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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 | 음성직 (陰盛稷, Eum Sung-jick) |
출생 | 1947년 6월 28일 ([age(1947-06-28)]세) |
경기도 이천군[1] 대월면 초지리 새실마을 443번지 | |
본관 | 죽산 음씨(竹山 陰氏) |
학력 | 성동고등학교 (졸업) 연세대학교 상경대학 (응용통계학 / 학사) 연세대학교 대학원 (경제학 / 석사[2]) 노스웨스턴 대학교 (토목공학[3] / 박사) |
가족 | 남동생 음성민 |
약력 | 건국대학교 경영학과 교수 한국과학기술연구원 교통경제연구실 연구원 국토개발연구원 교통연구실 선임연구위원 국토개발연구원 기획조정실장 중앙일보 편집국 사회부 전문위원 부국장 중앙일보 편집국 사회부 전문위원 국장대우 중앙일보 편집국 수석전문위원 겸 논설위원 대한교통학회 부회장 서울특별시청 교통관리실장 서울특별시청 교통정책보좌관 서울특별시도시철도공사 사장 세계대중교통연맹 아시아/태평양 지역 의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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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대한민국의 전 교수, 전 언론인, 전 공무원, 전 공기업인.2. 생애
1947년 6월 28일 경기도 이천군(현 이천시) 대월면 초지리 새실마을 443번지에서 태어났다.[4] 충청남도 천안시에서 태어났다는 설도 있으나[5] 정확하지 않다. 대월초등학교 졸업 후 서울특별시로 유학하였고, 성동고등학교 졸업 후 연세대학교 상경대학 응용통계학과에 진학했다. 베트남 전쟁 때 통역장교로 참전하여 병역을 이행했으며, 1974년 연세대학교를 졸업했다.1974년부터 1979년까지 한국과학기술연구원 교통경제연구실 연구원으로 근무하였다. 1979년 연세대학교 대학원 응용통계학과에서 경제학 석사 학위를 취득했다. 이후 건국대학교 상경대학 경영학과에서 전임강사로 재직하던 중 같은 해 미국 노스웨스턴 대학교로 유학하여 연구 및 교육조교로 근무했고, 1982년 노스웨스턴 대학교 대학원에서 도시·교통계획 전공으로 토목공학 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귀국 후 1982년부터 1994년까지 국토개발연구원 교통연구실 수석연구원 및 선임연구위원, 기획조정실장을 거쳐, 1994년부터 2002년까지 중앙일보 편집국에서 교통 및 사회간접자본 분야 수석전문위원 겸 논설위원으로 다수의 기사와 칼럼을 작성했다. 이 시절 글들이 개념찬 것들이 많다.
2002년 7월 20일부터 2004년 8월 12일까지 서울특별시청에서 교통관리실장 및 교통정책보좌관을 맡으면서 이명박 당시 민선 3기 서울특별시장의 대중교통 개편 실무를 담당했다. 2005년 9월 2일 제타룡 사장의 후임으로 서울특별시도시철도공사 사장에 임명되어 2011년 3월 2일까지 사장직을 맡았다.[6]
3. 비판
재임 기간중 워낙 화려한 삽질과 망발로 인해 유명한데 당장 철도 동호인들 사이에서 까이고 까여서 가루가 된 분위기라서(...). 그의 명성이 어느 정도냐하면, 철도 동호인에게는 이름보다도 음사장, 음막장, 음마에, 음짜르트, 음렐루야, 음라대왕, 절대신 음마, 음카츄 등등 수많은 별명으로 치를 떨고 있다고 한다. 이름 때문에 뭔가 음성적(陰性的)이라고 까기도 한다. 실제로 서울특별시도시철도공사 자체제작 전동차 시승식에서 오세훈 시장이 음사장에게 열차 안 터치스크린(행복터치)에 이름을 검색해 보라고 하자 "자기 이름을 검색하면 욕만 나온다"며 거부했다고...이런데도 불구하고 서울특별시도시철도공사 사장에 "연임"되었으며, 세계대중교통연맹(UITP)의 아시아/태평양 지역 의장으로 "연임"했다.# 대체 뭘 잘했길래 연임한 것인지 싶겠지만 사실 이용객의 편의를 줄이고 긴축운영을 했으니 높으신 분들 입장에서는 당연히 적자가 줄었다고 마음에 들어할 수 밖에 없을 수도 있다.
서울특별시도시철도공사 노동조합에서 제작한 영상이며, 실제로도 현 서울교통공사의 5~8호선쪽 직원들에게 음성직 얘기를 꺼내면 벌컥 화내는 케이스가 상당할 정도로 음성직 시절은 서울도시철도공사 임직원들에게 있어 흑역사나 다름이 없다.
이렇듯 음사장이 철도 동호인들에게 대차게 까이는 이유는, 서울특별시도시철도공사의 사장이 되면서 본격적으로 저지른 짓들 때문. 사장에 취임한 그는 상상을 초월하는 구두쇠 영감이었던 것이다.
