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05-23 06:32:57

영품리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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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품리(寧禀離)? / 부루(扶婁)?[1]
왕후 시비?
왕자 동명왕
왕호 영품리왕(寧禀離王) }}}}}}}}}

1. 소개2. 기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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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소개

고리국 군주인 동시에 일부 사료에서 확인되는 기록으론 부여왕 해모수의 아들 해부루를 지칭하는 명칭.

2. 기록

삼국유사 권1 기이1 고구려조에는 주림전(珠林傳)을 인용하여 이렇게 서술되었다.
此卒本扶餘 亦是北扶餘之別都 故云扶餘王也 寧稟離乃夫婁王之異稱也
이 졸본부여는 또한 북부여의 별도이므로 부여왕이라 이른 것이다. 영품리는 부루왕의 다른 칭호이다.

다만 삼국지 열전 동이 부여 편과, 후한서 열전 동이 부여국, 『북사』 열전 백제지국(百濟之國)에는 영품리왕을 고리국왕(槀離國王)으로 보았다.

삼국유사의 설을 채택하면 영품리왕은 해부루왕의 이명이 되며, 기타 삼국지, 후한서, 북사 등의 기록을 채택하면 고리국의 군주가 된다. 고리국의 군주라는 설을 채택하면 영품리왕의 계집종(侍婢, 시비)가 아이를 베어서 영품리왕이 시비를 죽이려 하니 시비가 대답하여 말하기를 "달걀만한 크기의 기운이 하늘에서 저에게로 와 임신하게 되었습니다" 하였다. 후에 시비가 아이를 낳자 영품리왕은 그 아이를 죽이려 하였으나 실패하고 하늘의 아들인가 싶어 그 어미가 거두어 기르게 하였고, 아이의 이름은 부여 시조 동명(東明)이란 것이다.

삼국유사의 설은 아마 주몽 설화에서 비롯될 가능성이 높다. 실제로 주몽 설화와 동명왕의 설화는 거의 같으며 현재는 주몽 설화가 동명왕의 설화를 차용한 것으로 보고 있다. 즉 영품리왕을 동부여의 초대 군주인 해부루왕으로 보고 탁리국(고리국)을 동부여로 보면 설화의 내용은 일치한다. 고려시대 이후에는 동명왕동명성왕을 구분하지 않고 동일하게 보는 시각이 많았기 때문이다.

동명왕 설화는 1세기 후한의 저서인 《논형(論衡)》 권2 길험편에서 부여 동명왕 설화가 처음으로 언급된다.
북이(北夷) 탁리국[(고리국이라고도 한다.) 왕의(영품리왕, 寧禀離王) 시비가 임신을 하였다. 왕이 죽이려 하니, 시비가 대답하여 말하기를 "달걀만한 크기의 기운이 하늘에서 저에게로 와 임신하게 되었습니다." 하였다. 후에 아들을 낳자 돼지우리에 던져두었으나, 돼지가 입김을 불어넣으니 죽지 않았다. 다시 마굿간에 두어 말이 밟아 죽이도록 하였으나, 말이 또한 입김을 불어넣어 죽지 않았다. 왕이 하늘의 아들[天子]인가 여겨, 그 어미가 거두어 기르도록 하였다. 이름을 동명(東明)이라 하고 소와 말을 기르도록 하였다.

동명이 을 잘 쏘았기에 왕은 나라를 빼앗길 것을 두려워하여 죽이고자 하였다. 이에 동명이 남쪽으로 도망하여, 엄호수에 이르러 로 물을 치니 물고기와 자라가 다리를 만들었다. 동명이 건너자 물고기와 자라가 다리를 풀어버리니 추격하던 병사들이 건널 수 없었다. 부여에 도읍을 정하고 왕 노릇을 하였다.

동명의 어미가 처음 임신했을 때, 기가 하늘에서 내려오는 것을 보고 동명을 낳고, 버렸으되 돼지와 말이 입김을 불어주어 죽지 않았고, 성장하자 왕이 죽이려 함에 로 물을 치니 물고기와 자라가 다리가 되어 주었다. 이는 천명이 그 죽음을 마땅치 않게 여겼기 때문이다. 그러한 까닭에 돼지와 말이 목숨을 구해줘 부여에 도읍하여 왕이 된 것이며, 물고기와 자라가 다리를 만들어주는 도움이 있었던 것이다.


[1] 해부루왕은 단군왕검의 아들이란 설도 있다. 자세한건 부루 항목 참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