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04-09 23:39:52

별들의 무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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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1. 개요2. 상세3. 이유4. 사단장 생존사례5. 여담6. 관련 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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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22사단은 ‘별들의 무덤’으로 불릴 정도로 바람 잘 날이 없었던 부대입니다. 지난 10여 년간 임기를 제대로 채우지 못한 사단장이 그렇지 않은 사단장보다 많다고 할 정도지요.
유용원의 밀리터리 시크릿 ‘별들의 무덤’ 22사단 경계문제를 어찌할꼬?
제22보병사단을 지칭하는 은어로 시작되었으며, 사건 사고가 자주 발생하여 지휘관들이 보직해임을 당하는 경우가 많은 군부대를 뜻한다.

여기서 별은 직위를 의미한다.

2. 상세

제22보병사단은 역대 사단장 중 보직해임을 당해 진급이 물건너간 경우가 유독 많기로 유명하다. 이러면 비주류 장군을 보내는 한직, 유배지로 쓰일 만도 한데 오히려 제22보병사단은 제1보병사단과 함께 첫 육군사관학교 출신 사단장이 부임한 이래 역대 사단장이 전원 육군사관학교 출신이다.[1] 어려운 직책으로 소문이 나서인지 제22보병사단장에 부임하는 것은 육군사관학교 출신 중에서도 작전통 선두주자가 대부분이며[2], 그렇기에 이 자리를 사건사고 없이 무탈하게 마치면 차후 중장, 대장 진급도 충분히 바라볼 수 있게 된다. 다만 애초에 중장 진급 가능성이 높은 엘리트가 부임하는 터라 결격사유 없이 사단장을 마친 장군들이 자주 진급하는 거지, 제22보병사단장 생존자를 특별히 우대하는 건 아니다.

어떻게 보면 장성급 장교를 낭비하는 짓같아 보이긴 한데, 그렇다고 여기 전선 자체가 엄청나게 중요한 전선이라서 포기할 수도 없는 노릇이니[3] 결국 엘리트 장성급 장교를 사단장으로 배치하지만 그 사단장이 계속되는 사건 사고로 인해 보직해임을 계속 당하다 보면 어느새 장성급 장교를 낭비하는 곳이 되어 있는 상황이다.

강릉 무장공비 침투사건 당시 제22보병사단에서 현역병으로 복무했던 펜더 딴지일보 기자의 말에 의하면
이등병 한 명이 다 죽여버리겠다면서 내무반에 수류탄을 까서 던졌는데 닭털 침낭으로 방어해 다들 살아남은 그 대대와 같은 연대(여단) 옆 대대에서 내가 복무했었고, 중사 한 명이 소대원 17명에게 성범죄를 저질러 구속되기도 하고, 합동참모의장제22보병사단에 직접 찾아와서[4] 사단장 면전에다 대고 구타금지 특별지시를 내렸는데 그 다음날 사단 전차대대에서 구타 사망사고가 일어났다. 머리끝까지 빡친 합동참모의장이 전차대대를 해체하라고 아주 길길이 날뛰었다. 하도 사건 사고가 많아서 내가 이 사단에 전입와서 가장 많이 한 것 중에 하나가 사단장 이 취임식때 분열을 한 것이다.#

이런 환경에 놓인 부대였다고 한다. 이처럼 희한하게 사건 사고가 많아 그 사건 사고로 인해 지휘관이 보직해임을 밥먹듯 당한다고 해서 별들의 무덤이라 일컬어졌다.

2.1. 제22보병사단

||||||||<bgcolor=#004098><color=#fff> 파일:제22보병사단 부대마크.svg
역대 사단장 타임라인 ||||||||
대수 성명 최종 계급 징계 / 사유
18대 황규식 중장
19대 류선준 소장 문책 / 포탄폭발
20대 박장규 소장
21대 이성출 대장
22대 임치규 소장 문책 / 월북
23대 조정환 대장
24대 이양구 소장 보직해임 / 월북
25대 조보근 중장
26대 조성직 소장 보직해임 / 노크귀순
27대 서상국 소장 보직해임 / 총기난사
28대 최병혁 대장
29대 김정수 중장
30대 권영호 중장
31대 표창수 소장 보직해임 / 철책 훼손 귀순 + 오리발 귀순
32대 정형균 소장 보직해임 / 2차 가해 의혹[무혐의]
33대 여운태 중장
34대 이승오 소장 주의 / 월북
35대 윤봉희 소장
36대 안찬명 소장


다른 일반적인 사단보다 사단장 임기를 무사히 넘기는 비율이 많이 낮음을 알 수 있다.

