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서(宋書)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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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본명이 저유지(褚裕之)로 유유의 휘를 범하여 자인 숙도(叔度)로 표기되었다.
(3) 본명이 장유(張裕)로 유유의 휘를 범하여 자인 무도(茂度)로 표기되었다.
(4) 본명이 왕유지(王裕之)로 유유의 휘를 범하여 자인 경홍(敬弘)으로 표기되었다.
(5) 본명이 왕욱(王彧)으로 유욱의 휘를 범하여 자인 경문(景文)으로 표기되었다.||<tablealign=center><tablebordercolor=#3f51ba><tablebgcolor=#3f51ba>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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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800080><colcolor=#fff> 劉敬宣 유경선 | |
작호 | 무강현남(武岡縣男) |
성 | 유(劉) |
이름 | 경선(敬宣) |
자 | 만수(萬壽) |
생몰 | 371년 ~ 415년 |
출신 | 팽성군(彭城郡) |
부친 | 유뢰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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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동진의 관료로 자는 만수(萬壽)이며, 유뢰지의 아들이다.2. 생애
2.1. 초기 생애
유뢰지의 아들로 371년에 태어났다. 유경선은 8살에 어머니를 잃고 밤낮으로 슬퍼하여 친척들이 유경선을 기이하게 여겼다. 보국장군 환서(桓序)가 무호(蕪湖)에 진수할 때 유뢰지는 환서의 참군사로 있었는데, 유경선은 사람들이 욕불을 하는 것을 보고 머리 위에 있는 금거울을 벗어서 어머니를 위해 욕불을 하다가 슬픔을 감추지 못했다. 환서는 유뢰지에게 유경선은 이미 집안의 효자가 되었으니 틀림없이 나라의 충신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유경선은 이후 전장군 왕공과 정로장군 사마원현 밑에서 참군을 역임했다.
2.2. 왕공의 거병
398년, 왕공이 사마상지 일파의 토벌을 명분으로 삼아 다시 거병했다. 당시 유뢰지는 왕공의 사마, 보국장군, 진릉군 태수로 있었으나 왕공의 업신여김을 받아 왕공에게 불만이 가득했다. 왕공이 거병할 때 유뢰지는 왕공의 선봉이 되었는데, 회계왕 사마도자가 유뢰지에게 서신을 보내 왕공을 배반하라고 하였다. 유뢰지가 유경선을 불러 의견을 물을 때 유경선은 다음과 같이 대답했다.조정이 비록 주나라 성왕과 강왕 때의 융성함은 없고 한나라 환제와 영제 때의 어지러움은 없으나, 왕공은 어지러운 틈을 타서 이득을 취하고 군대를 의지하며 황실을 능멸하려고 합니다. 아버님은 왕공과 골육지친도 아니고 군신의 관계도 아니며 비록 함께 일한 것은 잠시 뿐이지만 지향하는 바가 같지 않습니다. 오늘 왕공을 토벌하는데 정에 무슨 어려움이 있겠습니까?
유경선의 말을 받아들인 유뢰지는 결국 죽리(竹里)에 이르러 왕공의 수하 장수인 안연(顔延)을 참수한 뒤 유경선에게는 고아지 등을 이끌고 왕공을 습격하도록 명했다. 유경선은 말을 달려 왕공의 군대를 궤멸시켰다. 사마원현이 후장군으로 진호되자, 유경선은 자의참군(諮議參軍)이 되었고 영삭장군(寧朔將軍)이 더해졌다.
2.3. 손은의 난
399년, 손은이 반란을 일으켰다. 유경선은 유뢰지를 따라 손은의 난 진압에 참가했으며, 기병을 이끌고 손은의 후방을 급습하여 손은은 협공을 두려워하여 결국 달아났다. 또한 회계군을 평정했으며, 임해군 태수가 더해지고 종사중랑으로 옮겼다.401년, 손은이 다시 협구(浹口)로 진군하여 구장(句章)에 진수한 유유를 공격했으나 여러 차례 유유를 이기지 못하고 있었다. 유경선은 이에 원군을 자청하고 유유를 도와 손은을 물리쳤다. 유경선은 나라의 혼란을 염려한 가운데 여러 차례 손은을 격파한 유유와 친분을 맺기 시작했다.
