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03-03 09:56:53

드라큘라(뮤지컬)/브로드웨이판/일본 후지테레비 프로덕션



1. 개요2. 일본 캐스트 제작 & 스태프진3. 2011년 일본 초연 캐스트4. 2013년 일본 재연 캐스트5. 일본에서 드라큘라를 재연하지 않는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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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프랭크 와일드혼의 뮤지컬 드라큘라의 일본 후지테레비판 프로덕션 버전. 2011년 초연과 2013년 재연을 올린적 있으며 아시아 국가 중에서는 최초임과 동시에 세계 최초로 여성배우가 혼성 무대에서 드라큘라를 연기한다는 점에서도 주목받았다.[1] 한국 OD판 라이센스 버전이 나올 수 있는 영향을 줬단 점에서도 의의가 큰게 일본 후지 테레비 버전 프로덕션이다. 일본 후지테레비 프로덕션 공연은 2007년 오스트리아 그라츠판에 이어 드라큘라의 브러시업 2단계 버전이라고도 불린다.
파일:와오드큘.jpg
<rowcolor=#fff> 2011 드라큘라 후지테레비 프로덕션 포스터
파일:일드큘1.jpg파일:타카코드큘.jpg파일:하나후사 미나.jpg
<rowcolor=#fff> 드라큘라 & 미나 드라큘라役 와오 요우카 미나役 하나후사 마리

일본 드라큘라를 맡은 배우는 전 다카라즈카 가극단 주조 남역(男役)톱스타이자 현 프랭크 와일드혼의 배우자인 와오 요우카(和央ようか), 미나는 전 다카라즈카 가극단 설조ㆍ주조 여역(娘役)톱스타 하나후사 마리(花總まり).[2][3] 일본판 초연과 재연 캐스트는 베테랑 배우[4]와 당시엔 와카테들로 구성되어 있지만 지금은 크게 활약 중인 배우들이 대거 참석하고 있어 상당히 미친 캐스트를 자랑한다. 무려 초연때는 루시, 재연때는 하나후사 마리의 대역으로 미나를 연기한 배우가 모닝구 무스메 출신인 아베 나츠미. 2011년 초연은 기간한정수량으로 DVD가 발매된바 있다.[5]

연출은 초연과 재연 모두 요시카와 토오루(吉川徹) 담당했으며, 기획ㆍ제작은 후지TV 쿄도 도쿄가 맡았다. 연출이나 무대는 한국판에 익숙해져 있는 상태라면 좀 심심할 수 있고, 드라큘라역의 와오 요우카가 굉장히 정적인 느낌을 줄 수 있다.[6] 대신, 가창보다 연극성과 대사의 연결이 얼마나 잘 되고 있는지를 주목하면서 세부적이고 디테일한 미학을 더 중요시하는[7] 일본 뮤지컬의 특징이 잘 드러나는 공연 중에 하나이며 내용의 개연성과 극의 설득력에서는 일본판 드라큘라 쪽이 더 괜찮다고 평가해주는 이들도 있다. 일본판은 주로 오스트리아 그라츠버전을 기반으로 하고 있는데, 거기서 대사가 더 들어간 스토프레[8] 형식으로 되어있고, 타이틀롤 드라큘라의 이미지가 비현실적인 인외감(人外感)을 주기 위해 장발로 설정되어 있다는 것이 특징이다.[9] 현재는 일본에서 상연하지 않고 있는 뮤지컬작 중에 하나인데, 이유는 후술.

2. 일본 캐스트 제작 & 스태프진

  • 계획・제작: 후지TV 교도 도쿄 フジテレビジョン キョードー東京
  • 번역: 토키타 케이코 常田景子
  • 역사・연출: 요시카와 토오루 吉川徹[10]
  • 음악감독・지휘: 우에가키 사토시 上垣聡
  • 안무・스테이징: 마에다 키요미 前田清実
  • 안무: 하세카와 타츠야 長谷川達也[11]
  • 미술: 마츠이 루미 松井るみ
  • 조명: 타카미 카즈요시 高見和義
  • 음향: 야마모토 코이치 山本浩一
  • 의상 디자인: 아사즈키 신지로 朝月真次郎
  • 헤어・메이크업: 타카나 에미 田中エミ[12]
  • 가창지도: 야마카와 타카후미 山川高風
  • 액션: 아츠미 히로시 渥美博
  • 조연출: 토요타 메구미 豊田めぐみ
  • 무대감독: 타카하라 토시코 瀧原寿子
  • 음악제작: AZA컴퍼니 カンパニーAZA
  • 제작: 드라마틱 디파트먼트ドラマチック・デパートメント

3. 2011년 일본 초연 캐스트

파일:와오드큘초연1.jpg파일:花總ミーナ.jpg파일:와오드큘하나미나.jpg
<rowcolor=#fff> 드라큘라役 와오 요우카 미나役 하나후사 마리 드라큘라 & 미나
파일:와오드큘오노다랜필드.jpg파일:일드큘초연씬.jpg파일:드큘일초연1111.jpg
<rowcolor=#fff> 드라큘라 & 렌필드 반 헬싱 外 드라큘라役 와오 요우카

일본 초연 해금은 2010년 12월 17일에 발표되었다.# 일본 초연은 8월 20일부터 도쿄 국제 포럼, 9월 16일부터 우메다 예술 극장에서 상연했으며, 당시 티켓비는 도쿄 공연이 프리미엄석 20,000엔, S석 12,000엔, A석 9,000엔, B석 6,000엔. 오사카 공연은 SS석 19,000엔, S석 12,000엔, A석 9,000엔, B석 6,000엔으로 발매했었다.
2011 초연 쇼케이스 2011 초연 'Fresh Blood'

주역 2인 캐스트 해금 당시부터 다카라즈카 가극단의 전 주조 남역 톱스타 와오 요우카와 전 설조ㆍ주조 여역 톱스타 하나후사 마리의 공동 출연으로 화제를 불렀다. 상기했듯 세계 최초로 여성이 드라큘라를 연기한다는 점에서도 주목받은게 2011년 일본 드라큘라 초연이다. 공연 시작하기 전, 와오 요우카가 피아(ぴあ)에서 일본 초연기념 인터뷰를 진행하기도 했다.# 거기에 더해서 다카라즈카를 퇴단한 후 4년간 무대활동을 쉬었던 전 주조 여역톱스타 하나후사 마리의 본격적인 무대활동 복귀작이라 하나후사 마리의 팬들에게도 환호를 받았다.[13] 2011년 드라큘라 초연이 결정나자 와오 요우카는 2010년 크리스마스 디너쇼[14]에서 하나후사 마리를 게스트로 초대하여 드라큘라 백작과 미나의 듀엣 'Mina's Seduction'(독일어: Die Verf-ührung)를 부르기도 했다.[15]
2010 와오 요우카 디너쇼 'Mina's Seduction'

