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남자: 잉글랜드 축구 국가대표팀, 북아일랜드 축구 국가대표팀, 스코틀랜드 축구 국가대표팀, 웨일스 축구 국가대표팀
- 여자: 잉글랜드 여자 축구 국가대표팀, 북아일랜드 여자 축구 국가대표팀, 스코틀랜드 여자 축구 국가대표팀, 웨일스 여자 축구 국가대표팀
국제축구연맹(FIFA) 미가입 주권 국가 | |||||
{{{#!folding [ 펼치기 · 접기 ] | <rowcolor=#000,#e5e5e5> OFC 준회원국 및 ConIFA 회원국 | ConIFA 회원국 | WUFA 회원국 | 국가대표팀 자체가 없는 국가 | |
<colcolor=#000,#e5e5e5> | |||||
키리바시 | 투발루 | 모나코 | 서사하라 | 영국1 | |
ConIFA 비회원국 | |||||
그린란드2 | 나우루 | 니우에3 | 마셜 제도 | 미크로네시아 연방 | |
바티칸 시국 | 팔라우 | 소말릴란드 |
영국 올림픽 축구 국가대표팀 | |||
Great Britain Olympic football team | |||
<colcolor=#e31f2b><colbgcolor=#012169> FIFA 코드 | GBR | ||
축구 협회 | 축구협회 (The FA)[사실상][2] | ||
대륙 연맹 | 유럽 축구 연맹 (UEFA)[3] | ||
홈구장 | 웸블리 스타디움[4] (Wembley Stadium / 90,000석) | ||
감독[2012기준] | 스튜어트 피어스[6] | ||
주장단[2012기준] | C 라이언 긱스 (Ryan Giggs) | ||
VC 크레이그 벨라미 (Craig Bellamy) | |||
올림픽 | [진출] 10회 [최고] (1900, 1908, 1912) | ||
{{{#!wiki style="color: #ffffff; margin: 5px -10px -5px" {{{#e31f2b {{{#!folding [ 대표팀 기록 보기 ] {{{#!wiki style="margin: -6px -1px -11px" | <colbgcolor=#012169> 올림픽 최다 출전 | 짐 루이스 (11경기) 마이크 피너 (11경기) | |
올림픽 최다 득점 | 윌 캠벨 (10골) | ||
첫 국제 경기 출전 | 영국 vs 스웨덴 12:1 승 (잉글랜드 런던 / 1908년 10월 20일) | ||
최다 점수 차 승리 | 영국 vs 스웨덴 12:1 승 (잉글랜드 런던 / 1908년 10월 20일) | ||
최다 점수 차 패배 | 영국 vs 불가리아 1:6 패 (호주 멜버른 / 1956년 11월 30일) 영국 vs 불가리아 0:5 패 (불가리아 소피아 / 1971년 5월 5일) | ||
마지막 국제 경기 | 영국 vs 대한민국 1:1 무 / 4:5 PK 패 (웨일스 카디프 / 2012년 8월 4일) |
유니폼 | 홈 | 원정[8] | 골키퍼 |
상의 | 1 | ||
하의 | 11 | 10 | 1 |
양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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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연령별 대표팀을 포함하여 각종 FIFA 주관 대회나 UEFA 주관 대회에서는 볼 수 없고, 오직 올림픽을 위해서 특별히 구성하여 영국을 대표하는 올림픽 축구 국가대표팀이다. 남자부와 여자부로 나누어져 있으며, 남자부는 23세 이하의 선수들로 구성되어 있다. 참고로 영국은 정치적으로는 United Kingdom이라고 불리지만 스포츠에서는 정치적 뉘앙스가 강한 United Kingdom보다는 지리·문화적 특성을 강조하여 Great Britain 또는 드물게 Great Britain and Northern Ireland라고 표기하는 관행이 있다. 축구를 비롯한 영국 올림픽 대표팀도 마찬가지로 Great Britain을 쓰며, 올림픽에 한해 Team GB라는 표현도 쓴다[9]. 한국에서는 간간히 영국 단일팀으로 부르기도 한다.한 국가에 한 국가대표라는 것이므로 보편적으로 보면 당연하게 있을 법한 국가대표 같지만, 축구계 실상을 보면 남북단일팀급이라 봐도[10] 크게 다르지 않다. 영국의 축구계에는 단일 협회가 없고, 잉글랜드, 스코틀랜드, 웨일스, 북아일랜드로 나뉘어 있다. 그러나 올림픽 축구에서는 단일팀으로 진출해야 하기 때문에[11][12] 4개 협회의 협상이 이루어져야 하는데, 갈등이 잦은 편이다.
