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07-29 16:21:18

안토파가스타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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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토파가스타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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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칠레|]][[틀:국기|]][[틀:국기|]][1]
주도 안토파가스타
면적 126,049.1㎢
인구 599,335명 (2017년)
인구밀도 4.8㎢ (2017년)
시간대 UTC-4:00, 서머타임: UTC-3:00 (CLT)
ISO 3166-2 CL-AN

1. 개요2. 역사3. 칠레와 볼리비아의 영유권 분쟁4. 지정학적 중요성5. 관련 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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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안토파가스타 주는 칠레의 행정 구역이다. 칠레에서 두 번째로 큰 지역으로 세부적으로 안토파가스타 현, 엘로아 현, 토코피야 현이 있다. 북쪽으로는 타라파카주, 남쪽으로는 아타카마 주와 접하며 동쪽으로는 볼리비아아르헨티나와 국경을 접한다. 주도는 항구도시 안토파가스타이며, 그 외에 칼라마, 토코피야, 메히요네스 등 크고 작은 여러 주요도시들이 있다. 이 지역의 주요 경제 활동은 거대한 내륙 포르피리오 구리 체계에서 구리 채굴이다.

안토파가스타의 기후는 해안 근처는 다소 온화하지만 극도로 건조하다. 로아 강과 산 페드로 데 아타카마와 같은 오아시스를 제외하고는 거의 모든 지역에 식물이 없다. 내륙의 대부분은 염전, 테프라, 용암류로 덮여 있으며, 해안에는 눈에 띄는 절벽이 있다.

스페인 제국 몰락 이후 볼리비아령으로 편입되었으나 태평양 전쟁에서 칠레 영토가 되었다. 이러한 역사적인 이유로 인해 볼리비아와의 영토 갈등이 존재하고 있다. 볼리비아는 칠레와의 국교관계 수립을 위해서는 칠레가 태평양 전쟁으로 합병한 안토파가스타 지역 등 예전 볼리비아령이었던 칠레 북부 태평양 연안 지대의 반환과 자국의 해안 접근권 회복이 우선이라며 안토파가스타 지역에 대한 완전한 반환과 일부 항만 도시들의 영유권 할양을 요구하고 있지만[2], 구리, 은, 초석 등 해당 지역에서 산출되는 막대한 지하 자원들과 육로상 남미 북쪽으로 진출이 가능한 지정학적 요지에 가까운 이 지역의 전토 혹은 일부를 놓고 싶어하지 않는 칠레가 이를 거부하고 있어 양국의 주장이 평행선을 달리고 있다. 또 거기에 지역주민 절대다수가 칠레로의 잔류를 원하며, 볼리비아로의 합병을 결사적으로 반대하고 있어 실제 실효통치 국가인 칠레에게 전반적으로 유리한 상황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볼리비아는 자국 헌법에 해안영토 확보를 명시하는 규정을 두며 해양 수복에 대한 염원을 버리지 않고 있으나 과거 볼리비아에 속해있었던 안토파가스타 주와 안토파가스타 주와 인접한 타라파카 주와 아리카이파리나코타 주 등 북칠레 지역의 태평양 연안 3개 주들의 지역 주민 여론은 칠레 잔류와 볼리비아로의 합병 및 영유권 협상반대로 기울어져 있으며 여기에 또 다른 남미의 이웃국가인 페루가 태평양 전쟁 전후와 1929년 타크나의 페루 반환 이후에 획정된 현 칠레 북부 3개 주 지역의 칠레의 영유권 유지 및 현행 칠레-페루 국경선의 현상 유지를 원하며[3][4] 이 일대의 영유권이 칠레에서 볼리비아로 귀속하는 것에 대해 반대하는 입장을 취하고 있어 여러모로 볼리비아에게 불리한 실정이다.

2. 역사

본래는 잉카제국의 영토에 속해있었으나 잉카 멸망 이후 남미 대륙으로 진출한 스페인 콩키스타도르들에게 점령되고 이 일대에 현재의 안토파가스타 시를 비롯해 토코피야, 메히요네스 등의 식민도시를 건설, 개척하면서 스페인 제국의 영토가 되었다.

나폴레옹 전쟁 이후 스페인 제국의 지배를 받고 있던 남미 식민지들이 우후죽순 독립하게 되면서 이 일대는 볼리비아의 영토가 되었다. 1866년에 이 일대에서 초석과 구리, 은이 발견되었으나 당시 남미 국가들이 다 그렇듯 모자란 인구로 개발이 어려웠고, 볼리비아는 이 지역 개발을 위해 칠레를 끌어들여, 1874년에 자국 내 칠레인 및 칠레 기업에 향후 25년간 무과세 혜택의 제공을 골자로 하는 조약을 체결했다.

그러나 1876년 볼리비아 내부의 군사 쿠데타와 뒤이은 경제혼란으로 돈줄이 궁하던 볼리비아는 1878년 안토파가스타 지방의 칠레인 및 기업들에게 수출세를 부과했다. 이는 명백한 조약 위반이었고, 조약에 의거해 칠레인들이 세금납부를 거부하자 볼리비아 정부는 이들 자산에 압류조치를 폈다.

뒤이어 볼리비아가 안토파가스타와 수도를 잇는 철도를 개통, 안토파가스타 영유권을 굳히려 들자 칠레는 격분했다. 법적으로는 볼리비아 영토지만 개발은 사실상 다 칠레인이 했는데, 볼리비아가 개발만 다 시켜놓고 그대로 뺏어먹으려 한다는 인식이 커서였다. 더군다나 이 때 칠레도 경제가 나빠서 더욱 민감했는데 결국 1879년에 해당 지역의 초석 광산의 경제적 이권을 두고 칠레와 갈등을 겪던 볼리비아는 페루와 동맹을 맺고 칠레를 공격하여 태평양 전쟁을 일으켰으나 결과는 칠레군의 승리로 끝났으며 볼리비아를 누르고 전쟁에서 승리한 칠레는 이 일대를 칠레령으로 합병하면서 초석, 구리 등 막대한 지하 자원이 쏟아지는 자원 매장지와 방대한 태평양 연안의 영해, 페루, 에콰도르, 콜롬비아 등 남아메리카 북부 지역 국가들로 칠레인들이 육로상 진출할 수 있는 영토를 얻게 되었으며 전쟁에서의 패전으로 이 일대의 영유권을 상실하고 만 볼리비아는 해안선을 잃은 내륙국가가 되었다.

