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11-24 22:14:11

미사/자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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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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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2. 공통 사항
2.1. 미사의 기본 정신 유지2.2. 철저한 성체 성혈 관리2.3. 가톨릭 교회가 공인한 지침을 먼저 참고2.4. 전례 거행 예식 규정 준수2.5. 전례서에 없는 관습에 무작정 얽매이지 않아야2.6. 다양한 사람에 대한 배려2.7. 해설자에 대한 의존을 줄여야2.8. 노래 미사에 인색하지 않기
3. 성직자들이 할 일
3.1. 교구장 주교의 역할 1: 전례 규정에 따른 모범적인 미사 거행3.2. 교구 직권자의 역할 2: 올바른 전례 규정을 신부들과 신자들에게 가르치기3.3. 사제의 역할 1: 전례서에 나타난 규정과 지시를 읽고 숙지3.4. 사제의 역할 2: 전례서에 나타난 규정과 지시를 '제대로' 읽고 '제대로' 숙지3.5. 사제의 역할 3: 예식서를 변형하지 않고 그대로 사용
4. 신자들이 할 일
4.1. 전례 봉사에 적극적으로 참여4.2. 공복재4.3. 미사 전례에 합당한 복장 착용4.4. 성당에 미리 도착하여 그날의 말씀 묵상4.5. 중죄를 지었을 때의 고해성사4.6. 휴대전화 꺼놓기4.7. 쓸데없이 불편함을 느끼는지 늘 성찰하기4.8. 풍성한 물적 봉헌

1. 개요

이 문서는 합당한 미사 전례 거행에 임하는 이들이 갖춰야 할 합당한 자세 전반적인 사항을 다룬다. 미사를 구성하는 세부 순서 중의 자세는 아래 열거한 문서에서 다룬다.

2. 공통 사항

2.1. 미사의 기본 정신 유지

(중략) 이 제사는 자비의 성사이고 일치의 표징이고 사랑의 끈이며, 그 안에서 그리스도를 받아 모시어, 마음을 은총으로 가득 채우고 우리가 미래 영광의 보증을 받는 파스카 잔치이다.
『가톨릭 교회 교리서』 1323항. 원문 링크. 교회 문헌 © 한국천주교중앙협의회.
미사 중에 적절히 웃으며 모두 행복해지고자 노력해야 한다. 한국 천주교 성당에서 거행되는 미사 중 성직자, 수도자, 평신도의 표정을 떠올려보자. 대체로 표정이 굳어 있음을 알 수 있다. 성직자와 전례 봉사자는 혹시나 미사 중에 뭐 하나 틀릴까봐 노심초사한다. 성직자와 봉사자가 이렇다면, 회중들의 표정도 함께 굳어지기 마련이다.

어떤 성당에서는 전례 봉사자가 미사 중에 뭐 하나 틀리면 주례 사제가 그 자리에서 화를 낸다. 과연 이게 저 위에 인용한 『가톨릭 교회 교리서』가 말하는 '자비의 성사'이고, '일치의 표징'이고, '사랑의 끈'인지, 그렇게 화를 내서 무엇이 남는지 그 사제 스스로가 반성해봐야 한다. 전례 규정이 아무리 중요해도 자비와 일치와 사랑이 없는 미사는 결국 껍데기일 뿐이다. 설령 봉사자가 잘못 수행하는 부분이 있다면 과격한 수단보다는 슬기롭고 원만한 방법으로 해결해야 한다.

미사 전례 거행시 숙지해야 할 규정이 여럿 있지만, 결국 미사의 기본은 말씀 전례와 성찬 전례이다.[1] 미사에 참석한 이들이 말씀 전례 때 말씀을 잘 듣고, 성찬 전례 때 성체 성혈을 보며 예수 그리스도의 현존을 느끼고, 영성체를 통하여 예수 그리스도와 일치하는 것이 미사의 핵심이다. 따라서 너무 경직된 분위기보다는 적절히 여유있는 분위기를 지향할 때, 비로소 미사에 참석한 모든 이들이 말씀 전례와 성찬 전례의 핵심을 잡을 수 있다.

『로마 미사 경본』, 『가톨릭 교회 교리서』, 『교회법』 등 가톨릭 교회의 성체성사인 미사와 관련된 공식 문헌은 매우 많다. 그런데 이 많은 문서들 중에서 그 어느 것도 미사 중에 실수하면 안된다고 규정하지 않는다. 부족함이 있는 사람들이 모여서 거행하는 공적 예식이기에 부족함이 늘 있다. 물론 미사 중 습관적으로 틀리거나 미사에 대해 잘못 알던 부분은 사전에 정정함으로써 전례 규정을 준수하려는 노력은 필요하다. 그러나 전례 도중 우발적으로 발생하는 여러 부족함은 그 또한 미사 거행의 한 부분이라고 받아들일 수 있어야 한다. 그럴 때 비로소 미사 중에 웃을 수 있는 여유를 터득한다.

2.2. 철저한 성체 성혈 관리

파일:상세 내용 아이콘.svg   성직자들에게 적용되는 올바른 영성체 집전 방법에 관한 자세한 내용은 미사/성찬 전례 문서
번 문단을
올바른 영성체 규정 부분을
참고하십시오.
파일:상세 내용 아이콘.svg   신자들에게 적용되는 올바른 영성체 방법에 관한 자세한 내용은 미사/성찬 전례 문서
번 문단을
미사 영성체 부분을
참고하십시오.
미사/성찬 전례 문서의 영성체 문단은 성직자가 아닌 이가 성체를 즉시 모시지 않고 성체를 들고 멀리 가서는 안된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그런데 이것이 실제 사목 현장에서 자주 무시된다. 특히 규모가 제법 큰 한국 교구들의 성당에서 봉사자가 마음만 먹으면, 성체를 그 자리에서 영하지 않고 자신의 자리까지 들고 가는 신자를 미사 중에 여럿 적발할 수 있을 정도이다. 워마드 성체 훼손 사건과 같은 성체 훼손이 일어나기 딱 좋다.

물론 이런 일의 가장 큰 책임자는 바로 성체를 함부로 멀리 들고 간 당사자이다. 그러나 거룩한 전례가 합당하게 거행되도록 감독해야 할 신부나 교구 직권자에게는 아무 책임이 없을까? 그들은 신자들이 함부로 성체를 들고 다니지 말라고 지속적으로 교육하고, 영성체 중에 이런 일이 발생하지 않도록 제도를 정비해야 한다. 신자들도 누군가가 성체를 부적절하게 다루는 모습을 본다면 이를 적극적으로 제지해야 한다. 구체적으로 다음과 같은 실천 방안을 생각할 수 있다.

