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03-29 01:05:42

센가 코다이/선수 경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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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2. 아마추어 시절3. 후쿠오카 소프트뱅크 호크스
3.1. 2011 시즌3.2. 2012 시즌3.3. 2013 시즌3.4. 2014 시즌3.5. 2015 시즌3.6. 2016 시즌3.7. 2017 시즌3.8. 2018 시즌3.9. 2019 시즌3.10. 2020 시즌3.11. 2021 시즌3.12. 2022 시즌
4. 뉴욕 메츠5. 일본 야구 국가대표팀 경력6. 연도별 성적
6.1. NPB6.2. ML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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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뉴욕 메츠 소속 우완 투수 센가 코다이의 선수 경력을 서술한 문서.

2. 아마추어 시절

중학교 시절에는 3루수였으나 가마고리 고등학교[1] 진학 후에 투수로 포지션을 바꾸었다. 2학년 때부터 에이스로 활약하긴 했지만 고시엔 본선 무대를 밟지는 못했는데, 이 때까지만해도 최고 구속이 고작 144km/h에 불과했고 무명에 가까운 선수였다.

그런데 평소 아마추어 야구에 조예가 깊던 아이치의 어느 스포츠용품점 사장[2]후쿠오카 소프트뱅크 호크스 스카우트 오가와 카즈오에게 센가를 추천했고, 결국 2010년 육성선수 드래프트에서 소프트뱅크에 4위 지명을 받으며 프로에 입문한다.[3]

3. 후쿠오카 소프트뱅크 호크스

파일:Senga.jpg

3.1. 2011 시즌

데뷔시즌인 2011년에는 고교 시절의 무릎 통증도 있어서, 3군 경기에만 등판하며 몸을 만들었고 그 영향으로 인해 구속이 크게 증가하면서 최고 구속 152km/h의 강속구 투수로 거듭났다. 웨스턴 리그(2군) 출전은 없었고, 추계 피닉스 리그에서 계투로 첫 실전 투구를 마쳤다.

3.2. 2012 시즌

스프링캠프 때 1군에 합류했지만, 시범경기에서 히로시마를 상대로 1이닝 4피안타 3실점을 기록하고, 쿄진전에서는 왼쪽 발목을 접질러 교체되었다. 덕분에, 정규 시즌 개막은 2군에서 스타트. 웨스턴 리그(2군)에서 맹활약하며 그 해 4월 23일에 정식선수로 계약을 전환했다.

4월 30일에는 치바 롯데 마린즈를 상대로 1군 데뷔전도 치렀다. 1군에서는 2경기에 선발 등판해 1패 평균자책점 9.64로 좋지 않았으나, 웨스턴 리그에서는 평균자책점 1위, 다승 2위, 탈삼진 2위라는 굉장한 성적을 올리며 호크스의 최고 유망주 중 한 명으로 주목받게 된다.

오프 시즌에는 오른쪽 어깨 부상으로 추계 캠프나 겨울의 푸에르토리코 윈터 리그도 참가하지 못했다. 등번호는 이와사키 쇼와 맞바꾸는 형태로 21번에서 41번으로 변경.

3.3. 2013 시즌

이번에야 말로 1군 개막 로스터에 포함되는 것을 생각하면서 몸을 만들고 있었지만, 시범경기 기간에 발열로 출전이 불발되면서, 2군으로 내려갔다.

그래도, 선발에서 불펜으로 보직을 바꾸면서 데뷔 후 처음으로 1군 개막 엔트리에 포함되었다. 3월 31일 라쿠텐전에 첫 구원 등판을 기록했고, 4월 11일 오릭스전에서 프로 첫 홀드, 5월 12일 세이부전에서 프로 첫 승을 거뒀다. 4월 3일 닛폰햄전부터 무실점 행진을 이어나가면서 셋업맨으로 기용되어, 6월 21일 라쿠텐전까지 27경기 연속 무실점을 기록하였다.

