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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000><colcolor=#fff> 레오스 카락스 Leos Carax | |
본명 | 알렉스 크리스토프 뒤퐁[2][3] Alex Christophe Dupont |
출생 | 1960년 11월 22일 ([age(1960-11-22)]세) |
프랑스 오드센주 쉬렌 | |
국적 | [[프랑스| ]][[틀:국기| ]][[틀:국기| ]] |
신체 | 168cm |
가족 | 예카테리나 골루베바(아내 / 2011년 사별) |
나스탸 골루베바 카락스(딸) | |
직업 | 영화감독, 각본가 |
활동 | 1979년 – 현재 |
데뷔 | 1984년 〈소년, 소녀를 만나다〉 |
학력 | 파리 제3대학교 |
별명 | 불란서 천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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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프랑스의 영화감독.1984년, 만 24세의 젋은 나이에 〈소년, 소녀를 만나다〉로 데뷔하자마자 "신세대 천재 감독"으로 불리며 단숨에 스타 감독이 되었으며, 당대 〈그랑 블루〉의 뤽 베송 감독,〈베티 블루〉의 장 자크 베넥스 감독과 더불어 "누벨 이마주"[4][5]의 일원으로 꼽혔다.
2000년대에 들어, 영화 제작이 여러 차례 엎어지고 배우자와 사별하는 등 개인적 부침을 겪다가, 2012년에 다시 〈홀리 모터스〉로 화려하게 복귀하며 현재는 명실공히 프랑스 영화계를 이끄는 거장 감독으로 자리매김하였다.
2. 소개
「 The Beauty of Leos Carax 」 |
레오스 카락스는 프랑스 영화사에 큰 획을 그은 감독이고 영화를 위해 태어난 것 같아요. 그는 감독이자 예술가로서 영화의 본질에 다시 접근하거든요.
ㅡ 세르지 투비아나 (시네마테크 프랑세즈 관장) #
ㅡ 세르지 투비아나 (시네마테크 프랑세즈 관장) #
활동이 드문 데다 작품 간 거리도 멀어서, 하나의 주제로 카락스를 판단하기 힘들다. 그래도 주로 사랑, 폭력, 꿈과 현실의 모호함 이라는 테마를 공통적으로 다루는 편인데, 특히 사랑에 관해선, 육체적인 에로스, 강박적인 필리아, 정신적인 아가페를 한 작품 안에서 모두 다루려 하다 보니, 그에 따라 수위 높은 선정성은 저절로 따라온다.(...)
시대상을 반영하는 편이라 1980년대 이후 프랑스 변화상을 파악하는 게 작품 감상에 도움이 되며, 특히 고전 영화에 대한 오마주가 많아 시네필에겐 보물찾기 같은 매력을 선사하기도 한다.
다른 감독들이 사생활을 숨긴 채 작품을 통해 사회적 메시지만 던지는 것과 다르게, 영화 안에 자기 이야기를 자주 삽입하는 편이다. 특히 〈홀리 모터스〉부터는 외동딸과 사별한 아내에 관련된 요소를 자주 넣고 있는데, 2021년에 개봉한 〈아네트〉에서는 아예 딸이 본인 역할로 직접 나온다.
3. 생애
1960년 11월 22일, 프랑스인 아버지와 미국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났다. 이 때문인지, 모국어인 프랑스어만큼 영어를 유창하게 쓸 줄 안다.어린 시절부터 시네마테크에 매료돼 온갖 고전 영화를 보면서 자랐는데, 본인이 밝히길 불행한 환경으로부터 도망치려고 영화에 더 심취했다고 한다. 자폐증을 앓다 보니 또래들과 어울리기 힘든 점도 있었을 텐데, 이 때문인지 카락스의 영화는 '사랑'을 자주 다루면서도 우울한 정서가 흐르는 편이다.
19살부터 영화를 찍으면서 《카예 뒤 시네마》에 영화평을 기고했고, 24세에 〈소년, 소녀를 만나다〉를 찍으며 일찍이 스타 감독이 되었다.
