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차 세계 대전의 일본군 군함 | |||||
{{{#!wiki style="margin:-0px -10px -5px" {{{#!folding [ 펼치기 · 접기 ] {{{#!wiki style="margin:-5px -1px -11px" | 전투함 | ||||
구축함 (DD) | 미네카제급, 카미카제급, 무츠키급, 특1형 후부키급, 특2형 아야나미급, 특3형 아카츠키급, 하츠하루급, 시라츠유급, 아사시오급, 카게로급, 유구모급, 시마카제급, 아키즈키급, 마츠급, 타치바나급 | ||||
사쿠라급, 모모급, 나라급, 모미급, 와카타케급, 제101호 초계정C, 제102호 초계정C | |||||
잠수함 (SS) | L급, 로 100형, 71호, 해중형(로-34), 해대 1형, 해대 2형, 해대 3형, 해대 4형 해대 5형, 해대 6형, 해대 7형, 순잠 1형, 순잠 2형, 순잠 3형, 순잠 갑형, 순잠 을형, 순잠 병형, 순잠 정형, 센토쿠급, 키라이센급, 갑표적, 삼식잠항수송정육 로500, 유보트 Type XC | ||||
경순양함 (CL) | 텐류급, 쿠마급, 나가라급, 센다이급, 유바리, 아가노급, 오요도, | ||||
장갑순양함 | 이즈모급R, 카스가급 | ||||
중순양함 (CA) | 후루타카급, 아오바급, 묘코급, 타카오급, 모가미급, 토네급, | ||||
순양전함 (CC) | 공고급, | ||||
전함 (BB) | 카와치급, 후소급, 이세급, 나가토급, | ||||
경 / 개조 / 호위항공모함 (CVL/CVE) | 호쇼, 쇼호급(쇼호-즈이호), 류호, 히요급(히요-준요), 치토세급(치토세-치요다), 다이요급(다이요-운요-추요-신요-카이요), 시마네마루급-야마시오마루 | ||||
정규항공모함 (CV) | 아카기, 카가, 류조, 소류, 히류, 쇼카쿠급, 운류급, | ||||
수상기모함 (AV) | 노토로, 카모이, 아키츠시마, 미즈호급, 닛신 | ||||
강습상륙함 | 아키츠마루급, 쿠마노마루육 | ||||
연습함 / 포함 (CL/FF) | 카토리급, 하시다테급, 아타카급, 사가급, 아타다C | ||||
어뢰정 | 치도리급, 오오토리급, 갑형 어뢰정, 을형 어뢰정 | ||||
해방함 (DE) | 시무슈형, 에토로후형, 미쿠라형, 히부리형, 우쿠루형, 제1호형, 제2호형 | ||||
특공 병기 | 신요, 마루레육, 가이텐, 카이류, 후쿠류 | ||||
군수지원함 | |||||
공작함 | 아카시, 아사히 | ||||
급유/급탄/급병함 | 시레토코급, 온도급, 카자하야, 하야스이, | ||||
급양함 | 마미야, 이라코, 노사키 | ||||
상륙함정 | 신슈마루, 대발동정, 제101호형 수송함 | ||||
잠수모함 | 진게이급, 타이게이 | ||||
잡역선 | 아스카C, 아타다C | ||||
※ ※ 윗첨자육: 일본 제국 육군 소속 함정 ※ 윗첨자C: 노획 함선 ※ 윗첨자R: 재취역한 함선 ※ 윗첨자A: 전후 완공 | }}} {{{#!wiki style="margin-top: -30px; margin-bottom: -10px; letter-spacing: -0.9px; font-size: 0.82em" | ※둘러보기 : 일본군의 운용장비 | 해상병기 | }}} }}}}}} |
2차 세계대전 당시의 센토쿠급. 2번함인 I-401이다 |
1. 개요
미해군에 항복하는 I-400
태평양 전쟁 당시 일본 해군이 보유했던 군 병기사(兵器史)의 최후의 제식 운용 잠수 항모.[1][2] 계획은 총 5척을 계획 했으나 5번함인 I-405는 건조되지 않았고, 초도함 I-400을 시작으로 I-401, I-402, 구레에서 건조중이던 I-404 3척의 자매함을 포함하여 총 4척이 건조 및 진수되었고 1번함 I-400과 2번함 I-401은 실전에 직접 투입되었지만 전쟁 말기였기에 별다른 전공은 세우지 못하고 미군에게 나포되어 처분되었다. 3번함 I-402는 1944년 9월 진수되었으나 출격조차 하지 못하고 유조잠수함으로 개조후 1945년 7월 취역 구레 공습때 손상을 입은 후 정비중인 상태로 방치 전 후 미군에 넘어가 자매함과 마찬가지로 수몰 처분 당한다. 4번함 I-404은 아예 구레 군항에서 건조 중이던 상태로 구레 군항 공습에 휘말려 진수조차 못한 채로 불타버렸다.
