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차 세계 대전의 일본군 군함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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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제국 해군의 항공모함 계보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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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마토급 전함 | ||
야마토 | 무사시 | 시나노 |
시나노(信濃), Shinano |
1. 개요
[navertv(43927496)] |
[다큐] 환상의 거대항모 시나노 - 전)승무원이 말하는 야마토급 불침함의 비극 [2] |
일본 제국 해군의 정규항공모함으로 제2차 세계 대전 당시 최대의 항공모함이다. 이름의 유래는 번국 중 하나인 시나노노쿠니(信濃国)이며 야마토급 전함의 3번함을 항공모함으로 설계 변경한 것이라 수치상의 스펙은 엄청나다.
하지만 함선으로서의 수명이 너무 짧고 제대로 싸워보기는커녕 바다 멀리 나가본 적도 없었을 뿐 아니라 완공도 못한 채로 미군에게, 그것도 전함도 항공모함도 아닌 그렇다고 잠수함들의 늑대 떼 작전에 걸린 것도 아닌, 정말 우연으로 걸린 단 1척의 잠수함의 어뢰 단 4발을 맞고 격침당하고 마는 바람에 근현대 전쟁사상 가장 불운한 군함을 들자면 0순위로 지명될 정도로 불행한 배이기도 하다. 전쟁 말기의 일본군의 상황이 상황이었던만큼, 이 배가 세상에 탄생했다는 그 자체야말로 이미 격침당하는 것은 예정된 비극이자 불가피한 운명이었던 셈이다.
2. 제원
중량 | 63,000t (기준배수량), 73,000t (만재배수량) |
전장 | 266m |
전폭 | 40m |
흘수 | 10.8m |
추진력 | 150,000shp |
동력기관 | |
보일러 | 로호함본식 보일러 12기 |
터빈 | 함본식 증기터빈 4기 |
스크류 | 3엽 프로펠러 방식 스크류 4기 (직경 6m) |
속도 | 27knots |
항속거리 | 18knot로 10,000해리 (19,000km) |
승무원 | 2,400명 (정규인원) |
무장 | |
대공포 | 2연장 127mm 40구경 대공포탑 8기 (총 16문) |
대공기관포 | 3연장 25mm 대공포 37기 (총 111문) |
대공로켓 | 28연장 127mm 대공로켓 12기 (총 336문) |
장갑 | 측면장갑 205mm[3], 격납고갑판장갑 190mm, 비행갑판장갑 80mm |
함재기 | 42기(운용가능상태), 139기(최대수송상태)[4] |
함재기 운용 배치 | A7M 렛푸 18기, B7A 류세이 18기, C6N 사이운 6기, MXY-7 오카 50기[5] |
3. 함생
3.1. 전함으로서의 개발
야마토급 전함 3번함 시나노의 최초 설계안 |
항공모함 시나노는 항공모함으로 개장되기 전 야마토급 전함의 3번함으로서 여러가지 변화된 설계를 보였다.
- 장갑이 필요로 하던 방어력 이상으로 두껍다고 여겨졌기 때문에 대다수의 기존 장갑이 감소했다. 측면, 갑판, 포탑 등 대부분의 영역에서 장갑을 10~20 mm 가량 줄여서 현측 400 mm 갑판 190 mm 바벳 540 mm로 감소했다.
- 수중 방어력은 증가되어서, 기존의 야마토급에서 사용한 이중 방어체계에 25mm DS 강판을 부착하고 기관부 등 주요 부분에는 12mm DS를 더 붙여서 200kg까지 버틸 수 있던 어뢰 방어력을 300kg까지 버티게 끌어올렸다.
- 부무장인 89식 12.7cm 40 구경장 함포는 98식 10cm 65구경장 함포로 변경하려했다. 이 부포는 대공전용 고폭탄만 사용가능한 고각포지만 대공성능 면에서는 더 작은 구경임에도 12.7cm보다 오히려 탄속도 빠르고 사거리도 길며 대공 한계 고도, 연사속도 등 모든 면에서 우세했다. 이런 2연장 10cm 포가 12기, 96식 25mm 고각기총 96기의 탑재까지 하면 일본 제국 해군 기준에서는 상당한 대공능력을 보여줬을 것이라 예상된다. 그러나 10cm 고각포는 예산 부족과 제작의 난점으로 탑재가 취소되었다.세부 제원
뭔가 개선점이 미흡하다고 보일텐데 이는 성능 향상을 위한 개선이 아니라 야마토급 전함의 방어력과 항속력이 너무 과대하다는 군령부의 지시로 설계가 일부 변경된 것에 더 가깝다. 그런데 실전에서는 전혀 그렇지가 않았던데다가 개전 직전에는 건조경험과 유휴자재를 살릴 수 있는 동형함 건조가 빠른 함선 건조에 더 바람직하다는 게 문제였다. 특히 일본 제국같이 경제력, 기술력, 양산력이 미국에 비해 부족한 경우라면 당연하게도 이 점을 더 고려해야했다.
만일 군령부가 성능이 과대하다면서 일본해군의 함정설계를 담당한 함정본부의 반대를 묵살하고 설계변경을 관철시키지 않았다면 설계명 110호함 시나노는 1, 2번함의 건조경험을 살릴 수 있는 3번함이라는 특성을 살려 건조속도에 탄력이 붙어서 1942년 3월 이전에 건조를 완벽하게 끝낸 후 진수를 제대로 마쳤을 것이다.
하지만 현실은 비정했고 본 함선의 건조가 시작된 게 1940년 5월이지만 이런 식으로 일정이 지연된데다가 신규 설계로 인해 건조 공사는 3번함인데도 불구하고 수 개월의 시간을 까먹으며 지지부진했다.
3.2. 전함이 항공모함으로 변경되는 우여곡절
야마토급 전함 1번함 야마토와 항공모함 시나노의 상부 구조물 비교 |
앞서 언급된대로 기본 설계상으로는 역사상 최대를 자랑하던 야마토급 전함의 3번함이 될 예정이었다. 건조중의 임시 명칭은 제110호함. 그러나 기존 야마토급 전함에 비해 설계 변경을 한 곳이 많아서 건조 속도가 계속 느려지는 상황에서 1941년 11월에 전함을 포함한 함선 건조 계획의 재검토 결과 잠수함과 항공기를 우선적으로 생산한다는 것이 결정됨으로서 대형함의 건조가 일시적으로 중단된다.
이 때 공정률이 낮았던 야마토급 전함 4번함인 제111호함은 즉시 도크에서 해체가 결정되어 자재는 자매함이나 기타 함선에 유용하게 사용되었다. 빈 도크도 다른 함선의 수리나 건조에 유용하게 쓰게 된다.
하지만 시나노의 경우에는 태평양 전쟁 개전 시 기준으로 선체공사가 함체의 앞과 뒤는 탄약고 바닥 부분까지 완성되었고 함체 중앙부는 하갑판 부근까지 완성되었으며 전체적으로는 선체 하부의 공사가 진행중인 상황이었다. 이 때 일본 제국 해군에서는 시나노를 제111호함처럼 완전 해체해서 자재를 다른 곳에 사용하고 도크를 사용가능하게 하는 안과 일단 선체라도 물에 뜰 수 있을 때까지 완성해서 진수한 후에 도크를 운류급 항공모함같은 중(中)형 항공모함 건조 및 손상함 수리에 써야 한다는 의견이 충돌했고 후자의 의견이 채택되었다.
건함 자재를 다른 곳애 투입하는 것이 좋음에도 이렇게 된 이유는 간단했다. 상황이 좋아지면 야마토급 전함의 3번함을 다시 쉽게 얻을 수 있기 때문이었다. 실제로 1942년 3월에는 스기우라 군령부 제3과장과 카미시게 토구 군령부 1과 부원이 연합함대 사령부를 찾아가서 야마토급 전함 건조를 3번함까지 하고 나머지 여력을 항공모함 건조에 집중하는 것과 B-65 초갑순의 건조, 잠수함과 항공기의 증산등을 토론했다고 당시 연합함대 참모장이었던 우가키 마토메의 전초록(戦藻録)이라는 전중일기에 기록되어 있다.