손으로 성체를 받아 모시는 영성체 방법을 계속 유지한다면?
  1. 성체를 받은 신자가 성체를 즉시 영하는지 확인할 수 있도록 성체 분배 속도를 낮춰야 한다. 2024년 기준으로 한국 천주교 대다수 성당의 미사 영성체 행렬 진행 속도는 사실 매우 빠르다. 신자가 성체를 받은 후 바로 옆에서 잠시 멈춰서 천천히 성체를 영하려고 해도 다음 사람을 의식한다. 이는 (비록 의도하지 않았을지라도) 신자가 성체를 받고 즉시 영하기보다는 성체를 자기 자리로 들고 가서 영하도록 유도하는 셈이다. 그러므로 (a) 성체를 받은 신자 한 명이 성체를 즉시 영하고, (b) 이를 성체 분배자나 봉사자가 확인하며, (c) 그제서야 성체 분배자가 다음 사람에게 성체를 분배한다면, 불미스러운 일을 방지할 수 있다.
  2. 정규/비정규 성체 분배자 옆에 믿을 만한 봉사자를 두어야 한다. 성체를 손으로 받은 신자가 그 즉시 영하지 않고 자리에 들어가려고 한다면 봉사자가 이들을 막고 성체를 즉시 영하도록 지시해야 한다. 필요하다면, 가톨릭에서 인정하는 세례를 받았는지 여부도 물을 수 있다.
  3. 주변 신자들의 노력도 중요하다. 어느 누군가가 성체를 부적절하게 취급하는 장면을 본다면, 신자들이 이를 적극적으로 말려야 한다. 교계에서도 성체의 잘못된 취급을 막으려는 신자들의 행동은 결코 유난스러운 행위가 아니며, 가톨릭 교회의 가치를 수호하기 위한 선한 실천 행위임을 강조해야 한다.
  4. 이렇게 성체를 분배하면 시간이 지금보다 오래 걸린다. 명동성당처럼 주일에 한 시간 간격으로 미사가 있는 곳에서는 미사가 제때에 끝나지 않을 수 있다. 그러나 성체를 수호하려는 노력은 미사를 일찍 끝내려는 노력과 비교가 불가능할 정도로 숭고하다. 미사가 길어지니까 그냥 기존대로 하자는 주장은 무엇이 중요하고 무엇을 위해 가톨릭 교회가 있는지 전혀 의식하지 못하는 생각에서 비롯된 외침이다. 특히 성직자는 이 말을 하지 않아야 옳다.

입으로 성체를 받아 모시는 방법을 어느 정도 복원하기
  1. 미사/성찬 전례 문서의 올바른 영성체 규정 문단에 있는 「로마 미사 경본 총지침」 160항과 161항에서도 볼 수 있듯, 지금 규정으로도 성체를 입으로 직접 받는 방법이 원칙이요, 손으로 받아 영하는 방법은 허용에 해당한다.
  2. 한국어판 「로마 미사 경본 총지침」 161항은 단서 조항으로 '한국 교구들에서는 영성체하는 이가 원하면 손으로 성체를 모신다.'라고 제시한다. 이 조건을 보다 엄격하게 받아들이도록 지역 직권자가 조정하는 방안도 생각할 수 있다. 가령 여기서 말하는 '영성체하는 이'를 (1) 사제가 판단하기에 믿을 만한 신자(특히 전례 봉사자), (2) 사전에 사제와 면담을 거친 자 등으로 제한을 두면 손으로 성체를 받을 수 있는 신자의 범위가 매우 좁아진다. 「로마 미사 경본 총지침」 161항의 단서 조항이 허용하는 바를 그대로 지키면서 성체를 부적절하게 취급하는 행위도 막을 수 있다.

2.3. 가톨릭 교회가 공인한 지침을 먼저 참고

「로마 미사 경본 총지침」, 「미사 통상문」, 「독서 목록 지침」, 『로마 미사 경본』처럼 가톨릭 교회는 미사를 합당히 거행하기 위한 여러 지침과 규정을 마련해 두었다. 한국 천주교 역시 이러한 보편적인 문서를 기초로 「한국 천주교 사목 지침서」와 같은 세부 규정을 세운 바 있다. 따라서 일단 이들 공식 문서를 먼저 참고해야 한다.

가능한 한 최근 문서를 봐야 한다. 『로마 미사 경본』 앞면에는 경신성사성 교령이 있으며, 이 교령은 '이에 반대되는 것은 무효이다.'라고 끝맺는다. 무슨 의미일까? 『로마 미사 경본』보다 앞서서 발표된 여러 공식 문서들의 가르침과 지시들 중 『로마 미사 경본』이 지시하는 바와 상충되는 것은 『로마 미사 경본』의 공식 사용과 동시에 자동으로 무효가 된다는 뜻이다.

한국 천주교의 많은 성직자, 수도자, 봉사자들이 범하는 오류 중 하나는 현재의 공식 문서는 잘 읽지 않고 비공인 문서에만 의존한다는 것이다. 선배 봉사자들이 남긴 문서, 인근 성당에서 사용하는 문서, 어느 성직자/수도자/평신도가 전례에 관하여 출판한 책은 교회가 공인한 문서만큼의 권위를 가지지 못한다.

신학교 교수 신부가 출판한 책이라고 해도 마냥 믿어서는 곤란하다. 교수 신부도 교회 공인 문서를 잘 숙지하지 못하거나 아예 공인 문서를 잘못 해석한 채로 책을 저술할 때가 있다. 이러한 책이 마냥 나쁘다는 뜻이 아니다. 공식 문서와 교차검증해가며 읽어야 한다는 이야기이다.

2.4. 전례 거행 예식 규정 준수

우리는 여기서 분명히 해 둡시다. 전례 거행의 모든 측면(공간, 시간, 몸짓, 말씀, 기물, 전례복, 노래, 음악들)을 주의 깊게 살피고, 모든 예식 규정을 준수해야 합니다. 마땅히 회중이 하도록 되어 있는 것들을 생략하지 않도록 이러한 관심을 충분히 기울여야 합니다. 곧, 파스카 신비는 그 교회가 정한 예식에 따라 거행되어야 합니다. 그러나 전례 거행 행위의 고유한 특성과 규범이 보장된다 하더라도, 그것만으로는 우리의 참여를 완전하게 하는 데에 충분하다고 할 수 없을 것입니다.
주교, 신부, 부제와 축성 생활자와 평신도들에게 보내는 프란치스코 교황의 교서 「나는 간절히 바랐다」(Desiderio desideravi) 23항. 원문 링크.
주어진 전례 규정을 준수해야 한다고 말하는 이를 성경에 나오는 율법학자나 바리사이들처럼 생각하는 분위기가 한국 천주교에 만연해 있다. 그럴 때 "규정이 중요하냐? 마음이 더 중요한 것 아니냐?"와 같은 말이 늘 함께 나온다. 그러나 이는 성경에 나온 이야기를 엉뚱하게 해석한 것이다. 현대 가톨릭 교회는 전례 규정을 모두 준수하되, 그 안에 있는 아름다움과 신비를 발견하라고 가르친다. 성 프란치스코 살레시오는 "마음은 행위의 원천이요, 행위는 마음의 반영이다."라고 하였다. 예법보다는 마음이 중요하다는 말대로라면, 사제는 제의를 왜 입을까? 봉사자가 전례복을 왜 입을까? 미사 중 앉고 일어서는 동작은 왜 있을까? 성당에 오는 신자들에게 복장 단정히 하라는 말을 왜 할까? 이러한 동작과 외적 자세를 반복함으로써 내적 마음을 더 단정히 할 수 있기 때문이다.

무엇보다도 미사 전례 거행에 관한 세부 지침을 교황청에서 정비하는 전례학자들이 성경에 나온 율법학자와 바리사이들의 이야기를 전혀 몰랐을까?

2.5. 전례서에 없는 관습에 무작정 얽매이지 않아야

한국 천주교 대다수의 본당 미사 전례에서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특징 중 하나는 전례서에 명시된 많은 규정은 잘 지키지 않으면서, 정작 전례서에 나와있지도 않은 지역/본당 관습은 기를 쓰고 지키라고 강요한다는 것이다. 사실 이것이 진짜 율법학자나 바리사이들의 행동과 같다. 이 문단에서 주장하는 바는 앞 문단에서 말한 전례 거행 예식 규정 준수와 근본적으로 같은 말이다. 전례서에 제시된 규정과 지시는 지켜야 하며, 동시에 전례서에 제시되지 않은 관습에 까닭없이 얽매여서는 안된다.