정식으로 부여받은 제식명칭은 이호 제400급 잠수함(伊號第四百型潜水艦). 통칭 이400(伊400, I-400)이라 불리었고 대외적인 명칭이자 별명인 센토쿠급은 잠특급(潜特型)에서 따온 별명이었다.
2. 제원
<colbgcolor=#BDBDBD> 센토쿠급 잠수항모 제원 | |
길이 | 122m |
높이 | 12m |
폭 | 8m |
출력 | 1,680 kW(2,250 hp) 디젤 엔진 4기. (부상시 사용) 1,600 kW(2,100 hp) 전기 모터 2기 (잠수시 사용) |
배수량 | 기준 3530롱톤/상비 5,223롱톤/수중 6,560롱톤[3] |
승무원 | 최소 144명, 최대 200명 |
최대 잠항수심 | 100 m |
최대 속도 | 수상 항행시 18.7 노트(34.6 km/h) 잠수 항해시 12 kn (22 km/h) |
최대 작전반경 | 14노트 유지시 37,500 마일 |
무장 | 어뢰 발사관 8문(잔탄 보유량 20발) 14 cm(???) 함포 1문 3연장 25 mm 대공포 3문 단장 25mm 대공포 1문 |
3. 제작 원인
본디 이 센토쿠급 잠수항모는 태평양 전쟁 당시의 일본의 열악하기 짝이 없는 사정에 영향을 받았다. 진주만 공습 문서에서 보여지듯, 당시의 일본은 미국을 기습하여 치명적인 타격을 입히고 전의를 상실케 함으로써 협상 테이블에서 유리한 위치에 서서 전쟁을 조기종결시키려고 하였다. 그러나 미국은 기습을 당해 전함 수 척을 격침당하고 태평양 최대의 전략 항구가 쑥대밭이 되는 등 뼈아픈 피해를 입었음에도 불구하고 침착하게 침몰한 전함들을 건져내 수복하고, 항구를 재정비하여 기능을 회복시키면서 복수심에 불타올라 추축국에게 선전포고를 선언하고 태평양 전쟁에 뛰어들었다. 그와 동시에 총력전 체제에 돌입해서 급속도로 인력과 물자를 증원하면서 미국의 전의는 꺾이기는커녕 오히려 분노를 원동력 삼아 맹렬하게 불타올랐고, 장기적인 입장에서 일본은 강대국 미국을 적으로 상대해야 한다는 엄청나게 불리한 위치에 서게 되었다.그렇기에 당시의 일본은 어떻게든 미국 본토를 공격하고 본토에 직접적인 타격을 입힘으로써 전황을 일본에 유리하게 바꿔와 전쟁을 빠르게 종결시켜야만 했으며, 그러기 위해서는 둘리틀 특공대마냥 미국 본토에 유의미한 타격을 주어 진주만 공습 이후로 쓸만한 배는 전부 침몰 혹은 보수중인 미국의 전투함들을 쪼개 태평양 연안 방어선으로 갈라놓고 함대결전에서 승리하는 것이 유일한 방법이었기에 이에 목숨을 걸었다.
