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련 문서: 라파엘 베니테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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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대 바클레이 ☆ | 2대 맥케나 ☆ | 3대 왓슨 ★★☆ | 4대 애시워스 ★ | 5대 맥퀸 ★ | |
6대 패터슨 | 7대 케이 ★ | 8대 웰시 | 9대 테일러 | 10대 샹클리 (샹클리 체제) ★★★☆ ★★★ | |
11대 페이즐리 (페이즐리 체제) ★★★★★★ ★★★★★★★★ | 12대 페이건 (페이건 체제) ★★★ | 13대 달글리시 (달글리시 체제(1기)) ★★★ ★★ | 13대(대행) 모란 (모란 체제) | 14대 수네스 (수네스 체제)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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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대 달글리시 (달글리시 체제(2기)) ★ | 20대 로저스 (로저스 체제) | 21대 클롭 (클롭 체제) ★★★★ ★★★ | 22대 슬롯 (슬롯 체제) | ||
★프리미어 리그 / ★FA컵 / ★EFL컵 / ☆EFL 챔피언십 ★UEFA 챔피언스 리그 / ★UEFA 유로파 리그 / ★UEFA 슈퍼컵 / ★FIFA 클럽 월드컵 |
[[라파엘 베니테스|]] | |
제18대 감독 라파엘 베니테스 | |
<colbgcolor=#d00027><colcolor=#fff> 감독 | [[스페인| ]][[틀:국기| ]][[틀:국기| ]] 라파엘 베니테스 / 제18대 감독 |
코치 | [[스페인| ]][[틀:국기| ]][[틀:국기| ]] 파코 아예스타란 (수석 코치[1]) [[스페인| ]][[틀:국기| ]][[틀:국기| ]] 파코 데미겔 (수석 코치[2]) [[잉글랜드| ]][[틀:국기| ]][[틀:국기| ]] 새미 리 (수석 코치[3]) [[스코틀랜드| ]][[틀:국기| ]][[틀:국기| ]] 알렉스 밀러 (코치) [[스페인| ]][[틀:국기| ]][[틀:국기| ]] 호세 오초토레나 (골키퍼 코치[4]) [[스페인| ]][[틀:국기| ]][[틀:국기| ]] 사비 발레로 (골키퍼 코치[5]) |
주장 | [[잉글랜드| ]][[틀:국기| ]][[틀:국기| ]] 스티븐 제라드 / 제47대 주장 (2003~2015) |
계약 기간 | 2004년 6월 16일 ~ 2010년 6월 3일 (6년 / 2178일) |
계약 종료 (성적 부진에 따른 상호 협약 해지) | |
연봉 | €4m[6] (감독 / #) |
전술 스타일 | 탄탄한 수비에 기반한 밸런스 축구 ┗ 4-4-1-1, 4-2-3-1 포메이션 ┗ 수비형 미드필더와 4백의 컴팩트한 간격을 활용한 수비 조직력 ┗ 윙어들의 수비가담을 통한 공수 밸런스 ┗ 공격형 플레이메이커 활용 ┗ 패스 기반의 대륙식 축구 |
역대 전적 | 350경기 197승 74무 79패 (승률 56.3%) |
우승 경력 | 2004-05 UEFA 챔피언스 리그 (우승) 2005-06 FA컵 (우승) 2006 FA 커뮤니티 실드 (우승) 2005 UEFA 슈퍼컵 (우승)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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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리버풀 FC의 제18대 감독 라파엘 베니테스 체제를 정리한 문서.2. 감독 선임 과정
2000-01 시즌 미니 트레블, 2001-02 시즌 리그 준우승 등의 과업을 달성한 제라르 울리에 감독이 성적 부진의 이유로 팀을 떠나자, 리버풀의 보드진은 발렌시아 CF를 31년만의 라리가 우승으로 이끈 뒤, 직전 2003-04 시즌 또 한 번의 라리가 우승과 팀 역사상 최초의 UEFA컵 우승을 이룩하며 한창 주가를 올리고 있던 초신성의 감독, 라파엘 베니테스에게 접근하였다.2003-04 시즌 종료 후, 베니테스 감독 또한 당시 발렌시아의 헤수스 가르시아 피타르치 단장과 선수 영입과 관련하여 마찰을 겪고 있었고, 경쟁이 치열해져가던 프리미어 리그에 함께 도전하자는 리버풀의 제안에 흥미를 느껴 감독직을 수락하게 된다.
3. 연혁
3.1. 2004-05 시즌
자세한 내용은 리버풀 FC/2004-05 시즌 문서 참고하십시오.2004년 6월 16일, 베니테스가 제라르 울리에를 이어 리버풀 감독으로 부임하였다. 부임 후 그는 첼시 이적설이 강하게 돌고 있던 캡틴 스티븐 제라드를 설득하여 잔류해내는데 성공했으나 베테랑 대니 머피가 이적하고, 주포인 마이클 오언이 계약 연장을 거절하고 라리가의 레알 마드리드로 떠나며 팀의 전력에 큰 구멍이 생겼다. 이에 베니테스는 첫 이적시장에서 루이스 가르시아와 사비 알론소, 호세미, 안토니오 누녜스 등 자신이 잘 알고있던 라리가 선수들과 공격수 지브릴 시세 등을 영입해 팀의 전력을 올리고자 했다. 또한 유틸리티 수비수였던 제이미 캐러거를 센터백으로 정착시켜 사미 히피아와 센터백 파트너를 이루도록 했다.
그러나 2004-05 시즌이 본격적으로 개막하자 베니테스호는 부상 선수의 속출로 안정적인 경기력을 유지하지 못했다. 리버풀은 개막 후 4라운드에서 리그 10위까지 추락한 후 계속해서 중상위권에서 고군분투했고, 겨울에 스테판 앙쇼를 내보내고 화력 보강을 위해 페르난도 모리엔테스를 영입했으나, 이후에도 리그 우승 레이스에 합류는 커녕 4위권에도 진입하지 못하며, 로컬 라이벌 에버튼 FC에 밀려 5위에 그쳤다. 리그컵에서는 결승까지 올라 베니테스 체제에서의 첫 우승에 도전했으나 첼시 FC와의 결승전에서 연장전 끝에 3-2로 패해 준우승에 그쳤다. FA컵에서는 2부리그 팀 번리에 3라운드에서 광탈하는 수모를 겪었다.
