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아마추어 시절
광주일고 2학년 당시 2002년 팀의 2관왕(대통령배 전국고교야구대회, 청룡기 전국고교야구대회) 달성에 기여했다. 2002년에는 광주일고와 천안북일고가 천하를 양분하였는데 천안북일고는 황금사자기, 화랑대기, 봉황대기, 전국체전 등 4관왕을 달성했다. 이 당시 3루수를 맡았으며 3루수를 제외하고는 모두 3학년이었다.[1] 그러나 3학년인 2003년에는 광주동성고에게 밀렸고 김성계, 차정구, 김태완과 함께 무등기 전국고교야구대회 결승전에서 고창성-윤희상이 버틴 선린인터넷고에 승리를 거두고 우승을 차지했다.2004년 신인 드래프트에 참여했으나 지명을 받지 못해 광주일고를 졸업하고 성균관대학교에 진학하는데, 성균관대 시절 단국대학교의 나지완과 함께 각종 대회 홈런왕을 다투면서 유명해지기 시작했다.[2][3]
대학에서의 활약을 바탕으로 2006년 7월, 미국 노스캐롤라이나 주 더럼에서 열린 한미대학야구선수권에 국가대표로 발탁되어 전 경기에 4번 타자로 출장했다.[4]
고교-대학 통산 성적은 127경기 454타수 138안타 타율 .304 24홈런 93타점 27도루 50볼넷 70삼진. 초반에 빛을 못 보다가 갈수록 미친듯이 활약한 나지완과는 달리 고1을 제외하면 꾸준히 붙박이 주전으로 나와서 경기수가 좀 많은 편이다. 그렇다고 해도 127경기에서 20-20을 기록하는 등 주루와 타격 모두 최상급이었고[5] 선구안도 나쁘지 않았다.
2. 프로 경력
엔튜브에서 제작한 그의 은퇴 기념 영상 |
[navertv(19850314)]
은퇴 시점에서 모창민은 NC에서 출장수로는 나성범, 박민우, 지석훈 다음이며 안타수로는 나성범, 박민우 다음을 기록했다. 공헌도는 NC에 입단해 국가대표로 성장한 프랜차이즈 스타 나성범, 박민우에 견줘 밀리지 않는다. NC를 더 강팀으로 만들기 위해 김택진 구단주와 식사 자리에서 양의지 영입을 요청한 것은 유명한 일화다. “야구를 잘하면서 인성이나 야구를 대하는 태도까지 훌륭하다”는 말은 모창민의 야구인생을 상징한다.
2.1. SK 와이번스 시절
2008년 SK 와이번스의 2차 1순위 지명을 받아 입단했다.[6] 당시는 기존의 SK 내야구도를 흔들 선수로 주목받았고 시즌 초에는 실제로 나주환을 제치고 유격수로도 출장했지만 타격이 기대에 못 미치고 수비력도 국가대표급의 주전 내야수들보다 부족해 곧 주전 경쟁에서 밀려 내야 유틸 요원으로 출장했다. 하지만 당초의 기대에 비해 더딘 성장으로 주전으로 자리잡지 못해 결국 2010 시즌 후 상무에 입대하였는데 그 과정에서 김성근 감독과 동의 없이 신청하여 구단과 김성근 감독과의 갈등을 심화시켰다.[7][8]
툴플레이어의 자질을 가졌다. 성균관대학교 시절 보여 준 파워와 더불어 제법 빠른 발을 가졌으며, 내야 전 포지션과 외야수까지 볼 수 있다는 점에서 활용도가 높은 선수지만, 수비력이 주전 선수에 비해 부족하기 때문에 백업 수비요원으로 김연훈, 조동화에 밀렸다. 결국 공격력으로 어필하여 주전 경쟁을 해야 하는 타입. 2군 본즈라는 별명에서 알 수 있듯이 1군에서 별 성적이 없는 것에 비해 퓨처스리그에 내려가서 뛰어난 성적을 보여줬다.
상무에서는 4번 타자, 3루수로 출장하며 2011년 야구 월드컵 국가 대표로도 선발되었다. 2012년 퓨처스리그에서 타율 .353 11홈런 61타점이란 성적을 남기고 2012년 9월 3일에 제대했다. 하지만 팀 내에서 야수진의 부상으로 인해 상무 입대 동기인 포수 이재원과 함께 1군에 복귀해 9월 7일 KIA전에서 교체 멤버로 전역 신고를 했다. 이 때문에 결국 한국시리즈를 마친 후 보호선수 명단에서 제외된다.