6월 26일 닛폰햄전에서 처음으로 마무리 투수로 출전하여 9회말은 삼자범퇴로 막으면서 토요다 키요시(豊田清)가 가지고 있던 퍼시픽 리그 구원 투수 연속 무실점 이닝 기록(34⅓)에 타이를 이뤘지만, 연장 10회말에 1루수 나카무라 아키라의 실책으로 실점하고 무실점 이닝 행진이 끊기면서 경신도 실패하였고 동시에 패전을 기록했다. 이 경기로부터 4경기 연속 실점을 기록하면서 전반기 막판인 7월 4일에 1군에서 말소되었다.

이 해 51경기에 등판해 1승 4패 1세이브 17홀드 평균자책점 2.40이라는 호성적을 기록했고, 감독 추천으로 퍼시픽리그 올스타에도 선정되었다.

3.4. 2014 시즌

시범경기에서 6경기 6이닝 1실점 2세이브로 좋은 활약을 펼쳤지만, 롱릴리프가 급한 팀의 사정으로 개막 1군 로스터에 합류하지 못하고 2군에서 개막전을 맞이했다.

4월 4일에 1군에 콜업되어 5월 7일 첫 홀드를 기록한 이후에는 평범한 승리조로 출전하였다. 5월 23일에는 1년만의 승리를 거두는 감격스러운 일도 있었지만, 오른쪽 어깨의 통증과 위화감으로 6월 15일에 엔트리에서 말소되었다. 검사 결과는 피로. 어쨌든, 어깨 통증으로 투구는 피하는 것으로 자동으로 시즌 아웃되면서 19경기 등판에 그쳤다. 최종 성적은 19경기 1승 1패 3홀드 방어율 1.99.

3.5. 2015 시즌

다시 선발로 보직을 전환해 웨스턴 리그를 폭격했다.

8월에 1군 콜업, 4경기(3선발) 2승 1패 평균자책점 0.40의 성적을 기록했다. 이후 포스트시즌 엔트리에도 포함되어 롱릴리프 역할을 맡았는데, 2015년 일본시리즈 3차전에서 야마다 테츠토에게 투런 홈런을 맞고 패전투수가 된 것을 제외하면 좋은 모습을 보여주면서 팀의 일본시리즈 우승에 공헌했다.

3.6. 2016 시즌

풀타임 선발투수로 뛰게 되었는데, 시즌 25경기에 선발 등판해 12승(리그 3위) 3패 평균자책점 2.61(리그 3위), 탈삼진 181개(리그 2위)라는 호성적을 기록했다. 이 해에 거둔 12승은 역대 육성선수 드래프트 출신 투수로서 단일시즌 최다승 기록이다.[4]

3.7. 2017 시즌

시즌 22경기 13승(3위) 4패 평균자책점 2.64(3위), 151탈삼진을 기록했다. 시즌 후 프런트에 포스팅 시스템을 통한 메이저리그 진출을 요청했다고 한다. 하지만 소프트뱅크가 포스팅 시스템을 절대 허용하지 않는다는 방침[5][6]이어서 시원하게 거절당했다는 듯. 센가 본인은 아직 포기하진 않은 걸로 보인다. 육성 드래프트 출신 선수 최초로 일본시리즈 개막전 선발 투수 기용 기록을 세웠다.

3.8. 2018 시즌

구단으로부터 등번호를 18번으로 변경할 것을 제안받았지만, 정중하게 거절하며 41번을 고수했다. 일본프로야구에서 18번이 상징하는 것을 생각해보면[7] 구단에서 센가가 에이스임을 공인한다는 것이나 다름 없는 일이다. 이에 대해 센가는, "마쓰자카 다이스케가 달던 번호이고 18번을 달고 싶다는 생각이 강했던 것은 맞지만, '센가의 41번이니깐 (달고 싶다)'라는 생각을 들게 할 수 있도록 41번을 자신의 번호로 만들고 싶다"라고 밝혔다.

시즌 22경기 13승(3위) 7패 평균자책점 3.51 163탈삼진(2위)을 기록했다. 3시즌 연속 뛰어난 활약을 보여줬지만, 리그 최다 피홈런(21개)를 기록하기도 했다. 7월 31일 세이부와의 경기서 1경기 5피홈런이라는 굴욕적인 기록의 희생양이 되었는데 그 중 4개의 홈런이 모두 패스트볼이었다. 결정구인 포크볼이 리그에서 손꼽히는 마구임에도 아직까지 패스트볼의 구위는 구속에 비해 뛰어나지 않다는 것이 다시 한번 입증된 경기였다.

