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03-18 22:01:43

레녹스 루이스

<colbgcolor=#0048ba><colcolor=#ffffff> 레녹스 루이스
Lennox Lewis
CM[1] CBE
파일:lewis-lennox-06232015-us-news-getty-ftr_bas9fwswdxt51sic9guvgk53e.jpg
본명 레녹스 클로디어스 루이스
Lennox Claudius Lewis
출생 1965년 9월 2일 ([age(1965-09-02)]세)
영국 잉글랜드 런던 뉴엄 웨스트햄
국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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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캐나다|]][[틀:국기|]][[틀:국기|]]
가족 배우자 바이올렛 창
복싱 전적 1988 서울 올림픽 수퍼헤비급 금메달
44전 41승 (32K.O) 1무 2패
신체 195cm, 112kg
리치 213cm
체급 헤비
스타일 오소독스[2]
링네임 The Lion

1. 개요2. 경력3. 파이팅 스타일 & 평가4. 여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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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Double L

전 헤비급 복싱 선수.

195cm의 큰 키와 헤비급에서도 굉장히 긴 213cm의 리치에서 나오는 스트레이트로 상대를 압살하는 타입의 선수였다. 통산전적은 44전 41승(32KO) 1무 2패.[3]

2. 경력

19세였던 1984년 영국대표로 1984 로스앤젤레스 올림픽 복싱 헤비급에 출전했으나 2라운에서 당시 미국복싱의 기대주였던 타이렐 빅스에게 져서 탈락했다. 이후 올림픽에 재도전하기 위해 국적을 캐나다로 바꾸었으며 결국 1988 서울 올림픽에서 캐나다 대표로 금메달을 차지했다. 이 때 결승전에서 미국복싱의 또다른 기대주였던 리딕 보우를 만났는데, 1라운드에서는 보우에게 밀렸으나 2라운드 초반부터 리딕의 안면에 정타를 터뜨리면서 결국 2라운드 RSC(refree stop contest, 즉 TKO)로 승리했다. 물론 당시 리딕 보우가 뜻밖의 가족사가 터지는 바람에 멘탈이 나간 상태였긴 하지만 이 때 보여준 레녹스 루이스의 경기력은 분명히 인상적이었다.

88 서울올림픽 직후 영국국적을 회복하였으며 이듬해에 프로로 전향하였다. 루이스가 프로에 데뷔했을 당시 슈퍼헤비급은 지존무상으로 여겨졌던 타이슨이 사생활 문제로 무너진 상황이었고 그의 빈자리를 리딕 보우와 에반더 홀리필드가 노리고 있었다. 이 시기 레녹스 루이스는 이 둘에 비해 상대적으로 주목을 덜받는 언더독으로 평가받았는데, 과거에 자신에게 아픔을 안겨주었던 타이렐 빅스를 3회 KO로 꺾고 캐나다의 기대주였던 도노반 '레이저' 러독(Donovan "Razor" Ruddock)[4]도 2회 KO로 압살해버리면서 리딕보우가 갖고 있던 WBC 헤비급 챔피언 타이틀 도전자 자격을 얻었다.

하지만 리딕보우는 석연치 않은 이유로 루이스와의 대전을 계속 거부했으며, 결국 WBC 챔피언 벨트를 쓰레기통에 넣는 퍼포먼스를 보이면서 챔피언 타이틀을 그냥 포기해 버렸다. 이에 WBC는 루이스에게 챔피언 자격을 인정함에 따라 루이스는 경기를 치르지도 않고 WBC 챔피언이 되었다.[5]

싱겁게 챔피언이 된 루이스 앞에는 당분간 적수가 없을 것으로 예상됐으나, 4차 방어전에서 뜻하지 않게 올리버 맥콜(Oliver McCall)이라는 복병에게 럭키 펀치를 얻어맞고 2라운드 KO패하고 만다. 이 때 루이스가 턱이 약하다는 약점이 드러나게 된다.[6] 이후 루이스는 절치부심하며 리오넬 버틀러, 토미 모리슨 등의 강자들을 꺾고 재기에 성공했으며 이후 공석이 된 WBC 챔피언 결정전에서 3년만에 다시 만난 올리버 맥콜을 5회 KO로 물리치고 챔피언 벨트를 되찾는다.[7]