가령 주님 성탄 대축일이나 주님 부활 대축일에 어느 성당에서는 성가대가 특별한 미사곡을 해야 한다고 강요한다. 재미있게도 어느 성당은 정 반대로 절대 특별한 미사곡을 해서는 안된다고 강요한다. 도대체 누구의 말이 맞을까? 마치 특별한 미사곡을 해야 하는 혹은 하지 않아야 하는 지침이라도 있는 양 언급들을 하지만, 정작 「로마 미사 경본 총지침」은 아래와 같이 폭넓게만 가르친다.
대영광송은 사제, 또는 필요에 따라 선창자나 성가대가 시작하지만, 그다음 본문은 모두 함께 노래하거나 교우들과 성가대가 교대로 노래하거나 또는 성가대만 노래한다.
「로마 미사 경본 총지침」 53항. 전자책 링크. 전례문 © 한국천주교중앙협의회.

'성가 전주는 무조건 네 마디를 연주해야', '성가를 혼성4부로 노래하지 않는 것은 말도 안되는 짓', '대축일에 성가대가 특송을 반드시 해야', '특송은 영성체 때 해야'와 같은 성가 관련 사항들도 그저 관습일 뿐이지, 전례서에 정말 꼭 그렇게 하라고 규정된 바도 없고, 규정해서도 안된다. 마디와 반주 개념이 없는 그레고리오 성가의 전주 네 마디를 어떻게 연주할 것이며, 그레고리오 성가를 반드시 혼성4부로 노래해야 한다고 한다면 그게 더 말도 안되는 소리이고, 성가대의 특송은 따지고 보면 '성가집에 없는 노래'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한 가지 예를 더 들어보자. 미사 전에 봉사자(이른바 '복사')가 제대 초에 불을 켜 놓는다. 이때 많은 공동체는 "어디서부터 어느 방향으로 불을 켜라."라고 지시한다. 생각해보자. 그 방향에 특별한 의미가 있을까? 심지어 미사 중이 아닌 미사 전인데도? 지금의 전례 규정 그 어디에도 초를 어느 방향으로 켜라고 지시한 바가 없다. 애당초 가톨릭 교회는 그런 세세한 규정까지 지정할 정도로 한가한 집단이 아니다.

봉사자들의 다른 행동에 대해서도 마찬가지 이야기를 적용할 수 있다.(복사 문서의 복사 관련 이슈 문단 참고.) 한국 천주교 본당의 보통 미사의 입당 행렬을 관찰해보자. 제단 앞에 봉사자와 사제가 도착한 다음, 사제가 제단에 올라가기 전까지 봉사자가 올라가지 않고 기다리는 장면을 쉽게 볼 수 있다. 우연히 그런 것이 아니라 실제로 복사단 교육시에 그렇게 교육하는 곳이 많다. 그러나 어느 전례서도 이와 같은 행위를 규정하지 않는다. 아니, 못한다. 사제가 제단에 올라가기 전까지 평신도 봉사자는 제단에 올라가면 안된다는 논리대로라면, 미사 전 제대 초는 어떻게 켠다는 말인가? 제단 봉사자는 미사 전에 그 제단에 어떻게 올라갔단 말인가.

이렇게 지침에는 나오지 않은 불필요한 규정은 전례가 생기를 잃게 만들고 미사에 참례한 사람들이 쓸데없는 관습의 노예가 되게 만들 뿐이다. 사제와 봉사자들은 공식적인 전례 지침을 잘 이해함으로써 모두가 불필요한 규정으로부터 자유로워져야 한다.

2.6. 다양한 사람에 대한 배려

예수님께서는 이렇게 이르셨다. “어린이들을 그냥 놓아두어라. 나에게 오는 것을 막지 마라. 사실 하늘 나라는 이 어린이들과 같은 사람들의 것이다.”
마태오 복음 19장 14절. 원문 링크. 성경 © 한국천주교중앙협의회.

한국의 많은 성당에는 '유아실'이 있다. 유아실이 왜 있는지 생각해보자. 먼저 영유아들은 장시간 거행되는 미사에 온전히 집중하기 어렵고, 특히 영아들은 종종 불시에 큰 소리로 운다. 일단 여기까진 사실이다. 문제는 '불편함을 느끼는 이가 누구기에 유아실에 어린이와 부모들이 들어가는가?' 하는 점이다. 만일 불편을 느끼는 이가 (아이와) 보호자들이라면, 그래서 보호자들이 미사 참례자들에게 폐를 끼칠 것을 걱정하여 별도 공간을 원한다면, 유아실 운용에 큰 문제는 없다. 그러나 불편을 느끼는 이가 보호자들이 아니라 미사를 집전하는 사제나 미사에 참례하는 다른 이라면, 그 불편함이 합당한 불편함인지 반성해봐야 한다. 하느님은 갓난 아이가 불시에 큰 소리로 울도록 사람을 창조하였다. 그렇다면 그 울음 소리도 전례의 한 부분이다. 하느님의 창조 사업 역시 가톨릭 교회 관계자 모두가 지향하는 것 중 하나인데, 아이의 울음 소리가 전례 거행에 방해된다고 느낀다면, 그건 전례를 잘못 이해한 것이다. 즉 아이와 보호자가 유아실에 자발적으로 들어단다면 문제 없지만, 성직자나 봉사자들이 그들에게 유아실에 들어갈 것을 강요한다면 문제의 소지가 있다.

노인, 장애인, 환자들에 대한 배려도 마찬가지로 설명할 수 있다. 때로는 이들이 미사에 와서 신음소리를 낸다. 청각장애인들이 참석한 미사 중에는 수어를 사용하며, 다른 이들도 미사 참례를 위해 여러 수단을 사용한다. 그런데 이를 두고 분심을 가지는 신자들은 자신이 '신앙인'은 고사하고 '인간'으로서 양심이 바로 서 있는지부터 스스로 돌아봐야 한다. 그 분심은 영유아, 노인, 장애인, 환자들을 공동체로 끌어안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공동체 밖으로 그들을 배제하는 쪽으로 작용한다. 합당한 미사 전례라면, 이러한 이들이 미사 중에 내는 신음소리 정도는 전례의 한 부분으로 인정하고 받아들여야 한다. 그게 『가톨릭 교회 교리서』 1323항이 말하는 '사랑의 끈'을 실천하기 위한 첫걸음이다.

2.7. 해설자에 대한 의존을 줄여야

한국 천주교의 절대 다수의 성당에서는 해설자 없으면 미사 거행을 할 수 없는 줄로 인식한다. 주교/사제/부제 서품식처럼 각 교구의 가장 큰 행사라고 할 수 있는 여러 미사에서조차 해설자를 둔다. 그러던 한국 천주교에 신선한 충격을 준 사건이 있었으니, 바로 2014년 교황 프란치스코 방한이다. 그 기간에 거행된 미사 중에는 (일단 미사가 시작된 후에는) 해설자의 안내가 없었다. 그래도 별 문제 없이 미사가 원활하게 진행됐다. 이 경험을 통해 한국의 사목자와 봉사자들은 그간 관행처럼 유지된 해설자의 안내가 정말 필요한 것인지, 그저 관습이니까 하는 것인지에 대해 깊이 고찰해야 한다.