일본 후지테레비판 드라큘라의 타이틀롤이 세계최초 여성배우로 나올 수 있던것은 원작자 프랭크 와일드혼의 적극적인 지지 및 지원이 가장 크다. 와오 요우카의 인터뷰에 따르면 와일드혼은 와오 요우카를 보자마자 드라큘라에 굉장히 어울릴거 같다고 기뻐하며 얘기해줬다고 한다.[16] 와오 요우카가 와일드혼의 제안을 곧바로 승낙하자 와일드 혼이 와오 요우카를 드라큘라 타이틀롤로 올리기 위해 I Have a Choice를 새로 작곡하기도 했으며, 연출감독 요시카와 토오루 역시 다카라젠느 시절때부터 와오 요우카의 재능을 알아봤기에 작곡가 와일드혼과 함께 니혼 테레비와 협의하여 드라큘라 일본 초연 무대 제작에 들어갔다. 시사회는 공연 시작 전인 2011년 7월 21일에 개최되었다.#

상기되어 있는 설명대로 일본판은 오스트리아 그라츠판을 베이스로 삼아 공연되었는데 이유는 드라큘라가 브로드웨이판 초연에선 굉장히 개연성 등에서 혹평을 받았던걸 2007년 오스트리아 그라츠에서 새로운 버전으로 올린 버전에서 비평가들과 관객들 사이에서 매우 성공적이었기 때문이다. 그 그라츠판을 일본에도 올리게 된 것. 널리 알려진 곡 It's Over도 그라츠판에서 먼저 추가가 된 곡이며, 일본판에서도 당연히 드라큘라를 맡은 와오 요우카와 반 헬싱을 맡은 스즈키 소마가 듀엣씬을 연기한다.# 따라서 오스트리아 그라츠판[17]이 일본판에 영향을 주고, 그 뒤 한국판을 비롯한 전세계 드라큘라 프로덕션도 그라츠판과 일본판을 기반으로 하고 있다는 점도 확인 할 수 있다.
『2011년 일본 후지테레비판 드라큘라 초연 출연진』
  • 드라큘라 : 와오 요우카 和央ようか
  • 미나 : 하나후사 마리 花總まり
  • 루시 : 아베 나츠미 安倍なつみ
  • 조나단 : 코니시 료세이 小西遼生
  • 잭 스워드 : 카미야마 류지 上山竜司[18]
  • 아서 : 야자키 히로시 矢崎広
  • 렌필드 : 오노다 류노스케 小野田龍之介[19]
  • 반 헬싱 교수 : 스즈키 소마 鈴木綜馬
  • 퀸시 모리스: 마츠하라 츠요시 松原剛志

4. 2013년 일본 재연 캐스트

파일:와오드쿨재연.jpg파일:낫치미나.jpg
<rowcolor=#fff> 드라큘라役 와오 요우카 미나役 아베 나츠미 
파일:랜필드일드큘재연.jpg파일:와드쿤재연2.jpg파일:와드재연22.jpg
<rowcolor=#fff> 렌필드役 사쿠라이 타카유키 드라큘라 & 렌필드 드라큘라 & 미나

후지테레비판 드라큘라 재연에 대한 해금은 2013년 3월 22일에 발표되었다. 동시에 이플러스(Eplus)에서 홍보도 했었다. 재연은 2013년 8월 23일부터 9월 8일까지[20] 도쿄 국제포럼 C홀에서 상연되었다.#
2013 재연 티저영상

다카라즈카 역사상 톱 레벨이라고 하는 높은 지지로부터, 재연을 기대하는 소리가 컸지만, 실은 초연이 끝날즈음 호평이 꽤 있었기에 이미 재연 얘기가 나왔었다고 한다. 초연과 마찬가지로 와오 요우카가 타이틀롤을 맡았고, 상대역 미나는 하나후사 마리에서 아베 나츠미로 바꼈다. 아베 나츠미는 초연때 루시를 연기하여 당시 사적인 흑역사건이 언급되던 상황에서도 호평받은바 있다. 그 외에도 루시는 아베 나츠미를 대신하여 키쿠치 미카, 조나단은 코니시 료세이에서 영국과 일본인 혼혈계 뮤지컬 배우인 신겐, 잭 스워드는 카미야마 류지에서 와타나베 다이스케로 바뀌었다.[21] 와오 요우카가 연기한 드라큘라의 가발도 갈색 웨이브 장발에서 당시 와오 요우카 본인이 고수했던 헤어스타일에 가까운 중발정도의 짧은 가발로 바꼈는데 당시 루시를 맡았던 아베 나츠미의 신장(身長)과 이미지에서 균형을 맞추려는게 보인다.[22]
『2013년 일본 후지테레비판 드라큘라 재연 출연진』
  • 드라큘라 : 와오 요우카 和央ようか
  • 미나 : 아베 나츠미 安倍なつみ
  • 루시 : 키쿠치 미카 菊地美香
  • 조나단 : 신겐 辛源
  • 잭 스워드 : 와타나베 다이스케 渡辺大輔
  • 아서 : 야자키 히로시 矢崎広
  • 렌필드 : 사쿠라이 타카유키 櫻井貴之
  • 반 헬싱 교수 : 스즈키 소마 鈴木綜馬
  • 퀸시 모리스: 마츠하라 츠요시 松原剛志

