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04-03 17:36:23

알레한드로 조도로프스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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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레한드로 호도로프스키[1]
Alejandro Jodorowsky
파일:알레한드로 조도로프스키.jpg
본명 알레한드로 호도로프스키 프루얀스키
Alejandro Jodorowsky Prullansky
출생 1929년 2월 17일 ([age(1929-02-17)]세)
칠레 토코피야
국적
[[칠레|]][[틀:국기|]][[틀:국기|]] |
[[프랑스|]][[틀:국기|]][[틀:국기|]]
거주 프랑스 파리
직업 영화 감독, 프로듀서, 작가, 배우, 음악가
활동 1948년 – 현재
링크 파일:인스타그램 아이콘.sv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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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2. 평가3. 작품
3.1. 판도와 리스 (1968년)3.2. 엘 토포 (1970년)3.3. 홀리 마운틴 (1973년)3.4. (1974년) - 제작 취소3.5. 성스러운 피 (1989년)
4. 필모그래피5. 그 외6. 외부 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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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칠레 출신의 세계적인 영화 감독, 만화 시나리오 작가, 소설가. 멕시코에서 페인트공 생활을 하던 중에 판토마임 등을 했다.

2. 평가

영화 사의 유명한 괴짜 감독으로 평가받는 인물로, 그가 만든 영화 대부분은 아방가르드, 초현실주의가 들어간 예술영화들에 가깝다보니 극도로 마이너적이고 난해한 분위기에 깊은 철학을 담고 있으며 상당히 과격하면서도 파격적인 연출로도 유명하다.

3. 작품

3.1. 판도와 리스 (1968년)

파일:external/www.yesdvd.net/019053879.jpg
난해한 흑백 영화인데, 패닉 무브먼트[2]라는 단체의 페르난도 아라발이 1958년에 만든 연극을 영화화했다.

멕시코 아카풀코 영화제에서 영화가 상영될 때 임산부가 돼지를 낳는 장면을 본 관중들이 호도로프스키에게 돌을 던지고 죽이려 했다. 호도로프스키는 리무진 밑에 숨는 등 고생이 말이 아니었다.[3]

3.2. 엘 토포 (1970년)

파일:external/www.ruthlessreviews.com/topo0.jpg
이 역시 난해한데, 감독 자신이 주연이고 아들 브론티스 호도로프스키도 나온다.[4]

황야의 악명높은 무법자인 엘 토포가 아들과 함께 세상을 방랑하던 중에 여인의 꾐에 넘어가 황야에서 제일 가는 강자들과 현자들을 비겁한 방법으로 이기게 되나 결국 자괴감에 빠져 고통스러워 한다는 것이 내용의 주를 이룬다. 엘 토포는 사실 두더지를 의미한다. 호도로프스키 특유의 괴악한 이미지를 심어주는데 일조한 작품. 존 레논오노 요코가 이걸 보고 반해서 호도로프스키가 홀리 마운틴을 제작하는 걸 도왔다.

3.3. 홀리 마운틴 (1973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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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도로프스키 감독의 대표작. 성스러운 피와 더불어 그의 최고 걸작으로 꼽는 팬들이 많다.

제작비는 75만 달러이며 16세기 논문 Subida del Monte Carmelo, 1952년 프랑스 소설 Le Mont Analogue. Roman d'aventures alpines, non euclidiennes et symboliquement authentiques에 영감을 받았다.

여기와여기에 의하면 놀랍게도 위조 지폐까지 찍어내서 영화제작에 썼다는 소문도 있다.

다른 소문으로는 도둑으로 나온 이는 실제로 도둑들이었는데, 촬영 소품 및 자재를 지켰다고.

그 외에도 경찰복을 입고 일했더니[5] 멕시코 정부에게서 경고를 받았다.[6] 그래서 뉴욕으로 가서 제작했는데 오랜 시간이 흐른 후에 멕시코를 찾았더니 정부에서는 칭찬을 해줬다.

카니예 웨스트가 좋아하는 영화이다. #

3.4. (1974년) - 제작 취소

의 감독으로도 선정되었고, 그가 계획한 듄은 호화 출연진과 제작진이 동원된 상당한 기대작이었다. 그러나 16시간 상영판을 고집하여 결국 감독에서 경질되었다. 그는 당시 "듄을 두어 시간으로 만든다고? 원작 모독이다! 원작 맛을 살리려면 적어도 10시간은 되어야 한다."라며 맞선 바 있다.

그리고 데이비드 린치가 감독한 4시간 버전조차도 길다고 억지 편집과 재촬영을 겪으면서 린치가 자신의 영화 인생에서 언급하기도 싫어할 정도의 영화가 되고 말았다... 그런데 우스운 점은 린치의 듄을 본 조도로프스키는 "내 예상을 깨고 너무나도 괜찮아서 질투까지 났다"라는 호평을 했다는 사실. 이에 린치는 "당신은 그럴지 몰라도 나는 내 영화 인생에서 가장 굴욕이자 가장 악몽인 영화이다."라면서 이런 호평을 기분 나빠했다. 그래서인지 린치는 지금까지 제작사가 듄의 감독판 편집을 애원해도 절대로 응하지 않고 있다.

그런데 조도로프스키는 2013년 개봉한 다큐멘터리 《조도로프스키의 듄》에서는 위에서의 호평과 대비되는 발언을 했는데, "데이비드 린치의 영화가 너무 끔찍했던 탓에 절망감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라고 한다. '듄'은 조도로프스키가 자신의 종교적 신념을 담아 제작하고 있었던 인생작이었고, 그가 인정하는 명감독인 린치가 자신이 만들지 못했던 영화를 자신보다 더 잘 만들었다면 결코 버틸 수 없었을 것이라고. 그 역시 린치가 제작자 때문에 제대로 된 영화를 만들 수 없었을 것이라 추측했다.

