀을 떠나면서 전력 공백이 생겼고, 윌리안아슐마토프의 공백을 메울 외국인 선수 수급이 늦어지는 등 전력의 100%를 제때 갖추지 못했다. 전력을 제대로 확충하지도 못해서 선수층이 얇은데 부상이 너무 많이 발생한다는 최악의 사태가 벌어지기도 했다.

특히 수비진은 너무 불안했으며, 공격진도 파괴력 없는 움직임과 허술한 결정력으로 중요한 경기 때마다 상대 수비진에 위협을 주지 못했고, 그나마 공격진에서 제 몫을 해주던 펠리페를 중국으로 보내고 조나탄으로 대체했는데, 조나탄은 활약은 고사하고 경기에 거의 뛰지 못하면서 이는 최악의 선택이 된 것이었다.

광주의 미드필드진 역시 상대와 중원 싸움에서 우위를 점하지 못했다. 상대 수비를 효과적으로 뚫어낼 수 있는 양질의 패스가 없다 보니 공격에서 답답함이 이어졌던 것이며, 김호영 감독이 강조한 ‘다이나믹 축구’는 끝내 실현되지 못한 것이다.#

특히 2021 시즌 리그에서 13경기에서 선제 득점에 성공했지만 승리를 지킨 경기는 7경기에 불과할 만큼 상승세를 이어가지 못하고 후반에 불안한 모습을 보이며 충분히 이길 수 있는 경기를 지는 일이 잦았고, 이는 김호영 감독의 경기운영 능력에 문제가 많다는 것을 여과없이 보여주었다.[11]

이러한 원인들이 광주와 김호영 감독 모두에게 최악의 결과를 가져다줬다. 특히 축구팬들 사이에서는 과연 김호영이 잘 했는지 못 했는지, 김호영이 잘 했음에도 광주의 전력과 불운 등이 너무나 힘겨운 상황이었는지는 그 누구도 결론을 제대로 내리지 못했다. 그래서 광주와 김호영 감독이 동행할지 안 할지도 불확실하다고 여겨지긴 했는데 김호영 감독의 나이와 전술스타일상 2부에서는 보다 젊은 감독으로 새출발을 하는 편이 나을 것이라고 점쳐지고 있었다.

한편 인천 유나이티드와의 홈폐막전에서 1:1 무승부를 거두며 10승 7무 21패로 시즌을 마무리하였다.

결국 2021시즌을 끝으로 광주 구단하고 상호합의 계약해지하기로 했다.#

사임 이후 한국프로축구연맹의 기술위원으로 부임하였다.

4. 지도 스타일

전술 스타일은 한 마디로 미친 압박. 미드필더들의 포지션에 구애받지 않고 위치를 이동하여 적극적 압박을 들어가 공간을 없애 볼을 미리 빼앗으려 하고, 탈취하면 기술적 실수를 줄인 빠른 템포의 역습을 주로 구사한다. 강원 감독 시절 진경선, 전재호 이런 노장들이 김호영에게서 살아남았던 것도 측면과 중앙을 가리지 않고 잘 뛸 수 있는 자원들이기 때문이었다.

이 기술적 요구는 수비수들에게도 마찬가지인데 시야와 여유로움을 센터백들에게도 무척이나 강조한다.

수비 라인을 상당히 올리면서 전체적인 압박을 가하고, 폭을 줄이면서 상대팀의 지공 상황을 막아내며 공을 탈취하면 빌드업 과정 없이 재빠르게 전방으로 공을 넘겨 역습을 시도하고, 이를 공격진에 위치한 4명의 선수가 해결하도록 한다.

공격 진형에서는 상황에 따라 세컨톱을 전진하거나 뒤로 물려 4-4-2와 4-2-3-1(때로는 4-1-4-1)을 병행하는데, 윙어와 원톱의 자리를 수시로 스위칭시키며 압박 롤을 수행하게 한다. 세컨톱은 공격 전방위를 다니면서 좌우 윙어들의 공을 직접 받아냄과 동시에 팀의 전방 압박에 참여하고 이 볼을 직접 공격포인트로 만들어내야 한다. 김호영의 전술에서는 이 위치의 선수에게 상당히 많은 역할을 필요로 한다. 그리고 서울에서는 이 위치에서 리그 탑 수준의 기량을 뽐낼 수 있는 한승규가 있다는 것이 호성적에 큰 도움을 주었다.

