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04-16 17:45:39

김진(19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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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e61e2b><colcolor=#fff> 김진
金璡 | Kim Jin
파일:김진.jpg
출생 1959년 11월 1일 ([age(1959-11-01)]세)
강원도 원주시
학력 장훈고등학교 (졸업)
경희대학교 정경대학 (경제학 / 학사)
한양대학교 언론정보대학원 (언론학 / 석사)
현직 정치평론가, 유튜버
소속 정당

파일:국민의힘 흰색 로고타입.svg
이력 중앙일보 기자
중앙일보 논설위원
중앙일보 워싱턴특파원
구독자 26.9만 명
SNS 파일:유튜브 아이콘.svg김진TV

1. 개요2. 언론 및 방송 활동
2.1. 중앙일보에서2.2. 중앙일보 퇴사 이후
3. 정치 활동4. 비판 및 논란5. 여담6. 수상
[clearfix]

1. 개요

중앙일보 출신 언론인 겸 우파 유튜버. 보수논객으로 많은 TV 프로그램에 참여하였다.

2. 언론 및 방송 활동

원래 1984년에 한국일보에 입사해 한국일보 코라이타임스 기자였으나 중앙일보에 1986년에 입사했다.

2.1. 중앙일보에서

중앙일보 정치부 기자로 오랫동안 활동했고 2000년부터 2003년까지 워싱턴특파원으로 일했다. 2006년 부장 승진과 함께 정치전문기자(논설위원 겸직)가 되었다. 이후 2011년 3월에 부국장으로 승진했다.

기명칼럼 '김진의 시시각각'을 연재했다. KBS 제1라디오 KBS 공감토론MBC 100분 토론 등에도 자주 출연했다.

김연아 선수에게 지성을 쌓으라고 충고하는 사설을 썼다. # 천안함 피격 사건 관련 논설로 화제가 되었다. 연평도 포격전 때는 3일만 주면 북한을 이길 수 있다고 주장하였다.

2010년 10월 24일에 쓴 사설에서 김재규에게 '극심한 발기부전'이 있었고 그로 인한 컴플렉스와 열등감 때문에 10.26사건에서 일을 그르쳤을 것이라 주장했다. #

2012년 9월 17일에는 '천국에서 박정희 前 대통령과 인민혁명당 사건 피해자들이 막걸리 한 잔씩 걸치며 서로 화해 했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2013년 5월 20일에는 '아베, 마루타의 복수를 잊었나'라는 칼럼에서 히로시마, 나가사키 원폭투하를 천벌이라고 표현해 일본의 반발을 불렀다.

2016년 JTBC 뉴스현장에서 월요일과 금요일, 정치현장 코너의 패널로 참여하고 있었다.

2016년 11월 8일 MBC 100분 토론 743회 '혼돈의 대한민국, 해법은?'에 패널로 출연하여 최순실 사태로 지금까지 쌓아온 대한민국의 브랜드 가치 하락은 가장 큰 손실이라고 하며 박근혜 대통령의 해법 제안과 야당의 제안 모두가 헌법에 위배 되는 것이라고 지적하면서, 노태우 대통령 6.29 선언 같은 결연한 대통령의 결단이 필요하다고 제안했다.

법대로 처벌을 받는다는 조건으로 서면 검찰조사가 아닌 실질적인 대면 조사를 받고, 남은 대통령임기 1년 3개월 동안 서면 정치가 아닌 정상적인 행정을 하겠다는 대국민 사죄 성명을 내고 남은 임기동안 대한민국의 위기해소를 위해 최선을 다할 것을 이 난국의 해법으로 제안했다.

