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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제국 제후왕 부여고 | 扶餘古 | |
<colbgcolor=#4eae47><colcolor=#fbe673> 출생 (음력) | 미상 |
백제 | |
사망 (음력) | 미상 (향년 불명) |
백제 | |
작위 | 팔중후(八中侯) ➝ 아착왕(阿錯王) |
직위 | 건위장군(建威將軍) ➝ 영삭장군(寧朔將軍) |
성씨 | 부여(扶餘) |
휘 | 고(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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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웅진 천도 이후 영산강 유역의 세력을 흡수하는 데 공을 세운 백제의 왕족•장군.2. 생애
동성왕 시기 건위장군 팔중후(建威將軍八中侯)에 봉해진 뒤 지금의 전라남도 나주 지역의 담로장으로 재임하였다. 재임 중 왕권 강화에 기여한 공을 인정받아 490년 동성왕의 요청에 의하여 남제로부터 영삭장군 아착왕(寧朔將軍阿錯王)에 책봉되었다.그의 승진과 책봉의 명분을 “약관(20살)에 왕을 잘 보좌하여 충효가 일찍부터 뛰어났다.” 에 두고 있지만, 실제로는 웅진 천도 후 왕권의 동요를 틈타 이탈한 영산강 유역의 세력을 흡수하는 데 발휘한 역량을 인정받은 것이다.
3. 여담
- 부여고의 기록은 국내 기록에는 없고 중국 남조 측 기록인 《남제서》에서 등장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