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11-10 14:19:58

독도는 우리땅

1. 개요2. 제작 과정3. 가사
3.1. 주소
4. 수록 음반5. 1983년 전두환 정권의 방송금지6. 인기와 리메이크7. 독도 챌린지8. 기타9. 관련 문서

1. 개요


1982년에 발매된 대한민국의 노래. 독도를 소재로 한 노래 중 가장 널리 알려진 노래이다. 한국을 빛낸 100명의 위인들의 작자이기도 한 박문영(예명 박인호[1])이 작사 및 작곡했으며 가수 정광태의 대표곡이다. 본래 개그맨으로 활동하던 정광태가 출연한 KBS의 한 코미디 프로그램 코너에서 처음 공개된 이래 국민적 인기를 모았다. 음반으로는 1982년 6월 대성음반이 여러 가수들의 인기곡 또는 신곡을 모아서 낸 앨범 《웃기는 노래와 웃기지 않는 노래》에 처음 수록되었다.

띄어쓰기를 올바로 하면 '독도는 우리 땅'이지만 노래 제목은 고유명사로서 맞춤법보다 상위에 있으므로 붙여 쓴 것을 표제어로 한다.

2. 제작 과정

1980년대 초 KBS 라디오 PD이면서 동 방송사 TV의 코미디 프로그램 작가로도 일했던 박문영은 어느 날 신문에서 일본의 독도 영유권 주장 망언을 접했다. 이에 자극 받아 개그 코너에서 독도 노래를 내보내기로 김웅래 PD와 기획해 혼자서 1주일 만에 곡을 완성했고 정광태임하룡 등 KBS 개그맨 4명이 포졸 복장을 하고 노래하는 장면이 전파를 타면서 처음으로 곡이 공개되었다.

1982년 6월 대성음반에 의해 정식으로 LP 음반에 수록됐는데, 원래는 정광태뿐만 아니라 처음 노래했던 개그맨 4명이 함께 녹음할 계획이었지만 미팅 자리에 제작자인 서희덕[2]이 지각을 하면서 미리 와서 기다리던 4명 중 한가하던 정광태를 제외한 3명은 스케줄 상 자리를 떴다. 뒤늦게 온 제작자는 정광태 혼자만이라도 녹음을 시키기로 결정해 정광태의 솔로곡이 되었고, 여러 가수들의 옴니버스 LP 음반 《웃기는 노래와 웃기지 않는 노래》의 A면 5번 트랙에 들어가게 된 것이다. 본래 이 음반은 후에 개똥벌레를 부르게 되는 신형원의 데뷔곡 〈불씨〉가 타이틀 곡이었는데, 독도는 우리땅의 폭발적인 인기로 인해 나중에는 아예 음반명을 《독도는 우리땅》으로 바꾸고 해당 곡을 타이틀 곡으로 바꿔서 재판했다. 이 노래로 정광태는 1983년 KBS 가요대상에서 남자 신인 가수상을 수상하는 등[3] 본격적인 가수 활동을 시작했다.

