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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시내티 레즈/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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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최초의 프로야구팀이 탄생한 도시 신시내티2. 빅 레드 머신3. 빅 레드 머신 이후4. 2010년대~
4.1. 2012 시즌4.2. 2013 시즌4.3. 2014 시즌4.4. 2015 시즌4.5. 2016 시즌4.6. 2017 시즌4.7. 2018 시즌4.8. 2019 시즌4.9. 2020 시즌4.10. 2021 시즌4.11. 2022 시즌4.12. 2023 시즌4.13. 2024 시즌
5. 관련 자료

1. 최초의 프로야구팀이 탄생한 도시 신시내티

신시내티는 세계 최초의 프로야구팀인 신시내티 레드스타킹스(Cincinnati Red Stockings)가 창단된 도시로 유명하다. 1866년 하버드 대학교예일 대학교의 졸업생들로 이루어진 아마추어 야구 클럽으로 창설된 레드스타킹스는, 3년 뒤인 1869년 내셔널 야구선수협회(National Association of Base Ball Players, NABBP) 소속하의 프로팀으로 탈바꿈한다. 이때 레드스타킹스에 소속된 선수들은 3월 15일부터 11월 15일까지 8개월간 보수를 받는 완벽한 의미의 프로야구 선수들이었으며, 그 결과 이들은 최초의 10인으로서 야구 역사에 이름을 남기게 되었다. 1869년 5월 4일 아마추어팀인 그레이트 웨스턴스 오브 신시내티(Great Westerns of Cincinnati)를 45 대 9로 떡실신시킴으로써 프로팀으로서 화려하게 데뷔한 레드스타킹스는, 당시 유일한 프로팀이었던 만큼 미국 야구계의 깡패로 군림하였다. 사회인야구 리그에 뉴욕 양키스가 출현한 격 미국야구선수협회에 소속된 팀들을 상대로만 57승 무패의 성적을 거두었으며, 이 이외의 팀들을 상대로도 극강의 모습을 보인 끝에 1869년을 65승 무패의 경이로운 성적으로 장식했다. 다만 샌프란시스코보스턴 등의 여러 도시들을 순회하는 미국 투어 경기를 치러야 한다는 이유로 챔피언십에 불참했기에, 전승우승 요건은 물론 전승준 요건도 갖추지 못했다는 게 함정. 레드스타킹스의 연승 행진은 이듬해인 1870년 6월 14일 브루클린 애틀란틱스(Brooklyn Atlantics)에게 7 대 8로 패배할 때까지 84경기 동안 지속되었다.[1]

그러나 당시 프로팀은 있어도 프로리그는 존재하지 않았기 때문에 레드스타킹스는 미국 여기저기를 전전하며 상대팀을 찾아야 했으며, 이러한 불안정한 운영은 수입원 또한 불안정하게 만들었다. 게다가 이 팀은 명색이 프로팀이었던 만큼 당연히 다른 아마추어팀들보다 막대한 재정을 소비해야 했으며, 설상가상으로 그동안 이 팀을 후원한 애런 챔피언(Aaron Champion)마저 사장직에서 물러나자 레드스타킹스는 곧 존폐의 기로에 서고 말았다. 새 사장에 취임한 A.P.C. 본트(A.P.C. Bonte)는 재정 악화를 이유로 선수들 전원에게 내년 계약 불가를 통지했으며, 그 결과 레드스타킹스는 공식적으로 해체되었다. 하루아침에 실업자가 된 선수들 중 해리 라이트(Harry Wright)를 비롯한 4명은, 1871년 최초의 프로리그를 구성한 내셔널 프로야구선수협회(National Association of Professional Base Ball Players, NAPBBP) 산하의 신생팀인 보스턴 레드스타킹스(Boston Red Stockings)에 합류한다. 그리고 나머지 선수들은 내셔널 프로야구선수협회 산하의 또 다른 신생팀이자 수도 워싱턴 D.C.의 최초의 프로야구팀인 워싱턴 올림픽스(Washington Olympics)와 계약한다. 워싱턴 올림픽스는 2년밖에 존속되지 못했지만 보스턴 레드스타킹스는 내셔널 프로야구선수협회가 해산된 1875년 이후에도 한 번의 해체 없이 끈질기게 살아남은 끝에 오늘날까지 그 명맥을 이어 오고 있으며, '레드스타킹스'란 명칭의 잔재는 보스턴을 연고로 하는 또 다른 구단에 남게 되었다.

이후 신시내티에는 한동안 프로야구팀이 존재하지 않다가, 1875년 새로이 창단된 신시내티 레즈(Cincinnati Reds)가[2] 이듬해인 1876년 설립된 내셔널 리그(National League, NL) 산하에 편입됨으로써 다시금 이곳에서 프로야구 경기가 열리게 되었다. 그러나 이 팀 역시 1880년에 해체되고 말았는데, 그 이유가 내셔널 리그의 규칙을 준수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당시 내셔널 리그의 규칙에 따르면 구장에서 술을 팔 수 없었으며 일요일에는 경기 개최 없이 구장을 폐쇄해야 했는데, 이를 레즈가 어겨서 '해체'라는 무시무시한 철퇴를 맞았던 것이다. 두 번이나 프로팀이 없어진 신시내티에 세 번째 프로팀이 창단된 시기는 1881년. 이 팀의 명칭은 신시내티의 첫 번째 프로팀의 이름을 그대로 따온 신시내티 레드스타킹스(Cincinnati Red Stockings)였다. 당시 내셔널 리그의 강력한 대항마였던 아메리칸 어소시에이션(American Association, AA)의 산하팀으로 1882년부터 본격적으로 야구팀으로서의 활동을 시작했으며, 1890년 그 명칭을 레즈(Reds)로 바꾼 후 브루클린 브라이드그룸스(Brooklyn Bridegrooms)와 함께 내셔널 리그로 옮긴 이래 지금까지 내셔널 리그의 산하팀으로 활동해 오고 있다. 즉 오늘날 존재하는 신시내티 레즈는 신시내티의 세 번째 프로팀이자 두 번째 레즈임과 동시에 두 번째 레드스타킹스의 후신인 것.
창단 명칭 창단 연도 창단 시의 소속 리그 프로 활동 기간 비고
신시내티 레드스타킹스 1866 NABBP 1869~1870 해체 후 일부 선수들이 NAPBBP 산하의 보스턴 레드스타킹스와 계약
신시내티 레즈 1875 NL 1876~1880
신시내티 레드스타킹스 1881 AA 1882~ 오늘날 존재하는 NL 산하의 신시내티 레즈의 전신