다만 문제는 당시의 일본은 미국 본토를 효과적으로 공격할 수단이 전무했다. 전함-항공모함을 비롯한 통상적인 수상함대로는 진주만 공습 이후 엄청나게 경계도가 상승한 미국 해군의 방위망을 넘어서 미국의 영해까지 접근하기가 불가능에 가까웠기 때문이다. 외부에 대놓고 노출되는 수상함과는 달리 잠수함은 특유의 은밀성으로 미국 영해 근처까지 몰래 접근할 수 있었으나, 반대급부로 잠수함은 정작 대지를 타격할 수 있는 효과적인 무기가 없었다. 이때가 지금처럼 잠수함이 순항 미사일을 쏴서 대지 타격을 할 수 있었던 때도 아니고 기껏 해야 쥐꼬리만한 잠수함의 함포로 포격을 하든가, 정찰용 수상기 한 기를 띄워서 소이탄이나 떨구고 오는 것이 고작이었는데, 당연히 피해라고 할 만한 경미한 피해도 입히지 못하는 수준이었다.[4]
이러한 상황 와중, 야마모토 이소로쿠 제독은 정찰기 한 대 정도가 아니라, 진짜 제대로 된 폭격기를 여러 기 이상 탑재해서 미국 본토를 공격할 수 있는 잠수 항모 계획을 입안한다. 잠수함이니만큼 일반적인 항모와는 달리 미국 영해 근처까지 은밀하게 접근할 수 있었고, 잠수 항모는 잠수함과는 달리 지상을 타격할 수 있는 확실한 수단인 함재기가 있었다. 이렇듯 이론상으로는 정말 효율적인 계획이었는데...
4. 기술적 난제와 궁여지책
정작 실행시키기엔 여러가지 난관이 많았다. 잠수함과 항공모함이라는 서로 전혀 다른 개념을 하나로 합친다는 건 2차대전 당시 기술력으로도 어렵고 지금도 어렵다. 특히 구미 열강에 비해 기술력이 부족했던 일본으로서는 더더욱 골치 아픈 문제였다.- 현대에는 VTOL기들이 등장했기 때문에 기술적으로 불가능하지는 않지만 그만큼 항공기들도 대형화되어 잠수함까지 끝도 없이 커져야 겨우 수용이 된다. 만톤이 넘는 수상함도 운용이 제한되는 경우가 많은데 현재 잠수함들 중 가장 크다는 전략원잠들도 함재기를 무리 없이 운용할 만큼 여유롭지는 않다. 게다가 일단 출격하려면 비행갑판이 드러나야 할 것이므로 잠수함의 상부구조가 열리는 등의 구조가 되어야 할텐데 그 건조 및 운용 비용은 천문학적일 것이다. 그런데 현대에 와서도 힘든걸 그당시 기술력으로 구현하려고 했으니 제대로된 물건이 나올리가 없었다.
- 일반적인 수상함과 비교하여 잠수함과 항공모함 둘 다 각자 특유의 특성상 각각 잠수용 밸러스트 탱크와 압축 공기 저장시설, 항공기 수용, 정비용 격납시설이라는 부가적인 구조가 필요한데 이 둘이 각각의 역할에서 차지하고 있는 공간 비율이 상당히 높다. 함 전체 용적에서 못해도 두 자리수를 차지할 만큼 많은 공간을 차지하는데 심지어 특성도 서로 상극이다. 밸러스트 탱크는 잠수시 함 전체의 비중을 늘려 물과 동일한 비중을 갖게 만들어야 하는데 격납고는 원활한 적재와 운용을 위해서 내부가 공기로 텅텅 빈 공간이 커야 한다. 즉 격납고가 클 수록 밸러스트 탱크도 커져야 하고 그렇게 큰 밸러스트는 격납고 배치에 방해가 되는 악순환에 특징상 함의 무게중심 부근에 배치해야 되기까지 하는 그야말로 상극 중의 상극인 요소들이다.
