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04-04 08:18:10

유정(원나라)


원사(元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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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8권 ~ 105권은 志에 해당. 106권 ~ 113권은 表에 해당. 원사 문서 참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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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121권의 속불태(速不台)와 122권의 설불태(雪不台)는 동일인물이므로 122권에서는 설불태를 생략한다.
(2) 131권의 완자도(完者都)와 133권의 완자도발도(完者都拔都)는 동일인물이므로 133권에서는 생략한다.
(3) 150권의 석말야선(石抹也先)과 152권의 석말아신(石抹阿辛)은 동일인물이므로 152권에서는 생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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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2. 생애
2.1. 남송에 투항2.2. 원에 투항하다2.3. 양양 전투2.4. 울분이 치밀어 죽다
3. 기타

1. 개요

劉整
(1212 ~ 1275)

자는 무중(武仲), 등주 양성[1] 출신으로 송말원초의 장수이자 원나라 수군의 창시자. 금나라 말기 남송으로 귀순하여 남송의 명신 조방 휘하에 속하였고, 이후에는 명장 맹공의 수하로 활약했다.

이후 1261년 여문덕으로부터 무시 및 모함을 받아 몽골에 투항하고, 쿠빌라이 칸에게 "남송을 멸망시키려면 양양을 선취하자"는 핵심 전략을 내세웠으며, 관직은 표기위장군, 행중서좌승에 이르렀고, 용호위장군, 중서우승으로 관직을 마쳤으며 남송 공략 와중에 분사한다. 시호는 무민.

2. 생애

2.1. 남송에 투항

그는 본래 금나라 출신의 한인 출신으로, 이후 남송에 투항하여 조방의 밑에서 경력을 시작했다. 침착하고 의연하며 지략이 있고, 말을 잘 탔다고 한다. 조방은 죽기 전 아들 조규에게 유정을 경계하라는 유언을 남겼으나, 조규는 듣지 않았다.

그는 이후 남송의 명장 맹공의 밑에서 금나라의 신양(信陽)을 공격했고, 그는 선봉으로 용맹한 12명을 이끌고 도참을 넘어 성을 올라 함락시켰다. 맹공은 크게 놀라워하여, 오대 후당 시기 명장 이존효와 같다는 것을 알았다. 이존효가 18기로 낙양을 함락한 적이 있었는데, 지금은 유정이 통솔하는 군이 더 적어 신양을 취하였다고 해서 새존효라고 불렀다.

2.2. 원에 투항하다

보우 2년(1254년) 이증백을 따라 촉에 입성해 장수로 선발돼 전공을 쌓았다. 경정 원년(1261년) 4월, 노주지부 겸 동천로안무부사로 승진하였다. 본래 북방 사람인 유정은 무공으로 승진을 했는데, 남쪽의 여러 장수들이 모두 그 밑에서 나와 여문덕[2]의 질시를 받았고, 유정이 계책을 내도 여문덕에게 이를 부정당하고, 공로가 있으면 여문덕이 숨기는 등 여문덕에게 무시당하였고, 여문덕은 유정과 갈등하던 유흥을 사천제치사에 앉혀 유정을 견제하게 했다.

여문덕은 유흥과 결탁하여 유정을 박해한다고 무고하려 했다. 소식을 접한 그는 놀란 가슴을 졸이며 임안에 사람을 보내 조정에 상고했으나, 듣지 않았다. 그는 상사벽[3]과 조세웅[4]가사도에 의해 죽는 것을 보고[5] 부득이하게 노주를 바치고 몽골에 투항하게 된다.

원 중통 2년(1261년) 6월, 유정은 몽골에 의해 기로행성(氣路行省) 겸 선무사(善務使)로 임명되었다. 이를 들은 송 이종은 발끈하여 유흥에게 유정을 토벌하도록 명했고, 유정은 자신의 재산을 병졸들에게 나누어줘 10여 회 격전 끝에 유흥을 물리쳤다. 또한 그는 병사를 주둔시키고 후하게 축적하는 투송대계를 제시했다.

앞서 유정은 문무장교를 소집해 항복을 선언했다. 이조 한 명이 강력히 반대하여 그 자리에서 죽임을 당한다. 중경에서 곡물을 징발하기 위해 신비성에 파견된 관리도 죽였다. 그리고 문채가 좋은 허표손에게 사람을 보내 항복문고를 작성하게 했으나 허표손은 단호히 거절한다.
손목은 부러질 수 있지만 붓은 쓸 수 없습니다.
이에 허표손의 일가가 모두 죽는다.