이상의 과정을 살펴보면 최초의 프로팀 신시내티 레드스타킹스의 '적통' 자체는 오늘날 존재하지 않으며, 그 유산을 이어받은 구단과 관련해서는 애틀랜타 브레이브스가 신시내티 레드스타킹스의 후신이 된다. 괜히 메이저리그 사무국이 이 구단을 가장 오랜 역사를 가진 팀으로 공인한 것이 아니다. 최초의 10인 중 찰리 굴드(Charlie Gould), 찰리 스웨지(Charlie Sweasy), 앤디 러나드(Andy Leonard), 칼 맥베이(Cal McVey)만이 1875년 창단된 신시내티의 두 번째 프로팀 '신시내티 레즈'에서 뛴 적이 있을 뿐, 오늘날 존재하는 신시내티 레즈의 직계 조상인 신시내티의 세 번째 프로팀 '신시내티 레드스타킹스' 소속으로 뛴 선수는 단 한 명도 없다. 노골적으로 말하면 최초의 프로팀 '신시내티 레드스타킹스'와 오늘날 존재하는 '신시내티 레즈' 간에는 단지 연고지가 신시내티라는 점만 같을 뿐 역사와 창단 당시의 선수 구성 등 기타 모든 면에서 서로 완벽히 다른 팀이다. 물론 레즈는 최초의 프로팀 '신시내티 레드스타킹스'를 자기 팀의 전신으로 보고 있지만, 일개 팀이 주장하는 역사와 메이저리그 사무국이 공인한 역사 중 어느 쪽을 받아들여야 할지는 명약관화... 실제로도 2021년에는 브레이브스 유니폼의 소매에 팀의 창단 150주년을 기념하는 패치가 부착되었다. 이쯤 되면 이 단락의 설명은 애틀랜타 브레이브스 항목에 있는 게 더 어울린다

추신수의 신시내티 레즈 이적 이후, 엠스플이 추신수를 홍보하는 중간광고에서는 신시내티 레즈의 주장을 받아들여 레즈를 레드스타킹스의 후계자인 최초의 프로야구팀으로 소개했었다. 그래서 이 당시 엠스플로 추신수 중계를 본 사람들은 레즈를 최초의 프로야구팀으로 잘못 알고 있는 경우가 많다.

어쨌든 최초의 프로야구팀이 탄생한 도시답게 이곳의 연고 구단인 신시내티 레즈는 '최초'라는 수식어가 붙은 여러 기록들을 만들어냈다. 최초로 야간 경기를 치른 팀. 최초로 비행기로 이동한 팀, 최초로 캡틴의 유니폼에 'C' 마크를 부착한 팀 등등... 1980년대까지는 직전 해의 성적에 상관없이 무조건 개막 경기를 홈에서 치르며, 항상 해당 시즌의 전체 개막전을 치르는 특권을 누리기도 했다. 1919년 블랙삭스 스캔들에 힘입어 우승한 팀이기도 하며, 역대 성적은 9번의 리그 우승과 5번의 월드시리즈 우승...

파일:redstockings150.jpg

2019년 2월 12일(현지 시간) 신시내티 레즈 구단은 최초의 프로야구팀 신시내티 레드스타킹스의 창단 150주년을 기념하는 차원에서 올드 유니폼(throwback uniform) 15종을 선보였으며, 메이저리그 사무국 역시 2019년도 전 구단 유니폼의 소매에다가 'MLB 150'이라고 적힌 패치를 붙이기로 결정했다. 물론 이 소식을 다룬 현지의 언론 기사들에도 신시내티 레드스타킹스와 지금의 신시내티 레즈는 '공식적으로' 다른 팀이며, 현존 구단 중 가장 오래 지속되는 팀은 브레이브스임을 명시해 놓았다. (관련 기사1)[3] (관련 기사2)[4][5] '레즈'라는 프랜차이즈의 야구 역사가 아닌 '신시내티'라는 도시의 야구 역사를 기념하는 차원에서 이곳의 현재 연고 구단인 레즈가 관련 행사를 적극적으로 벌이는 것뿐으로 쿨하게 받아들여지기에, 이와 관련한 개족보 논쟁은 뜸한 편. 이렇듯 공식적인 프랜차이즈의 흐름과는 무관하게, 자기 연고 도시의 야구 역사(메이저리그+니그로리그)를 기념하는 이벤트를 벌이는 건 메이저리그에서 매우 흔한 일이다.[6]우리나라의 경우 연고지인 인천의 야구 역사를 기념하기 위해 인천군 유니폼을 입곤 하는 SK 와이번스의 사례가, 일본의 경우 연고지인 오사카의 야구 역사를 기념하기 위해 오사카 킨테츠 버팔로즈 유니폼을 입곤 하는 오릭스 버팔로즈[7] 사례가 이에 해당되는 셈.