이렇게 해서 1942년 10월까지 선체 건조를 완성해서 진수한 후 도크를 다른 곳에 쓴다는 목표하에 공사가 계속되었으며 건조 인원의 사기 저하 및 자재를 다른 손상함에 유용한다는 사태에도 불구하고 함체의 완성도는 점점 높아져서 전체 완성도는 45% 이고 선체 완성도는 70% 에 달했으며 하갑판 이하 구획은 골조 및 내부 시설물까지 상당수 설치되었으며 주갑판, 하갑판, 탄약고 부분의 상갑판은 완전설치 완료된데다가 주포용 전방 바벳구조물도 거의 완성된 상태에 도달했다. 도크 비우려고 공사한 후 진수 후에 방치한다는 함선이 갑판과 주포탑 바벳같은 것을 자재와 인원을 낭비하면서 완성할 이유가 전혀 없는데도 공사가 진행된 것이다.
그런데 일제가 자랑하던 항모 기동함대가 1942년 6월 미드웨이 해전에서 개박살당하자 일본 해군은 항모 기동함대를 빠르게 재건하기 위해 전시급조 항모계획을 발동하고 시나노가 쓰던 도크에서 운류급 항공모함 2척을 건조하기로 결정한다. 그래서 시나노가 건조되던 도크로 가보니까 선체 완성도도 높은데다가 그 크기도 커서 해체시에도 엄청난 공사 및 시간소요가 될 예정이었고 도크의 빠른 사용을 위해 폭파 해체를 할 경우 도크까지 붕괴되어 사용불가가 될 위험성이 높았다.
이리하여 그냥 야마토급 전함 3번함으로 완성시킬까도 잠시 고민했으나 구레시 공창에 있던 94식 40cm 45구경장 함포를 3연장 주포탑 구조물 그 자체로 한꺼번에 요코스카시 공창까지 운반 가능한 전용수송선인 급병함 카시노가 1942년 9월 4일에 미 해군의 가토급 잠수함 그라울러 (USS Growler, SS-215)에게 격침당하는 바람에 주포와 주포탑 운송이 어려워지게 되었다. 만일 꼭 주포를 탑재해야 한다면 46cm 3연장 주포탑을 모조리 분해해서 일반적인 전함의 주포탑 운송이 가능한 특무함 시레토코로 간신히 운반한 후 재조립하거나 시나노를 자력항해가 될 정도로 완성해서 진수한 다음에 요코스카로부터 구레까지 보내서 주포탑 탑재 공사를 진행해야 하는데 둘 다 시간소모가 크고 위험성도 높아서 실행하기가 곤란하다는 단점이 있었다.
결국 시나노는 원래 계획을 변경하여 기존 설계를 신규 설계로 변경해서 항공모함으로 개조하기로 한다. 건조 완성 예정은 1944년 12월 말을 목표로 했다. 개조 재료는 원래 시나노가 있던 도크에서 건조할 운류급 항공모함 2척에 쓰일 것들을 유용하기로 결정되었으며, 그 결과 5002호와 5005호가 건조 중지되었다.
3.3. 건조과정에서의 각종 잡음
항공모함으로 개조가 결정된 후에도 바람 잘 날이 없었다. 당장 1943년 7월 구축함과 잠수함 및 전시수송선 건조에 집중한다는 방침으로 인해 다시 건조가 취소되었다가 필리핀 해 해전에서 일본이 대패함으로서 악화되어 가는 전황으로 인해 다시 건조가 속행되면서 작업을 서둘렀다.일단 완성되지도 않았는데 1944년 7월 1일에 군함 시나노라고 명명되며 항공모함으로 등록된다. 동시에 1944년 10월 15일까지 준공시키라는 말도 안되는 명령이 떨어진다. 여기에 더해서 1회 전투에 참가할 때 필요한 설비만 우선 완성시키고 전투에 참여한 다음에 귀환에 성공하면 나머지 공사를 진행한다는 방침까지 정해졌다.
당시 군령부가 요코스카 해공 공창장에게 명령한 내용을 해군 조선 기술 개요에서 아래와 같이 언급한다.
- 거주설비는 사관실부터 병원에 이르기까지 간소하게 하여 최소한의 것으로 한다.
- 사무창고 이외의 창고설비도 최대한 간단하게 한다.
- 전투시 화재를 막기 위해 목재 부분을 최대한 적게 한다.
- 방독 구획의 기밀 시험을 생략한다.
- 중갑판 이상의 구획의 기밀 시험을 생략한다.
- 기계시설공사나 병기관련 공사도 가능한 한 미룬다.
- 공기 목표, 10월 5일 도크 내부에 해수 주입. 10월 8일, 진수식 후 앞 바다에 계류. 10월 15일, 준공.
- 주변현의 조선소에서 작업원을 빌리고 해군 공작 학교로부터의 도움 받는다.
당시의 요코스카 공창은 각종 함선의 건조 및 수리로 인해 작업원 4,000명을 증원해도 바빠서 난리인 판국에 다이호의 손실을 보충한다는 이유하에 건조공사 기간을 점점 단축해서 5개월 가까이나 줄였으며 진수 후 취역까지의 기간도 야마토급 전함 2번함인 무사시가 19개월이 걸렸는데 그걸 3개월 안에 하겠다는 무리수까지 작렬했다.
설상가상으로 작업원 확보도 힘들었다. 그래서 민간 조선소의 작업원이나 해군공기학교의 학생을 모은 것까지는 어쩔 수 없는 전시대책이라고 할 수도 있지만 배를 만드는 조선과는 전혀 관련없는 학교나 학과의 학생도 투입하고, 한국인이나 대만인도 투입했으며 심지어 여성 정신대도 투입해서 작업을 진행시켰기에 말 그대로 공사는 날림으로 진행되었다. 결국 과로와 사고로 간부급 인원 10여명이 순직할 정도였다.
그래서 예정대로라면 1945년 2월에나 완성하려 했던걸 1944년 10월 8일에 진수했다. 진수식에서도 사고가 발생했는데 원래는 10월 6일에 하기로 하고 그 전날인 10월 5일에 시나노 현장 사무소를 철거하면서 동시에 도크에 바닷물을 넣는 주수를 실시했다. 이렇게 하는 이유는 도크에 물을 절반 정도 넣고 배를 일단 도크 안에 넣은 상태로 물 위에 띄운 다음에 균형이 맞는지 여부를 살펴보기 위함이었다.
그런데 원래 목표인 10m 수심 까지 바닷물을 들여오는 과정에서 8m 수심이 달성되었을 때 도크의 입구가 약간 열리면서 대량의 해수가 도크 내로 급격하게 유입되었고, 강력한 물결로 인해 배를 묶어놓은 밧줄이 끊어지고 갑판에 있던 기술사관과 작업원이 바다로 추락하고 함수 하부의 구상선수 및 그 내부의 소나등이 도크와의 격돌로 파손되었다. 도크에 물을 집어넣으면서 도크 입구를 막는 구조물에 달린 밸러스트 탱크에도 동시에 조금씩 물을 넣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매우 기초적인 실수인데 이걸 파악못할 정도로 당시의 요코스카 공창의 상황이 심각했다는 이야기기도 하다.
이리하여 함적 등록만 1944년 10월 6일에 하고 1944년 10월 8일에 일단 진수식이 거행된다. 이 때도 해군 대신이 최선임자로 왔을 뿐 시나노라는 군함 크기에 걸맞은 일본 왕족들은 아무도 참석 안했으며 초대 함장이 된 아베 토시오 대좌는 "미완성 항공모함 시나노"란 소리를 진수식에서 하려고 할 정도로 분위기가 안좋았다.
진수식 후에는 다시 도크로 들어가서 아직 남아있던 제111호함의 자재를 이용해서 손상부위의 수리를 진행했고 수리는 10월 23일에 끝난다. 하지만 워낙 손댈 부분이 많아서 준공과 취역은 1944년 11월 19일 군항 요코스카(橫須賀)에서 이루어졌으며 이 때는 이미 일본 해군은 레이테 만 해전에서 패배한 후였다.
준공 후에는 실제로 함재기가 이함, 착함을 할 수 있는지 실험이 진행되었다. 이 때는 이미 전황이 악화일로라 도쿄만 밖에서의 실험은 위험했으므로 도쿄만 안에서 왕복항행을 하면서 실험을 실시했다. 실험 자체는 성공적이었으나 함재기 이착함을 진행한 조종사들은 시나노 승조원들이 미숙련자였으며 동작도 불안했음을 기억했다.
그리고 요코스카 기지가 미군의 공습으로 위험했기 때문에 준공했다고 서류상에서만 써놓았지 실제로는 마무리 공정이 아직 많이 남은 상태였고 함재기를 인수하여 항공대를 운영하는 실험도 하기 위해 일본 서부 세토내해에 자리잡은 구레(吳)기지로 이동하기로 한다.