하지만 챔피언스 리그에서는 달랐다. 3차 예선을 거쳐 AS 모나코, 올림피아코스 FC, 데포르티보 라 코루냐와 함께 A조에서 조별 예선을 치른 리버풀은, 올림피아코스와 모나코 원정에서 패하면서 조별리그에서 탈락 위기에 몰려있다가 조별 예선 마지막 경기에서 올림피아코스 FC를 상대로 후반 42분 주장 스티븐 제라드의 천금같은 중거리 골이 터지며[7] 극적으로 토너먼트에 진출했다. 이후 16강에서는 바이어 레버쿠젠을 상대로 홈과 원정에서 모두 3-1로 승리하며 가볍게 8강에 진출했으나, 파벨 네드베드, 알레산드로 델 피에로 등이 이끌던 이탈리아의 강호 유벤투스 FC를 8강에서 만난다. 그러나 리버풀은 전력적 약세를 뒤집고 홈에서 2-1로 승리 후 원정에서 끈질기게 버티며 0-0 무승부를 기록, 실로 오랜만에 챔피언스 리그 4강에 진출했다. 4강 상대는 압도적인 전력을 과시하며 PL과 칼링컵을 우승해놓았던 조세 무리뉴의 첼시. 리버풀은 이어진 전력 열세에도 불구하고 1차전 원정에서 0-0으로 비긴 뒤, 2차전 홈에서 루이스 가르시아의 결승골로 1-0으로 승리해 리버풀은 1984-85 시즌 헤이젤 참사 이후 20년 만에 챔피언스 리그 결승에 진출했고 1983-84 시즌 이후 21년 만의 우승에 도전하게 됐다.
그러나 2005년 5월 25일, 이스탄불에서 열린 결승전의 상대는 카카, 안드레이 셰브첸코, 에르난 크레스포, 파울로 말디니, 알레산드로 네스타, 카푸 등이 포진하며 당대 유럽 최강의 전력을 자랑하던 우승후보 0순위 AC 밀란이었다. 이미 토너먼트에서 강력한 팀들을 꺾는 이변을 선보이며 결승에 올라온 리버풀이었지만, 경기가 시작되자 마자 밀란은 카카를 필두로 리버풀의 수비진을 헤집으면서 3골을 내리 득점, 리버풀은 하프타임까지 3-0으로 끌려갔다. 그러나 후반 54분, 스티븐 제라드의 추격골을 시작으로 2분 뒤에는 블라디미르 스미체르의 천금같은 중거리포가 터져 경기가 단숨에 1점차로 좁혀졌고, 4분 뒤에는 샤비 알론소가 페널티킥에서 흘러나온 공을 집중력있게 재차 마무리하며 6분 사이에 연달아 세 골을 넣어 리버풀이 3-3 동점을 만들어내는 기적이 일어났다. 이후 리버풀은 연장전까지 집중력있게 스코어를 유지하였고, 이어진 승부차기에서 브루스 그로벨라의 무브를 오마주한 예지 두덱의 신들린 선방에 힘입어 승부차기 스코어 3-2로 21년 만의 우승이자 구단 통산 5번째 챔피언스 리그 우승을 만들며 빅이어를 들어올렸다. 유러피언 컵에서 UEFA 챔피언스 리그로 대회 명이 개칭된 이후 첫 우승이었고, 베니테스는 밥 페이즐리, 주제 무리뉴에 이어 UEFA컵(현 UEFA 유로파 리그)과 UEFA 챔피언스리그를 연달아 우승한 역사상 세 번째 감독이 되었다.
해당 시즌 리버풀은 마이클 오언의 이적으로 전력의 공백을 노출하며, 리그에서 다시금 좋지 못한 성적을 내며 4위권 밑으로 미끄러졌으나, 리그컵에서 분투하며 당대 최고의 팀 중 하나였던 첼시 FC에게 아쉽게 패배해 준우승을 차지했고, 결정적으로 UEFA 챔피언스 리그 무대에서 끈질긴 명승부들을 연달아 연출하며 강호들을 꺾고 기적적인 역전 드라마를 써내렸다. 이에 베니테스는 부임하자마자 엄청난 위업을 달성하며 리그에서의 부진에도 단숨에 신임을 얻게 되었고, 이 시즌의 기념비적인 결과물로 인해 리버풀은 2000년대 중반 이후 챔피언스 리그에서 강호로 꼽히며 스티븐 제라드를 필두로한 본격적인 팀의 중흥기를 시작하게 되었다.
3.2. 2005-06 시즌
자세한 내용은 리버풀 FC/2005-06 시즌 문서 참고하십시오.베니테스는 2005 여름, 본격적으로 팀을 정비하기 시작했다. 우선 기대에 못미치는 활약으로 일관한 울리에의 실패작 밀란 바로시와 엘 하지 디우프, 플로랑 시나마 퐁골, 알루 디아라 등이 방출되었고, 모하메드 시소코,페페 레이나, 피터 크라우치 등이 영입되었다. 블라디미르 스미체르와 이고르 비스찬, 호세미, 안토니오 누녜스도 이 때 팀을 떠났다. 이후 겨울 이적시장에서는 유망주 수비수 다니엘 아게르와 함께 리버풀 레전드였던 로비 파울러가 복귀하여 팀의 전력이 더 다져졌다.