2. 빅 레드 머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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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히 1970년대에는 포수 자니 벤치, 1루수 토니 페레즈, 2루수 조 모건, 3루수 피트 로즈, 유격수 데이브 콘셉시온, 좌익수 조지 포스터, 중견수 세자르 헤로니모, 우익수 켄 그리피 시니어 등의 빅 레드 머신(the Big Red Machine)이 대인배가 생각나면 순전히 기분 탓은 아니고 진짜 여기에서 별명을 따서 쓴게 맞다.으로 불리는 높은 공격력으로 6번의 지구 우승과 4번의 리그 우승, 2번의 월드시리즈 우승으로 최전성기를 누렸다. 그런 영광을 뒤로 하고 레즈는 오랫동안 하락세에 접어든다.

그러던 중 1984년에 자동차 딜러 마지 쇼트가 구단주[8]로 취임하였는데, 그녀는 자신의 애견인 '세인트 버나드'의 털을 만져야 팀에 행운이 온다고 믿었다. 그런 이유인지는 몰라도 1985년부터 4년간 5할 승률을 넘으며 팀은 상승가도를 달렸고, 특히 감독인 피트 로즈는 1985 시즌에 타이 콥이 기록한 통산 최다안타 4191개를 경신했다.

3. 빅 레드 머신 이후

이후에도 괜찮은 성적을 내긴 하지만, 아무래도 빅 레드 머신 시절에 필적할 만큼 성적을 내지는 못했다. 심지어 감독이라는 작자가 주작질까지 할 정도였으니... 하지만 1990년 월드시리즈에서 루 피넬라 감독을 중심으로 배리 라킨, 폴 오닐, 에릭 데이비스 등의 타선에 톰 브라우닝, 호세 리호 등의 선발진, 놈 찰튼, 랍 디블, 랜디 마이어스가 이끄는 불펜진의 맹활약으로 토니 라루사 감독이 이끄는 AL 3년 연속 정상의 오클랜드를 4연승으로 격파하는 깜짝 우승을 차지했다. 이 때 신시내티의 불펜 트리오는 메이저리그 역사상 손꼽힐 정도의 위압감을 자랑했으며, 이 불펜 트리오를 흔히 내스티 보이스라고 불렀다. 하지만 내스티 보이스의 시대는 짧았으니, 1992년 랜디 마이어스의 이적, 1993년 랍 디블의 부진, 놈 찰튼의 이적으로 완전히 해산하게 된다.

90년대는 뜯어보면 팀 성적은 전성기만은 못해도 그럭저럭 괜찮았지만 눈에 띄지는 못했다. 1994년은 좋은 성적을 올렸지만 파업으로 시즌이 중단되고, 1995 시즌은 지구 우승을 했지만 NLCS에서 당대최강 애틀랜타 브레이브스에 무난하게 스윕당했다. 그 사이 팀을 열정적으로 사랑한 마지 쇼트 구단주는 1990년대 초반부터 인종차별적 발언 등의 기행을 저질러 결국 MLB로부터 자진 사직 권고를 받았고, 결국 1999년에 아메리칸파이낸셜 그룹 회장인 칼 린드너에게 구단을 넘겼다.

구단주가 린드너로 바뀐 1999 시즌은 뉴욕 메츠와 정규시즌 마지막날까지 와일드카드 경쟁을 벌였지만 결국 실패하고 말았다. 배리 라킨이 팀의 기둥으로서 튼튼하게 버티고 있었고, 이에 레즈는 유망주 세트를 내주고 시애틀에서 켄 그리피 주니어를 데려오고 헐값에 장기계약까지 맺는다.

하지만 2000년 첫 시즌 40홈런을 쳐낸 그리피는 2001-2002-2003년 합쳐서 43홈런에 그치며 부상과 부진에 빠진다. 동시에 리더 배리 라킨도 노쇠화가 시작. 그와 함께 2001년부터 팀 성적도 나락을 타기 시작한다. 애덤 던션 케이시등이 이끄는 타선에 적당한 트레이드로 원투펀치 브론슨 아로요아론 하랑을 구축했지만 위닝팀이 되지는 못했다. 2009년까지는 죽 하위권에 머물렀다. 여담으로 봉중근LG 트윈스에 입단하기 전에 있었던 구단이기도 하다. 2005년에 첫 선발승을 거두었고 그 날 켄 그리피 주니어가 빅리그 통산 500호 홈런을 때리기도 했다. 그리고 2006년에는 로베르트 카스텔라니가 팀을 샀다.

2008년에 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에서 쫓겨난 월트 자케티[9]를 단장에 임명하고 투수 킬러로 알려진(...)[10] 더스티 베이커빵집 감독을 임명해 조금씩 성적을 올려갔다. 특히 유망주들이 대단히 풍성했고 조이 보토, 제이 브루스, 자니 쿠에토 등이 올라와서 활약하기 시작했다.

