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19-09-04 22:54:09

엘리펀트 카시마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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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룹 명엘리펀트 카시마시
エレファントカシマシ
ELEPHANT KASHIMASHI
멤버미야모토 히로지 (보컬, 기타)
이시모리 토시유키 (기타)
타카미도리 세이지 (베이스)
토미나가 요시유키 (드럼)
결성1981년, 키타구 아카바네
데뷔1988년 3월 21일, <THE ELEPHANT KASHIMASHI>
장르
링크공식 사이트, 공식 팬클럽

1. 소개2. 디스코그래피3. 멤버
3.1. 미야모토 히로지3.2. 이시모리 토시유키3.3. 타카미도리 세이지3.4. 토미나가 요시유키
4. 기타

1. 소개

일본록밴드. 1981년에 결성해 1986년 소니 뮤직 산하의 CBS 오디션에 합격해 1988년 1집 <THE ELEPHANT KASHIMASHI>로 데뷔했다. 일본의 음울한 문화를 정면으로 받아치는 저항 정신과 특유의 멜로디로 1980년대 후반~2000년대 초 일본 모던 록, 펑크 록, 인디 록에 큰 영향을 끼쳤으며, 록이 가진 강렬함을 놓치지 않으면서도 생활의 사소한 감정들을 짙게 녹여낸 밴드로 평가 받는다. 일본 록 역사에서 보자면 R.E.M.과 비슷한 역할을 수행했던 밴드.[1] 보통 부를 때 밴드 명을 줄인 에레카시로 부른다.

1988년 데뷔 당시부터 1994년 7집을 낼 때 까지의 레이블은 Epic Record JAPAN[2]이었고, 1996년 8집부터의 레이블은 포니캐년, 2000년 11집부터의 레이블은 도시바EMI, 2007년 18집부터 현재까지의 레이블은 유니버설 뮤직 재팬이다. 소속사는 페이스 뮤직 엔터테인먼트. 사실 에픽 레코드 시절만해도 인기 있기 보다는 전형적인 컬트 팬덤과 비평적인 지지를 얻던[3] 밴드였는데 포니캐년으로 이적하면서 인기를 끌기 시작해 장수 밴드가 되었다.

포니캐년 시절부터 대중적인 인기를 모으기 시작했지만 그다지 좋은 상황은 아니었다. 7집의 판매량 저조로 인한 EPIC 레코드에서 일방적으로 계약 해지 통보를 당한 뒤 엘리펀트 카시마시를 받아준 포니캐년과 계약한 것이다. 그리고 포니캐년의 요구에 맞춰 8집부터 10집까지 포니캐년에서 낸 3장의 음반 전부 이전의 음악 스타일과 달리 부드럽고 대중적인 사운드를 담게 됐다. 또한 언더그라운드 밴드의 이미지가 짙었던 엘리펀트 카시마시에게 포니캐년이 방송 출연 스케줄을 자주 잡아주며 TV 노출도 자주 시킨다. 그리고 이것이 상업적으로 성공하며 평단과 팬덤의 지지는 크나 대중적 인기는 적었던 엘리펀트 카시마시에게 인기와 유명세를 더해주게 되는 계기가 되었다. 하지만 이러한 대중적인 입맛에 맞춰 자신들만의 음악적 색깔이 희미해지는게 마음에 들지 않았던 엘리펀트 카시마시는 포니캐년에서 고작 4년 간 3장의 앨범을 내고 도시바EMI로 이적한다. 그리고 포니캐년 소속 시절의 활동이 본인들과 잘 맞지 않았다는 것을 증명하기라도 하듯이 도시바EMI 소속 시절의 음반은 전부 진지하고 음울한 바이브와 하드한 사운드로 채워져 있다.