5. 일본에서 드라큘라를 재연하지 않는 이유

2013년 재연이후 드라큘라의 일본상연이 이뤄지지 않은 이유는 2011년 초연 출연진인 드라큘라역의 와오 요우카와 미나를 연기했던 하나후사 마리와의 불화로 인한 결별와일드혼의 뮤지컬작의 상연권을 모두 다카라즈카 가극단에 넘긴 것이 그 첫번째이다. 먼저 하나후사 마리의 경우 1994년부터 1997년까지 다카라즈카 가극단 설조의 여역톱스타로 활동하다가[23] 1998년부터 주조로 조이동을 하여 그쪽에서 여톱스타 활동을 했으며, 2000년부터 와오 요우카가 주조 남역톱스타로 취임하자 2006년 7월 2일에 동반 퇴단을 할때까지 '타카하나(タカハナ)[24]'라는 애칭으로 주조 톱콤비를 이루며 공연하면서 동시에 역대 다카라즈카 톱스타 콤비 중 팬들에게 굉장한 인기를 얻으면서 많은 사랑을 받기도 했다.[25]
이 시기 두 사람은 다카 주조에서 초연한 팬텀과 주조에서 재연 2001 베르사이유의 장미에서 환상적인 호흡으로 호평받았고, 하나후사 마리는 청초한 미모와 가창력을 살린 대역을 맡아 설조 96 엘리자벳에서 씨씨를 맡아 인지도를 얻은것에 뒤이어 다카라즈카 여톱계의 레전드가 되었다.[26] 2006년 7월 2일. 와오 요우카와 함께 『Naver Say Good bye ~어느 사랑의 궤적~』[27]으로 다카라즈카를 퇴단하고 이후 와오 요우카의 개인소속사에 들어가 매니져로써 활약하기 시작했으며 이로 인해 하나후사 마리는 4년간 무대활동 휴식기간을 갖게 되었다.[28] 하나후사는 본명인 다이고 마리코로 와오의 매니져 활동을 했고, 2008년 시카고 일본 초연때 와오 요우카가 벨머 켈리역으로 출연할때도 하나후사가 내조해주었으나, 2009년 와오 요우카가 주연을 맡은 서유기 모티브의 무대극 『슈퍼 몽키』가 갑자기 전공연이 상연중단이 일이 벌어지고 만다. 일명 슈퍼몽키 전공연 상연 중지사건(スーパーモンキー 事件)#. 그 전에도 일본 무대계 상연도중 갑자기 중지가 된 경우는 배우 컨디션 문제 및 싱글캐스트를 고집하기 위한 대역교체 불가 등으로 종종 있었지만, 슈퍼 몽키는 일본 무대계 역사상 처음부터 끝까지 전공연이 중단이 되었던 대사건이라 당시 일본 연뮤덕들에게 패닉과 분노를 안겨주기도 했다. 거기다 와오 요우카와 토호판 모차르트!때 볼프강으로 인지도를 높혔던 나카가와 아키노리[29]의 더블 주역극으로 홍보와 시사회때도 많은 주목을 받았던데다 첫날 공연도 시작하지 않은 체로 전공연이 중단되었기에 당시 일본 연뮤덕들과 와오 요우카의 팬들 및 나카가와 아키노리의 팬들도 충격을 크게 받고 패닉까지 갔었다는 반응이 엄청 많기도 했다. 이 상연중단 사건은 공식측에서 와오 요우카의 컨디션 불량으로 공지했지만[30], 그 당시 일하던 스텝진의 SNS에 의하면 이 하차사건으로 와오 요우카와 하나후사 마리가 대판 실랑이를 벌였다고 한다. 와오 요우카는 하나후사에게 "다이고(하나후사 마리)씨가 매니져로써 자격이 없다!"라고 비난했고, 하나후사 마리 역시 와오 요우카에게 제멋대로의 태도를 보인다며 지적했다. 이 목격담은 당시 일본내에서 무대 스테프와 팬들이 SNS에 기재하기도 했을 정도였다. 물론, 그 이전에도 와오 요우카는 자존심이 강하면서 호불호 성향이 심한걸로 유명했다. 다카 활동 시절에도 잦은 연습불참과 멋대로 나가버린 경우도 여러번 있었다고 전해졌으나, 이런 호불호 강한 성향은 다카라즈카 주조 2대 톱스타가 되면서 많이 개선되었다고 한다. 그러나, 슈퍼 몽키 사건의 경우 와오 보다 제작진의 잘못이 더 크다라는 의견도 있는데, 아직 부상의 후유증이 있던 와오 요우카와 상의도 없이 격렬한 액션을 상당수 넣어놨으며 와오 요우카가 액션을 조금 조절하라고 항의하자 기각되어 와오 요우카와 슈퍼 몽키 제작사와의 거센 마찰이 생겼고 이에 대한 배려부족으로 인해 와오 요우카가 화가나서 출연을 하지 않게 되었다는 것이다. 거기다 지금도 비슷하지만, 당시 일본 뮤지컬은 싱글캐스트가 대부분이었고 당연시 여겼던 시절이라 와오 요우카를 대신할만한 더블캐스트나, 언더, 스윙조차 없었고 구하지도 못했기에 전공연 중단이라는 결과로 이어지고 만것이다. 이 사건으로 하나후사 마리는 와오 요우카와 점점 틀어지기 시작했고, 결국 와오의 개인회사에서 나와 2010년 아오야마 극장에서 올린 연극 드미트리에서 에디트 피아프역으로 무대 활동 재개를 시작한다. 반대로 와오 요우카는 이 시기에 2006년 주조 젠느때부터 인연이 있던 프랭크 와일드혼과 재회하여 본격적인 교제를 시작했다. 둘의 재회로 인해 와일드혼이 와오 요우카에게 드라큘라 타이틀롤을 제안했고, 와오 요우카도 적극 찬성했기에 2011년 드라큘라 일본 초연 결정도 났다.

하나후사 마리의 본격적인 무대 활동 재개가 2011년 드라큘라 일본 초연이었기에 다카라즈카 시절때부터 봐 오던 팬들에게 환호를 받았고, 특히 타카하나 톱콤비 팬들은 두 사람이 화해하여 같이 무대생활을 다시 할거란 기대의 반응도 많았다. 하지만, 이 공연 당시에도 하나후사 마리와 와오 요우카는 상기한 2010년 디너쇼는 물론이고, 2011 드라큘라 일본초연 시사회와 무대 위에서 보인 모습과는 달리 신경전이 있었으며, 결국 드라큘라 초연의 총막공(大千秋楽)을 마치고 완전히 결별하게 되며 그로부터 10년 이상이 지난 현재도 하나후사 마리와 와오 요우카는 다카라젠느 콘서트에서도 같이 출연조차 하지 않게 된다. 2009년 슈퍼 몽키 상연중단 사건으로 다카라즈카 극단 톱콤비때부터 친한 사이에서 금이 가기 시작했으니 10년 이상이 지난 지금도 콘서트에 같이 출연하지 않을 정도로 두 사람의 관계는 회복이 불가능하다는 것을 인증하는 부분이며, 이로 인해 하나후사 마리는 2011년 드라큘라 초연과 2013년 몬테크리스토 일본 초연이후 프랭크 와일드혼의 다른작품에서도 출연조차 하지 않고 있다. 콘서트에서조차 와일드혼의 뮤지컬작 노래를 부르지 않을 정도. 이후 하나후사 마리는 2012년 다카라즈카판 엘리자벳 갈라콘서트에 참석하여 팬들 및 다른 다카라젠느들과 함께 환호를 받았으며 2012년 다카판 엘리자벳의 갈라콘서트가 끝나고 다카판과 토호판의 감독 코이케 슈이치로가 하나후사 마리를 도쿄 제국극장에 데려와 당시 제극에 올릴 신작 레이디 베스를 준비중이던 실베스터 르베이와 미하일 쿤체에게 하나후사 마리를 다시한번 소개하게 된다. 그러나, 당시에는 쿤체도 르베이도 다카판 엘리자벳 시절때 하나후사 마리가 보여줬던 애수에 가득찬 비련의 황후 씨씨상에 대해 그렇게 호의적이지 않았고, 그 다음은 창법에도 의문을 느껴 하나후사 마리한테 자신들의 신작 레이디 베스의 타이틀롤을 맡기는 것에 의구심과 우려를 표했다. 코이케 슈이치로는 하나후사 마리를 제극 배우로 기용하기 위해 어떻게든 쿤체와 르베이를 설득시켰고, 이에 미하일 쿤체와 실베스터 르베이는 하나후사 마리와 함께 공연할 또다른 레이디 베스 배우를 한명은 기용하되, 오디션을 보게 캐스트하라는 조건에서 하나후사 마리를 레이디 베스로 캐스트 하는데 허가를 받게된다.[31]