4. 2010년대~

2010년에 본격적으로 포텐셜이 터진건지 마침내 2010년 9월 28일 내셔널리그 중부지구 우승을 확정지어 15년만에 플레이오프 진출에 성공했다. 그리고 그 중심에 2010년 내셔널리그 MVP 수상자인 조이 보토는 같은 지구 선수였던 알버트 푸홀스와 비교되는 수준까지 올라왔다. 유망주 시절 평가는 팀동료 제이 브루스가 훨씬 좋았지만... 브루스 역시 우익수로서 파워를 과시하며 함께 강력한 좌타 라인을 구축했다.

15년만에 진출한 2010년 NLDS 1차전에서 필라델피아 필리스의 에이스 할 교수에게 사상 두번째, 내셔널리그에서는 두번째로 포스트시즌 노히트 노런의 굴욕을 당했다.[11] 결국 무난히 스윕 당하면서 시즌을 마무리했다.

2011년에는 보토의 여전한 활약으로 경쟁력이 있었으나 다른 타자들의 침묵, 투수들의 난조 등으로 지구 중위권에 머물렀다.

4.1. 2012 시즌

알버트 푸홀스가 떠난 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프린스 필더가 떠난 밀워키 브루어스를 상대로 2012년에 승부를 걸어볼 심산인지 자케티 단장은 맷 레이토스, 션 마셜, 라이언 매드슨 등 투수력을 대폭 보강했다. 이에 새로운 남자의 팀으로 등극했다.[12]

그런데 정작 시즌이 시작하기도 전에 매드슨이 토미 존 서저리로 시즌아웃 판정을 받아버리는 등 험난한 행보가 예상되었다. 하지만 아롤디스 채프먼이 불펜으로 복귀하여 마무리 자리를 꿰차면서 매드슨의 공백은 메꿔졌고, 조이 보토는 10년 $225M이라는 충격과 공포의 장기계약을 맺은 기념으로 MVP급의 화려한 비율스탯을 자랑하며 팀 공격을 주도했다. 다만 같은 중부지구에서 피츠버그 파이리츠를 이끄는 앤드류 맥커친이란 의외의 복병이 나타나는 바람에 전반기까지 중부지구 선두 피츠버그에 1경기 뒤진 2위에 머물렀지만 이내 다른 팀들의 DTD가 시작되었고 중심타자 보토가 부상으로 이탈한 후에도 팀은 상승세를 타며 압도적으로 중부지구 우승을 차지하는데에 성공했다. 토드 프레이저, 잭 코자트같은 신예선수의 깜짝 활약과 보토의 공백을 메운 라이언 루드윅, 제이 브루스 등의 분전도 있었지만 우승의 가장 큰 원동력은 자니 쿠에토의 사이영급 퍼포먼스를 비롯, 브론슨 아로요, 맷 레이토스, 호머 베일리, 마이크 리크의 5인 로테이션이 개막전부터 시즌 종료시점까지 등판을 거르는 일없이 전부 30경기 이상을 책임져준 강력한 선발진이라고 할 수 있겠다.

그런데 NLDS 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전에서는 초반에 잘 나가다가 홈 3연전에서 개발리며 망했다.

1차전에서 쿠에토가 첫 타자를 삼진으로 잡아내며 기분좋게 시작하는가 싶더니 두번째 타자로 앙헬 파간이 올라왔을 때 허리가 삐끗한건지 그대로 퇴갤하더니 부상으로 아웃되고 말았다. 상황이 이렇게 됐으니 샌프란시스코는 1차전을 잡아서 기세를 올려야 했다.(홈 경기이기도 하고) 그런데 신시내티는 쿠에토 후속으로 올라온 르큐어가 틀어막고 뒤를 이어서 레이토스가 매우 잘해준 반면 샌프란시스코는 맷 케인이 개털리며 1차전을 내주고 말았다. 2차전에서는 아예 기세를 올려서 신시내티의 타선이 터지며 아로요는 4이닝까지 퍼펙트를 기록하는 등 신나게 달리며 또 승을 챙겼다. 남은 건 홈 3연전이었으니 그야말로 부담없이 1승만 더 챙기면 내셔널리그 챔피언쉽 시리즈에 진출하는 상황이었다. 그런데 뭘 잘못 먹었는지 홈에서 무너져 버렸다.

보토가 치라는 홈런은 안치고 똑딱질만 하고[13] 3차전 연장전에서 스캇 롤렌의 클러치 에러가 나오면서 3차전은 샌프란시스코가 가져갔다. 이러면 정신을 차리고 4차전을 잘 했어야 하는데 저번 경기에서는 아쉽게 털렸으니 이번에는 개털려야지(...)라는 생각이었는지 3홈런을 맞는 등 정신없이 맞으며 8:3으로 또 졌다. 마지막 5차전에서는 4회까지는 맷 케인과 레이토스가 투수전을 벌이는가 싶더니 운명의 5회초가 되자 전황이 확 기울어버렸다.

안타 후 3루타 맞고 주자를 1명 잡아냈으나 에러로 1명을 살리고 그 다음은 볼넷으로 또 1명을 출루시켰다. 이어서 안타를 또 맞아서 만루가 되었는데, 다음 타자는 포지신... 샌프란시스코는 만루 홈런을 포함해 한 번에 6점을 따냈고, 그 점수는 어떻게 채워볼 수 있는 점수가 아니라서 신시내티는 내셔널 리그 최초로 역스윕, 그것도 홈 3연전에 역스윕당한 팀이라는 굴욕의 기록을 세우게 되었다.

4.2. 2013 시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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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3. 2014 시즌

2013 시즌 종료 후 시즌 막판의 졸전과 와일드카드 게임에서의 패배를 이유로 더스티 베이커 감독이 경질되었다. 새 감독으로 투수 코치 브라이언 프라이스가 선임되었다.