해설자의 안내는 『로마 미사 경본』과 같은 전례서에 구체적으로 제시되어 있지 않다. 이는 사제나 부제나 봉사자(독서자, 시종직, 성가대 등)가 하는 권고나 기도나 행위가 전례서에 제시된 것과 대조적이다. 실제로 유럽이나 미국의 거의 대부분의 성당에서는 보통 미사 때는 물론 파스카 성삼일 전례 때도 해설자를 별도로 두지 않는다. 그래도 전례 거행에는 큰 지장이 없다. 한국 성당에서 해설자가 담당하는 많은 안내를 그곳에서는 (필요하다면) 사제가 직접 하기 때문이다. 이렇게 하면 미사에 참여하는 교우들의 집중이 분산되지 않고, 사제와 교우 사이의 친밀감도 증진된다.

습관적으로 해설자를 활용하는 것을 왜 줄여야 할까? 해설자의 안내가 사제/부제의 권고나 기도를 가리며, 사제와 신자들의 친밀감을 가로막기 때문이다. 이를 단적으로 알 수 있는 때가 주님 수난 성지 주일 미사이다. '주님의 예루살렘 입성 기념'을 진행한 후 마지막으로 사제나 부제나 평신도 봉사자는 "사랑하는 형제 여러분, 우리도 예수님을 환영하던 군중을 본받아 평화의 행렬을 합시다."라고 권고한다.[2] 이 권고를 사제나 부제가 한다면 그 권고를 듣고 모든 신자들은 행렬을 시작하면 된다. 그런데 한국 천주교 각 본당에서 거행되는 예식을 잘 보면, 사제나 부제가 이 권고를 할 때는 아무도 움직이지 않다가 이어서 평신도 해설자가 "지금부터 성당으로 이동하도록 하겠습니다. 이동 순서는 …… 입니다."처럼 안내를 해야 비로소 신자들이 움직인다. 신자들이 사제나 부제의 권고에는 귀를 기울이지 않고 평신도 해설자의 권고에만 집중한다는 뜻이다. 이것은 상식적인 상황과 정 반대의 모습이다.

여러 예식 미사 때는 이 문제점이 더욱 두드러진다. 예를 들어, 사제 서품식의 한 순서로 '훈시'라는 것이 있다. 주례 주교가 사제직이라는 것이 무엇인지 모든 이들에게 설명하는 순서이다. 그러면 주례 주교가 예식서 규정에 따라 훈시를 하면 된다. 그런데 한국의 많은 교구에서는 "이제 교구장님께서는 사제직의 고귀함과 그리스도를 따름에 충실할 것을 말씀하십니다."라는 해설자의 안내가 주례 주교의 훈시 앞에 나온다. 이러한 요약 성격을 지닌 안내가 습관적으로 신자들에게 전달되면, 미사에 참례한 이들은 차츰 해설자의 안내에만 귀를 기울이고 정작 주례 주교의 훈시에는 귀를 열지 않는다.

신자들에 대한 안내 말고도, 한국 천주교가 그간 해설자를 유지한 다른 이유는 미사에서 사제와 신자들을 해설자가 연결해줘야 한다는 인식이었다. 그러나 그 논리대로라면 오히려 해설자가 없어야 한다. 사제와 신자들간의 친밀감을 위한다는 명목으로 왜 중간에 누군가가 개입해야 하는가. 더군다나 현실의 미사는 사제와 신자들이 모두 같은 언어를 사용하기에 통역자가 필요한 것이 아닌데도 말이다. 미사 거행에 중요한 전제 중 하나가 같은 공간에 모두 모인다는 것인데,[3] 해설자의 안내가 있다는 것은 제단 위의 사제와 봉사자들을 TV 화면 속으로 집어넣고 신자들은 화면 밖으로 끄집어냄으로써 마치 스포츠 중계 상황을 만드는 것과 같다.

한국 성당에서 지금 당장 해설자 없이 미사 하는 것이 가능할까? 당연히 가능하다. 보통 미사는 어느 정도 신자들이 적응한 상태이다. 만일 신자들이 미사 중 자신이 앉아야 할지 일어서야 할지 모른다면 사제가 직접 알려 주면 된다. 신자들이 일어서라고 안내해야 한다면 (이미 마이크 앞에 있는) 주례 사제가 구두로 혹은 제스쳐로 일어서라고 알려주고, 신자들이 앉으라고 안내해야 할 때는 (역시 아직 마이크 앞에 있는) 주례 사제가 직접 알려 주면 된다. 성가 번호 알려 주는 역할은 이미 지금도 성전 앞 번호판이 그 역할을 충실히 해 주고 있다. 물론 처음 1~2주 정도는 약간의 시행착오가 있을 것이다. 그러나 해설자의 안내는 자전거의 보조바퀴와 같다. 두발자전거를 타야 하는 어린이가 계속 보조바퀴에만 의존하면 두발자전거를 타기 위한 균형을 기르기 어렵지만, 시행착오를 겪더라도 보조바퀴를 차츰 제거하면 두발자전거를 타기 위한 균형을 기를 수 있다. 해설 안내 없는 미사 전례 때의 시행착오도 이처럼 자연스러운 현상으로 받아들여야 한다. 그리고 해설자 없이도 꾸준히 해나가다 보면 신자들도 곧 적응함으로써 미사 전례에 능동적으로 참여할 수 있다.

그렇다면 지금까지 해설자로 활동한 봉사자들은 앞으로 무엇을 해야 할까? 일반적인 한국 성당의 해설자의 역할은 신자들에 대한 안내와 성가대 없는 미사에서 선창 담당이다. 누가 봐도 후자의 역할이 더 중요하다. 성가대나 노래 선창 담당자가 없을 때, 대영광송의 선창을 담당하고, 화답송복음 환호송 시편을 낭독하고, 보편 지향 기도를 바치는 일과 같은 고귀한 역할에 좀더 집중하는 방향으로 이 봉사자들의 역할을 전환해야 한다. 이렇게 해설자보다는 선창자로서의 기능을 살리는 것이 이 봉사자들의 영적 고양에도 더 도움이 된다.

2.8. 노래 미사에 인색하지 않기

시편과 찬미가와 영가로 서로 화답하고, 마음으로 주님께 노래하며 그분을 찬양하십시오.
에페소서 5장 19절. 원문 링크. 성경 © 한국천주교중앙협의회.
감사하는 마음으로 하느님께 시편과 찬미가와 영가를 불러 드리십시오.
콜로새서 3장 16절. 원문 링크. 성경 © 한국천주교중앙협의회.
한국 교구들의 대부분 성당에서는 의무 축일에 교중 미사 중에는 미사 통상문의 많은 부분을 노래로 바친다. 성가대 없는 다른 미사 중에는 행렬 노래만 부르며, 통상문의 극히 일부만 노래하거나 아예 노래하지 않는다. 음악적 관점에서 보면 전자는 '노래 미사'이고, 후자는 '낭송 미사'[4]이다. 자세한 내용은 미사/종류 문서의 음악적 관점에 따른 구분 문단 참고.