챔피언 벨트를 되찾은 후 앤드류 골로타, 섀넌 브릭스같은 강호들을 꺾고 1999년 3월 WBA 및 IBF 챔피언이었던 홀리필드와 통합 타이틀전을 가졌는데, 레녹스 루이스가 시종 우세한 경기를 펼쳤음에도 불구하고 무승부 판정이 나와서 논란을 빚었다.[8] 하지만 같은 해 11월에 벌어진 홀리필드와의 리매치에서는 심판 만장일치 판정승을 거두고 홀리필드가 가지고 있던 WBA 및 IBF 타이틀까지 차지하였다. 두 대결 모두 홀리필드는 자신의 전매특허인 버팅, 낭심까기, 니킥을 구사했지만 체격도 크고 리치도 길며 영리하기까지 한 루이스는 여기에 전혀 걸려들지 않고 시도 자체를 다 흘려버려서 홀리필드의 더러운 반칙기가 하나도 안먹혔다.

통합 챔피언이 된 이후 마이클 그랜트(Michael Grant), 프랑소와 보타(Francois Botha)를 KO로 물리쳤으며, 사모아 출신의 하드펀처이자 극강의 내구력 소유자인 데이비드 투아(David Tua)에게도 노련한 경기운영으로 심판전원일치 판정승을 거두었다. 하지만 2001년 남아프리카 공화국에서 벌어진 하심 라흐만과의 경기에서는 예상 외로 5회 KO로 패했다. 당시 하심 라흐만은 크게 주목받는 선수가 아니었기 때문에 이 경기 결과는 큰 이변으로 받아들여졌는데, 경기 당일 컨디션이 극히 나빴던 루이스[9]는 명성에 걸맞지 않은 무기력한 경기로 일관했으며 결국 5회에 결정타를 맞고 무너졌다. 이 때 루이스는 이미 36살의 노장이었기 때문에 노쇠화로 경기력에 한계가 온 것이 아니냐는 지적이 있었는데, 7개월 후 미국 네바다에서 벌어진 하심과의 리벤지매치에서 하심을 시종일관 몰아붙이다가 4회 실신 KO로 깨끗하게 박살내고 세간의 우려를 불식시켰다.

하심에게 복수를 한 이듬해 그간 떡밥으로 계속 회자되었던 마이크 타이슨과의 경기가 드디어 성사되었다. 헤비급의 두 전설이 전성기를 한참 지나 은퇴시점이 가까와진 시점이 돼서야 경기를 갖게 된 것에 대해 아쉬움이 컸지만, 한편으로는 가상 대결이라는 떡밥만 남길뻔 했던 두 사람이 뒤늦게나마 직접 경기를 치룬다는 점에서 기대가 컸다. 경기를 치르기로 합의한 직후부터 양쪽의 신경전이 어마어마했기 때문에 경기 당일 1라운드 공이 울리기 직전까지도 대규모의 경찰병력이 만일의 사태에 대비해서 링 주변을 지키고 있을 만큼 분위기가 살벌했다. 하지만 막상 경기가 시작하자 1라운드부터 일방적으로 루이스의 분위기로 흘러갔으며 결국 루이스가 8회 KO로 승리했다.

타이슨을 꺾은 이듬해인 2003년에 당시 떠오르는 동구권 강자였던 비탈리 클리츠코와 맞붙었다. 루이스는 클리츠코의 강한 저항에 밀려서 고전했으나 클리츠코의 안면부 출혈이 심해지는 바람에 결국 루이스가 6라운드 종료 TKO로 이겼다. 클리츠코 측에서는 재대결을 원했지만 38살이었던 루이스는 이 경기를 끝으로 은퇴를 선언했다.

3. 파이팅 스타일 & 평가

195cm의 매우 큰 키[10]를 가지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비슷한 체격의 다른 선수들보다 훨씬 민첩하고 유연한 몸놀림을 갖고 있었으며 펀치력도 강했다. WBC 챔피언이 되기 전까지는 100키로가 안될 정도로 체구가 날씬했는데 이 시절에는 거의 라이트급이나 웰터급 수준의 몸놀림을 보여주었다. 공격력 측면에서는 현존했던 헤비급 선수 중 역대급이라는 평을 받고 있으며 특히 213cm의 긴 리치에서 나오는 스트레이트의 위력은 비교할 상대를 찾기 힘들 정도로 독보적이었다.