사생활로는 쥘리에트 비노슈의 전 남친이었으며, 이 연애 당시 만든 영화가 〈퐁네프의 연인들〉이다. 그러나 〈퐁네프의 연인들〉은 제작비 문제로 골머리를 썩던 영화인 데다 제작 도중 비노슈랑 헤어질 정도로 스캔들 투성이여서, 본인도 돌이키고 싶지 않은 기억으로 보인다.
이후 공백기 동안 〈폴라 X〉 주연 예카테리나 골루베바(1966~2011)랑 사귀었는데, 2005년 골루베바가 다른 남자에게서 얻은 딸 "나스탸 골루베바 카락스(Nastya Golubeva Carax)"를 입양했고, 골루베바 사망 후엔 홀로 키우고 있다. 나스타는 〈홀리 모터스〉부터 카락스 영화에 매번 출연하고 있다.
4. 여담
- 데뷔 당시 자폐증을 앓는 것으로 유명했다. 현재 자폐증이 얼만큼 완화됐는지는 불명이다.
- 새로운 걸 추구하려는 성향 때문인지, 자기 영화를 절대 다시 보지 않는다고 한다. 심지어 자기 데뷔작도 완성한 다음엔 본 적이 없다고.
- 강한 인상과 달리 실제 성격은 의외로 재미있고 성실하다는 증언이 많다. 내한 시 간담회에 참석한 이동진도 기자들 질문에 성실하게 답변했다고 밝혔으며, 〈아네트〉에 출연한 마리옹 코티야르도 칸 영화제 기자회견에서 이미지랑 달리 재미있는 사람이며 안전상 문제로 예정된 장면을 삭제해달라고 말하자 군말 없이 받아줬다고 밝힌 바 있다.
- 유명 뮤지션과 친분이 있는 감독인데, 디바인 코미디, 스콧 워커, 데이비드 보위, 스파크스, 소닉 유스, Les Rita Mitsouko에게 음악을 맡긴 적이 있으며 카일리 미노그나 앙젤 같은 뮤지션은 배우로 영화에 출연하기도 했다.
- 1990년대 초반, 영화 월간지 《로드쇼》에서는 이름을 "레오 까라" 라고 표기하기도 했었다. 물론 나중에는 "레오스 카락스"가 맞는 이름이라고 이것으로 고쳐 표기했지만. 미야자키 하야오를 "미야자키 슌"이라고 부르던 것처럼 《로드쇼》에서 보이던 이름 오타였다.
- 한국에서 퐁네프의 연인들이 인지도가 높아서, 한국을 잘 찾는 유명 감독에 속한다. 2013년, 〈홀리 모터스〉 홍보차 내한했다.# 당시 한국에 대한 소감을 묻자 "딸 나스타가 강남스타일을 엄청 좋아한다. 유튜브로 맨날 보여준다."라는 말을 남겼으며, 2021년 내한 때도 딸이 오징어 게임을 좋아한다고 밝히기도 했다.
- 고전 영화에 심취했던 시네필 출신이었지만, 최근에는 영화를 거의 안 본다고 한다.파이아키아에 방문했을 당시, 이동진이 수집품 이야기[7]를 하면서 기생충에 대해 물었으나 웃으면서 안 봤다고 한다. 홍상수 감독 영화만 조금 봤다고. #
- 이동진의 사무실인 파이아키아에 방문하였다.#
- 대표적인 페르소나는 드니 라방이다. 처음 드니 라방의 사진을 봤을때, 정말 특이하다고 생각해서 캐스팅했다. 오랫동안 협업한 사이지만 같이 밥을 먹는다거나 친한 사이는 아니고, 영화를 통해 서로를 발전시키는 관계라고 한다. #
- 사인을 잘 안해주는데 사인 받은 사람들의 증언에 의하면 맞담배 피다가 받은 사람들이 있다고 한다. 심지어 옆에서 자다가 해주고 가싸다고 한다. #
5. 작품 목록
- 1984년 〈소년, 소녀를 만나다〉 (사랑 삼부작 1편)
흑백영화로 수많은 매체에서 소년, 소녀를 먹다 등으로 패러디되는 영화. 평범한 만남을 다룬 영화.이 영화 개봉당시 레오스 카락스는 제2의 장 뤽 고다르라는 소리를 듣기 시작했다.