4.1. 격납고의 배치
우선, 잠수함에 항공모함 노릇을 시키려면 당연히 함재기를 싣기 위한 격납고를 탑재해야 했는데, 물에 잠기는 잠수함의 하단이나 측면에 격납고를 탑재할 수는 없기에 부상시 수면 밖으로 나오는 잠수함의 상부에 격납고를 설치해야 부상 이후 출격이 가능했다. 그러나 잠수함의 상단에 격납고를 설치했을 경우, 당연하게도 격납고가 달려있는 상부가 더 무겁게 되기 때문에 상부에 탑재된 격납고의 무게중심 때문에 균형을 잃고 함이 뒤집혀 버리는(...) 치명적인 문제가 생겼다. 이런 문제가 발생하면? 잠수함은 그 즉시 수십명의 승조원을 태운 관이 되어 출항하자마자 바다에 가라앉아버린다.이 심각한 문제는 일본의 기술진이 죽어라 머리를 쥐어짠 끝에 어찌저찌 해결하는데, 바로 내압선체 2기를 병렬로 연결하는 방식이었다.[5] 내압선체가 1개뿐인 보통의 잠수함에 격납고를 설치한다면 상술한 전복 문제가 발생하지만, 선체 2기를 병렬로 연결하고 그 사이 상부에 격납고를 위치시키면 무게중심이 맞춰지게 되어 함이 뒤집히는 전복 문제가 발생하지 않게 된다는 것이었다. 이러한 구조 덕분에 전복 문제는 해결할 수 있게 되었으나, 겉으로 보이는 말끔한(?) 외형과는 달리 실질적으로는 작은 잠수함 두 척이 병렬로 연결된 쌍동선에 가까운 구조라서, 함에 기관실이 두 개나 있는 등(...)[6] 내부 구조적으로 상당히 난잡한 형태였지만 어쨌거나 본연의 임무만 충실히 수행할 수 있다면 크게 문제될 점도 없었다.
4.2. 함재기의 탑재 문제와 전용 함재기 M6A 세이란
격납고 문제를 일단 해결했으니, 이번에는 탑재할 함재기를 해결해야 할 차례였다. 항공기 출격을 위한 활주로와 격납고를 넣을 공간을 확보하기 위해서 센토쿠급은 122m라는 전장과 만재 6,000톤이 넘는 배수량[7] 등, 제2차 세계 대전에 투입된 잠수함들은 물론 현대의 재래식 잠수함들을 포함해도 가장 거대한 크기를 자랑했으나 이 길이에서도 활주로가 절반 이상을 차지하고 있던 탓에 이렇게 큰 덩치를 지니고도 센토쿠급은 충분한 격납고 크기를 확보하지 못했다. 이는 본래 잠수함과 항공모함의 능력과 장점을 동시에 취득해야 하는 잠수 항모의 태생적인 문제라, 아예 수직이착륙기를 운용하지 않는 이상은 만약 격납고 크기를 충분히 확충하고 함재기의 보유 댓수를 한 기라도 더 늘리려면 안그래도 덩치 큰 지금 설계보다도 함이 훨씬 더 거대해져야 했기에 이 문제만큼은 일본 기술진도 어쩔 도리가 없었다.센토쿠급의 함재기 격납고. 우리가 일반적으로 항공모함의 격납고라 하면 흔히 떠올리는, 항공기들이 가지런히 놓여있는 넓은 갑판같은 통상적인 이미지와는 확연히 다른 외형이다. 옆에 서있는 사람과 크기를 비교해보면 함재기를 탑재하는 격납고인데도 그렇게 크지 않다.
프라모델로 재현된 센토쿠급의 격납고와 함재기 M6A 세이란의 모습.
그렇다. 어떻게든 센토쿠급에 간신히 구겨넣어 마련한 격납고는 기껏해야 함재기의 동체(…)가 간신히 들어갈락 말락 했을 만큼 비좁은 원통에 불과했다. 이러한 격납고에 당연히 일반적인 전투기가 들어갈리 없었다.
풀영상 보기
그렇기 때문에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선 완전히 새로운 전투기가 필요했다. 센토쿠급에 탑재된 함재기인 M6A 세이란 수상공격기는 당시 일본군의 일반적인 전투기나 수상전투기를 유용한 함재기들과는 달리, 오로지 센토쿠급 잠수함에 탑재하기 위해서 새로이 설계 제작된 사실상의 전용기였다. 즉 센토쿠급은 격납고 시설을 확충하는 걸 포기한 대신, 탑재한 격납고 시설에 알맞는 크기와 구조로 설계 제작된 전용기를 제작하는 것으로 타협했다.