송 이종은 유정이 몽골에 투항했다는 말을 듣고 크게 화를 내었다.
노남의 변은 시급히 조치를 취해야 할 것이오.
송계삼조정요

남송 왕조의 명령에 따라 사천제치사 유흥이 이끄는 군대는 장강 상류인 가주(嘉州, 지금의 낙산)에서 성야(星夜)로 달려가 신비성(神臂城)을 에워싸고 밤낮으로 공격했다.

유정은 송군의 기세가 사나운 것을 보고, 성이 무너지고 자신의 목숨이 위태로워지자 자신의 재산을 병졸들에게 나누어 주어 사기를 북돋우려고 했다. 그러나 나라를 팔아 영화를 구하려는 유정은 인심을 얻지 못하고 초전에 패하여 한편으로는 위험을 무릅쓰고 다른 한편으로는 비밀리에 성도를 떠나 성도에 도움을 청했다. 유흥은 증원하러 온 몽골군을 발견하고 둔달에게 군사를 거느리고 막으라고 명령했다. 성 밖에서 전투가 치열해지자, 유정은 지원군이 도착했음을 알고 비밀 통로로 쳐들어와 안팎으로 호응하여 송군을 포위하고 죽였다. 시체가 온 땅에 널려 피가 흘러내렸다. 유흥은 겹겹이 포위를 뚫고 배 한 척을 빼앗아 중경으로 도망쳤다. 둔달은 말을 타고 거친 강물에 뛰어들어 말꼬리를 꽉 잡고 남쪽 해안까지 헤엄쳤다. 그 후 반군은 송군 병사의 시신을 강가에 아무렇게나 버리고 대충 묻어버려 무덤 모양의 돌을 만들었다. 현지인들은 이를 만인의 무덤이라고 부른다.

몽골군은 노주를 기지로 사천의 대부분을 점령했다. 사천 지역의 60개 이상의 현은 대부분 몽골의 군용에 속하였으며, 남송 왕조는 사천 지역에 20개 이상의 현을 보유하고 있으며, 소위 20개 이상의 현은 황폐하거나 한 주에 현 또는 한 현에 향을 보유하고 있었다.

유흥은 유정을 토벌하기 위해 군대를 보냈지만, 오히려 유정에게 패배한다. 패보가 전해지자 남송 조정은 여문덕을 급파하여 중경에서 군대를 이끌고 노주를 공격하여 퇴세를 구했다. 여문덕은 유흥이 전멸한 것을 교훈 삼아 다음과 같이 말한다.
수륙으로 병진하여, 비와 눈으로 뒤덮여 성을 압박하기 위해 성을 쌓거나, 강을 돌며 오향을 호위하거나, 기습적으로 곡식을 불태우거나, 예봉을 진격하여 원군을 토벌해야 한다.
유극장 '후촌선생대전집' 권53, '수복노주상유선제 양장군수조서'

송군의 여러 공격으로 몽골군은 많은 사상자를 내고 식량이 많지 않아 군대의 마음이 흩어졌다.유정은 성을 지키기 어렵다는 것을 알고, 어두운 밤을 틈타 심복 병사 몇 명을 데리고 성을 버리고 북쪽으로 도망쳤다. 1262년 정월, 여문덕은 노주를 수복하고 공로로 개봉의동삼사에 임명된다. 비록 노주는 성공적으로 수복되었지만, 유정의 투항은 남송에 가져온 손실은 헤아릴 수 없었다.

중통 3년(1262년)에 순례에 들어가 쿠빌라이를 만나 성도로·동천로에 머물렀으나 여전히 도원수를 겸하고 있던 중서성(中書省)의 동료가 유정의 공로를 질투하여 모함하려 하자 두려운 나머지 동천 분수를 청하였다. 7월에는 동천도원수로 자리를 옮겼다.

중통 4년(1263년) 5월 송의 고달[6]이 온건으로 성도에 접근하자 유정이 명을 받고 달려들었고, 송군은 이에 놀라 도주하여 동천을 공격하려다 패했다.

지원(至元) 3년(1266년) 6월, 소무대장군(昭武大將軍), 남경로(南京路) 선무사(宣務使)로 옮긴다.

