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11-13 07:32:55

알레한드로 조도로프스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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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레한드로 호도로프스키[1]
Alejandro Jodorowsky
파일:알레한드로 조도로프스키.jpg
본명 알레한드로 호도로프스키 프루얀스키
Alejandro Jodorowsky Prullansky
출생 1929년 2월 17일 ([age(1929-02-17)]세)
칠레 안토파가스타주 토코피야
국적
[[칠레|]][[틀:국기|]][[틀:국기|]] |
[[프랑스|]][[틀:국기|]][[틀:국기|]]
거주 프랑스 파리
직업 영화감독, 프로듀서, 작가, 배우, 음악가
활동 1948년 – 현재
링크 파일:인스타그램 아이콘.svg 파일:X Corp 아이콘(블랙).svg 파일:페이스북 아이콘.svg

1. 개요2. 상세3. 작품
3.1. 판도와 리스 (1968년)3.2. 엘 토포 (1970년)3.3. 홀리 마운틴 (1973년)3.4. (1974년) - 제작 취소3.5. 성스러운 피 (1989년)
4. 필모그래피5. 그 외6. 외부 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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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칠레 출신의 세계적인 영화 감독, 그래픽노블 작가, 소설가, 타로이스트.

2. 상세

종교와 철학을 공부했으며, 대학교를 중퇴한 뒤 페르난도 아라발 등과 함께 파니크(Panique)라는 극단을 창단하여 활동했다. 1950년대 파리로 이주해 에티엔 드크루로부터 마임을 배웠으며, 1957년 단편 영화 <잘려진 머리>의 감독을 맡아 영화계에 데뷔하였다. 1960년대에는 파리와 멕시코시티를 오가며 아나키즘 아방가르드의 운동인 '파닉 무브망'을 주도했다. 논란의 작품 <판도와 리스>를 거쳐 <엘 토포>가 미국의 심야 극장에서 성공하면서 세계가 주목하는 컬트 영화감독으로 부상했다.

조도로프스키의 영화는 종교적 색채가 매우 강하며, 광대와 장애인이 빠지지 않고 등장한다. 라틴아메리카 사회상에 대한 신랄한 풍자 또한 확인할 수 있다. <엘 토포>, <홀리 마운틴>, <성스러운 피>와 같은 대표작에서 나타나는 그의 구도적 주제의식과 강렬한 연출은 존 레논을 비롯하여 수많은 팬을 낳았으며, 16시간 분량으로 기획되었다가 무산된 <듄>의 영화화 프로젝트는 스타워즈부터 에이리언, 제5원소 등 수많은 명작 SF 작품들에 영감을 제공했다. 댄 오배넌은 물론 H. R. 기거까지 훗날 할리우드의 거물이 된 제작자와 디자이너들을 발굴한 것도 조도로프스키의 업적이다. 그러나 상업성을 배제하고 제작사와 타협하지 않는 성향으로 인해 <듄>에서 하차했고, 이후로도 그 자신은 어디까지나 컬트 영화의 거장으로 남아 주류 영화계와는 점차 멀어지게 되었다.

그림은 일찍이 소질이 없음을 깨닫고 그만두었다고 밝혔으나 시나리오 작가로 만화계에서 활약했다. 1975년 <듄>의 기획 과정에서 장 앙리 가스통 지로(뫼비우스)를 알게 되었고, 영화가 백지화되자 합작하여 대표작 <잉칼>을 발표했다. 현실화 되지 못한 의 아이디어를 <잉칼>에 반영한 것. 그 밖에도 다수의 프랑스 작가들과 협업했다.

영화와 그래픽노블 외에도 굉장한 것은, 그가 타로 카드 점술의 구루라는 사실이다. 그것도 무엇을 생각하든 그 이상의 업적을 마르세이유 타로 역사에 끼쳤다고 평가받으며, 카모앙(Camoin)과 함께 마르세이유 타로의 양대 선지자로서 현대에 계승하고 재현하는 데 지대한 업적이 있다.