아울러 박근혜 정부의 범법행위는 역대 정권 모두가 관행으로 해오던 부정행위이고 박근혜 정부가 부정하다고 해서 야당이 저절로 거룩해지는 것이 아님을 경고했다. 김대중 정권의 4대 부정, 즉 핵무기계발 자금 대북지원 4억 5천만 달러, 국정원 민간인 1천 명 불법도청, 홍일 - 홍업 - 홍걸 3 아들중 2명 실형, 김대중 전 대통령 전 비서실장 박지원국민의당 원내대표 호텔사우나 1억 뇌물 수수 등의 과거를 거울삼아 민주당은 자중하라고 경고했다. 이철희-김진 격한 설전

더불어 시위 중에 물대포를 맞아 숨진 것으로 알려진 백남기 농민이 밧줄을 걸어 경찰버스 전복을 하려는 동영상을 모든 언론사가 가지고 있으면서도 아무도 방송에 내보내지 않은 것은 비겁하고 정의롭지 못한 언론들의 행동이라고 규탄했다. 우리나라는 오히려 법을 지키기 위하여 목숨을 잃고 부상을 입은 경찰과 군인들을 영웅으로 만들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2016년 11월 18일 JTBC 뉴스현장 출연에서 야당은 시위대 끌고가서 청와대 담 넘어야된다는 발언을 했다. 또 박근혜를 지지하는 사람들도 나와서 시위하라고 하였다. 앵커가 "그럼 내일 나갈거냐"라고 묻자 "나는 안 나간다. 언론인으로서 할일을 해야한다. 나는 아스팔트 시위자가 아니다"라는 말을 하였다. 촛불집회 100만 보도에 대해서는 "경찰은 26만이라는데 언론이 100만이라 거짓을 보도하느냐"며 언론이 잘못한다고 발언을 하였다.

2016년 11월 TV조선 "최희준의 왜?"에 패널로 등장을 하고 있다. 특유의 강성적인 발언은 여전하지만, 단독 패널이라서 할 말을 다 할 수 있는 데다가 방송국의 성향이라든가 MC인 최희준과의 호흡이 잘 맞아서 그런지는 몰라도 여타 100분 토론이라든가 JTBC 뉴스현장등에서 보여왔던 특유의 정색하는 모습 보다는 환하고 밝은 모습을 자주 선보이고 있다. 이에 시청자들은 '저렇게 밝은 모습은 처음 봐서 낯설다.' '물 만난 물고기 같다' 등의 반응이 엇갈리는 중.

2017년 8월 8일, MBC 100분 토론에 또 출연하여 보수 야당의 앞날에 대한 질문에 김진이 답하기를, "바른정당 이혜훈 대표가 문재인 정권 출범하고 뚜렷한 정책 같은 게 나오지도 않았는데, 커피잔이라든지 셔츠 같은 표피적인 문제로 '무섭도록 잘한다' 라고 칭찬했다."[1] 하며 바른정당은 중도가 되었고, 보수의 정체성은 자유한국당에 있다, 라고 말했다.

2.2. 중앙일보 퇴사 이후

2016년 11월 28일 엄성섭, 유아름의 뉴스를 쏘다에서 前 중앙일보 논설위원으로 소개가 된 것과 더불어 JTBC 뉴스현장의 월요일과 금요일 패널석에도 모습을 드러내지 않자 네티즌들 사이에서는 중앙일보 논설위원 자리에서 물러남과 동시에 퇴사까지 한 게 아니냐는 이야기가 돌았고 자신도 미디어워치와의 인터뷰에서 논설위원직에서 물러난 것이 사실이며 자신의 결정이 아닌 회사의 결정이라고 인정했다.#

김진의 퇴직은 중앙일보의 변화를 나타내는 상징적인 사건으로 비쳐지고 있다. 손석희JTBC 보도담당 사장으로 오면서부터 불어오기 시작한 변화의 바람의 결정판이라고 볼 수 있을 정도. 특히 보수진영에서는 이러한 중앙일보를 바라보며 '중앙일보가 좌클릭을 한다'고 표현할 정도이니 더이상의 말이 필요치 않을 것이다.

2016년 12월부터 펜앤드마이크의 전신인 정규재TV에 김진의 정치 전망대에 출연했다.

TV조선 '박종진의 라이브쇼'에서 김대중 정권에서도 블랙리스트가 존재했다고 주장했다.