2.4. 망명, 그리고 다시 귀순
402년, 사마원현이 표기장군이 되자 유경선은 표기부의 속관으로 전임되었다. 그러나 사마원현이 교만하고 방탕해지는 모습을 본 유경선은 연회에서 술도 마시지 않아서 사마원현은 유경선에게 불만을 품었다. 뒤이어 유경선은 보국장군이 되었다.환현을 토벌할 때 사마원현은 정토대도독으로 임명되었으나 날마다 술에 빠졌다. 유뢰지는 사마원현을 만나려고 했지만 사마원현을 만날 수 없었다. 한편 환현이 율주(溧洲)에 도착하여 유뢰지에게 서신을 보내자, 유뢰지는 마음이 흔들려 사마원현을 배신하려고 했다. 유경선은 동탁의 사건을 거론하며 반대했으나 유뢰지는 받아들이지 않았고 유경선을 환현에게 인질로 보냈다. 하지만 환현은 몰래 유뢰지를 제거하려고 했고 유경선을 안심시키기 위해 잔치를 베풀고 유경선과 함께 서화를 감상했으며, 이때 유경선을 자의참군으로 삼았다.
사마도자 부자가 제거된 뒤 유뢰지는 정동장군, 회계군 태수로 전출되었는데, 이것이 환현이 자신의 병권을 빼앗기 위한 음모임을 알고 한탄했다. 유경선은 유뢰지에게 환현을 쳐야 한다고 말했으나, 유뢰지는 오히려 망설였다가 다음날을 기일로 잡아 환현을 치려고 했다. 하지만 저녁이 되어도 유경선이 돌아오지 않자, 유뢰지는 광릉으로 달아나 환현을 제거하고자 거병하려고 했지만 유뢰지는 벌써 3번이나 배신을 했기에 장수들의 신망이 없었다. 유경선은 수도인 건강으로 돌아왔지만, 유뢰지는 이를 알지 못했고 유경선이 환현에게 사로잡혔을 것이라 판단하여 결국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아버지의 죽음을 안 유경선은 사마휴지, 고아지와 합류하고 장강을 건너 후진의 요흥에게 구원을 요청했다. 요흥은 관동에서 1천의 군대를 모아 유경선에게 주었고 유경선은 다시 팽성으로 가서 군대를 모았다. 환현이 손무종을 파견하여 기주 자사 유궤(劉軌)를 공격하자, 유궤는 유경선과 고아지 등에게 산양(山陽)으로 가서 손무종을 막도록 명했으나, 손무종을 이기지 못했다. 창평간(昌平澗)에서 다시 전투를 벌였으나 패배하여 이번에는 남연의 모용덕에게 망명한다.
404년, 유경선은 남연에서 청주의 최씨, 봉씨, 선비의 호족과 연합하여 모용덕에게 반기를 들고 사마휴지를 추대하려고 했다. 고아지는 모용덕의 사공이었던 유궤를 끌어들이려고 했으나, 유경선은 유궤를 끌어들이는 것은 좋지 않다고 간언했다. 고아지는 유경선의 말을 받아들이지 않고 유궤에게 계획을 이야기했지만 과연 유궤는 따르지 않았고 결국 고아지와 유궤가 죽었다. 한편 동진에서는 유유가 환현을 몰아내고 유경선에게 서신을 보냈다. 유경선은 유유의 서신에 호응하여 동진으로 돌아와 보국장군, 진릉군 태수로 임명되고 아버지의 작위인 무강현남(武岡縣男)을 습봉했다.
유경선의 귀순 이후 얼마 지나지 않아 환흠이 저족의 양추(楊秋)와 합세하여 역양을 침공한다. 이때 유경선은 건위장군 제갈장민과 함께 출병하여 환흠을 물리치고 연고(練固)에서 양추를 참수하여 건위장군, 강주 자사로 승진하였다. 유경선은 강주에 부임하여 군량과 선박을 비축하였다. 환현의 조카인 환량이 강주 자사를 자칭하며 예장을 침공하고 환량이 다시 부굉을 파견하여 여릉을 침공하자, 유경선은 이들을 모두 토벌해 격파하였다.