만일 '노래를 적게 부르는 미사는 일찍 끝나겠지.' 하는 생각에 노래 미사를 의도적으로 피한다면 이는 순수한 마음으로 미사에 참여한 것이 아니다. 노래 미사에 참여하고 싶지만 개인 사정상 부득이 다른 미사에 참여하거나, 고요한 묵상을 원해서 낭송 미사에 참여한다면 문제가 없다. 그러나 일찍 끝나는 미사를 찾는다는 목적으로 노래 미사를 피한다면, 이는 그 마음속에 미사를 정성 들여 거행하려는 의지보다는 미사를 '해치우고자' 하는 의도가 더 크게 남아 있다는 뜻이다. "노래를 잘 부르는 사람이 두 배로 기도한다."라는 옛 격언[5]이나 위에 언급된 신약의 가르침은 무시되는 셈이다.
(중략) 주일과 의무 축일에 지내는 미사에서는 봉사자들과 교우들의 노래가 빠지지 않도록 온갖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실제로 노래할 부분을 고를 때는 더욱 중요한 부분, 특히 사제나 부제나 독서자가 부르고 교우들이 화답하는 노래, 또는 사제와 교우들이 함께 부르는 노래를 먼저 골라야 한다.
「로마 미사 경본 총지침」 40항. 전자책 링크. 전례문 © 한국천주교중앙협의회.
노래 미사가 단지 길다는 이유만으로 그 미사를 피한다면 중요한 노래를 의도적으로 하지 않는 것과 같다. 위 지침의 마지막 문장의 의미는 미사/종류 문서의 음악적 관점에 따른 구분 문단과 거룩하시도다 문서의 미사 안에서 '거룩하시도다'의 위상 문단에 자세히 적혀 있다. 한국의 많은 성당에서 낭송 미사 중에도 반드시 노래로 꼭 부르는 찬미가 형식의 행렬 노래, 곧, 입당 노래, 봉헌 노래, 영성체 노래(, 그리고 파견 노래)의 절대 다수는 저 마지막 문장에 해당하지 않는다. 만일 어느 낭송 미사 중에 부른 노래라고는 오직 이들 행렬 노래뿐이었다면, 이는 위 지침과 「한국 천주교 성음악 지침」 46항에 의해 가장 등급이 낮은 노래만 미사 중에 바쳤다는 뜻이다. 행렬 노래로 쓰이는 찬미가 중에도 훌륭한 노래가 많으나, 전례적으로는 사제/부제/봉사자와 교우들이 화답하는 노래보다 등급이 낮다. 이는 가톨릭 교회가 로마 미사 경본 총지침」을 비롯한 여러 문헌에서 명백히 명시한 바이다.

일부 공동체에서는 사목자가 단지 미사를 일찍 끝내려는 마음에 성가 봉사자에게 "오늘은 노래 미사가 아닌 낭송 미사로 거행합시다."라고 지시한다. 미사는 대충 하면 안된다고 가르쳐야 할 사목자가 오히려 미사를 해치우는 행위를 앞장서서 하고 있다. 이것이 계속되면 신자들은 속전속결로 진행되는 미사에 맛을 들인다. 말 그대로 버릇을 잘못 들이는 셈이다. 이런 상황에서 성음악 발전은 고사하고 그날의 말씀과 전례문을 묵상하는 일은 힘들다. 물론 사목자로서 신자들이 미사 길어져서 미사에 흥미를 잃을까 걱정할 수 있다. 그러나 장엄하게 거행되어야 할 미사를 단지 짧게 하겠다는 목적으로 기계적인 행위로 바꾼다면 그것이 오히려 신자들을 미사로부터 더 멀리 떨어뜨린다.

사실 미사 통상문을 대거 노래로 부른다고 미사 시간이 크게 늘어난다고 보기도 어렵다. 볼프강 아마데우스 모차르트의 C장조 미사곡 K 317과 같은 큰 규모의 곡을 특별히 연주하는 때가 아니라면, 즉 『가톨릭 성가』에 있는 미사곡을 노래한다면, 그 통상문들을 낭송할 때와 시간 차이가 크지 않다. 사제가 바치는 통상문이나 고유문도 마찬가지이다. 가령 감사송을 노래할 때와 낭송할 때의 시간 차이는 고작 몇 초이다. 노래가 많아질 수록 미사 시간이 길어진다는 성작자나 평신도의 인식은 그저 섣부른 추측일 뿐이다.

3. 성직자들이 할 일

3.1. 교구장 주교의 역할 1: 전례 규정에 따른 모범적인 미사 거행

"내가 너희에게 한 것처럼 너희도 하라고, 내가 본을 보여 준 것이다."
요한 복음 13장 15절. 원문 링크. 성경 © 한국천주교중앙협의회.
사실 교구장 주교는 자기에게 맡겨진 개별 교회에서 하느님 신비의 으뜸 분배자요 모든 전례 생활의 지도자이며 촉진자요 수호자이다. (중략)
「로마 미사 경본 총지침」 22항. 전자책 링크. 전례문 © 한국천주교중앙협의회.
교구장 주교는 교구의 여러 공동체에서 합당하게 미사 전례가 거행되도록 감독하고 가르쳐야 한다. 그 첫 단계는 주교 자신이 먼저 전례 규정을 올바로 숙지하고 규정에 따라 합당하게 미사 전례를 거행하는 것이다.

아래 사제들의 역할에 관한 설명 중 '순명'을 언급한 대목이 있다. 신자들이 사제 자신에게 순명하기를 바란다면, 사제도 미사 거행에 관한 규정을 준수함으로써 교회의 가르침에 순명해야 한다는 내용이다. 이것은 교구 직권자들에게도 그대로 적용된다. 단순히 규정을 준수하는 것을 넘어서서 규정이나 지시가 권장하는 부분까지 오롯이 수행할 때, 신부들도 '나도 미사 때 저렇게 최선을 다해야겠다.'라고 결심한다.

3.2. 교구 직권자의 역할 2: 올바른 전례 규정을 신부들과 신자들에게 가르치기

주교는 신부와 부제, 그리고 평신도 그리스도 신자들이 언제나 전례 예식과 본문의 참뜻을 온전히 이해하여 성찬례 거행에 능동적이며 효과적으로 참여하도록 마음을 써야 한다. (중략)
「로마 미사 경본 총지침」 22항. 전자책 링크. 전례문 © 한국천주교중앙협의회.
"(중략) 평신도들이 전례에 대해 왈가왈부하면 신부님들은 '미사도 못 드리는 사람들이….'하는 생각과 태도를 은연중에 보여주십니다. 평신도들은 미사를 드릴 자격은 없지만, 미사 전례에 대한 공부는 사제 이상으로도 할 수 있다는 것을 우리 신부님들은 인정하지 않습니다. (중략)"
김종헌(발타살, 천주교 대구대교구 신부, 대구가톨릭음악원 원장), 「전례-전례음악 공부해서 남 줍시다」. 원문 링크.
위 글은 올바른 미사 전례 거행을 위한 공동체 내에서의 자정작용이 왜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지 아주 직설적으로 설명한다. 원문의 저자인 김종헌 신부는 사제들의 권위의식을 비판하며, 신부들도 미사 전례 공부를 열심히 한 평신도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고 말한다.

신부들이 대체로 미사 전례 규정을 잘 모르거나 때로는 잘못된 전례 규정을 신자들에게 강요한다. 그런데 한국 천주교에서는 평신도가 전례 규정을 정확히 알고 있어도 이것을 신부에게 말하기가 어렵다. 전례 규정을 평신도가 알고 있어도 주변에서는 "그래도 신부님에 더 잘 알겠지."라고 생각하기에 신부의 잘못된 미사 집전 방식이 바뀌지 못한다. 더군다나 2022년 현재 아직도 '어디 감히 평신도가 사제의 미사 전례 방식에 이의를 제기하는가.'와 같은 분위기가 한국 천주교 안에 만연해 있다.