4. 제2차 세계 대전중 최대급 항공모함으로서의 성능
기준배수량 62,000톤에 만재배수량 71,890톤. 미국 해군이 같은 기간에 내놓은 에식스급 항공모함도 만재배수량으로 36,000여톤에 불과했고 전쟁이 끝나자마자 등장한 미드웨이급 항공모함도 몸집불리기 개장공사를 하고 나서 60,000톤에 간신히 턱걸이하는 정도였다. 미국이 이 기록을 깬 때는 2차대전 종결 10여년 뒤로, 80,000톤짜리 포레스탈급 항공모함이 그 주인공이다.좀 더 자세히 살펴보면 시나노는 전장 약 263m로 길이 등의 절대수치는 사실 야마토급과 동일하다. 전장만 보면 미군이 막 쏟아냈던 에식스급(숏 약 265m, 롱 약 270m)하고 비슷한 정도이지만 배수량이 저렇게 차이가 나는 이유는 시나노의 함체가 방어장갑을 미친듯이 둘러친 야마토급의 전함 함체를 그대로 유지했기 때문이었다. 방어장갑을 희생하면서 오로지 항공기의 탑재운용에 목숨거는 여타 제대로 만들어진 항모와는 몸무게가 격이 다를 수밖에 없었다. 그야말로 카가의 상위호환.
갑자기 항공모함으로 개장하는 것으로 결정되었으므로 예정에 없던 신규설계를 해야 했다. 그래서 설계안을 확립하는 데 충돌이 있었다. 일단 1942년 7월 16일, 군령부 차장이 해군 차관에게 보고한 제110호함(개장) 주용 요목에 관한 건 협의에서는, 배수량이나 속력 및 아래의 항목을 언급했다.
- 주용 병장인 함재기는 함상전투기 36기, 함상공격기 18기, 함상정찰기 9기. 단 격납고는 함상전투기 18에 대한 분량을 완비하고, 함상공격기 18기와 기타 함재기는 응급상황에서 격납고에 보관하지만 격납고 공간이 부족할 경우에는 비행갑판 위에 계류함.
- 비행 갑판 방어는 500kg 폭탄의 급강하 폭격에 대해 안전해야 함. 그러나 후방 비행기 격납고는 800kg 급강하 폭격에 대해 안전해야 함.
- 현측 방어는 제130호함인 다이호(항공모함)의 순양함용 8인치급 포탄 방어를 충족하거나 더 좋아야 함.
- 폭탄, 어뢰, 항공연료의 탑재량은 제130호함 정도로 하고, 비행기에 대한 보급을 급속하게 실시할 수 있어야 함.
함정본부장인 아와무라 키요이치 중장의 초기안에서 시나노는 야마토의 함체를 이용해 불침항공기지라는 개념을 바탕으로 설계되었다. 격납고에는 자기 방어용 전투기만 싣고 뇌격기는 추가 개념으로 보유하나 급강하폭격기는 보유하지 않으며 장갑은 전함 수준으로 유지해서 최전선에 돌격해서 뇌격기와 급강하폭격기를 보급해주는 해상 기지의 개념이었다고 한다. 이는 일본 항공기들의 매우 긴 항속거리와 합쳐져 아군 항모들로 하여금 적 항모들의 공격범위 바깥에서 일방적으로 공격하는 아웃 레인지 전법을 적극적으로 사용할 수 있게 할 것으로 기대되었다.
그리고 여기서 파생된 계획의 경우에는 함상전투기만 탑재하는 방안과 아예 격납고와 함재기를 보유하지 않는 안도 나오게 된다. 이런 계획이 나오는 이유는 미드웨이 해전에서 항공모함은 피탄에 취약하므로 피탄시 격납고에서 유폭을 일으키는 폭탄이나 어뢰를 탑재한 급강하폭격기와 뇌격기를 보유하지 않아야 한다는 생각 때문이기도 했다. 종합하자면 함재기 중간기착지로서의 해상항공기지 역할에 충실하자는 것이다.
하지만 일본 군부에선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특히 군령부나 항공본부쪽 반대가 심했다. 이들은 아웃 레인지 전법 자체가 실제적으로는 실현이 어렵다고 말하고 시나노의 장갑이 두터우니 전투능력을 잘 잃지 않으므로 유사시 다른 항공모함이 파손될 때 타 항공모함 소속 함재기를 받아들여서 계속 전투가 필요하며 이를 위해서는 일반적인 장갑항공모함처럼 건조해야 한다는 것이다. 종합하자면 다이호급의 강화판을 생각하면 된다.
그래서 일반 항공모함으로 개장을 하게 되었는데, 갑판장갑은 일러스트리어스급 장갑 항공모함을 참고해서 만들어져 20mm 강철판 위에 75mm 장갑을 올린 구조로 만들어 상당히 높은 방어력을 가졌다. 초기에는 갑판 전체를 4,000m에서 투하한 800kg짜리 폭탄까지 버티게 만들려했지만 설계변경으로 후방 함재기 격납고 상부에서만 그 정도의 방어력을 가지게 되었고, 나머지 갑판들은 급강하 500kg 폭탄 폭격까지 방어할 수 있게 되었다. 함체도 다이호의 방어력만큼 장갑을 둘러서 200mm급 포탄까지 방어가 가능했다. 그리고 함재기는 모자라지만 폭탄, 어뢰, 연료는 다이호 비슷하게 탑재 가능했다. 800kg 폭탄 또는 500kg 폭탄 90발, 250kg 폭탄 468발, 60kg 폭탄 468발, 45cm 항공 어뢰를 탑재할 수 있었다고 한다. 쇼카쿠보단 적고 다이호보다는 약간 적은 수준. 연료 탱크 주위는 다이호가 연료 폭발로 침몰한 뒤 콘크리트를 넣어 굳혔다. 그리고 기뢰와 어뢰 방어를 위해 야마토급의 이중 방어를 삼중 방어로 증설했다.
그러나 지나치게 무거운 비행갑판이 결국 함의 밸런스를 무너뜨릴 것이라는 우려로 인해 항공모함에게 가장 중요한 격납고를 조그맣게, 그것도 한 층 밖에 설치하지 못했다. 연료 탱크 주위를 콘크리트로 굳힌 것 역시 불필요한 배수량 증가로 보는 견해가 많다. 그리고 위의 모든 장갑도 활약 못하고 어뢰 방어체계도 제대로 활약 못하며 어뢰에 격침당했다. 어뢰 방어체계와 상부 장갑대, 수선 장갑대의 연결이 적절치 못한 설계가 문제였는데, 격침당할 당시 이 연결부위에 모든 어뢰가 꽂혔다고 한다. 방뢰 벌지같은 특정 부위가 탄탄해봤자 어뢰가 원하는 지점에만 꽂혀준다는 보장은 없지 않은가.
전함의 중장갑 함체를 유지하다보니 내부의 공간활용에도 난점이 있었다. 안정성을 위해서 오직 한 층의 격납고를 만들게 되었고 그나마도 전방은 정비, 저장 시설로 이용되었다. 결국 그 덩치에도 불구하고 함재기의 실재 탑재수는 발진 및 착함이 가능한 전투대기 상태에서 42기, 갑판에 함재기를 올려서 탑재를 해도 A7M 렛푸 25기, B7A 류세이 25기, C6N 사이운 7기를 넣어 57기에 불과했다. 이 중 갑판에는 렛푸 1기, 류세이 7기, 사이운 7기가 올라간다. 물론 이렇게 운용하면 갑판이 좁아진다. 갑판폭이 워낙 넓으니 착함이 불가능하진 않지만... 이게 얼마나 작은 탑재량인가 하면 영국의 경항모인 콜로서스급이 52기를 탑재할 수 있었다. 이것도 경항모치곤 많은 편이긴 하지만 최대급의 항공모함이라는 주제에 탑재량이 경항모 수준밖에 되지 않았다는 것. 그나마 중장갑 항모를 컨셉으로 잡아놓고 개방식 격납고를 채택한 탓에 격납고 측면은 장갑으로 보호받지 못했다. 측면장갑은 함포로 근접사격을 당할 때나 쓸모가 있으니 항모가 측면장갑은 사실 큰 의미가 없고, 폭탄, 어뢰를 갑판에서 장비하니 유폭위험은 낮다.
