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04-23 02:10:55

명온공주

조선의 왕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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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왕 · 추존 국왕 · 왕비 · 추존 왕비 · 왕세자 · 왕세자빈
후궁 : 환조 ~ 연산군 · 중종 ~ 고종
왕자 : 목조 ~ 연산군 · 중종 ~ 고종
왕녀 : 익조 ~ 연산군 · 중종 ~ 철종
※ 작호가 있거나 성년까지 생존한 사람만 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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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제국 순조의 황녀
명온공주 | 明溫公主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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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순조의 왕녀
명온공주 | 明溫公主
파일:김현근명온공주 합장묘.jpg
김현근 · 명온공주 합장묘 전경
출생 1810년 11월 9일
조선 한성부 창덕궁
(現 서울특별시 종로구 율곡로 99)
사망 1832년 7월 10일 (향년 23세)
조선 한성부 중부 관인방 죽동궁
(現 서울특별시 종로구 인사동 5길 38)
능묘 경기도 구리시 교문동 산8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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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94153e><colcolor=#ffd400> 본관 전주 이씨
부모 부황 순조 숙황제
모후 순원숙황후
형제자매 2남 4녀 중 장녀
배우자 동녕위 김현근
(東寧尉 金賢根)
봉호 명온공주(明溫公主)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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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2. 생애
2.1. 사랑받는 공주2.2. 예정된 혼인2.3. 죽동궁 생활2.4. 죽음
3. 여담4. 가족 관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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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조선 순조순원왕후의 적장녀[1]. 효명세자동복 동생이자 복온공주, 덕온공주의 언니가 된다.

2. 생애

2.1. 사랑받는 공주

1810년(순조 10) 왕실에 명온공주가 태어났다.[2] 태어날 당시 성별을 가리지 않고 왕실의 후사가 귀한 시절이었고, 오랜만에 왕비의 몸에서 태어난 공주였으므로 그야말로 금지옥엽으로 자랐을 것이다.[3]

오빠 효명세자는 동기 간의 우애가 깊었는데, 특히 나이가 비슷한 명온공주와 정이 도타웠다.[4] 효명세자는 삼매연림(三妹連林)[5]이라는 글에서 "명온이는 성품이 영명하고, 기골이 청수하며 시문에도 능통하다"고 표현했다. 여기서 청수(淸秀)하다는 말은 빼어난 미인에게 쓰는 말이며, 효명세자는 명온공주를 소식의 누이에 비교하여 매란여사(梅蘭女史)라는 호를 붙여 주었다.[6]

또한, 효명세자는 사흘만 얼굴을 보지 못해도 그리워하여 편지를 보냈는데, 시를 보낼 때는 한시에 한글 음을 병기하고 번역과 주석을 달았다. 주로 한글로 문자를 쓰는 여동생에 대한 배려였을 것이다.[7]
그대와 나는 오누이로서 지기를 겸하였으니
나는 형이요 그대는 누이라 나이도 같지 않도다
한 뿌리에서 형체를 나눠 받아 우애를 같이 하고
임금과 중전께 기쁨을 드리고 은혜와 자애를 받았도다
네가 현숙하고 총명함이 많음을 사랑하니
금옥 같은 자품에 빙설 같은 모습이로다
효명세자, 《귀문도(龜文圖)》

2.2. 예정된 혼인

1817년(순조 17) 8세의 나이로 명온(明溫)이라는 작호를 받고, 정식으로 책봉되었다.

1823년(순조 23년)[8][9] 순조는 부마를 간택하고자 12세에서 15세까지의 소년들을 대상으로 금혼령을 내렸다. 5월 22일 초간택, 5월 27일 재간택, 6월 2일 삼간택을 행하였고, 세 번에 걸친 간택은 모두 창덕궁 희정당에서 열었다.

최종적으로 낙점된 사람은 진사 김한순[10]의 아들 김현근이었다. 김현근은 선원 김상용의 8대손으로 청음 김상헌의 9대 외손인 명온공주와는 이성 친족이다.[11]

사실 간택은 형식적인 것으로, 이미 김현근으로 내정되어 있었다.[12] 동생 복온공주의 부마는 김연근의 아들 김병주였고, 덕온공주의 부마는 윤의선이었는데, 그는 안동김씨 김이위의 외손이었다. 뒷날 헌종의 왕비 효현왕후와 철종의 왕비 철인왕후까지 생각한다면, 철저히 준비된 혼인으로 보인다.

