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서(宋書)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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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본명이 저유지(褚裕之)로 유유의 휘를 범하여 자인 숙도(叔度)로 표기되었다.
(3) 본명이 장유(張裕)로 유유의 휘를 범하여 자인 무도(茂度)로 표기되었다.
(4) 본명이 왕유지(王裕之)로 유유의 휘를 범하여 자인 경홍(敬弘)으로 표기되었다.
(5) 본명이 왕욱(王彧)으로 유욱의 휘를 범하여 자인 경문(景文)으로 표기되었다.||<tablealign=center><tablebordercolor=#3f51ba><tablebgcolor=#3f51ba> ||
<colbgcolor=#3f51ba><colcolor=#fff> 殷琰 은염 | |
성 | 은(殷) |
이름 | 염(琰) |
자 | 경민(敬珉) |
출신 | 진군(陳郡) 장평현(長平縣) |
생몰 | 415년 ~ 473년 |
부친 | 은도란(殷道鸞)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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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유송의 관료로 자는 경민(敬珉)이다. 진군 장평현 출신.2. 생애
415년에 은도란의 아들로 태어났다. 은도란은 우위장군 형양왕 유의계의 장사를 지냈다.어린 시절에 유의륭에게 알려졌고 왕욱과 비슷한 대우를 받았다. 처음에 정북장군 강하왕 유의공의 행참군, 후장군 시흥왕 유준의 주부가 되었고 파양군과 진희군의 태수를 역임했으며, 예주 치중종사사(治中從事史), 여릉군 내사를 지냈다. 장질(臧質)이 배반하자, 은염은 군을 버리고 북환(北皖)으로 달아났으며, 진퇴하여 보전하고자 수도인 건강으로 돌아가지 않았다. 장질의 난이 평정된 뒤, 죄를 받아 상방사에 갇혔으나 사면되었다.
이후 해릉왕국(海陵王國)의 낭중령(郎中令)으로 제수되었으나 부임하지 않았다. 임해왕 유자욱이 관군장군, 오흥군 태수로 전출되면서 은염을 녹사참군으로 삼고 군의 사무를 은염에게 맡겼다. 은염은 뒤에 예주 별가, 태재 호조속, 단양군승, 상서좌승, 소부(少府), 관군장군 심양왕 유자방의 사마를 역임했으며, 남예주의 사무를 주관했다가 유자방이 우장군으로 전임되자 다시 사마를 맡았고, 다시 좌장군 파릉왕 유휴약의 사마가 되었다.
465년, 황문시랑으로 제수되고 우장군 산양왕 유휴우의 장사, 남량군 태수로 전출되었다. 유휴우가 입조할 때 은염은 주의 사무를 대행했다. 같은 해에 상동왕 유욱이 유자욱을 폐위하고 제위에 오르니 이가 제6대 황제인 명제였다.
명제가 유휴우를 형주 자사로 임명하고 이부랑 장대(張岱)를 예주 자사로 삼으려고 했는데, 때마침 진안왕 유자훈이 반란을 일으켰다. 이에 명제는 은염을 독예사2주남예주양군제군사(督豫司二州南豫州之梁郡諸軍事), 건무장군, 예주 자사로 삼고 서여음군 태수 방도륭(龐道隆)을 은염의 장사로 삼고 전중장군(殿中將軍) 유순(劉順)을 사마로 삼았다. 이때 유순은 은염에게 거병하여 유자훈에게 동조할 것을 권유했다. 은염은 집안이 대대로 건강에 살았기에 조정을 지키려고 했지만, 두숙보(杜叔寶), 황보도열(皇甫道烈), 황보도열의 사촌동생인 황보경도(皇甫景度), 방천생(龐天生), 하후계자(夏侯季子)는 오히려 유자훈에게 동조해야 한다고 권유했다. 은염은 자신이 거느리는 병사들이 없었고 문하생도 얼마 되지 않아서 자립할 방도가 없었기에 두숙보 등의 제약을 받았다. 조정에서 용종복야 유윤(柳倫)을 파견하여 군대를 거느려 은염을 돕게 했고 표기대장군 산양왕 유휴우 또한 중병참군 정원(鄭瑗)을 파견하여 은염에게 조정으로 돌아오도록 설득하였다. 결국 은염은 별 수 없이 두숙보에게 합류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