모든 걸 다 포기하고 꽉꽉 우겨넣는다면야 139기가 들어가지만 이 경우에는 입항할 때까지 함재기를 발진시킬 수가 없었다. 미국의 에식스급은 발진 가능한 상태로 100기 이상 싣고 다녔다는 기록이 있는 것과 비교하면 항공기 탑재량은 확연히 적다. 이것은 일본의 함재기들이 날개를 못 접는 탓도 있으니 시나노만의 문제는 아니지만, 시나노 같은 슈퍼캐리어가 자기보다 확실히 체급이 낮은 에식스급보다 최대운용수량이 절반 남짓에 그친다는 건 뭔가 문제가 있는 것이다.
그래도 비행갑판 폭은 엄청나게 넓었기에 함재기의 이착함 능력만큼은 어느 정도 보장되었을 것이다. 비행갑판 폭이 넓으면 이착함에 큰 도움이 된다. 1항공전대의 항공모함들인 아카기와 카가가 5항공전대의 항공모함들인 쇼카쿠급보다 파일럿들에게 호평받은 부분도 바로 이 부분이었다. 실제 일본군은 시나노를 최전선에 투입하기 보다는 육지와 최전선의 중형 항모들 사이에 두고, 육지로부터 보충되는 항공기들이 잠깐 들러 대기하거나 재급유를 받고 가는 중계 플랫폼 개념으로 운용하려는 구상도 했었다.
또한 제원에서 볼 수 있듯이 대공무장이 굉장히 많다. 적의 공습에는 상당히 대응하기 용이했을 것이다. 대공무장은 시나노 이상 가던 야마토조차 폭격과 뇌격으로 격침됐으니 미국의 압도적 공군력 앞에서는 그렇게 큰 의미가 있지는 않았겠지만, 그래도 항공모함으로서는 거의 사상 최대라고 부를 정도의 대공무장을 갖췄다.
그리고 기존의 전훈을 반영한 개선사항이 상당수 있었다. 대표적으로 함재기 급유와 탄약 보급을 갑판상에서 하는 것이 있다. 기존에는 갑판 아래에서 정비를 하다보니 폭격을 맞을 시 탄약과 기름이 한번에 터져서 항모를 통째로 말아먹는 문제점이 있었다. 격납고는 외부와 연결되는 셔터를 올리고 내릴 수 있게 해서 바깥이 위험할 경우 셔터를 내려 외부와 차단하고, 함재기에 불이 붙는 등 내부에서 문제가 생기면 셔터를 올리고 함재기를 버릴 수도 있었다.
또한, 기존의 일본 항모들과 달리 다이호와 같이 대표적으로 비교적 큰 함교를 사용해 함제기 관제가 용이해졌다. 그리고 그 함교는 미국이나 영국의 항모같이 연돌과 일체화되어 함 내부가 40도 가까이 치솟는 카가나 난기류를 발생시키던 다른 함의 문제점이 상당수 해결되었다. 그리고 함재기는 7.5톤짜리까지 착함시킬 수 있는 어레스팅 와이어를 장착했고, 갑판 일부가 사용불능이 되어도 나머지로 착함이 가능하도록 앞쪽에도 추가배치했다. 당시 일반적인 함재기는 최대 중량이 5톤이 안 된다는 것을 생각하면 충분한 능력을 가지고 있으며 항공모함으로의 개장이 제대로 되었고 무리한 건조기간 단축 및 부실공사만 안했으면 충분히 괜찮은 성능의 항공모함이었을 것이다.
4.1. 최단명 항공모함의 어이없는 최후
취역한 지 9일 뒤인 11월 28일, 4척의 구축함을 동반해서 출항했으나, 1척은 요코스카 항의 초계 범위까지만 호위했으므로 3척의 구축함을 동반하여 출항했다. 시나노의 호위에는 가게로급 구축함 이소카제, 하마카제, 유키카제가 동원되었다.하지만 당시 일본 주변 해역은 미 해군 잠수함대의 독무대나 다름 없었으니, 거대한 덩치의 시나노는 애써 시간과 비용을 들여 미군에게 선사한 어뢰 표적일 뿐이었다. 잠수함으로서 단일 수상함정 격침 최대 기록을 수립할 명예를 안게 될 주인공은 발라오급 잠수함 SS-311 USS 아처피시(Archerfish)였다. 그리고 출항한 그날 밤 호위 구축함의 승조원들은 함 곳곳에서 용접을 하느라 튄 불꽃이 선명하게 보이는 시나노를 보고 경악한다. 실제로 출항 당시 시나노는 필수적인 테스트를 생략한 것은 물론이고 12개의 보일러실 중 4개가 작동을 하지 못하는 상태였다. 이로 인해 최고 속도도 시속 20노트로 제한되었다.
출항 이튿날인 1944년 11월 29일, 구축함이 잠수함의 전파를 감지하여 경계를 강화하고, 시나노는 전파탐지기로 아처피시로 보이는 물체를 발견했지만, 저놈은 미끼고 주변에 미국놈들 배가 더 숨어있을 것이라는 함장 아베 토시오 대좌[6]의 판단하에 대응을 위해 나갔던 구축함 이소카제도 도로 불러들이고 호위 구축함들에게는 요격을 지시하지 않았다고 한다. 잠수함 여러 척이 함대를 늑대 떼처럼 공격하는 울프팩 전술을 고려하면 충분히 가능한 판단이었다. 그러나 당시 미 해군 잠수함 전대는 울프팩도 쓰긴 했지만, 기본적으로는 단함 작전을 선호했다. 소형함을 잡거나 통상파괴작전을 할 경우는 울프팩이 오히려 위험하다.
그리고 아베 함장의 판단에는 어뢰 스캔들로 문제투성이였던 미군의 어뢰는 몇 발 맞아도 큰 위협이 되지 않을 거라는 계산도 깔려있었다. 따라서 그는 울프팩을 빠른 속도로 따돌린다는 판단으로 함대에 속도를 올리라고 지시했다. 아처피쉬는 시속 19노트가 한계였기 때문에 더 빠르게 이동하는 시나노와 구축함들을 따라잡을 수 없었고, 시나노의 전파탐지기에 잡힌 아처피시도 점점 멀어져가자 아베 함장은 잠수함들을 모두 따돌렸다고 생각하고 안심하게 된다.
뒤쳐져 시야에서 시나노를 놓친 아처피쉬의 함장 조지프 F. 엔라이트 소령은 시나노의 항해 경로를 알 수 없었으므로 다시 만나기를 기대하며 침로를 유지했다. 아처피쉬가 시야에서 사라지자 안심한 시나노는 원래 가려던 구레 항 쪽으로 방향을 틀었는데, 하필이면 이게 아처피쉬가 향하던 방향과 절묘하게 겹치고 게다가 베어링 과열 문제로 인한 엔진 트러블이 발생하여 속도가 시속 18노트로 느려져 다시 아처피쉬에게 따라잡히고 만다. 하지만 속도 차이가 크게 나는 것은 아니어서 여전히 어뢰를 발사하기엔 상황이 적절치 않았는데, 결국 요격을 포기할까 고민한 아처피쉬가 현 상황을 해군 본부에 무선으로 송신핬다. 이 신호는 시나노에 포착이 되었고 아베는 미군들의 잠수함들이 공격해오기 전 자기들끼리 교신을 하는 것이라 믿고 곧 공격이 있을 것이라 판단한 후, 회피 기동을 시작한다. 그런데 하필이면 이때 바로 선회한 방향이 아처피쉬가 있는 곳이라 완벽한 공격의 기회를 아처피시에게 주고 말았다.
기막힌 우연이 겹쳐 기회를 포착한 아처피시는 호위 구축함의 3m 아래를 통과하면서까지 시나노에게 최대한 접근했다. 새벽 3시 15분, 아처피시는 6발의 어뢰를 발사했고 그 중 4발이 시나노에 명중된 것을 확인하고서 잽싸게 그 자리를 벗어났다.
시나노는 오전 9시에 모든 동력이 나가버렸고, 결국 오전 10시 57분 전복되면서 선미부터 침몰했다. 와카야마현 기이(紀伊)반도 남방 50km 해역에서 항로의 절반을 지나왔을 뿐인 시나노는 명색이 항모라면서 실전에서 함재기 한번 날려보지 못하고, 단지 함재기 이착함 실험을 단 한 번 경험한 것으로 군함으로서의 생애를 겨우 10일만에 마치는 전무후무한 기록의 주인공이 되고 말았다. 당연히 그 모든 광경을 유유히 지켜보던 아처피쉬는 마침 추수감사절도 맞이하여 승조원 모두가 칠면조 바베큐를 자르면서 승리를 자축했다고 한다.
