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대 올림픽 축구 | |||||
{{{#!wiki style="margin: -0px -10px -5px; min-height: 28px" {{{#!folding [ 펼치기 · 접기 ] {{{#!wiki style="margin: -6px -1px -11px" | <rowcolor=#202020,#DFDFDF> 1회 | 2회 | 3회 | 4회 | 5회 |
(축구 종목 제외) | |||||
1900 파리 (아마추어 클럽대항전) | 1904 세인트루이스 (아마추어 클럽대항전) | 1908 런던 | 1912 스톡홀름 | ||
<rowcolor=#202020,#DFDFDF> 6회 | 7회 | 8회 | 9회 | 10회 | |
(제1차 세계 대전) | (축구 종목 제외) | ||||
1920 안트베르펜 | 1924 파리 | 1928 암스테르담 | |||
<rowcolor=#202020,#DFDFDF> 11회 | 12회 | 13회 | 14회 | 15회 | |
(제2차 세계 대전) | (제2차 세계 대전) | ||||
1936 베를린 | 1948 런던 | 1952 헬싱키 | |||
<rowcolor=#202020,#DFDFDF> 16회 | 17회 | 18회 | 19회 | 20회 | |
1956 멜버른 | 1960 로마 | 1964 도쿄 | 1968 멕시코시티 | 1972 뮌헨 | |
<rowcolor=#202020,#DFDFDF> 21회 | 22회 | 23회 | 24회 | 25회 | |
1976 몬트리올 | 1980 모스크바 | 1984 로스앤젤레스 | 1988 서울 | 1992 바르셀로나 | |
<rowcolor=#202020,#DFDFDF> 26회 | 27회 | 28회 | 29회 | 30회 | |
1996 애틀랜타 | 2000 시드니 | 2004 아테네 | 2008 베이징 | 2012 런던 | |
<rowcolor=#202020,#DFDFDF> 31회 | 32회 | 33회 | 34회 | 35회 | |
2016 리우데자네이루 | 2020 도쿄 (연기) | 2024 파리 | 2028 로스앤젤레스 | 2032 브리즈번 | |
<rowcolor=#202020,#DFDFDF> 36회 | |||||
2036 미정 | }}}}}}}}} |
올림픽 축구 | ||
대회기간 | 1956년 11월 24일 ~ 12월 8일 | |
본선 진출국 | ||
우승 | 소련 | |
준우승 | 유고슬라비아 | |
3위 | 불가리아 | |
득점왕 | 토도르 베셀리노비치 디미타르 밀라노프 네빌 디 소우자 | 이상 4골 | |
이전·이후 대회 | ||
1952년 헬싱키 | 1956년 멜버른 | 1960년 로마 |
[clearfix]
1. 개요
1956 멜버른 올림픽의 축구 종목에 대하여 서술하는 문서.올림픽 축구에 사상 처음으로 지역예선이 도입되었다.
2. 경기장
3. 본선 진출국
대륙 | 국가 | 예선 대회 | 대회 성적 | 티켓 수 | 통산 진출 | 최근 진출 | 최고 성적 | |
아시아 오세아니아 (AFC) | 호주 | 개최국 | 1장 | 첫 진출 | - | - | ||
| | 1956 멜버른 올림픽 아시아 - 오세아니아 지역예선 | | 6장 | | | | |
일본 | vs 대한민국 승리[1] | 2회 | 1936 | 8강 | ||||
인도 | vs 태국 부전승[2] | 3회 | 1952 | 1R | ||||
태국 | vs 인도 부전승[3] | 첫 진출 | - | - | ||||
| | | | | | |||
인도네시아 | vs 중화민국 기권승 | 첫 진출 | - | - | ||||
유럽 (UEFA) | 불가리아 | 1956 멜버른 올림픽 유럽 지역예선 | vs 영국 승리 | 7장 | 2회 | 1924 | 1R | |
소련 | vs 이스라엘 승리 | 첫 진출 | - | - | ||||
유고슬라비아 | vs 루마니아 기권승 | 6회 | 1948 | 은메달 | ||||
| | | | | | |||
| | | | | | |||
독일 | 부전승[4] | 2회[5] | 1952 | 4위 | ||||
→ | → 영국 | → vs 불가리아 패배 | → 7회 | → 1952 | → 금메달 | |||
남미(CONMEBOL) 북미(NAFC) 중미/카리브 (CCCF) | 미국 | 1956 멜버른 올림픽 아메리카 예선 | vs 멕시코 기권승 | 1장 | 6회 | 1952 | 1R | |
(CAF) | | | 1956 멜버른 올림픽 아프리카 지역예선 | | | | | |
- 대회 사상 처음으로 지역예선이 도입되었고, 총 28개국이 참가해 개최국 호주를 제외한 27개국이 본선 15장의 티켓을 두고 홈 앤드 어웨이 대진을 추첨해 예선을 치렀다.
- 원체 각국의 정치 사정이 맞물려 기권이 난무했던 멜버른 올림픽이었고, 축구도 예외는 아니었다. 최초 본선 진출국 16개국 중 6개국이나 기권을 했다. 6개의 빈 자리 중 1자리만 대타 진출로 메운 채 대회는 당초 계획과 달리 11개국 토너먼트로 운영되게 된다.