초창기인 EPIC레코드 시절엔 야성적인 바이브와 강렬한 사운드, 염세적이고 냉소적인 가사가 주를 이루고 포니캐년 시절엔 비교적 부드러운, 혹은 대중적인 스타일이 더해지고 삶에 대한 의지가 한층 뚜렷해진 작품들이, 도시바EMI 시절엔 자신과 자신을 둘러싼 것들에 대한 성찰 및 탐구적인 테마가 주를 이룬다. 유니버설 시절부터는 부드러워진 바이브와 희망적이고 따뜻한 메시지가 많다. '냉소적으로 세상과 자신을 바라보지만 희망에 몸부림치는' 염세주의적인 초창기에서, '의지를 다잡고 자아와 마음에 대해 성찰하고 탐구하는' 중반기를 넘어, 후반기인 현재로 와서는 밝고 부드러운 분위기와 함께 '앞으로 나아가자', '함께라면 괜찮다'는 식의 낙천적[4] 테마가 짙어져 가고 있다. 이는 단순한 음악적 스타일 변화라기보단 작사 및 작곡자이자 밴드의 리더인 미야모토의 일생에 걸친 심리적 변화가 강하게 반영된 결과라고 볼 수 있다.

보컬 미야모토의 창법이 굉장히 독특한데, '생목'으로 부르는게 적절하다고 보일 정도로 창법에서의 기교가 거의 없다. 단순히 '내지른다'가 아니라 저음 고음을 떠나 그 부르는 방법, '창법 자체'가 정말 솔직하다. 이 때문에 스타일에 거부감을 느끼고 싫어하는 사람들도 있었지만, 에레카시를 대표하는 특색과 컬트적 팬덤이 생성, 유지된 가장 큰 이유이기도 하다. 나이의 부담이 커진 2010년대 이후로는 창법이 비교적 안정적으로 변화하긴 했지만, '있는 그대로' 부르는 스타일은 한결같다. 다만 가창력이 나쁜 것은 아니며, 곡마다 다양한 분위기를 낼 수 있고 진정성과 호소력이 짙다는 면에서 오히려 가창력과 기량은 뛰어난 편이다. 곡에서 보여진 최대 고음은 3옥타브 레#이다.

거의 매년마다 히비야공원의 야외 음악당에서 정기적으로 공연을 한다.

2017년 30주년 기념 전국 투어가 3월 20일에 시작해 12월 9일 공연을 끝으로 마무리 되었다.[5]자세한 정보

2017년 제 68회 홍백가합전에 커리어 최초로 출연하였다.[6]

2018년 3월 17일 사이타마 슈퍼 아레나에서 데뷔 30주년 공연을 펼쳤다. 원래는 단독 콘서트로 진행될 예정이었으나 "꿈의 공연"이라는 타이틀을 내걸고 게스트로 Spitz미스터 칠드런이 출연하게 됐다. 17일에는 에레카시 단독 라이브,[7] 18일에 세 밴드의 합동 공연이 이루어졌다. 무대 순서는 스피츠, 미스터 칠드런, 엘리펀트 카시마시, 마지막 앙코르는 세 밴드 동반 공연.

2018년 소규모 공연장이나 라이브 하우스(Zepp)를 중심으로 한 23집 'Wake Up' 전국 투어가 6월 25일에 시작해 9월 11일 공연을 끝으로 마무리 되었다. 자세한 정보

2018년 TV 도쿄 심야 드라마 '미야모토로부터 너에게'의 드라마 OST를 맡았다.[8]

2018년 10월 1일 보컬 미야모토 히로지와 시이나 링고의 협연곡 '獣ゆく細道'가 공개되었다.

2018년 11월 6일 보컬 미야모토 히로지와 도쿄 스카 파라다이스 오케스트라의 협연곡 '明日以外すべて燃やせ'가 공개되었다.

2019년 2월 12일 보컬 미야모토 히로지가 싱글 '冬の花'를 발매하며 본격적인 솔로 활동을 시작했다. 인스타그램, 트위터 등 SNS 계정도 개설했다.