3.9. 2019 시즌

시범경기 개막전에 선발등판, 3이닝 2피안타 무사사구 무실점 호투를 펼쳤다. 특히 최고 158km/h, 평균 150km/h 대의 포심 패스트볼 스피드가 화제가 되었다. 경기 후 인터뷰에서 비 시즌 동안 근력 강화에 매진했다고 본인이 밝혔다. 이와 더불어 데뷔가 늦은 탓에 2023 시즌이 끝나고 나서야 FA가 되는지라 포스팅 시스템을 통한 메이저리그 진출을 계속 추진 중이지만 전망은 그리 밝지 않다.

홈구장 후쿠오카 야후오쿠! 돔에서 열린 시즌 개막전에 선발등판 마운드에서 던진 시즌 초구와 2구가 연달아 161km/h를 기록. 자신의 최고구속기록을 갱신하였다. 6월 10일 현재 11경기 등판하여 6승 1패를 기록 중이다. QS(11), 다승(6), 방어율(1.48), 탈삼진(105), 승률(.857) 모두 리그 선두를 달리고 있다.

이후 페이스는 다소 떨어졌지만 9월 6일 홈구장 후쿠오카 야후오크돔에서 열린 치바 롯데 마린즈전에 선발 출장해 9이닝 투구수 133구, 4사사구 12탈삼진 무실점으로 노히트 노런을 달성했다. 레이와 첫 노히트노런이자 육성선수 출신으로는 사상 첫 노히트노런 달성이었다.[8]

최종 성적은 시즌 26경기 13승(2위) 8패 평균자책점 2.79(3위) 227탈삼진(1위)으로 뛰어난 기록을 남겼다. 파리그 탈삼진왕 타이틀을 수상했다. 특히 9이닝당 탈삼진수(K/9)는 11.33개를 기록하며 종전 기록인 1998년 이시이 가즈히사의 11.047개를 뛰어넘어 NPB 단일시즌 규정이닝 투수 K/9 1위에 올랐다. 다만 볼넷도 75개를 내주며 리그 최다 볼넷을 기록한건 옥의 티.[9] 사와무라 상 수상도 점쳐졌으나 최종 후보[10]에도 들지 못했고 결과적으로 2019년 사와무라상 수상자는 나오지 않았다.

시즌 후엔 어깨를 이유로 2019 WBSC 프리미어 12 국가대표 직을 고사했다.[11]

3.10. 2020 시즌

그간 너무 무리했던 탓인지 어깨에 이어 오른쪽 종아리 통증으로 개막전 출전이 불발되었다.

개막 3주만인 7월 7일 라쿠텐과의 홈경기에서 뒤늦게 올시즌 첫 등판을 했는데 복귀 초구부터 159km를 찍는 놀라운 모습을 보였지만 경기에선 5이닝 3실점을 기록해 썩 좋지 않은 모습을 보였다.

그 뒤 2경기에서 각각 6이닝 2실점, 6⅔이닝 2실점을 기록하면서 안정을 찾다가 28일 세이부와의 경기에서 6이닝 4실점을 기록하면서 부진했고, 시즌 방어율도 4.18을 기록하며 출발이 좋지 않았다.

하지만 시즌 중반 이후 페이스가 올라왔다. 9월 30일부로 퍼시픽리그에서 100삼진을 돌파한 2번째 선수[12]가 되었고 ERA도 3.01까지 떨어뜨리며 소프트뱅크의 에이스다운 모습으로 돌아왔다. 페이스가 올라온 이후로는 그야말로 파죽지세로 달리며 야마모토 요시노부와 함께 리그 최고 투수 경쟁을 하고 있다.