이미 오전 10시 18분에 전원 퇴함 명령을 내렸던 아베 대좌는 일단 공사 마무리를 위해 함께 탑승한 민간인 기술자와 작업원을 우선적으로 대피하라고 명령을 내린 후 이들이 퇴함하기 전에 잠깐 모아놓고 한 연설에서
"일본 수준이 지금은 모든 면에서 이렇게 개판이다. 앞으로 여러분은 반드시 살아남아서 제대로 된 배를 만들어서 오늘의 치욕을 갚길 바란다."
란 내용의 말을 했다.그 후에 아베 대좌는 시나노와 운명을 같이 하는 것을 선택했다. 그는 이함을 거부하고 시나노와 함께 최후를 맞이했으며, 부하 장교 2명도 아베 대좌 옆에 남을 것을 결심하고 그와 운명을 같이 맞이했다.
동급의 전함 무사시가 어뢰 17발, 야마토가 어뢰 10발까지 명중당한데다가 급강하폭격기들한테도 흠씬 두들겨 맞고서야 가라앉은 것에 비해 시나노는 겨우 어뢰 4발에 격침당했다. 특히 무사시의 격침 과정을 검토한 미 해군은 무사시가 양쪽에 어뢰를 맞아 주수가 이뤄졌기 때문에 어뢰가 쓸데없이 많이 소비되었고, 마무리를 못지어서 잠수함이 무사시를 격침했다는 뜬소문까지 돌았던 판국이었던지라 공습만으로 야마토를 확실하게 침몰시키기 위해 야마토를 공격할 때는 한쪽만 패도록 명령해서 어뢰 10발로 격침시켰고, 급강하폭격기의 공격에서도 고작 25mm의 장갑을 가져서 약점인 부포탑 천장에 내리꽂힌 폭탄이 부포탑을 관통하고, 부포탑의 탄약고를 유폭시켜버린 것이 크며 덕분에 꺼지지 않는 화재가 발생하여 결국 3번 주포탑의 유폭을 막을 수 없을 수준으로 온도가 올라갔다는 보고가 올라온 후, 야마토의 수뇌부들이 퇴함을 결정하게 만든 것까지 감안했다. 즉 야마토는 더 개선된 방법과 약점에 피탄당한 것 때문에 무사시에 비해 덜 버틴 것이었다.
이는 시나노가 항모로 개조되면서 장갑판이 얆아진 탓도 있었지만, 이때의 Mk.14 어뢰는 어뢰 스캔들이 발생한 후 뒤늦게 문제를 인정한 미 해군이 대폭 개량해서 파괴력도 강력해지고 유도성능도 더 정확해진 물건으로, 아베 대좌가 알고 있던 그 쓰레기가 아니었다.
맞은 위치도 참 재수가 없었는데 함선의 측면 주장갑과 어뢰 방어용 벌지가 만나는 부분을 어뢰가 타격하는 바람에 장갑 자체는 버텼지만 전쟁 말기 품질이 악화된 리벳과 볼트가 박살나면서 장갑판 자체가 안쪽으로 들어가버렸고 그 위치에서 침수가 발생했으며 안쪽으로 들어간 장갑판이 기관실 상부에 있던 H빔을 망치처럼 타격하면서 H빔이 추가적인 타격을 내부에 더 주니 침수가 빨라지게 된다. 애초에 이 문제는 후술하듯이 야마토급 전함의 고질적인 구조적 문제이기도 했다.
여기에 명중 당시 잠수함 및 어뢰를 회피하기 위해 시나노가 낼 수 있던 최고 속도인 18노트로 달리고 있었고 더 맞기 전에 빨리 도망가자는 함장의 판단은 수압으로 인해 부실공사된 격벽들이 도미노 마냥 붕괴되는 결과를 야기하였다. 아베 대좌가 오판을 한 것도 아닌게 원래 설계상 최고속도는 27노트였지만 밑에도 있듯 보일러 부품 문제라던지 프로펠러 샤프트 베어링 문제로 최고속도로 올라가도 18노트 밖에 낼 수 없었고 그 정도로 느린 속도면 별 문제 없으리라고 보는 게 정상적이다.
거기에다가 긴급공사로 인해 방치된 각종 자재와 전선이 얽혀있어서 격벽에 달린 문을 폐쇄할 수 없는 경우도 많았다. 더욱 큰 문제는 보일러에 사용할 민물이 부족했다는 것이다. 보일러에서 증기가 된 물은 터빈으로 공급되어 동력을 만들어내는데, 증기 상태의 물을 냉각해서 다시 액체 상태로 돌려주는 복수기가 고장난 것. 바닷물을 이용해서 보일러를 냉각시킬 수도 있었으나 이렇게 작동시킬 경우 수리에는 엄청난 시간이 걸리므로 보류. 결국 동력마저 정지하고 말았다.
더욱이 시나노 승조원들이 시나노에서 제대로 훈련받은 인원들이 아닌지라 사고 발생때 우왕좌왕 한 것도 피해규모를 키웠다. 대미지 컨트롤을 맡은 승무원들은 나름대로 최선을 다했으나 집채만한 구멍으로 억수같이 쏟아지는 바닷물을 철모로 퍼내는 식으로는 어림도 없었다. 어뢰에 맞았을 때가 새벽 3시 15분이고 시나노의 모든 동력이 정지된 때가 오전 9시, 퇴함결정이 10시 18분, 침몰한 시간이 10시 57분(55분이라는 설도 있음)이니 어뢰 명중후에도 상당 시간동안 바다 위에 떠 있었다는 이야기가 된다.
여기서 항공모함이 어뢰를 4발 맞고 침몰한 자체가 문제라는 것은 아니다. 다른 항모들도 어뢰 4발에 맞으면 침몰하는 게 전혀 이상하지 않으며, 오히려 부실공사 + 미완성 상태로 어뢰를 4발이나 맞고도 비교적 정상적인 이동이 가능하단 자체가 항모치고는 훌륭한 맷집을 보여준 것이다. 다만 당시 선체가 미완성인 상태에서 물에 띄울 수만 있는 상태로 출항한 탓에 응급복구가 불가능했던 것이 결국 침몰로 이어지고 말았다.
시나노가 침몰한 곳은 수심이 6000m가 넘는 곳이며, 수중 탐사를 통해 잔해가 발견되어 조사를 통해 침몰원인이 밝혀진 야마토와 무사시와는 달리 시나노에 대한 탐사는 현재까지 시도된 적이 없다. 탄약고 폭발이 일어나며 두 동강이 난채 침몰해 있는 야마토와 무사시와는 달리 시나노는 침몰 중 유폭이 일어나지 않았고 격침 당시 폭발물을 싣지 않았기 때문에, 만일 잔해가 발견된다면 두 동강이 나지 않은 비교적 온전한 모습일 것이다.
5. 참담한 평가
내용을 정리하자면 본 함은 제2차 세계 대전 당시 건조된 최대의 항공모함이었고, 격침당한 최대의 항공모함이기도 했으며 현재까지도 시나노보다 무거운 항모를 굴려 본 경험이 있는 나라는 미국 뿐이므로 이 기록은 제3차 세계 대전이라도 발발해서 니미츠급 항공모함이나 제럴드 R. 포드급 항공모함이 격침당하지 않는 이상 영원히 남을 기록이다.비전투적인 이유로 격침된 것을 굳이 언급하자면 키티호크급 CV-66 USS 아메리카(America)가 배수량 84,000 톤으로 침몰된 군함 중에서는 최대 배수량을 자랑하지만 무기 성능 시험을 위해 표적함으로 사용한 것이므로 격침당한 것은 아니다.
그런데다가, 정작 군함으로서의 생애는 취역 후 열흘, 처녀항해 시작후 17시간이라는 최단명을 기록하였다는 점에서 특기할 만하다. 이 때문에 인터넷으로 검색해보면 남겨진 실물 사진보다 일러스트나 프라모델 이미지가 더 많을 정도. 전 세계의 해전사를 다 뒤져봐도 해군의 최상급 군함이 이렇게 허무하게 사라진 사례는 출항 직후 30분 만에(...) 침몰한 바사 호 정도를 제외하면 찾기 어렵다.