징계 사례

3. 이유

DMZ 안방처럼 넘나든 월북자… 22사단이 ‘별들의 무덤’ 된 진짜 이유
상기 사단장들이 징계받은 사유를 보면 경계근무에서의 실패가 최다임을 알 수 있으며, 이것이 반복된다면 그 문제를 사단장 개인의 능력 미달을 원인으로 보기보다는 사단의 경계 구역 자체에 문제가 있다는 구조적 문제로 바라보는 시각이 필요하다. 기실 제22보병사단은 다른 어느 전방 사단보다도 넓은 경계구역을 혼자 떠맡고 있는 것이다.

제22보병사단은 전 군에서 유일하게 비무장지대(DMZ) 감시소초(GP)와 일반전초(GOP) 등 전방경계와 해안경계를 동시에 맡고 있는 사단이다. 책임구역을 보면 전방 육상 30㎞, 해안 70㎞ 등 총 100㎞에 달하는데, 이는 다른 전방 사단의 책임구역 25∼40㎞에 비하면 3~4배 수준이다.

따라서 다른 전방사단은 3개 여단 중 2개 여단을 경계에 투입하고, 1개 여단을 예비로 운영하지만, 제22보병사단은 예비여단 없이 3개 여단 모두를 그 넓은 섹터에 투입하고 있다. 또한 국방개혁 2.0에 따라 인근 삼척 지역의 (구)제23보병사단이 2021년에 해체되면 제22보병사단의 책임구역은 더욱 늘어나게 된다. 사단이 있었던 2021년 기준 (구)제23보병사단도 길이 100km 이상의 긴 동해안 해안경계 임무를 맡고 있는데, 전부 제22보병사단에게 떠맡기지는 않겠지만 담당 구역이 매우 늘어날 것임은 확실하다.

이처럼 다른 사단과 다를 바 없는 규모로 너무나 넓은 구역을 경계하다보니 경계에 소홀한 부분이 생길 수밖에 없고, 장병들도 가혹한 업무에 시달리면서도 제대로 된 보상은 커녕 끊이지 않는 사고로 좋은 소리를 듣지 못하니 몸과 마음이 피폐해져 간다. 당장 예비 여단도 없이[15] 모두가 근무에 투입되는 환경부터가 정상이 아니며, 훈련처럼 비교적 짧은 시간만 견뎌내는 것이라면 참겠지만 이걸 군 생활 내내 시달려야하니 사기도 형편없이 떨어진다. 거기에 내가 잘하면 내가 상을 받는 게 아니라[16][17] 내가 잘해봤자 내가 모시고 있는 지휘관이 진급하는 대한민국 국군의 비정상적인 상훈 구조로 인해 안 그래도 병사들의 의욕이 떨어지는데 저렇게 쉬지도 못하고 전선에 투입되는 환경에, 병역의무 기간 전체를 통짜로 근무하는 미쳐 돌아가는 환경[18]이 시너지 효과를 일으키는 이런 상황이다보니 지휘관을 아무리 교체해봐야 인원 부족이라는 근본적인 문제를 해결할 수 없으니 사고는 계속해서 일어나고, 또 지휘관이 교체되는 악순환이 일어나는 것이다. 근본적인 해결책은 병력, 부대 증원을 통한 사기 증진과 휴식 보장이다. 후방 지역방위사단처럼 1개 사단에 3개보다 많은 여단 그리고 여단 내 3개보다 많은 대대를 배치하는 것도 검토해볼 필요가 있다. 문제는 안 그래도 징집가능 인원은 점점 빠른 속도로 줄어들고 있는데 북한군 침공가능성이 적은 동부전선 산악지대에 추가병력을 배치해줄 가능성은 희박하다.