레즈가 잡을 수 없을 정도로 몸값이 뛰어버린 추신수텍사스 레인저스로 이적했고, 잡아보려는 시도조차 하지 않은 브론슨 아로요 역시 애리조나 다이아몬드백스로 이적했다. 브랜든 필립스의 트레이드설이 유력하게 돌았지만 결국 이뤄지지 않았고, 오프시즌에 아무 일도 안하냐고 까인 월트 자케티였지만 팀의 주축 선발 호머 베일리에게 6년 $105M의 연장계약을 안겨주었다.

3월 19일 캔자스시티 로열스와의 시범경기에서 6회 올라온 아롤디스 채프먼살바도르 페레즈의 강습 타구를 머리에 맞는 큰 부상을 입었다. 머리를 맞은거다 보니 정확한 진단은 기다려 봐야 알겠지만 최소한 올 시즌에는 정상 등판이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이후 그나마 다행히 눈이나 뇌에 직접적인 손상은 없다고 한다. 함몰된 안면 뼈에 금속판을 이식하는 수술을 할 예정이라고 한다. 복귀시기는 치료기간 6~8주 포함 6월 예정.

전반기까지는 5할승률을 오르내리며 중부지구 1위를 먹을수있는 성적을 찍었으나... 후반기에 대추락을 하면서 플레이오프 경쟁에서는 밀려난 상태 덕택에 맷 레이토스를 판다는 소리도 들려왔으나 결국 무위로 그쳤다.

76승 86패 (NL 11위)
타/출/장 : .238(14)/.296(14)/.365(11), 득점 13위, 도루 2위, 홈런 8위
팀 평균자책점 3.59(9위), 선발 3위, 불펜 14위
팀 수비력 4위 (팬그래프 팀 필딩 UZR기준)

선발과 수비력만 남고, 불펜과 타력은 멸망했다. 선발투수가 아무리 좋아도 팀의 다른 부분이 재앙이면 망한다는 것을 보여준 대표적 사례. 선발진은 싱그라니가 단조로운 구종을 견디지 못하고 난타당하고, 맷 레이토스호머 베일리는 부상에 허덕였다. 대신 에이스 자니 쿠에토가 건강한 한해를 보내며 20승 투수로 복귀, 마이크 리크는 214이닝을 먹으며 여전히 든든했으며, 불펜 롱맨으로 좋은 시즌을 보냈던 알프레도 사이먼이 33세에 선발 정체성을 깨달으며 선발 한 자리를 차지했다. 아로요의 빈자리는 보이지 않았다. 대신 불펜은 재앙. 콜로라도 로키스에 이어 14위. 사실상 꼴찌 부동의 마무리 아롤디스 채프먼에 부상에 허덕이던 조나단 브록스턴이 복귀했음에도, 후버, 파라, 온두르섹 등 기존 불펜 요원이 모조리 나가리된 결과다.

타선은 미완의 대가였던 토드 프레이저가 29홈런 90타점, 데빈 메조라코가 25홈런 80타점으로 드디어 터졌다. 빌리 해밀턴이 톱타자로서 56도루/23실패에 3할도 안되는 출루율로 부진했으나 데뷔첫시즌으로는 준수했고, 잭 코자트는 더 밑바닥의 공격력을 보여준대신 수비로 몸값을 했다. 그러나 나머지 선수들은 모조리 망했다. 조이 보토가 부상과 부진으로 무너지고 제이 브루스까지 부진에 동참했으며, 브랜든 필립스와 라이언 루드윅 역시 2013 시즌만 못했고 네그론을 제외한 모든 백업멤버들이 민폐 수준의 타격을 보여준게 원인이었다.

쿠에토 메조라코 프레이저가 추신수가 있었던 2013 시즌에 터졌다면 하는 아쉬움이 남는 해였다. 문제는 막강 선발진도 기한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것. 쿠에토, 레이토스, 리크, 깜짝 활약한 사이먼까지 2015 시즌 후에 FA로 풀린다. 다 잡는 건 불가능하고 스몰마켓 사정상 누군가 트레이드하여 유망주를 충원하는 무브가 필요한 상황. 보토와 베일리가 크고 아름다운 연봉을 받는 한 리빌딩은 어렵지만, 유망주 샘이 마르면 스몰마켓 운영은 해 나갈 수 없다. 문제는 빅마켓형 단장 자케티가 스몰마켓 무브를 잘 해 줄지 하는 것.

비시즌에는 맷 레이토스를 내주고 포수 채드 월락과 유망주투수 앤서니 데스클라파니를 받아왔다. 그리고 또다른 FA가 되는 투수인 알프레도 사이먼을 내주고 투수인 조나단 크로포드와 유격수 에우제니오 수아레스를 받아왔다. 또한 투수 유망주들을 내주고 말론 버드를 받아오는 트레이드를 시켰다.

