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02-20 20:53:54

유사언어학

1. 개요2. 유사 언어 비교3. 바벨탑 쌓기4. 야펫 이론5. 언어신비주의6. 관련 문서

1. 개요

類似言語學 / Pseudolinguistics

'언어학의 탈을 쓴 거짓된 이론'을 일컫는 말. 즉 언어학이 아니며 정상적인 학문도 아니다. 언어란 것은 본디 대단히 정치적이고 많은 사람들의 정체성 및 자존심에 연관된 경우가 많으므로 정치적인 의도로 허구의 언어이론을 조작하는 경우가 많다. 참고로 '유사언어학' 혹은 'Pseudolinguistics'는 정립된 용어라기보다는 이런 뜻을 나타내기 위해 임의로 만든 조어에 가깝다.

2. 유사 언어 비교

가장 흔한 형태. 전혀 상관없는 'ㄱ' 언어와 'ㄴ' 언어를 비교해서 '이런이런 점에서 'ㄴ'은 'ㄱ'을 닮았다. 그러므로 'ㄴ'은 'ㄱ'에서 파생된 언어다'라는 논리를 전개하는 것이다. 이러한 논리에는 대개 비교언어학적 방법론이 결여되어 있다. 어쩌다보니 뜻과 모양이 조금 비슷한 단어를 추려내서 닮았으니 동원어라고 우기는 식. 문제는 이러한 주장에 비전공자들은 금세 혹한다는 것이다.

혹은 파생된 언어가 아니라 'ㄴ' 언어를 쓰는 민족은 'ㄱ' 민족에게 정복당해서 여러 어휘를 받아들여야만 한 것이다'라는 소설을 펼치기까지 한다. 환빠가 대표적인 예.

이런 면에서는 민간어원도 유사언어학의 일종이라고 볼 수 있다. '사무라이'가 '싸울아비'에서 왔다거나 영어의 Many가 '많이'에서 왔다든가.

영단어의 어원을 찾아보려는데 검색결과로 유사언어학이 나와서 검색에 차질을 겪는 경우도 있다.

영어는 우리말입니다라는 괴상한 책도 있다. 거의 이 분야의 끝판왕 수준이었던 책. 과거형인 이유는 작가가 20년 후에 아리랑이라는 훨씬 미친 책을 내놓았기 때문이다.

3. 바벨탑 쌓기

비교언어학의 발전으로 인도유럽어족, 중국티베트어족을 비롯한 수많은 어족을 밝혀냈지만 이 모든 어족이 어디서 왔는가 하는 문제는 아직도 대답하지 못했다. 그러니 당연히 인류 최초의 언어[1]를 밝혀내려는 시도가 끊이지 않을 수밖에 없고 19세기에 이 문제로 하도 시끄럽자 1866년에 파리언어학회가 아예 언어의 기원을 논하는 걸 금지해버렸다. 그리고 그 이후부터 지금까지 별다른 진전이 없다.

일단 최초의 호모 사피엔스 사피엔스가 수천명 정도의 소집단에서 시작되었다는 가설이 사실이라면, 최초의 언어 같은 것이 존재하기는 했을 가능성도 있다. 또 인도유럽조어 같이 비록 문자는 없는 언어지만 비교언어학적 방법론을 통해 어느정도 재구성하는데 성공하기도 했다. 하지만 인간들이 하나의 부족이었을 때 통일된 언어가 있었는지, 아니면 세계 각지로 흩어진 후에야 각각 나름대로의 언어를 발달시켰는지는 아무도 모르는 일. 모든 언어가 하나의 조상을 둔다고 해도 그걸 복원하려는 시도 자체가 무의미하다고 보는 회의론자들도 있다. 호모 사피엔스가 등장한지 20만년이 넘게 지난 것으로 추정되는 점을 고려해볼 때 언어의 역사도 최소 몇만년은 될 것이고, 이 정도면 이미 언어의 모든 표현들이 수차례 교체될 수 있을만큼[2] 긴 시간이므로 본래의 모습을 추적하는 것 자체가 불가능하다는 주장이다. 특히 각 집단이 오랜 이주 과정에서 마주친 여러 언어로부터 받아들였을 수많은 차용어들은 언어의 일관된 변화규칙을 이용한 재구를 미궁에 빠뜨리며, 과거로 거슬러갈수록 이런 불확실성은 더욱 커진다.