태평양 전쟁으로 칠레에 합병된 이후에는 칠레 영토가 되었고, 칠레는 안토파가스타와 토코피야, 메히요네스, 카라마 등 옛 볼리비아 영토였다가 전쟁으로 칠레에 신규 합병시킨 이 지역 영토에 다수의 칠레 자국민들을 이주, 정착시켰다. 당시 칠레로서는 태평양 전쟁에서 볼리비아로부터 이 지역을 병합하기 전 비좁았던 기존 칠레 땅에서 살던 칠레 국민들을 새로 합병한 이 일대에 이주시켜 인구 과밀 문제를 해소할 겸 초석, 구리 등 지하자원의 개발과 남미 북쪽으로 연결되는 화물 및 여객 철도의 개발을 위해 칠레 국민들에게 안토파가스타로의 이주정착을 권고했고, 이 일대로 이주해 온 칠레 이주민들은 초석 및 구리 등 지하자원 개발과 철도 개발을 통한 경제적 부를 얻기 위해 이 지역으로 몰려들어가 정착하여 광산업 및 철도 개발 사업에 뛰어들고, 이외에도 어업을 하며 부를 축적했다. 구리, 초석, 은 같은 지하자원도 많이 나오고, 영해도 넓고, 육로를 통해 남미 대륙 북쪽 바깥으로 나갈 수도 있는 지정학적 요충지이다시피했던 안토파가스타 주 지방을 합병한 이후에 칠레는 해당 지역에서 나오는 구리 등 광물자원 수출과 안토파가스타 주를 통과하는 화물 철도를 통해 페루, 에콰도르, 콜롬비아 등 북쪽의 남미 국가들과의 무역 수출을 통해서 남미에서 경제적으로 매우 잘 사는 부국이 되었다.

그로부터 태평양 전쟁이 끝난지 약 반세기가 지난 1929년 칠레는 타크나 주 등 태평양 전쟁 당시 페루에게서 빼앗아간 옛 페루령 지역 영토 일부를 페루에게 반환하게 되었고, 이에 볼리비아는 당시 칠레와 전쟁을 치렀던 이웃나라 페루가 칠레에게 빼앗긴 옛 영토를 다시 돌려받는 모습을 보게 되면서 태평양 전쟁이 칠레의 승전으로 끝난지 약 47년만에 칠레에게 태평양 바다로 나갈 수 있는 해안 접근권 확보와 칠레에 흡수된 옛 영토에 대한 반환을 요구하며 안토파가스타 주 지역의 영유권을 다시 주장했다. 그러나 이미 안토파가스타의 지역 주민들 대부분은 칠레에 합병된 이후에 칠레에서 이주해온 칠레인 이주민과 그 후손들이 다수를 차지하고 있었고, 이들 지역 주민 대부분은 볼리비아로의 귀속을 반대했다.

이러한 배경으로 이 지역의 영유권 문제과 볼리비아의 해안 접근권 확보 문제를 둘러싸고 볼리비아와 칠레 사이에 여러 차례의 외교적 협상이 있었지만, 칠레 입장에서 매우 중요한 요충지였던 안토파가스타를 놓기 싫어했던 칠레 정부 측의 소극적인 태도와 현지 거주 지역주민들의 볼리비아 재합병 반대 여론에 부닥쳐 모두 결렬됐고, 결국 칠레와 볼리비아는 칠레 합병 이후에 이주해온 칠레계 주민들이 절대다수를 차지해버린 옛 볼리비아 땅이던 안토파가스타가 아닌 아리카 등 예전 페루 영토였었다가 태평양 전쟁 당시 칠레 땅이 됐던 페루-칠레 국경 지대의 태평양 해안 영토 일부를 볼리비아에게 내주려던 타협책까지 내보았으나[5] 이 지역이 볼리비아 영토가 됨으로서 칠레와 맞닿은 현행 페루-칠레 국경 지대의 완전한 상실을 원치 않았던 페루가 1929년 타크나의 페루 반환을 골자로 나머지 태평양 전쟁때 칠레에 병합된 영토와 새로 획정된 칠레-페루 국경선을 인정하기로 한 칠레와의 평화 조약을 칠레가 볼리비아에게 페루-칠레 국경 지역 영토를 할양해 파기하려 하고 있다며 여기에 반대하였고, 또 여기에 안토파가스타 주의 칠레인 주민들보다는 상주 인구 수가 적었지만 만만치 않은 인구 수를 차지하며 아리카 주 등 옛 페루령 지역으로 이주해온 칠레인 주민들도 볼리비아로의 합병에 결사적으로 반대하면서 무산되고 말았다, 결국 볼리비아는 아리카 등 페루-칠레 국경 지대 방면으로 해안선을 얻으려던 시도마저 번번이 이웃나라 페루와 아리카 지역에 정착한 칠레인 주민들의 반대로 도저히 진척을 못 보게 되자 볼리비아의 영토였었던 안토파가스타 주의 영유권 주장을 재차 꺼내며 안토파가스타 지역을 다시 돌려받아 그 지방에 이주해와서 사는 칠레인 주민들의 볼리비아 재합병 반대 여론을 찬성 쪽으로 설득해서라도 빼앗긴 바다를 되찾겠다면서 칠레와 또 다시 대립하기 시작했다. 결국 양국이 치열한 대립을 이어가던 2018년 볼리비아는 이러한 칠레와 오랫동안 이어져온 안토파가스타 주를 둘러싼 해양 접근권 및 영유권 분쟁을 국제사법재판소에까지 제소하였으나 오히려 국제사법재판소는 칠레가 볼리비아에게 안토파가스타와 카라마 등 예전 볼리비아 땅이었다 현 칠레 영토에 속해있는 남미 태평양 연안지대의 영유권을 할양하거나 항구를 임차할 의무가 없다는 판결을 내려 사실상 칠레의 손을 들어주어 결국 이 소송은 볼리비아의 패소로 끝나고 말았으며, 이후 법적 싸움에서조차 패소한 볼리비아는 안토파가스타에 대한 영유권을 주장할 명분마저 잃어버렸고 2023년 현재 이 일대는 칠레의 영토로 남아있다.

