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09-17 18:50:45

알헤시라스


파일:알헤시라스.jpg
알헤시라스
Algeciras
파일:Flag_of_Algeciras.svg.png
국가 스페인
지역 안달루시아
면적 87.96㎢
인구 121,414명
시간대 UTC+1 (서머타임: UTC+2)
알헤시라스
Algeciras
1. 개요2. 역사3. 경제4. 관광5. 여담

1. 개요

스페인 남부 안달루시아항구 도시. 지브롤터[1]의 서쪽에 위치해 있으며, 영국령 지브롤터 항구에서 서쪽으로 6km 떨어져 있다. 이슬람 (알 안달루스) 시대에 매우 번영하였으나, 당시의 건축물들은 13 ~ 15세기에 걸쳐 레콩키스타의 후반부에 벌어진 그리스도교이슬람의 쟁탈전에 크게 파괴되어 잔해로만 남아 있다. 이후 스페인 왕위 계승전쟁이 터지고 이웃의 지브롤터가 영국령이 되며, 그곳의 스페인 사람들이 이주해 오면서 도시가 다시 세워져 지금의 모습에 이른다.

지브롤터에 가려져 지도에 잘 표시되지도 못하지만, 사실 화물 처리량 기준으로 스페인 최대의 항구를 보유하고 있다.# 2019년 기준 연간 1억 9백만 톤을 처리하는 대형 항만으로, 국내 화물 처리량 순위에서 스페인 제3의 대도시 발렌시아항과 엎치락뒤치락하고 있다. 이 작은 도시가 뜬금없이 거대한 항만을 보유하고 있는 이유는, 대서양지중해의 사이에 있어 환적항으로써 입지가 뛰어나기 때문. 인구 역시 12만 9천명으로 이웃의 지브롤터보다 4배 가량 더 많다.

2. 역사

네안데르탈인의 거주 유적이 발견될만큼 인류학 측면에서도 중요한 곳이며, 아프리카에서 유럽으로 진출한 첫 흔적으로 여겨진다. 페니키아로마 시대에도 항구로 번영했으며, 로마 때의 이름은 알부스 (Albus)였다.

711년 우마이야 제국의 안달루스 정복 당시 처음으로 세워진 도시로, 당시 이름은 알 자지라 알 카드라 (초록 섬)이었다. 13세기 말엽 레콩키스타의 여파로 지브롤터 해협을 두고 한세기가 넘는 기독교/이슬람 세력 간의 투쟁 속에서 알헤시라스는 1275년부터 1344년까지 그라나다에 양도되었던[2]일부 기간을 제외하곤 모로코 마린 왕조의 안달루스 총독부로 기능하였고 술탄 아부 유수프 야쿱이 이곳에서 사망하기도 하였다. 그러나 1278년과 1309-10년의 실패 후 마침내 1344년 카스티야 군은 2년에 걸친 포위 끝에 도시를 점령하였다. 이로써 마린 조는 남은 지브롤터와 론다마저 그라나다에 넘겨주고 안달루스 경영을 포기한다. 그러던 1369년 그라나다 군은 카스티야 내전을 틈타 재차 알헤시라스를 회복한다, 다만 1379년 임박한 카스티야의 반격 앞에 방어할 자신이 없던 그라나다 측은 3일에 걸쳐 시가지와 성벽을 파괴한 후 주민들을 지브롤터로 소개시켰다.

이로써 알헤시라스는 3세기 이상 폐허로 남았다가 1704년 영국이 지브롤터를 점령하자 현지 스페인계 주민들이 이주해오며 재정착되어 현재에 이른다. 중세에도 지브롤터보다 더 큰 도시였던 것처럼 현재에도 알헤시라스의 인구가 3배 가량 더 많다. 애초에 지브롤터는 요새도시고 알헤시라스가 지브롤터 (알헤시라스) 만의 주요 항구이다. 지브롤터 주민 외에도 18세기 내내 이베리아 반도의 나머지 지역과 다른 지역에서 온 정착민들도 알헤시라스에 정착하였으며 그 중에는 이탈리아인들도 있었다. 18세기에는 풍부한 목초지 덕분에 축산업(특히 소)이 경제에서 중요한 역할을 했고, 18세기에는 유럽 내에서 전쟁이 많았는데 스페인은 중립국으로서 교전 중인 선박이나 해적들에게 피난처를 제공하는 코르세어 사업으로 돈을 벌기도 하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같은 안달루시아지방에 위치한 카디스에 밀려서 항구 도시로 발전하지 못했다. 그런 알헤시라스가 국제적으로 이목을 받은 계기가 있었는데 1904년 프랑스와 독일이 모로코를 두고 대치하였는데 이 사건이 전쟁으로 번질려고 하자 유럽의 국가들이 모여 회의를 하였는데 이 회의가 열린 곳이 알헤시라스였다. 또한 알헤시라스는 스페인 내전당시 반란군이었던 왕당파의 군대는 스페인의 아프리카 식민지에 위치해있었다. 북아프리카 군대가 처음으로 발을 내딛은 곳이 바로 알헤시라스였다. 왕당파는 알헤시라스를 점령하기 위해 도시에 불을 지르고 공화파를 지지하였던 스페인 해군 군함을 파괴해버렸다.