전형에 얽매인다기보다 수비에서는 공간을 없애기 위해 많이 뛰어야 하고, 공격도 빠르게 올라가 주면서도 패스를 정확하게 전달해야 하며 이 때문에 미드필더에게 운영능력과 체력적 부담을 상당히 많이 요구하는 편이다.

특히나 압박과 공격 전개를 둘 다 수행해야 하는 양쪽 윙에 대한 체력적 부담이 굉장히 가중되는지라, 이 자리에서 뛰게 되는 선수들에 대한 체력 부담을 줄여주면서 시즌을 운용해야 하는 것이 관건. 강원에서나 서울에서나 감독 사퇴 이후 중반기에 들어가서 좋은 모습을 보여준 감독인지라 단기전에서의 스파크 효과를 제대로 볼 수는 있지만, 아직 프로에서는 풀 시즌을 소화해본 적이 없는 감독이기 때문에 장기 레이스에서의 운영 능력은 아직 검증되지 않았다는 단점이 있다. 물론 정식감독으로 선임할게 아니라면 크게 신경쓸 필요가 없는 사안이긴하다.

전술에 선수를 맞추기보다는 선수가 가장 잘 플레이할 수 있는 포지션과 롤을 찾아서 이에 전술을 맞추는 스타일로, 이로 인해 부임 초반 김원식-정현철 중원 조합이 각자가 최고의 전성기를 보냈던 시절[12]의 모습을 보여주었다. 이어 오스마르가 복귀한 수원전에서는 기존에 프리롤 중앙 공격형 미드필더를 소화했던 한승규를 레프트윙으로 돌리고 오스마르를 포백 앞에, 기성용을 역삼각형 중원 왼쪽에 포진시켜 기성용과 오스마르의 공존을 어느 정도 성공시키는 등 그때그때 컨디션과 기량이 좋은 선수들로 알맞은 전술을 짜내는 게 가능한 지도자로 보인다. 타 구단에서 2020시즌 감독대행을 맡은 이병근, 임중용, 주승진이 이적시장을 본인 임기중에 보냈음에도 불구하고 부침이 있는 모습을 보여주거나 대놓고 무승행진을 벌이는 것과는 대조적으로 김호영 감독대행은 여름 이적시장이 끝난 뒤에 부임해 자신의 의중으로 영입한 선수가 하나도 없는 환경에서 기존 선수들에게 알맞은 전술과 위치를 짜내며 한때는 11위에서 허덕였던 팀을 파이널A 진입 직전까지 끌고 왔다. 결과는 시즌이 끝나봐야 알겠지만, 그와 별개로 선수들이 이해할 수 있는 전술과 편안한 자리를 찾아줘 급한불을 끄는 소방수로서의 능력은 확실하다.

그러나 파이널A 진출의 분수령이었던 9월 4경기에서 1승 2무 1패를 거두며 결국 7위로 진출에 실패했다. 특히 줄곧 최하위를 달리고 있는 인천에게 패하고, 여름 들어 극도의 부진에 시달리는 부산과 대구를 상대로 무승부로 끝난 부분은 뼈아프다. 부산과 인천 둘 중 하나만 잡아도 파이널A 진출이 유력한 상황이었기 때문. 더구나 6위로 파이널A에 진출한 광주는 마지막 라운드에서 승리를 거두며 서울과 승점이 같지만 다득점에서 앞서 6위를 차지했다. 즉 서울이 하다못해 마지막 라운드 대구전에서 승리했다면 승점이 앞선 서울이 진출했다는 얘기. 거기에 9월 24일, 강등이 걸린 파이널 라운드 시작 고작 이틀전에 정식 계약이 진행되지 않는다는 이유로 사퇴하면서 팀 장악력에 대한 의구심을 품게 만들었다.