여하튼 이 지역을 칠레와의 전쟁에서 패전하면서 상실하고 초석, 은 등 지하 자원들이 매장된 광산들과 태평양 연안 지대로 통하는 출구를 잃어버려 내륙국이 되어버린 볼리비아의 입장에서는 통한의 땅이지만 육군의 예비군 병력 40,000명과 정규군 병력 77,000명, 공군의 F-16 전력 46대, 강력한 해군력만으로도 라틴아메리카 역내에서 막강한 칠레군의 군사력에 현재 볼리비아의 군사력으로서는 이 지역을 두고 칠레와 전쟁을 일으켜도 상대조차 되지 않는 것은 물론 제2차 세계대전 이후로 무력을 통한 일방적인 영토 합병도 현대 국제사회에서도 어떠한 명분을 앞세워도 인정하지 않는 정서가 자리잡혔기에 사실상 불가능하고,[6] 안토파가스타의 지역주민 절대 다수[7]가 칠레 잔류를 외치며 볼리비아로의 귀속을 결사적으로 반대, 거부하는 탓에 볼리비아로선 속만 태우고 있다.[8] 거기다가 칠레에선 안토파가스타를 비롯한 바다로 나갈 수 있는 연안 영토라도 할양해달라는 볼리비아의 영토 요구에 '절대 불가,' '지역주민 절대다수가 우리나라에 남고 싶어함'으로 대응하거나 '그럴 거면 볼리비아도 브라질과 파라과이한테 빼앗겼던 아크레 주와 차코 보레알 지방[9]부터 먼저 되돌려받고 이 문제 이야기해보자'라면서 무시하고 있다.[10]

3. 칠레와 볼리비아의 영유권 분쟁

현재는 국제법상 칠레 영토이지만, 이전에는 볼리비아의 영토였었고 이 일대를 상실하면서 해안선이 없는 내륙국가로 전락한 볼리비아는 안토파가스타 시를 비롯한 이전 볼리비아령이었던 칠레 북부의 태평양 연안 지대에 대한 영유권 반환과 항만 접근권 확보를 칠레에게 요구하고 있으나 칠레 정부는 안토파가스타 시와 주 일대의 주민들 대부분이 칠레령 잔류를 지지한다는 이유를 내세우며 거부하고 있다. 실제 현지 지역주민 다수의 여론도 그렇다. 칠레령 합병 이후에 칠레 본국에서 살다가 해당 지역으로 이주/정착한 칠레계 주민들과 칠레 합병 이전부터 해당 지역에서 대대로 살던 볼리비아계 출신 주민들을 막론하고 지역내 주민들 절대다수가 볼리비아로의 귀속 반대, 칠레 영토 잔류를 강력하게 주장하고 있다! 현재 이들 현지 주민 구성원들의 반대 입장이 각각 다른데 우선 이주민 출신의 칠레계 주민들은 자신들의 국가적 정체성을 내세우며 칠레의 일부로 조상대대로 살아오던 고향 땅의 소유권을 죽어도 볼리비아에게 넘겨 줄 수 없다는 입장인 반면, 볼리비아계 주민들은 현재 볼리비아가 칠레보다 경제적으로 더 못 사는 국가라는 논거들을 앞세우며 경제적인 요인으로 인해 볼리비아로의 합병에 반대, 귀속에 소극적인 입장을 표하고 있다.[11]

하지만 볼리비아는 칠레와의 태평양 전쟁에서 패전해 빼앗겼던 태평양 해안 지역 영토 일부라도 얻거나, 볼리비아로의 귀속을 거부하는 현지 지역민들의 민심을 칠레에서 볼리비아 쪽으로 돌려서라도 안토파가스타의 영유권을 회복하려고 싶었는지, 볼리비아 내륙 본토와 단절된 월경지라도 좋으니 안토파가스타 시와 카라마[12]를 비롯한 다른 안토파가스타 지역의 도시와 영토들은 칠레가 영유권을 갖는 대신 안토파가스타 주 일대에 속한 일부 태평양 항구 도시들(메히요네스, 토코피야, 탈탈, 파포소.)의 영유권만이라도 자국에게 할양해달라며 안토파가스타 지역의 도시와 영토들을 각각 칠레령과 볼리비아령으로 양국이 나눠서 갖는 영토분할안을 칠레 정부에게 제안/요구하기도 하고,[13] 또는 볼리비아 영토로 다시 귀속하되 타 볼리비아 지역들과 같이 볼리비아 중앙정부의 직접통치가 아닌 안토파가스타 출신 현지인들이 지역 행정권을 다스리는 지방 자치 허용이나, 안토파가스타의 지역 주민들에게 칠레-볼리비아의 2중 국적을 부여하거나, 현행 볼리비아 헌법을 개정하여 안토파가스타 지역 출신과 내륙 지역 출신이 각각 볼리비아 의회의 상원과 하원의 의석을 나눠갖거나 대통령은 현 볼리비아 지역 출신, 부통령은 안토파가스타 지역 출신이 나눠서 역임하는 형태의 개헌안을 제안해보기도 했으나[14] 경제적, 정치적으로 볼리비아보다 더 잘 사는 위치에 있었던 칠레와 안토파가스타의 지역주민 사회, 칠레령 안토파가스타 주 정부는 이러한 제안들을 모두 거부하거나 묵살하였다. 거기다 지방 자치 부여와 권력 분배를 조건으로 안토파가스타가 칠레에서 떨어져나가 볼리비아에 재합병된다고 해도 현재 남미에서 가난한 최빈국인 볼리비아와 부유한 안토파가스타 지역 간의 경제적 격차가 워낙 크기 때문에 안토파가스타의 지역민들로서는 볼리비아에 편입 될 시 가난한 볼리비아 타 지역들한테 세금을 대부분 내야 하는 등 재정적으로 큰 손해를 입을 수 밖에 없다.[15] 게다가 이 일대의 지역 주민들 사이에서는 칠레 잔류 여론이 강력하다 못해, 볼리비아놈들이 쳐들어오면 칠레군과 함께 목숨을 걸고 볼리비아 놈들을 반드시 죽이고, 고장을 지키겠다는 언사까지 내뱉을 정도로 안토파가스타에 대한 영유권 주장을 굽히려고 하지 않는 볼리비아에 대한 적개심이 칠레 여타 지역들보다 매우 심하다고 한다.[16]