3. 작품

3.1. 판도와 리스 (1968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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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해한 흑백 영화인데, 파닉 무브망[2]의 동료 페르난도 아라발이 1958년에 만든 연극을 영화화했다.

멕시코 아카풀코 영화제에서 영화가 상영될 때 임산부가 돼지를 낳는 장면을 본 관중들이 호도로프스키에게 돌을 던지고 죽이려 했다. 호도로프스키는 리무진 밑에 숨는 등 고생이 말이 아니었다.[3]

3.2. 엘 토포 (1970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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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독 본인이 주연이고 당시 일곱살이었던 아들 브론티스 호도로프스키도 나온다.[4]

황야의 악명높은 무법자인 엘 토포가 아들과 함께 세상을 방랑하던 중에 여인의 꾐에 넘어가 황야에서 제일 가는 강자들과 현자들을 비겁한 방법으로 이기게 되나, 여인에게 배반당한 뒤 삶이 뒤바뀌는 내용이 주를 이룬다. '엘 토포'는 두더지를 의미한다. 호도로프스키의 출세작이다. 존 레논오노 요코가 이걸 보고 반해서 <홀리 마운틴> 제작을 도왔다.

3.3. 홀리 마운틴 (1973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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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도로프스키 감독의 대표작. 성스러운 피와 더불어 그의 최고 걸작으로 꼽는 팬들이 많다.

제작비는 75만 달러이며 16세기 논문 Subida del Monte Carmelo, 1952년 프랑스 소설 Le Mont Analogue. Roman d'aventures alpines, non euclidiennes et symboliquement authentiques에 영감을 받았다.

놀랍게도 위조 지폐까지 찍어내서 영화제작에 썼다는 소문도 있다. ## 다른 소문으로는 도둑으로 나온 이들은 실제 도둑이었는데, 촬영 소품과 자재를 지켰다고 한다.

그 외에도 경찰복을 입고 일했더니[5] 이에 대해 멕시코 정부로부터 종교를 모독한 것과 함께 경고를 받았다. 그래서 뉴욕으로 가서 제작했다. 이후 오랜 시간이 흐른 후에 멕시코를 찾았더니 정부에서 칭찬했다고 한다.

카니예 웨스트가 좋아하는 영화이다. #

3.4. (1974년) - 제작 취소

의 감독으로도 선정되었고, 그가 계획한 듄은 호화 출연진과 제작진이 동원된 상당한 기대작이었다. 그러나 16시간 상영판을 고집하여 결국 감독에서 경질되었다. 그는 당시 "듄을 두어 시간으로 만든다고? 그것은 원작 모독이다. 원작을 제대로 살리려면 적어도 10시간은 되어야 한다."라며 맞선 바 있다.[6]

그리고 데이비드 린치가 감독한 4시간 버전조차도 길다고 억지 편집과 재촬영을 겪으면서 린치가 자신의 영화 인생에서 언급하기도 싫어할 정도의 영화가 되고 말았다. 그런데 정작 린치의 듄을 본 조도로프스키는 "내 예상을 깨고 너무나도 괜찮아서 질투까지 났다"라는 호평을 남겼다. 이에 린치는 "당신은 그럴지 몰라도 나는 내 영화 인생에서 가장 굴욕이자 가장 악몽인 영화이다."라면서 이런 호평을 좋지 않게 받아들였다.[7]

하지만 조도로프스키는 2013년 개봉한 다큐멘터리 《조도로프스키의 듄》에서는 위에서의 호평과 대비되게 "데이비드 린치의 영화가 너무 끔찍했던 탓에 절망감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라는 발언을 했다. '듄'은 조도로프스키가 자신의 종교적 신념을 담아 제작하고 있었던 인생작이었고, 그가 인정하는 명감독인 린치가 자신이 만들지 못했던 영화를 자신보다 더 잘 만들었다면 결코 버틸 수 없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 역시 린치가 제작자 때문에 제대로 된 영화를 만들 수 없었을 것이라 추측했다.

3.5. 성스러운 피 (1989년)

해당 항목 참조.