롯데 자이언츠와의 2012년 플레이오프에서 1, 5차전은 선발 1루수 겸 7번타자, 2, 3차전은 대타로 출장하여 5타수 2안타, 타율&장타율&출루율 .400을 기록했고, 팀은 시리즈 전적 3승 2패로 한국시리즈에 진출했다.
삼성 라이온즈와의 2012년 한국시리즈에서 2차전은 선발 1루수 겸 7번타자, 6차전은 선발 1루수 겸 6번타자로 출장하여 4타수 무안타, 타율&장타율&출루율 0을 기록했고, 팀은 시리즈 전적 2승 4패로 준우승에 그쳤다.
2012년 포스트시즌에서 9타수 2안타, 타율&장타율&출루율 .222를 기록했다.
2.2. NC 다이노스 시절
NC가 8명의 남자를 택한 이유2012 시즌 후 미국 플로리다에서 마무리 훈련을 받다가 이적 통보를 받게 되었다.[9] 2012년 11월 15일에 NC 다이노스의 전력보강선수 지명을 받아 유니폼을 갈아입었다. 이 부분에 있어서 SK 프런트와 스태프들은 SK 팬들에게 욕을 좀 먹었다. 왜냐하면, 모창민과 이재원은 2012년 전역하여 1군에 등록되지 않았다면 전역선수 신분이라 특별 지명에서 자동으로 보호받을 수 있었기 때문에... 이 때문에 전역 후 1군에 등록되었을 때도 굳이 등록할 필요가 있냐는 의견이 상당수 있었다.[10] SK 팬들 사이에선 우리 팀에선 안 터지지만 타 팀에 가면 터질 선수 1순위가 모창민이었는데...
2.2.1. 2013 시즌
2013년 4월 2일 NC 다이노스의 1군 정규시즌 첫 경기인 마산 롯데전에서 팀의 1군 리그 경기 사상 첫 안타와 첫 볼넷을 기록했다.[11] 영상 거기에 경기 당일에 득녀하는 겹경사를 맞이했지만 팀은 져서 약간은 아쉽게 되었다. 더 아쉬운 건 6회 2번째 안타로 출루한 후 주루 중에 허벅지에 통증을 호소했고, 경기 후 2군으로 내려갔다.#[12]NC로서도 안타까운 것이 부상당한 모창민 대신 1루수로 나온 조영훈이 타격, 수비 모두 부진하기 때문.
4월 21일 목동 넥센전에 1군에 올라왔었으나 주루플레이 도중 부상을 입으면서 다시 4월 22일에 1군서 말소되었다. 이번에는 약지 골절이라고한다. 타선의 강화와 수비의 안정화를 기대하고 있던 NC 입장에서는 날벼락.
5월에는 부상에서 회복되고 마침 돌아온 나성범과 4번 타자인 이호준과 함께 클린업 트리오를 구성하며 타선에서 활약 중. 주로 3루수로 출전하고 있다. 1루수 주전인 조영훈이 빠지면 1루수를 보기도 하지만 5월 26일 KIA 타이거즈전에서 지옥같은 1루 수비를 보여줬다.
5월 21일부터 23일 친정인 SK와의 원정 3연전에서 쏠쏠히 활약했다. 특히 5월 23일에는 2번이나 홈런을 쳐 주며 친정에 제대로 비수를 꽂았기에 그에게 애증을 가지고 있던 SK팬들은 모창민을 NC에 넘겨준 이만수를 다시 깠다. 친정에 대몿을 박은 모창민
6월 16일 삼성 라이온즈와의 경기에선 연타석 홈런을 쳐냈다.
7월 2일 넥센 히어로즈와의 경기에서 개인 통산 5호 홈런을 쳤다. 이 날 1회의 뇌주루로 까이는가 했으나 6회의 호수비와 함께 8회 솔로홈런을 포함 3타수 3안타의 활약을 펼쳐 팀의 2:0 승리에 일조했다. 참고로 3번인 나성범도 함께 홈런을 치는 덕에 이때 친 홈런은 백투백 홈런이었다.
최근에는 2번 타자로 주로 출전하고 있다가, 7월에 장타가 터지면서 이호준 뒤를 받치는 5번으로도 자주 출장하기 시작했다.