그런데 버젓이 교구 직권자나 수도회 장상들이 있는데도 왜 지금까지는 신부들이 합당하게 미사 성제를 집전하는지 감독이 제대로 되지 않았을까? 아주 간단하다. 주교와 신부가 함께 미사를 집전하면 누가 주례하는가? 거의 대부분 주교이다. 주교는 신부들이 어떻게 미사를 집전하는지 볼 일이 없으니 신부들의 미사 집전을 제대로 감독할 수 없다.

교구 직권자들은 이러한 실태를 빨리 파악하고, 보다 합리적이고 자애로운 방식으로 합당한 미사 전례 거행 방식을 모든 이들에게 알려야 한다. 사목 현장에서 자주 틀리는 전례 거행 방식이 무엇인지 알아내고 이를 바로잡기 위한 노력을 게을리하지 않음으로써 교구 직권자로서의 의무를 다해야 한다.

3.3. 사제의 역할 1: 전례서에 나타난 규정과 지시를 읽고 숙지

"물론 사제들은 서품을 받기 전에 전례에 대해 배우기는 합니다만 미사 전례 자체에 대해 그렇게 많이 배운다고 저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미사를 드릴 수 있는 권한이 있고 드린다고 해서 전례에 도사가 된 것은 아니겠죠."
……
"우선 사제들은 『미사 경본 총지침』부터 완독, 그리고 숙독하셔야 할 겁니다."
……
"신부님들께서는『미사 경본 총지침』만큼은 읽고, 읽고, 또 읽어주셨으면 합니다. 그리고 이 지침에서 가르치는 대로 미사를 거행하시면서 신자들에게도 전례교육을 시켜주시면 좋겠습니다."
김종헌(발타살, 천주교 대구대교구 신부, 대구가톨릭음악원 원장), 「전례-전례음악 공부해서 남 줍시다」. 원문 링크.
신자들이 잘 모르는 사실 하나를 언급하자면, 의외로 사제들이 미사 전례에 관한 여러 규정을 잘 모르고 미사 성제를 집전한다. 어떻게 그게 가능한지 의문이 들 것이다. 평신도 전례 봉사자들이 자신의 본당이나 공동체에서 봉사하는 방식을 생각해보자. 직접 전례서에 나온 지침과 규정을 하나하나 읽는가? 대개 아니다. 거의 대부분의 봉사자는 봉사자로 활동을 시작할 때, 선배 봉사자가 대면으로 알려 주는 행동양식을 배울 뿐이다. 그건 사제도 마찬가지이다. 신학교 과정을 통해서 미사 집전 방법을 배운다고 하지만, 그 역시 전례서의 규정을 하나하나 보면서 공부한다기보다는 선배/교수 신부들이 대면으로 가르친 기계적인 동작과 대략적인 의미를 일단 습득했을 뿐이다.

사제들은 『로마 미사 경본』에 수록된 「미사 통상문」의 여러 지시문과 「로마 미사 경본 총지침」의 각 항들을 주의깊게 읽고 본인이 먼저 실천하고 신자들이 지켜야 할 바를 가르쳐야 한다. 사제의 본분이 무엇일까? 바로 성체 성사(미사) 집전과 전례 거행의 최종 감독이다. 그 본분을 합당하게 수행하기 위한 첫 순서는 전례서가 요구하는 바를 제대로 아는 것이다. 시작 예식, 말씀 전례, 성찬 전례, 마침 예식 문서의 하위 문단으로 있는 'OO에 참여하는 이들의 자세'를 보면, 대부분의 내용은 사제들이 지켜야 할 지침, 특히 한국 천주교에서 잘 지켜지지 않는 지침에 관한 것임을 알 수 있다. 그리고 그 내용들은 공통적으로 전례 중에 '우발적으로 발생하는 실수'가 아닌 사전에 미리 준비할 수 있는 사항들이다. 여기서 말하는 '우발적 실수'란 성가 봉사자가 노래나 연주 도중 틀리는 것처럼 짧은 시간내에 대처하기 힘든 성격의 실수들이다. 사제가 독서대가 아닌 제대에서 복음을 봉독하는 행위들은 '우발적 실수'가 아니며, 모두 규정을 숙지하기 않은 결과들이다.

3.4. 사제의 역할 2: 전례서에 나타난 규정과 지시를 '제대로' 읽고 '제대로' 숙지

이 문단의 제목은 윗 문단의 제목에 '제대로'라는 말이 추가되었다. 사실 전례 규정을 단순히 모르는 사제보다 「로마 미사 경본 총지침」이나 「미사 통상문」을 잘못 읽은 사제들이 더 위험하다.

이러한 오류에 빠지지 않기 위해서 사제는 전례 지침의 규정 하나하나의 문장구조를 통해 지침이 말하고자 하는 정확한 사실 관계를 파악해야 한다. 때로는 현재 유효한 복수의 공식 문서를 함께 보며 교차검증을 해야 한다. 이것이 온전히 되지 않으면 잘못된 방식에 확신을 가진 채 미사를 집전하는 오류를 범한다.

2022년 현재는 Youtube와 같은 매체를 통해 Vatican에서 거행되는 미사 전례를 시청할 수도 있다. 이렇듯 다양한 자료를 적극 활용함으로써 사제는 자신이 전례 규정을 제대로 읽고 이해했는지 끊임없이 연구하고 합당한 미사 성제를 집전할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한다.

3.5. 사제의 역할 3: 예식서를 변형하지 않고 그대로 사용

(중략) 그러나 사제는 자신이 거룩한 전례의 봉사자임을 마음에 새기고, 미사 거행에서 아무것도 자기 마음대로 더하거나 빼거나 바꾸지 못한다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
「로마 미사 경본 총지침」 24항. 전자책 링크. 전례문 © 한국천주교중앙협의회.

교황청 "수정된 양식 사용한 세례는 무효”, 가톨릭신문 제3207호, 5면, 2020-08-16.

세례성사에 관한 위 뉴스는 주어진 예식서를 사제가 함부로 변형하는 것이 왜 위험한지 단적으로 보여 준다. 세례성사 중 사제는 새 신자 머리에 물을 뿌리며, "나는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 )에게 세례를 줍니다."라고 말한다. 과거 다른 나라 일부 지역에서 여기 나오는 '나는'을 '우리는'으로 부제나 사제가 임의 변형하여 세례성사를 집전한 적이 있었다. 교황청에서는 이렇게 진행한 세례성사는 모두 무효라고 판정했다. 언뜻 보기엔 고작 단어 하나를 바꿨을 뿐이라고 생각할 수 있다. 그러나 예식서에 나오는 여러 기도문과 선포는 각각의 단어에 신학적 의미가 담겨 있다. 이는 세례성사뿐 아니라 다른 성사도 마찬가지이다. 그래서 이처럼 중요한 단어를 임의로 변형하여 진행된 성사는 무효가 된다. 이는 성사를 집전하는 전 세계 사제들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

작은 단어 하나라도 바로잡고자 하는 바티칸의 조치를 한국 천주교는 이미 경험한 바가 있다. 바로 '주님께서 여러분과 함께.'(Dóminus vobíscum.)에 대한 신자들의 응답 '또한 사제의 영과 함께.'이다. 이것이 예전에는 '또한 사제와 함께.'였다. 이는 영어 미사 통상문도 마찬가지였다. 그러나 막대한 비용을 지불하면서도 결국 가톨릭 교회는 'Et cum spíritu tuo.'의 'spíritu'를 살리도록 번역을 바로잡기로 결정한다. 전례문의 단어 하나하나가 주는 신학적 관점의 효과를 무시할 수 없기 때문이다.

