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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프가니스탄 이슬람 공화국 제2대 대통령 모하마드 아슈라프 가니 아흐마드자이 محمد اشرف غني احمدزی Mohammad Ashraf Ghani Ahmadzai | |
<colbgcolor=#d32011><colcolor=#fff> 출생 | 1949년 5월 19일 ([age(1949-05-19)]세) |
아프가니스탄 왕국 로가르 주 | |
국적 | [[틀:깃발| [[틀:깃발| ]][[틀:깃발| ]][[아프가니스탄 공화국| ]](1973~1978) [[틀:깃발| ]][[틀:깃발| ]][[아프가니스탄 민주 공화국| ]](1978~1992) (1992~1996) [[틀:깃발| ]][[틀:깃발| ]][[아프가니스탄 이슬람 토후국| ]](1996~2001) (2001~2002) (2002~2004) (2004~2021) 불명(2021~)[1] | ]][[틀:깃발| ]][[아프가니스탄 왕국| ]](1949~1973)
민족 | 파슈툰족 |
배우자 | 룰라 가니[2] (1975년 결혼) |
자녀 | 마리암 가니, 타리크 가니 |
학력 | 레이크 오스위고 고등학교 (졸업) 베이루트 아메리칸 대학교 (법학 / 학사) 컬럼비아 대학교 (문화인류학 / 석사) 컬럼비아 대학교 (문화인류학 / 박사) |
종교 | 이슬람 |
신체 | 170cm, 72kg |
정당 | [[무소속(정치)| 무소속 ]] |
경력 | 아프가니스탄 재무부장관 |
2002년 6월 ~ 2004년 12월 | |
제2대 아프가니스탄 대통령[3] | |
2014년 9월 29일 ~ 2021년 8월 15일 |
[clearfix]
1. 개요
대통령 시절 모습[4] |
아프가니스탄 이슬람 공화국의 제2대 대통령.
2009년에 처음으로 대선에 출마했으나 낙선했으며, 2014년 대선의 결선에서 56.4%의 득표율로 압둘라 압둘라(43.56%)를 누르고 당선되었다. 하지만 탈레반에 의해 수도 카불이 함락되자 8월 15일 탈레반에 항복하고 사임했다. 이후 타지키스탄과 우즈베키스탄을 경유해서 아랍에미리트로 망명을 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초기에는 말로라도 강경하게 대응했으나 탈레반이 수도 카불 코앞까지 진격해오자 자신의 목숨이 위험해짐을 알고 탈레반과 합의하여 사실상 국민들을 버려둔채 아프간을 탈레반에게 팔아넘기고 자기 재산만 챙겨 도망간 아프가니스탄 역사상 최악의 매국노라고 할 수 있다.[5]
2. 생애
1949년, 아프가니스탄의 동부 로가르 주의 파슈툰인 가정에서 태어났다. 그는 고등학생 때인 1965년에 미국으로 교환학생을 가게 되었는데, 이 경험이 그의 인생에 많은 영향을 끼쳤다. 고등학교 졸업 후 그는 레바논에 소재한 아메리카 대학[6]에 진학하고 졸업한 뒤, 1977년에는 정부 장학금으로 컬럼비아 대학교로 유학을 가서 문화인류학 박사 학위를 취득한다. 이후에는 UC버클리와 존스 홉킨스 대학교에서 교수직을 맡았다. 그 뒤 가니는 1991년 세계은행으로 이직하여 러시아 석탄 산업을 비롯해 중국, 인도 등 아시아의 여러 개발 사업 프로젝트들을 추진했다.2001년, 9.11 테러가 발생했고, 그로 인해 탈레반 정권이 붕괴하자 가니는 아프가니스탄으로 귀국한다. 이는 24년 만의 귀국이었다. 이후에 하미드 카르자이 정권이 출범하자 그는 재무장관으로 취임해서 조세 체계를 세우고 새 화폐 도입을 추진하는 등, 굵직한 일들을 도맡아 하게 된다. 재무장관직에서 물러난 뒤로는 카불 대학교의 총장을 맡으며 세계은행 총재로 거론되기도 하고 UN 사무총장[7]에도 도전을 하나 둘 다 이루어지지 않았다. 2009년에는 대선 후보로 나갔으나 2.9%라는 절망적인 표를 받고 낙선, 하미드 카르자이가 49.67%로 재선된다.[8] 그 후에 가니는 대중에게 친근감을 얻기 위해서는 자신의 친서방적인 모습을 버리고 아프가니스탄인다운 모습을 해야 한다고 생각하여 많은 이미지 변신을 하기 시작했는데, 자신의 이름 뒤에 부족 이름인 '아흐마드자이'를 붙이고, 아프간 전통 의상을 입으며 수염을 기르는 등 많은 것들을 바꿨다.