이 때문에 일부 볼리비아내 극우주의자들 사이에서는 안토파가스타가 볼리비아로 다시 귀속된다면 이전 독일 영토였다가 제2차 세계대전 당시 폴란드와 소련 영토로 흡수됐던 동프로이센과 슐레지엔, 폼메른 같은 구 독일령 지역들의 사례들처럼 원래 해당 지역내에서 살던 독일계 주민들을 제거/추방시키고, 폴란드와 소련이 폴란드인이나 러시아인들을 정착/이주시켰던 것처럼[17] 칠레령 잔류와 볼리비아로의 귀속 반대를 주장하는 안토파가스타에서 살고 있는 칠레계 주민들을 전부 다 죽이거나 칠레 본국으로 강제추방시키고 그 지역에 볼리비아인들을 다시 재이주시켜야 한다는 강경한 주장을 펼치고 있다. 하지만 실현 가능성은...[18] 현재 볼리비아 정부 측에서는 현지 지리 사정이나 기반 시설 운영법을 잘 아는 이 지역의 현지 주민들을 칠레 타지역으로 강제 추방시켰다가는 항만 사용이나 해양 선박 조종/운용 등에 심각한 악영향이 생길 수 있다며 이 지역의 현지민들을 온건한 방식을 통해 볼리비아 국민으로 편입시켜야 한다는 입장을 견지하고 있다.[19] 이 때문에 비록 현실성은 희박하지만 만약 이 지역이 다시 볼리비아령으로 재편입되거나 혹은 영토의 일부가 볼리비아에 재귀속된다면 이 일대에서 거주하고 있는 칠레계 주민들을 칠레 여타 지역으로 강제추방하는 대신 볼리비아 정부에서 평화적인 절차를 통해 자국민으로 편입시키거나 높은 수준의 지역 자치 정부 설립을 허용할 가능성이 더 높아보인다.

물론 이 두 나라도 태평양 연안 지대에 대한 영토 문제에 일방적으로 각을 세우며 대립한 것도 아니어서 한때 칠레는 볼리비아가 안토파가스타의 칠레 영유를 인정하는 대신 아리카 주 등 칠레 북부의 다른 태평양 연안 지역을 볼리비아한테 할양하고, 칠레가 볼리비아령인 티티카카 호수에 대한 사용권을 허용받는 방안을 제시해보았지만, 이는 남미의 주변국들인 페루와 브라질, 아르헨티나 등이 남미 역내의 국가 간 영토/국경 분쟁 해소에 안 좋은 선례를 남길 수 있다며 결사반대하면서 무산되었다. 한편 볼리비아는 칠레와 국경을 접한 안데스 산맥 일대의 내륙 영토와 칠레의 해안 지역을 영토 교환하자는 제안도 내걸었지만 이것은 칠레 측이 거부.[20]

이 일대의 영유권 및 볼리비아의 태평양 접근권 여부 논란을 둘러싼 볼리비아와 칠레의 갈등이 극에 달하자 결국 볼리비아는 2013년 국제사법재판소에 칠레를 고발하며 이 문제를 국제사법재판소에까지 끌고 갔으나 정작 국제사법재판소는 2018년 10월 1일에 태평양 접근 주권 협상에는 칠레에 권리가 있다는 최종판결을 내림으로써[21] 칠레의 승리로 끝나게 되면서 볼리비아가 패소하였다.

지정학적 요지에 가까운 특정 영토의 역사성과 소유권을 놓고 양국이 서로 대립하고 있고, 분쟁 지역의 현지 주민 당사자들 대부분이 영유권을 주장하는 국가로의 귀속을 거부/반대하며 실제 실효지배국의 국토로 잔류하기를 원하는 측면에서 마치 영국과 아르헨티나의 포클랜드 제도 영유권 분쟁과 스페인과 영국의 지브롤터 영유권 분쟁 등과도 상황이 아주 많이 비슷하다. 다만 차이점이 있다면 포클랜드 제도는 중남미 국가들 대부분이 공식적으로든, 비공식적으로든 아르헨티나를 지지해주기라도 하지만(심지어 아르헨티나와 전통적 앙숙 관계인 브라질과 칠레조차도 포클랜드를 아르헨티나 영토라고 인정하며 아르헨티나를 지지한다.) 안토파가스타는 중남미의 다른 나라들조차도 칠레 땅으로 인정하며 볼리비아의 입장을 지지해주지 않고 있다. 일각에선 유럽 열강인 영국이 지배하고 있고, 분쟁의 구도가 남미 국가인 아르헨티나와 유럽 국가인 영국의 대립구도여서 식민제국주의의 연장선으로 만들 수 있는데다 중남미 나라들이 아르헨티나를 지지할 명분이 있는 포클랜드 제도와 다르게 안토파가스타는 남미 국가인 칠레와 볼리비아의 갈등인데다 여기에서 중남미 국가들이 포클랜드 분쟁에서 아르헨티나를 지지하듯이 볼리비아 입장을 지지하게 될 경우 이 밖의 중남미 국가들이 겪고 있는 인접국 간 영토 분쟁에서 나쁜 악영향을 끼칠 수 있기 때문에[22] 볼리비아를 편 들지 못한다는 주장도 있다. 하지만 중미와 남미의 다른 나라들조차도 외교적인 지지는 커녕 외면하고, 칠레가 영토 반환 불가 입장을 고수하고, 안토파가스타내의 칠레인 주민들이 칠레 잔류를 주장하며 볼리비아로의 반환을 결사적으로 반대, 거부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바다가 없는 내륙국이 바다를 맞댄 해양국에 비해 무역이나 지리적 위치 등 여러 분야에서 얼마나 불리한지를 고려하면 볼리비아는 여전히 태평양 전쟁으로 칠레에게 빼앗긴 안토파가스타 등 현재 칠레 영토가 된 구 볼리비아령 해안 지역의 반환과 해양 진출에 대한 미련을 못 버리며 영유권 분쟁 소송 패배 이후에도 칠레와의 국력 격차와 현지 주민들의 볼리비아로의 귀속 거부 여론 등 현실적으로 이 지역의 영유권이 볼리비아로 편입될 가능성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안토파가스타에 대한 영유권 회복 또는 경제적 영향력 확보 의지를 포기하려 하지 않고 있는 상황이다.