리버풀은 2005-06 시즌 리그 개막 후 5경기에서 1승 4무를 기록하며 중위권으로 처져 불안한 출발을 했으나, 10월 말 부터 무려 리그 10연승 행진을 달리며 단숨에 상위권으로 순위를 끌어올렸고, 2월에 다소간 흔들리기는 했으나 후반기에 무서운 집중력을 발휘하는 등, 지난 시즌보다 훨씬 좋은 모습을 보여주었다. 이에 리버풀은 4위 아스날 FC보다 승점 15점 앞서고 2위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에 승점 1점 뒤진 승점 82점을 적립, 리그를 3위로 마감했다.
리그컵에서는 3라운드에 크리스탈 팰리스를 만나 조기탈락했으나, FA컵에서는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와 첼시 FC를 각각 16강과 준결승에서 차례로 꺾고 올라가며 결승에 진출, 2006년 5월 13일, 웨스트햄 유나이티드과 우승을 놓고 결승전을 벌였다. 리버풀은 결승 전반전에 2골을 선제 실점하며 2-0으로 끌려갔으나, 이후 지브릴 시세와 스티븐 제라드의 연속골이 터지며 2-2 동점을 만들었고 승부를 원점으로 돌렸다. 그러나 63분에 재차 실점을 허용, 종료 직전까지 3-2로 끌려가며 FA컵 탈환의 희망은 사라지는듯 했다. 그러나 91분, 경기 종료 4분을 남기고 제라드의 극적인 중거리슛이 터지며 스코어는 3-3 동점. 지난 시즌의 챔피언스 리그가 연상되는 또 한 번의 극장 경기가 개봉하며 승부는 연장으로 흘러갔고, 결국 승부차기에 돌입했다. 이후 영입되자마자 주전 자리를 꿰찬 페페 레이나가 신들린 선방쇼를 펼치며 리버풀은 통산 7번째 FA컵 우승을 차지했다.
지난 시즌 5위를 차지했던 리버풀은, 원래의 규정대로라면 챔피언스 리그 우승팀임에도 이 시즌의 챔피언스 리그에 진출할 수 없었으나, 디펜딩 챔피언이 참가해야한다는 여론에 의해 특수하게 1차 예선 참가 자격을 얻었다.[8] 그렇게 출발한 챔피언스 리그에서는 1차, 2차, 3차 예선을 통과한 뒤 조별 예선 G조에서 첼시 FC[9], 레알 베티스, RSC 안데를레흐트와 같은 조가 되었고, 3승 3무를 기록하는 호성적에 의해 조1위로 16강 토너먼트에 갔으나 SL 벤피카에 1, 2차전 모두 패배해 비교적 허무하게 탈락했다. 그러나 챔피언스 리그 우승팀 자격으로 진출한 UEFA 슈퍼컵에서는 CSKA 모스크바를 연장승부 끝에 3-1로 꺾으며 통산 세 번째 UEFA 슈퍼컵 우승을 달성했다. 그리고 역사상 최초로 진출한 FIFA 클럽 월드컵에서는 일본으로 떠나 치른 결승전에서 상파울루를 만나 패배, 대륙간 세계 대회 준우승에 그쳐 밥 페이즐리 시절 일본으로 가 대륙간 대회에서 브라질 클럽에게 패한 역사가 되풀이되었다.
3.3. 2006-07 시즌
자세한 내용은 리버풀 FC/2006-07 시즌 문서 참고하십시오.리그에서 상위권에 안착하고 또 다시 우승 트로피를 들며 팀을 궤도에 올린 베니테스는 공격진을 보강하며 확실한 성적을 희망했고, 이에 부진하던 페르난도 모리엔테스를 방출하고 에레디비시에서 인상적인 활약을 한 공격수 디르크 카윗을 영입, 저메인 페넌트와 크레이그 벨라미를 추가로 데려오며 전방의 무게를 더하고자했다.
그렇게 시작된 2006-07 시즌, 베니테스호는 FA 커뮤니티 실드에서 첼시 FC를 꺾고 기분좋게 출발했으나, 리그 레이스 초반부터 원정 5연패를 비롯하여 원정 경기에서의 처참한 모습으로 인해 일찌감치 리그우승 경쟁에서 밀려났다. 그러나 12월 이후부터는 다시 정신을 차리면서 연승으로 순위를 끌어올렸고, 아르헨티나 국가대표 미드필더 하비에르 마스체라노[10]와 스페인산 라이트백 알바로 아르벨로아가 겨울 이적시장에서 영입되며 괜찮은 전력이 구축되자 3-4위권은 무난히 수성할 수 있었다. 이에 최종 성적은 3위를 기록했으나, 지난 시즌과 달리 승점이 68점에 머무르며 4위 아스날 FC과 동일 승점으로 겨우 순위를 수성했다. 이 시즌 리버풀은 야심차게 영입한 선수들이 득점력의 상승을 가져다주지 못했고, 타 경쟁팀들과 다르게 무게감 있는 윙어[11]와 공격수가 없어 상위권 팀 치곤 부족한 득점력이 발목을 잡아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와 첼시 FC가 벌이던 우승 경쟁에 합류할 수 없었다.
리그컵과 FA컵에서는 아스날 FC을 상대로 각각 8강과 3라운드에서 잇따라 패배하며 탈락했으나, 챔피언스 리그에서는 승승장구했다. 리버풀은 3차 예선을 통과한 뒤 PSV 아인트호벤, FC 지롱댕 드 보르도, 갈라타사라이와 함께 속한 조별 예선을 4승 1무 1패로 가볍게 1위로 통과한 뒤 16강에서 디펜딩 챔피언 FC 바르셀로나를 만났다. 캄프 누에서 열린 1차전에서 리버풀은 유럽 대항전 DNA를 발휘하며 예상을 뒤집고 바르셀로나를 2-1로 제압한데 힘입어 원정 다득점으로 8강에 진출했다. 8강에서는 조별 예선에서 만났던 PSV 에인트호벤을 가볍게 꺾고 준결승에 올랐는데, 이번에도 2년 전에 이어 준결승에서 첼시를 상대하게 됐다. 베니테스호는 1차전 원정경기에서 1-0 패배를 당했으나, 2차전 홈경기에서 1-0으로 승부의 균형을 맞춰, 합계 스코어 1-1로 연장전 끝에 승부차기에 돌입했고 승부차기에서 또 다시 페페 레이나의 선방에 힘입어 승리, 2년 만에 다시 챔피언스 리그 결승전에 진출했다. 아테네에서 열린 결승전 상대는 2년 전에 기적을 선사해 준 AC 밀란. 그러나 이번에는 AC 밀란이 절묘한 필리포 인자기의 2골에 힘입어 2년 전의 아픔을 설욕했고, 베니테스는 준우승에 만족해야 했다.