2014년 아프가니스탄 대선 때에는 전임 정부의 부정부패에 지친 대중들에게 부패척결을 주요 공약으로 삼아 활동하였고, 예전의 정치 견해도 바꿔서 우즈벡계 군벌 압둘 라시드 도스툼을 자신의 부통령 후보로 지명했다. 이 결정은 대중들에게 많은 충격을 줬는데, 예전에 가니는 그를 살인자라고 비난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아프가니스탄의 주요 4민족(파슈툰계, 타지크계, 우즈벡계, 하자르계) 중 우즈벡 민족의 지지를 얻기 위해 가니는 과거의 견해를 버리고 이런 결단을 내렸다. 이로 인해 많은 비난을 받기도 하였다. 왜냐하면 도스툼은 아프가니스탄 내전에서 학살을 저지른 혐의[9]와 전범 재판에서 증인을 입막음하기 위해 고문한 전적이 있기 때문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슈라프 가니는 선거에서 이겼고 대통령에 취임하였다.
3. 대통령 활동
3.1. 2014년
전임 대통령 하미드 카르자이가 미국과 사이가 틀어지며 끝내 맺지 못했던 양국 간의 안보협정을 2014년 9월 30일 카불에서 체결했다. 이로써 미군 1만여 명이 아프가니스탄에 체류하며 현지의 경찰, 군인들의 훈련을 담당할 수 있게 되었다. 기사.3.2. 2018년
탈레반을 합법적인 정치 조직으로 인정할 의향이 있으며, 각종 제재를 완화할 가능성도 있다고 밝혔다. 기사.탈레반에 평화 협상을 제안했다고 한다. 기사.
3.3. 2020년
2019년 9월 28일에 치러진 대선의 최종 개표 결과, 50.64%를 득표해 39.52% 득표에 그친 아프가니스탄 국가연합의 압둘라 압둘라 후보를 누르고 재선에 성공했다. 아프간 중앙선관위는 애초 이번 선거의 잠정 결과와 최종 결과를 각각 지난 해 10월 19일, 11월 7일께 발표할 예정이었으나 검표에 재검표가 계속되면서 여러 차례 연기된 바 있다. #하지만 이 과정에서 야당 측이 반발해 선거 결과에 불복했고, 3월 9일 열린 대통령 취임식에서 아슈라프 가니 대통령과 압둘라 압둘라 최고행정관이 각각 대통령에 따로 취임하면서 국가적 혼란이 발생했다. #
3월 23일, 미국이 이런 상황에 대해 반발해 이 문제가 해결되지 않을 경우 아프간에 대한 원조를 10억 달러 규모까지 줄이고, 가니 대통령과 압둘라 행정관이 최종 합의에 이르지 못할 경우 원조를 더 줄일 수 있다고 경고했다. #
결국 5월 17일, 가니와 압둘라가 권력 공유 계약을 체결하면서 혼란이 마무리되었다. 가니가 대통령 직을 유지하는 대신 두 사람이 동일한 수의 장관을 선출하기로 합의했다. #
3.4. 2021년
3월, 탈레반과의 평화 협정 체결을 위해 민주적인 절차를 통해 탈레반이 새로운 선거를 치르고 새 정부를 구성할 수 있도록 설득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4월 14일, 큰 정치적 위기를 맞게 되었는데 미국 조 바이든 대통령이 공식적으로 아프간 주둔 미군의 완전 철군을 결정한 것. # 이후에도 아프간 국방 및 안보군은 계속 지원할 것이라 밝혔지만, 가니 행정부의 아프간이 자체 전력으로 탈레반의 공격을 막아낼 수 있을지에 대해서는 회의적인 시각이 크다.