레이디 베스 초연 캐스트가 모두 해금된 후 하나후사 마리는 2013년 12월부터 2014년 1월까지 잇세이 극장과 우메다 예술극장, 아이치현 예술극장대홀(愛知県芸術劇場大ホール)에서 열린 뮤지컬 몬테크리스토 백작에서 메르세데스를 연기 한 후 본격적으로 시작된 레이디 베스 연습기간을 가졌고 2014년 4월 13일에 시작한 레이디 베스 공연 날 중 2014년 4월 14일 마치네(낮 공연)때 출연하여 도쿄 제국극장 무대에 화려히 데뷔하게 된다. 이후 실베스터 르베이와 쿤체 역시 레이디 베스 공연으로 하나후사 마리의 실력을 보고 인정하게 되고, 그녀가 다카 시절에 표현했던 비련의 엘리자벳 황후 캐릭터 해석 역시 또하나의 씨씨로서 인정하게 되었으며 하나후사 마리는 이치로 마키에 뒤이어 르베이 뮤지컬 히로인 배우겸 토호 뮤지컬 출연자 중 오디션을 보지않고 캐스트 될 수 있는 오고쇼에 해당되는 위치에 서게된다. 거기 더하여 다카라즈카 시절때와 마찬가지로 하나후사 마리는 황족분가라는 재력을 이용해서 토호 및 제극에 엄청난 지원자금을 보내기도 했고, 지금도 진행중이다. 이로 인해 토호연극부측과 우메다측에서[32]하나후사 마리를 의식하여 지킬 앤 하이드, 4월은 너의 거짓말 뮤지컬판을 제외한 와일드혼의 나머지 뮤지컬의 상연권을 다카라즈카 가극단에 모두 넘기게 된다.[33] 한마디로 하나후사 마리가 시키지 않았지만 위치상을 이유로 토호측에서 눈치를 보고있다는 얘기.

이 와일드혼의 뮤지컬 상연권을 다카라즈카 가극단에 거의 팔아넘기라 지시한 것은 다카라즈카판 엘리자벳토호판 엘리자벳, 토호판 모차르트!, 우메다와 호리프로 라이센스 제작판이자 일본 뮤지컬 와카테 등용문작이라 불리는 로미오와 줄리엣, 실베스터 르베이의 두번째 일본제작 뮤지컬 레이디 베스, 뉴시즈, 포의 일족, 뤼팽~칼리오스트로 백작부인의 비밀~로 유명한 일본계 명연출가 코이케 슈이치로라는 이야기가 있는데, 실제로 코이케는 일본에 리자을 가져온 장본인이지만[34], 토호판 엘리자벳 초연당시부터 타이틀롤역의 "다카라즈카틀(宝塚縛り)캐스트" 및 "외부 뮤지컬 무대의 지나친 다카라즈카 스타일화를 강요"한다는 비판이 많음에도[35] 일본 연뮤계에서의 인지도 및 영향력은 엄청난데다[36] 다카라즈카 시절때부터 하나후사 마리가 설조 여역 톱스타가 될 수 있도록 적극 밀어준것으로도 유명[37]하며 실제로 두 사람은 깊은 사제관계이다. 당장 하나후사 마리가 다카라즈카 가극단 77기생으로 입단할때부터 첫 출연작이 베르사이유의 장미위대한 개츠비인데[38], 이 중 위대한 개츠비 다카라즈카 버전은 코이케의 연출작이다. 이 위대한 개츠비로 코이케와 하나후사 마리가 인연이 닿았고, 다카라즈카 가극단 주조도 코이케 슈이치로가 하나후사 마리를 독자적인 여역 톱스타로 내세우기 위해 만들어진 조라고 얘기가 나올만큼 두 사람의 깊은 사제관계는 물론이고, 2014년에 하나후사 마리가 레이디 베스로 토호 뮤지컬계에 들어온 이후로는 "하나후사 마리와 코이케 슈이치로가 일본 무대계를 장악하는 상태"라는 말도 있을 정도이다. 그런 위치이기에 코이케가 제자격인 하나후사 마리의 사적인 부분[39]을 위해 프랭크 와일드혼의 뮤지컬작 상연을 제지하거나 다카라즈카의 판권을 넘기라 지시한것도 두 사람의 관계를 생각해보면 코이케 슈이치로의 영향도 있다는 의견도 납득이 안 가는 것도 아니며 2023년 9월 30일에 발생한 다카라즈카 가극단 소속 배우 자살 사건과 그 여파로 나오게 된 코이케 슈이치로의 갑질 및 동성 조수 성가해 의혹 보도 이후 이 가설에도 조금씩 힘이 실리고 있다. 이러한 일로 인해 서양의 일본 뮤덕층은 하나후사 마리에 대해 캐릭터 해석 뿐만아니라 겸손한 일면도 가식에 가깝다고 평하는 의견도 있으며 일본 무대계가 하나후사 마리와 코이케 슈이치로, 다카라즈카 가극단한큐전철의 장악력과 연줄이 심하다는 것을 지적하기도 한다.

두번째 이유는 연출감독 요시카와 토오루의 자살과 일본 드라큘라의 전체 판권을 여전히 후지 테레비 교도 도쿄가 갖고있다는 것. 일본 후지TV판 드라큘라를 연출한 요시카와 토오루는 야마모토 코지 주연의 뮤지컬 『멤피스』의 번역·역사를 담당한바 있고, 일본 역대 시카고 공연 중 역대 다카라즈카 젠느출신자들만으로 이뤄진 시카고 무대를 연출하기도 했다.## 이렇게 최일선의 연출가로서 활약해오다가 2015년 1월 3일 아내 요시카와 루미가 암으로 사망하자, 심각한 우울증에 빠졌고 이로인해 한동안 무대연출을 쉬겠다고 선언 후 2015년 7월 29일 54세의 생일을 맞이하면서 동시에 극단적인 선택을 하게된다.# 이역시 상기한 슈퍼몽키 전공연 중단사건과는 다른 의미로 일본 무대계에 꽤 커다란 충격을 준 사건이기도 했는데, 요시카와 토오루 본인이 논란이나 사건ㆍ사고를 일으킨적 없이 활약중이었기에 더더욱 충격이 컸고, 아내의 죽음으로 인한 우울증이 겉잡을 수 없을정도로 심각해졌음을 알게되자 더욱 안타까워하는 반응이 많았다.[40] 결국, 다카라즈카 젠느들만 출연한 시카고 무대가 요시카와 토오루 감독의 마지막 연출작이 되었고, 이로 인해 드라큘라도 상연을 하지 못하고 있는 중이라는 것. 일본에선 요시카와 토오루가 연출하고 와오 요우카와 하나후사 마리가 출연한 2011년 초연이 꽤 호평이었으니 팬텀처럼 상연권과 감독이 바뀌지 않은이상 일본 드라큘라의 재상연은 요원하다는것이 중론이다.