2. 디스코그래피

정규 앨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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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ELEPHANT KASHIMASHI
1988.3.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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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ELEPHANT KASHIMASHI Ⅱ
1988.11.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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浮世の夢
1989.8.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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生活
1990.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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エレファントカシマシ5
1992.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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奴隷天国
1993.5.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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東京の空
1994.5.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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ココロに花を
1996.8.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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明日に向かって走れ-月夜の歌-
1997.9.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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愛と夢
1998.1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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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ood morning
2000.4.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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ライフ
2002.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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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AD OR ALIVE」(ミニ・アルバム)
2002.12.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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俺の道
2003.7.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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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3.31
파일:external/www.elephantkashimashi.com/a_15_main.jpg

20049.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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町を見下ろす丘
2006.3.39
파일:external/www.elephantkashimashi.com/a_17_main01.jpg
STARTING OVER
2008.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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昇れる太陽
2009.4.29
파일:external/www.elephantkashimashi.com/a_19_main_s.jpg
悪魔のささやき~そして、心に火を灯す旅~
2010.1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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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STERPIECE
2012.5.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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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AINBOW
2015.11.18
파일:wakeup_tu_jkt.jpg
Wake Up
2018.6.6

3. 멤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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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학교 3학년 때 같은 반이었던 미야모토, 이시모리, 토미나가에 의해 밴드가 결성됐다. 타카미도리는 미야모토, 토미나가와 고등학교 동급생이었고 이 인연으로 인해 토미나가의 권유로 1986년 합류해 지금의 4인 체제가 되었다. 결성 당시 다들 기타를 쳤지만 미야모토가 어린 시절 합창단 출신[9]이기 때문에 보컬을 맡았으며, 토미나가는 본인의 형이 기타와 베이스를 이미 하고 있었기 때문에 드러머의 길을 택했고, 타카미도리는 원래 기타를 쳤지만 밴드 합류 때문에 베이스로 전향했다. 미야모토가 앨범 작업에 있어 본격적으로 기타를 치기 시작한 시기는 4집 <生活>이다.

3.1. 미야모토 히로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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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야모토 히로지 宮本浩次 (みやもと ひろじ) 약칭 "미야지".
1966년 6월 12일 생, 도쿄도 키타구 아카바네 단지 출신.
작사, 작곡, 보컬, 일렉트릭 기타, 어쿠스틱 기타 담당. 데뷔 때 부터 현재까지의 모든 곡들을 작사,작곡 해왔다.[10] 밴드 결성을 주도했고 리더로써 밴드 활동을 이끌어 온, '엘리펀트 카시마시'라는 밴드 자체를 상징하고 대표하는 존재다.

3.2. 이시모리 토시유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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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시모리 토시유키 石森敏行 (いしもり としゆき) 약칭 "이시 군".
1967년 3월 18일 생, 도쿄도 키타구 아카바네 출신.
일렉트릭 기타, 어쿠스틱 기타 담당. 가끔씩 공연에서 백보컬도 맡는다. 평소에 미야모토에게 짓궂은 장난을 가장 많이 당하는 사람이지만 미야모토의 가장 오래되고 친한 친구다. 중학교 입학식 때 하루만에 친해져서 그 날 하교길도 같이 갔다고 한다. 공연 세트리스트 결정도 미야모토와 이시모리 둘이서 한다.

3.3. 타카미도리 세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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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카미도리 세이지 高緑成治 (たかみどり せいじ) 약칭 "세이 쨩".
1966년 4월 15일 생, 도쿄도 주오구 츠키시마 출신.
일렉트릭 베이스 담당. 1986년 고등학생 때 밴드에 합류해 4명의 멤버 중 가장 늦게 밴드에 합류한 멤버다. 합류 당시 미야모토가 "(밴드 합류)할거야?"라고 묻자 즉시 "한다"고 대답했다고 한다. 그리고 그 해 밴드는 소니 CBS 오디션에 합격한다. 미야모토가 작곡하지 않은 유이한 곡 중 하나의 주인으로, 1989년 출시한 앨범인 <浮世の夢>에 수록된 <GT>를 작곡했다. 염색을 하지 않아 현재 머리가 백발이다. 2000년대 중반에 접어든 이 후 중절모나 빵모자를 즐겨 쓰고 있다. 과묵해보이는 이미지와 어울리게 단단한 중저음의 목소리를 갖고 있다. 이미지와 달리 미야모토의 말로는 순수한 내면을 갖고 있다고.