실제로 2021년 7월 미군이 철수하자 아슈라프 가니 정부는 순식간에 탈레반한테 무력하게 패배하고 있다. 2021년 내 아프간 정부의 패망은 기정 사실이며, 심지어 2021년 8월 중으로 현 아프가니스탄 정부가 붕괴할 것이라는 전망까지 나올 정도. 가니 대통령 역시 남베트남의 응우옌반티에우처럼 빠른 시일 내에 아프간을 탈출해 국외로 망명하거나, 최악의 경우에는 탈출에 실패하여 1996년 탈레반 정권 수립 초기 탈레반에 의해 사형 당한 모하마드 나지불라 대통령 또는 2011년 아랍의 봄으로 정권이 붕괴하여 반군에 붙잡혀 피살당한 리비아의 무아마르 알 카다피처럼 탈레반 세력들에게 살해/처형당할 가능성도 있다.[10]
8월 11일, 북부의 큰 도시인 마자르이샤리프를 방문하여 방어태세를 점검하였다. 하지만 불과 3일 뒤에 그 도시가 함락될 정도로 상황이 매우 좋지 않다.
8월 15일, 34개 주 중에서 30개 주의 주도가 탈레반에게 넘어갔으며, 수도 카불은 탈레반이 사방에서 진입하기 시작하였다. 이에 아슈라프 가니 대통령은 미국·나토와 긴급회의를 하였다. # 같은 날, 내무부 장관은 그가 사임할 것을 밝히면서 과도 정부가 수립될 것이라고 발표했다.
그런데 가니 대통령은 카불 공세가 시작하기 한참 전인 14일부터 아프가니스탄군에 교전 금지 명령을 지시했다고 한다. 이 명령이 사실이면 아프간 정부군은 과거 독소전쟁 직전의 소련군처럼 혼란에 빠져버린 상태로 탈레반의 공세를 맞이했다는 것.
4. 망명
항복 직후, 탈레반에게 곧 붙잡혀서 처형 당할 거라는 인식에 따라 곧바로 타지키스탄으로 망명을 선택했다. 탈레반은 나지불라와는 달리 가니를 그냥 보내주었다. #[11][12]뒤이은 소식으로는 타지키스탄은 환승지였고, 최종 망명지는 오만이라는 소식이 들렸다.
탈출 당시 엄청난 양의 현금을 갖고 있었다고 하며, 돈을 헬기에 실으려 했는데 모두 들어가지 못해 일부는 활주로에 남겨둬야 했다"고 덧붙였다. # 가니 대통령은 우즈베키스탄 수도 타슈켄트 도착 직후 "학살을 막기 위해 떠난 것"이라고 성명을 발표했다. 그러나 2014년, 2019년 모두 가니 후보와 대선 결선투표에서 경쟁하였던 압둘라 압둘라 국가화해최고위원회 의장(전 부통령, 전 최고행정관, 전 외교장관)[13][14]은 가니를 "수많은 아프간 국민들을 내버리고 무책임하게 도망친 '전직' 대통령"이라고 맹비난했다.
이후 아프가니스탄 판지시르에 남아 잔존 정부군 및 정부 인사를 지휘하고 있는 암룰라 살레 부통령이 그가 나라를 버리고 떠난 유고 상태이기 때문에, 자신이 권한을 전격적으로 이양 받아 정식 대통령이라고 스스로 선포했다.
