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11-27 16:29:37

안드로마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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Ἀνδρομάχη / Andromache[그림]

1. 개요2. 일대기3. 가계도4. 고찰
4.1. 네오프톨레모스 관련
4.1.1. 나이 차이4.1.2. 정확한 관계
4.2. 헤르미오네 관련4.3. 정숙한 아내인가?
5. 여담6. 관련 문서

1. 개요

"어떤 사람도 살아 있는 동안에는 행복하다고 불러서는 안 돼. 그가 죽은 뒤, 그가 마지막 날을 어떻게 보내며 저승으로 내려갔는지 보기 전에는."
- 에우리피데스의 비극 《안드로마케》 : 100~103
킬리키아 테베의 공주이자 트로이의 마지막 태자비.

에에티온 왕의 외동딸. 남편 헥토르와의 사이에 아들 아스티아낙스가 있었다. 트로이 전쟁 이후에는 아이아키다이의 왕이 되는 네오프톨레모스의 첩이 되었는데, 그와의 사이에서 몰로시아족의 시조가 되는 몰로소스를 비롯한 여러 자식을 두었다.

어원은 '남자를 이기는 여자'. 사랑하는 남편과 아들, 아버지와 8명의 오빠들을 모두 잃고 최악의 원수인 남자의 아들의 자식들을 다수 낳는 한 많은 삶을 살았지만, 그 자식들이 여러 그리스계 왕국들의 시조로 군림하게 되는 것을 생각하면 묘한 이름이다.

2. 일대기

2.1. 트로이 멸망 이전

2.1.1. 테베의 공주

에에티온 왕의 딸로 태어나서 아버지가 다스리는 킬리키아 테베의 공주로 자랐다. 혼기가 차자 트로이의 프리아모스 왕의 장남인 헥토르와 결혼했다.
"헥토르와 전우들이 아름다운 눈을 가진 여인을,
신성한 테베와 마르지 않는 샘의 플라키아에서
어여쁜 안드로마케를 배에 싣고 바다를 건너 데려온다.
무수히 많은 금팔찌와 진홍빛으로 빛나는 허리띠와
향기로운 냄새를 풍기는 형형색색의 장난감들
은으로 만든 술잔도 셀 수 없고 상아도 그렇다."
전령은 말했고 사랑하는 아버지는 바삐 뛰어왔다.
소식은 넓은 길을 따라 도시의 친구들에게 도착했다.
그래 트로이아 청년들이 정교한 바퀴의 수레를 묶었다.
무리 지어 여인들과 복사뼈가 어여쁜 소녀들이 올랐다.
프리아모스의 딸들은 자기들만 따로 수레를 타고
모든 결혼하지 않은 남자들은
마차에 묶인 말들을 끌었다.
(18~23행 내용 미상)
달콤한 소리의 피리들과 칠현금들이 서로 섞이고
짝짝이도 함께 소리 낸다. 소녀들은 맑은 소리로
밝게 노래하고 맑은 하늘까지
우렁차게 울려 퍼진다.
길거리 여기저기에
술을 섞는 항아리와 접시가
백리향과 계피향과 향유가 서로 섞이고
여인들은 환호성을 지르며, 모든 장로와
사내들은 즐거운 노래를 외쳐
파이안을, 아름다운 칠현금의 멀리 쏘는 신을 부른다.
신과 같은 헥토르와 안드로마케를 노래한다.

《고대 그리스 서정시》 사포 - 44LP, 5~34행 (김남우 역)

고대 그리스의 시인 사포는 헥토르와 안드로마케의 결혼식을 주제로 시를 썼다. 헥토르가 신부 안드로마케를 데리고 트로이에 도착하자 프리아모스 왕과 모든 이들이 둘을 반기며 트로이에 축제가 열리고 아폴론이 직접 리라를 연주하며 노래를 불렀다고 한다. 평화로운 시절의 트로이를 묘사한 거의 유일한 작품이다.

헥토르와 안드로마케의 결혼을 통해서 아카이아 연합군은 킬리키아 테베가 트로이의 동맹국이라는 것을 사전에 알고 있었다. 이 때문에 킬리키아 테베는 아킬레우스가 이끈 아카이아 연합군에 의해 쑥대밭이 되었다. 안드로마케와 그녀의 오라비 포데스는 당시 트로이에 있었기 때문에 화를 피할 수 있었지만, 에에티온 왕과 안드로마케의 오라비인 일곱 왕자들은 모두 살해당했고, 어머니마저 아킬레우스에게 노예로 끌려갔다.

2.1.2. 트로이태자비

파일:Hector-Andromache-hector-and-andromache-11440131-1920-800 (1).jpg
▲ 영화 《트로이》에서 묘사된 헥토르와 안드로마케 부부. 배우는 세프론 버로즈.
헥토르의 처로서 아들 아스티아낙스를 낳고 행복하게 살고 있었는데, 시동생인 파리스가 스파르타의 왕비 헬레네를 납치해 와 트로이 전쟁이 일어난다.

헥토르는 트로이의 총사령관이자 최고의 무장으로 전쟁에서 맹활약했고, 그녀의 오빠인 포데스 역시 헥토르와 함께 참전했다. 하지만 헥토르가 아킬레우스의 절친인 파트로클로스를 죽이고, 이때 벌어진 시체 쟁탈전에서 오빠 포데스메넬라오스에게 사망하고, 시신도 끌려가 치욕적으로 훼손당했다.