오히려 제22보병사단 옆에서 같은 지역을 방어하던 (구)제23보병사단은 해체되어 제23경비여단으로 개편되었고, (구)제23보병사단의 경계 구역 역시 제22보병사단이 추가로 떠맡았다. 제8군단조차 해체되고 22사단은 제3군단으로 배속되었다. 자꾸 동부전선에 병력을 줄이는 이유는 이쪽은 대한민국 국군이나 북한군 모두 주요 길목으로 보지 않기 때문이다. 양측 모두 서부전선을 침투 가능성이 가장 높은 주요 경로로 보고 있기에 그 방면에 병력을 집중하며 중부전선 역시 나름 병력이 밀집되어 있으나 병력을 줄이는 추세고, 동부전선은 군 병력 감축의 직격타를 얻어맞고 있다. 예로부터 (구)제1야전군사령부보다 (구)제3야전군사령부가 요직이고, 제1군단제5군단제8군단보다 요직인 이유가 있던 셈.

동부전선은 산악지역인 데다 그중에서도 전술적 기동로와 보급로가 확보되지 않은 제22보병사단 경계지역은 주 공격선 또는 주 방어선으로 쓰기 부적합하다. 보급해줄 도로도, 철도도 없는 상황에서 대한민국 기준으로 중학생 체격인 인민군 병사들이 보급품을 지고 산을 넘어온다면 전투를 하기도 전에 지쳐 쓰러질 것이고, 이미 사단급 병력에 대한 보급을 우마차를 통해 해결한다는 건 임팔 전투에서, 항공기를 통해 해결한다는 건 스탈린그라드 전투에서 각각 불가능함이 입증되었다. 빨치산 전술은 이미 6.25 전쟁 당시 지역주민들을 전원 소개시키고 보급을 끊어 말려죽인다는 대응방법이 확립된 상황이다. 게다가 남한이나 북한이나 각자의 최상위 도시인 서울평양이 둘 다 서부전선에 해당된다. 따라서 제2차 한국전쟁 발발시 동부전선은 수도를 점령하면 승기를 잡는 전쟁의 특성 상 집중타격의 이유가 없어서 기존에 배치된 상비사단으로 지연전을 펼치는 것만으로 충분하고, 서부전선과 동해안 축선에 제7기동군단을 필두로 해서 기동병력을 전개하여 평양, 원산, 개성, 함흥 등의 전략적 거점을 해병대와 함께 빠른 시일 내에 확보하는 것이 대한민국 국군 육군의 기본전략이다. 한마디로 제2차 한국전쟁이 발발하면 제22보병사단이 따이기 전에 최대한 빨리 평양을 함락시키는 것이 대한민국 국군의 작계인 것이다. 병력감편 중인 상황에서 동부전선에 병력을 추가적으로 배치할 여유가 없는 것.

이는 제22보병사단과 함께 별들의 무덤이라 불리는 해병대 제2사단도 마찬가지이며, 해병대 제2사단 역시 사단 인원으로 감당되지 않는 어마어마한 책임구역을 맡고 있다.

4. 사단장 생존사례

  • 조정환 전 육군참모총장 (육사 33기)
  • 최병혁 전 한미연합군사령부 부사령관 (육사 41기) [19]
  • 김정수 전 육군사관학교장 (육사 43기)
  • 권영호 육군사관학교장 (육사 45기)
  • 여운태 전 육군참모차장 (육사 45기)
  • 윤봉희 현 국방부 정책기획관 (육사 50기)

