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1-10-01 09:55:38

부여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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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owcolor=#fbe673> 제후왕 및 후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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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2대 국왕 대방군왕 대방군왕
풍왕 부여융 부여경
문헌 상 언급
음태귀수왕 덕좌왕 호왕 진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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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제국 제후왕
작위 <colbgcolor=white,#191919> 매로왕(邁盧王)
직위 건위장군(建威將軍) > 용양장군(龍驤將軍)
성씨 부여(扶餘)
력(歷)
생몰연도 미상[1]

1. 개요

백제의 제후왕. 국내 기록은 없고 남제서 동남이열전 백제 편에서 이름과 관작이 언급된다.

2. 생애

490년 용양장군 매로왕 공작을 받기 이전의 관직은 건위장군(建威將軍)이었다. 표문에 의하면 '(부여력은) 천성이 충성되고 정성스러워 문무(文武)가 함께 두드러졌다'고 하며[원문] 용양장군 매로왕의 관작을 제수받았다.

저근, 부여고(불사후), 부여고(아착왕), 부여력 4인은 남제에 사신으로 파견되었는데, 동상왕은 표문을 보내 그를 비롯한 4명의 귀족에게 자신이 임시(가행: 假行)로 관작을 내려주었음을 알리고는 남제의 황제가 정식으로 관작을 제수할 것을 요청하였고, 남제에서는 그 요구를 수용했다.
[1] 490년 부여고(扶餘固)가 불사후로 임명된 점을 보면, 늦어도 490년 이전에 사망했을 것으로 추정된다.[원문] 建威將軍餘歷, 忠款有素, 文武列顯, 今假行龍驤將軍·邁盧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