세 번째로는 프랭크 와일드혼과 와오 요우카와의 혼인2011년 일본초연만을 절대적으로 기준 삼는 일본 뮤지컬 관객측의 인식도 포함된다.

[1] 일본에서 상연한 드라큘라는 젠더프리의 시초라는 의미도 있다. 물론, 이 젠더프리에 대한 의견은 지금도 찬반논쟁의 한 요소로 꼽히기도 하며, 오늘날 전 세계 뮤지컬계에 이것을 어떻게 적용하느냐에 대한 숙제가 필요하다는 의견도 있으나, 다카라즈카판 엘리자벳과 함께 인외같은 배역에서라도 성별을 초월할 수 있는 가능성을 열어줬다고 점도 포함된게 바로 와오 요우카가 연기한 드라큘라이다. 또한, 다카라즈카판 엘리자벳의 토트(죽음)와는 달리 무려 다카라즈카 극장이 아닌 남자배우들과 함께 공연하는 혼성 외부 무대였기에 젠더프리 배역면에서는 더 의미가 크다고 평가받기도 한다.[2] 다카라즈카판 엘리자벳 초연의 엘리자벳이자 토호판 엘리자벳 신무대판을 처음 장식한 일본 엘리자벳의 대표이면서 일본내 최고의 엘리자벳 배우로도 꼽힌다. 이외에도 르베이가 작곡한 엘리자베스 1세의 공주시절 이야기인 레이디 베스의 베스, 다카라즈카판 베르사이유의 장미, 도브 아띠아의 1789~바스티유의 연인들~, 르베이의 마리 앙투아네트의 마리 앙투아네트 왕비가 나오는 뮤지컬은 3작이나 맡은바 있으며 2023년 12월에는 베토벤의 히로인 안토니 브렌타노 역할로 출연할 정도로 르베이 뮤지컬작 히로인 전문 배우로 불린다. 본명은 다이고 마리코(醍醐まり子)이며 다이고(醍醐)가문 자체가 일본 황가 분가이기에 황손계에 해당된다. 이 위치때문에 일본 뮤지컬계의 오고쇼라 불리며 오디션을 보지않고도 바로 캐스트 되는 높은 위치에 속한 토호 뮤지컬 여배우이기도 하다. 그러나, 서양의 뮤지컬팬 입장에서는 하나후사 마리가 다카라즈카 시절부터 토호 뮤지컬에서도 재력을 이유로 지나치게 지원받고 있다는 것과 오디션 없이 특정 배역에 캐스트 될 수 있다는 위치라는 것에 대한 논란 및 모든 배역에 과도한 비극성과 가련함만을 강조한 연기에 대해 부정적 시각이 있으며, 이런 이유로 인해 레이디 베스는 히라노 아야, 마리 앙투아네트는 사사모토 레나, 엘리자벳은 마나키 레이카를 더 높게 쳐주는 경우가 많다.[3] 하나후사 마리와 와오 요우카는 다카라즈카 주조 톱스타 콤비로 활약했으며 팬들에게 와오하나(和花) 혹은 와오 요우카의 본명인 "오카와 타카코(大川貴子)"를 본딴 타카하나(貴花)라 불리면서 인기를 끌었다. 두 배우 다카라즈카판 엘리자벳에 두번이나 출연한 경험이 있으며 2006년 『Naver Say Good bye ~어느 사랑의 궤적~』로 다카를 퇴단했는데, 이 Naver Say Good bye의 작곡가가 무려 프랭크 와일드혼으로 이 시기부터 와오 요우카와 하나후사 마리가 와일드혼 작품에 인연이 시작되었다. 그리고, 2010년에 와오 요우카가 와일드혼과 재회하여 오랫동안 교제끝에 2015년에 하와이에서 결혼에 골인. 거기 더해 연출은 엘리자벳, 토호판 모차르트!로 유명한 코이케 슈이치로(小池修一郎)이기에 다카라즈카 오리지널 창작극 중 최초로 유명 서양인 작곡가에 의해 작곡된 뮤작이자 다카라즈카 역사상 최초의 미ㆍ일합작 오리지널 창작극이기도 했기에 일본내에서 꽤 화제가 되기도 했다.[4] 반 헬싱 교수를 맡은 극단 시키(四季)출신 스즈키 소마가 예시. 스즈키 소마는 토호판 엘리자벳 초연과 구판무대 시대(2000~2008년 까지)때 프란츠 요제프역을 맡았으며 한국 뮤지컬 토호 라이센스판 프랑켄슈타인의 룽게/이고르를 맡기도 했다. 국내에서는 룽게/이고르의 일본판 배우로 좀 더 알려져있다. 이 외에도 23년 3월 도쿄 제국극장(帝国劇場)에서 상연되었던 스파이 패밀리 뮤지컬판의 헨리 헨더슨 역에 캐스트 되어 연기했는데 엄청난 싱크로율을 자랑하여 호평받았다.[5] 현재는 절판이라 메루카리나 같은 중고판매장에서 구입해야하며 가끔 히비야 다카라즈카점에 중고매물이 나오긴한다.[6] 그러나, 와오 요우카가 연기한 드라큘라가 정적인 것은 당시 상태를 감안해야한다. 와오 요우카는 2005년 다카창작극 『W-ing』공연도중 와이어가 끊겨져 높은 위치에서 떨어져 골절부상을 입었고, 이로 인해 오랫동안 부상 후유증이 지속되었다. 그래서인지 와일드혼과 혼인 이후로는 무대 출연보다 콘서트 중심으로 활동중이다.[7] 좀 쉽게 말하자면 노래를 부를때에도 연극으로 대화하듯이 연기하는 것을 더 중시한다는 얘기다. 일본은 거의 대부분 뮤지컬의 개념을 연극이라는 인식을 두고 감상하는 경우가 많으며, 가창을 잘하는 것을 보는게 아니라 그 출연자가 얼마나 캐릭터에 적합한 이미지를 보여주는지, 몸짓의 기품과 우아함같은 느낌을 뿜어내면서 연기를 능숙히 하는지를 더 바라본다. 오히려 샤우트를 막 써서 내지르면 욕먹는 쪽인데, 극에 몰두해서 연기를 하는게 아니라 싸움만 한다는 느낌준다는것이 그 이유. 그 외에도 섬세하고 디테일한 미학을 얼마나 잘 살릴 수 있는가에 대해서도 바라본다. 이는 카이 쇼마의 인터뷰에서도 확인이 가능한데 한국뮤지컬은 파워계를 중시한데비해 일본뮤지컬은 세부적인 미학을 선호한다고 언급하기도 했으며, 자신 역시 일본에서도 한국뮤지컬의 파워계처럼 강한 가창으로 부르는 스타일로 밀고나가고 싶어도 일본 연뮤 관객들의 선호도와 문화적 차이때문에 그렇게 할 수 없어 아쉬움을 표하기도 했다.