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10-09 14:46:32

부여고(불사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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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제국 후작
부여고 | 扶餘固
작위 불사후(弗斯侯)
직위 광무장군(廣武將軍)
➝ 건위장군(建威將軍)
성씨 부여(扶餘)
고(固)
생몰연도 미상
1. 개요2. 생애3. 여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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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광무장군(廣武將軍) 여고(餘固)는 정치에 공로가 있고 국정(國政)을 빛내고 드날렸으므로 이제 가행건위장군(假行建威將軍) 불사후(弗斯侯)라 하였습니다.
廣武將軍餘固, 忠効時務, 光宣國政, 今假行建威將軍·弗斯侯.
남제서》 〈동남이 열전〉 - 백제

백제왕족이자 후작.

국내 기록에는 등장하지 않고, 《남제서》에서 동성왕이 올린 표문에서 등장한다.

2. 생애

부여고는 동성왕 시기에 광무장군으로 활동했고 공적을 세워 490년 동성왕의 요청에 의하여 남제로부터 건위장군(建威將軍) 불사후(弗斯侯)의 관작을 제수받았다. 표문에 의하면 부여고는 '정치에 공로가 있고 국정을 빛내고 드날렸다' 고 한다.

3. 여담

  • 불사후 작위는 472년 개로왕의 사위인 부여례가 가지고 있던 작위였다. 이후 490년에 동성왕이 부여고를 불사후에 임명한 점을 보면 부여례는 490년 이전에 물러났거나 사망한 것으로 추정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