7월 26일 KIA 타이거즈와의 경기에서 9회말 2사 2,3루 상황에서 유동훈으로부터 끝내기 안타를 쳤다. The 'MO'ment 다음날인 27일에도 쐐기를 박는 3점 홈런을 쳐서 팀의 위닝 시리즈를 확정지었다.
7월 30일 SK 와이번스와의 경기에서는 1회 초 적시타를 쳐서 2루에 있던 김종호를 홈으로 불러들였고, 5회 초에 솔로 홈런을 쳐서 결승타를 만들어냈다.
8월 21일 두산 베어스 전에서 유희관을 상대로 솔로 홈런을 쳐내 시즌 10호 홈런을 기록했다.
그리고 이 8월 21일 경기 설명 이후 2014년 2월까지 이 부분은 건드려지지 않았다.
처음으로 맞이한 풀 타임 시즌이라 그런지 후반기에 들어서 성적이 급격하게 떨어졌다. 시즌 최종 성적은 1군 108경기 395타수 109안타 12홈런 51타점 16도루 타율 .276을 기록했다. 시즌 중반까지만 해도 3할을 노릴만 했는데 후반기에 페이스가 떨어진 것이 아쉬울 뿐.
2.2.2. 2014 시즌
4월 11일 양 팀의 투수들이 화려하게 불을 지르는 4월 11일 경기에서 결승 솔로 홈런 포함 5타수 3안타 1홈런 6타점으로 맹활약했다. 결승 솔로 홈런으로 승리의 일등공신이 되었고, 개인 통산 최대 타점을 기록하였다.4월 24일 SK 와이번스전 8회초에서 쐐기 3점 홈런(시즌 3호)을 쳤다.
5월 현재 타격에서 부진한 모습을 보이고 있어 선발 라인업에서 제외된 경우가 생기고 있다. 또한 3루수에서 좋은 모습을 보이는 지석훈에게 밀리고 있다.
5월 27일 한화 이글스와의 1차전에서 선발 이태양을 상대로 시즌 5호 솔로 홈런을 쳐냈다.
5월 28일 한화 이글스와의 2차전에서 조지훈을 상대로 시즌 6호 3점 홈런을 쳐냈다.
5월 29일 한화 이글스와의 3차전에서 6타수 5안타 2타점으로 맹활약했다. 하지만 같이 6타수 5안타에 만루 홈런을 쳐낸 에릭 테임즈에게 묻혔다. 이 날 활약으로 타율을 3할로 끌어 올렸으며 다시 주전 3루수로 기용되고 있다.
6월 10일 두산 베어스와의 1차전에서 정재훈을 상대로 시즌 7호 솔로 홈런을 쳐냈다.
6월 14일 한화 이글스와의 2차전에서 송창현을 상대로 시즌 8호 솔로 홈런을 쳐내는 등 4타수 3안타 2타점으로 맹활약했다. 벌써 타율이 0.311로 작년 타율 상위권을 맴돌던 모습을 생각나게 하고 있다. 다만 잘 치는 날은 몰아치고 못치는 날은 삽만 푸는게 함정.
6월 15일 한화 이글스와의 3차전에서 송창식을 상대로 시즌 9호 3점 홈런을 쳐내는 등 5타수 3안타 3타점으로 또다시 좋은 활약을 보여주었다.
6월 25일 LG 트윈스와의 경기에서 에버렛 티포드를 상대로 시즌 10호 2점 홈런을 쳤다. 이로써 2년 연속 두 자릿수 홈런을 기록하였다.
7월 3일 SK 와이번스와의 경기에서 여건욱을 상대로 시즌 11호 3점 홈런을 쳤다.
7월 12일 넥센 히어로즈와의 경기에서 오재영을 상대로 2회초 시즌 12호 솔로 홈런, 4회초 시즌 13호 솔로 홈런으로 연타석 홈런을 쳤다.
에릭 테임즈에 가려져서 잘 언급되지 않는 부분인데, 모창민이 홈런을 친 게임에서는 팀이 모두 승리하였다!! 7월 기준으로 에릭 테임즈의 공식은 깨지고 모창민의 공식이 이어지는 중.
7월 18일 생애 처음으로 올스타로 선정되어 광주-KIA 챔피언스 필드에서 웨스턴 리그 선수로 참가하였다. 광주 출신인 그에게는 그야말로 금의환향인 셈. 초구를 때려 홈런을 날리며 올스타 무대에 신고식을 했다.