친구의 죽음에 분노한 아킬레우스는 헥토르와 결투를 하게 되는데, 안드로마케는 남편이 도망쳐서라도 돌아오기를 바랬다. 호메로스의 《일리아스》 6권에 이러한 안드로마케의 심리가 잘 드러나있다. 전투를 앞두고 아내와 아들을 찾아간 헥토르에게 안드로마케는 차라리 비겁자가 되라며 싸우러 나가지 말 것을 애원하는데, 이에 대한 헥토르의 답변이 유명하다.
"난들 어찌 그런 모든 일들이 염려가 안 되겠소, 여보!
하지만 내가 만일 겁쟁이 모양 싸움터에서 물러선다면 트로이아인들과 옷자락을 끄는 트로이아 여인들을 볼 낯이 없을 것이오. 그리고 내 마음도 이를 용납하지 않소. 나는 언제나 용감하게 트로이아인들의 선두 대열에 서서 싸우며 아버지의 위대한 명성과 나 자신의 명성을 지키도록 배웠기 때문이오.
나는 물론 마음 속으로 잘 알고 있소. 언젠가는 신성한 일리오스와 훌륭한 물푸레나무 창의 프리아모스와 그의 백성들이 멸망할 날이 오리라는 것을.
그러나 트로이아인들이 나중에 당하게 될 고통도, 아니 헤카베 자신과 프리아모스 왕과, 그리고 적군에 의하여 먼지 속에 쓰러지게 될 수많은 용감한 형제들의 고통도,
청동 갑옷을 입은 아카이아인들 가운데 누군가가 눈물을 흘리는 그대를 끌고 가며 그대에게서 자유의 날을 빼앗을 때 그대가 당하게 될 고통만큼 내 마음을 아프게 하지는 않소.
(중략) 그대가 끌려가며 울부짖는 소리를 듣기 전에 쌓아 올린 흙더미가 죽은 나를 덮어 주었으면!"
- 《일리아스》 6권 : 445~470

그가 바란 대로 헥토르는 아킬레우스와의 결전 끝에 목숨을 잃었고, 아내가 그리스군의 손에 넘겨지는 것을 보지 않을 수 있었다. 아킬레우스에게 패배한 헥토르는 그 시체가 전차에 매달리는 치욕까지 당하지만, 다행히 프리아모스 왕이 시신을 되찾아와 장례를 치른다.

이후 오디세우스의 지략으로 트로이가 함락당하고, 시아버지 프리아모스와 아들 아스티아낙스는 아킬레우스의 아들 네오프톨레모스에게 잔인하게 살해당한다. 이 상황에서 더 나빠질 상황이 있었을까? 있다.

트로이 정복 최고의 전리품이자 헥토르 말고 남자를 모르는 안드로마케를 차지하는 것 이상의 달콤한 유혹은 없었기 때문에, 그리스의 장수들은 누가 헥토르의 아내를 차지할 것인가에 대해 자신들의 공을 늘어놓고 다퉜다. 여기서 네오프톨레모스는 아버지 아킬레우스의 공로를 내게 물려준다고 했으니 자신이 안드로마케를 가지겠다고 했다. 안드로마케는 전령으로부터 이 말을 듣고는 통곡했다.

결국 안드로마케는 남편 헥토르를 죽인 아킬레우스의 아들이자, 본인 역시 아들 아스티아낙스를 죽인 원수 네오프톨레모스의 첩이자 성노리개가 되어 끌려가 그와 억지로 몸을 섞게 된다. 더 충격인 건 당시 네오프톨레모스는 단 10세에 불과했다.[2][3]
"사랑하는 헥토르, 당신은 내게 더 바랄 것 없는 남편이었어요. 지혜도, 가문도, 부도, 용기도 뛰어났어요. 당신은 내 아버지 집에서 나를 숫처녀로 받아 처녀인 나와 맨 처음으로 결혼했어요. 그런데 지금 당신은 죽고, 나는 전쟁 포로가 되어 헬라스로 배에 실려가 예속의 멍에를 지게 되는군요. 그러니 당신이 울고 계시는 폴뤽세네의 죽음도 내 불행에 비하면 작다고 생각되지 않으세요? 제게는 모든 사람들의 마지막 피난처인 희망조차 없으며, 저는 또 제가 얼마만큼은 괜찮게 지내게 되리라고 저를 기만하지도 않아요."
- 에우리피데스의 비극 《트로이의 여인들》 : 673~684

안드로마케가 어린 네오프톨레모스와의 사이에서 몰로소스라는 아들을 낳았다는 것은 어느 전승에서나 똑같지만, 이후에 대해서는 네오프톨레모스가 에페이로스를 건국했는지, 프티아로 귀환했는지와 안드로마케를 단순히 첩으로 여겼는지, 진심으로 사랑했는지에 따라 갈린다.

2.2. 트로이 전쟁 이후

아이아키다이의 역대 왕비
테티스 안드로마케 ???

안드로마케는 불행하게도 자신의 상황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 약탈혼고대 그리스 당시에 많았던 풍습이었고, 안드로마케와 비슷한 경우로 아가멤논의 아내인 클리타임네스트라도 있었다.[4]

에우리피데스의 비극에서 안드로마케는 정실인 헤르미오네의 질투를 받는다. 헤르미오네는 '원수한테 가랑이나 벌리는 색녀'[5]라며 안드로마케를 모욕하고, 아이를 낳지 못하는 이유를 안드로마케가 자신을 약물로 저주했다고 여겨 남편인 네오프톨레모스가 델포이에 간 사이에 안드로마케와 몰로소스를 죽이려고 했다. 안드로마케는 이를 피해 테티스의 신전으로 피신하고, 자신을 모욕하는 헤르미오네에게 그대가 남편에게 미움받는 건 내 약물 때문이 아니라 그대가 더불어 살기에 살갑지 않은 것이며, 남편의 마음을 즐겁게 해 주는 건 미색이 아닌 미덕이라고 반박한다.[6]

헤르미오네는 "그대가 믿고 있는 아킬레우스의 아들이 돌아오기 전에 내가 그대를 일으켜 세울 것"이라고 일갈하고, 안드로마케는 "그래, 난 그이를 믿고 있어. 참 이상도 하지. 신께서는 사나운 길짐승에 대해서는 인간들에게 해독제를 주셨는데, 독사나 불보다 더 사악한 악녀를 다스릴 약은 아직 누구도 발견하지 못했으니."라고 한탄한다. 헤르미오네뿐만 아니라 메넬라오스에게도 목숨을 위협받던 찰나, 다행히 펠레우스가 구해주지만 네오프톨레모스는 이미 델포이에서 오레스테스에게 사망한 이후였다. 네오프톨레모스 사후, 헤르미오네는 오레스테스와 결혼해 아들 티사메노스를 낳는다. 펠레우스의 아내이자 바다의 여신인 테티스에 따르면, 안드로마케는 몰로시아에서 헬레노스와 결혼해 살 것이라고 했다. 몰로소스는 몰로시아족의 시조가 되어 아이아코스와 트로이의 피를 모두 잇게 된다.