이 문서의 가장 위에 시나노의 실제 사진이 있는데, 아처피시가 격침시키기 직전에 찍은 사진이라고 알려졌지만, 아처피시가 시나노를 추적하고 격침시킬 당시 시각은 저녁 ~ 한밤중이었다. 위의 사진은 시나노가 건조지인 요코스카 해군공창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치바현 다테야마 앞바다에서 시험항해를 했을 때의 사진이다. 또한 시나노를 촬영한 사진은 건조 도중의 모습을 찍은 것까지 포함해서 몇 장 더 있지만 사진이 수록된 책은 1980년대에 나온 중고서적으로 가격도 고가라 직접 구해서 보기는 힘들다. 현재로선 시나노의 시험항해 사진과 미군이 B-29 정찰기를 통해 공중촬영한 사진만이 인터넷 검색으로 걸려 나온다.
시나노는 비슷한 처지의 다이호보다 훨씬 더 좋지 않은 상황이었다. 일단 두 항공모함은 서로 관련성이 높다. 둘다 어이없는 최후를 맞이한 것도 그렇고 다이호는 어뢰 1발에 침몰했으나. 이것은 방어력 문제가 아니라 구조적 문제가 주 원인이고 통풍 관련한 삽질이 추가로 작용한 것이다. 삽질한 것도 시나노처럼 훈련부족으로 볼 수도 있다. 근본적인 원인도 배 구조 자체의 문제로 겉은 어떻게 제대로 만들어졌어도 속은 전혀 아니라는 점이 공통점이다.
하지만 시나노가 다이호보다 뒤쳐지는 부분이 매우 많다는 게 문제다. 일단 덩치는 다이호의 두 배나 됨에도 불구하고 함재기 탑재량은 되려 다이호보다 약 10여 기 더 적다. 시나노가 중장갑 컨셉이었다고는 하지만 다이호 역시 방어를 중시하여 건조된 함선이다. 운용면에서도 다이호는 최소한 제대로 된 항공전에 투입되었으니 승조원들의 훈련도라든가 공사완성도는 시나노보다는 나았을게 뻔하고...
무엇보다 다이호는 마지막으로 제대로 된 함재기를 갖추었으나 시나노는 제대로 된 함재기도 갖추지 못했다는 것이다. 제로센의 후계기인 A7M 렛푸의 개발이 너무 늦어진 탓에 당초에는 완성 이후 N1K-J 시덴의 함재기 버전이 탑재될 예정이었으나, 이 함이 침몰하면서 백지화. 마지막 순간에도 구레로 개장을 끝내러[7]가면서 MXY-7 오카 유인 로켓 50기를 수송하고 있었다. 이 오카는 탄두와 연료가 채워져있지 않았기에 물위에 떴고, 승조원 일부가 여기에 매달려 목숨을 건진다. 이들은 나중에 오카 개발자와 만났을 때 "덕분에 살았다"며 감사를 표했는데, 오카 개발자들의 표정이 복잡해졌다고.
속력도 다이호보다 6노트나 느린건 덤. 유일한 장점이 될 수 있었던 것은 야마토급의 선체를 바탕으로 했기에 가질 수 있었던, 상식적인 항모를 초월한 엄청난 장갑이겠지만 최후를 보면 알다시피 좋게 평가할 수 없는 건조 상태로 인해 아무짝에도 소용이 없었다. 차라리 야마토나 무사시만큼의 탱킹이라도 했으면 맷집은 봐줄만 했겠지만 미완성 상태에서는 그것조차 해낼 수 없었다.
이런 이유들로 인하여 시나노의 함장인 아베 대좌는 상부에 항해 일정 연기를 요청하였지만 당시 연합함대 사령부와 일본 대본영이 이를 들어주지 않았고, 결국 시나노는 23시 20분 경 예상했던대로 주축 베어링이 위험 수준으로 과열되면시 속도를 18노트로 감속할 수 밖에 없었고, 그나마 어뢰와 잠수함의 위협을 상정하여 지그재그 항법으로 기동한 덕분에 실제 속도는 더 떨어졌다. 이에 따라 최고속도가 19노트를 약간 상회하던 아처피시에게 따라잡혀서 더 이상의 자세한 설명은 생략한다. 거기다가 호위함들은 레이테 만 해전에서 겨우 살아돌아온 구축함들이어서 청음기도 제대로 작동하지 않았다고 한다.
그런데 군령부가 성능이 과대하다면서 일본해군의 함정설계를 담당한 함정본부의 반대를 묵살하고 설계변경을 관철시키지 않았다면 설계명 110호함 시나노는 1, 2번함의 건조경험을 살릴 수 있는 3번함이라는 특성을 살려 건조속도에 탄력이 붙어서 1942년 3월 이전에 진수를 마쳤을 것이다. 당연히 수밀격벽이나 보일러들도 제대로 완성되었을 것이고. 결국 시나노의 침몰은 예정되어 있던 결과이다. 이럴 바에야 함대함 전투에서만큼은 확실히 위협적이었을 초거대 전함으로 남아있는 편이 그나마 나았을지도 모른다.
6. 여담
(수병: 저 일본 배와 닮은 것은 없는데요.)
닮은 것이 없다니! 이리 줘. 내가 한번 찾아보지.
- 조지프 F. 엔라이트
닮은 것이 없다니! 이리 줘. 내가 한번 찾아보지.
- 조지프 F. 엔라이트
아처피시 함장인 조지프 엔라이트 소령은 당당하게 상부에 항공모함을 격침시켰다고 보고했으나 한동안 인정받지 못하고 "중순양함 격침한 걸로 하지?"라는 말만 듣다가 수 개월 후에야 인정받았다.
일본의 암호통신을 해석한 결과 격침시킨 함이 '시나노'라는 것은 파악됐는데, 당시 일본의 정규항모들은 '하늘을 나는 짐승'에서, 순양함들은 '산'이나 '강'에서 이름을 따오고 있었던지라, 시나노가 일본의 옛 지명 중 시나노노쿠니에서 따온 것을 볼 때 원래는 전함으로 건조됐다는 것을 완전하게 파악하지 못한 게 문제였다. 사실 미국도 포로 심문을 통해 일본이 신형 전함 2척을 건조했고 3번함이 항공모함으로 개조되었다는 정보를 입수하고는 있었으나 시나노는 경순양함 이름이 될 수 있지만 전함 이름도 될 수 있다는 사실까지는 생각하지 못했으며 개조 과정에서 배수량이 줄어들었을 것으로 생각했다.# 이런 상황에서 일본에 시나노라는 이름의 강이 있다는 정보를 입수하고선 "니네가 격침시킨거 항모가 아니라 순양함 아님?"이라는 결론을 내버린 것.
또 하나의 이유는 "그렇게 큰 항공모함이 어디 있냐?"는 점이었다. 앞서 말했듯이 일본의 기밀 유출 방지가 특정 분야에서는 철저했던 탓에 야마토급 3번함이 항모로 개조된 사실을 진술한 포로조차도 시나노의 크기를 실제 배수량보다 작은 5만 톤 정도로 알고 있었다. 게다가 야마토급 전함의 규모를 당시까지 정확히 몰랐던 미국은 개조 과정에서 배수량이 3만 톤대로 줄었으리라 생각했다. 미국이 그 전까지 시나노에 대해 제대로 파악하지 못했으며 일본의 기밀 유출 방지가 효과가 있었다는 뜻도 될 듯.
이리하여 일본 해군의 기밀 유출 방지가 얼마나 철저했는지, 아처피시가 시나노를 추적할 당시 적함식별교범에 시나노와 닮은 것이 하나도 없었다고 한다. 애초에 일본 해군의 항공모함들은 아카기로 시작해서 시나노에 이르기까지, 동형함이었던 쇼카쿠와 즈이카쿠를 제외하면 모양이 같은 게 거의 없다. 일본 최초의 항공모함인 호쇼까지 올라가면 더하고, 심지어 가분수(...) 항공모함도 있다.
설상가상으로 엔라이트는 시나노를 발견한 후 그 모습을 그림으로 그려놨는데, 그걸 쓰레기통에 버렸기에 증거로 제출할 수도 없었다. 다행히도 수병 하나가 이 그림을 쓰레기통에서 꺼내서 보관했고, 덕분에 이 그림은 상부에 증거품으로 제출되었다. 이후 아처피시가 세계 최대의 항모를 잡았다는 사실을 확인한 미 해군은 이들에 대한 보상으로 전후 항복 조인식 때 아처피시와 그 승조원들을 USS 미주리 옆에 위치하도록 해줬다. 엔라이트 소령은 이후 대령까지 진급하고 퇴역했다.