시즌 최종 성적은 11승[13] 6패 평균자책점 2.16 149탈삼진[14]을 기록했고 다승/평균자책점/탈삼진 1위에 오르며 리그 트리플 크라운을 달성했다. 특히 121이닝을 소화하며 피홈런은 고작 4개에 불과한데 단축시즌으로 등판 횟수가 적었다는 것을 감안해도 굉장히 뛰어난 기록이다. 센가가 자주 지적받은 부분이 피홈런이 많다는 것이었는데 본인의 약점을 개선시켰다는 점에서 고무적인 성적으로 볼 수 있다. 다만 사와무라 상은 옆 리그 주니치 드래곤즈의 좌완 에이스이자 완투머신의 모습을 보여준 오노 유다이에 넘겨주어야 했다.

시즌 후인 26일에 연봉협상에서 1억엔 상승한 4억엔에 합의했다고 한다. 하지만, 같은 날 입단 동기인 파이터즈의 아리하라 코헤이포스팅 시스템으로 텍사스 레인저스와 계약에 합의했다는 소식이 전해지면서 기자들과 인터뷰에서 썩 기분이 좋지 않은 모습이었다고 한다. 이날 협상자리에서 1시간이 넘도록 포스팅을 허락해달라는 식의 대화를 나눴다고 하는데 결국 실패했다고 한다. 조금씩 포스팅 시스템을 허용하고 있는 요미우리랑 달리 소프트뱅크는 절대로 포스팅 시스템을 허락할 생각이 없는걸로 보인다.

3.11. 2021 시즌

4월 6일 닛폰햄전 선발 복귀전에서 타구를 맞고 발목이 꺾여 부상을 당했다. 팀은 7대 0으로 승리했다.#

진단 결과 왼쪽 발목 인대 손상 진단을 받았다. 6월 29일에 3군 경기에 등판해 최종 점검을 마쳤다. 7월 6일 롯데전에 선발 등판하면서 복귀했지만 2⅔이닝 9피안타 10실점으로 크게 부진하면서 7월 9일에 1군에서 제외되었다.

올림픽 브레이크 이후에는 본인의 위력적인 공을 되찾으며 후반기 성적 9승 2패 평균자책점 1.77을 기록하였다. 시즌 막판 오릭스 버팔로즈와의 경기에서 신인 쿠레바야시 코타로를 맞혀 부상을 입게 해 당시 1위 싸움을 하고 있던 오릭스 팬들의 원성을 듣기도 했으나 마지막 2경기에서 치바 롯데를 상대로 7이닝 무실점, 6이닝 3실점으로 승리를 챙기며 간접적으로 오릭스의 시즌 우승을 돕게 되었다.

최종 성적은 시즌 13경기 10승 3패 평균자책점 2.66으로 6년 연속 10승을 달성하였다.[15] 이는 호크스 프랜차이즈로서는 88년 난카이 시절 야마우치 타카노리 이후 33년만의 기록이다. 시즌 초반 부상을 입을 때만 해도 10승을 달성하리라 생각했던 사람은 많지 않았을텐데 올림픽 금메달이 본인에게 나름의 터닝포인트가 된듯하다.

시즌 종료 후 국내 FA권리를 취득한다. 소프트뱅크 입장에서 센가는 핵심중의 핵심 선수이기 때문에 다년 계약으로 묶으려고 할 것이지만 센가는 메이저리그 진출을 염두에 두고 있을 것이기 때문에 계약에 난항이 예상된다.

12월 5일자로 원소속팀 소프트뱅크와 연봉 6억엔, 5년 계약을 조건으로 국내 FA를 행사하지 않고 다년 계약에 합의하며 팀에 남게 되었다.# 다만 옵트 아웃 조항을 계약 조건에 삽입하였기에 해외 진출의 길이 완전히 닫히지는 않았으므로 빠르면 2022시즌 종료 후 옵트 아웃을 행사해 메이저리그 진출을 모색할 수 있게 된다.

3.12. 2022 시즌

후지모토 히로시 신임 감독으로부터 개막전 선발투수로 지명되어 커리어 세 번째 개막전 투수를 맡게 되었지...만 시범경기 두 번째 선발 등판을 앞두고 신형 코로나19 밀접 접촉자 의심으로 분류되어 자가격리되었다. 다행히, 밀접 접촉자로 분류되지는 않아서 이후의 시범경기 2경기 모두 1실점으로 승리하면서 조정을 순조롭게 마쳤다.