언어를 사용했을 것이라는 해부학적 증거가 화석에서 나온 네안데르탈인이 현생 인류와 연관 없이 살았다가 절멸된 것이 아니라, 수만 년 동안 현생 인류와 공존했었고 혼혈까지 되어서, 현생 인류에도 네안데르탈인의 유전자가 3~5%나 들어 있다는 것이 밝혀진 지금, 모든 인류의 공통 조상 언어가 있었다는 주장은 더욱 그 힘을 잃게 된다.[3]

하지만 바벨탑을 향한 인류의 욕망은 끝이 없는 것인지 여러 어족의 기초어휘(물, 손, 코 등)을 모아놓고 유사점을 주장하는 시도도 많이 있어왔다. 미국의 언어학자 메릿 룰렌(Merritt Ruhlen)이 아래의 단어가 원시 인류어에 포함되었다고 주장하였다.[Ruhlen,1994]

ku = 'who'
ma = 'what'
pal = 'two'
akwa = 'water'
tik = 'finger'
kanV = 'arm'
boko = 'arm'
buŋku = 'knee'
sum = 'hair'
putV = 'vulva'
čuna = 'nose, smell'

'노스트라트 가설'(Nostratic theory)도 이런 종류에 속한다. 이 것은 덴마크언어학자홀거 페데르센에 의해 처음 제안된 이후, 러시아의 언어학자인 세르게이 스타로스틴 등이 발전시켜온 가설로, 인도유럽어족, 아프리카아시아어족, 우랄어족, 드라비다어족 등 어족들이 공통의 조상을 두었다 주장하며 이 그룹을 '노스트라트('우리들')어족'이라 이름붙인 것이다. 그밖에 스타로스틴은 바스크어, 나데네어족, 중국티베트어족, 예니세이어족, 북캅카스어족[5] 등을 '데네캅카스어족(Dene-Caucasian)'으로 묶었는데, 여기서 그치지 않고 이 데네캅카스어족을 오스트로아시아어족, 몽몐어족, 크라다이어족, 오스트로네시아어족 등으로 구성된 '오스트로어족'(Austric)과 함께 '데네다이어족(Dene-Daic)'으로 묶은 다음, 이것을 다시 노스트라트어족과 묶어 '보레아어족(Boreal)'이라는 거대 어족을 제안한 바 있다.

