羅州 林氏
1. 개요
나주 임씨 (羅州 林氏) 또는 회진 임씨(會津 林氏)는 전라남도 나주시를 본관(本貫)으로 하는 한국의 성씨이다.2. 역사
더 선대의 인물들도 많으나, 시조(始祖)이자 원조(元祖)는 고려 충렬왕 때의 대장군(大將軍) 임비(林庇)이다.1281년, 고려 원 간섭기인 충렬왕 7년에 왕을 원나라까지 호종하며 다녀온 공으로 시종보좌이등공신(始終輔佐二等功臣) 책록됨은 물론 그 뒤에 철권을 하사받고 상장군(上將軍), 충청도 도지휘사(忠淸道 都指揮使), 판사재시사(判司宰寺事)에 이르렀다.
고려 말, 9세 감무공 휘 탁(임탁)이 해남감무(海南監務)를 역임하며 지낸 후 고려가 멸망하고 이성계가 조선을 개국하자 관직을 그만둬버리고 금성(錦城) 회진(會津)으로 낙향하여 돌아가 불사이군(不事二君)의 충절(忠節)을 지키며 살면서 관향 본관을 회진으로 하였으나, 후에 회진현이 나주에 귀속됨에 따라 본관을 나주로 바꾸어 고쳤다.유구한 역사를 가지며 자랑하는 나주(羅州)는 전라남도 나주시(羅州市) 지역으로 백제 때 발라군(發羅郡)으로 불리었고, 뒤에 죽군성(竹軍城)으로 바뀌었다. 백제 멸망 후 당나라가 이곳에 대방주(帶方州)를 설치하였으며, 686년(신라 신문왕 6)에는 통의군(通義郡)으로, 757년(경덕왕 16) 이후로는 금산군(錦山郡) 또는 금성군(錦城郡)으로 부르며 무주(武州: 光州)의 관할로 두었고, 회진현(會津縣)·여황현(艅艎縣)·철야현(鐵冶縣) 등이 부속으로 영입되었다. 940년(고려 태조 23)에 나주로 지명이 바뀌었고, 983년(성종 2)에 나주목이 설치되었다. 995년(성종 14)에는 나주진해군절도사(羅州鎭海軍節度使)가 되었다. 1018년(현종 9) 다시 나주목으로 고쳐 5개의 속군(무안·담양·곡성·낙안·남평)과 11개의 속현(철야·반남·안노·복룡·원율·여황·창평·장산·회진·진원·화순)을 거느렸다. 1310년(충선왕 2)에 지주사(知州事)로 강등되었다가 1356년(공민왕 5)에 다시 목으로 승격하였다. 고려·조선시대를 통하여 주로 목(牧), 부(府)로서 전남지역 행정의 중심지를 이루었다. 1895년(고종 32) 지방제도 개정으로 나주부로서 나주군 등을 관할하였고, 1981년 나주읍과 영산포읍이 통합하여 금성시로 승격하여 나주군에서 분리되었고, 금성시는 1985년 나주시로 개칭되었다. 1995년 나주시와 나주군이 통합되어 나주시로 개편되었다.[1]
3. 분파
4. 인물
분파를 하기 전의 (나주) 임씨 인물이나 분파가 확인되지 않은 인물들(만을 기재할 것).다만, 시조(始祖)는 예외.
4.1. 고려
4.2. 조선
- 임봉 - 10세손. 소윤공.
- 임상재 - 12세손. 교수공.
- 임평 - 14세손. 참판공.
- 임안 - 15세손. 동지공.
- 임붕 - 15세손. 귀래정공.
- 임복 - 16세손. 정자공. 정자공파의 시조.
- 임병태 - 27세손. 효자.
4.3. 한국
- 임권택 - 30세손. 한국의 영화 감독.
- 임병직 - 27세손. 독립운동가.
- 임채정 - 31세손. 제 14 ~ 17대 국회의원.
- 임채진 - 31세손. 제 36대 검찰총장.
- 임성훈 - MC.
- 임춘애 - 육상 선수.
- 임창용 - 야구 선수.
4.3.1. 인구
- 나주 임씨의 연도별 총 인구수.
통계청 인구조사 | |
연도 | 인구 |
1985년 | 총 62,208가구 262,877명 |
2000년 | 총 73,556가구 236,877명[2] |
2015년 | 총 277,699명 |
5. 항렬
세대별 돌림자.
6. 유물
[1] 출처: 전자족보 도서관[2] 34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