4.4. 2015 시즌

저력은 있지만 좀 어중간한 상황이라는 평가를 시즌 시작 전부터 받았고 5월 하순 현재 그런 평가 그대로, 5할이 좀 못 되는 승률에 머물러 있다. 타선과 선발진은 메조라코와 호머 베일리의 부상, 그리고 제이슨 마퀴의 삽질에도 불구하고 평타는 쳐주고 있다. 토드 프레이저가 홈런 선두권에 나서고 조이 보토 또한 5월 들어 기세가 꺾이긴 했지만 4월에 맹타를 휘두르며 부활하는 모습을 보였으며 코삭제 잭 코자트까지 준수한 공격력을 선보이는 중이다. 투수진에서는 기존 쿠에토와 리크에 레이토스 트레이드로 팀에 합류한 데스클라파니와 마이클 로렌젠, 레이셀 이글레시아스 등이 빈자리를 메워주고 있다. 다만 불펜은 여전히 핵실험 중. 채프먼이 건재하고 후버와 싱그라니가 비교적 그럭저럭 던져주고 있음에도 바덴호프와 케빈 그렉은 ERA 10점대를 넘나드는 투구를 하며 매일같이 방화를 했다. 케빈 그렉을 제발 좀 내쫓아 달라는 서명운동이 진행되어 3000명 이상이 서명했을 정도. 링크 결국 지명할당되었다. 하지만 이후에도 채프먼와 후버를 제외한 불펜진은 정신을 못 차리고 방화를 일삼았다.

여기에 부상이던 호머 베일리는 결국 토미 존 서저리를 받게 되었고 메조라코도 엉덩이 수술을 차일피일 미루다 사실상 시즌 아웃, 공격력 포텐이 터진 코자트도 부상으로 시즌아웃되는 등 부상 악재가 이어지면서 포스트시즌은 진작에 불가능하게 되었다. 그러자 본격적으로 선수들을 시장에 내놓게 되었고 결국 쿠에토는 캔자스시티 로열스로, 리크와 말론 버드는 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로 트레이드되었다.

8월 28일 밀워키 브루어스와의 경기에서 패하면서 MLB 사상 5번째 만패 팀이 되었다.

10월 2일(현지시간) 피츠버그 파이어리츠에게 패하면서 리그 13연패를 달성했다.

처참한 성적 때문에 사실상 리빌딩 수순에 들어갔고 시즌 후에 브랜든 필립스, 조이 보토, 아롤디스 채프먼등을 전부 트레이드 매물로 쓸 작정을 하고있다. 이중 보토는 팀을 떠나기 싫다며 계속 트레이드를 거부하고 있고 필립스는 워싱턴 내셔널스로 이적이 유력했지만 막판에 본인이 거부권을 행사. 채프먼은 로스앤젤레스 다저스로의 이적이 유력했지만 사고친게 들통나며 파토났고 재시도 끝에 2015년이 끝나기 직전에 뉴욕 양키스로 이적시키는데 성공했다.

4.5. 2016 시즌

모두의 예상에 크게 빗나가지 않은 탱킹 시즌. 개막 직전에 아롤디스 채프먼과 3루수 토드 프레이저를 트레이드하며 리빌딩 시즌임을 천명했다. 시즌 중에는 제이 브루스까지 추가로 뉴욕 메츠로 보냈다. 5월에 11연패를 당하는 등 전반기에 이미 32승 57패 승률 .360을 찍으며 NL 중부 꼴찌자리를 일찌감치 예약했고 후반기에도 5할에 못 미치는 성적을 보이며 68승 94패, NL 중부지구 꼴찌로 시즌을 마감했다,

조이 보토. 애덤 듀발이 버틴 중심타선의 파괴력 남은 팀이 되었다. 특히 쿠에토, 채프먼 등 주축들이 죄다 빠져나간 투수진은 그야말로 초토화. 그래도 평타는 친 선발진[14]에 비해 불펜의 불질[15]이 끔찍했다. 그냥 나쁜 투수진 정도가 아니라 역사적으로도 최악의 투수진들 중 하나인데, 258피홈런은 1996년 디트로이트 타이거즈의 241피홈런을 뛰어넘는 메이저리그 단일시즌 역대 최다 피홈런 기록이며 아예 팬그래프 기준으로는 투수진 합산 WAR -0.5을 찍으며 1901년 이후 메이저리그에서 투수진 WAR이 마이너스를 기록한 최초의 팀으로 기록될 정도였다. 이는 메이저리그 올타임 뒤에서 3위에 해당하는 기록이다. 팬그래프 기사 FiveThirtyEight 기사

4.6. 2017 시즌

오프시즌에 스캇 펠드먼, 드류 스토렌을 영입한 것 외에 별다른 움직임은 없었다.

6월 10일 현재 29승 31패로 지구 3위를 달리고 있다. 시즌 시작과 함께 앤써니 데스클라파니, 브랜든 피니간 등이 부상으로 이탈하면서 눈물나는 선발진을 구성하게 되어 지구 최하위가 유력했다. 그런데 의외로 레이셀 이글레시아스를 필두로 마이클 로렌젠, 드류 스토렌 등이 좋은 모습을 보이고 있는 불펜과 FA로이드가 아니면 설명할 수 없는 잭 코자트의 MVP급 활약, 꾸준한 보토 선생과 아담 듀발, 에우헤니오 수아레스, 스캇 쉐블러, 스쿠터 제넷 등이 좋은 모습을 보이고 있는 타선과 수비진의 활약으로 5할 -5정도에서 머물고 있다. 그렇지만 선발진이 박살났기에 포스트시즌은 기대하기 힘든 상황이다.

결국 7월 중순부로 선발 ERA 6점대로 30개 구단중 30위라는 독보적인 기록을 내며 이번 시즌 자체를 시원하게 망하고 있는 중이다.

최종 성적은 68승 94패 중부지구 최하위.

4.7. 2018 시즌

팀 전력이 파탄난 상황에서 맞이한 올해도 변함없이 형편없는 성적을 내고 있으며, 4월 19일 기준으로 3승 15패로 지구 최하위는 물론이고 메이저리그 전체에서도 최하위로 추락하자 브라이언 프라이스 감독과 투수코치 맥 젠킨스가 경질되었다. 일단 벤치코치로 있던 짐 리글맨이 당분간 대행으로 팀을 이끈다고 한다.