- 김성욱GV정리#
- 1987년 〈나쁜 피〉 (사랑 삼부작 2편)
두 번째 작품인데 데뷔작과 간격이 좀 길다. 성관계에 의한 바이러스 감염(당시 유행하던 에이즈에 대한 은유) 아래에서 살아가는 청춘들의 일대기를 그린 작품. 영화가 진행될수록 점점 느와르가 되어간다. 90년대 한국에서 TV에서 방영한 적이 있으며, 국내에선 〈퐁네프의 연인들〉의 흥행 성공으로 그 다음에야 개봉 되었다.
- 1991년 〈퐁네프의 연인들〉 (사랑 삼부작 3편)
곡예사와 어느 여인과의 사랑이야기로, 실제 퐁네프 다리에서 찍으려 했지만 좌절되었다. 프랑스 당국은 허가를 해 주었다고는 하나 원하는 장면을 못 찍었다는 듯. 하지만 장 뤽 고다르의 도움으로 투자자를 모색하여 퐁네프와 비슷한 세트장을 만들었다고 한다. 흥행에서 실패했지만, 한국에서는 흥행 성적이 좋아서, '퐁네프'라는 카페도 많이 생겼으며,[8] 심지어 개그 프로도 생겼고, 쥘리에트 비노슈가 이때 한국에 알려지게 되었다.이 영화는 지금도 한국에선 인기가 상당해서, 감독이 한국에 여러 번 방문했다. 다만, 음모 노출 때문에 많이 삭제된 채 개봉했다.
- 1999년 〈폴라 X〉
감독 본인도 인정한 공식적인 흑역사. 허먼 멜빌 소설 피에르, 혹은 모호함[9]을 가지고 만들었으며 1999년 칸 영화제 경쟁 부문 초청작.[10] 흥행도 비평도 모두 망했는데, 그 여파가 너무 심해 이 영화 이후 10년 가까이 작품 활동을 멈췄다. 감독 왈, 지금도 당시 첫 시사회의 썰렁한 반응이 잊혀지지 않는다고. 하며 이 영화의 여주인공이 바로 감독의 아내 예카테리나 골루베바였는데, 안타깝게도 2011년에 요절해 고인이 되었으며,[11] 그 전엔 남주인공인 기욤 드파르디유도 2008년에 요절했다.[12] 도그마 선언의 영향으로, 실제로 섹스 장면이 나와서 논란이 일었는데,(골루베바와 드파르디유가 둘이서 대화를 통해 친해진 상태에서 촬영했다고 한다.) 당연히 한국에는 짤려서 수입되었다. 이 섹스 장면 때문에 프랑스 극단주의 영화로 꼽히는 영화다. 특기할 만한 점으로, 카락스에겐 처음으로 배우 드니 라방과 함께 찍지 않은 영화이다. 음악은 좋아서 스콧 워커가 음악 감독을 맡았으며, 소닉 유스와 빌 캘러한이 참여했다.
- 2012년 〈홀리 모터스〉
폴라 X 이후 13년만의 장편영화로 칸 영화제 본선경쟁작이다. 한 남자가 9가지 인생을 산다는 스토리로 줄거리 요약이 잘 되지 않는다. 이야기적 구성 영화가 아닌 끊임없이 의미들을 발산하는 추상적인 영화이며, 13년 동안의 공백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2012년 올해의 영화에 많이 언급되었으며 카락스의 최고작으로 흔히 평가받는다.