베르길리우스의 《아이네이스》와 파우사니아스의 기록에 의하면 네오프톨레모스는 헤르미오네와 결혼하기 위해 안드로마케를 헥토르의 동생인 헬레노스에게 넘겼고, 네오프톨레모스 사후 왕비가 되어 케스트리노스를 낳는다. 다만 헬레노스는 네오프톨레모스의 친구였기에 자신의 아들이 아니라 몰로소스를 후계자로 삼는다. 안드로마케는 여전히 헥토르를 그리워하고 로마를 세우러 가는 아이네이아스를 만나는데, 이 전승이 가장 널리 알려져 있다. 《아이네이스》에서는 헥토르의 허묘를 만들고 헥토르의 혼백을 부르다가 아이네이아스를 만나서 자신이 겪었던 일을 말해준다. 아이네이아스 일행이 떠날 때는 아이네이아스와 크레우사의 아들 아스카니오스(아스카니우스)에게 자신이 만든 옷들을 선물하며 요절한 아스티아낙스를 그리워했다.

안드로마케는 헬레노스 사후에 막내 아들 페르가모스를 따라가, 소아시아 지방에서 생을 마감했다고 알려져 있다.[7]

17세기의 극작가 장 라신의 비극에서는 네오프톨레모스가 안드로마케를 사랑하게 돼서 아스티아낙스를 죽이지 않고 에페이로스에 끌고 와 자신과 결혼하지 않으면 아들을 죽이겠다고 협박한다. 안드로마케는 남편 헥토르에 대한 정절을 지켜야 할지, 아들을 살려야 할지 고뇌하다가 네오프톨레모스의 청혼을 받아들인다. 하지만 네오프톨레모스의 약혼녀였던 헤르미오네는 질투에 미쳐 사촌 오빠 오레스테스에게 부탁해 네오프톨레모스를 죽인다. 그리고 자신이 여전히 그를 사랑한다는 것을 깨닫고 오레스테스를 저주하며 자살하고, 오레스테스도 헤르미오네의 죽음에 슬퍼하며 자살한다.

아폴로도로스의 《도서관》과 히기누스의 《이야기》에서는 네오프톨레모스가 이미 안드로마케와의 사이에서 아들 한 명[8]을 얻었음에도 불구하고, 헤르미오네를 두고 오레스테스와 불화를 일으켜서 살해당했다고 기록되어 있다. 《도서관》과 《이야기》 양 기록에서 네오프톨레모스 사후의 기록이 없어서 안드로마케의 운명은 알 수 없다.

3. 가계도

파일:Trojan_Dynasty.png
파일:Aeacidae.png

아버지는 킬리키아 테베의 왕 에에티온. 오빠는 7명이 있는데 그 중 이름이 언급된 건 포데스 밖에 없다.

첫 남편은 트로이의 왕세자인 헥토르. 헥토르와의 사이에서 낳은 아들은 아스티아낙스였다. 이후 헥토르의 동생이자 카산드라의 쌍둥이 형제인 시동생 헬레노스와 재혼한다는 전승이 있다. 헬레노스와의 사이에서 낳은 아들은 케스트리노스였다. 아스티아낙스는 트로이 전쟁이 끝나고 그리스군에 의해 죽어서 헥토르의 대는 여기서 끊긴다. 중세에 살아서 프랑크 왕국을 건국한다는 전승도 추가되지만. 케스트리노스는 헬레노스와 데이다미아의 아들 겐테르와 동일시되기도 한다.

트로이 전쟁 이후의 남편은 네오프톨레모스였다.[9] 그와의 사이에서 낳은 자식은 전승이 갈린다. 아폴로도로스의 《도서관》과 대부분의 기록에서는 몰로소스가 유일한 아들로 나오고, 파우사니아스의 기록에서는 몰로소스, 피엘로스, 페르가모스 등 세 아들을 낳은 것으로 나오며, 히기누스의 《이야기》에서는 암피알로스가 유일한 아들로 나온다.

안드로마케의 어머니는 에에티온과의 사이에서 아들 7명을 낳고 안드로마케를 낳았는데, 안드로마케도 네오프톨레모스의 아들 7명을 낳고, 다음해에 을 낳았다는 이야기도 있다.[10][11] 이는 네오프톨레모스인 라나사의 일곱 아이들이 안드로마케의 전승으로 흡수되었다고 보기도 하고, 둘을 동일인으로 보기도 한다.

후손들이 상당히 걸출한데, 몰로소스의 계보에서 알렉산드로스 대왕, 피엘로스의 계보에서 피로스 1세가 태어났다. 또한 생존설 한정이지만 샤를마뉴 전설의 여러 주요 인물들 역시 트로이 함락 때 죽었다고 전해지는 헥토르와 안드로마케의 아들 아스티아낙스의 후손이었다.

금슬이 좋았던 헥토르와의 사이에는 아이가 하나밖에 없었지만, 최악의 원수의 자식을 가장 많이 낳았다는 점이 참으로 아이러니하다.[12]

4. 고찰

4.1. 네오프톨레모스 관련

4.1.1. 나이 차이

안드로마케의 나이에 대해서 확실한 언급은 없어서 의견이 갈린다. 그래서 안드로마케와 네오프톨레모스의 나이 차이에 대해서는 좀 의견 차이가 난다.