여기까지는 여러 언론 보도에서 공통적으로 다루는 내용인데, 그 밖에 모순되거나 보도끼리 상반되는 내용은 다음과 같다.
  • 코미디 프로그램의 이름
    독도는 우리땅이 최초로 수록된 음반 《웃기는 노래와 웃기지 않는 노래》는 네이버 지식백과에 따르면 1982년 6월 30일에 발매됐으며 네이버 뉴스 라이브러리에도 관련 기사들이 있어 적어도 1982년 7월 이전에는 발매된 것이 분명하다. 한편 노래와 관련된 당사자들은 하나같이 음반 발매 이전에 이 노래가 나왔던 TV 프로그램 제목을 《유머 1번지》(당시 제목은 '유모어 1번지')라고 일관되게 설명해 왔다.[4] 그런데 정작 유머 일번지는 음반 발매 이듬해인 1983년 4월 2일부터 방영된 프로그램이므로 시기가 맞지 않는다. '82년 말에 유머 일번지에서...' 식으로 구체적인 시기를 지목해 나오는 보도도 많으나 역시 실제 방영 시기와는 맞지 않는다. 1982년의 KBS 코미디 프로그램으로는 《코미디 출동》과 《유모어 극장》, 버라이어티 성격의 《젊은이의 토요일》 정도가 있지만 이중에서 독도는 우리땅과 관련해 보도된 것이 없어 정확히 어느 프로그램인지는 알 길이 없다. 세월에 따라 기억이 변조되다 보니까 그런 것이다.
  • 개그맨 4명의 이름
    처음 TV에서 독도는 우리땅을 노래한 개그맨 4명을 이야기할 때 정광태, 임하룡은 관련 보도마다 빠짐없이 이름이 등장하지만 나머지 2명은 보도에 따라 장두석이상운, 또는 장두석과 김정식, 아니면 이상운과 김정식으로 나올 때도 있는 등 중구난방이다. 정광태의 인터뷰들도 일관되지 않은데 서울신문 인터뷰에서는 본인, 임하룡, 장두석, 김정식이라고 했지만 스포츠조선 인터뷰에선 본인, 임하룡, 장두석, 이상훈이라 말한 것으로 나온다.[5] 한편 2011년 출연한 KBS 《여유만만》에서는 본인, 임하룡, 장두석, 그리고 '메기 이상운'이라고 직접 말하는 모습이 방송됐으나, 정작 방송 전에 연합뉴스에서 나온 홍보 기사에는 KBS에서 자료를 받아 쓴 기사일 텐데도 이상운이 아닌 김정식으로 나오며 방송 직후의 TV리포트 기사에서는 방송 중에 이상운의 별명인 메기가 언급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이상훈으로 오타를 냈다. 1982년 당시 촬영 장면을 지켜보고 있었을 박문영(박인호)의 연합뉴스 인터뷰에 이르러서는 정광태, 임하룡, 심형래, 김학래라고 나오기까지 하니 결국 그 4명 중 2명이 정확히 누구였는지는 언급된 개그맨 당사자들이 직접 밝히거나 당시 방송분이 확인돼야만 알 수 있을 판이다.[6]
  • 음반으로 나온 과정
    가수 정광태에 따르면 노래가 TV로 처음 방송된 그날, 방송을 본 음반 제작자가 음반을 낼 것을 제안했다고 한다.[7] 방송 당시 이미 국민들은 일본 교과서의 독도 영유권 주장 문제 때문에 분노하고 있었던 터라 제작자가 주목하고 먼저 제안했다는 것. 하지만 작사 작곡가 박문영의 설명은 다른데 원래 해당 노래는 개그 코너를 위한 일회용에 불과했기 때문에 박문영은 녹화를 마치고 곧바로 가사를 적었던 전지를 휴지통에 버렸다. 그런데 정광태가 휴지통을 뒤져 가사를 옮겨 적어가더니, 나중에 대성음반에서 발매하려 했던 음반의 자투리 트랙에 노래가 실렸다는 것. 박문영은 노래에 관해 아예 잊고 있다가 녹음 이후에야 사실을 알았으며, 자신은 당시 곡을 직접 주기로 한 적이 없다고 한다(...).[8] 인터뷰 외의 다른 보도에 따르면 당시 정광태가 여러 음반사를 돌아다니며 녹음을 부탁했으나 개그맨인 점도 있고, 가사가 장난스럽다, 괴상하다며 퇴짜만 맞다가 그 노력이 가상해서 간신히 받아준 곳이 대성음반 한 군데였다고 한다.[9]

3. 가사

바뀐 부분은 볼드체를 적용하였다.
독도는 우리땅 시대별 가사
[ 1982년 판 펼치기/접기 ]
1. 울릉도 동남쪽 뱃길 따라 이백 리
[ 1983년 판 펼치기/접기 ]
1. 울릉도 동남쪽 뱃길 따라 이백리
[ 2001년 판 펼치기/접기 ]
1. 울릉도 동남쪽 뱃길 따라 이백 리
[ 2012년 판 펼치기/접기 ]
1. 울릉도 동남쪽 뱃길따라 87K


가수에 따라 가사가 달라지기도 하고 원 가수인 정광태조차 공연, 행사 등에서 때에 따라 가사를 다르게 부를 정도라 세세한 부분에서 확정된 가사는 없다시피 하다. 다만 정광태가 녹음한 음원 기준으로 나누면 대체로 위와 같다. 2012년 판은 작사/작곡가 박문영이 발매 30주년을 기념해 내놓은 후속곡이다. 바뀐 가사 해설.