4. 필모그래피

<rowcolor=#fff> 년도 제목 연출 각본 출연 비고
1968 판도와 리스
Fando y Lis
장편 데뷔작
1970 엘 토포
El Topo
1973 홀리 마운틴
La montaña sagrada
1974
Dune
제작 취소
1980 터스크
Tusk
1989 성스러운 피
Santa Sangre
1990 무지개 도둑
The Rainbow Thief
2013 현실의 춤
La danza de la realidad
2016 끝없는 시
Poesía sin fin
2019 싸이코매직, 언 아트 댓 힐스
Psychomagic: A Healing Art
다큐멘터리 영화

5. 그 외

2013년 자전적인 영화 <현실의 춤>이 칸 영화제에서 공개됐다. 근 23년 만의 신작으로, 평은 준수한 편.

존 레논이 그의 괴작, 엘 토포를 보고 마음에 들어해서 홀리마운틴을 만들때도 지원을 해줬다. 그런데 존이 저격당해 사망하자 대부분의 판권은 그의 매니저 앨런 클라인에게 갔다. 클라인은 조도로프스키에게 에로영화를 만들 것을 부탁했지만, 거절했다. 조도로프스키 영화는 어느 나라에서 상영불가된 바 있는데,우리나라에서도 오랫동안 정식 상영이 금지된 것이 있다.그리고 존 레논외에도 오노 요코믹 재거, 앤디 워홀도 관심을 가졌다고... 오토모 카츠히로와도 친분이 있어서, AKIRA의 결말도 조도로프스키가 술집에서 아이디어를 줬다고 하지만오토모는 처음부터 결말은 정해져있다고 한다.

2007년 엘토포와 홀리 마운틴의 한국 개봉 시기에 맞춰 내한했다. 씨네21에 실린 기자회견 기사박찬욱 감독, 이준익 감독과의 대화.

키노에서 그에게 가장 존경하는 감독을 질문하자 주저없이 상당한 괴작 핑크 플라밍고로 유명한 존 워터스 감독을 언급했다. 그 이유에 대해 "내가 태어나서 처음으로 영화를 보고 구토하게 만들었다. 내 영화를 보고 구토한 이들이 많은데 반대로 나를 영화로 구토하게 만든 사람은 오로지 그 사람 뿐이다."라고 대답했다.

니콜라스 윈딩 레픈의 온리 갓 포기브스에서는 엔딩에 그에게 이 영화를 바친다는 헌사가 뜬다.

애니메이션 감독 이쿠하라 쿠니히코가 존경하는 감독이다. 조도로프스키의 작품이 일본에서 개봉할 때 추천사를 써주기도 했다.

6. 외부 링크



[1] /xoðoˈɾofski/ 지금은 사라진 영화 잡지 월간 키노에서 가진 인터뷰에서 '당신 이름은 영어와 스페인어로 발음할 수 있는데 어떤 것으로 불러주면 좋겠습니까?'라는 질문에 '알레한드로 호도로프스키'라고 답했다. 사실 호도로프스키는 출생을 봐도 알 수 있지만 칠레에서 프랑스로 이민을 한 케이스라, 본국 언어인 스페인어로 부르는게 정확하다.[2] Panic Movement 또는 Mouvement panique. 감독이 연극과 영화에 직접 출연해야 한다.[3] 참고로 그 악명높은 안달루시아의 개의 감독인 루이스 부뉴엘도 관객들에 의해 죽을 뻔 했다. 그 뒤로 부뉴엘은 권총을 가지고 다녔다고.[4] 브론티스는 훗날 <듄>의 기획안에서 폴 배역으로 발탁되어 무술 훈련을 받기도 했으며, 현재까지 영화와 연극계를 오가며 활동하고 있다.[5] 외부인의 관심을 피하기 위함이었다.[6] 그러나 알레한드로 본인은 스스로를 듄 시리즈의 광팬이라고 말했지만 정작 듄 시리즈를 읽어본 적도 없었다. 그저 지인을 통해 듄이 명작이라는 것만 알았다고 한다.[7] 그래서인지 린치는 지금까지 제작사가 듄의 감독판 편집을 애원해도 절대로 응하지 않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