5. 여담

  • 개명 전 이름은 김용갑(金龍甲)이다.
  • 동국대 감독 부임 이후 선수들 전원의 머리를 짧게 깎게 하는가하면 특별 훈련 기간 동안 외박을 금지하고 짧은 외출만 허락하고 매일 밤 숙소에서 점호를 하고 스마트폰까지 압수하는 등 엄하게 선수단을 관리했다고 한다.[13] 다만 후에 서울 대행 시절에는 선수단과는 격식 없는 소통이 이루어졌던 것으로 보이고, 신인 시절에 연을 쌓은 박주영 등 팀의 고참들과도 친분이 있었던지라 선수단을 잘 통제하고 이끌었던 것으로 보인다. 당시 용병인 히칼도 역시 구단 페이스북에 김호영은 좋은 코치였다는 평의 댓글을 달기도 했다. 광주 FC 시절때도 선수들을 엄하게 관리하기보다는 훈련 때를 제외하고는 자유롭게 풀어줬다고 하는데, 아무래도 성인 선수들을 강압적으로 다루는데는 한계가 있다는 것을 직기한 듯 하다.
  • 보통의 여레 K리그 감독들이 기자회견에서 전술 이야기를 즐겨하지 않는 데 반해, 자신의 전술적인 컨셉과 선수 활용을 기자들에게 매우 상세하게 설명해주는 편이다. 인터뷰 영상을 보고 '축구 강의 같다'는 평을 남기는 서울 팬들도 더러 있다.
  • 김용갑으로 불리던 강원 감독 시절만 해도 검은 머리였지만, 7년이 지나 FC 서울 수석코치로 부임했을 때는 완전히 백발이 되었고 이름도 바뀐지라 처음에 누구인지 전혀 몰랐다는 반응이 많았다. 이 때문인지 김용갑과 김호영을 아예 다른 사람처럼 취급하는 밈도 국축 커뮤니티 전반에 흘러나오고는 한다.


[1] 원래 이름은 김용갑이었으나 개명했다.[2] 시즌 도중 자진 사퇴[3] 2002년부터 U17 대표팀에서 2년, U20 대표팀에서 2년 있었다. 이 시기에 2020년 감독대행으로 있다가 도망친 팀의 정신적 지주인 박주영을 처음 만났다.[4] 부임 전까지 팬들의 반응은 ‘김호영이 누구야?’라는 반응이었으나, 이후 강원의 감독을 맡았던 그 김용갑이 개명한 것임을 알아차리게 된다.[5] 실제 김호영 수석 코치는 강원 FC 감독을 맡던 시절 4141 등 포백을 즐겨 썼다.[6] 7월 18일 홈 포항전에서는 442로 전환하며 볼란치 없이 투미들로 나오기는 했다.[7] 박주영, 조영욱[8] FC 서울 공식 유튜브의 기자회견 영상에서조차 수석 코치로 표기되는데 기자의 질문에선 감독 대행이란 자막이 달리는 등 정리가 안 된 모습이었다. 구단 역시 성남전이 끝난 후부터 김 대행과 미래에 대해 대화했다고.[9] 당시 광주는 대표이사와 단장도 공석인지라 이 자리가 먼저 발표되면 그 다음으로 감독을 발표할 가능성이 높은 상황 속에서 성사될 경우 박진섭 전 광주 감독을 영입한 FC 서울과 감독 트레이드 매치를 치르게 된다.[10] 특히 광주 출신인 나상호가 어시스트를 기록하며 친정팀에 비수를 꽂았다.[11] 선제 득점 후 역전패가 6번이었고,, 선제 실점 후 뒤집었지만 재역전패를 당한 것도 1차례 더 있었다.[12] 김원식은 인천 시절 수비형 미드필더로서, 정현철은 경남 시절 박투박 미드필더로서 커리어 하이를 맞았다. 두 선수 모두 서울에서는 본 포지션보다는 최용수의 고정된 전술에서 다른 포지션을 찾아야 했던 상황.[13] 김호영이 수석 코치로 선임되자 나무위키를 살펴본 몇몇 서울 팬들은 위의 문단을 보면서 혹시나 꼰대식 지도자가 아닐까 하는 걱정을 하기도 했다. 안 그래도 이미 최용수라는 지도자 자체가 워낙 선수들을 강압적으로 이끄는 스타일이었으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