일단 아킬레우스보다 헥토르가 연상이고, 그 헥토르의 아내가 안드로마케이다. 그러므로 네오프톨레모스와 안드로마케의 나이 차이는 적어도 20세 이상 날 것이라는 의견이다. 확실히 프리아모스 왕의 여러 자제들 가운데 헥토르가 장남인 것으로 되어 있으므로 나이가 아주 어리지는 않을 것이다. 그렇다고 아주 늙었다고는 할 수도 없는 것이, 프리아모스가 노인이라는 묘사는 등장하나 거동이나 정신에 문제가 있거나 아프다는 묘사도 없고, 헥토르 본인도 전장에서 직접 전투도 하고 지휘도 하며 늙었다는 묘사는 전혀 등장하지 않는다. 이렇게 볼 때 헥토르는 많이 치면 40대 중반까지 올려잡을 수도 있다. 많이 쳐서 40대 중반이라는 것이기에 안드로마케가 30대라서 네오프톨레모스와 20세 이상 나이 차이가 날 수도 있다.

전승에 따라서 갈리기는 하지만 어쨌거나 네오프톨레모스의 아이를 최소한 하나는 낳고, 많을 때는 10명 가까이 낳는데, 이 경우 안드로마케는 40세가 넘어서까지 출산을 했다는 것이 된다. 또한 네오프톨레모스 사후에 재혼하는 전승도 있다. 반면 가장 팔자가 좋았던 헥토르와의 사이에서는 아이가 하나밖에 없다. 헥토르는 전쟁하다가 지치면 아내를 찾아가고, 아내는 극진히 대접하는 식으로 두 사람의 금슬은 좋았다는 느낌이다. 그리고 둘 사이에 유일한 아이는 이제야 좀 걷고 옹알이를 하는 수준이다. 당시 여자들이 결혼을 현재처럼 30대에 했다기보다는 10대 중후반에서 끽해야 20대 초반에 했다고 봐야 하기 때문에 안드로마케가 20살 이상 연상이라기 보단, 10대 후반에 결혼해서 20대 중반쯤이라고 보는 경우도 있다. 하지만 이 경우 테베의 공주와 트로이 전쟁 중에 결혼을 했다고 봐야 하는 아리송한 측면이 있다. 스파르타 세력의 견제를 위해서 테베와 전쟁 중에 정략결혼을 했다고 볼 수도 있겠지만, 그 경우 헥토르가 전쟁 중에 결혼을 했다고 생각해야 하는데 전쟁 중의 결혼에 대한 묘사나 전승은 없고 사포의 시에서도 헥토르와 안드로마케의 결혼식은 평화로웠던 시기에 있었던 것으로 묘사된다. 트로이와 그리스 연합군이 전쟁 초반부터 맞붙은 것은 아니기 때문에 그리스 연합군이 트로이를 향해 조금씩 진격하고 있을 때라고 끼워맞출 수도 있지만, 결국 아무리 늦게 잡아도 네오프톨레모스가 태어나기도 전에 안드로마케는 이미 혼기가 찬 나이였다는 것은 변함 없다.

물론, 시열대가 혼란스러운 신화 특성상 연령은 그렇게 중요한건 아니고 안드로마케가 네오프톨레모스보다 훨씬 나이가 많은 건 확실하기 때문에 차라리 안드로마케와 네오프톨레모스의 어머니인 데이다메이아 중에서 누가 더 나이가 많은지에 대해서 논의하는게 더 흥미로운 고찰이다.

4.1.2. 정확한 관계

네오프톨레모스와 안드로마케가 서로를 어떻게 생각했는지에 대해서는 여러 의견이 갈린다.

네오프톨레모스에게 안드로마케는 처음으로 관계를 맺은 여자이고, 유일하게 아들을 낳아준 여자이니 정처인 헤르미오네보다 더 특별했을 것이다. 또한 트로이 함락 후에 많은 장수들이 가장 탐을 냈던 전리품을 자신이 차지했다는 우월감도 있을 확률이 높다.

둘의 관계도 흔히 주인과 노예로 오해되는 경우가 많은데, 안드로마케는 네오프톨레모스의 첩이기도 하지만 아내가 맞다. 탈티비오스로부터 그리스군이 아스티아낙스를 죽인다는 전언을 들었을 때, 당황했던 이유도 그리스군이 자신을 네오프톨레모스와 결혼시키는 대가로 아들을 살려줄 거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13] 헤르미오네가 그토록 안드로마케를 증오했던 이유도 자신의 입지가 안드로마케에 비해서 여러 면에서 밀리기 때문이었다.
"이런 명성[14]이 아카이오이족 군대에까지 퍼져 저를 망쳐놓은 거에요. 제가 사로잡혔을 때 아킬레우스의 아들이 저를 아내로 삼길 원했으니까요. 하지만 사실은 저는 살인자들의 집에서 노예가 되는 거예요. 제가 사랑하던 헥토르를 잊어버리고, 새 남편에게 마음을 연다면, 고인에게 저는 나쁜 여자로 보일 거예요. 하지만 제가 새 남편을 증오한다면, 제 주인에게 미움 받게 되겠지요. 남자와의 동침에 대한 여자의 혐오감을 해소하는 데는 단 하룻밤이면 충분하다고들 말하지만, 저는 전남편을 잊어버리고, 새로운 결합을 통해 다른 남자를 사랑하는 여자를 경멸해요."
- 에우리피데스의 비극 《트로이의 여인들[15]: 660~670

안드로마케도 대부분의 여자들처럼 약탈혼의 결과를 괴로워하지만 끝내 체념하고 받아들였다.[16] 비극 《트로이의 여인》에서 시어머니 헤카베아스티아낙스를 위해 헥토르를 잊고, 안드로마케에게 네오프톨레모스가 그녀를 사랑하게 만들라고 조언한다.[17] 하지만 그 순간 탈티비오스가 등장하여 아스티아낙스에게 내려진 사형선고를 전하고, 안드로마케는 자신에게 끊임없이 닥치는 불행에 탄식한다. 아스티아낙스의 처형 뒤 안드로마케는 네오프톨레모스에게 헥토르의 방패와 함께 아들을 트로이 땅에 묻어달라고 간청하며[18], 펠레우스에게 생긴 불상사[19]로 급히 떠나야 했던 네오프톨레모스는 아스티아낙스의 장례를 할머니인 헤카베에게 맡겨 부탁을 들어준다.[20]