해당 시즌 베니테스는 윙어 및 공격진의 부진과 득점력 저조를 해결하지 못하며 리그에서 우승 경쟁에 합류하지 못했고, 컵 대회에서도 발목을 잡혔으나 결정적으로 챔피언스 리그에서 다시금 결승전에 오르며 유럽 무대에서의 저력을 보여줬다. 또한 스티븐 제라드-샤비 알론소-하비에르 마스체라노-모하메드 시소코로 이어지는 준수한 중원을 구축하면서 팀의 코어를 제대로 잡는 시즌이 되었다. 그러나 이 시즌 후반부 질힉 듀오가 새로운 구단주가 되며 리버풀과 베니테스의 미래에 암운이 드리우기 시작했다.
3.4. 2007-08 시즌
자세한 내용은 리버풀 FC/2007-08 시즌 문서 참고하십시오.공격진에 대한 고민을 이어오던 베니테스는 2007년 여름 이적시장에서 당시 라리가에서 최고의 신성 공격수로 떠오르던 페르난도 토레스를 영입해오며 마침내 마이클 오언 이후 계속되었던 스트라이커 잔혹사 문제를 해결했다. 토레스와 함께 라이언 바벨, 요시 베나윤, 루카스 레이바, 안드리 보로닌이 영입되며 다양한 부분에서의 퀄리티도 채워졌다.
2007-08 시즌이 시작되자, 새로운 스트라이커 토레스는 2라운드부터 첼시 FC를 상대로 데뷔골을 뽑아내며 걸출한 모습을 보였고, 스티븐 제라드와 함께 팀의 공격을 이끌었다. 리버풀은 4R에서 더비 카운티를 6-0으로 꺾고 베니테스 체제에서 처음으로 리그 1위에 올랐고, 개막 후 14경기 무패를 달리며 좋은 모습을 보여줬다. 이 시즌 리버풀은 리그에서 지난 시즌보다 확실히 나아진 모습을 보여줬지만, 너무 많은 무승부를 양산해 승점을 잃었고, 경쟁팀인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첼시 FC, 아스날 FC이 예년보다 더 좋은 모습을 보이며 승점 80점대 경쟁을 치르는 바람에 결국 우승 경쟁에 합류하지는 못했다. 리버풀은 이 시즌 리그에서 21승 13무 4패로 승점 76점을 기록하며 리그 4위에 머물렀다.
베니테스호는 이 시즌 리그컵에서 5라운드 첼시 FC를 만나며 탈락했고, FA컵에서는 16강까지 무난히 올랐으나 2부 리그의 반즐리 FC를 상대로 충격적인 홈 패배를 당하며 탈락했다. 또한 챔피언스 리그에서도 지난 시즌과 다르게 부진하여 FC 포르투, 올림피크 마르세유, 베식타스와 함께 속한 A조 조별 예선에서 3차전까지 1무 2패로 탈락 위기에 몰렸다. 그러나 다행히 4차전에서 베식타스를 8-0[12], 5차전에서 포르투를 4-1, 최종전에서 마르세유를 4-0으로 차례로 때려눕히는 집중력을 발휘하며 조 2위로 토너먼트 진출에 성공했다. 이후 리버풀은 16강에서 인터 밀란을 만나 스티븐 제라드와 페르난도 토레스의 대활약으로 1, 2차전 모두 승리, 8강에 진출했고, 8강에서는 아스날 FC과 격돌해 합계 스코어 5-3으로 승리해 또 다시 4강에 진출하는 저력을 보였다. 4강 상대는 또 다시 만난 첼시 FC. 리버풀은 홈에서 열린 1차전에서 1-1로 비긴 후 원정 2차전에서도 1-1로 비겨 지난 시즌과 거의 비슷하게 피말리는 첼시와의 4강 혈투를 벌였다. 그러나 이번에는 연장전에서 첼시의 공격진을 이끌던 디디에 드록바, 프랭크 램파드 원투펀치의 득점이 터지며 라이언 바벨의 뒤늦은 추격골에도 3-2로 패배, 결승 진출에는 아쉽게 실패했다.
해당 시즌 베니테스호는 토레스와 제라드를 앞세워 강력한 공격진을 구축하는데 성공하면서 전력의 상승을 이끌어냈고, 토레스는 리그 24골 포함 시즌 33골, 제라드는 리그 11골 포함 21골을 뽑아내면서 지난 시즌 문제가 되었던 득점력의 부재를 일부 해결했다. 그러나 제라드와 토레스에 대한 의존도가 너무 높았고, 백업 및 윙 자원들의 공격력이 떨어져 승부에 방점을 찍는 능력에 문제를 겪으며 리그에서는 우승 경쟁에서 밀려나고 컵대회에서도 모두 탈락해 무관에 그쳤다. 챔피언스 리그에서는 그래도 다시금 유럽 무대의 강자로서 저력을 발휘했으나 아쉽게 4강에 그치고 말았다. 그리고 이 시즌 본격적으로 무능의 끝을 보여준 조지 질레트 주니어, 톰 힉스 구단주의 난장판 운영이 일어났고, 베니테스는 이들과 불화를 겪어 시즌 중반 경질설이 불거지기도 했다. 이에 당시 야인이던 위르겐 클린스만과의 접촉 루머가 돌기도 했다.[13] 베니테스는 보드진과의 불화로 화제거리가 될 정도로 어수선한 상황 속에서 그나마 팀을 잘 정비해 챔피언스 리그와 리그 레이스를 잘 마무리지었으나, 구단주들의 횡포에 의해 점차 팀의 앞날에 더 깊고 어두운 그림자가 드리우기 시작했다.
