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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척시/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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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삼한 및 삼국시대2. 고려시대3. 조선시대4. 일제강점기5. 대한민국
5.1. 1940년대5.2. 1960년대~1970년대5.3. 1980년대5.4. 1990년대

1. 삼한 및 삼국시대

원삼국시대에는 실직국이란 작은 나라가 있었고 북쪽 강릉시동예나 남쪽 울진군 파조국이나 경주 음즙벌국, 신라 등과 열심히 투닥거리다가 105년 신라 파사 이사금의 침공을 받아 합병당했다. 이때를 기준으로 삼척은 강원도 자체에서 유일무이한 신라의 최북단 영역에 속했다.[1]

468년 2월에는 장수왕의 공격으로 잠시 고구려 세력권에 들기도 했다가, 신라와 고구려 사이의 전쟁 기록이 사라지는 지증왕 시절에는 505년 이후 다시 신라의 북쪽 영역으로 등장한다. 이 시기의 명칭은 실직주(悉直州)인데, 우산국 정복으로 유명한 이사부가 실직의 초대 군주(軍主)이기도 했다. 524년 1월 15일에 건립된 울진 봉평리 신라비에서는 실지(悉支)라는 명칭으로 기록되었으며, 당시 군주는 탁부의 이부지(尒夫智) 나마였다. 이후 561년 건립된 〈창녕 진흥왕 척경비〉에서도 '실지'로 언급되는데, 비문에서는 우추(于抽)[2] 및 하서아(河西阿)[3]와 함께 하나의 군(郡)을 이루었던 것으로 나타난다.

이후 통일신라 때에는 9주 5소경 중 명주에 속했고, 경덕왕 때인 757년 지금까지 사용하는 이름인 삼척군으로 바꾸었다.

삼국사기 〈지리지〉에 따르면 실직을 '사직(史直)'이라고도 했다. 지금도 오분동 옆에 사직동이라는 이름으로 남아있다. '실직→사직→삼척'의 음운 변화를 통해 실직의 옛 이름이 전해 내려오고 있는 것이다.

2. 고려시대

고려 성종 때 척주가 되었으며, 현종 때 삼척현이 되었다.

3. 조선시대

파일:삼척_1895년(9).png[4]
조선 태조 때 삼척부로 승격되었다. 태종 때 삼척도호부가 되었다. 1895년 23부제가 시행됨과 동시에 삼척군이 되었다.

4. 일제강점기

1911년 7월 10일, 삼척초등학교가 개교하였다.

파일:삼척_1914년(7).png[5]
1914년 부군면 통폐합으로 인해 산하 몇개의 면이 통합되었으며, 1938년 삼척면이 삼척읍으로 승격했다.

5. 대한민국

5.1. 1940년대

1941년, 정라초등학교가 개교하였다.

1945년, 북삼면이 북평읍으로 승격하였다.

5.2. 1960년대~1970년대

  • 1961년, 상장면이 장성읍으로 승격하였다.
  • 1963년, 소달면이 도계읍으로 승격하였다.
  • 1973년, 장성읍 황지출장소가 황지읍으로 승격하였다.

5.3. 1980년대

  • 1980년, 북평읍이 명주군 묵호읍과 통합되어 동해시로 승격하였다. 같은해 원덕면이 읍으로 승격되었다.
  • 1981년, 장성읍과 황지읍이 태백시로 분할 승격되었다.
    파일:삼척시기(1986~1995).png
    삼척시 승격 당시 시기.
  • 1986년, 삼척읍이 삼척시로 승격되어 삼척군에서 분리되었으며, 원덕읍에서 가곡면이 분리되었다.
  • 1989년, 도계읍 신기출장소가 신기면으로 승격되었다.