1990년대 이전에 이 노래를 익힌 세대에게는 1982년 버전이 가장 익숙하고 2절 가사 한 군데가 수정된 1983년 버전은 상대적으로 잘 알려지지 않았다. 하지만 정광태가 오리지널 반주에 오리지널 가사로 부른 1982년 버전은 음원 사이트나 동영상 사이트에서 찾을 수 없고 현재 올라와 있는 1980년대 녹음 곡들은 모두 1983년 이후에 나온 버전이다. 1982년과 1983년 당시의 음반은 음원 서비스가 되는 곳이 없고 들으려면 나중에 다른 음반에 수록됐던 곡으로 들어야 하는데 그 중 1982년 버전이 수록된 음반은 없기 때문이다. 게다가 금지곡 파동 탓에 정광태가 이 곡을 가지고 본격적으로 방송 활동을 한 것도 1983년에 개사하고 난 다음인지라 간혹 정광태의 1980년대 자료 화면이 방송될 때도 개사된 가사로 노래하는 모습만 나간다.

정광태는 오랜 공백기를 지나 1990년대 중반부터 독도는 우리땅으로 활동을 재개했는데 이때부터 4절 가사를 2001년 버전처럼 바꿔 부른다. 다만, 2절 가사는 인지도를 고려한 것인지 1983년 버전이 아닌 원래의 '남면 도동 일번지'로 돌아갔다. 1996년 DJ DOC의 앨범 《대한민국만세》에서 DJ DOC와 정광태가 같은 반주로 각각 녹음한 곡 중 정광태 버전 쪽이 대표적인데 두 번 반복되는 4절 가사가 한 번은 '대마도는 몰라도'로, 반복 부분에선 원래의 '대마도는 일본땅'으로 나간다.

일반인들은 매 절 마지막의 '독도는 우~리~땅' 다음에 "우리땅!"하고 외치는 경우가 많은데 원곡 가사에는 없는 부분이다. 이는 초창기 독도는 우리땅이 각종 대회의 응원가로 불리던 때에 그렇게 외쳐서 이어진 습관으로 보인다.

일부에선 그 누가라는 부분을 대놓고 '일본이' 라고 바꿔 부르기도 하며 심한 곳은 아예 왜놈이(!)이라고 부르는 경우도 있기도 하다. 아동용 동요나 학습영상에서는 이 부분에서 대놓고 뻐드렁니를 한 일본인이나 왜구가 등장하기도 한다.

제6차 교육과정의 초등학교 4학년 2학기 사회과탐구 교과서에는 원래 독도는 우리땅 가사가 5절까지 실릴 예정이었고 1996년 2월에 시험판으로 인쇄되기도 했다.[10] 이대로 실현됐다면 대중가요 가사가 국정 교과서에 실린 첫 사례로 남을 뻔했지만 가사 내용의 사실 관계가 부정확하다는 이유로 최종적으로는 부적합 판정을 받아 실제 교과서에는 빠지면서 해프닝에 그치고 말았다. 당시 교육부는 세종실록지리지의 독도 기술 부분이 '50페이지 셋째 줄'이 아니라는 점, 울릉도와 독도 사이의 실제 거리는 220리인데 가사에는 200리로 부정확하게 나오는 점 등을 문제로 삼았다.[11]

3.1. 주소

2절 가사 '경상북도 울릉군 남면 도동 1번지'가 1983년에 '경상북도 울릉읍 도동 산63'[12]으로 개사된 것은 중간에 주소가 바뀌어서가 아니라 처음부터 잘못된 주소였기 때문이다. 우선 울릉군 남면은 1979년에 울릉읍으로 승격[13]됐기 때문에 노래를 처음 만든 1982년 시점에서는 이미 사라진 주소였다. 남면 도동 1번지, 즉 1988년 이후의 울릉읍 도동리[14] 1번지는 일제강점기 이래로 쭉 울릉도 측에 있던 지번이며 독도와는 관련이 없다.[15][16] 국유지로 관리돼 온 독도와는 달리 도동리 1번지는 사유지이며 바다가 가깝기는 하지만 임야에 둘러싸여 바다와 직접 만나지도 않는다.