에우리피데스의 전승에서는 아스티아낙스를 죽인 사람이 네오프톨레모스가 아니라 오디세우스이기 때문에, 명확한 비교는 어렵지만 안드로마케는 네오프톨레모스에게 첩으로서의 본분을 다했다. 존 바턴의 《그리스 비극》 중 《트로이의 여인들》, 《안드로마케》에서는 안드로마케가 네오프톨레모스에게 마음을 열었다고 기술되어 있었으나, 《그리스 비극》은 셰익스피어 컴퍼니에서 연출가로 활동하는 존 바턴이 1979년 그리스 비극 10편을 각색한 것으로 실제 원문과는 차이가 있다.
"나는 아킬레우스의 아들에게 남손을 낳아주었어요. 는 내 주인이니까요.
(중략)나는 처음부터 마지못해 그이를 따랐지만 이제는 완전히 포기하고 말았어요. 위대한 제우스께서 증인이 되어주소서. 나는 마지못해 그이와 동침했던 거예요."
- 에우리피데스의 비극 《안드로마케》 : 24~25, 36~39

한편으로, 안드로마케는 네오프톨레모스가 헤르미오네의 협박으로부터 자신과 몰로소스를 보호해줄 것이라는 기대를 품는다. 비록 원수의 피가 흐르지만 자신의 자식인 아들을 보호하기 위해 목숨을 걸었으며, 이는 이방인 출신인 안드로마케가 '그리스 왕들의 어머니'라고 기록된 이유이기도 하다.

4.2. 헤르미오네 관련

에우리피데스의 비극 《안드로마케》에 대한 하버드 대학의 분석에 따르면 안드로마케와 헤르미오네의 불화에서 주로 언급되는 세 가지 전제의 오류는 다음과 같다.#
1. Andromache had been the concubine of Neoptolemus completely against her will.
안드로마케는 억지로 네오프톨레모스의 첩이 됐다.

2. When Neoptolemus married Hermione, that relation ceased.
네오프톨레모스가 헤르미오네와 결혼한 후로부터 그는 안드로마케와 잠자리를 가지지 않았다.

3. Hermione is sterile and believes her condition is caused by drug secretly given by Andromache
헤르미오네는 불임이고, 이는 안드로마케가 몰래 헤르미오네에게 독을 먹였기 때문이다.

질투 많은 헤르미오네가 가만히 있는 안드로마케를 죽이려 한다는 오해가 많고 실제로도 그렇게 묘사되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다. 오히려 네오프톨레모스를 둔 두 아내의 주도권 싸움으로 관점에 따르자면 트로이 전쟁이 끝나기 전부터 약혼녀였던 헤르미오네가 남편을 빼앗긴 상황이었다.

논문에서 언급한 대로 1번과 2번이 거짓인 이유는 안드로마케는 네오프톨레모스의 아들을 무조건 낳아야 했던 것이다. 자신의 편이 없는 그리스에서 왕의 아들을 낳아야 네오프톨레모스라는 자신을 지켜 줄 방패가 생기기 때문이다. 또한 안드로마케는 네오프톨레모스의 총애를 독점해야 했다. 스파르타메넬라오스라는 강력한 아군을 둔 헤르미오네가 아들까지 가진다면, 안드로마케의 입지는 굉장히 좁아지고, 안드로마케의 아들은 계승권에서 밀릴 뿐만이 아니라 살해당할 확률이 더 높아지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이것이 3번의 거짓으로 이어진다.

헤르미오네가 불임이라는 건, 그녀가 훗날 오레스테스와 결혼해서 티사메노스를 낳은 것에서 말도 안되는 소리임을 알 수 있다. 다만 안드로마케 때문에 아이를 가지지 못한 것은 맞다. 네오프톨레모스가 안드로마케를 총애하며 그녀하고만 관계를 가졌기 때문이다. 그래서 한 설화에서는 계속해서 좁아지는 입지에 참다 못한 헤르미오네가 아버지 메넬라오스로부터 도움을 받기 위해, 안드로마케가 자신에게 약을 먹여 불임으로 만들었다고 거짓말을 한다. 그리고 이어지는 결말은 뜬금없는 오레스테스의 네오프톨레모스 칼에 맞고 죽임을 맞이한다.

4.3. 정숙한 아내인가?

정숙한 아내로 유명하지만, 안드로마케의 정숙함에 대한 시선과 해석은 의외로 가지각색이라고 할 수 있다.

호메로스의 《일리아스》에서 묘사한 헥토르와 안드로마케는 가장 이상적인 부부 관계라고 해도 무방할 정도로 상호 존중과 헌신을 보여주는 그야말로 완벽한 아내의 모습이었다. 안드로마케가 보여준 아내와 어머니로서의 헌신은 안드로마케가 정숙한 아내인 것을 분명히 하고 있다.

오비디우스의 《사랑의 기교》에서는 안드로마케가 헥토르와 네오프톨레모스 두 남편을 대하는 묘사에는 확실한 온도 차이가 있다. 헥토르와는 서로 사랑하고 정열적으로 사랑하는 관계라면,[21] 네오프톨레모스와는 관계하며 아무런 애정 표현도 하지 않는 인형같은 관계로 묘사[22]했다.

베르길리우스의 《아이네이스》에서는 네오프톨레모스 사후 헥토르의 동생 헬레노스재혼한 상황에서도 헥토르의 제사를 지내고, 생사를 몰랐었던 아이네이아스와 재회하자 그가 명계에서 온 줄 알고 헥토르의 안부를 물으며 헥토르를 잊지 않은 정숙한 아내의 모습을 보여줬다.