더불어 장녀 모하은의 모습이 많은 NC 다이노스 팬들에게 귀염사를 선사해줬다.
공교롭게도 하은 양이 입고 있던 유니폼에 '모하율'이라는 마킹이 되어 있어, 이 아이의 정체를 두고 엔갤에서 격론이 벌어지기도 했다.뫃으로 본 붕당정치 실제로 저 아이는 하은 양이 맞고, 하율 양은 둘째 딸이다. 하은 양이 여동생의 유니폼을 빌려 입었거나 마킹이 잘못된 모양이다.
2.2.3. 2015 시즌
시즌 전 등번호를 16번에서 3번으로 변경했는데 이유에 대한 언급이 없다가 4월 16일에 그 이유가 공개되었다.# NC 다이노스 구단에서 세월호 희생자를 잊지 않겠다는 의미로 등번호 4과 16번을 비워두게 되면서 등번호가 이동된 것이라고 한다.시즌 전에는 김경문 감독이 모창민에게 골든글러브에 도전하라라고 할 정도로 많은 기대감을 가지게 했으나 저주를 받았는지 시즌 개막 후 5경기 4실책으로 최악의 수비를 보여주고 있다.
4월 23일 이후로는 대타로만 출전하다가 5월 19일에 노성호와 함께 1군 엔트리에서 말소되었다. 대신 1군에 올라온 선수는 조평호와 민성기.
6월 3일 LG와 홈 경기를 앞두고 1군 엔트리에 이름을 올렸다. 그리고 6월 한 달 동안 주로 대타로 나와 0.167의 월간 타율을 기록.
7월 11일 넥센전에 9회초 무사 1루에 대타로 나와서 안타를 치긴 했지만 다음 타자인 조영훈이 2루수 라인드라이브로 잡힌 뒤 2루 주자였던 용덕한과 1루 주자였던 본인이 차례대로 귀루에 실패하여 아웃당하면서 삼중살을 당했다. 팀이 대승을 하여 욕을 먹진 않았고 본인의 잘못으로 당한 삼중살이라고 할순 없지만 안타를 치고도 마무리가 아쉬웠다.
7월 21일 롯데전에 7회초 이호준의 대타로 나와서 첫 타석에 삼진을 당했다. 여기까지는 그동안의 경기에서 보여준 내용 때문에 납득할만한 모습이었지만 9회초 1:1의 팽팽한 국면에서 1사 1, 2루의 상황에서 타석에서 초구에 병살타를 쳐 순식간에 이닝을 종료시켰다. 결국 9회 말 이민호의 볼질 끝에 팀은 패배.
9월 13일 SK전에서 대타로 나와서 1볼넷 1뜬공으로 큰 활약이 없긴 했지만 포지션 경쟁 중인 지석훈이 끝내기 홈런을 치자 제일 먼저 뛰어나와 좋아해 주는 훈훈한 모습을 보였다.
9월 20일 넥센전에서 6회 대타로 나와 바뀐 투수 김대우의 초구를 노려쳐서 솔로 홈런을 기록하였다.
중반기 까지 2할 초반대 타율을 기록하며 많은 비난을 받았지만, 후반기에 다시 좋은 모습을 보이며 2할 9푼으로 시즌 마감.
그러나 지석훈에게 3루 자리를 빼앗기면서 완전히 주전경쟁에서 밀려나 구단에서 트레이드 카드로 쓴다는 썰이 있다. 만일 그가 트레이드 카드가 된다면 롯데나 LG가 가장 유력한 팀.[13]
설상가상으로 2015 시즌 후 NC 구단이 FA 시장에 나온 박석민을 4년 96억원에 영입하면서 모창민의 입지는 더욱 위험해졌다. 20인 보호명단에서 풀릴 가능성이 많았고, 덕분에 주전 3루수를 순식간에 잃은 삼성 라이온즈가 박석민의 보상 선수로 3루 보강을 위해 모창민을 뽑아갈 것이라는 예측이 많았으나, 최재원이 지명되었다. 실제로 박석민의 FA 영입 때 최재원과 함께 보호명단에서 풀려있었음이 2019년 최재원의 전역 후 류중일 감독의 언급에서 드러났다.
시즌 후에 펼져진 야구대제전에서 고척 스카이돔 개장 이후 프로선수 첫 홈런의 주인공이 된다.
2.2.4. 2016 시즌
2016년 3월 11일 왼쪽 무릎 외측 반월판 손상으로 수술을 받았다.외야(좌익수)로 포지션 변경을 준비하다 부상이 생겨서 김경문 감독은 외야 변경을 취소할 계획.