현지 시간 8월 18일 가니 대통령이 아랍에미리트에 머물고 있다고 국영 WAM 통신이 보도했다. #
8월 18일 페이스북 계정을 통해 공개한 영상에 따르면 아프가니스탄으로 돌아가기 위해 노력 중이라 밝혔으며, #(러시아어) 거액을 챙겨 도피했다는 의혹은 사실이 아니라 전했다. 망명에 대해선 일전과 같이 '유혈 사태를 막기 위해 떠났다'는 입장을 고수 중이다. #
동생 하슈마트 가니는 아예 탈레반이랑 손잡았다. #
미국 국무부 장관 토니 블링컨에 따르면, 카불 함락 전날까지 싸우겠다고 해놓고 바로 그 다음 날 국외로 도피했다고 한다. #
트위터에 "안정과 번영을 확보하지 못한 채 전임자들과 비슷한 비극적 결말을 맞이해 후회스럽다"면서 "다른 모습을 보여주지 못해 아프간 국민들에게 사죄한다"는 글을 올렸다. #
다시 인터뷰에서 8월 15일 탈레반은 카불에 진입하지 않기로 합의했지만 2시간도 안 돼 약속을 깨고 2개의 다른 정파가 다른 방향에서 카불로 진격했다며, 두 정파 간 대규모 충돌이 발생할 경우 도시가 파괴되고 500만 시민이 위험에 처할 가능성이 큰 상황이었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측근들에게 카불을 떠나도록 허락한 뒤 자신은 국방부로 가기 위해 차를 기다렸으나 차는 오지 않았고, 대신 국가안보보좌관이 겁에 질린 보안팀과 함께 와 저항할 경우 '모두 죽을 것'이라고 경고했다. 반 탈레반 병력이 주둔해 있던 코스트로 갈 준비를 하라고 지시했으나, 코스트와 잘랄라바드 모두 탈레반에 함락됐다는 말을 듣고 갑자기 아프가니스탄을 떠나게 된 것이다. #
현재 미국 정부가 가니 대통령의 비리 조사를 하고 있으며, 가니 대통령이 미국이 그동안 지원한 지원금 및 아프간 정부 예산을 횡령한 것이 사실일 경우, 가니 대통령과 그 가족 재산을 무력을 동원해서라도 압류하겠다고 한다. 거기다 국외로 망명했으면 아프가니스탄을 위해서 국제 사회에 개입을 호소하거나, 아니면 아프가니스탄 국민들에게 탈레반과 싸우는 아프가니스탄 국민 저항 전선을 지지할 것을 발표하는 언론 플레이라도 해야 하는데 아무것도 안 하고 있다.
2023년 2월 2일 탈레반한테 1억 1천만 달러를 받고, 나라를 넘기고 도망쳤다는 문서가 폭로되었다.##
5. 평가
긍정적인 평가로는 부패 청산이 있다. 전임자 하미드 카르자이의 정부시절 아프간 정부는 서방 여러 국서 받은 지원금을 고위 관료들의 비리로 족족 날려먹어서 그야말로 만신창이인 정부를 이어받았다. 그는 일단 대선 운동부터 언급했던 비리 척결을 진행하였고, 이는 어느 정도 성과를 거뒀다.가장 눈에 띄는 행보는 아프간 정부군을 비롯한 정예병력이자 특수부대의 본좌들 중 하나인 미 육군 특전단 그린베레가 힘들게 설립하고 직접 훈련시켜 기술과 경험을 전수해준 코만도여단의 병력 증강 및 최신 장비 지원을 통한 개혁을 진행하는 모습이었다. 전 정부 하미드 카르자이 정부는 서방이 탈레반에게 맞설 병력과 인프라를 양성하라며 준 지원금 태반을 받는 족족 비리로 빼돌리고 날려먹어서 목숨 걸고 탈레반과 싸우는 병사들은 무봉급으로 인해 전투를 하기도 전에 탈레반에게 항복하여 전향하는 등 추태가 발생했으나, 아슈라프부터는 미군에게 지원금을 받은 것을 꼬박꼬박 지급함으로써 병사의 이탈을 어느 정도 막았고, 하미드 카르자이가 끝내 서명하지 않았던 상호방호조약을 서명함으로써 NATO와 미군 특수전부대가 경찰과 병력 양성에 전폭적으로 도움을 주면서 병력의 질이 초반보다는 매우 좋아졌다.