독도는 일본이 1905년에 시마네현 고시 제40호를 낸 이후로 독도에 별도의 지번을 부여하지 않아 지금도 일본 행정상으론 독도가 '무번지'로 분류된다. 게다가 일제강점기의 독도는 조선총독부가 실시한 1910년대의 토지 조사 대상에서 빠졌기 때문에 광복 이후에도 독도는 한동안 지번이 없는 상태였다. 한국 정부의 첫 독도 측량은 1954년 해군 수로국[17]에서 실시한 것이지만 7년 뒤인 1961년 11월 30일에 박정희 당시 국가재건최고회의장이 '독도를 측량하고 토지대장에 등록하라(실제로는 임야대장에 등록됨)'고 지시했다는 것은[18] 이때까지도 독도에 지번이 없었음을 방증하므로 이 지시에 따른 국립건설연구소(지금의 한국건설기술연구원)의 측량이 끝난 1962년 2월 26일 이후에야 비로소 독도 35개 필지에 산42~산76번지의 지번이 부여되었을 것이다.

다만, 독도에 지번이 부여된 정확한 날짜는 알기 어렵다. 어떤 땅의 지번은 그 땅에 대한 지적공부(토지대장, 임야대장, 지적도, 임야도 등)가 작성됨으로써 부여되는 것인데 독도의 구 임야대장이 등록된 날짜는 1961년 4월 1일[19]로 나오므로 국립건설연구소의 지형도 제작 시기인 1962년보다 앞서게 된다. 하지만 독도의 구 임야도와 1962년의 지형도를 비교하면 축척은 달라도 형태가 일치하며, 1961년 시점에서 대한민국 정부에 단 하나뿐이었을 1954년의 지형도는 구 임야도와 모양도 많이 다를 뿐더러 표시된 섬도 40개가 넘어 등록 필지 수를 초과한다.[20] 따라서 임야대장의 날짜는 기입상의 오류이거나 일부러 연도를 앞당겨 기록한 것으로 추측되며, 실제 지번 부여 시기는 일러도 1962년 이후일 가능성이 크다(참고로 독도의 소유권보존등기는 1968년 3월 13일자로 접수되었다.).

한편 1948년 8월 정부 수립과 동시에 독도에 울릉군 남면 도동 1번지 또는 산42번지 등의 지번을 부여하는 행정조치가 이뤄졌다고 설명을 하는 곳도 많으나, 번지수는 차치하고 애초에 1948년 당시 울릉군의 행정구역은 '경상북도 울릉군'이 아닌 '경상북도 울릉도(島)'였는데다 특히 산42번지 등의 경우 독도에 작은 섬이 몇 개인지도 제대로 파악되지 않은 상태에서 섬마다 지번을 부여하긴 어려웠을 것이므로 신빙성이 떨어지는 설명이다.

사정이 이럼에도 불구하고 어째서 독도의 주소가 노래에서 남면 도동 1번지로 표현되었는지 정확한 경위는 알 수 없다. 다만 울릉읍 도동리 1번지(옛 남면 도동 1번지)는 부속 섬을 제외하면 울릉도 본도에서 거의 최동단이라 독도와의 직선거리가 짧기는 하다.[21] 또 노래가 나오기 한참 전인 1950년대부터 이미 독도를 도동 1번지로 표기한 신문 기사들이 존재하는 것으로 보아 적어도 작사가가 처음 창작한 번지는 아니다.[22] 작사가인 박문영은 작사 당시 독도에 관해 아는 게 거의 없어 방송국 도서관의 백과사전(동아 원색대백과)에서 찾은 독도 항목 내용만을 보고 작사했다고 하는데[23] 거기에 실려 있던 잘못된(혹은 낡은) 주소가 그대로 가사가 된 것으로 보인다.

이 지번들은 2000년 도동리에서 독도리가 분리되면서 독도리 산1~산37번지로 변경되었고 2005년에는 기존의 임야도를 폐지하고 지적도를 새로 작성하면서 미등록 필지를 신규 등록해 독도리 1~96번지로 개편되었다.[24] 이에 따라 2절 가사도 2001년 이후 '경상북도 울릉군 울릉읍 독도리'로 변경되어 지금에 이르고 있다.[25]

도로명주소 제도 시행으로 독도의 도로명주소는 경상북도 울릉군 울릉읍 독도안용복길(서도), 독도이사부길(동도)이지만 가사에는 반영되지 않았다.