3.4. 토미나가 요시유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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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미나가 요시유키 冨永義之 (とみなが よしゆき) 약칭 "토미".
1966년 4월 14일 생, 도쿄도 키타구 아카바네 출신.
드럼 담당. 미야모토가 작곡하지 않은 유이한 곡 중 하나의 주인으로, 1988년 출시한 앨범인 <THE ELEPHANT KASHIMASHI Ⅱ>에 수록된 <土手>를 작곡했다. 베이시스트인 타카미도리를 영입한 장본인이고 학창시절 미야모토와 이시모리가 록을 처음으로 접하게 해준 사람이며, 과거 실연당한 미야모토가 한탄&상담 전화를 몇 번이고 걸었는데 이를 단 한번의 거절없이 전부 받아주기도 하는 등 밴드의 숨겨진 버팀목이다.

4. 기타

  • 미야모토가 음악적으로 가장 많이 영향을 받은 아티스트는 RC석세션. 이외에도 레드 제플린이나 딥 퍼플같은 밴드의 영향도 받았으며 베토벤운명 교향곡을 듣고 충격을 받아 반복 청취를 자주 했다고 한다. 그 외에도 소설을 즐겨 읽으며 거기에서 예술적 감상을 많이 받는것으로 보이는데, 모리 오가이다자이 오사무와 같은 소설가들의 작품들을 좋아한다. 그 중에서도 모리 오가이를 특히 좋아하는 것으로 보이는데, 2006년 발매한 앨범 <扉>의 첫 곡이자 모리 오가이의 일생과 남자로써의 삶을 연관지어 이야기한 <歷史>라는 곡도 있다. 모리 오가이에 대한 헌정곡으로 볼 수 있다. 그리고 <扉>와 <歷史>는 밴드의 무수히 많은 음반과 노래들 중에서도 명반, 명곡으로 꼽히는 작품들 중 하나다.
  • 4명의 멤버 중 미야모토 히로지가 유일한 미혼자이다. 나머지 셋은 전부 기혼자이며 이시모리는 3번째 결혼을 했다.
  • 이시모리는 항상 미야모토의 장난 표적이다. 공연 도중 선글라스를 뺏기거나, 밀려 넘어지거나, 팔로 치인다거나. 인터뷰 도중에도 볼을 잡힌다거나 하기도 한다. 워낙 미야모토의 움직임이나 언행이 산만하고 활달해서, 공연 도중에 연주를 하고 있는 타카미도리나 토미나가에게 뜬금없이 어깨동무를 하기도 한다. 방송이나 인터뷰 도중의 행동은 장난성이겠지만 라이브 도중의 행동은 '단순 장난'이라기보단 일종의 화이팅을 불어넣는 의미도 있는 것으로 보인다.
  • 미야모토에겐 신조 7가지가 있는데 그 중 대표적인 예는 '옷차림은 언제나 흑백', '자동차는 무조건 포르쉐', '항상 복근 운동하기', '항상 전신전력을 다해 노래하기'가 있다. 미야모토만의 독특한 보컬 스타일과 음악적 색깔이 만들어진 것에는 '항상 전신전력을 다해 노래하기'가 큰 비중을 차지하는 듯 하다.
  • 멤버 중 키가 가장 큰 사람은 타카미도리다. (178cm) 반대로 가장 작은 사람은 미야모토. (170cm) 키 순서는 (미야모토<이시모리<토미나가<타카미도리)이다.