- 중국 본토를 장악하고 처음 올림픽에 진출하려던 중화인민공화국은 올림픽에 중화민국이 청천백일만지홍기를 사용하지 못하게 해달라고 항의를 했지만 이게 받아들여지지 않자 기권했다.[6]
- 이집트는 영국, 프랑스와 수에즈 운하를 두고 분쟁 중이었고, 결국 대회 한 달전 제2차 중동전쟁이 발발해 올림픽에 도전할 형편이 안돼 기권했다.
- 터키는 가뭄으로 인해 촉발된 자국의 심각한 경기 침체로 인해 올림픽에 대규모 선수단을 보내는 것을 부담스러워 하며 기권했다. 남베트남 또한 개최지 호주로의 장거리 원정이 부담스럽다는 이유로 기권했다.
- 폴란드는 행운의 지역예선 부전승으로 16개국 본선 진출권을 얻었지만 포즈난 항쟁 등으로 어지러운 국내 정세 때문에 1956년 9월 1일 대진 추첨 행사 이전 기권을 했다. 폴란드의 진출권은 영국에게로 승계되어 영국이 대신 진출하게 되었다.
- 대진 추첨 이후에는 헝가리에서 헝가리 혁명이 일어나 멜버른 올림픽 대회 기간까지 소련이 강경 진압을 이어갔다. 소련군의 개입에 항의하는 차원에서 헝가리 또한 대회 기권을 선언했다. 여담으로 헝가리 기권 당시 FIFA는 2년 전 1954 월드컵 본선(16개국) 진출국이자 아시아 예선에서 동전던지기로 아쉽게 탈락한 대한민국에게 대타 진출을 권유했지만 대한민국도 결국 이를 사양했다.
4. 선수 명단
자세한 내용은 1956 멜버른 올림픽/축구/참가팀 정보 문서 참고하십시오.5. 대회 진행
5.1. 토너먼트 대진표
경기 순번 | 대진표 | 대진표 | 경기 순번 | |||||
<colbgcolor=#00874a> 1 | 미국 | vs | 유고슬라비아 | VS | | vs | | <colbgcolor=#00874a> 2 |
3 | 호주 | vs | 일본 | VS | 인도 | vs | | 4 |
5 | 인도네시아 | vs | | VS | 소련 | vs | 독일[7] | 6 |
7 | 불가리아 | vs | | VS | 영국 | vs | 태국 | 8 |
- 1라운드 1번 경기인 미국과 유고슬라비아의 경기는 8강 상대로 맞붙을 예정이던 반대쪽 2번 대진의 중국과 터키가 둘 다 불참하는 바람에 1라운드 경기가 아닌 8강 경기로 격상되었다. 즉, 미국, 유고 모두 8강에 부전승으로 올라간 것으로 처리해 두 팀이 8강에서 맞붙는 것으로 대진이 조정되었다.
- 1라운드 8개의 대진 중에서 대거 불참으로 인해 치러진 경기는 단 3경기에 불과했다.
5.1.1. 11개국 1라운드
자세한 내용은 1956 멜버른 올림픽/축구/토너먼트 문서 참고하십시오.5.1.2. 8강 이후
자세한 내용은 1956 멜버른 올림픽/축구/토너먼트 문서 참고하십시오.6. 최종 순위
1956 멜버른 올림픽 남자축구 우승국 |
소련 |
첫번째 우승 |
7. 여담
- 참가만 하면 대회에 나설 수 있던 올림픽 축구가 이 대회부터 지역예선을 도입했다. 경쟁팀이 지속적으로 늘어나며 토너먼트로 대회를 치러도 대회 규모가 너무 커지게 되었고, 올림픽 축구의 고질적인 문제였던 대진운이 실력을 가려버리는 전면 토너먼트제의 맹점을 극복하고자 처음으로 이 대회부터 진출국에 제한을 두기 시작한 것이다. 그러나 대회 방식 자체는 전 경기 토너먼트로 그대로 유지했다.
[1] 1승 1패로 동전던지기 끝에 일본이 행운의 승리를 거머쥐었다.[2] 이란 vs 아프가니스탄 경기가 두 팀 모두 기권하면서 취소되었고, 인도와 태국이 모두 본선에 부전승으로 진출하는 행운을 거머쥐었다.[3] 이란 vs 아프가니스탄 경기가 두 팀 모두 기권하면서 취소되었고, 인도와 태국이 모두 본선에 부전승으로 진출하는 행운을 거머쥐었다.[4] 당시 IOC가 동독을 따로 가입시키지 않고 서독과 동독이 단일팀을 이뤄 올림픽에 나서라는 요구를 강하게 하던 시절이었다. 다만 동서독 축구협회와 독일 올림픽 위원회는 양팀 선수를 섞어서 만든 단일팀을 구성하지 않고 두 팀이 대결하여 승자가 독일 대표로 나선다고 합의했다. 때문에 서독이 동독을 이기고 독일 대표로 나서게 되었다. 단일팀기는 1960-1968년 올림픽에 쓰인 것으로 이 대회는 현 독일 국기가 쓰였다.[5] 분단 이전까지 세면 5회[6] 정작 중화민국 또한 인도네시아에게도 비슷한 항의를 받으면서 예선을 기권했다. 예선 상대로 추첨된 인도네시아가 중국과 비슷한 이유를 들어 예선을 자국에서 치르려면 FIFA 기를 달고 경기를 하라는 요구를 했고, 중화민국이 이를 거절하면서 기권했다. 인도네시아는 부전승으로 본선에 진출하게 되었다. 노린건가[7] 사실상 서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