그 동안 잉글랜드 아마추어 대표팀이 사실상 영국 올림픽 대표가 되어 올림픽 지역예선(물론 통과하면 본선까지)에 참가했다.
그러다가 잉글랜드 축구협회가 아마추어와 프로의 구분을 폐지하면서 '잉글랜드 아마추어 대표팀' 자체가 존재하지 않게 되자, 그 후인, 1976년부터 1988년까지는 지역예선조차 불참했다. 그러다가 1992년 올림픽부터 나이 제한이 생기면서 지역예선 제도 자체가 달라지면서(다음 문단 참조) 특정 지역 팀이 본선 진출권을 얻더라도 본선 진출을 포기하여 불참해 오다가, 2012년 자국에서 열린 런던 올림픽에서도 축구 팀을 못 만들면 세계적 망신이 되기에 무리를 해서 겨우 팀을 만들었다. 자세한 내용은 2012 런던 올림픽/축구 문서 참고. 그것도 북아일랜드와 스코틀랜드에서 차출을 거부했고, 그나마 몇몇 웨일스 연고 프로축구팀이 잉글랜드 프로축구 리그에 참가하다 보니, 실상 인적 구성을 보면 잉글랜드 U-23 대표팀에 깍두기로 웨일스 선수 5명을 끼워 준 것이나 다름없는 반쪽 단일팀이었다. 당시 엔트리는 이 문서에 후술돼 있다. 물론 일회성 팀 구성이었기에 이후의 올림픽은 단일 축구 팀을 구성하지 않고 있다. 영국에서 하계 올림픽을 다시 개최하려면 수십 년 뒤의 일일테니 영국 올림픽 축구 국가대표팀은 앞으로도 한참 못 볼 팀이라고 생각하면 되며, 이 영국에서 영국팀을 승부차기로 탈락시키는[13] 기록을 세운 대한민국 U-23 축구 국가대표팀은 그야말로 두번 다시는 없을 전리품을 얻었다고 생각해도 될 것이다.
반면 남자와는 달리 여자 축구에서는 2020 도쿄 올림픽을 앞두고 영국의 지역 축구 협회들은 어느 한 지역이라도 본선 진출권을 얻는다면 단일 팀을 구성해서 본선에 참가하기로 합의하였고 실제로 잉글랜드가 본선 진출권을 얻자 단일 팀을 구성하여 도쿄 올림픽에 참가하였다. 이후 2024 파리 올림픽에서도 여자부에서는 어느 지역이든 본선 진출권을 얻게 되면 진출할 예정이었으나 모두 탈락하였다. 남자부에서는 잉글랜드가 본선 진출권을 얻었으나 포기하고 불참한다.
유럽 대륙의 남자부 올림픽 본선 진출권에 대해 덧붙이자면, 유럽 대륙은 올림픽이 개최되기 직전의 UEFA U-21 챔피언십을 통해 대회 4위(올림픽 개최국이 유럽인 경우 개최국이 하나를 가져가므로 3위)까지 올림픽 16개국 본선 진출 티켓을 부여한다. 그러나 잉글랜드, 스코틀랜드, 웨일스, 북아일랜드는 올림픽 본선 진출을 포기해 왔기 때문에 해당 4개국이 준결승전에 진출하는 경우에는 순위 결정전(3, 4위전이나 5, 6위전. 원래 하지 않는 것이 원칙이나 올림픽 본선 진출 팀을 결정해야 하는 경우에만 실시.)을 실시하여 다음 순위 팀이 대신 나간다.