박석민이 기복있는 모습을 보이고 지석훈도 타격에서 죽을 쑤면서 아무래도 모창민의 부상이 더욱 안타까운 상황.
5월 복귀를 점치고 있으나 5월 말까지도 잠잠한 것으로 보아 복귀가 조금 더 미뤄질 듯하다.
7월 7일 복귀 첫 안타를 때렸다. 팀은 이 날 8:4로 승리.
8월 6일 한화 이글스전에서는 7번 지명 타자로 나서 무려 5타수 5안타를 때려내며 팀의 승리에 일조했다. 한 경기 5안타는 자신의 한 경기 최다안타 타이 기록이며, 공교롭게도 저번과 마찬가지로 이번에도 한화전에서 달성했다.
8월 14일 kt wiz전에서는 3회 밴와트를 상대로 시즌 첫 홈런을 쳐냈다.
9월 6일 한화 이글스전에서는 5회 무사 1,2루 상황에서 대타로 등장하여 5-5 동점을 만드는 쓰리런 홈런을 쳐냈다. 그 다음 날에도 솔로 홈런을 쳐냈다. 0:1로 이겼기에 결승타가 된 건 덤.
9월 16일 두산 베어스전에서는 선발 3루수 5번 타자로 나서 솔로 홈런을 포함해 4타수 3안타로 활약했다.
시즌 최종 성적은 133타수 40안타 5홈런 20타점 .331 .370 .504 wRC+118.4. 비율 스탯은 나쁘지 않았지만 무릎 부상으로 6월 말이나 돼서야 1군에 합류한 것이 아쉬울 따름.
2.2.5. 2017 시즌
자세한 내용은 모창민/선수 경력/2017년 문서 참고하십시오.총 136경기 527타석에 나서 데뷔 이후 가장 많은 17개의 홈런과 148안타 90타점을 기록했으며, 처음으로 규정 타석 3할 타율을 기록하면서 공격 면에서 커리어 하이를 기록했다. 부상에서 벗어나 타선의 중심으로 돌아오는데 성공한 시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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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준플레이오프 중 가장 극적인 순간이었던 1차전 만루홈런 |
D-Shot |
2.2.6. 2018 시즌
자세한 내용은 모창민/선수 경력/2018년 문서 참고하십시오.좋지 않은 타격감으로 시즌을 시작하더니 5월 중순에는 족저근막 파열이라는 부상까지 당하며 팀에서 이탈하고 말았다. 하지만 8월 초 복귀전부터 홈런포를 터뜨리더니 정규 시즌 마지막 경기에서도 멀티 홈런을 쳐내는 등 복귀 이후에만 12개의 홈런과 .604의 장타율을 기록하며 물 오른 장타력을 과시했다. 지난 시즌보다 213타석에나 덜 들어섰음에도 홈런수는 똑같이 17개를 맞췄다.
[navertv(4207384)] |
마산 야구장 팀 마지막 끝내기 홈런 |
2.2.7. FA
3루 자원을 노리는 팀들은 많으나 1985년생이라는 나이, 부족한 수비력이 걸림돌이 되어 타 팀에서 영입 제의가 들어갈 확률은 낮다. 사실 구단이나 본인 모두 잔류를 희망하는 상황. 2018년 11월 22일 김종문 단장은 "모창민은 우리 팀에 공헌도도 크고 꼭 필요한 선수다. 빠른 시일 내 협상을 마무리짓겠다"고 밝히면서 연내에 협상을 마칠 것임을 알렸다.2018년 11월 28일 3년 최대 20억에 계약을 완료하면서 NC에 잔류하게 되었다. 구단과 선수 모두 강한 잔류 의지를 드러내면서 FA 시장 1호 계약을 맺게 되었다. 6년 전 이호준이 FA로 NC 다이노스에 이적할 때와 똑같은 기간과 똑같은 금액의 계약.
농담 반 진담 반으로 2019년 FA 시장이 예상 외로 얼어붙으면서 조용히 제일 먼저 도장을 찍은 모창민이 진정한 승리자라는 말이 야구팬들에게서 나오고 있다. 실력은 특급 선수들에 비해 다소 떨어지고 30대 중반을 바라보는 나이임에도 불구하고 나름 적당한 기간인 3년을 보장받았고, 20억이라는 거액도 챙겼기 때문이다. 모창민 본인은 현 FA 상황에 대해 KBO가 FA 상한제를 한국프로야구선수협회에 일방적으로 통보한 것이 선수들의 불만을 가져왔다는 견해를 밝히면서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선 구단과 선수가 서로 조금씩 양보하는 자세가 필요하다는 의견을 남겼다.