반면, 히기누스의 《이야기》에서는 정숙한 여인들 중 하나로 분류되지 못했다. 히기누스가 정숙한 여인으로 분류한 신화의 여인들은 페넬로페, 에바드네(에우아드네), 라오다메이아, 헤카베, 테오노에, 알케스티스이다. 이들의 공통점은 남편을 위해 죽음을 불사하거나 남편 이외에 다른 남자에게 몸을 허락하지 않은 여인들이다.[23] 히기누스가 분류한 정숙한 여인들 중 남편이 죽자 따라 자살하거나[24] 곧 뒤따른 여인들이 다수인데, 당장 시어머니 헤카베도 포함된 마당에 신화 내외로 정숙한 것으로 유명한 안드로마케가 분류되지 못한 이유는 남편 헥토르를 따라 자살하지 않고 다른 남자와 관계한 것 외에는 없다.

사실 남편이 죽었으니 아내는 다른 남자와 관계하지 말라거나, 남편을 따라서 자살을 권장하는 건 철저히 가부장적인 시선임을 부정하기 힘들다. 하지만 안드로마케의 경우는 그녀가 다른 남자의 아내가 되어서가 아니라[25] 하필이면 그 대상이 네오프톨레모스였다는 것이 크게 작용했다.

안드로마케에게 동정적인 시선으로 쓰여진 에우리피데스의 비극 《안드로마케》에서도 헤르미오네가 안드로마케를 "남편을 죽인 자의 혈육과 정을 통하고 그의 아이를 낳았다"며 짐승 취급을 했다는 것에서 안드로마케의 해당 행적이 상당히 야만적으로 받아들여졌다는 것을 알 수 있다.[26]

이 때문에 네오프톨레모스의 아내가 되는 수치를 감안해서라도 안드로마케가 살아남아야 할 명분을 만드는 작가들도 있다. 대표적으로 장 라신의 비극에서 아스티아낙스를 살리기 위해서 어쩔 수 없이 네오프톨레모스의 아내가 되었다는 형식으로 전개가 된다. 하지만 그런 장 라신의 비극에서조차 안드로마케가 네오프톨레모스와 결혼은 승낙했지만, 몸을 허락하지 않기 위해 자살을 결심했다. 에우리피데스의 《트로이아 여인들》에서도 시어머니 헤카베아스티아낙스를 살려서 후일을 도모하기 위해 헥토르를 가슴에 묻고 새로운 남편이 안드로마케를 사랑하게 만들라며 살아갈 명분을 준다.[27]

안드로마케가 헥토르와 네오프톨레모스 둘 모두에게 정숙한 아내였다는 시선도 있다. 비극 《안드로마케》에서는 순종적이고 아이도 낳아 두 남편을 기쁘게 한 안드로마케는 훌륭한 아내지만, 남편의 정인를 질투하고[28] 아이를 낳지 못한 헤르미오네는 아내로서 반면교사로 대치된다.

헥토르가 인기있던 영웅이다보니 그 헥토르를 좋아하는 작가들이 어떻게든 안드로마케가 마음만은 헥토르에게 있었다고 표현하고 싶었던 것이 드러나보인다. 신화는 확정사가 없고 실화도 아니라지만 어쨌든 이용당하기도 하는 셈. 하지만 헥토르의 부인이기에 네오프톨레모스에게 더 사랑받는 묘사를 작가들이 넣었을 수도 있기에....

5. 여담

  • 안드로마케와 헥토르의 아들, 아스티아낙스는 사실 죽지 않고 이름을 프랑쿠스로 개명한 다음 프랑크 왕국의 시조가 되었다는 이야기가 있다. 어떻게 목숨을 건진 건지는 설이 많다.[29] 하지만 《광란의 오를란도》나 《La Franciade》등에 따르면, 아스티아낙스는 분명히 생존했고, 카롤루스 대제의 선조가 된다. 만약에 안드로마케가 이 사실을 알았다면 그나마 위안이 됐을 것이다. 하지만 어차피 중세 시대 야만족들은 이런 식으로 고대 그리스 시대 인물들을 자신들의 선조로 갖다붙이기 좋아했다. 그리스 로마의 세계관이 당대 유럽에 큰 영향력을 끼치고 있었기 때문에 너도 나도 끌어다 썼기 때문에. 마치 조선이나 고려에서도 괜히 자신의 선조가 왕족이나 중국의 한다 하는 인물, 설화 속 인물이라고 갖다붙이는 경우가 많았듯이.
  • 암피알로스몰로소스가 대왕 알렉산드로스 3세의 어머니 올림피아스의 조상이라고 한다. 다만 상술했듯이, 올림피아스가 네오프톨레모스와 안드로마케의 딸이라는 설도 있었기에 알렉산드로스 대왕이 영웅 아킬레우스의 후손이라고 주장하기 위해 만들었을 가능성도 높다.
  • 안드로마케의 인생은 굉장히 많은 학자들과 작가들이 다루기에 매력적으로 여겨졌으며 수많은 작가들에 의해 기록서, 비극, 희극으로 남았다. 전승이 많은 것은 이런 이유때문이었다. 다만 자신들을 트로이의 후손이라고 여긴 고대 로마 시대와 중세 시대에 들어서면서 헥토르는 가장 존경받는 위인으로 추앙받게 되었고, 이 때문에 최고 영웅의 아내와 네오프톨레모스와의 관계가 기분 나빴는지 많은 작품과 기록들이 사라졌다고 한다. 고대 로마부터 베르길리우스의 《아이네이스》에 안드로마케가 트로이 왕가를 잇는다거나 《롤랑의 노래》에서 아스티아낙스 생존설에 대해 쓴게 그 증거이다.
  • 박복한 인생을 살았지만 어느 전승에서든 에페이로스프티아왕비가 되는 것을 보면 어떻게든 왕비가 될 운명이었던 듯 하다.
"내게 남은 것이라고는 내 생명의 빛인 이 아들 밖에 없어요. 이 비참한 목숨을 살리려 이 아이가 죽어서는 안 돼요."
- 에우리피데스의 비극 《안드로마케
* 안드로마케가 바다의 여신 테티스에 의해 엘리시온에 들어갔다는 이야기가 있는데 들어갔다는 기록이 있기는 하지만 테티스에 관한 언급은 없다.
  • 전승에 의하면 안드로마케는 키가 엄청나게 컸다고 한다. 이는 영화에서도 충실히 반영됐는데, 1971년작 〈트로이아 여인들〉에 출연한 바네사 레드그레이브180cm, 2004년작 〈트로이〉에 출연한 세프론 버로즈는 183cm로 안드로마케를 맡았던 배우들 역시 키가 굉장히 크다.
  • 넷플릭스 오리지날 영화 올드 가드에서 샤를리즈 테론이 맡은 배역이 바로 안드로마케이다. 다만, 극중에서 '스키타이의 안드로마케'로 소개되는 것으로 보아 이 항목의 인물과 동일인은 아니라고 봐야 옳을 것이다.