한편 칠레 내 일각에서는 아예 볼리비아가 영유권 반환 주장과 해양 접근권을 요구하는 안토파가스타 주에 대해서 칠레 정부가 기존의 무시 전략으로 일관할게 아니라 이전 영국이 영국령 잔류 여부를 묻는 주민투표를 실시해서 현지 지역 주민들 대다수가 영국령 잔류 찬성/아르헨티나, 스페인으로의 귀속 반대를 택했던 영국령 포클랜드 제도지브롤터처럼 안토파가스타 내 지역 주민들을 상대로 칠레령 잔류 여부를 묻는 주민투표를 실시하여 현지민들의 지지 확보를 통해서 볼리비아와의 영토 분쟁에서 외교적 우위를 차지해야 한다는 주장도 나오고 있는데 만약 이 주민투표가 실시되어 안토파가스타 주의 현지 주민들이 칠레령 잔류 찬성과 볼리비아로의 귀속 반대에 손을 들어준다면 태평양 전쟁으로 칠레에게 잃은 안토파가스타에 대한 영토 반환을 주장하며 태평양 연안 수복을 외쳤던 볼리비아로서는 국제사법재판소에서의 소송 패배에 이어서 다시 적지 않은 타격이 될 전망이다.

극소수이긴 하지만 일부 이 지역의 지역민들 사이에서는 칠레령 잔류나 볼리비아로의 재편입도 아닌 아예 칠레에서 분리독립하여, 스페인 제국 몰락 후 브라질에게 흡수되었다가 아르헨티나의 지원으로 브라질과 아르헨티나 사이에서 완충국으로 독립한 우루과이처럼[23] 칠레와 볼리비아 양국 사이에서 완충지대 형태로나마 안토파가스타가 독립국가로 독립해야 한다는 주장도 있다고 한다. 하지만 현재 안토파가스타를 실효지배하고 있는 칠레와 해안지대로의 출구 확보를 외치며 해당 지역의 영유권 회복을 주장하고 있는 볼리비아가 이를 받아들일지는 의문. 무엇보다 가장 큰 문제는 안토파가스타 지역의 인구가 독립국가를 꾸리기에는 인구가 너무 적다는 것이다. 그리고 대부분의 현지 주민들도 분리독립이나 볼리비아로의 귀속보다는 칠레령으로 남기를 원하는 의견이 백중지세를 차지하고 있는데 칠레로부터 독립하여 아무 기반도 없는 독립국으로 홀로서기를 하는 것이나 경제적으로 뒤떨어지는 볼리비아령으로 합병되는 것보다는 칠레에 남는 것이 경제적으로 더 큰 이득이 되기 때문이다.

한편 현재 태평양 연안과 인접한 칠레 북부의 영토들중 안토파가스타와 인접한 타라파카와 아리카 지역은 원래는 볼리비아 땅이 아닌 페루의 영토였는데, 이 지역들 또한 태평양 전쟁 당시 칠레가 볼리비아로부터 빼앗아먹은 안토파가스타와 마찬가지로 페루 영토였던 곳을 칠레가 무력으로 똑같이 과거 페루의 영토였던 타크나 지역과 함께 자국 영토로 흡수합병하였다. 한때 페루는 현재 태평양 전쟁으로 칠레에게 빼앗긴 안토파가스타를 놓고 칠레와 해양 영토 분쟁을 겪고 있는 이웃 남미국가인 볼리비아와 마찬가지로 태평양 전쟁에서의 패전으로 칠레령으로 편입, 할양되었던 타라파카, 아리카 지방과 페루와 국경을 접한 타크나 지방에 대한 영토 반환을 요구하며 칠레와 강경하게 대립하였고, 결국 칠레는 페루에게 현지 지역 주민들에게 해당국으로의 귀속 여부를 물은 다음 페루에게 해당 지역들을 돌려주겠다는 제안을 하여 1929년 예전 페루령이었다가 태평양 전쟁으로 칠레에 흡수된 당시 구 페루령 3개 지역들에게 칠레 영토로 남을 것인가, 아니면 페루에 재합병할 것인가를 결정하는 지역 주민 투표를 실시하였다. 투표 결과 칠레 합병 이후 칠레 본국에서 이주/정착한 칠레인 주민들의 인구 비율이 높았던 아리카 지역과 타라파카 지역은 주민 다수가 페루로의 재합병에 반대하며 칠레령 잔류에 표를 던져 칠레령으로 남으면서 결국 페루는 이 지역들에 대한 영유권 주장을 포기하고 칠레와 평화조약을 체결하면서 이 지역을 칠레 땅으로 인정했다. 반면 칠레인 이주민들의 수가 적었고, 현지 거주 토착민들의 정서가 페루와 가까웠던 타크나 지역은 지역 주민투표에서 지역민 절대다수가 페루로의 재합병을 선택하면서 페루에 재차 합병되었는데,[24] 칠레령이었던 시절에 타크나에 이주한 소수의 칠레인 주민들은 페루 재합병을 결사반대하면서[25] 칠레 본토로 대거 떠나거나, 현실을 인정하고 페루 국적을 받아 페루 시민이 되었다.