앞 두 문단은 사제들이 전례서의 규정을 읽고 숙지해야 함을 언급한다. 사제가 전례 규정을 '단순히 몰라'도 안되지만, '잘못 안다면' 더 위험하다. 그런데 이보다 더 위험한 행위가 있으니, 바로 의도적으로 전례의 일부를 변형하는 것이다. 한국 사제들이 전례서의 일부를 임의로 변형하거나 생략, 혹은 전례서에 없는 요소를 임의로 추가하는 일이 빈번하다. 그러나 전례서의 특정 요소를 임의로 변형하는 행위는 사제 자신이 집전한 성사가 먼 훗날에라도 무효라는 판정을 받을 위험이 있다. 이른바 '커스터마이징'이라고도 불리는 이 현상의 원인은 사제가 미사 전례를 거행하면서 '여기를 이렇게 바꾸면 더 좋을텐데'라는 생각이 든 탓이다. 이는 사제가 아직 자신을 온전히 버리지 못했음을 보여준다. 순명은 자신을 버리고 교회 공식 가르침에 먼저 '예'라고 응답하고 우직하게 따름을 의미한다. 사제는 백성들을 사목하는 사목자이지만, 또한 교회의 가르침에 순명해야 하는 교회의 일원이다. 신자들이 사제 자신에게 순명하기를 바란다면, 사제도 미사 전례 거행에 관하여 교회가 규정한 바를 그대로 실천함으로써 순명의 정신을 보여야 한다.

4. 신자들이 할 일

4.1. 전례 봉사에 적극적으로 참여

신자들은 미사 거행 때 특별한 봉사나 임무를 부탁받으면 거절하지 말고 언제나 하느님 백성에게 기꺼이 봉사해야 한다.
「로마 미사 경본 총지침」 97항. 전자책 링크. 전례문 © 한국천주교중앙협의회.
나의 형제 여러분, 누가 믿음이 있다고 말하면서 실천이 없으면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그러한 믿음이 그 사람을 구원할 수 있겠습니까?
어떤 형제나 자매가 헐벗고 그날 먹을 양식조차 없는데,
여러분 가운데 누가 그들의 몸에 필요한 것은 주지 않으면서, “평안히 가서 몸을 따뜻이 녹이고 배불리 먹으시오.” 하고 말한다면,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이와 마찬가지로 믿음에 실천이 없으면 그러한 믿음은 죽은 것입니다.
야고보서 2장 14-17절. 원문 링크. 성경 © 한국천주교중앙협의회.
제목이 곧 내용이다. 후술할 것처럼, 미사 후에 프로불편러가 되는 신자들이 매우 많다. 그들은 전례 봉사자들에 대한 불만도 쏟아낸다. 그렇게 불만을 쏟을 바에는 본인이 직접 전례 봉사에 참여하면 된다. 전례 봉사에 참여할 자신이 없으면, 열심히 봉사하는 이들에 대한 고마움을 마음에 가득 담는 것이 하느님과 교회에 보일 수 있는 최소한의 예의이다.

4.2. 공복재

이 성사를 받기 위한 적절한 준비로 신자들은 자신들의 교회가 정한 공복재를 지켜야 한다. 몸가짐(행동, 복장)은 그리스도께서 우리의 손님이 되시는 그 순간에 걸맞은 존경과 정중함과 기쁨을 나타내야 한다.
『가톨릭 교회 교리서』 1387항. 원문 링크. 교회 문헌 © 한국천주교중앙협의회.
① 지성한 성찬(성체)을 영할 자는 영성체 전 적어도 한 시간 동안은 물과 약 외에는 어떤 식음도 삼가야 한다.
② 같은 날에 두 번이나 세 번 지성한 성찬을 거행하는 사제는 둘째나 셋째 거행 전에 비록 한 시간의 간격이 없더라도 조금 요기를 할 수 있다.
③ 노인들이나 병약자들뿐 아니라 그들을 간호하는 이들은 비록 한 시간 이내에 조금 먹었더라도 지성한 성찬(성체)을 영할 수 있다.
『교회법』 919조. 원문 링크. 교회 문헌 © 한국천주교중앙협의회.
따라서 미사 영성체를 거행할 것으로 예상되는 때로부터 한 시간 전부터는 공복재를 지키도록 해야 한다. 다만 미사 영성체가 어느 시점에 이루어질지 정확히 알 수 없기에, 많은 신자들은 아예 미사 시작 한 시간 전부터 공복재를 지키고 있다.

4.3. 미사 전례에 합당한 복장 착용

세계 어느 곳이든 미사 참례자에게는 단정한 복장을 요구한다. 지나치게 짧은 핫팬츠나 미니스커트, 민소매처럼 노출이 많은 옷차림은 자제해야 하며, 츄리닝처럼 지나치게 편한 옷차림도 삼가는 것이 좋다. 성 베드로 대성당을 위시한 유럽의 유서 깊은 성당들에서는 아예 입구에서 입장객들의 복장을 검사할 때도 있다.

또한 여름철에 덥다고 맨발에 슬리퍼를 신고 미사에 참례하러 가는 것도 삼가야 한다. 어린이들의 반바지 착용에 대해서는 딱히 뭐라고 하지는 않지만 독실한 가톨릭 가정에서는 어린 자녀들에게도 옷차림을 단정히 준비하도록 가르친다. 당연히 봉사자들은 한여름에도 긴 바지를 입는 것이 원칙이다.

사실 단정한 옷차림을 하고 오는 것은 가톨릭뿐 아니라 다른 종교에서도 상식이며, 때와 장소에 맞는 옷차림을 하는 것은 종교를 떠나 모든 곳에서 상식이며 개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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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4. 성당에 미리 도착하여 그날의 말씀 묵상

미사 시작 약 5~10분 전에 미리 도착하는 것이 좋다. 미사 중 봉헌금 봉헌이 있다면, 그 봉헌금도 사전에 정성스럽게 준비해야 한다.

『성경』이나 『매일미사』처럼 그날의 말씀 전례를 미리 묵상할 수 있는 도구가 있다면, 미사 시작 전 미리 그 말씀 전례를 읽어 두는 것이 미사 중 말씀 전례에 온전히 집중하는 데에 도움이 된다.

미사에 지각했는데도 영성체를 할 수 있는지, 혹은 주일&대축일 참례 의무를 충족한 것인지 궁금해하는 신자들도 있는데, 미사의 모든 부분은 중요하며 상식적으로든 교회의 가르침으로든 당연히 지각 자체를 안 하는 게 기본 자세이다. '몇 분까지 지각하면 영성체를 할 수 있으니(혹은 의무를 충족하니) 그때까지만 들어가자'는 건 매우 잘못된 자세이다.

다만 만약 지각을 했을 경우, 이미 벌어진 일이니 영성체 가능 여부와 의무 충족 여부가 현실적으로 고민될 순 있는데, 이에 관한 교회 규정은 없다. 다만 각자가 처한 상황에서 영성체를 할 마음의 준비를 하였는가를 진지하게 검토하고 결정해야 한다.