2.3. 죽동궁 생활

1824년(순조 24) 9월, 공주는 궁궐을 떠나서 살게 되었다. 이때 효명세자가 직접 공주의 집에 다녀갔고, 1826(순조 26)에는 순조와 효명세자가 함께 공주의 집에 찾아오기도 하는 등 많은 사랑을 받았다.[13][14]

2.4. 죽음

1832년(순조 32) 명온공주는 23세의 나이로 사망하였다. 혼인한지 9년 만이었다. 장례 절차를 주관할 자식이 없어 양자를 들여서 진행하였다.
명온 공주(明溫公主)가 졸서하였다.
하교하기를,
"병이 비록 짙고 오래 끌기는 하였으나 그래도 만에 하나 다행하기를 바랐는데, 지금 길이 갔다는 기별을 듣게 되니, 서럽고 서럽도다. 상위(喪威)가 이토록 겹쳐 참으로 인정으로는 감내하지 못하겠으니, 서럽고 서럽도다. 졸서한 명온 공주의 상(喪)에 온갖 상수(喪需)를 한결같이 복온 공주(福溫公主) 상사(喪事)의 예대로 거행하고 동원 부판(東園副板) 1부(部)를 실어보내도록 하라."
순조실록》 순조 32년 6월 13일

3. 여담

  • 동녕위 김현근에게는 정신 질환이 있었다. 의원들이 치료하지 못하여 무당들을 불렀는데, 밤낮으로 무당들이 대나무 칼춤을 추며 병이 낫기를 기원하는 소리로 시끄러웠다. 그래서 사람들이 죽도궁(竹刀宮)이라고 부르다가 죽동궁이 되었다고 한다. 그러나 이규태가 쓴 《이규태의 600년 서울》 이라는 글에 실려있는 이야기로 출처가 명확하지 않고 다른 문헌에서는 찾아볼 수 없어 신빙성은 떨어진다.
  • 고모 숙선옹주가 명온공주 생각하여 지은 《月夜懷明溫(월야회명온)》이라는 시가 전해지고 있다.
    明月到階前(명월도계전) 밝은 달이 계단 앞에 이르니

    淸光如見人(청광여견인) 맑은 빛이 사람을 보는 듯하네

    遙知鳳樓夜(요지봉루야) 멀리 봉루를 생각하는 밤

    焚香吟詩新(분향음시신) 분향하고 시를 읊조리니 새로워지네

4. 가족 관계

  • 시부 : 김한순(金漢淳)
  • 시모 : 평산 신씨(平山 申氏) - 청산현감 신의(靑山縣監 申懿)의 딸
  • 남편 : 동녕위 김현근(東寧尉 金賢根, 1810 ~ 1868)
    • 양자 : 김병찬(金炳瓚)

[1] 아울러 조선왕실의 마지막 적장녀이기도 하다,[2] #[3] 숙종 대 이후로 정실 왕비가 자식을 낳는 일이 없었다. 순조도 효의왕후가 아닌 수빈 박씨의 몸에서 태어났다.[4] 순조실록 31권, 순조 30년 7월 15일 경오 3번째기사. #[5] 세 명의 여동생들이 숲처럼 연달아 있다는 뜻이다.[6] 소식에게 소소매(蘇小妹)라고 하는 시문을 잘 짓고 재주가 많은 누이가 있었다는 이야기가 있다.[7] 한시를 쓸 때 한글 음으로 표기하고 번역과 주석을 다는 것은 당시 여성들이 한시를 짓던 방법이었다[8] 1821년, 12세가 되던 해 효의왕후의 장례가 있었다. 그래서 14세가 된 1823년에야 간택을 시작했다.[9] 동생 덕온공주도 순조의 장례로 16세가 돼서야 간택을 시작했다.[10] 김한순의 아버지가 연천 김이양인데, 당대에 삼호정시사로 유명한 여성 시인 운초가 그의 첩이었다.[11] 조선시대에 이성친족 간의 혼인은 아주 흔했기 때문에 문제 삼을 수는 없다.[12] 동생 복온공주, 덕온공주의 부마 간택도 내정자가 있었다.[13] 순조실록 27권, 순조 24년 9월 8일 정유 1번째기사. #[14] 순조실록 28권, 순조 26년 3월 28일 기유 2번째기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