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시대의 실패한 내란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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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 고려시대의 정변 | }}}}}}}}} |
1. 개요
1176년에 가야산을 근거지로 손청이 일으킨 반란.2. 배경
1170년부터 무신정권이 성립하면서 신분질서가 무너지고 하극상이 빈번해 사회적으로 동요가 일어났으며, 지방관들의 탐학으로 빈곤에 시달린 하층민들이 이를 타개하기 위해 전국적으로 봉기했다. 손청의 난은 이 때 일어난 봉기 중 하나였다.3. 전개
인접 지역인 공주 명학소에서 망이, 망소이 등이 군사를 일으키고 고려 조정에서 군사를 보냈지만 망이가 진압군을 격파했고, 망이가 현직 관료를 사칭한 자들이 반란을 일으키자는 편지를 보내자 망이가 편지를 밀고하는 것으로 조정에 협력해 고려 조정의 입장에서는 남쪽 지역의 난이 잠잠한 것으로 보였다.그런데 1176년 9월 9일에 예산현에서 남적이 군사를 일으켜 감무를 죽였다고 하는데, 이름에 대한 언급은 없지만 가야산에서 일으킨 손청의 세력이 움직인 것으로 보이며, 공주와 예산이 가깝다는 지리적 근접성이나 망이가 충순현이 아닌 충주에 있는 것으로 보아서는 손청은 망이, 망소이의 세력과 연락했을 가능성이 높다.
11월 1일에 병마사를 자칭했다가 1177년 2월 29일에 우도병마사의 공격으로 진압되어 손청이 붙잡혀 처형되면서 난은 평정되었다.
4. 대중매체
드라마 무인시대에서는 망이, 망소이의 난에 집중적으로 묘사되어 손청이 독자적으로 움직이는 것은 거의 나오지 않기 때문에 예산에서 군사를 일으키는 것은 나오지 않고 공주에서 민란을 일으킨 망이 세력과 연합해 조정에서 보낸 진압군을 격파하는 것이나 조정의 군사에게 진압되는 것만 나온다.조정에서 명학소를 충순현으로 승격시키고 회유하는 모양새를 취하면서 망이와의 조정과의 관계에 대한 노선 차이로 갈라서기로 하면서 화친이 아닌 전투 준비를 하기로 하는데, 망이가 조정과 교섭을 하러 간 사이에 조정이 보낸 진압군이 예산을 공격하면서 손청의 군사가 조정군에게 밀려 평정되는 것으로 나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