4. 수록 음반

정광태가 부른 〈독도는 우리땅〉 의 각 버전이 수록된 정식 음반은 다음과 같다.
음반 제목 발매일 특징
《웃기는 노래와 웃기지 않는 노래》1982년 6월 30일정광태 포함 가수 6명의 곡을 모은 앨범.
〈독도는 우리땅〉 곡이 수록된 첫 앨범.
《독도는 우리땅》1983년《웃기는 노래와...》를 앨범 제목과 곡 순서만 바꿔서 재발매한 앨범.
단, 〈독도는 우리땅〉 곡은 1982년 원곡 반주에 2절 가사를 수정해서 재녹음.
《김치주제가 / 탈춤노래 / 짜라빠빠
(정광태 2집)
1985년 6월 5일《도요새의 비밀》에 이은 정광태의 두 번째 개인 앨범.
〈독도는 우리땅〉은 춤곡으로 재편곡해 수록. 가사는 1983년과 동일.
《대한민국만세》1996년 3월DJ DOC의 앨범.
DJ DOC의 버전과, 같은 반주로 정광태가 부른 버전을 함께 수록.
《아름다운 독도》2001년 4월김창환이 편곡. 2절 가사가 지금의 주소로 변경됨.
〈독도는 우리땅 Ⅰ〉은 완전히 새로운 반주를 사용.
〈독도는 우리땅 Ⅱ〉는 1985년 버전의 리메이크.
《독도는 한국땅》2011년 8월 18일〈독도는 우리땅〉 곡은 2001년 〈독도는 우리땅 Ⅰ〉의 재탕.
약간 편곡된 Inst. 버전을 신규 수록.

5. 1983년 전두환 정권의 방송금지

가수 정광태의 고백에 따르면 1983년 7월부터 넉 달간 전두환 정부 시절 문화공보부로부터 방송금지 처분(정확히는 잠정 방송금지)을 받은 적이 있다고 한다. 1983년 일본이 역사 교과서 왜곡 파동이 일어났을 때 전두환 정부의 대일외교 정책 등을 우려하여 금지했다고 주장했는데 이는 1998년 가수 정광태가 대한매일 인터뷰 기사에서 회고한 내용이었다. 금지곡 지정 이후 허문도 문화공보부 차관을 만나 사정한 끝에 금지곡에서 간신히 풀렸다.

6. 인기와 리메이크

1982년 처음 선보인 이후로 일본이 독도를 자기네 땅이라고 주장할 때마다 한국인들에게서 자주 불리게 되었으며 후에 DJ DOC가 이 노래를 리메이크해서 불렀다.


1996년에 DJ DOC가 리메이크했는데 이들이 부른 버전과 정광태가 부른 버전 2개가 음반 <대한민국만세>에 수록돼 있다. 2005년에 가수 마야은지원과 함께 락으로 리메이크해 불렀다. 해당 곡은 LG전자 싸이언 뮤직폰 광고에 수록됐다.

같은 해 가수 김흥국과 정광태가 함께 독도는 우리땅과 호랑나비 노래를 조합한 <독도로 날아간 호랑나비>를 선보였다. 도입부 부분이 뜬금없어서 왕비호에게 까였다. 해당 곡 역시 KBS에서 심의 보류 상태이다.
울릉도 동남쪽 뱃길따라 날아간 호랑나비 호랑나비 성난 호랑나비
왜 왜 독도로 날아갔을까 기회만 있으면 자기네 땅이라고 우겨
조금만 틈을 줘도 자기네 땅이라 우겨 으아 정말 열받는구나~ 대한민국~ 대한민국~
호랑나비야 지켜라 아름다운 독도 지켜라~ 호랑나비야 외쳐라 동쪽에다 크게 외쳐라~
독도는 우리땅 독도는 한국땅
21대 총선을 앞두고 미래통합당의 공식 로고송으로 채택되었다.
어두운 세상을 밝히는 등불로
정의에 불타는 미래통합당
희망과 행복이 함께하는 사람들
우리들의 미래통합당
힘들고 어려운 생활에 지쳐도
보이는 희망은 미래통합당
그 누가 아무리 자기들 찍으라고 말해도
핑크핑크 미래통합당
역사는 말한다 통합을 원해요
시대를 앞서는 미래통합당
사랑과 행복이 가득한 우리는
핑크핑크 미래통합당
21대 총선에서 송영길 후보의 선거송으로 쓰였다.