[8] 스토프레(ストプレ)는 스트레이트 플레이(Straight Play)의 줄임말로 전통적인 연극의 한 형태를 뜻한다. 통상적인 의미로는 등장인물의 논점이나 심경, 사고방식 등을 대변하는 수단으로 불리며, 스토프레에서 말하는 이야기의 진행이란 불가분의 가창을 포함하지 않는 연극, 즉 오페라와 오페레타, 뮤지컬(이상을 종합적으로 칭해서 가극이라고 하는 것들) 이외의 연극을 가리킨다. 다만, 스트레이트 플레이에서도 '가창 장면'을 포함하기에 엄밀하게는 구별할 수 없다는 의견도 존재한다.[9] 이러한 비현실적 인외감을 주기 위해 장발로 설정된 캐릭터의 시초는 다카라즈카판 엘리자벳이치로 마키가 연기한 토트(죽음) 캐릭터 디자인부터 본격적으로 성행되었다. 물론, 그 전에 엘리자벳의 음악을 일부 사용한 다카라즈카작 로스트 엔젤에서 타천사 메피스토를 연기한 스즈카제 마요가 있으나, 로스트 엔젤은 다카라즈카판 엘리자벳이 정식계약을 맺은 후 저작권상의 이유로 상연하지 않고 있으며, DVD나 블루레이화도 되지 않은 작품이기에 장발 인외의 시초는 이치로 마키가 연기한 토트를 꼽는다.[10] 일본 역대 시카고 무대 공연 중 다카라즈카 가극단 창립 100주년을 기념하여 다카라즈카 전 남역 출신자들만 출연한 시카고 버전# 무대를 연출한 감독이 바로 이 사람이다. 이 시카고 무대에서도 와오 요우카가 벨머역으로 출연. 안타깝게도 이 다카라즈카 남역출연판 시카고 무대가 요시카와 토오루 감독의 마지막 무대연출작이 되었다. 2015년 7월 29일에 우울증으로 인해 스스로 생을 마감했다.[11] 일본 드라큘라 뱀파이어 3인방 중 한명으로 출연.[12] 스튜디오 AD(スタジオAD)소속.[13] 후술되는 내용을 이유로 2011년 일본 초연 드라큘라는 다카라즈카 시절때부터 와오 요우카와 하나후사 마리의 일본팬들이 가장 꺼리는 공연으로 꼽힌다. 아예 이단으로 지목할 정도.[14] 와오 요우카가 매년 크리스마스 기간때마다 일본에서 진행하는 디너쇼. 와일드혼과 본격적인 교제 및 혼인 이후론 남편 와일드혼이 반주자를 맡는다. 가장 최근 공연인 23년 와오 요우카 데뷔 35주년 기념 크리스마스 디너쇼에선 미노루 코우, 아이카 미레, 시온 유우, 김준수를 게스트로 초대하기도 했다. 젠느 톱스타 시절 부상 후유증으로 뮤지컬 무대활동 보다 콘서트 중심으로 진행하는 와오 요우카의 장기활동 중 하나이다.[15] 다만, 후술한 내용과 연계해서 생각하면 이 시기에도 와오 요우카와 하나후사 마리는 불화로 인해 굉장히 신경전인 상태였다.[16] 이후 프랭크 와일드혼JTBC에서 진행한 모 방송 115회에서 출연할때 파트너이자 아내인 와오 요우카를 소개하기도 했는데, 일본 초연 드라큘라 겸 일본인 최초로 NY 시카고 무대에 출연했다고 엄청난 팔불출스러운 자랑을 하기도 했다.[17] 국제 음악 극장에서 라이센스를 받은 드라큘라 공연역시 바로 그라츠판을 기반에 두고 있다. 그라츠판 캐스팅 레코딩은 2008년에 출시되었고 판매 차트에서 큰 성공을 거두기도 했다.[18] 훗날 토호판 엘리자벳 22-23년 공연에서 쿠로바 마리오와 함께 아니키스트 캐릭터인 루이지 루케니를 연기하게 된다. 하나후사 마리와의 인연은 드라큘라가 최초다.[19] 2011년 실베스터 르베이 국제콩쿨 우승자. 드라큘라 일본 초연으로 하나후사 마리와 첫 인연을 맺었으며, 23년 12월 9일에 일본 초연한 르베이의 신작 뮤지컬 베토벤에서 시키 출신 카이호 나오토와 함께 더블캐스트로 카스파 베토벤을 맡게되어 하나후사 마리와 또다시 공연하게 된다.[20] 초연에 비하면 상당히 굉장히 짧은 기간이다.[21] 애초에 일본 드라큘라의 루시, 조나단과 잭 스워드 배역은 갓 활동중인 와카테 등용문으로 설정잡아 캐스트 되었다고 한다. 초연과 재연에서 갑자기 바뀐 것도 그 이유. 물론, 미나의 경우는 당시 하나후사 마리가 와오 요우카와의 불화로 결별하여 드라큘라 초연이후론 참여하지 않게 된 것도 있다.[22] 초연때 하나후사 마리는 163cm이고, 재연때의 미나였던 아베 나츠미는 152cm. 일본인 여성의 평균신장이지만, 174cm의 와오 요우카와 비교하면 꽤 작은 편에 속한다. 비(非)다카라즈카 뮤지컬 여배우가 신장이 작은 배우들이 많은데, 이런 이유때문에 비엔나판부터 강하게 신장제한을 지시해서 적용이 된 실베스터 르베이의 대표작인 엘리자벳의 타이틀롤 참여하지 못하는것이 현실이다. 반대로 160cm이상은 다카라즈카 가극단 출신이 더 많은 편.[23] 이 시기때 하나후사 마리가 맡은 배역 중 가장 인지도를 높인것이 1996년 설조에서 초연한 다카라즈카판 엘리자벳의 씨씨. 지금도 일본에서는 하나후사 마리의 씨씨를 최고로 여기며 그녀를 기준으로 삼을때가 많다. 물론, 하나후사 마리가 연기하는 씨씨는 원작자 미하엘 쿤체와 실베스터 르베이가 원하는 방향이 아닌 우아하고, 아름다운 비련의 황후에 가까운 캐릭터상이라 해외에서는 비판도 많이 있다.[24] 와오 요우카는 스미레 코드 규정하에서 사용한 예명. 