그리고 이 시나노를 공격할 당시 엔라이트 소령은 대단히 긴장하고 있었다. 엄청난 항모를 발견했던 것도 있었지만, 그는 가토급 잠수함인 SS-247 데이스(Dace)에서 근무했을 때 항해사의 조언을 묵살했다가 적 항모를 발견하고도 공격에 실패하여 견책성 인사로 그라운딩(지상 근무)까지 지내야 했다. 그러다가 겨우 잠수함으로 돌아와서 아처피시로 배치되어서 출항했다가 시나노를 발견했으니, 그 긴장감이 어떠했을지 짐작할 수 있다. 이에 대한 자세한 내용은 엔라이트 소령이 쓴《나는 시나노 호를 격침시켰다》라는 책에 나오니 참조.
아처피시는 이 시나노를 제외하면 격침 기록은 해방함이나 화물선 1척씩을 격침한 게 고작이지만, 이 시나노의 배수량이 워낙 엄청나서 이것만으로도 미 해군 잠수함 격침 총톤수 25위에 올랐다. 또한 위에 언급했듯이 아처 피쉬는 해전 역사상 최대의 단일 함선 전과를 기록했다. 배수량 7만톤은 웬만한 전함 2~3척 아니면 중순양함 예닐곱척, 경순양함이라면 10척쯤은 잡아야 채울 수 있는 숫자이다. USS 아처피시는 어뢰 단 6발로 태평양 전쟁에서 활동한 모든 미 해군 잠수함 중 단일 함선 격침 톤수로 최대 실적을 올렸다. 그리고 이 전과는 21세기에도 깨지지 않고 있다. 그리고 총합 톤수는 아처피시와 같은 함급의 USS 탱이 1위다. 총합톤수는 아처피시보다 4만톤 가량 높다.
- 시나노 격침 일화가 국내에 알려지게 된 시점이 정확히 언제인지는 알 수 없다. 시나노에 대해 처음으로 언급된 국내 자료는 1970년대에 출간된 승리와 패배 시리즈 제16권 가미가제 특공대편에서 언급된 것이 최초로 보이지만, 이 책에서는 주된 서술 대상이 가미가제이므로 시나노에 대한 서술은 매우 짧다. '리더스 다이제스트' 한글판 1988년 12월호에 이달의 북다이제스트 코너에 엔라이트가 쓴 책의 축약본이 실린 것이 확실한 계기로 보이며, 실제로 인터넷에 돌아다니는 시나노 격침 일화는 상당수가 리더스 다이제스트에 실린 내용을 그대로 타이핑한 것이다.
- 2차 대전이 끝난 뒤 현대전에서 대형 함선이 격침된 예는 1982년 포클랜드 전쟁에서 영국 측 처칠급 잠수함 2번함인 HMS 컨커러(Conqueror)가 아르헨티나 순양함 헤네랄 벨그라노(General Belgrano, 미국제 브루클린급 경순양함, 배수량 1만 2천톤)를 가라앉히고, 아르헨티나도 미사일로 영국군 수송선 애틀랜틱 컨베이어(징발된 민간선박, 1만 5천톤)를 침몰시킨 경우가 있고 2022년에 일어난 모스크바 쇼크(배수량 1만 2700톤)도 있다. 다만 군함과 민간선박은 배수량 측정기준이 다르다. 좀 더 상세히 설명하자면 군함은 물에 집어넣었을때 밀려나는 물의 양을 재는 배수량(Displacement, 즉 대략 무게와 비슷) 개념을 쓰는 반면, 민간 선박은 기본적으로 여객/화물선이므로 적재량/용적과 들어가는 건재를 기준으로 계산한다. 이렇게 차이가 나는 이유는 상선 크기에 용적(부피)기준을 사용하는 것은, 본래 입항한 배에 세금을 매길 때의 관행이 기원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여기에 언급된 숫자만으로 우열을 비교하기는 곤란하다.
7. 매체에서의 등장
네이비필드에서 일본의 5차 항모로 등장한다. 갑판이 매우 넓기 때문에 급강하폭격기에게 매우 관대하여 급폭연습장이라고 불리고 있다.
월드 오브 워쉽에서는 일본 항공모함 트리 9티어로 등장할 예정이었으나 알파 테스트 시기 잠시 등판했다가 곧 내려갔으며, 다이호와 10티어의 카이다이호를 기반으로 한 창작 항공모함인 하쿠류급으로 이어지는 트리가 먼저 나왔다. 항공모함 2차트리인 전함 개장 트리가 추가될 경우 시나노가 9티어에 배정되고 10티어에 야마토 4번함인 111번 함의 항모 개장형으로 이어질 것으로 예상되었지만 항모 트리가 개편으로 인해 프리미엄쉽 혹은 3차트리 10티어로 나올 것으로 예상된다.
코만도스 시리즈 중 코만도스 2에서 시나노와 시나노가 정박해있는 항구를 배경으로 한 미션이 나온다(일본군 배경 마지막 미션). 여기서 항구의 시설물들을 모두 파괴한 뒤에 코만도들이 시나노에 잠입한다. 그런데 다른 미션들과 달리 이 미션은 보너스 미션과 본 미션의 스토리가 연결된다.[9] 무슨 이야기냐면 보너스 미션에선 코만도들이 항공모함의 비행기들을 다 고장낸 뒤 탈출하는 내용이 나오기 때문. 이 미션 클리어 후 미군이 시나노를 박살 내는 영상이 나오는데 보너스 미션을 클리어하지 않아도 이 영상이 나온다. 따라서 유저들은 코만도들도 시나노와 함께 수장된거 아니냐는 오해를 하게 된다.[10] 역사적 사실과 관계없는 창작된 것임을 매뉴얼에 밝히고 있다. 여담으로 어느 블로거는 이걸 보고 시발놈호라는 별명을 붙여줬다.
함대 컬렉션에서도 차후 등장할 예정이다. 캐릭터 디자인과 대략적인 스펙 책정은 전부 끝난 상태인데, 정작 그렇게 떡밥을 던져 놓고 2020년 9월 기준으로 7년여 동안 소식이 없다.
전함소녀에서 2016년 겨울 이벤트 보상으로 등장. 행운 1에 함재기 59대로 어찌 써먹지도 못하고 또 안 쓰자니 아까운 존재. 자세한 내용은 시나노(전함소녀) 항목 참조.
벽람항로에서는 대형 이벤트 빛나는 벚꽃의 그림자에서 언급만 된다. 시나노 자체는 존재해서 다른 함선들이 경의를 표하는 묘사와 대사가 있고, 시나노의 대사는 말줄임표 뿐. 그 후 스토리상 바로 이어지는 접해몽화에서 본격적으로 등장하며 메인 주인공으로 나온다. 스토리 내용은 시나노가 인류가 세이렌에게서 이기고 평화를 찾기 위해 꿈 속에서 다양한 가능성을 직접 겪으면서 해답을 찾는 내용이다. 성능은 일본군 해군이 꿈
어비스 호라이즌에도 등장한다.
개구리 하사 케로로 단행본 20권, 극장판 특별 에피소드 '심해의 프린세스'에서 마론성인의 기지로서 등장[11]. 사건이 진행되는 도중 단 한번도 그 외형에 대해 언급되는 일이 없었지만 끝부분에 다다라서 니시자와가 해군(?)에 의해 시나노 라는 명칭이 언급, 밀덕들의 예측에 말뚝을 박는다. 그 이후 마론성인들의 기함으로서 우주로 날아가며 에피소드 끝.
무책임 함장 테일러 소설에서도 나오는데 최신 인공지능 우주전함 이름이 되었다. 문제는 시험 도중에 위기에 빠지자 스스로 죽고 싶지 않는다는 방어심이 폭발해 자폭코드도 마다하고 우주로 홀로 달아나버렸다. 공교롭게도 우주를 떠도는 도망자 신세가 된 라르곤 제국 간신배이던 나크 라 왕과 합류해 그에게 넘어가 라르곤과 행성우주연합군 민간선 및 군함을 공격하고 저스티 우에키 테일러에게 그 짓을 떠넘게 중장이던 테일러가 이등병으로 강등당하게 만들었다. 그리고, 아자린 드엘을 잡아가며 인질로 삼는 활약(?)을 하지만 테일러가 복귀하여 시나노에게 바보라는 욕설로 도배하며 약올리자 흥분해 이성을 잃고 왕의 충고도 무시하고 폭주하다가 시나노 안으로 쳐들어온 테일러와 부하들에게 아자린은 무사히 구출되고 왕은 사살된다. 더불어 테일러가 살인마!라는 말을 하자 마음이 있던 시나노는 아...아니..아냐!? 난 살인이 아닌데...? 라고 항변하지만 테일러가 "웃기네, 저항할 무기도 없이 탄 우주 여객선을 날려서 수천명이 넘는 민간인까지 죽인 살인마가 무슨 헛소리야! 살인마!" 라고 확인사살하자 인공지능이 혼란과 같이 폭주하여 알아서 자폭해버린다.