3.5. 2008-09 시즌
자세한 내용은 리버풀 FC/2008-09 시즌 문서 참고하십시오.베니테스는 중원에서의 수비력과 안정성을 강화하기 위해 2008년 여름 이적시장에서 아스톤 빌라 FC의 미드필더 가레스 배리의 영입을 원했다. 그러나 당시 리버풀의 단장 릭 페리는 빌라와의 협상이 지지부진해지자 갑작스럽게 협상 테이블을 엎고 베니테스의 의중과는 다르게 자신의 판단에 의존해 토레스와 짝을 이루게 하겠다며 로비 킨을 토트넘으로부터 영입하는 기행을 저지른다. 이미 킨의 영입에 자금을 상당히 써버렸기에 원하던 배리의 영입을 다시 시도하기 위해서 베니테스는 기존의 선수를 팔아야했고, 당시 베니테스는 수비력에서 약점을 보이던 샤비 알론소를 이적명단에 올리면서까지 배리의 영입을 시도했으나 배리의 영입은 이루어지지 못했다. 결국 베니테스는 안드레아 도세나, 알베르트 리에라, 다비드 은고그를 추가로 영입하는데에 만족해야했고, 알론소는 팀에 잔류했다. 계약 문제로 임대로 합류해있었던 하비에르 마스체라노의 완전 이적이 이루어졌고, 피터 크라우치와 욘 아르네 리세가 이 때 팀을 떠났다.
하지만 2008-09 시즌이 시작되자 팀을 떠날뻔 했던 샤비 알론소의 잠재력이 만개하면서 스티븐 제라드-샤비 알론소-하비에르 마스체라노로 이어지는 중원 라인은 세계 최고 수준의 경기력을 보여주기 시작했고, 페르난도 토레스의 활약상은 계속해서 이어졌다. 리버풀은 리그에서 초반부터 상당한 상승세를 보여주면서 초반부터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와 우승 경쟁을 펼쳤고, 9라운드에서는 첼시 FC 원정에서 첼시의 86경기 연속 리그 홈 무패 기록을 부수며 리그 1위로 올라섰다. 이 시즌 리버풀은 당대 리그 최고의 팀이었던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와 첼시 FC를 상대로 더블을 기록했고, 1996년 이후 처음으로 크리스마스 리그 선두에 올랐다. 그러나 2009년 새해에 들어 백업 멤버의 부실함을 노출하며 베니테스호는 연이어 무승부를 남발하여 승점을 잃었고, 이 시기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는 11연승을 거두면서 무섭게 치고 올라와 선수 자리를 탈환했다. 리버풀은 후반기에 다시 경기력을 다잡고 리그 마지막 11경기에서 10승 1무를 기록하며 끝까지 리그 우승 경쟁을 펼쳤지만, 맨유에 승점 4점 뒤진 86점으로 리그 준우승의 아쉬움을 삼켜야했다. 이 시즌 리버풀은 리그에서 단 2패만을 허용하며 1987-88 시즌 이후 리그 최소패를 기록했고, 프리미어 리그 시대 개막 후 역대 팀 최다 승점을 쌓았으며, 77득점과 +50의 골득실로 리그에서 이 부문 1위였지만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도 1999-00 시즌 이후 역대 최고 승점을 달성하는 역대급 시즌을 펼쳐 불운하게 2위에 그쳤다. 베니테스 체제의 리버풀이 리그에서 거둔 가장 좋은 성적이었다.
FA컵에서는 4라운드에서 지역 라이벌 에버튼 FC에 의해 탈락했고, 리그컵에서는 4라운드에서 토트넘 홋스퍼에게 덜미를 잡혀 이르게 탈락했다. 하지만 챔피언스 리그에서는 더 강력해진 중원을 앞세워 또 다시 인상적인 시즌을 보냈다. 리버풀은 D조 조별 예선에서 아틀레티코 마드리드, 올림피크 마르세유, PSV 에인트호번과 같은 조가 되어 4승 2무로 무난하게 조 1위로 토너먼트에 진출, 16강에서 레알 마드리드와 격돌했다. 1차전 원정에서 원정을 떠난 리버풀은 요시 베나윤의 선취골에 힘입어 1-0으로 원정 승리를 따냈고, 2차전 안필드에서는 경기 내내 레알 마드리드의 골문을 두들겨패며 4-0으로 대승을 거두었다.[14] 그러나 8강 상대는 지독한 인연으로 또 만난 첼시 FC. 리버풀은 1차전 홈에서 3-1로 아쉽게 패배한 뒤, 절치부심하여 2차전을 노렸으나 4-4까지 이어지는 명승부 끝에 결국 승부를 뒤집지 못하고 탈락하고 말았다.
해당 시즌은 무관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베니테스 체제에서 가장 기념비적인 시즌 중 하나로 꼽힌다. 페르난도 토레스와 스티븐 제라드로 이어지는 일명 제-토 라인이 완전히 자리를 잡아 팀의 공격을 이끌었고, 중원의 샤비 알론소-하비에르 마스체라노 투볼란치가 세계 최고 수준의 장악력을 보여주며 훌륭한 밸런스와 단단한 조직력이 절정에 올랐었기 때문이었다. 이에 리버풀은 리그에서 준우승, 챔피언스 리그에서 8강에 머물렀으나, 시즌 동안 리그 올드 트래포드 원정 4-1 대승과 스탬포드 브릿지의 리그 86경기 무패를 끊는 신승, 챔피언스 리그 레알 마드리드전 4-0 대승 등 인상적인 경기들을 펼쳐내며 희망적인 내용을 만들어낼 수 있었다. 물론 보드진의 횡포와 베니테스와 질힉의 파워게임 때문에 애꿎게 희생양이 된 영입생 로비 킨이 반 년 만에 토트넘으로 돌아가는 등, 베니테스가 구상했던 영입 플랜이 작동하지 않는 바람에 완벽한 전력 보강이 이루어지지 못했고, 이에 리그에서 통한의 아쉬움을 삼켜야했지만, 베니테스는 능력을 인정받아 5년 재계약에 성공했다.