이후, 부상없이 개막전을 맞이하여 3년만에 3번째 개막전 선발등판을 하게 되었고 7이닝 4피안타 1실점으로 잘 던졌지만 승리를 못 땄다.

메이저리그에 가지 못한 분풀이를 하듯 시즌 첫 7경기 50이닝 3승 무패 1.26의 우수한 성적을 올리고 있으나 비슷한 유형의 신인 투수 사사키 로키가 17이닝 연속 퍼펙트라는 야구 역사에 남을 뛰어난 활약을 펼치고 았기 때문에 다소 묻혔다.
5월 13일 닛폰햄전에서 패스트볼 구속 164km/h를 기록했고, 8이닝 4피안타 1실점 14탈삼진 완투패로 개인 최다 탈삼진 기록 타이와 최고 구속 기록을 경신하고도 시즌 첫 패전을 떠안았다.

5월 20일 롯데전에서 4이닝 4실점으로 강판당하고, 이튿날 21일에 오른쪽 팔꿈치가 당겨서 엔트리에서 말소되었다. 교류전이 한참인 6월 3일 주니치전에 복귀 등판을 하였지만, 6월 24일 닛폰햄전 6회에 연습 투구 중 오른쪽 팔꿈치 당김이 재발하면서 이튿날에 다시 엔트리에서 말소되었다.

7월 13일에 복귀 이후, 21일 라쿠텐전에서 8이닝 4피안타 무실점을 기록하며 좋은 모습을 보이며 시즌 4승을 수확했다. 하지만, 후반전 첫 등판인 29일 세이부전에서는 5실점을 기록하면서 기복있는 모습을 보였다. 게다가, 8월 4일에는 코로나19 확진 판정을 받고 규정에 따라 자가격리되면서 엔트리에서 또다시 말소되었다.

그래도 최종 성적은 시즌 22경기 11승(3위) 6패 평균자책점 1.94(2위) 156탈삼진(3위)으로 올해 두 자리수 승수를 기록하면서 7년 연속 10승이라는 대업을 이뤘고, 시즌 후 옵트아웃으로 메이저리그 진출을 선언했다.

현재 메이저리그에서 가장 핫한 스타일인 우완 파이어볼러인지라 여러 팀에게 관심을 받고 있으며 특히나 시카고 컵스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와 계약할 확률이 가장 높다. 예상 총액은 4년 7,500만 달러 혹은 5년 8,000만 달러.

4. 뉴욕 메츠

파일:메츠공식합성센가.jpg

2022년 12월 10일, 메츠와 5년 7,500만 달러에 계약했다. 예상보다 저렴하게 계약했는데, 언론 측에서는 센가가 돈보다는 우승을 더 원했다고 한다.[16] 등번호는 노아 신더가드가 달던 34번을 쓸 예정이다.[17]

다만 센가가 저렴하게 계약한 진짜 이유는 센가 역시 메디컬 테스트에서 문제가 발견되었기 때문이라는 추측도 있다. 다만 예상과 큰 차이가 없는 것을 보면 메츠 구단 측에서 그러려니하고 넘겼을 가능성이 높다.

4.1. 2023 시즌

파일:센가메이저데뷔.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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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2. 2024 시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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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일본 야구 국가대표팀 경력

5.1. 2017 월드 베이스볼 클래식

파일:2017 월드 베이스볼 클래식 로고.svg
2017 WBC ALL-WORLD TEAM AWAR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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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일본 야구 국가대표팀 워드마크.svg
<rowcolor=#d9bb46> 경기 선발 이닝 방어율 홀드 세이브 피안타 피홈런 실점 자책점 볼넷 탈삼진
4 1 11 0.82 1 1 0 0 7 0 1 1 1 16

2016 시즌의 활약을 바탕으로 2017 월드 베이스볼 클래식 일본 국가대표팀에 선발되었다. 선발과 불펜을 오가며 좋은 모습을 보여줬는데, 미국과의 준결승전에서도 2이닝동안 5개의 삼진을 잡아내는 강렬한 모습을 보였으나, 소속팀 동료인 마츠다 노부히로의 아쉬운 수비로 한 점을 헌납하며 결국 패전투수가 되었다. 그래도 4경기 11이닝 16탈삼진 평균자책점 0.82라는 뛰어난 성적으로 대회를 마무리하며 마커스 스트로먼, 조시 자이드와 함께 투수부문 올 WBC 팀에 선정되었다.