물론 노스트라트어에 대해 비판적인 학자들도 많지만 최근까지 이루어진 관련 연구들에 따르면, 아프리카오세아니아(오스트로네시아어족 제외)를 제외하고 최소 유라시아 대륙아메리카에 있는 언어들은 고고인류학적, 역사학적 연구들을 토대로 볼 때 어느 정도 연관이 있을 가능성이 있어 보인다고 한다. 노스트라트어에 대해 연구하는 학자들의 자료를 살펴보면, 많은 사람들이 생각하듯이 자기 멋대로 끼워맞추기식 추정이 아니라, 나름대로 언어학과 과학을 총동원해서 재구해 내었기에 이들을 섣불리 무시할 수는 없는 듯 하다. 재미있는 것은, 그 기원이 매우 불확실한 한국어와 일본어를 근처에 있는 상황이 비슷한 또 다른 언어들인 아이누어[6]니브흐어[7]와 관련지어 상당한 비중을 두고 연구하는 학자들도 보인다. 일단, 노스트라트어에 대해 연구하는 학자들은 대부분 서양권(러시아 포함) 인물들로 아시아 쪽에는 거의 전무하다. 국내나 일본 학계에서는 수사(數詞) 같은 기초 어휘의 차이로 일본어가 고대 한국어에서 제한적으로 영향을 받았을 뿐이며, 한국어와는 별개의 언어라 단정하는 분위기이지만, 서양권 학자들은 한국어와 일본어 사이에 역사적 관계로 인한 언어적 영향이나 언어동조대(Sprachbund) 그 이상으로 깊고 복잡한 친분 관계가 있다고 주장하고 그에 상응하는 연구를 진행하는 학자들이 적지 않은 편이다. M. Robbeets, A. T. Francis-Ratte가 바로 그들이다. 예를 들어 그들은 강원도 삼척시(三陟市)의 고대 이름인 실직국(悉直國)이 원래 고구려의 영토였음에도 불구하고 고구려어로 3을 의미하는 '密(밀)'을 쓰지 않고 오히려 현대 한국어로 3을 의미하는 '셋'과 그 발음이 유사한 '悉(실)'을 썼다는 점에 착안하여 고대 한국어에 두 가지의 수사 체계가 공존했다고 한다. 예를 들면 현대 한국어에서 하나를 '홑'이라 하고 둘을 '짝'이라 하는 것 처럼 말이다. 위 사례에 대한 역의 사례 또한 존재한다. 고대에 경상남도 밀양시(密陽市)의 이름은 추량화현(推良火縣)이었는데, 삼량화현(三良火縣)으로도 표기되었음을 삼국사기 지리지에서 발견할 수 있다. 여기서 推의 뜻은 '밀다'이고 三은 숫자 3을 가리키므로 推의 어근인 '밀'과 '3'은 같은 말로 쓰였음을 알 수 있다. 이는 다시 말하면 신라 또는 가야의 영역이었던 곳에서도 '밀'이라는 말을 셋을 나타내는 말로 썼다는 것이며 고구려의 영역에서 숫자 3을 표기할 때 密을 쓰지 않않고 오히려 현대의 셋에 가까운 발음을 내는 한자를 빌려 썼다는 사실과 정확히 반대되는 사례인 것이다. 정리하자면 고대 한국어에서 숫자 3을 말할 때 오늘날의 표기인 '셋'에 가깝게도 발음했고, '밀'에 가깝게도 발음했다는 두 가지 숫자 체계가 존재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는 것이다. 이러한 사실을 토대로 한국어와 일본어가 같은 기원을 가진다는 사실이 맞다면, 고대 한국어에 존재하던, 숫자 3을 '셋'에 가깝게 발음하던 한 수사 체계는 중세국어, 현대국어의 그것으로 이어졌고, 숫자 3을 '밀'에 가깝게 발음하던 다른 수사 체계는 일본어로 이어졌다는 추측이 가능하다.

이런 언어일원론의 잘못된 사례들 중에서 아주 간단한 것을 들자면, 네이버 오픈백과이 글 목록같은 사례가 있다. 여기서 한술 더 떠 흑화하면 우리 언어가 바로 최초의 언어라고 주장하는 환빠 이론이 탄생하기도 한다.

4. 야펫 이론

이러한 유사언어학은 대개 자신의 민족이 최고임을 증명하기 위한 국수주의에 써먹히기 마련인데 소련 초기에 니콜로즈 마르라는 양반은 계층투쟁론을 위해 유사언어학적 드립을 치기도 했다.

이름하여 야펫 이론인데, 이 이론에 따르면 현재 유럽에서 쓰이고 있는 인도유럽어족은 사실 정복자(그러니까 지배계층)가 쓰던 말이고 유럽의 원주민(그러니까 피지배계층)들이 쓰고있는 언어는 사멸된 것이 아니라 지배언어의 하위적 특성으로서 잔존해 있다. 나아가 한 언어권의 지배층/피지배층 간보다 전혀 다른 언어권의 피지배층끼리 더 유사점이 많다는 이론.