2. 선수 명단
2.1. 남자 대표팀 명단 (2012)
2012 런던 올림픽 남자축구 영국 국가대표팀 | |||||
등번호 | 포지션 | 이름 | 생년월일(나이)[14] | 소속팀 | 비고 |
1 | GK | 잭 버틀랜드 | 1993년 03월 10일 (19세) | 버밍엄 시티 FC | 잉글랜드 |
18 | 제이슨 스틸 | 1990년 08월 18일(21세) | 미들즈브러 FC | 잉글랜드 | |
2 | DF | 닐 테일러 | 1989년 02월 07일 (23세) | 스완지 시티 AFC | 웨일스 |
3 | 라이언 버트란드 | 1989년 08월 05일 (22세) | 첼시 FC | 잉글랜드 | |
4 | 대니 로즈 | 1990년 07월 02일 (22세) | 토트넘 홋스퍼 FC | 잉글랜드 | |
5 | 스티븐 코커 | 1991년 12월 29일 (20세) | 토트넘 홋스퍼 FC | 잉글랜드 | |
6 | 크레이그 도슨 | 1990년 05월 06일 (22세) | 웨스트 브롬위치 알비온 FC | 잉글랜드 | |
12 | 제임스 톰킨스 | 1989년 03월 29일 (23세) | 웨스트 햄 유나이티드 FC | 잉글랜드 | |
14 | 마이카 리차즈 | 1988년 06월 24일 (24세) | 맨체스터 시티 FC | 잉글랜드 | |
7 | MF | 톰 클레벌리 | 1989년 08월 12일 (22세) |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FC | 잉글랜드 |
8 | 조 앨런 | 1990년 03월 14일 (22세) | 스완지 시티 AFC | 웨일스 | |
11 | [[주장#s-1.1| C ]] 라이언 긱스 | 1973년 11월 29일 (38세) |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FC | 웨일스 | |
13 | 잭 코크 | 1989년 06월 25일 (23세) | 사우스햄튼 FC | 잉글랜드 | |
15 | 아론 램지 | 1990년 12월 26일 (21세) | 아스날 FC | 웨일스 | |
16 | 스콧 싱클레어 | 1989년 03월 25일 (23세) | 스완지 시티 AFC | 잉글랜드 | |
9 | FW | 다니엘 스터리지 | 1989년 09월 01일 (22세) | 첼시 FC | 잉글랜드 |
10 | [[주장#s-1.1| VC ]] 크레이그 벨라미 | 1979년 07월 13일 (33세) | 리버풀 FC | 웨일스 | |
17 | 마빈 소델 | 1991년 02월 17일 (21세) | 볼튼 원더러스 FC | 잉글랜드 | |
감독: 스튜어트 피어스 |
- 굵은 글씨는 와일드카드 선발 선수
2.2. 여자 대표팀 명단 (2020)
2020 도쿄 올림픽 여자축구 영국 국가대표팀 | |||||
등번호 | 포지션 | 이름 | 생년월일(나이)[15] | 소속팀 | 비고 |
1 | GK | 엘리 로벅 | 1999년 09월 23일(21세) | 맨체스터 시티 위민 | 잉글랜드 |
13 | 칼리 텔포드 | 1987년 07월 07일(34세) | 첼시 FC 위민 | 잉글랜드 | |
22 | 샌디 맥키버 | 1998년 06월 18일(23세) | 에버튼 FC 위민 | 잉글랜드 | |
2 | DF | 루시 브론즈 | 1991년 10월 28일(29세) | 맨체스터 시티 위민 | 잉글랜드 |
3 | 데미 스톡스 | 1991년 12월 12일(29세) | 맨체스터 시티 위민 | 잉글랜드 | |
5 | 스텝 휴턴 | 1988년 04월 23일(33세) | 맨체스터 시티 위민 | 잉글랜드 | |
12 | 레이첼 데일리 | 1991년 12월 06일(29세) | 휴스턴 대시 | 잉글랜드 | |
14 | 밀리 브라이트 | 1993년 08월 21일(27세) | 첼시 FC 위민 | 잉글랜드 | |
16 | 리아 윌리암슨 | 1997년 04월 29일(24세) | 아스날 WFC | 잉글랜드 | |
21 | 샬롯 우벤모이 | 1999년 01월 11일(22세) | 아스날 WFC | 잉글랜드 | |