  • 미야모토의 버릇 중에 머리를 마구 헝클이는 행동이 있다. 이는 학생 때 부터 해온 버릇이라고 하며, 학생 때 카페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다가 이 행동을 해서 해고됐다고 한다. 본인의 말로는 남자다운 행동이라고 생각해서 계속 하고 있다고. 예나 지금이나 꾸준히(?) 하고있으며, 방송 출연을 할 때에도 어김없이 머리를 헝클어대서 과거에 다운타운이 진행하는 프로에 출연했을 당시 개그표적이 됐다.
  • 공연이나 방송 출연 시, 미야모토의 복장은 항상 일관되게 흰 와이셔츠에 검은 바지이다. 가끔 검은 와이셔츠나 그위에 검은 정장 재킷을 입기도 하지만 가장 대표적인 옷차림은 흰 와이셔츠에 검은 정장바지, 검은 구두이다. 밴드 멤버들도 방송 출연시엔 검은 정장차림으로 통일을 한다.
  • 미야모토의 정치적 성향은 우익으로 보인다. 라이브 도중 "야스쿠니 신사로 가자"라든지, "원전 반대(하는 사람들은) 바보, (방사선 피폭으로 인해)하늘을 날아다니는 사람이 생기기라도 했느냐"라는 무식한 발언들을 한 적도 있으며[11] 개인적으로 이시하라 신타로[12]를 좋아한다고 말하기도 했다. 우익성향으로 논란이 있는 프로그램이자 마츠모토 히토시가 진행하는 프로그램인 '와이도나쇼'에 게스트로 출연한 적도 있다. 다만 "한국에서 김대중씨가 대통령에 당선됐을 때 감동을 받고 울었지만 '김대중 방식'으로 집념깊게 (나의 일을)해 나갈 수 밖에 없다."거나, "김대중 그 사람은 정말 대단하다. 빌 클린턴도 멋있지만 김대중 그 분은 대선에서 떨어지고 수렁에 빠졌었다. (그런데도)거기서 한번 바닥을 치고 올라섰으니까. 대단한거다."라든가 "모리 요시로 총리는 왜 당선된건지 모르겠다"는 말을 한 적도 있고 "고등학생 때는 일본사회당[13]에 입당해 나라에 개혁을 일으키고 싶다는 생각도 했다"고 한 적도 있다. 또 천황 제도를 비판하기도 했으며, 2000년에 공개된 곡인 <ガストロンジャー>에서는 "가면(이 사회의 어두운 면)을 벗겨내러 가자"라고 하고, "내가 태어났을 때는 소위 '경제 고도 성장기'의 한 가운데였다"[14]면서 그 이후 책임자들을 가리켜 "쿠로후네 사건 이후로 서방에 대한 열등감을 해소 시키기 위해 카미카제처럼 번영을 좇았던 인간들"이라고 표현하고 버블 경제로 삶의 의욕을 잃은 이들에게 "죽을 때까지가 매일과의 이별이니까, 그것까지 할 수 있는 한 스스로의 길을 걸을 수 있도록 끝까지 반항해보지 않겠나, 가슴을 펴자고!"라고 한 것을 보면, 데뷔 이후 지금까지 보인 음악적 행보로 봤을 때 일본 특유의 폐쇄적이고 뒤틀린 우울한 문화를 정면으로 저항하는 아티스트이기에 단순 정치적 극우라기 보단 개인적 가치관을 중요시하는 성향으로 보인다.[15] 물론 개인 철학과 정치 성향은 별개의 문제이며 야스쿠니 신사 관련 발언이나 원전 관련 발언, 이시하라 신타로 지지와 같은 언행들은 명백히 무식한 행동이고 여타 일본 극우&넷우익들과 다름없는 언행들이었기에 비난받아 마땅하다.
  • 멤버 전부 담배를 피우지만, 그 중에서도 미야모토는 엄청난 골초이다. 앨범 작업을 하면서 하루 종일 녹음실에 있는 경우엔 하루만에 80개비 가까이 피운 적도 있다고. 금연 시도는 매번 실패했지만 2012년 난청을 앓은 뒤 마음을 다잡고 착실히 금연 중이다.