한 마디로 말해서 만국의 노동언어여 단결하라. 이보다 더 노골적으로 정치적일 수 없는 그야말로 유사언어학의 극치지만 부르주아 과학이 아닌 진정한 프롤레타리아 과학이로다라는 찬사를 들으며 소련에서 널리널리 써먹혔다고 한다.

이 마르라는 사람 때문에 한때 소련의 언어학이 나락에 빠질 뻔 했지만[8], 마르가 죽은 지 16년 뒤인 1950년에 이오시프 스탈린이 직접 프라우다에 기고한 '마르크스주의와 언어학의 제문제(Марксизм и вопросы языкознания)'를 통해 반박함으로써 몰락하게 된다.

5. 언어신비주의

우리가 알아들을 수 없는 뭔가 영적이고 신비로운 미지의 언어가 있다고 주장하는 것. 기독교계열의 방언이 여기에 잘 들어맞는다. 특히 보이니치 문서같이 미해독 문서를 둘러싸고 이런 방향으로 흑화할 가능성이 농후하다. SCP-1390이 이 바로 이 개념을 가지고 만들어 낸 일종의 소설이다.

한편 일본어에는 신령스러운 힘이 깃들어 있어서 그것이 일본에 복을 가져다 준다는 언령신앙[9]도 언어신비주의의 일종이다. 이쪽은 이걸 철석같이 믿은 일본군 수뇌부들이 미군어학병들이 일본어로 된 통신 내용을 감청하고 해독하고 있다는 사실을 애써 무시하도록 만들어서, 일본제2차 세계 대전에서 패망하는 원인이 되었을 만큼, 훨씬 악질적인 사례다[10]. 언어가 사고보다 우위에 있어서 사고를 좌지우지한다는 가설(사피어-워프 가설)을 극단적으로 몰아붙이면 이런 쪽으로 흑화하게 된다. 링크

마법 주문도 이에 해당한다고 볼 수 있다.

6. 관련 문서



[1] 이거 오컬트 계에서 흥미를 갖고 접근하는 분야다. 바벨탑 이전의 인류가 말했던 언어라는 속성에 덧붙여, 신도 악마도 그 언어를 쓴다 라는 설정까지 붙여 네크로맨시 영역에서 다루고 있을 정도.[2] 예컨대 한국어에선 18세기까지 해가 저문 시간대를 "나죄"라고 불렀으나 이후에는 흔적도 안남고 "저녁"으로 대체되었다.[3] 단, 지구상의 모든 네안데르탈인들이 절멸 전까지 줄곧 서로 같은 언어를 썼다는 증거는 알 수 없고, 또한 소위 말하는 현생 인류의 통일된 원시 언어가 발생하기 전에 이미 네안데르탈인들이 절멸해버려 네안데르탈인 유전자가 섞인 현생 인류들도 모두 원시 언어를 쓰게 되었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는 없다.[Ruhlen,1994] Merritt Ruhlen, The Origin of Language, 1994[5] 북동캅카스어족과 북서캅카스어족을 한데 묶어서 지칭한 용어다.[6] 일본의 비교언어학자인 야스모토(安本美典)는 한국어는 일본어보다도 오히려 아이누어와 연관이 깊다고 주장한다.[7] 대한민국언어학자김방한의 연구 중에는 한국어를 니브흐어와 연관지은 사례가 있다.[8] 마르의 이론을 지지한 사람들에 의해 기존의 언어학자들은 직장을 잃기도 했다.[9] 이때의 言霊은 고토다마(ことだま)라고 읽는다.[10] 당시에 자신들의 통신 내용이 도청된다는 사실을 대본영 측에서도 보고받았으나, "일본어는 신의 언어이니 무식한 양키들이 해독할 수 있을 리가 없다!"고 우기고 그냥 씹었다(...). 참고로 당시 미군 내에서 일본어 전담 어학병들은 족히 수만 명에 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