그러면서도 아프간 정규군만의 디지털 위장패턴(US4ECS)을 통일화시키고 코만도 병력은 서방 군대 특수전 병력 못지않은 선진적인 개인 장비들과 무기들을 착용하고 작전을 뛰며 탈레반 소탕에 앞장서는 데에 성공하였다. 이렇게 서방의 지원이 아슈라프 정권부터는 제대로 군부대에 돌아가기 시작하면서 아슈라프 행정부 집권 ~ 미군 철수 이전까지만 해도 정부군은 탈레반에게 반격을 가하고 탈레반의 거점을 어느 정도 수복하는 등의 성과를 거두었다. 게다가 더 이상의 전쟁을 막기 위해 탈레반을 정치 세력으로 인정하는 것과 제제를 풀어준다는 조건으로 탈레반과의 평화 협상을 시도하였으나, 탈레반은 이를 거부하면서 물 건너 간다.
그러나 그의 행보도 2019년부터 삐걱거리기 시작하는데, 최고행정관 압둘라가 야당과 손을 잡아 대선에 불복을 선언해버린 것. 아슈라프는 외부에는 탈레반 내부에는 정적인 상황은 피하기 위해 정치적 타협을 하였으나, 하필 아프간이 유지할 수 있던 기둥인 미국의 수장은 고립 정책을 추구한 도널드 트럼프였다. 트럼프는 2019년 11월에 카타르 도하에서 탈레반 대표단과의 협의 끝에 주둔군 전원 철수를 합의를 보며 평화 협정을 맺어버렸고 이후 정권인 조 바이든은 중국 견제를 위해 줄 건 준다는 마인드로 평화 협정을 계승하면서 미군의 빠른 철수가 가속화되어 버렸다.
사실 아프간 정부군이 우세를 이어갈 수 있던 것은 다국적 연합군 지상군도 있었으나 제공권이 가장 컸으며 제공권을 보장해준 국제안보지원군의 철수는 탈레반에게 유일한 우위권을 잃은 셈이었기에 교전 중이던 지역이 오랜 전투로 베테랑이 된 탈레반 전투 병력에 의해 점령 당하는 참사가 발생한다. 아슈라프 정권 기간 동안 재정비가 어느 정도 된 정부군은 반 탈레반 민병대, 경찰과 함께 초반에는 반격도 하여 승리를 거뒀으나 결국 탈레반에게 상대하긴 역부족이었고, 결국 계속된 패전과 부패 등으로 정규군은 끝내 전의를 상실해버리면서 카불까지 탈레반이 밀고 들어왔다.
유일한 큰 업적은 미군에게 지원받거나 미군과 국제안보지원군이 남기고 간 장비들을 판지시르로 빼돌려 놨다는 것이다. 코만도 여단이 아닌 일반 아프간군이 부패한 것을 알고 있는 가니 전 대통령도 답이 없다 생각해서 최신 무기들을 미군 철수 전에 군수물자들의 상당량을 판지시르로 옮겨놨다. 처음에는 부패로 조금 빼돌려진 수준이거나 주둔군이 있었으니까 그들을 위한 무장 정도로 생각했지만 정작 탈레반이 쳐들어가자 엄청난 규모의 병력이 중무장한 채로 튀어나와 저항했고, 주도가 함락된 뒤에도 무너지기는커녕 오히려 저항을 이어간 건 물론 오히려 탈레반에게 타격을 줌으로써 실제로는 의도적으로 대량의 물자를 옮겨놓았음이 증명되었다.