5.2. 2020 도쿄 올림픽

파일:일본 야구 국가대표팀 워드마크.svg
<rowcolor=#d9bb46> 경기 선발 이닝 방어율 홀드 세이브 피안타 피홈런 실점 자책점 볼넷 탈삼진
2 0 3 0.00 0 0 0 0 1 0 0 0 1 6

부상으로 올림픽 대표팀에서도 제외되었지만 재활 페이스가 빨라 마침 대표팀에서도 요미우리의 좌완 불펜 투수인 나카가와 코타가 부상으로 빠지게 되면서 대표팀 승선이 유력하다. 이후 대표팀 승선이 확정됐고 기껏 추가합류 시켰는데 폼이 아직 올라오지 않은 상태라 이나바 감독의 고민이 깊어질 것으로 보인다.

그럼에도 2020 도쿄 올림픽에서는 결승전을 포함해 2경기에 구원등판해 3이닝 6탈삼진 무실점으로 본인에 대한 불안한 시선을 불식시키며 일본 대표팀의 금메달 획득에 공헌했다.

5.3. 2023 월드 베이스볼 클래식

당초에는 2017 WBC에서 패전투수가 됐던 아쉬움을 만회하고자 출전 의지를 드러냈으나, 메이저리그 적응과 메디컬 문제로 인해 쿠리야마 히데키 대표팀 감독과의 상의 끝에 불참을 선언했다. 8강부터 센가를 지명투수로 쓰는 방안도 검토되었지만 결국 소집하기 않기로 최종 결정했다.

6. 연도별 성적

6.1. NPB

파일:NPB 로고.svg 센가 코다이의 NPB 통산 기록
<rowcolor=#ffffff> 연도 소속팀 경기수 이닝 ERA 피안타 피홈런 볼넷 사구 탈삼진 WHIP ERA+ WAR
2012 소프트뱅크 2 0 1 0 0 4⅔ 9.64 7 0 8 0 1 3.21 25 -0.5
2013 51 1 4 1 17 56⅓ 2.40 32 1 26 1 85 1.03 154 1.4
2014 19 1 1 0 3 22⅔ 1.99 17 0 5 1 28 0.97 200 0.8
2015 4 2 1 0 0 22⅓ 0.40 9 0 10 0 21 0.85 500 0.9
2016 25 12 3 0 0 169 2.61 125 16 53 6 181 1.05 145 5.4
2017 22 13 4 0 0 143 2.64 107 15 46 2 151 1.07 135 4.6
2018 22 13 7 0 0 141 3.51 116 21 58 5 163 1.23 116 3
2019 26 13 8 0 0 180⅓ 2.79 134 19 75 8 227 1.16 143 6.1
2020 18 11 6 0 0 121 2.16 90 4 57 2 149 1.21 154 5
2021 13 10 3 0 0 84⅔ 2.66 60 2 27 2 90 1.03 143 3.5
2022 22 11 6 0 0 144 1.94 103 7 49 3 156 1.16 152 4.8
NPB 통산
(11시즌)
224 87 44 1 20 1089 2.59 800 85 414 30 1252 1.11 141 35

6.2. MLB

파일:MLB 로고.svg 센가 코다이의 역대 MLB 기록
<rowcolor=#ffffff> 연도 G W L S HLD IP ERA H HR BB HBP SO WHIP ERA+ fWAR bWAR
2023 NYM 29 12 7 0 0 166⅓ 2.98 126 17 77 5 202 1.220 142 3.4 4.5
MLB 통산
(1시즌)
29 12 7 0 0 166⅓ 2.98 126 17 77 5 202 1.220 142 3.4 4.5