4월 24일 시점에서 3승 18패 승률 0.143로 압도적인 메이저리그 최하위를 달리고 있고, 유일한 1할대 승률을 기록하고 있다.

5월 13일 기준으로 5연승을 기록하며 13승 27패 승률 0.325를 기록하며 성적이 조금은 전보다 나아졌다. 노려라 승률 3할

6월 25일 기준 31승 45패로 승률 4할을 넘었다. 이후에도 무난히 버텨 가면서 어느덧 지구 4위와 3게임차로 좁혀졌다. 시즌 초반 페이스와 달리 올해 내셔널 리그 팀들은 아무리 못 해도 승률 4할 정도는 기록할 분위기이다. 문제는 아메리칸 리그이다. 승률이 3할 5푼도 안 되는 팀이 세 개나 된다.

전반기를 43승 53패로 마쳤다. 지구 꼴찌지만, 감독 교체 이후 40승 38패로 나름 선전한 편이다.

타선에서는 에우제니오 수아레스, 스쿠터 제넷이 각 포지션에서 최고 수준으로 자리잡았고, 조이 보토는 장타력이 떨어졌지만 여전히 출루율 1위를 찍는 준수한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코자트의 빈자리를 메운 호세 페라자도 6월 이후 좋은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하지만 투수진은 메츠에서 쫒겨난 맷 하비가 최고 투수일 정도로 선발이 제 기능을 하지 못하고 있다.

9월 26일, 윌리엄스 단장이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리글맨 현 감독대행, 존 패럴보스턴 레드삭스 감독 등 5인이 후임 감독 면접 대상자라고 밝혔다.

3승 15패로 최악의 출발을 했지만 감독 대행으로 바뀌고 나서는 그나마 많이 나아졌다. 시즌 최종 성적은 67승 95패. 타선의 경우 보토를 중심으로 스쿠터 제넷, 수아레즈가 활약했고 불펜진도 이글레시아스와 휴즈가 주축을 잡아주었다. 마이클 로렌젠은 불펜의 궂은 일을 도맡았을 뿐만 아니라 불펜투수임에도 2할 9푼의 타율에 4홈런을 때리는 기염을 토하며 투타겸업의 가능성이 진지하게 논의될 정도의 성적을 냈다. 문제는 선발로 특히 호머 베일리는 1승 14패1승이라도 한게 용하다라는 성적을 받으며 무너졌다. 참고로 호머 베일리의 2018년 연봉은 2100만 달러이다. 중간에 건너온 맷 하비가 선발진에선 제일 나았다.

시즌 종료 후 2001년 당시 시애틀 매리너스의 3루수를 지키며 전성기를 함께하기도 했던 데이빗 벨과 3+1년 계약을 맺으며 감독 선임 작업을 완료했다.

4.8. 2019 시즌

선발 투수진을 그나마 지탱해주던 맷 하비로스앤젤레스 에인절스로 떠났다.

12월 22일(한국시간), LA 다저스와의 트레이드가 발표됐는데, 호머 베일리와 유망주인 지터 다운스 그리고 조시아 그레이를 주고 맷 켐프, 야시엘 푸이그, 알렉스 우드에 포수 유망주 카일 파머를 데려왔다. 덧붙여 호머 베일리는 다저스로 가자마자 유니폼도 입어보지 못하고 바로 방출됐다. 이번 트레이드가 다저스는 페이롤 절감, 레즈는 전력 보강이었기 때문에 페이롤을 낮춘 다저스가 보상조로 베일리를 받아온 것. 거기에 2019년 1월 21일 소니 그레이마저 데려오면서 1선발 자리를 메꾸었다.

현지 시간 5월 6일, 샌프란시스코 전에서 1회에 수아레즈-윙커-디트릭이 선발투수 제프 사마자를 상대로 3구만에 3홈런을 뽑아냈다. 그러니까 초구홈런을 3연속으로 친 것. 하지만 그러고도 졌다(...).

현지시간 7월30일에 클리블랜드 인디언스샌디에이고 파드리스간의 삼각 트레이드를 통해 클리블랜드의 우완투수 트레버 바우어를 영입하고 외야수 야시엘 푸이그를 내주었다.[16] 그리고 이날 피츠버그 파이어리츠벤치클리어링을 했다......바우어는 클리블랜드에서 마지막으로 관중석으로 공을 던지고 푸이그는 신시내티에서 마지막으로 벤치클리어링을 했다...

4.9. 2020 시즌

시즌 성적은 31승 29패로 거의 딱 5할을 기록, 포스트시즌 진출에 성공했다.

와일드카드전 상대인 애틀랜타를 상대로 1차전은 트레버 바우어가 7.2이닝 무실점으로 막았지만 타선이 11안타 4사사구를 기록했음에도 득점권에서 12타수 1안타에 그치며 경기는 연장으로 흘러갔고, 13회에 프레디 프리먼에게 끝내기 안타를 맞으며 패배했다. 2차전 역시 루이스 카스티요가 분투했지만 그놈의 타선이 이날 경기도 무득점을 기록하며 무기력하게 패배, 허무하게 가을야구를 마감했다.

4년 64M을 주고 데려온 닉 카스테야노스마이크 무스타커스는 무기력했고 포스팅 시스템으로 데려온 아키야마 쇼고 역시 마찬가지였다. 특히, 제일 문제는 조이 보토가 노쇠화로 인한 하락세 폭이 생각 이상으로 크다는 것. 이미 타격은 반쯤 망가졌고 수비마저 좋지 않은 상태다.