4.5. 중죄를 지었을 때의 고해성사

중죄를 자각하는 이는 먼저 고해성사를 받지 아니하고서는 미사를 거행하지도 주의 몸을 영하지도 말아야 한다. 다만 중대한 이유가 있고 고백할 기회가 없으면 그러하지 아니하다. 이런 경우에도 되도록 빨리 고백할 결심과 더불어 완전한 통회를 발할 의무가 있음을 명심하여야 한다.
『교회법』 916조. 원문 링크. 교회 문헌 © 한국천주교중앙협의회.
중죄를 지은 이는 고해성사를 통해 그 죄를 씻어야 한다. 그러지 않고 성체를 영하면 이는 '모령성체'가 되기에 또 하나의 중죄를 짓는다. 한국 천주교 대부분 성당에서 미사 시작 약 20분 전부터 고해성사가 있으므로 이를 잘 활용하면 좋다.

4.6. 휴대전화 꺼놓기

미사 때 휴대폰 전원을 완전히 끄도록 하자. 휴대전화 사용이 미사 도중 일으키는 문제는 크게 다음과 같다. 첫째는 휴대전화 벨이 미사 도중 울리는 것이고, 둘째는 사진이나 동영상을 찍기 위하여 휴대전화를 미사 도중 사용하는 것이며, 셋째는 아예 대놓고 미사 도중 카카오톡이나 문자 메시지를 사용하는 것이다.

먼저 첫째 문제점을 살펴보자. 더 설명할 것도 없이 중요한 준비 사항이지만, 한국에서 휴대전화 사용이 활성화된지 20년이 넘어가는 2022년 현재에도 여전히 이 사항이 지켜지지 않는다. 미사 도중 울리는 휴대전화 소리는 21세기에 거룩한 전례 분위기를 해치는 주된 원인이다. 이건 신앙을 떠나서 사람과 사람 사이의 예의범절이다. 가톨릭 신자가 타 종교 시설에서 진행되는 그 종교 예식에 참석할 때도 휴대전화는 완전히 꺼놓아야 한다.

둘째, 특별한 때, 예를 들어 큰 대축일이나 주교 집전 미사, 혹은 성가대가 노래를 잘 한다는 이유로 휴대전화로 사진이나 동영상을 찍는 일이 빈번하다. 이에 대해 교황 프란치스코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미사 중에 사제는 '사진 찍으러 휴대폰을 드높이'라고 말하지 않습니다!"
교황 프란치스코.#[6]

셋째, 아예 대놓고 미사 도중 휴대폰으로 메시지를 사용하는 사례들이 2010년대부터 미사 도중 자주 관찰된다. 미사를 이루는 양대산맥은 말씀 전례와 성찬 전례이다. 말씀 전례를 통해서 하느님의 말씀을 듣고, 성찬 전례를 통하여 예수 그리스도의 현존을 체험해야 한다. 이 관점에서 본다면, 휴대폰으로 메시지를 사용하느라 미사에 집중하지 못한 이는 그 미사에 온전히 참례하지 못한 것이나 다름없다.

미사 시작 전에 휴대전화를 완전히 끄지 않게 만드는 부수적인 요인 중 하나는 휴대전화로 검색할 수 있는 『매일미사』나 『가톨릭 성가』 자료들이다. 특히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19 때문에 많은 성당에서 그간 성전에 비치하던 『가톨릭 성가』를 없앴기에 휴대전화 사용이 더 잦아졌다. 별도의 책 없이 성당에 온 이들은 성전 비치용 『가톨릭 성가』가 없으면 미사 때 노래에 온전히 참여하기가 어려워지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러한 현실이 휴대전화 사용을 정당화해주지는 않는다. 노래를 부르고 싶으면 본인의 성가집을 성당에 들고 가면 된다. 또 사제의 여러 기도와 말씀 전례 때의 말씀은 기본적으로 듣는 것이므로 『매일미사』가 없어도 미사 참례에 지장이 생기지 않는다.

휴대전화를 진동이나 무음모드로 한다고 이 문제가 완전히 해결되지 않는다. 전원을 완전히 꺼야 정답이다.

4.7. 쓸데없이 불편함을 느끼는지 늘 성찰하기

언제나 기뻐하십시오.
끊임없이 기도하십시오.
모든 일에 감사하십시오. 이것이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서 살아가는 여러분에게 바라시는 하느님의 뜻입니다.
테살로니카 1서 5장 16-18절. 원문 링크. 성경 © 한국천주교중앙협의회.
프로불편러는 교회 안에도, 특히 미사 전례 안에도 있다. 그들은 그냥 넘어가도 될 자잘한 요소 때문에 불편을 느낀다. 독서자의 독서 봉독 속도가 빠르다는/느리다는 이유, 성가대가 노래를 못한다는 이유, 오르간 스탑이 자기 취향이 아니라는 이유 등으로 불편을 느낀다. 심지어 성가대가 노래를 '너무 잘 한다는' 이유로 투덜대는 이도 있다. 그들은 그것을 '분심'이라고 표현하지만, 그건 사실 그냥 성숙하지 않은 태도요 매사에 투덜대는 습관일 뿐이다.

이 세상에 100% 자기 마음에 드는 미사 전례가 어디 있을까? 지상의 나그네인 교회[7]는 완전함을 향해 가고 있을 뿐이지, 지금 당장 완전하지 않다. 자신이 참례한 미사 전례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면, 자신이 직접 전례 봉사를 하는 것이 그나마 성숙한 신앙인의 모습이다.

4.8. 풍성한 물적 봉헌

① 종신으로나 기한부로나 교회의 특별한 봉사에 헌신된 평신도들은 그 임무를 합당하게 수행하기 위하여 요구되는 적합한 양성을 받고 또한 이 임무를 의식적이고 열성적이며 성실하게 완수할 의무가 있다.

② 제230조 제1항의 규정은 보존되지만, 그들은 국법의 규정도 지키면서 본인들과 가족들의 필요를 적당하게 조달할 수 있도록 자기들의 조건에 맞는 상당한 보수를 받을 권리를 가진다. 또 그들에게는 그들의 보험과 사회 보장과 의료 보험도 합당하게 지급받을 권리도 있다.
『교회법』 231조. 원문 링크. 교회 문헌 © 한국천주교중앙협의회.
봉헌금과 같은 물적 봉헌 이야기를 하면 불편함을 느낄 신자들이 있을 것이다. 그러나 가톨릭 교회도 결국 이 세상에 있다. 성당을 짓기 위해서는 건축비가 필요하고, 성직자, 수도자, 그리고 상근/비상근 봉사자들은 생활비가 있어야 활동할 수 있다.

미사 전례를 포함한 교회의 여러 활동도 마찬가지이다. 가톨릭 교회는 결국 평신도를 필요로 한다. 특히 전례를 풍성히 하는 성음악은 특별히 교육받은 평신도 봉사자의 기여가 중요하며, 이를 위해서는 유급 봉사자를 활용해야 한다.

성음악에 필요한 악기와 음향설비 구축에도 돈이 든다. 주어진 물적 자산을 분배하여 성음악 인프라를 구축하는 최고 책임자는 성직자이지만, 이것이 원활히 되기 위해서는 결국 그만한 재원을 확보해야 한다.

결국 신자들의 물적 봉헌이 풍성해야 이와 같은 운영이 가능하다.



[1] 「로마 미사 경본 총지침」 28항.[2] 『로마 미사 경본』 298면, 주님 수난 성지 주일 8항.[3] 『가톨릭 교회 교리서』 1348항.[4] 「한국 천주교 성음악 지침」 46항.[5] 「로마 미사 경본 총지침」 39항 참고.[6] [QR로 듣는 교황님 말씀]미사는 '쇼'가 아닙니다!, 가톨릭신문, 제3074호, 13면, 2017-12-17.[7] 「미사 통상문」 113항, 감사 기도 제3양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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