  • 학생 시절, 타카미도리의 집에 미야모토와 토미나가가 놀러갔는데 타카미도리의 아버지가 타카미도리를 깨우자 타카미도리가 "와도 깨우지 말라고 했잖아!"라며 소리를 질러 집안싸움이 일어났고, 미야모토와 토미나가는 그냥 돌아가며 속으로 '저건 좀 아닌 것 같은데...'라고 생각했다고 한다.
  • 데뷔 이전에는 미야모토가 공연 도중 물건을 엎어버리거나, 관객들에게 "시끄러워 멍청아###", " 'RC석세션' 정도는 들어라"라고 외치는 등 격한 행동을 보인적이 있었다. 미야모토는 이후 이런 행동에 대해 사죄했으며, 이런 행동에 대해 2011년 TV프로그램 <신 도모토 형제>에서 "10대 시절에는 관객이 4명 밖에 없는 곳에서 공연하기도 했다. 그런 상황에서 관객이 박자를 맞춰 주는걸 보면 '이 사람들은 진정으로 내 노래에 박자를 맞춰주고 싶은걸까?'하는 의구심과 복잡한 생각이 들어서 '박자 맞추기 싫은 사람은 안해도 돼!'같은 의미로 한 행동이다."라고 밝혔다.
  • '엘리펀트 카시마시'라는 밴드명은 딱히 의미가 없다고 한다. 영화 'Elephant Man'과 일본의 만담 트리오 카시마시 딸에서 따왔다고 한다.
  • 미야모토의 차는 2009년 기준 총 7번 바뀌었는데, 전부 포르쉐 차량이다. "자동차는 무조건 포르쉐"가 본인의 신조 중에 하나라고 한다. 그런데 차를 바꿀 때 마다 점점 구형 모델로 변한다고. 운전을 하게 된 계기가 재밌는데, 문명의 이기를 거부한답시고 자동차도 사지 않고 에어컨도 집에서 떼버렸지만 '더위를 피하기 위해 샤워를 하는 것이 문명의 이기를 사용하는 것'이라는 모순을 깨닫고 결국 33세가 되서야 면허를 취득했다. 면허를 딴지 얼마 안됐을 때는 하루에 230km를 넘게 달릴 정도로 운전 광이었다고 한다. 2010년에 후지 스피드웨이에서 서킷 데뷔 주행도 했다.
  • 미야모토가 2012년 앨범 <MASTERPIECE>가 발매된지 얼마 지나지 않아 급성 난청이 발병해 라이브를 무기한 중단한 적이 있었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라이브 복귀에 성공했다. 난청 발병 이후 음색이 약간 바뀌었다.
  • 미야모토가 밴드의 리더이자 모든 곡을 작사&작곡 하지만 기계치인지라 앨범 작업 시 프로듀싱 장비들을 다루는 건 이시모리의 몫이라고 한다.
  • 공연 시 이시모리의 기타치는 자세가 참으로 묘하다. 두 다리를 거의 ┌┐모양으로 벌리고 연주하는 경우가 많다. 또 30년의 세월 동안 머리 모양에 변화가 매우 잦았고 최근도 스타일에 변화를 줬기 때문에 이시모리의 모습 변화도 밴드 공연 시 보는 재미 중 하나이다.
  • 2006년 앨범 <扉>을 발매할 쯤 미야모토가 재산을 빼앗기는 사기를 당한 적이 있다. 금전 관리를 맡겼다가 당한 것인데 이 때문에 소유한 아파트(자택), 책, 포르쉐 차량 두대를 매각했고 당시 남은 돈은 현찰 3000엔이 전부였다고. 시부야에서 산책을 하던 도중 사기를 친 당사자를 만났는데 "잘 지내는 것 같아서 다행이다"라고 했다고 한다.