4.10. 2021 시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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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11. 2022 시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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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12. 2023 시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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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13. 2024 시즌

2007년부터 약 16년을 함께 해 온 리빙 레전드 조이 보토가 2023시즌에서도 에이징커브를 제대로 맞으면서 부진을 이어나갔기에 결국 구단에서 바이아웃과 700만불을 대가로 내보냈다. 이후 스토브리그서 콜로라도에 뛰던 브렌트 수터와 1년 300만, 양키스에서 먹튀 행보를 이어갔던 프랭키 몬타스와 1년 1400만 영입으로 끝났으며 지난해 와일드카드 순위 6위였던만큼 올 시즌은 리빌딩 성과를 보여주려는 해로 보인다.

일단 투수는 헌터 그린, 타자는 엘리 데 라 크루즈를 중심으로 미래를 구성하였으나 아직까지는 확실한 선수층이 보이지는 않아서 와일드카드 승선이 가능할지는 의문인 상황.

5. 관련 자료

  • The Official History of Cincinnati Reds (1987, MLB Vide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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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이 연승 기록은 자료마다 조금씩 차이를 보인다.[2] 종종 '레드스타킹스'로 불리기도 했다.[3] The Wrights headed to Boston, using the Red Stockings name, and helped form the club in 1871 that today calls itself baseball's oldest continuously operating team. Surprise: it's not the Boston Red Sox, but the Braves, who became the Braves while in Boston, moved to Milwaukee, and settled in Atlanta.[4] Contrary to popular belief, the Cincinnati Reds are not, in fact, the direct descendants of the 1869 Red Stockings. That club didn’t last and, in reality, the Atlanta Braves have the closest claim to their history. (중략) Legally and technically speaking that team had nothing to do with the current Reds either, …[5] 단 이 기사에서 스스로 브레이브스 팬임을 밝힌 필자는, 레즈가 레드스타킹스의 역사를 기념하는 행위에 쿨한 반응을 보였다. 당장 브레이브스의 이전 연고지인 보스턴과 밀워키 시절의 역사에 대해서도 본인은 심드렁한 마당에, 레즈가 자기 연고 도시인 신시내티의 야구 역사를 기념하는 행위가 충분히 가능하다는 태도를 드러낸 것.[6] 비슷한 사례로 밀워키 브루어스도 과거 브레이브스가 밀워키 연고였던 것을 기념하기 위해 브레이브스 유니폼에 알파벳만 M인 유니폼을 착용하기도 한다.[7] 팀명만 자신이 합병한 구단에서 따온 '버팔로즈'일 뿐 이 팀의 공식적인 프랜차이즈 흐름은 '한큐 브레이브스-오릭스 브레이브스-오릭스 블루웨이브-오릭스 버팔로즈'다.[8] 오클랜드 애슬레틱스 전 구단주인 스티븐 쇼트의 사촌.[9] 카디널스의 월트 자케티(단장)-데이브 던컨(투수코치)-토니 라 루사(감독)는 애틀랜타의 존 슈어홀츠 - 레오 마조니 - 바비 콕스에 비견가는 명 스탭들이었으나 유망주를 다소 퍼주는 자케티 식 운영으로 카디널스의 팜이 황량해졌다는 비판이 있었다. 이런 상황에서 야심차게 영입한 마크 멀더가 1년만에 몰락하고 반대로 내보낸 유망주 댄 해런이 크게 부각되면서 입지가 좁아졌다. 여기에 토니 라 루사 감독과의 파워 게임까지 겹치면서 둘 중 하나는 떠나야 할 상황이 되었고, 결국 2008년 경질된다. 그리고 이 때 자케티 단장의 편을 들었다가 라루사 감독과 척을 지고 트레이드 형식으로 팀을 떠난 선수가 이후 레즈의 3루수로 잠시 활약하기도 한 스캇 롤렌.[10] 특히 컵스 시절이 그의 전성기(...)로 꼽힌다. 마크 프라이어케리 우드가 그의 역작이다. 그리고 여기서도 망가뜨린 선수가 아론 하랑에딘슨 볼케즈.[11] 포스트시즌 첫 번째 노히터는 유일무이한 뉴욕 양키스의 돈 라슨이 브루클린 다저스를 상대로 기록한 퍼펙트 게임.[12] 샌디에이고 파드리스에서 트레이드해온 맷 레이토스의 경우 에딘슨 볼케즈와 함께 1라운더 세 명을 넘겨 버렸지만, 욘더 알론소야스마니 그랜달은 1루수와 포수로서 팀의 대들보 조이 보토와 한 발 앞선 유망주 포수 메조라코에게 앞길이 막혀 있는 상태였고 박스버거는 불펜요원이다. 잉여자원을 활용해서 얻을 수 있는 최대치를 얻어낸 트레이드. 레이토스도 2012 시즌, 2013 시즌 만족스러운 활약을 했다.[13] 7월에도 홈런이 없었는데 무릎 부상 이후 장타력이 완전히 실종되었다.[14] fwar 3.4[15] fwar -3.6[16] 트레이드를 총 정리하자면 인디언스는 프란밀 레예스, 로건 알렌 ,야시엘 푸이그, 빅터 노바 ,스캇 모스를 영입하며 즉시전력감과 유망주를 보충하였으며 신시내티는 바우어, 샌디에이고는 신시내티의 유망주 외야수인 테일러 트라멜을 얻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