2.2.8. 2019 시즌
자세한 내용은 모창민/선수 경력/2019년 문서 참고하십시오.시즌 기록은 101경기 341타수 104안타 10홈런 55타점 49득점 3도루 41볼넷 62삼진 타출장 .305/.358/.466 OPS 0.824 wRC+ 124.4. 비율 스탯만 따지면 커리어하이를 기록할 정도로 좋은 타격을 보여줬지만 햄스트링 부상으로 인해 규정타석을 채우지 못한 것과 후반기의 급격한 타격감 저하가 아쉬웠다.
창원 NC 파크 첫 끝내기 홈런이었던 2019년 3월 26일 kt전 끝내기 백투백 |
2.2.9. 2020 시즌
자세한 내용은 모창민/선수 경력/2020년 문서 참고하십시오.시즌 기록은 62경기 136타수 41안타 2홈런 13타점 10득점 8볼넷 22삼진 타출장 .301/.340/.449 OPS 0.789 wRC+ 98.7. 올 시즌도 개막 나흘만에 어깨 부상으로 전력에서 이탈하면서 강진성에게 주전 1루수 자리를 내주었고, 9월에는 부진과 허리 뭉침으로 45일정도 1군에서 자리를 비웠다. 선발 출장 기회가 적어져서인지 타격성적도 예년만 못했다.
2.2.10. 2021 시즌
개막 엔트리에 들었으나 강진성에게 1루 주전 자리를 내주고 대수비로도 경기에 출장하지 못하고 있다. 1군 엔트리에 지명타자용 선수들이 너무 많은데 투수 뎁스에 구멍이 나자 4월 7일 말소되었다.강진성이 왼쪽 발바닥 통증으로 15일짜리 부상자 명단에 오르자 말소된 지 열흘만인 4월 17일 1군에 콜업되었다. 4월 18일 1루수로 선발 출장하여 2타석 1타수 무안타 1볼넷을 기록한 후 3번째 타석에서 교체되었다.
4월 20일에 다시 1루수로 선발 출장했으나 처참한 타구질을 보여주며 4타수 무안타 1삼진을 기록하고 교체되었다.
결국 이틀 후 퓨처스에서 감이 좋은 1루수 윤형준이 콜업되며 또다시 1군에서 말소되었고, 이것으로 현역 선수 생활을 끝냈다.
2.3. 은퇴
NC 첫 안타 주인공 모창민, 은퇴 결정…프런트로 새 출발'호타준족' NC 모창민, 14년 프로생활 마감
굿바이 모창민! 그가 그리워질 다섯가지 명장면
[피플 IS] "성실하고 진실한 선수"…'부상' 아쉬웠던 모창민의 은퇴
개인보다 팀이 먼저였던 베테랑…NC 1대 사관, 새 역사 준비한다
창단 첫 안타와 창단멤버 첫 FA, 다이노스 역사와 함께 한 모창민의 은퇴[스한 이슈人]
2021년 4월 26일 갑작스럽게 은퇴를 선언하였다. 4월 22일 창원에서 이동욱 감독, 김종문 단장 등과 면담하고 14년간의 프로야구 선수 생활을 마무리하기로 정했다고 한다.
모창민은 "이번 시즌 퓨처스에서 시작하면서 내가 열심히 하는 후배들에게 기회를 뺏는 건 아닌지 생각을 했다"며 은퇴를 생각하게 된 계기를 밝혔다. 그는 또 "팀에 좋은 후배들이 많고, 새로운 도전을 이어가는 팀의 방향성을 생각해보니 지금 내가 어떤 선택을 해야 팀과 후배들에게 조금이라도 도움을 줄 수 있을지 판단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14]
NC는 모창민의 의사를 확인한 뒤, 남은 시즌 현장 프런트로서 팀에 기여하는 역할을 맡기기로 했다. NC 관계자는 “5월부터 육성과 스카우트, 전력분석 파트를 각 두 달씩 맡을 것\”이라고 전했다. 곧장 노트북 등 장비를 지급받을 예정이며, 데이터 분석부터 프로 전력분석 등 견문을 넓히는 과정이 계획돼있다. 올해가 지난 뒤 추후 일정은 정해지지 않았지만 현역시절 야구를 대하는 태도가 남달랐다는 평가를 받았기 때문에 쓰임새는 다양할 전망이다.