5.4. 1990년대

파일:삼척_1994년(7).png
흰색 지역: 1. 동해시, 2. 삼척시, 3. 태백시
노란색 지역(삼척군): 1. 하장면, 2. 미로면, 3. 신기면, 4. 도계읍, 5. 노곡면, 6. 근덕면, 7. 가곡면, 8. 원덕읍
1995년 1월 지방자치제 개편을 맞아 이곳에도 도농통합 논의가 있었는데, 똑같이 삼척군에서 분리된 태백시, 동해시는 제외하고 삼척시-삼척군만 통합되어 도농복합형의 통합시가 되었다.[6], 외에 하장면 4개 리(원동리, 상사미리, 하사미리, 조탄리)가 태백시로 편입되었다.

1960년대~70년대석탄 산업의 호황기에는 인구가 20만을 넘을 정도로 인구가 많은 군이었으나[7] 이후 1989년부터 시행된 석탄산업 합리화 정책의 영향을 받으면서 석탄산업의 쇠퇴와 함께, 태백, 정선 등과 더불어 급속히 쇠퇴하였다. 그 점으로 인해 우리나라에서 가장 급속하게 발전했다가 가장 빠르게 추락한 도시라는 기록을 가지고 있다. 심지어 시임에도 불구하고 2016년 4월 주민등록인구 기준으로 홍천군(70,045명)에게 추월당했다. 이런 역사 덕분에 한 때 읍이 5개(삼척, 도계, 황지, 장성, 북평)에 이를 정도였으나 황지읍, 장성읍은 태백시로 분리되었고, 북평읍은 동해시의 일부가 되었으며, 삼척읍은 1986년 삼척시로 떨어져 나간 뒤, 1995년 도농복합시 제도로 舊 삼척군과 통합되었다가 4개 동으로 분리되었고 도계읍 하나만 남아있다.


[1] 이 설이 다수설이다.[2] 3세기 중반 진한의 소국이었던 《삼국지》의 우유국(優由國) 및 4세기 초 신라의 지명으로 기록된 《삼국사기》의 우유촌(于柚村)과 같은 지명으로, 지금의 경상북도 울진군에 비정되나 확실한 것은 아니다.[3]삼국사기》에는 하슬라(何瑟羅) 또는 하서량(河西良)으로 기록되었으며, 지금의 강원도 강릉시이다.[4] 노란색(삼척군)=(1. 도상면)(2. 견박면)(3. 도하면)(4. 하장면)(5. 미로면)(6. 말곡면)(7. 부내면)(8. 소달면)(9. 노곡면)(10. 근덕면)(11. 상장면)(12.원덕면)[5] 노란색(삼척군)=(1. 북삼면)(2. 하장면)(3. 미로면)(4. 부내면)(5. 소달면)(6. 노곡면)(7. 근덕면)(8. 상장면)(9. 원덕면)[6] 사실 동해시는 삼척 쪽 지역만 있는 게 아니라 강릉 지역인 묵호 일대도 포함하기 때문에 통합이 무리일 수도 있다. 하지만 묵호 일대를 제외한다면 통합이 가능할 수도 있었다. 태백시는 오래 전부터 시로 분리 승격되었고 삼척 시내와 너무 먼 관계로 통합 대상에서 제외된 것으로 추정된다.[7] 한때 30만에 육박하기도 하였다. 강원도의 나름 규모있는 도시인 춘천시강릉시는 인구 30만을 넘은 적이 없으며, 현재 강원도에서 인구가 제일 많다는 원주시도 2007년이 되어서야 넘은 30만의 인구를 1979년에 일개 군이 찍은 것이다. 다만 하나의 시가지에 인구가 집중된 춘천, 강릉, 원주와는 달리, 삼척은 삼척·황지·장성·북평·도계 등 여러 읍규모 시가지에 인구가 분산되어 있었으며, 따라서 단순히 인구가 많다고 삼척이 춘천, 강릉, 원주보다 '큰 도시'였다는 표현은 적절하지 않다. 물론 1979년 당시에는 태백시와 동해시(북평)가 아직 분리되지 않았을 때. 사실 지금도 태백시와 북평 일대를 합하면 인구 17만 정도로 그럭저럭 규모가 있는 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