[1] 포크 록에 영향을 받은 컬리지 록, 인디에서 시작해 국민적 인기를 얻은 과정, 독특하면서도 감성적인 가사 등 닮은 지점이 많다.[2] 소니 뮤직 산하의 음반사.[3] 일본 록 잡지에서 일본 록 명반선을 꼽을때 에레카시의 초기작들은 빠지지 않는다. 주로 <THE ELEPHANT KASHIMASHI Ⅱ>, <浮世の夢>, <生活>가 자주 꼽히는 편.[4] 낙관적과는 조금 다른 것이, 낙관적은 모든 것을 좋게 되리라고 여기는 것이지만 낙천적은 좋지 않은 결과가 초래하더도 그것을 긍정적으로 받아들이고 앞으로 나아가는 것에 가깝다. 에레카시의 현재 스타일은 <RAINBOW>의 수록곡 <雨の日も風の日も>에서 '비가 오는 날도, 바람이 부는 날도, 맑게 갠 날도, 안개가 낀 날도 걸음을 멈출 수 없어', '빛나는 나 자신을 깨달았을 뿐, 난 내가 깨달은 만큼 모든 것을 손에 쥐고 싶어. 나는 언젠가 상처받은 마음을 해방시키고 싶어. 나는 언제든지 상처받은 마음을 다시 북돋우고 싶어'같은 가사를 미루어보아 '낙천적'인 성향이다.[5] 정확히는 2018년이 30주년이지만 2017년 전국 투어를 마무리한 뒤, 정확히 데뷔 30주년이 되는 2018년 3월에 사이타마 슈퍼 아레나에서의 공연으로 대미를 장식했다. 3월 17일에 공연을 펼쳤는데, 4일 뒤인 3월 21일은 엘리펀트 카시마시의 첫 데뷔 싱글 <デーデ>와 데뷔 앨범 <THE ELEPHANT KASHIMASHI>가 나온 날이다.[6] 9집 <明日に向かって走れ-月夜の歌->의 수록곡이자 후지TV 드라마 <月の輝く夜だから>의 주제가로 쓰인 '今宵の月のように'를 불렀다. 밴드의 최고 인기곡이다.[7] 앙코르 포함, 무려 31곡을 불렀다.[8] 원래 만화가 원작인데, 주인공의 이름이 '미야모토 히로지'이고 주인공이 작중 읽는 책 제목 중 5집 앨범 수록곡의 제목인 '無事なる男'(무사한 남자)라는 책이 있는 등 원작 자체가 엘리펀트 카시마시에서 여러 모티브를 따왔기 때문에 드라마 화가 되고 난 후 OST를 맡는 건 당연한 일일지도 모른다. 원작 만화는 1990년 연재를 시작해 1994년 연재를 끝마쳤는데 1990년은 에레카시가 데뷔한지 2년 밖에 안됐을 때다. 그야말로 열정 넘치는 신인 밴드에게서 모티브를 따온, 열정 넘치는 사회 초년생의 이야기.[9] 1975년에 NHK 도쿄방송 아동 합창단에 입단했다고 한다. 여기에서 어린 시절(초등학교 4학년) 노래하는 미야모토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다. 솔로 데뷔 곡이라고 한다.[10] 미야모토가 작곡하지 않은 단 두 곡이다. 자세한 건 타카미도리 세이지, 토미나가 요시유키 문단 참조.[11] 원전 발언은 심지어 후쿠시마 원자력 발전소 사고가 터진지 1년밖에 안지났는데도 저런 말을 한 것이다. 여담으로 '사이토 카즈요시'라는 미야모토와 동년배인 가수가 있다. 카즈요시는 미야모토의 언행과는 대비되게 원전 사고 이후 공연 중 자신의 노래를 즉석에서 개사해서 일본의 원자력발전소와 도쿄전력 등 전력공사들, 일본 정부의 거짓된 행보와 무능함을 비판한 바 있는데,# 카즈요시가 좋아하는 가수 중 하나가 에레카시이며 방송에서 에레카시와 콜라보 공연을 한 적도 있고 에레카시의 트리뷰트 앨범에 참가하기도 했다. 참으로 아이러니.[12] 이시하라 신타로가 어떤 사람인지 대해서는 항목 참조. 쉽게 말해 망언제조기에 수구꼴통이다.[13] 지금은 사라진 일본의 사회민주주의, 중도진보정당.[14] 일본이 제 2차 세계 대전 이후 꾸준히 경제 성장을 한 시기로, 1950~70년대 까지 이어졌으니 미야모토가 태어난 1966년은 경제 고도 성장기의 한 가운데라고 할 만하다. 이 경제 성장기가 지나면서 공공투자와 복지는 부실해지고 환경 파괴와 공해, 각종 질병 및 인구 분포 문제 등 사회적 부작용이 발생한다.[15] 아이러니하게도 위의 원전 발언도 <ガストロンジャー>를 공연하던 도중 한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