지원(至元) 4년(1267년) 11월, 입조하여 남송(南宋)을 멸망시키려면 반드시 양양을 점령해야 한다고 진언하였다.

2.3. 양양 전투

지원(至元) 5년(1268년) 7월, 상장군(上將軍), 도원수(都元首)가 되었다. 9월, 도원수 아술과 함께 제군을 독촉하여 양양을 포위 공격하고, 5만의 병력을 거느리고, 연강 제군을 습격하여 송의 군민 8만을 사로잡는다.

지원 6년(1269년) 6월, 도통 당영견[7]을 사로잡고, 1270년까지 5천 척을 건조하고 수군 7만 명을 훈련시켰다.

지원(至元) 8년(1271년) 5월, 범문호가 장순(張順)·장귀(張貴)를 이끌고 배를 타고 양양에 의갑(衣甲)을 보내자, 그 틈을 타 송군을 요격하여 장순을 참살하였다. 9월에 참지하남행중서성사가 되었다.

지정(至正) 9년(1272년) 정월, 한군도원수(漢軍都元首)가 되었다. 수장 여문환은 성에 올라 적을 바라보았고, 유정은 말초대에 뛰어들어 여문환의 복노에 명중하였다. 3월에 번성 외곽을 무너뜨리고, 2천 급을 참수하고, 비장을 16세까지 사로잡는다. 9월, 성곽에서 원조를 구하는 장귀는 결국 죽었다. 11월에 수군 4만 호를 통솔하였다. 경호제치사[8] 이정지는 유정을 이간질하려 했으나 성공하지 못했다. 유정은 바얀에게 양양을 취하려면 번성을 먼저 취해야 한다고 건의했다.

정정 10년(1273년) 정월, 마침내 번성을 부수고 도살하였다. 여문환은 고립무원이 되어 성을 바쳐 투항하였다. 이후 남송의 대세는 기울었다.

2.4. 울분이 치밀어 죽다

유정은 수군을 이끌고 승승장구하여 장강 일선을 장악하고 회서추밀원사로 바뀌어 정양에 머물 것을 건의하였다.

지정 11년(1274년)에는 표기위장군, 행중서좌승(行中書左僧)으로 올라 하귀가 이끄는 수군을 대인주(大人洲)에서 대패시켰다.

지정 12년(1275년) 정월, 유정은 군사를 이끌고 회남으로 출격하여 중로 주력의 공격을 동익으로부터 엄호하였다. 유정은 승승장구하며 중앙의 전선과 격돌하려다 바얀에게 가로막힌다. 나중에 바얀이 강을 건너 악주에 들어왔다는 승전보를 듣고, 그날 밤 안휘 무위성 아래에서 분사했다.

3. 기타

유정이 금나라에서 남송으로 투항하였을 때, 조방은 유정을 경계했다.
유정은 재기가 있으니, 너희 대에 쓸 수 없을 것이다. 반드시 죽여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우환이 될 것이다.

후대의 사학자들은 송원전쟁 후기의 핵심 결정자는 바얀이 아니라 항장 유정이라고 주장한다. 대표적으로 송사 연구 전문가인 왕증유는 유정이 몽송전쟁의 양상을 변화시킨 핵심 인물이라고 하였다.
후기 몽송전쟁의 핵심 결정인물은 바얀이 아니라 유정이다. 바로 유정이 원나라로 하여금 중대한 전략을 조정하여 강남을 공략하였으며, 150여 년간 유지해온 남송도 결국 원나라의 전략변화로 멸망하였다.

[1] 오늘날의 허난성 덩저우 시[2] 남송의 명장이었으나 가사도에게 결탁했고 가사도는 고달, 상사벽, 조세웅 등 변방의 장수들을 배척했다.[3] 진사 출신의 남송 무장으로, 우량카다이의 군대를 담주(호남성 장사시)에서 악전고투 끝에 막아낸다.[4] 조세웅은 부릉에서 다리를 끊고 후퇴하는 몽골군을 추격해 많은 전과를 올렸다.[5] 가사도가 실행한 타산법으로 인해 많은 장수들이 처벌을 받았다.[6] 송의 명장 중 하나이나 나중에 원에 투항한다.[7] 이후 전황이 불리해진 양양에서 여문환에게 항복을 권하는 그 당영견 맞다.[8] 양양 지역의 방어를 통솔하는 사령관 직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