본명은 오가와 타카코(大川貴子)이며, 젠느시절때의 애칭은 본명에서 따온 '타카코(たかこ)' 혹은 '타카짱(たかちゃん)'으로 불렸다. 프랭크 와일드혼과 혼인이후론 프랭크 타카코(フランク TAKAKO)로 바꼈으며, 월드투어 콘서트 활약시 역시 본명에서 본딴 TAKAKO로 활동중이다. 한국 드라큘라 배우인 김준수 역시 와오 요우카를 타카코라고 부르는데, 이는 김준수의 공식 인스타 계정에서 확인할 수 있다.[25] 그 유명한 성우 출신 뮤지컬 배우 히라노 아야도 주조 톱콤비 타카하나의 열렬한 팬이라 두 젠느의 공연을 자주 보러오곤했다.[26] 거기 더하여 하나후사 마리는 혈통 자체가 일본 천황가의 피를 잇는 가문 출신이고, 이로 인해 입단 초부터 엄청난 지원을 받고 다카라즈카 극단내에서 집객력도 상당했다. 본명은 다이고 마리코(醍醐まり子). 다이고 가문 자체가 일본 황실 분가이므로 하나후사 마리 역시 일본 황손에 해당된다. 황손 혹은 화족계 출신이라는 이유로 다카라즈카 가극단 내부에서 입단 초반 시절부터 하나후사를 철저히 보호하고 아꼈다는 얘기마저 나올 정도. 황족 분가 후손인것 뿐만아니라 하나후사 마리가 이시마루 칸지의 라디오 게스트로 출연한적 있을 때# 언급하는 바에 의하면 모친은 쇼치쿠(松竹) 가극단의 유명스타였다는 것도 밝혀진다. 즉, 황손이면서 연예인 2세라는 얘기. 하나후사 마리는 다카라즈카 100년 넘게 여역 톱스타 중에서 높은 호칭까지 받았으며, 2006년 7월 2일에 다카를 퇴단 할때까지 여톱으로써 임기는 총 12년을 넘었고, 이는 역대 다카 남톱과 여톱을 통틀어 최장 기록이 되었다.[27] 작곡자가 무려 프랭크 와일드혼. 2006년 당시 주조 톱콤비 와오 요우카와 하나후사 마리 퇴단 공연작이기도 하지만, 당시 다카라즈카 오리지널 창작극 중 유명 서양인 작곡가에 의해 전곡이 작곡된 작품이었기에 일본내에서 꽤 화제가 되었다. 거기다 대본과 가사ㆍ연출은 코이케 슈이치로. 그 동안 윤색ㆍ각색만 해오던 다카라즈카 역사상 최초로 미일합작 오리지널 다카라즈카 작품이라는 대형 기획을 가진 의미있던 작품이기도 했으며, 동시에 와오 요우카와 와일드혼의 인연이 시작된 계기가 되었다.#. 거기다 코이케 슈이치로가 각본을 쓴 다카라즈카 창작극 중에선 유일하게 걸작 취급을 받을정도로 작품성이 좋다. 올드 다카라즈카 팬들 사이에선 전 주조 톱콤비 타카하나를 위시한것이 잘 드러난 작품이란 평도 있다.[28] 하나후사가 와오의 매니져로 일하게 된 것은 자진해서 들어가게 된 것이다. 심지어 두 사람이 다카 젠느 활동시절에는 사이가 너무 좋아서 동성연애를 하는 관계가 아니냐는 소문도 퍼질 정도였다. 심지어 두 배우가 아이를 입양한다는 소문도 있었다. 거기다 다카 주조 톱스타 젠느 활동 당시 와오하나(和花) 혹은 와오 요우카의 본명인 "오카와 타카코(大川貴子)"를 본딴 타카하나(貴花) 주조 콤비 혹은 커플이라 불릴만큼 다카팬들에게 인기도 상당했다. 당사자들만이 알겠지만, 퇴단 후에도 서로가 개인회사까지 차렸다는 얘기마저 나올 정도로 2011년 와일드혼의 뮤지컬 드라큘라 일본초연때까지는 서로 사이가 좋았다는 것은 확실하며 일본내에선 우정이상의 관계였다라는 것이 중론.[29] 대한민국에서는 일본 토호 프랑켄슈타인의 빅터 프랑켄슈타인 W캐스트 배우로도 유명하다. 일본에서는 20세 나이에 토호판 모차르트! 초연(2002년)에서 이미 떴던 배우이고, 지금도 활발히 활동중이다.[30] 물론 와오 요우카의 컨디션 불량도 일리없는 것은 아니다. 와오 요우카는 주조 다카라젠느로 활약시절 공연 중 부상을 크게 당한적이 있다. 2005년 다카창작극 『W-ing』공연도중 와이어가 끊겨져 높은 위치에서 떨어져 골절부상을 입었고, 이는 일본내 다카라즈카 상연도중 최악의 사고ㆍ사건으로 기록되어 있다. 와오 요우카가 퇴단 후 콘서트를 중심으로 활동하는 것도 젠느였던 시절에 입은 부상과 관련없진 않은것이 퇴단 후 무대에서도 격한 액션이 나오는 뮤지컬 출연은 피해야 했기때문이다. 2011년 드라큘라 공연때 와오 요우카가 정적인 느낌을 보였던것도 부상 후유증도 포함이 되어서다.[31] 그렇게 해서 더블캐스트로 들어온게 애니메이션 성우출신 히라노 아야. 히라노 아야는 2013년 레미제라블의 에포닌으로 제극 무대에 데뷔했고, 오디션을 통해 하나후사 마리와 레이디 베스 더블캐스트가 되었다. 이는 제극무대 뮤지컬 최초이자 일본 뮤지컬계에서의 왕족 역으로는 최초로 다카라젠느와 비(非)다카라즈카 뮤지컬 여배우이자 성우출신이 왕족 히로인을 맡게된 파격적인 사례였다.[32] 어차피 토호나 우메다 둘다 같은 한큐전철 소속이라 다카라즈카 가극단의 자회사라고 보면 된다. 자녀에 비유하자면 다카라즈카가 장남(장녀), 토호가 차남(차녀), 우메다가 한큐전철의 삼남(삼녀)에 해당된다.[33] 와일드혼의 다른 뮤지컬 더 라스트 키스도 포함. 엑스칼리버가 현 주조 남역 톱스타인 세리카 토아를 주연으로 다카라즈카 버전으로 올려진것도 이러한 이유때문이다. 와일드혼의 뮤지컬작 중 데스노트도 있으나 이는 호리프로 제작 뮤지컬이기에 논외로 친다. 다만, 데스노트 뮤지컬을 제작한 호리프로 역시 이를 의식해서인지 대한민국 프로덕션 버젼 보다 상연횟수는 낮은 편. 