다만 특급 선수 치고는 턱이 약하다는 약점이 있었다. 선수 시절에 당한 2패는 모두 자신보다 한수 아래의 상대에게 불의의 일격을 맞고 무너진 케이스이며 승리한 경기에서도 상대의 어퍼컷 등에 고생하는 경우가 꽤 있었다. 이처럼 맷집이 약하다는 점 때문에 헤비급 최강의 복서를 논할 때 항상 거론이 되면서도 다른 레전드급 선수들에 비해서는 박한 평가를 받는다. 하지만 올림픽 금메달리스트답게 기초에 충실한 수비력을 갖춘데다 긴 리치를 이용한 잽과 스트레이트가 너무 강해서 상대가 좀처럼 접근하기 힘든 스타일었기 때문에 실제로 그의 턱에 주먹을 제대로 날린 선수는 몇 되지 않는다. 화면으로 보면 평범하기 그지 없는 잽인데 실제로는 빠르면서도 굉장히 강력해서 이 잽에도 상대선수가 픽픽 쓰러졌다는점.(...)

또한 실력에 비해 인기가 없는 편이었는데, 기본적으로 펀치교환이 적은 아웃복싱 스타일인데다 말수가 적고 사생활도 너무 깨끗(?)해서 경기 외적인 이슈가 별로 없었던 탓이다.[11] 또 불행인지 다행인지 레녹스 루이스가 헤비급을 평정했던 시절에는 그에게 상대가 될만한 선수가 별로 없었기 때문에 팬들의 기억에 각인될만한 빅매치를 별로 치르지 못한 점도 있다. 루이스가 전성기를 구가하던 시절 빅 흥행카드였던 타이슨은 감옥에 있었고 그나마 빅매치 카드였던 리딕보우는 계속 루이스를 피해다녔고 홀리필드는 루이스보다 더 인기가 없는 챔피언이었다. 그리고 기대를 받았던 마이클 그랜트(Michael Grant), 헨리 아킨완데(Henry Akinwande), 섀넌 브릭스(Shannon Briggs) 등의 신예들은 전혀 루이스의 상대가 되지 못했다.[12][13] 그나마 커리어 말미에 타이슨과 경기를 하긴 했는데 두 선수 모두 전성기가 한참 지나서 만났다는게 문제.

한편으로 레녹스 루이스가 헤비급을 평정한 이후 헤비급 복싱에서 루이스처럼 압도적인 하드웨어를 내세운 거인 복서들이 본격적으로 등장하게 되었는데, 이 때문에 2000년대 이후 헤비급의 몰락을 가져온 노잼복싱의 원조라는 비판을 받기도 한다. 그나마 헤비급 기준에서 평범한 체격조건을 갖고 있었음에도 체급 정상권에 있었던 홀리필드를 루이스가 꺾은 이후부터는 기량과 파이팅으로 승부하는 선수들이 사실상 씨가 말라 버렸고 대신 큰 키와 긴 리치를 활용한 아웃복싱을 구사하는 빅맨들이 헤비급을 장악하는 현상이 나타났다. 이로 인해 왕년의 조지 포먼이나 마이크 타이슨 등이 보여주었던 화끈한 인파이팅은 실종되어 버렸으며 이는 자연히 헤비급 복싱의 인기 하락으로 이어졌다. 혹자는 헤비급 복싱이 격투기가 아니라 사격이 되어버렸다고 푸념할 정도. 2000년대 초반부터 2010년대 중반까지 압도적인 체격조건을 내세워 헤비급을 평정했던 비탈리 클리츠코, 블라디미르 클리츠코형제의 노잼 복싱이 이런 경향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하지만 루이스 때문에 헤비급이 재미없어졌다는 주장은 좀 과도한 측면이 있다. 프로 경력 초기의 루이스는 결코 밖으로 돌면서 잽을 날리는 성향이 아니었으며 오히려 인파이터에 가까운 스타일을 갖고 있었다. 1991년 타이렐 빅스와 치렀던 경기를 보면 빅스의 견제를 뚫고 적극적으로 파고 들어가는 것을 볼 수 있다.

하지만 올리버 맥콜에게 불의의 일격을 맞고 패한 후 좋게 말하면 신중한 스타일, 나쁘게 말하면 지루한 스타일로 성향이 바뀌었다. 맥콜에게 패한 후 재기전으로 치러졌던 리오넬 버틀러와의 경기와 앞서 빅스와의 경기를 비교해 보면 이런 스타일의 변화를 잘 알 수 있다. 그러나 커리어 후기에 아웃복싱 스타일이 강해지기는 했어도 블라디미르 클리츠코처럼 극단적인 니가와 전술을 구사한 것은 결코 아니며, 2000년대 이후의 아웃복서들에 비해서는 상대적으로 선제공격의 빈도가 훨씬 높은 편이었다.