유의는 유경선의 참군을 지낸 적이 있었는데, 어떤 사람이 유의를 호걸이라고 칭찬하자, 유경선은 다음과 같이 말했다.
무릇 비상한 재주라면 따로 배치해야 하는데 왜 유의를 호걸로 칭할 수 있소? 유의의 성품은 겉으로는 너그럽지만 속으로는 시기하며, 스스로 자만하여 거만하기 때문에 만약 하루아침에 기회를 얻으면 역시 윗사람을 능멸하여 재앙을 입을 것이오.
유의는 유경선의 발언을 매우 원망하여 이때부터 유경선을 매우 미워했다. 유경선은 결국 불안해져서 강주자사의 직책을 사양한다는 표문을 조정에 올렸고 관군장군(冠軍將軍), 선성군 내사, 양성군 태수가 되었다. 407년, 유유는 유경선에게 공을 세우게 하고자 가절을 내리고 5천의 군사를 주어 초종을 토벌하도록 명했다. 국자박사(國子博士) 주지(周祗)는 유경선의 출병을 반대하는 서신을 유유에게 전했으나 유유가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유경선은 감정촉제군사(監征蜀諸軍事)으로 임명되어 삼협으로 입성한 뒤 진무장군 온조(溫祚)에게 외수(外水)에서 진군하도록 명했고, 자신은 익주 자사 포루(鮑陋), 보국장군 문처무(文處茂), 용양장군 시연조(時延祖)를 이끌고 점강(墊江)을 따라 진군하였다. 유경선은 성도에서 500리 정도 떨어진 황호(黃虎)에 도착해서 초도복(譙道福)과 60여 일 대치하며 10여 번의 크고 작은 싸움을 벌였지만 초도복이 굳게 지키며 감히 나오지 않으니 유경선은 진군하지 못했다. 게다가 군량이 떨어지고 전염병까지 퍼지면서 죽은 사람이 태반이나 되었기에 결국 군대를 이끌고 귀환했다. 유경선은 탄핵을 받아 면직되었고 봉호가 3분의 1로 깎였다.
409년, 유유가 남연을 정벌할 때 유경선은 자의참군(諮議參軍)으로 제수되고 관군장군(冠軍將軍)이 더해졌다. 임구에서 모용초가 출병하자, 유경선은 연주 자사 유번(劉藩) 등과 함께 분투하여 모용초를 대파하였다. 용양장군 맹용부가 전사하자, 유경선은 맹용부의 군대를 이끌고 광고(廣固)를 포위하며 여러 차례 공성책을 바쳤다. 그리고 모용초을 사로잡을 때 모용초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단지 유경선에게 자신의 어머니를 부탁하기만 했다.
유유가 남연을 정벌한 틈을 타 노순이 반란을 일으키고 수도 건강으로 침공하자, 유경선은 선비의 호반돌기(虎班突騎)를 거느려 노순을 방어하였다. 뒤에 유경선은 사지절(使持節), 도독마두회서제군군사(都督馬頭淮西諸軍郡事), 진만호군(鎭蠻護軍), 회서안풍2군태수, 양국내사로 옮겼다. 그리고 노순이 달아나자, 유경선은 노순을 물리치면서 좌위장군으로 전임되고 산기상시가 더해졌다.
415년, 우위장군으로 임명되었다. 이때 유경선의 참군을 지냈던 사마도사(司馬道賜)는 동진 종실의 먼 친족이었는데, 유유가 사마휴지를 토벌할 때 벽려도수(辟閭道秀), 왕맹자(王猛子) 등과 몰래 연합하여 모반을 꾀했다. 사마도사는 스스로 제왕(齊王)을 칭하며 벽려도수를 청주자사로 삼고 광고를 점령하며 거병하여 사마휴지에게 호응하였다. 뒤에 유경선은 벽려도수를 불러 공무를 의논하고 다른 사람들을 다 물리게 했는데, 왕맹자는 뒤에서 주저하다가 유경선의 호신용 칼을 뽑아 유경선을 살해하였다. 그리고 곧바로 유경선의 부하들이 나와서 사마도사와 왕맹자 등을 토벌하고 모두 참수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