탈레반에게 카불이 함락된 후 망명을 위해 2021년 8월 16일 우즈베키스탄 수도 타슈켄트 도착 직후 "학살을 막기 위해서 떠난 것"이라고 성명을 발표했다. 그러나 2014년, 2019년 모두 가니 후보와 대선 결선투표에서 경쟁했던 압둘라 압둘라 국가 최고화해위원회 의장(전 부통령, 전 국회의장)은 가니를 "수많은 아프간 국민들을 내버리고 무책임하게 도망친 '전직' 대통령"이라고 비난했다. 특히 가니 대통령은 "항복 직전 엄청난 액수의 현금을 들고 도망쳤으며, 그 돈들을 헬리콥터에 전부 실으려 시도했지만 너무 많아 들어가질 않아서 일부는 활주로에 버려둔 채 도망갔다"고 맹비난해서 인식이 급격하게 나빠졌다. #
그러나 인간으로서 이해가 안 되는 행동은 아니다. 그가 탈출하기 직전에 이미 아프가니스탄 공화국은 빈껍데기만 남아 군대는 무너져가고 있으며, 동생은 탈레반과 포옹을 하는 치욕을 맛봤고, 포로가 된 나지불라가 탈레반에게 어떤 최후를 맞았는지 잘 아는 만큼 망명은 본인의 목숨을 부지하기 위한 최선의 선택이었을 것이다.[15] 그러나 정부가 탈레반에 무너지기 전에 아프가니스탄 국민들이 해외로 도피할 수 있도록 도와준 뒤 망명했다면 모를까, 국민들은 탈출도 못 하고 있는데 전 재산을 챙겨서 혼자 도주한 처신은 국민들을 먼저 챙겼어야 할 대통령으로서 비판받아야 마땅하다. 실제로도 구 아프간 정부 인사들은 탈레반이나 역시 탈레반에 부역을 택한 카르자이보다 도망간 가니를 더 혐오하는 실정.
후속 보도를 통해 딸 매리엄 가니와 아들 타리크 가니는 아버지의 재력으로 뉴욕 브루클린과 워싱턴 DC의 고급 주택가에서 호의호식하며 각각 예술가와 교수를 하고 있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많은 사람들의 공분을 샀다.[16] 그러나 미국 정부에서도 가니가 지원금을 횡령한 것이 사실이라면 아들, 딸의 재산을 압류해서라도 다시 돌려받겠다는 의지를 표명하면서 두 자식들의 미래도 불안정해졌다. 다만 많은 미국 범죄자들이 그렇듯이 가니의 아들, 딸도 멕시코로 도망갈 가능성도 있다.
6. 기타
- 탈레반 정권 붕괴 이후 최초로 평화적으로 정권 교체에 성공한 대통령이라는 기록이 있다. 그리고 그대로 신정부의 마지막 대통령이 되었다.
- 한국 밀덕들 사이에서는 2000~2010년대 유행하던, 전쟁 나면 미리 미국에 도망 가서 출장 갔다는 변명이나 해대던 한국 밀리터리 소설의 상류층 클리셰를 그대로 따라갔다는 평가도 있다. 물론 가니만이 아니라 대부분의 아프간 상류층들이 골프채와 달러 가방 들고 도망가긴 했지만.[17] 도망갈 기회를 포기하고 고통 받는 아프간 국민들을 지키기 위해 아프간 국민 저항 전선을 이끌고 맞서 싸우는 아흐마드 마수드와 암룰라 살레와 같은 지도층이 오히려 극히 드문 사례이다.
- 주 연구 분야는 경제학적 관점에서 실패국가(failed state)의 재건으로, 실제로 이러한 연구 분야의 업적으로 세계은행 총재 자리에까지 물망에 올랐었다. 물론 현실과 이론은 다른 법이지만, 아프간을 예시로 들면서 실패국가의 재건 방식을 논하던 학자가 정작 대통령이 된 이후에는 제대로 된 재건도 못해보고 국가를 탈출했다는 무책임한 모습을 보였다는 점에서 많은 비판을 받고 있다.