NC 구단은 모창민의 은퇴식 여부를 추후 결정하겠다고 밝혔으며, FA 마지막 시즌의 연봉을 보장했다. 구단 관계자는 “선수의 의사를 듣고 구단에 기여한 바를 인정해서 잔여 연봉을 지급한다”고 전했다.#
아직 한국 나이로 37세에 불과한 나이에 후배들을 위해 이례적으로 과감하게 은퇴를 결정한 모창민은 야구계와 많은 야구팬들의 찬사를 받았다.[15] 반면 일부 NC 팬들은 이종욱 처럼 FA 기간 내내 돈값에 맞는 성적을 기록하지 못했다는 평을 덧붙이기도 한다.# 그리고 시간이 지날 수록 3년 최대 20억의 FA는 너무 거액이었다는 평가가 중론을 이룰 것으로 보인다.[16] 2년동안 내내 부상에 시달리며 규정타석을 한 시즌도 채우지 못했기 때문. 만약 2020년 강진성이 크게 떠오르지 못했다면 모창민은 돈값 못한다며 욕을 엄청 먹었을 것이다.
6월 말 스포츠동아 최익래 기자의 취재에 의해 오랜만에 근황이 전해졌다.# 모창민은 5월부터 두 달간 육성팀 훈련조에서 근무하며 데이터 학습 및 지원 업무를 담당했고 최근에는 전력분석 프로그램인 디-라커 영상 편집 및 업로드와 엑셀 작업을 하고 있다. 7월부터는 스카우트팀으로 이동해 프로 스카우트 업무 및 리그 퓨처스(2군) 팀 유망주 관찰을 익힐 예정이다. 9월부터는 데이터팀에 합류해 원정분석 업무를 맡는다. 앞으로의 목표는 프런트보다는 코치라고 한다.
이는 은퇴 후 반년만에 LG 코치로 발탁되어 NC를 떠나면서 현실화되었는데, NC 팬들은 시즌 중 은퇴선언을 하면서 잔여연봉을 보장받음과 동시에 훈련지원팀, 스카우트팀, 데이터파트, 코치 수업까지 NC에서 다 받아놓고# LG에서 제안이 오자마자 냉큼 이적한 것에 대해 당연히 좋지 않게 보고 있다.##
은퇴를 결정하고 나서 한참 지난 8월 13일 웨이버 공시되었다.
[1] 투수/1루수 김대우-고우석, 포수 김윤권, 2루수 윤드로, 유격수 김주호, 좌익수 이창석, 중견수 이대형, 우익수 서정.[2] 리틀 김성근이라 불리는 이연수 감독이 부임한 2001년부터 강도 높은 지옥훈련 아래 성균관대학교 야구부는 황금기를 열게 된다. 당시 성균관대에는 모창민 외에도 넥센 히어로즈의 김태완과 SK 와이번스의 김연훈도 있었다. 투수 중에는 이우선, 허유강, 황재규 등이 포진.[3] 다만 성대 4학년 때는 나지완과 차이가 많이 벌어졌다. 나지완이 11홈런을 친 반면 모창민은 단 2개. 그래도 이 둘과 전준우를 묶어 당시 대학야구 3대 타자로 불렀으며, 프로에서 기대가 컸다.[4] 이 때 대학 대표팀에 같이 갔던 선수로 전준우(당시 건국대), 허도환(당시 단국대) 등이 있다.[5] 한국의 아마추어 야구가 프로처럼 나무배트를 쓰는 것을 감안하면 정말 대단한 기록이다... 라는데 모창민은 나이가 좀 되기 때문에 대학 시절에만 나무배트를 썼다. 고교 시절에는 알루미늄 배트를 썼다.(한국대학야구는 2000년부터, 한국고교야구는 2004년부터 나무배트를 사용하기 시작했다.)[6] 추후 김성근 감독이 언급한 바에 따르면 모창민과 나지완 중 누구를 먼저 뽑을지 고민을 많이 했다고 한다. 고민 끝에 사전 테스트 당시 나지완의 인상이 좋지 않아서 모창민을 먼저 뽑고 나지완은 2픽으로 뽑으려고 했다고. 그런데 KIA 타이거즈가 1픽으로 물어가더니 2009년 한국시리즈 끝내기 홈런 크리. 