4 | MF | 케이라 월시 | 1997년 04월 08일(24세) | 맨체스터 시티 위민 | 잉글랜드 |
6 | 소피 잉글 | 1991년 09월 02일(29세) | 첼시 FC 위민 | 웨일스 | |
8 | 킴 리틀 | 1990년 06월 29일(31세) | 아스날 WFC | 스코틀랜드 | |
11 | 캐롤라인 위어 | 1995년 06월 20일(26세) | 맨체스터 시티 위민 | 스코틀랜드 | |
17 | 조지아 스탠웨이 | 1999년 01월 03일(22세) | 맨체스터 시티 위민 | 잉글랜드 | |
18 | 질 스콧 | 1987년 02월 02일(34세) | 에버튼 FC 위민 | 잉글랜드 | |
7 | FW | 니키타 패리스 | 1994년 03월 10일(27세) | 올랭피크 리옹 페미닌 | 잉글랜드 |
9 | 엘렌 화이트 | 1989년 03월 09일(32세) | 맨체스터 시티 위민 | 잉글랜드 | |
10 | 프랜 커비 | 1993년 06월 29일(28세) | 맨체스터 시티 위민 | 잉글랜드 | |
15 | 로렌 헴프 | 2000년 08월 07일(20세) | 맨체스터 시티 위민 | 잉글랜드 | |
19 | 니암 찰스 | 1999년 06월 21일(22세) | 첼시 FC 위민 | 잉글랜드 | |
20 | 엘라 툰 | 1999년 09월 02일(21세) | 맨체스터 시티 위민 | 잉글랜드 | |
감독: 헤게 리세[16] |
3. 역대 성적
※불참한 연도는 표기하지 않는다.3.1. 남자부
- ★★★④
연도 | 결과 | 순위 | 경기 | 승점 | 승 | 무 | 패 | 득점 | 실점 |
1896년 | 정식 종목 편성 이전 | ||||||||
1900년 | 우승[17][18] | 1위 | 1 | 2 | 1 | 0 | 0 | 4 | 0 |
1904년 | 불참 | ||||||||
1908년 | 우승 | 1위 | 3 | 6 | 3 | 0 | 0 | 18 | 1 |
1912년 | 우승 | 1위 | 3 | 6 | 3 | 0 | 0 | 15 | 2 |
1916년 | 제1차 세계 대전으로 인한 대회 취소 | ||||||||
1920년 | 1라운드 | 10위 | 1 | 0 | 0 | 0 | 1 | 1 | 3 |
1924년 | 불참 | ||||||||
1928년 | |||||||||
1932년 | 축구 종목 제외 | ||||||||
1936년 | 8강 | 6위 | 2 | 2 | 1 | 0 | 1 | 6 | 5 |
1940년 | 제2차 세계 대전으로 인한 대회 취소 | ||||||||
1944년 | |||||||||
1948년 | 4위[19] | 4 | 4 | 2 | 0 | 2 | 9 | 11 | |
1952년 | 예비라운드 | 23위 | 1 | 0 | 0 | 0 | 1 | 3 | 5 |
1956년 | 8강 | 5위 | 2 | 2 | 1 | 0 | 1 | 10 | 6 |
1960년 | 조별리그 | 8위 | 3 | 3 | 1 | 1 | 1 | 8 | 8 |
1964년 | 본선 진출 실패[16개국] | ||||||||
1968년 | |||||||||
1972년 | |||||||||
1976년 | 불참 | ||||||||
1980년 | |||||||||
1984년 | |||||||||
1988년 | |||||||||
1992년 | |||||||||
1996년 | |||||||||
2000년 | |||||||||
2004년 | |||||||||
2008년 | |||||||||
2012년 | 8강 | 5위 | 4 | 8 | 2 | 2 | 0 | 6 | 3 |
2016년 | 불참 | ||||||||
2020년[21] | |||||||||
2024년 | |||||||||
합계 | 우승(3회) | 10/28[22] | 24 | 33 | 14 | 3 | 7 | 80 | 44 |
3.2. 여자부
연도 | 결과 | 순위 | 승점 | 경기 | 승 | 무 | 패 | 득점 | 실점 |
1996년 | 불참 | ||||||||
2000년 | |||||||||
2004년 | |||||||||