3.6. 2009-10 시즌
자세한 내용은 리버풀 FC/2009-10 시즌 문서 참고하십시오.그러나 2009년 여름 이적시장에서 지난해 이적명단 등재로 인해 감정이 상해있던 샤비 알론소가 3천만 파운드의 이적료를 남기고 레알 마드리드로 떠나며 리버풀에 크나큰 암운이 드리웠고, 베니테스의 스쿼드는 위기에 처했다. 중원에서 대체자라도 잘 구했으면 다행이었지만, 알베르토 아퀼라니를 AS 로마에서 17m에 영입했으나 시즌 내내 부상에 시달리며 팀에 별다른 도움이 되지 않았다. 또한 주전 라이트백 알바로 아르벨로아도 레알 마드리드로 떠났고, 대신 잉글랜드 국가대표 라이트백 글렌 존슨이 영입되었다. 이 시즌까지 무능의 끝을 보여주며 최악의 행보를 거듭하던 조지 질레트 주니어, 톰 힉스 구단주는 제대로 이적 시장 자금을 지원하지 못했고, 결국 별다른 보강을 하지 못한채 베니테스는 불안한 출발을 해야했다.
리버풀은 개막 후 3경기에서 2패를 당하면서 시작부터 삐걱거렸다. 4라운드 이후부터는 연승을 달리며 잠시 3위권에도 올라갔으나, 그 이후 19라운드까지 단 4승에 그치는 충격적인 부진을 겪으며 팀의 순위는 8위까지 떨어졌다. 겨울에 막시 로드리게스를 자유계약으로 영입하면서 반등을 노렸으나 효과가 크지는 못했고, 결국 리버풀은 5~7위를 오르내리다 결국 마지막 2경기에서 승점을 잃으며 7위로 떨어지고 말았다. 지난 시즌 준우승과 대비되는 충격적인 결과였으며, 1998-99 시즌 이후 최악의 결과이자 베니테스 체제에서의 최악의 리그 성적이었다.
FA컵과 리그컵에서도 부진은 이어져 각각 3라운드와 4라운드에서 탈락했고, '챔스 DNA'가 있다던 챔피언스 리그에서도 무기력한 경기력 끝에 E조 조별 예선에서 ACF 피오렌티나와 올림피크 리옹에 밀려 조 3위로 추락, UEFA 유로파 리그로 내려갔다. 그렇게 내려간 유로파 리그에서 리버풀은 어찌저찌 뒷심을 발휘해 겨우 4강까지 진출하였으나. 아틀레티코 마드리드에게 극장골을 얻어맞으며 탈락했다.
베니테스호는 시즌 내내 알론소의 부재를 메우지 못했고, 제라드와 토레스 등 주축 선수들이 잔부상에 시달리면서 백업 멤버의 부재를 체감했다. 이에 공-수에서 심각한 엇박자에 시달리면서[15] 충격적인 리그 7위, 챔피언스 리그 조별 예선 탈락의 성적표를 받아들어야했다.
이 시즌 베니테스는 지난 시즌의 호성적에 힘입어 팀을 다시 진일보시킬 찬스를 잡았으나 무능하고 부패한 구단주의 졸속 운영에 의해 제대로된 이적 시장을 보내지 못했고, 전력을 잃기만 하면서 결국 부진한 성적으로 시즌을 마치게 되었다. 시즌 내내 구단주를 향한 비난과 더불어 내부적인 문제가 끊임없이 발생했기에 베니테스에게는 경기장 안밖으로 굉장히 험난한 시기였다. 심지어 시즌 말미인 2010년 4월 16일, 구단주들이 끝내 구단 매각을 선언했고, 팀의 재정 위기가 수면 위로 드러나면서 팀 분위기는 최악으로 치닫던 상황이었다. 이러한 상황 끝에 베니테스는 결국 성적 부진을 이유로 상호 협약 해지에 합의하며[16] 시즌을 마친 후 팀을 떠나게 되었다.
이후 로이 호지슨이 지휘봉을 잡게 되었다.
로이 호지슨 체제에 대한 내용은 리버풀 FC/호지슨 체제 문서 참고하십시오.
4. 공격 포인트 순위
5. 시즌별 주요 성적
라파엘 베니테스의 시즌별 주요 성적 | |||||||||
시즌 | EPL | FA | EFL | CS | UCL | UEL | USC | FCC | 감독 |
2004-05 시즌 | 5위 (▼ 1) | 64강 | 준우승 | - | 우승 (5회) | - | - | - | 라파엘 베니테스 |
2005-06 시즌 | 3위 (▲ 2) | 우승 (7회) | 32강 | - | 16강 | - | 우승 (3회) | 준우승 | |
2006-07 시즌 | 3위 ( = ) | 64강 | 8강 | 우승 (15회) | 준우승 | - | - | - | |
2007-08 시즌 | 4위 (▼ 1) | 16강 | 8강 | - | 4강 | - | - | - | |
2008-09 시즌 | 2위 (▲ 2) | 32강 | 16강 | - | 8강 | - | - | - | |
2009-10 시즌 | 7위 (▼ 5) | 64강 | 16강 | - | 조별 리그 | 4강 | - | - |
6. 평가
리버풀에서 위대한 업적을 남긴 명장들[17] |
2004년 리버풀 FC 감독으로 부임한 후 첫 해에 리버풀 팬들에게는 기억에 오래도록 남을 이스탄불의 기적을 일궈내며 팀을 UEFA 챔피언스 리그 우승으로 이끌었고, 바로 다음 시즌엔 FA컵 우승컵을 들어올리며 구단의 2000년대 중흥기를 구축해낸 감독. 21세기 리버풀의 굴곡진 역사를 실질적으로 지탱해낸 매우 중요한 결과물들을 가져온 감독으로 평가받는 인물이다. 이후에도 2006-07 시즌 챔피언스 리그 준우승, 2006 UEFA 슈퍼컵 우승을 비롯하여 계속해서 유럽 대항전에서 우수한 모습을 보여줬고, 리그에서도 팀을 안정적으로 리그 4위권 내로 유지시키며 2008-09 시즌에는 리그 우승 경쟁을 펼치는 등, 이전까지 다소간 불안했던 팀의 수준을 우상향시켜 2000년대 프리미어 리그 및 유럽 대항전에서 뛰어난 경쟁력을 보여주었다. 사실상 베니테스 덕분에 1990년대 이후 정말 길게 이어진 구단의 침체기에도 구단의 체급과 명성이 유지되었으며, 베니테스 체제에서 이룩한 기념비적인 결과물들은 2010년대 이후로도 계속해서 구단의 아이코닉한 위상을 유지하는 데 도움을 주었다.