2024년 4월 2일 MBC 100분 토론유시민 작가와 함께 출연했다. 출연 중 발언에 관한 논란은 아래 문단 및 별도 문서 참고.

3. 정치 활동

3.1. 19대 대선

TV 프로그램에 출연해 2월쯤에 깜짝 대선 후보가 나온다고 말했는데, 2월 15일 자유한국당의 영입 예정이고, 자신이 대선에 출마한다고 선언을 했다. 그리고 문재인 후보의 지지율인 40퍼센트의 나머지인 60퍼센트를 자신이 먹고 대선에서 승리하겠다고 했다.

자유한국당 제19대 대통령 선거 후보자 비전대회에서 이번 선거는 "박정희와 김대중의 싸움이다.", "제가 대통령 하면 김진태 의원을 법무부장관 시키겠다" 라고 철지난 지역감정 언급까지 했으나, 3월 18일에 자유한국당 1차 컷오프에서 탈락하며 고배를 마셨다.

이후로는 홍석현 前 중앙일보 회장을 겨냥하는 발언이 기사화됐다.

그리고 바른정당으로 간 이종구 의원을 대신해 자유한국당강남구 갑 당협위원장으로 임명되었다. 하지만 결국 이종구 의원이 자유한국당으로 복당하면서 현역의원과 원외 당협위원장이 함께 있는 지역구의 경우 현역을 당협위원장에 우선 선임하기로 한 조직강화특별위원회 지침에 따라 이종구 의원으로 당협위원장이 변경됐다.

2018년 6월 말에 친박 원로인 서청원이 탈당했으니, 비박 원로인 김무성도 탈당해야 한다는 논리를 펼쳤다.

2019년 2월부터 펜앤드마이크로부터 독립해 유튜브 채널인 김진TV를 개설했고, 1년여 만에 구독자 20만 명을 돌파했다.

3.2. 21대 총선

2020년 21대 총선에서는 지역구를 중구·성동구 갑으로 옮겨 미래통합당 예비후보로 등록했으나 경선에서 진수희 전 보건복지부 장관에 밀려 공천 탈락하였다.

2020년 4월 16일, 보수가 참패한 21대 총선 결과에 대해 분석한 영상을 내놓았다. 국가 정체성, 국가 안보, 통치 스타일, 법과 질서, 경제 등 기존 방송에서 문재인 정부가 나라를 어렵게 만든 5개 분야에 관해 설파한 바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코로나 대유행긴급재난지원금의 영향, 그리고 미래통합당에 대한 거부감으로 190석[2]의 거대 좌파 연합이 만들어졌다고 주장했다. 개헌 의석 수를 맞추어 10석을 더 얻는 경우의 내각제 개헌, 이원집정부제 개헌, 사회주의 개헌 등의 추진을 우려했다. 이어 '자유 우파 국민'에게 과거 투쟁과 비교해 상상도 할 수 없을 정도로 목숨을 걸 각오로 나라를 지켜볼 것을 강조했다.

같은 영상에서 '통합당 폭망의 6가지 원인'을 거론했다. 첫째로, 30년 전교조, 민주노총 언론노조의 영향으로 국민 수준의 하향 평준화가 거대 의석을 만들었다며 수도권의 민심을 문제삼았다. 둘째로, 문재인 정부가 나라를 어렵게 만든 5개 분야에 관해 언론이 고발해 국민들에게 심판 의식을 심어야 하는데, 언론 대부분이 침묵하고 '문비어천가'와 '물개박수 언론'으로 전락했다고 주장했다. 셋째로, 양당의 '중도층에 관한 해석' 싸움에서 민주당이 이겼음을 원인으로 꼽았다.[3] 중도층은 중도층에 대한 아부로 다가가 정책을 바꾸는 데에 반응하지 않고, 좌파와 우파 중 어느 세력이 결기가 있느냐, 동지를 보호하느냐, 잠깐 잘못된 방향이라도 끝까지 노선과 주장, 소신을 밀어붙이느냐, 어느 파가 분열하느냐를 두고 중도층 표심이 움직인다고 주장했다.