한편 볼리비아와 칠레는 안토가스타 주 등 이전 볼리비아 영토였던 칠레 북단의 태평양 해안지대 영토 뿐만 아니라 현행 볼리비아-칠레 국경을 지나는 실라라 강의 강물 사용권 문제로도 대립하고 있다. 볼리비아는 실라라 강의 강물 사용권을 칠레가 무단으로 사용하고 있다고 주장하는 반면 칠레는 실라라 강은 칠레와 볼리비아 두 나라의 소유라고 주장하며 강하게 반발하고 있는데 2013년 볼리비아가 안토파가스타 주 지역의 영유권 문제를 국제사법재판소에 제소하자 칠레는 덩달아 이 실라라 강의 수자원 사용권을 둘러싼 칠레와 볼리비아 간의 외교 문제 역시 2016년 국제사법재판소에까지 제소했다. 다만 볼리비아 측에서 제소를 걸었다가 2018년 국제사법재판소의 최종 판결에서 안토파가스타 주 지역에 대한 태평양 주권 협상에 칠레가 임할 의무가 없다며 칠레의 손을 들어준 최종판결이 내려져 볼리비아 측이 패소한 안토파가스타 주 문제와는 달리 볼리비아는 이 실라라 강의 수자원 사용권 문제에서만큼은 반드시 칠레를 누르고 승소하겠다는 굳은 입장을 밝히고 있어서 일각에서는 볼리비아가 이 실라라 강물 사용권 승소를 통해서 예전 자국령이었다가 칠레의 영토가 된 안토파가스타 주를 비롯한 태평양 연안지대에 대한 해안 접근권 및 영유권 문제를 다시금 제기하여 칠레를 압박할 명분을 만들기 위한 지랫대로 활용 하는 게 아니냐는 분석도 나오고 있다. 그러던 2022년 12월 볼리비아와 칠레가 양국 국경을 걸쳐 흐르는 실라라 강을 국제수로로 인정해 공동사용하기로 합의함으로서 국제사법재판소 역시 칠레와 볼리비아가 실랄라강이 국제 수로의 지위를 갖는다는 점에 합의했다며 중재 판정을 내리지 않겠다고 밝히면서 실라라 강을 둘러싼 두 나라의 분쟁은 종결되었다.#

그럼에도 안토파가스타주를 둘러싼 볼리비아와 칠레의 해안 접근권 갈등은 2018년 국제사법재판소에서 볼리비아가 칠레를 상대로 건 영토 분쟁 제소에서 패소한 이후에도 현재 진행형이다. 바다와 맞닿은 항구가 없어 페루나 아르헨티나 등 바다를 접한 다른 남미 인접국가들의 항구를 불편하게 빌려쓰고 있는 볼리비아는 칠레에게 그 국제사법재판소의 2018년 최종 판결문에서 영토 협상을 원하면 해도 된다는 문구가 있으니까 우리랑 다시 해안 접근권 협상 하자, '저기 지역 영토들중에 칠레 국민들 다수 거주하는데는 너네 나라가 영유권 갖고, 칠레인 인구 적은 일부 해변지대 땅 몆 군데만 우리나라 본토와 단절된 월경지로라도 돌려주면 어떻겠냐?'라며 이 지역의 문제를 두고 칠레에게 제안 또는 역제안을 하고 있으나 아쉬울 것도 없는 칠레는 볼리비아의 요구를 무시하고 있다.

4. 지정학적 중요성

칠레의 입장에서 안토파가스타 주는 아타카마 사막 일대의 북중부 지역으로 연결되는 교통의 요충지로서 이 지역을 점령하면 할수록 현재 칠레 북부 지역의 육지영토들과 칠레 북단의 태평양 해양 지대에 대한 통제권을 수월히 넣을 수 있기에 매우 중요한 요충지이다. 조금 더 북쪽에 위치한 타라파카 주와 아리카 이 파리나코타 주를 육로상 연결하는 완충지대 겸 기착지의 역할도 가능하다. 특히 이 점은 페루 육로를 통해서 타 중남미 스페인어권 국가들과의 교역을 중시하는 칠레로서 더욱 더 강력하게 작용하는데 이 지역을 태평양 전쟁 당시 칠레가 볼리비아 땅이었던 이 지역과 페루령이던 타라파카와 아리카 이 파리나코타 주 지역을 자국령으로 합병함으로서 칠레가 남미 대륙의 북쪽으로 나갈 수 있는 교통의 요충지라는 중요성이 커졌기 때문이다. 그 이전까지만 해도 칠레는 볼리비아와 페루의 영토를 통과해야 하는 번거로움이 작용했는데 이 지역이 전부 칠레 땅이 되면서 번거롭게 볼리비아와 페루의 국경을 넘어야 할 필요성이 없어졌기 때문이다. 게다가 만약에 안토파가스타 주가 볼리비아에게 함락, 재합병당하면 칠레는 아타카마 사막 지대에 위치한 북부 지역의 2개 주 영토와 수도 산티아고, 파타고니아, 티에라델푸에고 이서 지역이 위치한 중남부 지방의 영토가 타국의 영토에 가로막힌 비연속국으로 전락당할 가능성이 높아진다. 대략 제1차 세계대전 전후에 폴란드의 독립으로 동프로이센과 오데르 강 이동 지역의 2개 주와 현재의 독일 본토 지역이 제1차 대전 이후 신생국 폴란드에게 발트해 접근권을 내주고 폴란드령이 된 폴란드 회랑 지대를 사이에 두고 국토가 단절되어 있었던 바이마르 공화국 정부 당시의 독일과 같은 상황이 칠레에게도 재현될 수 있다.

이러한 연유로 칠레가 안토파가스타를 통치하면 페루와 인접한 북부 칠레의 2개 주 지역(타라파카주, 아리카 이 파리나코타주)들의 영유권을 전부 단박에 접수할 수 있게 된다. 실제로 태평양 전쟁 당시 칠레가 볼리비아군을 격파하고 안토파가스타를 점령하자 단박에 북진하여 페루 영토였었던 타라파카 주와 아리카 이 파리나코타 주를 병합한 것도 이와 비슷한 맥락이었다.