그러나 실상은 나지완은 당시 대학 최고의 타자로 모창민보다 높게 평가받으며 리그를 초토화시켜서 1라운드가 아니면 지명할 수 없었다. KIA가 패스했어도 삼성이 지명했다는 게 정설.[7] 김성근 감독이 알았다면 성향 상 입대를 막았을 거겠지만, 지금 보자면 잘 갔다 온 셈이다.[8] 모창민이 이영미 기자와의 유튜브 인터뷰에서 그 당시의 비화를 이야기 했는데, 당시 함께 상무입대를 신청한 모창민과 이재원이 여러 번 감독실로 찾아가 부탁했음에도 입대를 반대했고 끝내는 "너희들 나랑 인연 끊을 거면 가라."는 경고까지 했으나 두 사람은 경고를 무릅쓰고 입대를 했다. 그렇게 상무에서 복무하던 중 김성근 감독은 SK에서 경질되어 고양 원더스의 감독으로 부임했고 상무와의 경기에서 재회했음에도 불구하고 인사조차 받지 않았다고한다.[9] 2020년 엔튜브 영상에서 비하인드가 공개되었다. 당시 플로리다 캠프에서 훈련만 하느라 NC로 갈 수 있을 거라는 생각조차 안하고 있어서 평소대로 밤 11시에 잠을 잤는데 새벽 4시에 전화가 걸려왔다. 당시 룸메이트이던 김성현이 전화를 받고 모창민을 깨웠는데 처음에는 한밤중이라 꿈인 줄로 알았다고 한다. 둘이 눈이 마주친 후 핸드폰을 봤더니 문자랑 카톡이 정말 많이 와 있었다고 한다. 입국 비행기를 타고 오면서 실망보다는 기대가 더 컸다고 하며, 드디어 이호준에게서 해방되겠구나 생각했는데 곧 이호준도 FA로 NC에 오게 되어 절망했다며 너스레도 함께 떨었다.[10] 군보류 선수는 제대해도 선수로 등록하지 않고 그대로 두면 보호선수를 고려할 필요가 없지만, 1군에 등록하면 해당 등록선수도 보호 여부를 고려해야 한다. 이는 같은 해 시즌 막바지에 두산 베어스에서 정수빈의 부상으로 민병헌이 등록된 경우도 마찬가지다.[11] 모창민이 친 1호 안타 볼과 1호 볼넷 출루 볼은 NC 다이노스가 보관하고 있다고 한다.[12] 방송 중 해설자는 모창민이 만지는 부위를 보고 햄스트링 부상인 것 같다고 추측했으며, 그렇다면 부상이 오래 갈 지도 모른다고 안타까워했다.[13] 롯데는 황재균이 FA 자격을 얻어 이적할 가능성 때문에 한 시즌을 맡길 수 있는 3루수가 필요한 상황이고, LG 역시 정성훈의 노쇠화 등으로 3루수가 필요하다. 루이스 히메네스가 있다곤 하지만 문제는 백업 3루수. 히메네스의 일시부재 시 밑고 맡길 3루수가 정성훈밖에 없다는 게 문제다.[14] 이동욱 감독은 은퇴 기사가 난 후 4월 27일 대구 삼성전을 앞두고 가진 인터뷰에서 "모창민이 면담을 통해 ‘팀이나 후배들의 앞길을 막는 게 아닌가 해서 생각을 많이 했다’고 하더라. 후회하지 않겠냐고 물었더니 ‘더 길어지면 나중에 더 후회할 것 같다’고 대답했다"고 전했다. 이어 "누구나 한 번은 그만 둬야 한다. 본인이 먼저 그만 두겠다고 하는 건 드문데 그렇게 결정할 수 있는 모창민의 용기가 대단하다"며 "모창민은 항상 부단히 노력하고 팀에 긍정적인 에너지를 주는 선수였다. 그렇기에 팀 동료, 코칭스태프, 구단 관계자, 팬들로부터 많은 사랑을 받지 않았나 생각된다"고 덧붙였다.[15] ####[16] 옵션포함 3년 20억은 이호준이 NC로 이적할 때 받았던 금액 및 조건과 같다. 스탯티즈 기준 이호준은 3년간 WAR* 5.64를 기록했고 모창민은 WAR* 2.23을 기록했으니 이호준에 비해 절반의 활약도 못 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