알헤시라스는 스페인의 독재자인 프란시스코 프랑코 아래 발전하게 되는데 이는 카디스가 작은 섬이라 큰 항만시설을 만들지 못했기 때문에 대륙에 있어 배후지가 많은 알헤시라스에 대형 화물선이 정박할 수 있는 큰 항구를 만든 것이다. 알헤시라스는 지리적 위치 때문에 대서양으로 들어가거나 서쪽에서 지중해로 들어오는 화물선에 거의 의무적으로 정차하는 곳이다. 100척 이상의 배가 매일 동서로 횡단하고 있다. 또한 많은 북아프리카인들이 본국으로 돌아가거나 스페인에 입국 할 때 배를 타는 곳이기도 하다.

3. 경제

알헤시라스의 주요 산업은 항만 산업이며 매년 7,480만 톤의 화물이 내리는 곳이기도 하다. 세계에서 16번째로 붐비는 항구로 꼽히는 알헤시라스는 또한 이 도시는 상당한 어업 산업을 보유하고 있으며 시리얼, 담배, 농장용 동물 등 주변 지역에서 다양한 농산물을 수출하고 있다. 알헤시라스는 안달루시아에서 두 번째로 많은 산업을 가진 도시이며 안달루시아 대도시 내에서 산업 활동의 점유율이 가장 높은 네 번째 인구이며 제조업 종사자의 대부분은 금속 제조 및 가공 부문에 일하고 있다.

4. 관광

  • 엘 에스토레초 자연 공원 (El Estrecho Natural Park) : 유럽에서 가장 남쪽에 위치한 공원으로 지브롤터 해협에서 대서양과 지중해가 만나는 지점에 위치해 있어 많은 새들을 볼 수 있는 곳이다.
  • 로스 알코로칼레스 자연 공원 (Parque natural de Los Alcornocales) : 코르크 참나무 숲이라는 뜻의 로스 알코로칼레스는 사냥, 야생 버섯 채취, 삼림욕 등을 즐길 수 있는 공원으로 유럽 대륙에 가장 크고 잘 보존 된 조엽수림이 위치해 있다.
  • 마리아 크리스티나 공원 (Parque María Cristina) : 1834년 프랑스식 정원 스타일으로 지어진 공원으로 왕립 알헤시라스 박람회, 각종 카니발, 콘서트를 개최하는 곳이기도 하다.
  • 아카시아스 공원 (Parque de las Acacias) : 19세기 초 까지 농지로 쓰던 곳을 공원으로 만든 것으로 프랑스 정원 양식인 마리아 크리티나 공원과 달리 영국식 공원 스타일로 만들어졌다.
  • 레이나 크리스티나 호텔 (Hotel Reina Cristina) : 1901년에 지어진 이 건물은 20세기 초 지브롤터 인근에 살던 영국인이 지었다. 이 호텔은 이 지역 내에 가장 유명해서 아서 코난 도일, 샤를 드 골, 윈스턴 처칠, 오슨 웰스 등이 이 호텔에 묵었다.
  • 알타 광장 (Plaza Alta) : 1807년 이 지역의 주지사인 카스타뇨스 장군이 세운 광장으로 알헤시라스 중심에 위치해 있어 각종 집회와 시위가 열리는 곳이기도 하다.

5. 여담

HMM의 알헤시라스 호가 바로 이 도시에서 따온 것이다. 한진해운 내부의 문제와 더불어 최순실의 농락으로 한진해운이 파산한 뒤 한국 해운산업이 휘청거렸는데, 한국 해운 산업의 재건이라는 명목으로 이 이름으로 명명되었다고 한다. 실제로 HMM은 유럽 항로 쪽에서 강세를 보이고 있다.


[1] 스페인 어로는 알헤시라스 만[2] 1295 ~ 1310년, 1313 ~ 1328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