호리프로 뮤지컬작에 하나후사 마리가 한번도 참여하지 않음에도 그만큼 일본 뮤지컬 무대계에서 위치와 영향력이 크다는 것을 알 수 있는 부분.[34] 장본인이긴 하지만, 실질적 공헌자는 이치로 마키가 맞다. 이치로 마키가 코이케 슈이치로 감독과 설조 프로듀서와 함께 비엔나에 가서 "비중이 적더라도 엘리자벳의 토트를 하고싶다."라고 했었고, 그로인해 비엔나 VBW과 실베스터 르베이와 미하일 쿤체를 만나 다카라즈카판 엘리자벳의 계약 성사를 맺었기 때문이다. 결과는 다카라즈카판 엘리자벳이 첫 해외 라이센스판이라는 기록 및 엘리자벳이라는 뮤지컬이 전 세계 프로덕션 버전으로 나온 계기를 마련했으며, 이치로 마키도 토트역으로 다카라즈카를 퇴단하면서 쿤체와 르베이에게 인정받고, 토트역으로 완전 뜬데다 르베이가 코이케의 연락을 받고 이치로 마키토호판 엘리자벳의 씨씨로 올려주기 위해 토호판 초연에만 연주되었던 새로운 씨씨의 넘버곡 "꿈과 현실의 벽에(夢とうつつの狭間に, Zwischen traum und wirklichkeit)"도 작곡하게 했거니와 이 토호판 엘리자벳을 통해서 대한민국에서도 엘리자벳이라는 뮤지컬의 라이센스판을 취득하는 계기도 만든게 깊게 파다보면 이치로 마키의 공헌에서 시작한것이기도 하다. 이치로 마키토호판 엘리자벳 당시 다카라즈카 남역 발성의 부작용 및 다카판의 초연때 상대역이었던 하나후사 마리를 비롯한 여역(娘役) 씨씨의 우아함과 외강내유에 초점을 맞춘 비엔나판 버전과는 전혀 거리가 먼 캐릭터 해석으로 비판은 상당했어도 일본 및 동아시아 국가에다 엘리자벳을 알리게 해준 공헌자라는 것은 거의 공통 된 중론.[35] 특히 토호 장기 레퍼토리인 레 미제라블미스사이공의 팬들은 코이케 슈이치로 및 다카라즈카 출신들이 쉽게 캐스트 되는 비엔나 뮤지컬에 대해 불호가 엄청 큰걸로 유명하다.[36] 당장 토호 뮤지컬계 최초의 도쿄예대 성악과 출신 이노우에 요시오를 포함하여 야마자키 이쿠사부로를 더 적극적으로 기용했단 것과 한국계 극단 시키 출신인 박동하, 우라이 켄지와 미우라 료스케, 카이 쇼마같은 라이더 출신, 카토 카즈키, 후루카와 유타, 이레이 카나타, 타테이시 토시키, 쿠로바 마리오, 키무라 타츠나리, 히로세 유스케 같은 테니뮤 출신, 쿄모토 타이가같은 쟈니스 출신을 포함하여 지역 아동 극단인 키즈 뮤지컬 토스 출신이자 2016년에 개최되었던  '전일본가창력선수권 가창왕(全日本歌唱力選手権 歌唱王)' 결승전 진출자이기도 하는 키노시타 하루카노기자카46 1기생인 이쿠타 에리카, 소녀신당의 아오이 와카나를 기용하여 뮤지컬계로 데려온것도 코이케 슈이치로이다. 이 중에서 코이케 슈이치로가 높이 평가하는 배우는 후루카와 유타, 쿄모토 타이가, 야마자키 이쿠사부로, 타테이시 토시키, 이노우에 요시오, 키노시타 하루카, 미우라 료스케이다. 그러나, 작년부터 다카라즈카에 대한 불미스런 일이 보도되면서 코이케 슈이치로에 대한 보도도 나오게 되었는데, 이 보도가 나오면서 그들의 재능이 있는것과는 별개로 코이케 슈이치로가 추구하는 다카라즈카 젠느같은 분위기와 관상이 아니었다면 코이케가 쉽게 등용하지 않았을 것과 관상을 이유로 재능을 폄하하고 후려쳤을 것이라는 우려의 시각도 나타나기 생기는 중이다. 실제로 이노우에 요시오, 야마자키 이쿠사부로, 쿄모토 타이가, 후루카와 유타, 키노시타 하루카, 타테이시 토시키, 히로세 유스케, 키무라 타츠나리, 미우라 료스케는 일본내에서 다카라젠느에 가까운 분위기와 관상을 갖고있다고 평가받기도 하는 뮤지컬 배우들이기도 하다. 특히 후루카와 유타는 "다카라즈카 암조(闇組) 톱스타"라는 별명이 있을정도로 다카라젠느같은 분위기가 있으며, 타테이시 토시키는 처음 본 이들이 다카라젠느라고 착각하는 경우가 많다.[37] 동시에 하나후사 마리를 설조 여톱으로 만들기 위해 가극단 내부인들과 함께 하나후사의 전임 설조 18대 여톱이었던 무라사키 토모(紫とも)를 거의 내쫓듯이 퇴단시켰다라는 논란도 있다. 이는 묻혀진 사건이지만 아마미 유키스즈카제 마요, 다이치 마오가 활약하던 시절을 지켜본 일본내 올드 다카라즈카 팬들은 지금도 무라사키 토모의 퇴단건을 가끔씩 언급할때가 많다. 이유는 무라사키 토모의 퇴단공연임에도 노래를 부르는 씬은 거의 없고, 당시 2등 여역이었던 하나후사 마리에게 노래를 부른 장면이 쏠렸을 정도로 하나후사에게 몰빵했다는 것이다. 이역시 코이케 슈이치로의 개입이 크게 들어갔단 얘기가 있으며, 당시의 무라사키 코모의 퇴단공연을 본 이들은 현재까지도 여러모로 의구심이 느낄때가 많다고 언급하곤 한다.[38] 두 작품 모두 1991년에 다카라즈카 가극단에서 상연.[39] 와오 요우카와의 불화 및 결별건을 말한다.[40] 요시카와 토오루의 관계자에 의해 유서 역시 발견되었는데 "1월부터 정리해 와서, 지금은 상쾌한 기분입니다."라고 써져있었다고 한다. 심지어 식사를 거르는 일도 많았다고. 아내 사후 요시카와 토오루의 우울증이 심각한 상태였음을 느낄 수 있는 부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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