[1] 참고로 당시 가마고리 고등학교는 야구 명문과는 거리가 먼 학교였다. 야구부보다도 권투부가 매우 유명한 학교였다고.[2] 참고로 센가랑은 전혀 안면이 없는 사이라고 한다.[3] 이 해 드래프트에서 호크스는 육성선수 6명을 뽑았는데, 4순위로 센가, 5순위로 마키하라 타이세이, 최종 순위인 6순위에 카이 타쿠야를 뽑으며 육성 드래프트로, 그것도 최하위급 라운드에서 주전급 선수만 3명을 배출하는 희대의 스카우팅을 보여주었다. 5명을 뽑은 정식 드래프트에선 2순위 야나기타 유키가 대폭발했으니 이 한 해 드래프트만으로 에이스+중심타자+리드오프+주전 포수를 뽑는 대박을 낸 셈. 정작 정식 드래프트와 육성선수 드래프트에서 지명된 상위 픽들은 죄다 폭망해 2021년 안에 싹 다 팀내에서 정리됐다. 한술 더 떠서 정식 드래프트는 야나기타를 제외한 나머지 선수들은 그닥 두각을 나타내지 못했다. 정식 드래프트에서는 야나기타 유키를 제외하면 전부 고졸이었는데, 1순위 야마시타 아야츠구를 제외하면 1군에 거의 나타나지도 못했다.(3, 5순위는 통산 1군 기록이 0경기이다.) 그나마 오래 버틴 야마시타도 트레이드와 방출을 거치며 소프트뱅크, 라쿠텐, 주니치 3팀을 거쳐 2022년을 끝으로 30살의 나이로 은퇴하였다. 1순위에다가 포수라서 프리미엄이 붙은 것이니까 그래도 12년이나 프로생활을 한 것이지 그 야마시타의 1군 통산 성적도 144경기 통산 46안타 6홈런 타율 .189에 OPS .510이다.[4] 종전 기록은 2008년 요미우리 자이언츠의 야마구치 테츠야가 거둔 11승. 참고로 이쪽은 구원투수였다.[5] 다나카 마사히로 포스팅을 전후해, 미국의 스몰마켓 구단들을 의식한 포스팅 룰 개정으로 일본 구단이 받는 포스팅비가 2천만 달러로 제약되면서 포스팅 장사가 수지에 안 맞다고 판단하는 구단들이 많다. 특히 일본 내의 빅마켓 구단들이 불만이 많은 편.[6] 다만 요미우리와 소프트뱅크는 개정 이전에도 다른 선수들과의 형평성을 이유로 포스팅 시스템을 일체 불허했었다. 실제로 이 두 팀 출신의 메이저리그 선수들은 전부 FA 자격으로 메이저리그에 진출했다.[7] 예외적으로, 주니치의 전통적인 에이스번호는 20번이다.[8] 참고로 같이 배터리를 이룬 카이 타쿠야 역시 육성선수 출신으로 최초로 육성선수 출신 배터리로 노히트노런 달성이란 기록도 남겼다.[9] 몸에 맞는 공 8개를 포함한 사사구 83개도 리그 최다[10] 야마구치 슌아리하라 코헤이가 최종후보까지 남았다.[11] 센가뿐만 아니라 야나기타, 아키야마, 스가노 등 주요 전력이 대표팀에서 대거 이탈했다. 야나기타는 시즌 초반 도루도중 허벅지 근육 파열, 아키야마는 연습경기도중 오른발에 사구를 맞아 골절, 스가노는 시즌 초반 허리부상으로 일본시리즈에서 겨우 등판기회를 얻는등 이렇게 죄다 부상으로 줄줄히 국가대표자리를 거절했다.[12] 1번째는 야마모토 요시노부[13] 와쿠이 히데아키, 이시카와 슈타와 공동다승왕.[14] 탈삼진은 야마모토 요시노부와 NPB 전체 공동 1위[15] 7월 6일 롯데 상대로 2.2이닝 10실점을 한 참극만 없었어도 1점대 방어율이었다.[16] 이 선택은 2023년에 팀이 멸망하고 센가가 저렴한 몸값으로 외로운 에이스 노릇을 하며 제대로 헛짚은 셈이 되었다.[17] 기존 번호 41번은 메츠 초창기 전설적인 투수 톰 시버의 영구 결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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