6. 관련 문서


[그림] 오른쪽 투구를 쓴 남성이 헥토르, 그 옆이 안드로마케다. 헥토르의 아이가 자주 만나지 못하는 아버지를 보고 낯설어하는 모습을 그렸다.[2] 네오프톨레모스의 어머니는 아킬레우스가 트로이 전쟁에 참가하지 않으려고 숨어있을 때 그에게 강간당해(혹은 눈 맞았거나) 네오프톨레모스를 임신했고, 트로이 전쟁이 시작하고 10년 후 그가 참전한다. 정확하다고 할 수는 없겠지만 나이를 많이 올려잡을 순 없고, 대충 10세 언저리인 것은 맞을 것이고, 위대했던 전사의 아들이니 아주 좋은 유전자를 타고 났을 것이며, 처형도 가능했고 트로이 전쟁이 끝나고 얼마 되지 않은 《노스토이》때 안드로마케가 둘 사이의 첫 아이인 몰로소스를 임신했던 것으로 볼 때 좀 육체적으로 조숙했을 거라는 가정은 할 수 있다. 2차 성징이 오고, 전립선을 비롯한 생식기가 발달되어야 사정이 가능해지기 때문이다.[3] 실제 후기 청동기 시대 동지중해 지방의 전쟁 관습 중에는 정복당한 지역의 왕이나 귀족들을 어린 소년의 손으로 죽임으로써 적에게 최대한의 모욕을 안기는 풍습이 있었다. 따라서 트로이가 함락된 뒤 트로이의 왕과 귀족들을 죽일 때, 그들에 대한 모욕과 아킬레우스의 복수의 의미로 아킬레우스의 어린 아들에게 처형을 맡긴 것 자체는 당시의 관습이었다.[4] 클리타임네스트라도 아가멤논에 의해 남편 탄탈로스 2세와 아들을 잃었지만 정작 사이가 틀어진 계기는 그게 아니라 둘 사이에서 태어난 딸 이피게네이아(이피게니아)를 아가멤논이 아르테미스 여신에게 제물로 바치고 난 이후였다. 결국 아가멤논은 클리타임네스트라와 아이기스토스에게 살해당한다. 또한 아가멤논과는 다르게 네오프톨레모스는 안드로마케에게 자비로운 편이었다.[5] "그대가 얼마나 어리석은 짓을 했는지 알기나 해? 그대는 그대의 남편을 죽인 자의 아들과 같이 잠자리를 같이했고, 살인자에게 자식들을 낳아주었어. 그런 것은 다 야만족의 풍습이야. 아버지는 딸과, 아들은 어머니와, 누이는 오라비와 살을 섞고, 가장 가까운 혈족끼리 서로 죽여도, 그런 것을 막아줄 법이 야만족에게는 없으니까. 그런 것을 우리에게 옮기지 마." 역자는 천병희.[6] 그런데 여기서는 헥토르가 안드로마케를 두고 바람을 피웠다는 언급이 나온다. 안드로마케 왈, "사랑하는 헥토르여, 퀴프리스가 그대를 비틀거리게 할 때면, 나는 그대를 위하여 그대의 첩들을 참고 견뎠으며, 그대의 서자들에게 가끔 젖가슴을 내밀곤 했지요. 조금도 그대를 불편하게 하지 않으려고 말예요. 그처럼 부덕으로 나는 남편의 마음을 사로잡았지요."[7] 신화 상에서 페르가모스가 세웠다던 페르가몬 왕국의 영역에는 트로이 지역이 포함되어 있었다. 실제 역사 속 페르가몬 왕국은 마지막 왕이 유언으로 로마 공화정에게 영토를 양도하간 했으나, 이에 반발한 아리스토니코스가 반란을 일으켰고 이내 로마군에게 진압되었다. 이후 페르가몬 왕국의 영역의 대부분은 로마가 갖고, 나머지 일부 영토는 협조의 대가로 비티니아 왕국, 카파도키아 왕국 등에 주어졌다고 한다. 물론 나중에는 이들 모두가 로마의 영토가 된다.[8] 아폴로도로스의 《도서관》에서는 몰로소스, 히기누스의 《이야기》에서는 암피알로스가 유일한 아들로 기록되어 있다.[9] 헥토르를 죽인 명장 아킬레우스의 아들로 안드로마케의 아들 아스티아낙스를 죽인 장본인이기도 하다.[10] 단, 이 전승을 따르면 안드로마케는 거의 40세를 넘어서까지 아이를 낳았다는 이야기가 된다. 고대 그리스 시대에는 물론, 지금 시대에도 출산을 하기에는 늦은 나이이다. 반면 네오프톨레모스의 나이는 10대 후반[11] 이 이야기는 알렉산드로스 대왕의 어머니 올림피아스를 직접적으로 네오프톨레모스의 딸이라고 서술한 전승인데, 시대를 보면 맞지 않다. 그냥 알렉산드로스 대왕이 영웅 아킬레우스의 후손이라는 소문 중 하나라고 보면 될 듯하다.[12] 고대 그리스 기준으로도 네오프톨레모스와 안드로마케는 상당히 다산했다고 볼 수 있다. 자신의 아버지, 어머니, 일곱 오빠들, 남편, 아들을 전부 죽인 아킬레우스 집안의 대를 자신이 이어줬다는 게 아이러니이다.[13] 아스티아낙스가 성장해서 그리스군에게 복수할 것이라는 칼카스의 예언이 있었고, 오디세우스가 이를 적극적으로 주장했었다. 