지리학적인 이점 외에도 영토 면적이 원 칠레 지역 영토들에 비해 안토파가스타와 타라파카, 아리카 이 파리나코타 등 옛 볼리비아, 페루령이던 북칠레 지역의 주들은 영토 전체를 다 합쳐도 184721. 9㎢를 육박하는 거대한 땅이기에 자국민 이주를 통한 인구 분산에 유용하다는 장점도 있다. 비록 황량한 사막지대이긴 하지만 구리, 초석 등 지하자원들도 풍부하여 국가 경제의 전반을 광물자원 특히 구리 수출에 의존하는 칠레로서는 경제적으로도 매우 가치가 있고, 기존 칠레 영토에서 살던 자국민들에게 이 지역으로의 이주를 통한 상주인구 분산 및 이 일대의 지하자원 개발을 위한 광부 인력 확보도 노릴 수 있다. 스페인 독립 초기에 비좁은 기존 칠레 영토에서 살던 칠레 국민들이 나중에 이 지역이 태평양 전쟁 당시 칠레에 합병되자 이 지역으로 이주해 몰려들어가 정착하고 칠레 정부에서 이 지역에 대한 자국민의 이주를 장려한 것도 이 때문이었다. 그래서인지 칠레와 볼리비아 사이에 영유권 분쟁이 발생하면 칠레가 이 지역의 전토 혹은 일부라도 영토를 돌려줘 볼리비아와의 갈등을 해결하고 싶어해도 볼리비아로 재합병 시 발생되는 이 지역에서 정착한 칠레인 주민들에 대한 지위 문제와 볼리비아로의 재합병을 반대하는 현지 칠레인 주민들의 반대 여론이 가장 큰 걸림돌이다.[26]

이러한 배경으로 인해 칠레는 1883년 페루령이었다가 태평양 전쟁 당시 칠레에 합병되었던 타크나주를 1929년 페루에게 반환하고, 아르헨티나와는 칠레 중부의 푸나 데 아타카마 지역과 안데스 산맥 및 남부 파타고니아 내륙 지역의 영유권 밎 국경선 획정 문제로 갈등을 빚다가 서로 각자 자국령이라고 주장하며 분쟁을 빚어오던 변경지대의 영토들을 할양하는 방법으로 아르헨티나와의 갈등을 해결하여 스페인으로부터 독립 이래 주변국과 영토 갈등을 빚어온 땅들을 돌려주거나 타협을 통해 양보하여 다른 이웃 남미 나라들과 국경/영토 분쟁을 해결했던 것과는 달리 볼리비아와의 안토파가스타주 문제에서 만큼은 기필코 협상 불가, 영유권 수호 의지를 보이고 있다. 어떻게 보면은 중국의 티베트나 모로코의 서사하라, 이스라엘의 골란고원, 대한민국독도나 서해 5도, 베트남푸꾸옥, 인도네시아아체, 그리스에게해 제도, 요르단아카바, 독일자를란트 주, 프랑스알자스-로렌과 같이 칠레의 입장에서는 매우 중요한 요충지라고 할 수 있다.

결론적으로 이 영토를 실효통치하는 나라가 인접한 다른 나라에 비해 압도적으로 유리한 고지를 차지하게 되는 셈이라 지금까지도 칠레와 볼리비아 사이에 태평양 해안 접근권을 둘러싼 갈등이 쉽게 해결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칠레의 관점에서는 포기하기엔 매우 아까운 지정학적 요충지(구리, 리튬, 초석 등 막대한 지하자원, 페루, 콜롬비아, 에콰도르 등 남미 북부 지역 국가들로 칠레가 육로를 통해서 유일하게 접근, 진출할 수 있는 통로,[27] 칠레 병합 후 칠레 본국에서 해당 지방에 이주, 정착해온 수천만명의 칠레 국민들.)인 만큼 볼리비아의 반발과 영유권 주장에도 불구하고 현재까지도 통치하고 있는 것이다.