7. 독도 챌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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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기타

  • 2005년에 독도 노래비가 도동항 광장에 건립되었다.
  • 2000년대경에 이 곡을 패러디한 구전 동요가 퍼졌는데 어렸을 때 한 두번씩 들어본 사람이 있을 것이다. 가사는 지역마다 다를 수 있다.
아저씨 백원만[26] 깎아 주세요.
안 된다 이놈아[27] 네 머리나 깎아라[28]
PC방은 내가 지킨다. (PC방!!)[29][30] ||
  • 가수 정광태는 '명예 독도 주민'으로 등록되어 1998년에 독도로 본적도 옮겼고 독도에 관련된 활동을 했다. 이 같은 이유로 일본에선 입국 금지 명단에 올라 있다고 한다.[31]
  • MBC 무한도전 2008 베이징 올림픽 특집 당시 외국인들과 함께 독도는 우리땅을 불러 화제가 되었다. 외국인들이 한 글자씩 부르는 장면을 모아 편집했는데 시청자들에게 호평을 받았다.
  • 원본인 1982년판 가사에는 '대마도는 일본땅'였던 가사가 '대마도는 몰라도'로 바뀌었다가 2012년판에서는 기어코 '대마도는 조선땅'으로 바뀌어 버려서 쓰시마섬에 대한 역사적 영유권 주장에 근거가 없다는 사실을 알고 있는 사람들이 비판하기도 한다. 일본인들이 잘 걸고 넘어트리는 부분이라 태권더 박에도 이걸 지적하는 장면이 있다. '하와이는 미국땅' 부분도 가끔 지적받기도 한다.
  • 해피투게더 쟁반노래방 177회에서 이 노래 3~5절이 도전곡으로 선정되었다. 여기서는 원곡대로 불렀기 때문에 "대마도는 몰라도"가 맞는다는 논란이 있었다. 초반부터 가사를 빠르게 알아내서 무난한 성공이 예상되었지만 여러 출연자의 자잘한 실수 때문에 9번 만에 성공했다.
  • 웹툰 신도림에서 Tiger.D가 이 노래를 들으면서 싸우고, 템포를 빠르게 할 수록 속도가 빨라진다.
  • 의외로 일본 노래방에도 수록되어 있다고 한다.
  • 국민적으로 널리 알려진 노래라 무언가를 암기할 때 이 노래의 멜로디에 얹어서 외우는 경우가 종종 있다. 봉준호 감독의 2019년 작품 기생충에서도 이 노래를 개사해서 부르는 장면이 나오는데 이게 미국 개봉 후 "제시카 징글(Jessica Jingle)"로 불리며 화제가 되었다. 관련 뉴스 이 장면은 으로 등극해 전세계적으로 컬트적인 인기를 모았고 관련 드립과 짤도 엄청나게 쏟아졌다.
  • 가수 서희[33]가 부른 일본어 버전도 있고, 후속곡인 신 독도는 우리땅도 존재한다. 후속곡은 2006년 경에 발매된 곡으로 빠른 록 풍과 "도꾸도와 강꼬꾸노 료오도 데스(독도는 한국의 영토입니다)", "도오까(제발)"라는 일본어 가사를 담았다. 이 노래는 일본어가 들어가 있다는 이유로 당시에 방송 불가 판정을 받았으나 독도가 한국 영토임을 일본인에게 알려야겠단 작사가의 요청으로 재심의에 통과하였다. 꽤나 흥겨운 노래임에도 잘 알려지지 않았다.
  • 북한에서도 부른다! 북한 주민들도 꽤 알고 있는 듯하다.
  • 2022-23 시즌을 기점으로 감스트황원태, 김바쏘가 이 곡을 개사해서 맨까송을 만들었는데 맨유의 시즌 초중반 영 좋지 않은 경기력과 함께 대단한 인기를 모았다.