[1] 1990년에 미국 시민권을 취득했으나 아프가니스탄 대선 출마를 위해 포기했고, 현재는 UAE에 망명중이다.[2] 레바논인으로 마론파 교도.[3] 아프가니스탄 이슬람 공화국.[4] 참고로 오른쪽 인물은 아프가니스탄 국민 저항 전선을 이끌고 있는 암룰라 살레 부통령이다.[5] 2022년 러시아의 침공 상황에도 미국의 대피 권유를 거절하고 끝까지 우크라이나군, 국민, 정부 내각의 정치인들과 함께하며 수도 키이우에 남아 러시아군과 싸워서 수도와 자신의 정권을 사수/유지하는데 성공한 우크라이나의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대통령[18]과 2010년대 아랍의 겨울 당시 이라크 서부와 시리아 동부를 장악한 이라크 레반트 이슬람 국가(ISIL)의 진격에 맞서서 수도 바그다드를 방어하고 IS들을 물리친 이라크의 전 총리 하이다르 알 아바디와 크게 대비되고 있다.[6] 아랍 지역에서 1위를, 전 세계 대학 순위 235위를 하는 아랍 명문대학이다. 자료.[7] 우리나라의 반기문과 인도의 샤시 타루와 경쟁하였다.[8] 현재 이 선거는 부정선거로 의심되고 있다.[9] 2001년 12월 미국-아프가니스탄 전쟁 당시 도스툼의 민병대가 생포한 탈레반 포로 2000여 명을 컨테이너 상자에 집어넣어 질식사시킨 혐의가 있다.[10] 물론 카다피는 국외 탈출 실패로 인해 살해당했다기보단 리비아 내전 당시 수도 트리폴리가 반군에 함락되어 정권이 붕괴된 뒤에도 도망자의 신세가 된 와중에도 카다피의 뒤를 따르던 몆몆 구 리비아 정부군 장성들이 해외로 망명할 것을 건의했으나 리비아 국내에 남아 반군에게 넘어간 정권을 반드시 재탈환하겠다며 고집을 부리다 중과부적으로 리비아내 반카다피 세력들과 싸우다가 죽은 점도 없지는 않았다.[11] 아슈라프 가니는 아프간을 떠난 반면에 가니의 전임 대통령이던 하미드 카르자이는 탈레반에 항복/합류했다.[12] 아래 탈레반에게 돈을 받고 나라를 넘겼다는 내용을 보면 그냥 보내준 이유가 있었다.[13] 아흐마드 샤 마수드가 이끄는 북부동맹의 대변인 역할을 했으며, 소련-아프가니스탄 전쟁 때부터 마수드를 수행하는 수행비서였다. 마수드 사망 직후 북부동맹 소속 대원들한테서 일부 돈을 각출해서 세운 아흐마드 샤 마수드 재단을 이끌며 북부동맹 점령지 내 여성, 어린이 교육에 힘써왔던 교육자이기도 했다. 탈레반 정권이 들어설 경우 처형 당할 가능성이 99.99%일 정도로 탈레반 정권의 눈엣가시 인물 중 하나다.[14] 다만 현재는 카타르 정부의 보호를 받아 도하에 체류하고 있다.[15] 당시는 아흐마드 마수드가 부각되기 전이었으니 판지시르 쪽으로 도망친다는 선택지도 없었다. 탈레반이 입장을 바꾸기 전에 떠나지 않았으면 자신의 목숨도 장담할 수 없었을 테니.[16] 다만 아버지의 나라가 망해가는데 외국에서 호의호식하는 게 좋은 건 아니지만, 가니의 두 자녀는 본래부터 미국에서 태어나 미국에서 학교를 졸업했고, 이후로도 미국에서 계속 활동했으며, 국적도 아프가니스탄 국적이 아닌 미국 국적을 가지고 있다는 점을 유의할 필요는 있다.[17] 어느 정도냐면 너무 빨리 도망가서 탈레반이 생각보다 카불 입성이 너무 쉬웠다고 허탈해할 정도였다.
[18] 젤렌스키는 2022년 2월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당시 미국이 정권 포기와 해외 망명 권유를 하자 자신에게 필요한 것은 탈출할 여객기가 아니라 무기와 탄약이라고 말하며 러시아군에 대한 항전의지를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