5. 여담

6. 관련 문서


[1] 수도기계화보병사단장도 이에 해당했으나 수도기계화보병사단은 2021년 12월 최초의 비육사 출신 최장식(학군 30기) 사단장이 부임하며 공식이 깨졌다.[2] 전방 부대 중에서도 가장 무리한 경계근무를 강요받는 현실상, 후방 지역방위사단처럼 인사직능, 군수직능, 동원직능, 교훈직능 장군이나 여군 장군은 절대 못 보낸다. 작전 전문가로 정평이 난 엘리트를 보내야 그나마 땜빵이 되는 수준이다. 총기난사 사건으로 보직해임 당한 서상국 소장이 그러했고, 2022년 부임 보름만에 월북 사고가 터진 이승오 소장도 경력을 보면 알겠지만 육사 동기 중 최고 로열로드를 타던 중이었다. 이외 최병혁, 김정수도 그렇다. 폭발 사고가 터진 류선준 소장은 숫제 김장수의 라이벌이라 불리던 장군이다.[3] 애초에 불필요한 사단의 사단장은 준장이나 심하면 대령을 갖다 앉히기도 한다. 제27보병사단의 경우 역시 부대를 해체하기 위해서 일부러 민인기 준장을 사단장으로 보직시켰다.[4] 서신이나 전화상이 아니라 직접 찾아온 것은 그만큼 지시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행동이다.[무혐의] 무보직 상태로 조사 후, 무혐의로 현직 복귀했고 육군과학화전투훈련단장을 거쳐 지상작전사령부 작전참모부장으로 재임중[6] 원인은 달랐지만 전인범 장군이 제13공수특전여단 훈련사망사고로 인해 더 이상의 진급하지 못 하고 예편한 것 처럼 류선준 장군도 이 사고로 인해 더 이상 진급하지 못하고 예편했다. 대한민국 국군지휘관에게 있어서 전투 상황이 아닌데도 부하가 사망하는 사고가 발생하면 진급은 완전히 막힌다.[7] 당시 57세(1948년 생) 였던 황홍련 선장이 술에 만취한 채 자신의 어선인 황만호를 음주항해한 상태로 월북했다. 술에 취해서 북한에 도착한 황홍련을 발견한 북한 사람들이 하루에 술 1병씩 꼬박꼬박 황홍련에게 갖다 바쳤으며 얼마 후 우여곡절 끝에 황홍련 선장이 다시 대한민국으로 귀국했다. 임치규 장군의 입장에서 보면 황홍련 선장을 찢어 죽여도 분노가 안 풀릴 것이다.[8] 제22보병사단에서 병으로 복무한 강동림 예비역 병장이 볼트 커터로 철책을 절단하고 월북했다#.[9] 여기에 참여정부 사람이라며 더 이상 등용하지 않았다고 하며, 결국 2012년 10월에 예편하였다. 김종대 군사평론가의 저서 서해전쟁과 위기의 장군들에 나와있다. 다만 전 정부 사람인 건 그렇다 쳐도 결국 대형 사건으로 인해 진급이 안 된거다.[10] 그 후 국군사이버사령부 사령관을 역임하고 더 이상의 진급은 못한 채 2015년 12월에 전역하였다.[11] 그 후 육군훈련소장으로 자리를 옮겼다가 2016년 12월 육군교육사령부로 자리를 옮긴 후 전역하였다.[12] 무보직 상태로 있다가 제2신속대응사단장으로 임명됐다. 이후 2023년 11월 진급이 완전히 막힌 보직 중 하나인 육군보병학교장으로 좌천했다.[무혐의] [14] 보직해임 가능성이 높았지만, 취임 보름 만에 터진 사건이라 주의 처분만 받고 끝났다. 직속상관 8군단장이자 전임 사단장인 여운태도 주의보다 높은 경고 처분만 받고 끝났다. 취임 보름만에 터진 일이라 사실상 면죄부를 얻었고 그 대신 지휘해온 기간이 길고 지휘체계상 보다 직접적인 지휘책임을 가진 영관급 장교들이 책임을 졌다. 그리고 본인은 일단 합동참모본부 작전부장으로 영전에 성공했다. #[15] 물론 제1보병사단도 예하 여단 모두 경계에 투입되지만 제1보병사단 아래 예비사단인 제9보병사단이 있으며 담당하는 섹터도 제22보병사단에 비해 압도적으로 작다.[16] 병사로서 받는 최상위의 포상 중 하나라는 게 고작 9박 10일 휴가다. 즉, 아무것도 안 하게 냅두는 걸 상이랍시고 주는 것이다.[17] 미군의 경우, 대한민국 국군과는 정반대로 내가 잘하면 내가 명예훈장을 수훈한다. 실제로도 미군에서 명예훈장 수훈자는 장교보다 사병이 월등히 많다.[18] 여기서 군복무한 딴지일보 기자 펜더 역시 "군복무기간 내내 휴가라곤 딱 4번 밖에 못 나갔고 그나마도 며칠 되지도 않았다"라고 했다.[19] 제22보병사단장 시절 2015년 9월에 공릉동 살인사건으로 장○○ 상병이 피살되어서 보직해임될 위기까지 갔으나 별들의 무덤 저주를 피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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