그러나 결국 2007년 구단을 인수한 질힉 구단주 듀오가 보여준 최악의 행보에 의해 가능성 있는 전력을 구축했음에도 팀의 방점을 찍지 못해 숙원의 리그 우승을 달성하지는 못했고, 이후 2009-10 시즌을 7위로 마감한 뒤, 리그에서의 성적 부진을 이유로 사실상 해임되며 아쉬운 결말을 남긴 감독이기도 했다.[18] 7위로 추락하는 과정에서 가장 결정적인 요소는 구단주의 무능한 운영과 릭 페리 단장의 어이없는 횡포로 인한 절대적인 전력의 부실함이었다. 당시 베니테스는 구단주의 무능한 운영으로 이적 자금이 주어지지 않아 스쿼드를 정리한 자금으로 선수들을 영입해야 했으나, 단장의 불통 운영에 의해 그마저도 어려움을 겪었다. 가장 유명한 사건이 2007-08 시즌 수비적으로 아쉬움이 있던 샤비 알론소를 대체하기 위해 가레스 배리를 영입하려고 했으나 결국 실패하여 2009년에 알론소까지 놓쳐버리며 스쿼드의 심각한 누수를 겪게 되었던 것.[19] 베니테스 체제는 보강의 실패로 2008-09 시즌 뎁스의 부실함을 노출해 당시 빅4 경쟁팀들과의 상대전적에서 압도적인 우위를 점했음에도 불구하고 결국 준우승에 머무르며 리그 우승에 실패했다. 이후 2009-10 시즌에도 보강은 실패로 돌아가 팀은 깊은 수렁에 빠졌고, 당시 매우 좋지 못한 성적을 낸 만큼 해당 시즌 아쉬운 전술적 유연함과 더불어 선수단과의 소통에서 잡음을 남긴 베니테스에게도 결국 다소 비판이 가해졌다.[20] 그러나 당시 베니테스는 질힉 구단주를 상대로 계속해서 힘겨운 싸움을 이어가야했으며, 이적 시장 운영의 어려움으로 인해 제 역량을 발휘하지 못하는 환경이었다.[21] 이에 베니테스의 리버풀 시절 말년의 좋지 못한 성적은 다소간 이해를 받는 편이며, 팬들 또한 베니테스와의 이별을 상당히 아쉬워했다.[22]
하지만 베니테스 체제에서 리버풀은 스티븐 제라드, 페르난도 토레스, 샤비 알론소, 하비에르 마스체라노, 제이미 캐러거, 페페 레이나 등의 코어 선수들 및 영입생들을 꽃피우며 기존의 투박했던 축구에서 탈피, 패싱 플레이 위주의 대륙식 축구를 도입하였고 시도했으며, 베니테스 특유의 컴팩트한 수비 조직력과 밸런스 있는 전술을 통해 유럽 대항전에서 우수한 결과물을 만들어내며 구단의 이어졌던 침체기로 인한 갈증을 해소하는 기념비적인 순간들을 목도할 수 있게 만든 것은 분명했다. 특히 강력한 전력으로 당대 리그를 지배하던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첼시와의 맞대결에서 부족한 전력에도 불구하고 명승부들을 펼쳐내며 밀리지 않는 경기력을 보여줬고, 유럽 무대에서는 레알 마드리드, FC 바르셀로나, 인터 밀란 등의 명문 클럽들을 연이어 격침하며 유럽 대항전에서의 강력한 DNA를 증명해 리버풀의 정체성을 확고히 다잡았다. 이에 결국 유럽 대항전에서는 굵직한 결과물을 가져올 수 있었고, 리그에서는 우승에 실패했지만 본격적으로 리그 내 상위권 그룹이 나눠진 빅4 시대에 경쟁팀들과 수준을 맞추며 팀의 경쟁력을 계속해서 이어나갈 수 있었다. 또한 팀 내 주축이었던 스티븐 제라드와 페르난도 토레스 등은 베니테스 아래에서 전성기를 보내면서 세계 최고의 선수들로 성장했고, 특히 제라드의 역량이 정점을 찍으면서 팀의 중심으로 공고히 자리를 잡을 수 있었다.
여기에 더하여 베니테스는 리버풀의 아카데미 개선을 시도해 시스템적으로도 구단의 체질 개선에 기여한 감독이기도 했으며[23], 최악의 구단주를 두었음에도 불구하고 팀의 정상화를 위해서 고군분투하며 끝까지 감독으로서의 책임감과 역량을 보여줬다. 또한 감독직에 있는 동안 리버풀 지역 사회와도 밀접한 관계를 유지하여 리버풀 팬들과 지역 주민들에게 많은 사랑을 받기도 했고[24], 경기장에 들어서는 팬들의 분위기를 유도하는 등[25] 서포터즈와의 유대감에도 신경을 많이 써 재임 기간 내내 좋은 평가를 들었다.