3.5. 성스러운 피 (1989년)

해당 항목 참조.

4. 필모그래피

<rowcolor=#fff> 년도 제목 연출 각본 출연 비고
1968 판도와 리스
Fando y Lis
장편 데뷔작
1970 엘 토포
El Topo
1973 홀리 마운틴
La montaña sagrada
1974
Dune
제작 취소
1980 터스크
Tusk
1989 성스러운 피
Santa Sangre
1990 무지개 도둑
The Rainbow Thief
2013 현실의 춤
La danza de la realidad
2016 끝없는 시
Poesía sin fin
2019 싸이코매직, 언 아트 댓 힐스
Psychomagic: A Healing Art
다큐멘터리 영화

5. 그 외

70년대 후반에 프랑스의 만화가 뫼비우스와 함께 만화 잉칼을 만드는데 시나리오를 제공했다. 이 작품의 장르는 SF로, 후에 영화 블레이드 러너제5원소에 영향을 끼쳤다. 뫼비우스와 호도로프스키가 알게된 것은 예의 덕분인데, 1975년 호도로프스키가 우연히 파리의 영화 제작자 사무실에서 뫼비우스를 알게 되었고 서로 의기투합해서 듄의 설정 및 세부 사항에 대한 작업을 하는 도중, 결국 프로젝트가 여러가지 난항을 이기지 못하고 엎어졌다. 하지만 그 이후로도 계속 서로 상당한 영향을 주면서 교류하며 지내다가, 현실화 되지 못한 이 녹아든 잉칼 연작이 나오게 된 것. 그 후 1980년에 터스크라는 작품을 내놨지만 흥행 및 비평 면에서도 쪽박을 차고는 잉칼 작업에 몰두하다가, 89년에 성스러운 피를 만든다.

엘 토포의 후속작을 만들 계획이 있다고 한다.

2013년 자전적인 영화 현실의 춤이 칸 영화제에서 공개됐다. 근 23년 만의 신작으로, 평은 준수한 편.

그 외에 결혼을 여러 번 했다.

존 레논이 그의 괴작, 엘 토포를 보고 마음에 들어해서 홀리마운틴을 만들때도 지원을 해줬다. 그런데 존이 저격당해 사망하자 대부분의 판권은 그의 매니저 앨런 클라인에게 갔다. 클라인은 조도로프스키에게 에로영화를 만들 것을 부탁했지만, 거절했다. 조도로프스키 영화는 어느 나라에서 상영불가된 바 있는데,우리나라에서도 오랫동안 정식 상영이 금지된 것이 있다.그리고 존 레논외에도 오노 요코믹 재거, 앤디 워홀도 관심을 가졌다고... 오토모 카츠히로와도 친분이 있어서, AKIRA의 결말도 조도로프스키가 술집에서 아이디어를 줬다고 하지만오토모는 처음부터 결말은 정해져있다고 한다.

2007년 엘토포와 홀리 마운틴의 한국 개봉 시기에 맞춰 내한했다. 씨네21에 실린 기자회견 기사박찬욱 감독, 이준익 감독과의 대화.

키노에서 그에게 가장 존경하는 감독을 질문하자 주저없이 핑크 플라밍고로 유명한 존 워터스 감독을 언급했는데, 그 이유가 "내가 태어나서 영화를 보고 구토하게 만들어서. 내 영화를 보고 구토한 이들이 많은데 반대로 날 영화로 구토하게 만든 사람은 오로지 그 사람 뿐이다." 뭔가 굉장한 사람이다.[7]

니콜라스 윈딩 레픈의 온리 갓 포기브스에서는 엔딩에 그에게 이 영화를 바친다는 헌사가 뜬다.

영화와 만화 외에도 굉장한 것은, 그가 타로카드 점술의 구루라는 사실이다. 그것도 무엇을 생각하든 그 이상의 업적을 마르세이유 타로 역사에 끼쳤으며, 카모앙(Camoin)과 함께 마르세이유 타로의 양대 선지자로서 마르세이유 타로를 현대에 계승하고 재현하는 데 지대한 업적이 있다.

애니메이션 감독 이쿠하라 쿠니히코가 존경하는 감독이다. 조도로프스키의 작품이 일본에 개봉되면 추천사를 써주기도 한다.

6. 외부 링크


[1] /xoðoˈɾofski/ 지금은 사라진 영화 잡지 월간 키노에서 가진 인터뷰에서 '당신 이름은 영어와 스페인어로 발음할 수 있는데 어떤 것으로 불러주면 좋겠습니까?'라는 질문에 '알레한드로 호도로프스키'라고 답했다. 사실 호도로프스키는 출생을 봐도 알 수 있지만 칠레에서 프랑스로 이민을 한 케이스라, 본국 언어인 스페인어로 부르는게 정확하다.[2] Panic Movement 또는 Mouvement panique. 감독이 연극과 영화에 직접 출연해야 한다.[3] 참고로 그 악명높은 안달루시아의 개의 감독인 루이스 부뉴엘도 관객들에 의해 죽을 뻔 했다. 그 뒤로 부뉴엘은 권총을 가지고 다녔다고.[4] 남자 아역이라서 그런지 100% 누드로 초반부에 등장한다. 중후반부에 성년 배우로 바뀐 뒤에는 옷입고 나온다. 물론 현대에 나왔으면 남자아이건 뭐건 100% 아동 성추행물 취급을 받았을 것이다.[5] 관심을 피하기 위해 말이다.[6] 정확히는 경찰복을 계속 사용하거나, 종교를 모독하면[7] 꽤 당연한 일이겠지만 핑크 플라밍고는 상상을 초월한 괴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