5. 관련 문서



[1] 현재 칠레령이지만 볼리비아에서도 태평양 전쟁 이전 볼리비아 영토였다는 역사적인 근거와 해양 접근권 회복을 내세우며 자국 영토라고 영유권을 공공연히 주장하고 있다.[2] 이 문제로 인해 볼리비아와 칠레는 현재까지도 정식 수교관계가 없는 미수교 상태를 유지하고 있다.[3] 페루는 1929년 타크나를 칠레에게서 반환 받으면서 페루, 볼리비아와 이웃한 아리카이파리나코타 주와 타라파카 주, 안토파가스타 주 등 태평양 전쟁 당시 칠레에 병합됐던 구 페루, 볼리비아령 지역들을 칠레령으로 인정하고 타크나 반환 이후에 새로 획정된 페루-칠레 국경의 현상 유지를 양국이 서로 존중하는 내용을 골자로 하는 리마 조약에 서명했다. 실제로 페루는 이 리마 조약을 무기로 냉전 시대 당시 칠레가 볼리비아에게 페루-칠레 국경 지대의 태평양 연안 영토 일부를 할양해주려고 하자 칠레가 우리나라와 맺은 평화 조약을 위반했다며 칠레에게 압력을 넣어 무산시켰던 적도 있었다.[4] 이 때문에 칠레보다 페루를 싫어하는 볼리비아인들도 있을 정도다.[5] 이 과정에서 티티카카 호수의 수자원 사용권까지 칠레에게 내주는 방안도 고려됐었다고 한다.[6] 러시아의 크림반도 합병이나 모로코의 서사하라 합병이 국제적으로 인정받지 못하는 것을 생각해보자.[7] 이들 주민 대부분은 1883년 칠레령 편입 후 칠레 본국에서 이주해온 칠레인 개척민들의 자손들이다.[8] 실제 칠레 여론조사에서도 지역 주민 절대다수 중 약 98%가 칠레 영토로 잔류, 볼리비아로의 귀속을 반대하는 입장을 보였으며, 지역민들중 약 2%의 극소수만이 칠레 잔류에 반대하고 있다.[9] 볼리비아는 안토파가스타를 비롯해 과거 똑같이 예전 볼리비아 땅이었던 차코 보레알과 아크레 주도 파라과이, 브라질한테 영유권을 빼앗긴 이력이 있다.[10]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브라질의 아크레 주와 파라과이의 차코 보레알 지방도 현지민들 대부분이 브라질, 파라과이령으로 남기를 원하며 볼리비아로의 재귀속을 반대하고 있다.[11] 실제로 이 지역을 놓고 볼리비아와 칠레 사이에 영유권 갈등이 극에 달하던 2010년대 당시 KBS에서 방영했던 한 TV 시사 프로그램에서 이 지역에서 거주하는 칠레 국민에게 한 리포터가 이 지역을 두고 볼리비아가 칠레와 전쟁에서 빼앗긴 해안 영토를 되찾겠다고 바로 옆나라인 볼리비아가 영유권 시비를 거는데 불안하지 않나며 인터뷰를 하자 이 칠레 국민은 이미 칠레 땅이 되고 우리나라 사람들이 이주와서 정착해온 지 100년도 지난 일이라며 비웃으며 답했다고 한다.[12] 여기는 내륙도시다.[13] 이렇게 될 경우 볼리비아는 팔레스타인요르단강 서안지구가자지구처럼 칠레를 사이에 두고 동서 양쪽으로 내륙 지역과 해안 지역이 타국의 영토에 가로막힌 비연속국이 될 가능성이 높다.[14] 이렇게 될 경우 볼리비아 대통령이 재임 중 사망할 시 안토파가스타 출신 부통령이 볼리비아의 대통령으로 자동계승된다.[15] 한 국가내에서 경제적으로 부유한 지역과 가난한 지역간의 갈등이 존재하는 사례로는 이탈리아의 북부 이탈리아와 남부 이탈리아, 스페인의 카탈루냐와 카스티야, 1991년 유고슬라비아 전쟁 발발 직전 가난한 세르비아가 인구 수로 중앙 정치권력을 좌지우지하며 잘 사는 크로아티아와 슬로베니아로부터 세금들을 빨아먹었던 구 유고슬라비아 연방의 사례가 있다.[16] 덕분에 칠레에서도 정치적으로 극우세가 가장 강한 지역으로 남아있다.[17] 제2차 세계 대전의 원인이 과거 독일 제국의 영토였다가 제1차 세계 대전 종전 후 폴란드령으로 넘어간 영토들을 노린 독일의 영토 재수복 야욕에서 비롯됐다는 점을 명분으로 내세워 제2차 대전 이후에 기존 독일이 점유하고 있었던 옛 독일령 일대에 거주하던 독일계 주민들을 전부 축출했다.[18] 특히 21세기의 현대전쟁이나 외교전에서는 고대, 중세기의 정복전쟁과 제2차 세계대전, 유고슬라비아 전쟁 등과는 달리 특정 지역 주민들에 대한 대량학살을 통한 몰살이나 강제 추방이 전쟁의 주체가 강대국이건 약소국이건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19] 칠레로부터 태평양 연안 지대를 빼앗긴 후 오랜기간 바다 없는 내륙국으로 지내오던 시기가 길었던지라 다시 볼리비아 땅으로 편입된다 해도 어항과 무역항 등 항구 사용이나 해양 선박 운용 등 현지의 기반 시설 운영에 능통한 현지 지역 주민들을 자국민으로 회유/편입시켜서라도 경제, 사회적 기반을 운영/유지해야 될 상황이다.그 사람들 칠레로 전부 다 강제추방시키면 어선, 여객선, 화물선은 누가 조종하고, 컨테이너 터미널하고 여객선 터미널은 누가 운영해?[20] 새로 설정되는 볼리비아-칠레의 국경선 범위를 어느 지역까지 획정하느냐가 문제가 되었다.[21] 재판 1심에서는 그럭저럭 볼리비아에게 유리한 해석이 나왔다가, 2심 최종판결에서 완전히 뒤집혔다.[22] 사실 다른 중남미 국가들의 처지도 칠레와 다르지 않다. 현재 여러 각국들이 갖고 있는 영토와 국경선들 대부분이 현 칠레 땅인 안토파가스타와 유사하게 스페인, 포르투갈로부터 독립 이후에 일어난 국가들 간 전쟁에서 이웃한 나라가 통치하던 타국 영토를 빼앗아먹거나 획정된 것들이 수두룩하기 때문이다.[23] 사실 아르헨티나는 아르헨티나-브라질 전쟁 당시 우루과이를 지원한 다음 브라질이 패배하면 우루과이를 자국령으로 합병할 생각이었으나, 영국과 프랑스의 압력과 중재로 브라질과의 전쟁을 끝내는 과정에서 아예 병합 시도를 철회하고 브라질을 견제/저지할 수 있는 완충국가의 형태로 독립시켜야 했다.[24] 사실 타크나는 칠레가 볼리비아와 페루로부터 병합했던 안토파가스타나 아리카, 타라파카 지방과는 달리 칠레 국민들조차도 이주를 꺼리거나 소수 정도 밖에 정착하지 않은 탓에 당시 칠레 입장에서도 영유권 유지에 어려움을 겪었던 지역이었다. 자세한 건 태평양 전쟁(남아메리카) 문서 참조[25] 이들 중에는 아예 칠레인 주민들의 인구 비율이 높은 지역만 칠레 땅으로 남거나 아예 타크나가 칠레 땅도 페루 땅도 아닌 해당 지방에 독립국가를 세워 독립하자는 주장도 있었다고 한다.[26] 안토파가스타에서 살고 있는 칠레인 주민들을 다른 칠레 지역으로 이주시키는 방법도 고려해 볼 수 있는데 문제는 칠레 중부와 남부 지역들도 인구 과포화가 되어 이 사람들이 정착할 빈 땅과 도시들이 극히 적다. 사실 칠레는 아르헨티나나 브라질 등 남미의 다른 영토 대국들과 달리 길고 비좁은 국토로 인해 남미 지역에서 인구포화 현상이 극심한 나라로 악명이 높다.[27] 반면 볼리비아의 입장에서는 태평양으로 자국이 접근할 수 없다는 단점이 존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