다만 자신과 상성이 맞지 않는 선수를 만나거나 컨디션이 좋지 않을 때에는 종종 명성에 걸맞지 않는 무기력하고 재미없는 경기를 펼치는 경우가 있었는데, 헤비급 몰락의 원조라는 오해가 커진 것도 이런 흑역사 때문으로 보인다. 88 서울 올림픽 헤비급 금메달리스트였던 레이 머서(Ray Mercer)[14]와의 경기가 좋은 예인데, 10라운드로 치러진 이 경기에서 2:0 판정으로 이기기는 했지만 시종일관 무기력한 경기를 펼친 탓에 상당한 비난을 받았으며 판정논란도 불러 일으켰다. 심지어 커리어 중반기부터 까다로워했던 크리스 버드와는 아예 경기 자체를 회피했으며, 결국 리딕보우가 자신을 피했던 것처럼 IBF 세계타이틀을 버리면서도 버드와의 경기는 끝내 거부했다.

4. 여담

자신과 비슷한 신체와 스타일 성향을 가졌으며 다음 헤비급 세대를 지배했던 비탈리 클리츠코가 은퇴하고 나서 비탈리의 복귀를 항상 추천해왔는데 비탈리는 '네가 복귀하면 내가 복귀한다'는 식으로 항상 차갑게 얘기해왔다. 비탈리에게 눈 부상을 입혀 TKO로 승리하긴 했지만 2차전을 요구하자마자 루이스는 바로 은퇴해버렸다. 경기를 보면 비탈리가 초반에 점수로 이득을 챙기지만 루이스의 펀치에 눈이 찢어지고 그것을 공략한 루이스의 TKO승이었다.

루이스 역시 리딕보우처럼 커리어 중반기에 크리스 버드라는 왼손잡이 복서를 피하기 위해서 메이저 벨트중 하나를 버린 과거가 있다.

루이스의 대단한 점은 어퍼의 허용횟수가 프로무대에서 전무하다 싶을 정도로 적다는 것이다. 비록 지긴 했지만 올림픽 결승에서 어퍼를 꽂아 넣은 선수가 리딕 보우이고 에반더 홀리필드 역시 1차전 2차전에서 루이스에 턱에 펀치를 넣어 주춤거리게 한 클린히트를 박은 적이 있으며, 기량이 한참 퇴보한 끝물 마이크 타이슨도 비록 지긴했지만 초반에 근접거리로 위협적이게 파고들었다. 이는 데이비드 투아나 토미 모리슨 같은 A급 인파이터 선수들이 최고 기량을 뽐낼 때도 전혀 시도하지 못했던 것으로 턱이 약한 루이스가 프로 데뷔를 빨리했다면 다른선수의 기량하락이 더뎠다면 정말 어떻게 양상이 전개됐을지 모른다. 또한 강자로 평가되었던 앤드류 골로타 역시 시합직전 진통제를 맞고난 후 부작용으로 시야결손이 일어나서 소송전으로 이어지기도 했다. 루이스에 대한 논란은 여전히 있다. 결론적으로는 홀리필드 타이슨을 둘다 이겼지만 이미 그 둘은 전성기가 아니였던 점. 리딕보우가 일방적으로 피한거지만 둘이 붙지 않은 점. 비탈리클리츠코와 계속해서 경기를 속행했다면 장담할수 없었으며 탁월한 신체에 기술력이 있으나 증량후에도 눈에 자주 띄게 펀치 허용이후 다리가 흔들거리는 턱이 약하다는 단점 때문인지 방어전을 생각보다 많이 치루지 못했다.

2017년 8월 21일 플로이드 메이웨더 VS 코너 맥그리거전에 대한 기자들의 질문에 복싱 경기 한 게임도 안치른 맥그리거를 메이웨더가 이긴다 한들 50전 전승으로 인정한다는거 자체가 넌센스이며 자신은 이 경기를 굳이 비행기 타고 경기장에서 티켓 사가면서 보고 싶진 않다고 시큰둥한 반응을 보였다.