넷째로, 통합당의 공천 과정을 원인으로 뽑았다. 다섯째로, 총선은 총선을 이끄는 최고 지도자의 차기 대권 가능성이 대단히 중요하다며, 황교안 당시 대표가 이낙연 당시 대표와의 대권주자 게임에서 완패했다고 주장했다. 2012년 박근혜 비대위원장의 압승도 문재인 당시 대표를 앞선 것이 원인이라고 주장했다. 통합당 진영의 황교안, 김종인, 박형준 등에게서는 민주당 진영의 이낙연, 박원순, 이재명 등보다 우월한 가능성이 보이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여섯째로, '코로나 블랙홀'이 많은 것을 삼키며 문재인 당시 대통령 지지율이 큰 폭으로 오르는 가운데, 새로운 인물과 새로운 분위기로 차후 선거를 맞을 준비가 안 돼 있었음을 원인으로 꼽았다.

선거조작 의혹에 대해서는 부정적인 견해를 내놓았다.

4. 비판 및 논란

4.1. MBC 100분 토론 출연 발언 논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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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여담

  • 90년대 중앙일보의 인기 연재물이었던 '청와대 비서실'[4]에서 박정희 편을 연재했으며, 1992년 동명의 책 1권을 발간(총4권)하였다.
  • 보수 패널로 JTBC나 여러 시사, 교양, 토론 프로에 많이 참여하였지만 평가가 대체로 부정적이었다. JTBC 옴부즈맨 프로그램에서는 "나이를 앞세워 상대방 말은 자르고 자기 할말만 이어간다."란 비판이 항상 올라왔고, 보수 패널에 대해 대체로 호의적인 야갤에서도 믿거김이란 별명으로 불렀을 정도였다. 상단에도 있는 내용이지만 김진의 퇴직에 대해 보수진영에서는 좌클릭이라 비난했지만 김진은 커리어에서 나오는 섬세한 분석력, 뛰어난 언변을 앞세워 시청자들에게 신뢰를 얻는 인물이 아니었기에 시청자들의 니즈를 충족시키지 못해서 도태됐다고 보는게 맞다. 보수 유권자들중에서도 정태옥처럼 입열면 좌파들을 결집시킨다며 프락치라고(...) 비난하는 경우도 종종 볼 수 있었다.
  • 북한과 마찰이 있을 때마다 '희생을 두려워하는 국가는 존재 가치가 없다. 김정일 정권을 타도할 때까지 그 어떤 희생도 감수해야 한다'라는 논조를 일관되게 유지하고 있다.
  • 우파 유튜버 채널중에서는 논조가 온건한 편에 속했었지만, 2024년 4월 , 22대 국회의원 총선 관련 MBC 100분 토론에서 설화를 일으키면서 강경한 편으로 인식되기 시작했다.

6. 수상

  • 1995년 제27회 한국기자상 수상작 (기획보도 부문) - '청와대 비서실' 중앙일보 기획부 - (김진 · 박보균 · 노재현 · 오병상 기자)

[1] #[2] 당시 더불어민주당더불어시민당을 합한 180석, 무소속 이용호 의원, 열린민주당 3석, 정의당 6석을 언급했다.[3] 해당 영상에서 김 전 위원은 민주당은 중도층이 없다고 보고 민주당의 노선과 소신으로만 밀고 나가 조국을 옹호하고 최강욱, 김의겸, 김남국 등 후보를 포용하고, 탈원전 정책을 절대 바꾸지 않았다고 언급했다. 반면 통합당은 중도층에 외연을 확장한다고 투쟁가들을 내치고 가장 어려울 때(탄핵 정국)에 당을 나갔던 이들을 다시 받아들여 좋은 곳에 공천했다고 언급했다.[4] 1990년에서 1995년까지 연재된 현대 한국정치사 심층취재물로서 김진, 노재현 기자가 박정희 시대를, 박보균 기자는 전두환 시대를, 오병상 기자는 노태우 시대를 취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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