- 《카예 뒤 시네마》에서 2012년 최고의 영화, 2010년대 영화 베스트 2위로 꼽혔다.
- BBC 선정 '21세기 위대한 영화 100편' 16위로도 선정되었다. #
- 2021년 〈아네트〉 - 칸 영화제 감독상
아마존 배급으로 제작되는 레오스 카락스의 첫 음악 영화이자 영어로 제작된 영화. 록밴드 스파크스가 음악과 공동 각본을 맡고 애덤 드라이버, 마리옹 코티야르 주연으로 자신의 딸이 음악적 재능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 싱글대디의 이야기를 그린다. 2021년 칸 영화제 개막작으로 선정되었다. "왜 뮤지컬에서는 섹스를 안 하는 거지?"라는 질문에서 시작된 영화며 본래 와킨 피닉스를 캐스팅하고 싶었으나 그가 부끄러워 해 성사되지 않았다고 한다. 대신 애덤 드라이버를 캐스팅했으며, 드라이버는 〈스타워즈: 깨어난 포스〉로 제작비를 조달했다고 한다.[13] 아마존을 통해 북미 최대 규모로 개봉할 수 있게 됐지만, 카락스는 스트리밍을 싫어한다고 했으며 비싼 영화를 만들면 영혼을 팔게 된다고 말했다.#
- 2024년 〈잇츠 낫 미〉
러닝 타임 40분의 중편 영화. 40년의 경력을 되돌아보고 자신의 삶의 주요 지점에 질문을 던지며 당시의 정치적 동요를 포착한 자화상을 그린다고 한다. 1인칭으로 쓰여진 컷 업 영화이며, 페르소나 드니 라방이 출연한다. #
[1] 제73회 칸 영화제는 취소[2] 카락스(Carax)란 예명은 Alex와 Oscar의 철자를 뒤섞은 것이라 한다. 감독으로 데뷔하기 전부터 예명을 쓰기 시작했다고 한다.[3] 2015년 10월 11일 코엑스 메가박스에서 진행된 〈홀리 모터스〉 시네마톡에서 감독이 직접 본인의 이름이 오스카가 아니라고 밝혔다. 따라서 영화에 등장하는 '오스카'라는 주인공들이 감독 본인의 이름을 딴 것이라는 얘기는 낭설이다.[4] Nouvelle Image - 새로운 이미지. 독특한 영상감각 때문에 이런 별명이 붙었다. '시네마 뒤 룩'이라고도 한다.#[5] 다만 '누벨바그'와 다르게 언론에서 대충 지어낸 단어라, 결속력도 없었고 지속 시간도 짧았다.[6] 2021년 칸 영화제 기자 간담회에서 자신과 배우들에게 기립박수가 쏟아지자 갑작스럽게 담배에 불을 붙이고 카메라를 향해 연기를 뿜는 기행을 선보이기도 했다. #[7] 봉준호 감독의 싸인이 쓰여진 수석[8] 부산에서는 국도극장에서 개봉했고, 퐁네프라는 까페 체인점이 여러 군데 있었다.[9] 시공사에서 번역 출간되었다. 원작은 2권짜리라 상당힌 긴 소설이다.[10] 의외로 카락스 칸 경쟁은 이게 처음이다. 워낙 과작이라서 띄엄띄엄 초청받느라 상당히 늦어진 편이었다.[11] 굉장히 불행하게 세상을 떠났다고 알려져 있다. 공식적인 사인은 교통 사고였으며 자살이란 소문이 있으나, 명확히 밝혀진 건 없다. 또 안타깝게도 샤루나스 바르타스랑 얻은 딸도 2021년 교통 사고로 세상을 떠났다고 한다.[12] 1971~2008. 한때 프랑스의 국민배우였던 제라르 드파르디유의 아들이다. 사인은 폐렴으로 인한 합병증 증세.[13] 그래서 애덤 드라이버는 영화의 프로듀서로 이름을 올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