정작 헬레네를 빼앗긴 것으로 인해 그리스 연합군을 주창했던 메넬라오스는 헬레네도 되찾았겠다 싶어서 일말의 동정심이 일었는지 아스티아낙스를 죽이는 것을 반대했다.[14] 헥토르의 정숙하고 좋은 아내라는 평판[15] 천병희 역[16] 《트로이의 여인들》과 《아이네이스》에서 안드로마케는 트로이 함락 직후, 아킬레우스에게 제물로 바쳐져 목숨을 잃었던 폴릭세네야말로 트로이의 여인들 중 가장 행복하다며 한탄한다.[17] "사랑하는 아가, 헥토르에게 일어난 일은 잊도록 해라. 네 눈물이 그 애를 구하지 못하니까. 너는 새 주인을 존경하고, 고분고분 복종해 그가 너를 사랑하게 만들어라. 그렇게 하면 너는 친구들을 모두 기쁘게 해줄 것이고, 여기 있는 이 손자를 길러 트로이아에 가장 큰 이익이 되게 해주리라. 이 애한테서 언젠가 아들들이 태어나는 경우, 그들이 일리온에 돌아와 거주하게 될 것이고, 그러면 도시가 존속하게 될 테니 말이다."(《트로이의 여인들》 697~707)[18] "그녀는 성벽에서 떨어져 숨진 여기 이 시신을, 그대의 아들 헥토르의 아들을 묻어달라고 네오프톨레모스에게 간청했소. 그녀는 또 에게 이 애의 아버지가 옆구리에 두르던, 아카이오이족에게는 공포의 대상이었던 등이 청동으로 된 방패를 펠레우스의 집으로, 여기 이 시신의 어머니인 안드로마케가 살게 될 신방으로-그녀에게는 보기가 괴로울 테니까-가져가지 말고, 삼나무 관이나 돌무덤 대신 아이를 방패 안에 묻어달라고 간청했소. 그녀는 또 이 애그대의 손에 맡겨달라고 간청했소. 형편 닿는 대로 그대가 시신을 옷으로 싸고 화관으로 장식하도록, 그녀는 가고 없고, 그녀의 주인의 급한 사정으로 그녀가 손수 아이를 묻어줄 수 없으니까요."(《트로이의 여인들》 1134~1146)[19] 프티아의 군주였으나 펠리아스와 아낙시비아의 아들 아카스토스에 의해 추방되었다. 다만 아카스토스는 이미 펠레우스와 이아손에게 살해당했고, 펠레우스를 추방한 건 아카스토스의 자식들이라는 버전도 있다.[20] 필록테테스 이야기와 함께 네오프톨레모스의 어린아이의 면모가 드러나는 장면이기도 하다.[21] 헥토르가 안드로마케의 음부를 손가락으로 애무했다는 상당히 왜설적인 표현도 사용했다.[22] 정확하게는 남녀 관계에 침울한 여자의 예시로 안드로마케와 테크마사(아이아스의 첩)을 들었다. 둘은 남편들(네오프톨레모스와 아이아스)에게 사랑의 말을 속삭일 수가 없었을 것이니 아이를 낳는 것 외에는 어떤 즐거움을 줄 수 있었겠느냐고 물었다.[23] 페넬로페의 경우에는 텔레고노스헤르메스 관련 전승이 있기는 하나 히기누스도 이를 야사 수준으로 기록하면서, 정사라고 못 박지는 않았지만 안드로마케는 그냥 전후 네오프톨레모스의 아내가 된 것을 정사로 박아버렸다.[24] 에바드네는 테베를 공격한 일곱 장군 중 카파네우스의 아내인데, 남편이 제우스의 벼락을 맞고 죽자 바로 성벽에서 몸을 던졌다. 프로테실라오스의 아내 라오다메이아 역시 남편을 따라 자살했다.[25] 그리스 신화에서 여성들의 재혼은 상당히 흔하고, 역사적으로 봐도 테르모필레 전투에서 귀환하지 못할 것을 예감한 레오니다스 1세가 아내 고르고 왕비에게 다른 남자와 재혼하여 아이를 낳고, 행복하게 살라는 말을 남겼다는 플루타르코스의 기록도 있었던 만큼, 고대 그리스에서 여성의 재혼이 특별히 터부시되었던 것도 아니다. 하다 못해, 이 시대의 여성들은 약탈혼의 대상이 되는 것이 빈번했던 만큼, 안드로마케와 같은 피해자는 엄청나게 많았다.[26] 아이러니하게도 안드로마케를 매도한 헤르미오네는 남편 네오프톨레모스를 죽인 오레스테스와 재혼하여 아들 티사메노스를 낳게 된다. 물론 헤르미오네의 원래 약혼자는 오레스테스였는데 메넬라오스가 헤르미오네를 네오프톨레모스와 결혼시켜서 그리 된 것이다.[27] 다만 이 경우는 아스티아낙스가 죽어버려서 살아가야 할 명분이 몰로소스에게로 넘어간다.[28] 여기에서 안드로마케는 자신의 헥토르가 외도를 했을 때도 질투하지 않았고 사생아들에게도 젖을 물렸다고 하는데, 흔히 알려진 헥토르의 이미지와는 상반되는 묘사다.[29] 안드로마케가 다른 아기와 아스티아낙스를 바꿔치기했다는 설, 제우스가 구해줬다는 설 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