2022년 3월 8일엔 자신의 SNS 계정에 대한민국 대선에서 화제를 모았던 윤석열 후보의 어퍼컷과 관련해 자신의 움직임을 면밀히 연구했던 듯 하다는 평을 남겼다.#


[1] 캐나다 훈장, 멤버(Member)[2] 왼손이 앞을 향하고있는 오른손잡이 스타일[3] KO로 이기지 않은 9승 가운데 판정으로 이긴 경기는 7경기이며 나머지 두 경기는 상대의 반칙플레이로 실격승을 거두었다.[4] 타이슨과 2번 만나서 모두 패하긴 했지만 경기 내용이 상당히 좋았기 때문에 꽤 기대를 받고 있던 선수였다. 타이슨과 1차전에서는 7회 TKO로 졌는데 심판이 너무 일찍 경기를 끝내버렸다는 논란이 있었으며, 2차전에서도 타이슨에게 크게 밀리지 않는 경기로 판정까지 갔다.[5] 올림픽에서 패한 트라우마 때문인지 보우는 이후에도 루이스와의 경기를 계속 거부했고 결국 둘은 경기를 치르지 못했다.[6] 맥콜이 펀치를 휘두르는 과정에서 눈을 감긴 했지만 타이밍 자체는 완벽한 노리고 친 카운터였으며, 전설이 된 트레이너 엠마뉴엘 스튜어트는 맥콜과 루이스의 경기 비디오를 함께 보며 루이스가 오른손 펀치를 날릴때 가끔 밸런스가 무너지는 나쁜 습관을 철저히 연구해서 만들어낸 카운터라고 훗날 밝혔다.[7] 이 때 경기할 의사가 없이 계속 뒤돌아서면서 일방적으로 얻어맞다가 갑자기 엉엉 울어제끼면서 경기를 포기하는 올리버 맥콜의 이해할 수 없는 행동이 화제가 되었다. 당시 맥콜이 약물 중독의 후유증때문에 이런 행동을 보였다는 것이 한참 후에 알려졌다. 그리고 이미 2년전에 마약 소지죄로 체포되고 이 경기후 한달뒤 집안에서 난동을 피우다가 아내의 신고로 정신병원에 강제 구금되기도 했다. 놀라운 점은 맥콜이 루이스 보다 무려 15년을 권투선수로써 가늘고 길게 커리어를 이어가다 2018년에 은퇴했다는점.[8] 에반더 홀리필드는 당시에도 프로모터인 돈 킹과 유유상종 하면서 정치질 하는걸로 유명했고 중요경기때마다 심판판정에서 특혜를 봤다는 의혹이 끊이지 않았다.[9] 영화 오션스 일레븐촬영을 하는 등 당시 복싱보다는 다른 쪽에 정신이 팔려 있었기 때문이다.[10] 하지만 인터뷰에서는 본인이 헤비급에서 그리 큰 덩치는 아니라고 말했다. 헤비급에서도 195cm의 키는 큰 키는 맞지만 2000년대 이후 헤비급에서 막강한 경쟁력을 보이는 선수들은 대부분이 195cm 이상의 키를 가지고 있다. 경쟁력 있는 선수끼리는 딱히 압도적 신체조건이 아니라는 뜻이다.[11] 다만 하심 라흐만과 1차전에서 패하고 리벤지 매치가 성사된 후 TV 생방송에 라흐만과 같이 출연했다가 분위기가 격해지자 주먹싸움을 벌여서 화제가 된 적이 있었다. 평소에 조용한 루이스의 성격에 비춰 봤을 때 의외의 모습이라는 평가가 많았다.[12] 특히 아킨완데는 루이스가 두려운 나머지 아예 공격을 포기하고 무조건 루이스를 끌어안기만 해서 결국 5회에 실격패했다. 역대 챔프 도전자 가운데 가장 비겁한 도전자로 거론될 정도이며, 아킨완데는 이후에도 나름 승수를 쌓았지만 다시는 빅매치 기회를 얻지 못했다.[13] 이들 중 섀넌 브릭스는 그나마 분발해서 나중에 세계 챔피언에 올랐다. 루이스와의 경기는 애초에 미스매치라는 평가를 받았고 결국 5회 TKO로 패하기는 했지만 1회에 클린 히트를 적중시켜서 루이스를 그로기로 몰아넣고 수세에 몰린 상황에서도 물러서지 않고 인파이팅을 펼쳐서 상당히 잘 싸웠다는 평가를 받았다.[14] 루이스는 슈퍼헤비급에서 금메달을 땄고 머서는 한체급 아래인 헤비급에서 금메달을 땄다. 참고로 머서의 결승전 상대는 한국의 백현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