이에 종합하지면, 이스탄불의 기적으로 대표되는 중흥기의 역사적인 결과물들과 더불어 리버풀에 보여준 열정과 애정을 인정받아 팬들에게 리버풀을 거쳐간 최고의 감독들 중 하나[26]로 평가되는 인물. 물론 마지막 시즌을 좋지 못한 성적으로 마무리했지만, 그동안의 성적과 결과물 그리고 구단 역사상 최악의 구단주를 등 뒤에 두고도 보여준 성과와 성장세를 본다면 21세기 이후 위르겐 클롭 다음으로 성공한 감독이었으며, 지역 사회와도 긴밀히 유대하여 리버풀 팬들이 사랑할 수 밖에 없는 모습을 많이 보여준 감독이었다고 평가받는다.[27]
[1] 2004~2007[2] 2007~2010[3] 2008~2011[4] 2004~2007[5] 2007~2010[6] 400만 유로[7] 5차전까지 2위 올림피아코스에 승점 3점이 부족했던 리버풀은 올림피아코스 원정에서 1-0으로 패했기 때문에 16강을 위해서는 1-0으로 이겨 골득실 차로 2위가 되거나 2골 차 이상으로 이겨 상대 골득실에서 앞서 2위가 되어야 했다.[8] 이후 룰이 개정되며 대회 우승팀은 다음 대회에 자동 진출하게 되었다.[9] 원래 같은 리그 팀을 조별 예선에서 만날 수 없었으나, 특수한 상황에 의해 리버풀의 자리가 편성되는 바람에 이런 상황이 벌어졌다.[10] 복잡한 계약 상황에 의해 일단 임대로 리버풀에 합류한 것이었고, 완전 이적은 2008년 여름에 이루어졌다.[11] 타 경쟁팀들의 화려환 윙 라인업에 비해 루이스 가르시아와 해리 키웰로 이루어진 윙어 전력은 매우 부실했고, 스티븐 제라드를 윙으로 기용해야할 정도였다.[12] 리버풀의 UEFA 챔피언스 리그 최다 점수차 승리다.[13] 결과적으로는 클린스만은 바이에른 뮌헨 감독이 되었다.[14] 당시 레알 마드리드의 골키퍼 이케르 카시야스는 4실점을 하고도 무수한 선방으로 경기 최고 평점을 받았을 정도였다.[15] 리버풀의 공격력이 어느 정도 있던 전반기에는 수비가 말썽이었고, 리버풀의 수비가 안정화된 후반기에는 공격력이 말썽이었다.[16] 사실상의 경질이었다.[17] 좌측부터 차례로 빌 샹클리, 밥 페이즐리, 조 페이건, 케니 달글리시, 라파엘 베니테스, 위르겐 클롭 감독이 자리해 있으며, 모두 리버풀 소속으로 유럽 대항전 우승을 일궈낸 인물들이다. 해당 배너는 리버풀의 홈 구장 안필드의 스피언 콥 스탠드에 대형 플래그로 자주 등장한다.[18] 공식적으로는 상호 합의 해지였지만, 이적 시장 지원을 해주지 않을 것이라면 경질하라는 식의 의견을 표출한 뒤 결국 구단주와 이견을 좁히지 못하고 팀을 떠났다.[19] 베니테스는 2007-08 시즌까지 수비 보호에 어려움을 겪던 샤비 알론소 대신 잉글랜드 국가대표팀에서 스티븐 제라드와 호흡이 좋았던 가레스 배리를 영입하고자 했으나 구단주의 방만한 운영으로 이적 자금이 없었던 탓에, 미드필더 뎁스가 두텁지 않았음에도 어쩔수없이 알론소를 대신 매물로 내놓아야 했다. 그러나 갑작스럽게 릭 페리 단장이 로비 킨 영입에 뛰어드는 바람에 배리 영입도 실패로 돌아갔고, 결국 2009년 여름에 알론소만 잃게 되는 결정적인 실책을 저지르며 리버풀은 깊은 암흑기로 들어섰다. 심지어 질힉 구단주는 구단 운영 비용을 구단과 안필드를 담보로 대출하여 충당했다는것이 나중에 밝혀졌다.[20] 선수들과 소통능력이 좋은 감독은 아니었다. 리버풀 재임 시절을 비롯해 베니테스의 대표적인 단점으로 꼽힌다.[21] 실제로 질힉은 2008년 1월, 계속해서 본인들에게 항의하는 베니테즈를 해임하려고 시도했으며, 실제로 베니테즈를 경질하고 위르겐 클린스만을 데려오려고 했었다.[22] 특히나 베니테스 이후 침체기 중에서도 최악의 시기가 이어졌기에 더욱 베니테스를 떠나보낸 것이 섣불렀다는 평가를 많이 받았다.[23] 물론 아카데미에 손을 쓸 수 있는 권한을 뒤늦게 얻어 스스로 결과물을 얻지는 못했으나, 유능한 아카데미 코치진들을 영입하여 미래에 투자하는 행보를 보였다.[24] 사임 이후에 힐스보로 참사 추모 행사에 참여해 눈물을 보이며 거액의 기부금을 내기도 했으며, 현재까지도 리버풀에 주택을 보유하여 거주하는 등, 좋지 못했던 마지막 시즌에도 불구하고 리버풀에 많은 애정을 보여왔다.[25] 팬들이 주도하는 분위기를 위해 경기 직전에 You'll Never Walk Alone이 연주될 수 있도록 직접 건의했다.[26] 빌 샹클리, 밥 페이즐리, 위르겐 클롭, 케니 달글리시급의 평가는 당연히 못받지만, 그래도 챔피언스 리그와 FA컵 우승 등 엄청나게 강렬한 시즌을 보냈기에 조 페이건 다음 가는 정도의 평가는 받는다. 제라르 울리에 보다는 확실히 위로 평가된다.[27] 그러나 2021년 리버풀의 지역 라이벌 에버튼 FC 감독으로 부임하며 팬들의 원성을 사기도 했다. 그러나 베니테스 부임 후 에버튼의 성적이 굉장히 좋지 못했기에 여론이 많이 나빠지진 않았고, 오히려 에버튼 팬들이 베니테스에게 더욱 악감정을 품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