지하철역 노선도에 스티커질을 해서 노선도를 걸레로 만들었고, 심지어는 서울 지하철 9호선이 새로 생겼음에도 불구하고 역 대합실 내의 수도권 전철 전체 노선도를 새로 바꾸지 않고 스티커질로 땜빵했다. 그래도 차내 노선도는 2009년 전후로 새로 바뀐 모양. 땜질의 전설이라 한다면 국철 구간이 수도권 전철 중앙선으로 바뀌면서 옥색 노선색을 취할 때 노선색마저도 땜질을 한 적이 있었다(...).
하지만 뭐니뭐니해도 음사장의 정점은 바로 전기요금 절약 정책. 전기요금을 절약한답시고 모든 무빙워크나 일부 조명을 꺼 버렸고. 평일 비첨두시간, 주말/공휴일 열차도 감편시켜버렸다. ATO가 타행운전을 지원하지 않아서 전기를 많이 쓴다고 수동운전을 늘린 건 덤. 이 때 철도 동호인들 사이에서는 도시철도공사가 운영하는 역이 던전으로 통했다. 그리고 스크린도어 공사도 질질 끌었다. 이로 인해 프라다도어라는 신조어가 생기기도 하였다.
게다가 2009년 말 남은 예산을 가지고 모바일 오피스를 만들어보겠다는 이유로 전 직원에게 쇼옴니아폰을 공짜로 뿌리기도 했다. 이건 그 때까지 음사장의 행보와 정 반대였다. 이 이후로 스크린도어, 무빙워크, 에스컬레이터 등을 다시 가동하기 시작했으니까. 이게 문제인 것이, 이 놈의 옴니아가 회사 비품으로 등록되어 있기 때문에 맘대로 없앨 수도 없고, 그렇다고 회사에서 요금까지 내주는 것은 또 아니라 아이폰 3GS나 갤럭시 S 같은 신종 스마트폰들이 줄줄이 나오는 와중에도 상당수의 도철 직원들은 옴니아를 붙들고 있을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유심만 뽑아서 다른 폰에 꽂아 쓰거나 옴니아를 정지시키고 다른 폰을 개통하면 되긴 하는데 어느 쪽이건 그냥 자기 폰 사는 것보단 손해다. 물론 의도야 좋았겠지만 하필 이를 주도한게 이전부터 욕을 배부르게 먹던 음성직이었고 뿌린게 옴니아였으니 더 까인 셈.
그러다 2010년에는 오세훈의 서울시 디자인 정책에 굴복, 결국 어른의 사정으로 인해 스크린도어/무빙워크/에스컬레이터/조명을 다시 풀가동하고 말었다. 그런데 요즘은 슬금슬금 조명을 끄기 시작하고 무빙워크/에스컬레이터를 가동하지 않는 경우가 늘어나고 있다. 특히 5, 7호선보다 수요가 적은 6, 8호선.
그럼에도 불구하고 서울특별시도시철도공사의 사장 '연임'은 물론, 세계대중교통연맹 아시아/태평양지역 의장을 '연임'하는 것으로 봐서 능력은 있는 듯 하다. 그런데 자기 회사 직원들에게조차 꼴통소리 들으며 씹히고 있다.
그나마 2010년 3월 이후로는 앞서 언급된 것 중에 가장 큰 문제인 역내 절전 정책이 사실상 폐기되면서 어느 정도 정상화되었고, 2009년 말에는 8호선 스크린도어 건설 및 시스템 구축을 직접 서울도시철도공사의 여러 부서가 참여하면서 안정화시키는 등의 좋은 정책으로 덜 까이게 되었다. 하지만 야심차게 개발한 전동차가 결국 흑역사화되고 냉방은 여전히 절전 정책에서 못 벗어나면서 완전히 이미지가 좋아지는 건 다 틀렸다.
게다가 2010년 8월에는 그 동안 해 왔던 업적들에 대한 특혜 의혹이 제기되었다. 문화공간 조성, 자체차량 제작 등. 이런 특혜 때문에 서울특별시 의회에서는 자체 차량 제작 금지 조례까지 추진 중이다. 참여연대가 고발함으로써 음사장은 다시 한 번 까임의 중심에 섰다. 최근 고발이 각하되었지만 2011년 3월 2일 자진 사퇴하였다.
4. 여담
- 철도 동호인에게 음사장 다음으로 까였던 사람은 전 코레일 사장 정창영. 원래 감사원 출신으로 코레일 사장으로 부임한 후 "현 정부의 정책에 반하는 행동은 잘못" 이라며 KTX 수서평택선 민영화에 찬성하고 나서는 바람에 철도 동호인들에게 평생까임권 획득하는 줄 알았는데.... 철도 동호인을 위한 행사도 자주 연 데다가 동호인과의 상생을 위해 노력했다. 결정적으로 철도 민영화를 필사적으로 막다가 사장에서 해임되다시피 나갔으니 그야말로 인식 급변화의 주된 예. 자세한 것은 정창영 문서 참조. 오히려 정창영보다는 정창영의 전임 사장이자 경찰청장 출신인 허준영 전 코레일 사장이 음성직처럼 철도동호인에게 상당히 많이 까였다. 왜냐하면 허준영 전 사장은 용산국제업무지구 사업이 무산되면서 코레일의 적자를 유발했기 때문이다.
- 철도 갤러리에는 토마스와 친구들과의 합성 짤방이 있다. 싱크로율이 대단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