2008년 | |||||||||
2012년 | 8강 | 5위 | 9 | 4 | 3 | 0 | 1 | 5 | 2 |
2016년 | 불참 | ||||||||
2021년 | 8강 | 7위 | 7 | 4 | 2 | 1 | 1 | 7 | 5 |
2024년 | 본선 진출 실패[12개국] | ||||||||
합계 | 진출 2회 / 8강 2회 | 16 | 8 | 5 | 1 | 2 | 12 | 7 |
4. 관련 문서
[사실상] [2] 영국은 축구협회(잉글랜드), 스코틀랜드 축구 협회, 웨일스 축구 협회, 아일랜드 축구 협회로 4개의 축구 협회를 분리하여 운영하고 있다. 여기서 아일랜드 축구 협회는 아일랜드의 아일랜드 공화국 축구 협회가 아닌 북아일랜드의 축구 협회를 의미한다.[3] 영국 본토를 구성하는 4개국의 축구협회가 모두 유럽 축구 연맹 소속이다.[4] 잉글랜드 축구 국가대표팀의 홈 구장이다.[2012기준] [6] 현재까지 최후의 영국 올림픽 축구 국가대표팀 감독이다. 영국은 2012 런던 올림픽 이후로 올림픽 대표팀을 해산하여 올림픽 남자축구 종목에 출전하지 않고있다. 다만, 여자축구의 경우 2020 도쿄 올림픽에 출전하긴 했다.[2012기준] [8] 2012 런던 올림픽 모든 경기에서 홈 유니폼만을 착용.[9] 가끔씩 대한민국과 북한이 남북단일팀으로 나올때 대표팀을 Team Korea로 쓰는 것과 같은 원리다.[10] 이는 럭비도 마찬가지. 골프야 개인전이고, 컬링은 선발전 우승팀이 통으로 나가는데, 다른 지역은 물론이고, 옆동네와도 웬만하면 팀을 맺지 않는다.[11] FIFA는 4개의 팀을 별개로 인정하는 반면 IOC는 영국만 인정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피파 주관 월드컵 같은 대회에서는 엄밀히 말하면 국가대표라기 보다는 각국 '축구협회'의 대표팀으로 참가하는 것이다. 그리고 보통은 한 국가에서는 하나의 축구협회만 있는 경우가 대부분이고, 그래서 유니폼에는 국기보다는 각국 협회의 엠블럼이 달린 유니폼을 입고 뛴다. 2008 베이징 올림픽부터 IOC는 각국 축구협회 엠블럼을 단 유니폼을 불허하고 있고, 따라서 올림픽에서는 월드컵에서 축구협회 엠블럼이 있어야 할 자리에 국기를 단다.[12] 굳이 비슷한 사례를 찾자면 남북 단일팀을 구성한 대한민국과 북한 또는 통일 이전의 서독과 동독이 있지만, 이 중에서 서독과 동독이 영국과 제일 유사하다. 두 나라는 분단이 되었어도 올림픽 위원회는 하나로 운영하였기 때문에(1964년 올림픽까지. 1968년부터 1988년 올림픽까지는 동독과 서독이 별개로 참가했다.) 올림픽은 독일이란 이름의 한 국가로 출전해야 됐다. 동독과 서독 축구협회는 양쪽에서 잘하는 선수를 뽑아서 만든 단일 팀을 구성하지 않고, 독일을 대표해서 올림픽에 나갈 한 팀을 가려낼 플레이오프를 해서 이기는 팀이 독일 대표로 올림칙 지역예선에 참가하는 것으로 합의하였다. 영국과 차이가 있다면 영국은 4개의 구성국이 영국이란 이름으로 하나의 국가로서 유엔에 가입되어 있지만, 독일은 서독과 동독이 각각 가입한 주권 국가였다. 다만 독일 단일 팀을 구성하던 시절에는 동서독 모두 유엔 미가입국이었다.[13] 다만 승부차기전 탈락은 전적상 무승부로 기록된다.[14] 당시 나이[15] 당시 나이[16] 노르웨이 여자 축구 국가대표팀의 레전드로 노르웨이 여자축구 선수 중에서 A매치 최다 출전기록을 가지고 있다.[17] 시범 종목[18] 이 대회에선 업튼 파크 FC라는 아마추어 팀이 사실상의 영국 국가대표팀 역할을 했다. 이 팀은 11년 뒤인 1911년에 해체되었다.[19] 4강전에서 탈락 후 3,4위전(동메달전) 최종 4위[16개국] 본선 올림픽 축구에 진출 실패했다.[21] 코로나19 범유행에 따라 1년 연기.[22] 올림픽 본선 진출 비율[12개국] 올림픽 축구 본선에 진출 실패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