Naval Creed:Warships이라는 모바일 해전게임에서 최종 항공모함으로 등장, 과거에는 47대라는 칼 고증급 격납고덕에 고인이었던 시절이 있었다, 격납고는 턱없이 좁은데 출격량은 하쿠류랑 비슷하고, 또한 함재기 성능이 어중간해서 금방 동나는건 덤, 현재는 세차례 버프후[12] 75대에 전용소모품으로 최대 60대[13]를 끌어 쓰고, 함재기 성능또한 나름 개선이 되어서 미드웨이와 몰타 보다는 내구성은 더 떨어지지만, 대신 빠른 사이클을 지닌 항모로 재탄생 했다.
가공전기를 까는 만화인 몽환의 전함 야마토에서는 광속 격침을 당하지 않고 살아남아 일본에 핵을 투하하려는 에놀라 게이를 야마토와 함께 필사적으로 막는데 성공하나 요그 소토스가 개입해서 에놀라 게이를 부활시켜 기어이 핵투하가 벌어져 헛고생만 한다.
8. 모형화
함선 모형은 R/C 모형이라도 되지 않는 이상 실제 함선과는 달리 선체의 중요도가 상부 구조물의 중요도에 비해 크게 낮기에 야마토와 무사시에 비해 모형화 횟수가 훨씬 적다. 대체적으로 스케일에 비해 볼륨감이 매우 뛰어나다. 야마토급의 널찍한 선체에 그대로 비행갑판을 얹었기에 길이도 길지만 폭이 무척 넓다. 슈퍼캐리어들에 비할 바는 되지 못하지만 다른 대전기 항공모함들과는 급을 달리하는 덩치를 보여준다.- 1/250
- 도유샤
동사의 동 스케일 야마토급 전함의 바리에이션 킷이다. 인젝션으로는 가장 큰 스케일이다.
- 1/300
- 니치모
1973년 출시된 제품이다. 마찬가지로 동사의 동 스케일 야마토급 전함의 바리에이션 킷이다.
- 1/400
- 마루산
1964년 제품이다. - UPC
1969년 마루산 제품을 재포장 발매했다. - RSL Classic Models
마찬가지로 마루산 제품 재포장판이다. - JSC
- 1/450
- 1963년 발매된 구금형과 2015년 발매된 신금형이 있다. 구금형은 1980년 마지막으로 바리에이션이 전개되었지만 기본형은 신금형 발매 직전까지도 어렵지 않게 구할 수 있었다. 신금형은 구금형과는 물론이고 동사의 동 스케일 신금형 야마토와도 공유하는 런너가 없는 완전 신제품이다. 초보자에게 친절한 제품을 목표로 하는 신형 1/450 스케일 라인업 제품답게 분할이 복잡하지 않고 조립성이 우수하면서도 기본적으로 상당한 디테일을 보여준다. 가격 역시 5천 엔대로 저렴하다. 이후 한정판으로 침몰 80주년 기념판을 발매했다. 큰 스케일 시나노 중에서는 최고의 품질을 보여주는 제품이다.
- 1/550
- 크라운
1976년 제품이다.
- 1/700
- 마루산
1963년 제품이다. - 도유샤
1970년 마루산 제품을 재포장 발매했다. - 타미야
1971년 발매된 구금형과 1999년 발매된 신금형이 있다. 둘 다 워터라인 시리즈 라인업이다. 조립 편의성이 영 좋지 못한 동 시대의 빅 스케일 시나노들과는 달리 조립 편의성이 좋고 프로포션도 우수하고 가격도 적당하면서도 시나노의 위용을 느낄 수 있었기에 인기가 상당히 많았다. 신금형의 경우 품질은 좋지만 이후 발매된 후지미 넥스트 시나노만은 못하다. 신금형은 완성품도 있다. 전용 디테일 업 파츠들은 시나노 모형 중 가장 많다. - 후지미
2017년 WARSHIP NEXT 시리즈 8번으로 발매하였다. 가격은 4천 엔대로 크기에 비해 좀 비싸지만 디테일이 좋고 격납고 내부 공간이 재현되어 있는 등 재현도가 뛰어나고 넥스트 시리즈다운 편리한 조립성에 도색 없이 시나노 특유의 위장을 재현할 수 있는 등 편의성을 지니고 있어 인기가 많다. 아무래도 넥스트 시리즈가 초보자 지향이라 그런지 상판 클리어 버전이나 니퍼 동봉판 등 특이한 한정판이 있다.
- 1/800
- 타미야
1962년 최초 발매된 제품이다.
- 1/880
- 니치모
1974년 최초 발매된 제품이다.
- 1/1000
- 시즈쿄
1960년대 제품이다.
- 1/1200
- 1/2000
- F-Toys
2014년 발매된 재품이다.
- 논 스케일
- 후지미
2014년 치비마루 시리즈로 발매했다. 데포르메된 외형을 가진 제품인데, 기묘하게도 후지미에서 전용 에칭도 발매했다.
[1] 시나노가 촬영된 사진은 총 3장인데 저 첫 번째 사진이 시나노를 측면에서, 그리고 근접에서 촬영한 유일한 사진이다. 나머지 2장은 항공촬영.[2] 2019년 8월 11일 NHK의 위성방송 BS1에서 방송된 다큐멘터리. 야마토급 3번함이며 2차대전 세계 최대급 항공모함인 시나노의 설계, 항모로의 개조부터 침몰에 이르는 과정을 고화질 CG로 11장의 챕터로 최후의 모습을 구현, 당시 생존자의 인터뷰, 시나노를 격침한 발라오급 잠수함 SS-311 USS 아처피시(Archerfish)의 엔라이트 함장의 함선 일지를 토대로 시나노의 격침 과정을 세세하게 재현했다. 또한 그동안 현존하는 유일한 1장의 근접 사진 이외에 새롭게 발견된 귀중한 항공 정찰 사진의 분석 과정도 볼수 있다.[3] 개장 전 기존에 이미 장갑을 붙인곳엔 400mm[4] 이 최대수송상태라는 건 아예 정비나 보급도 불가능할 정도로 격납고에 꽉꽉 우겨넣은 상태를 의미한다. 말 그대로 그저 함재기 수송선으로만 취급했을 때의 적재량.[5] 격침 당하던 그날 운송 중이었던 게 오카 50기다. 오카를 기준으로는 몇 기 까지 탑재할 수 있을지는 모른다. 시나노가 운송 중이던 오카는 침몰 시까지 탄약과 연료를 장착하지 않은 상태라서 물에 둥둥 뜬 이것을 붙들고 목숨을 구한 사람이 여럿 있다고 한다.[6] 과달카날 해전 당시 오판으로 인해 퇴각했던 아베 히로아키 제독의 친동생이었다.[7] 개장도 완료되지 않은 상태로 격침당한거다. 이것이 시나노의 탑재기 수가 적은데 상당히 공헌했다.[8] 월드 오브 워쉽의 군함 설명 페이지 한국어판에서 신나노라는 오타를 내고 그걸 상당히 오랜 기간 동안 방치했다. 그러는 동안 한국의 2차 세계 대전 관련 팬사이트에서는 당연히 신나노 드립이 흥했다.[9] 이후의 미션에서도 마찬가지. 단, 이후의 미션은 아예 하나로 통합됐다.[10] 코만도들은 사전에 탈출에 성공한다. 보너스 미션 목표가 항공모함에 있는 모든 항공기를 망가뜨리고 아군에게 위치를 알린 다음 탈출하는 것이다. 코만도들이 탈출할 때 쓰일 흰색 비행기 2대는 제외.[11] 단 극장 상영판에서는 완전히 다른 모습의 성으로 바뀌었다[12] 정확히는 버프 2번 조정 1번[13] 추가 가능한 가용량, 기본 가용량 까지 합하면 도합 135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