9. 관련 문서



[1] 참고로 박인호라는 이름을 가진 인물 중에 유명 작사가 반야월의 아들도 있는지라 독도는 우리땅의 박인호를 반야월의 아들로 잘못 알고 있는 사람이 은근히 많지만 반야월의 아들과 이 박인호는 서로 전혀 다른 사람이다. 게다가 반야월의 아들 박인호는 박인호라는 이름 석자가 본명이다.[2] 당시 대성음반 문예부장으로서 대학생을 겨냥한 음반을 기획 중이었다. 2017년 기준으로 한국음악산업협회 6대 회장.[3] 여자 신인 가수상은 〈아! 대한민국〉의 정수라였다.[4] 이건 80년대 초반 유머 프로그램 + 포졸복장이면 일단 변방의 북소리가 떠올라서일 가능성이 높다.[5] 이상훈이라는 오타는 다른 기사에서도 자주 보인다.[6] 그러나 1980년대 초반 방송자료의 대다수는 테이프 재활용 등으로 소실되었다.[7] CNB 저널 제79호[8] 물론 저작권의 분쟁 여지가 있는 건 아니고 오히려 잘했다는 투다. 연합뉴스, 2006년 7월 20일.[9] 소비라이프, 2008년 10월 8일.[10] 한겨레, 1996년 2월 17일, 경향신문, 1996년 2월 17일[11] 경향신문, 1996년 6월 12일[12] 서도의 당시 주소로 길이상 '울릉군'은 생략되었다. 현재 주소는 울릉읍 독도리 20.[13] 이때 전국의 군청 소재지를 일괄적으로 읍으로 승격했다.[14] 경상북도는 1988년까지도 · 단위 아래에 (洞)이 있는 곳이 많았고 남면 도동도 그 중 하나였다. 이후 (里)로 일원화될 때 도동은 아예 동 자까지 포함해서 도동리로 변경됐다. 서울의 청량리가 일제강점기 청량리정(町)을 거쳐 현재의 청량리동이 된 것과는 반대이다.[15] 1913년의 경상남도 울도군 남면 도동 지적 원도집 표지. 각 페이지를 표시한 약도에서 1번지가 속한 1페이지의 영역은 제일 동쪽에 있다. (울도군은 1914년 경상북도로 이관되고 1915년 울릉도로 개칭됐다.[16] 1913년의 남면 도동 1번지 지적 원도. 현재의 울릉읍 도동리 1번지와 토지 형상이 완전히 같다.[17] 지금의 국립해양조사원.[18] 월간산, 2008년 7월호[19] 월간조선, 2011년 6월호.[20] 임야대장 및 임야도 등본, 역대 지형도 모음. 참고로 1976년 이전의 임야대장 기록은 저기엔 안 나오고 따로 구 임야대장 등본을 떼야 나온다.[21] 실제로는 산4번지가 더 동쪽이며 1번지는 바다와 접하지 않는다.[22] 경향신문, 1959년 3월 3일.[23] KBS, 2014년 2월 5일.[24] 독도입도 종합안내 > 독도바로알기 > 독도지명[25] 만약 현재 진행중인 대구경북 행정통합이 정상적으로 완료된다면 주소가 대구경북특별시 울릉군 울릉읍 독도리로 바뀌게 된다[26] 깎아야 하는 액수는 그때그때 변하며 오백원보다 더 많은 경우도 있다. 조금만이라고 하는 경우도 있다.[27] '안 된다 거지야'나 '안 된다 꼬마야', '안 된다 새끼야'(...), '안 된다 안 된다' 등으로도 개사되었다.[28] '돈 없으면 꺼져라'나 '먹고 살기 힘들다'라고 개사된 경우도 있다.[29] 마지막 우리땅에 해당하는 부분. 고음으로 올려야 정석이라고 한다.[30] '지킨다!!'로 개사된 경우도 있다.[31] 입국비자를 아예 주지 않는다는 뜻이다. 그리고 반대로 씨스포빌 등 육지와 울릉도를 오가는 여객선사들도 일본인들에게 여객선 발권을 거부한다.[32] 이 논리대로 따르면 서수남1970년대에 발표한 팔도유람은 각각 통합 익산시통합 창원시 출범 직전까지 존재한 이리시와 마산시가 등장하므로 방송 금지곡이어야 하며 손상미1990년대 말에 발표한 청풍명월도 통합 청주시 출범 직전까지 존재한 청원군이 등장하므로 방송 금지곡이어야 한다. 다만 KBS는 공영방송으로서 교육적인 성격이 강하기에 그럴 수밖에 없는 측면도 있다.[33] 발매 당시에는 마법전설이라는 이름으로 활동하였다.[34] 악어떼 파트는 주니토니어레인지 버전이다.[35] 영상 초반부를 보면 알겠지만 이 노래 가사는 수 년 전에 기말고사 준비로 정줄을 놓아버린 한 대학생이 에브리타임에 올린 가사가 그 시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