세이란은 그 당시 일본 전투기치고는 특이하게 날개를 뿌리부터 완전히 접을 수 있는[8] 구조를 가진 전투기였는데, 날개를 접어서 횡측으로 돌려 몸에 붙이는 방식으로 횡 길이를 대폭 줄일 수 있었다. 외국의 항공모함 탑재 함재기라면 이러한 날개 접기 기능은 흔히들 있는 기능이었지만 세이란은 날개접기라는 말보다는 압축(…)이란 말이 더 어울릴 정도로 극단적으로 크기를 줄이는 데 집착했다. 심지어는 주날개 뿐만 아니라 꼬리날개까지 접어버리기까지 할 정도로 횡 크기를 극단적으로 줄여서, 저러한 좁은 격납고에 어떻게든 필사적으로 구겨넣을 수 있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세이란 3기를 탑재하는게 한계였다.[9] 또한 플로트는 평상시엔 분리해서 함체 내부에 수납하고 있다가 출격시 꺼내서 기체에 조립하는 식으로 탑재 문제를 해결했다.
4.3. 그밖의 문제점들
함재기를 격납하는 문제는 어떻게든 또 해결했지만, 산 넘어 산이라고 이번에는 함재기의 발진과 회수 방법 역시도 문제였다. 센토쿠급은 충분한 길이의 활주로를 확보하기 위해 재래식 잠수함 중에서도 제일 거대했지만, 그럼에도 센토쿠급의 활주로는 폭탄등의 무장을 실은 항공기가 충분히 이착함하기에는 너무 모자란 길이였다. 이함이야 단거리 이함을 위한 전용 함재기와 공기식 캐터펄트를 동원해서 어찌저찌 가능했지만, 태생이 잠수함인 센토쿠급의 좁은 선체에 착함할만한 넉넉한 활주로 같은게 있을 리가 없었으므로 착함시에는 수상기라는 이점을 활용해 세이란이 직접 플로트로 수상에 착수한 후, 함에 탑재된 크레인으로 회수하여 다시 격납하는 방법을 채용했다. 일본이 운용하고 있던 대형 잠수함이나[10] 정찰기들을 탑재했던 군함들은 이런 목적의 크레인을 이미 장비하고 다녔으므로 기술적인 문제는 전혀 없는 익숙한 방법이었지만, 당연하게도 이러한 회수 방법이 상당히 번거로웠으리라는 점은 자명했다. 그래서 말기에는 조종사들이 모함이 발각당하지 않도록 발진 직후 플로트를 내버리는 방법도 구상했을 정도였다. 수상기인 세이란에게 있어서 플로트를 내버린다는건 다시는 돌아오지 않겠다는 말과 똑같았다.발진, 회수 방법을 해결하자 이번에는 이함에서마저 사소한 문제가 있었다. 캐터펄트 등의 보조로 어찌저찌 이함이 가능하긴 가능했는데, 항공기의 엔진이 바로 출격할 수 있을 정도로 충분히 가열되려면 상당히 많은 시간이 소모되었기 때문이다. 당연히 적성국가인 미국의 영해에서 여유롭게 항공기를 출격시키고 있을 시간 따위는 없었으므로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여러가지 방법이 논의되었는데, 일반적인 항공모함 탑재기들처럼 미리 엔진에 시동을 걸어 엔진을 가열시켜 놓자니, 내부가 밀폐된 잠수함이라는 특성 탓에 엔진에서 배출되는 배기가스(일산화 탄소 등)를 선체 밖으로 배출할 수단이 없었다(…). 이렇게 되면 승조원들이 단체로 산소부족증에 걸리던가 질식사해도 모자랄 지경이므로 다른 방법이 고안되었는데, 애초에 엔진을 데워놓기만 하면 된다는 사실에 착안해서 선체 내부에서 미리 기름을 가열시키며 보관하고 있다가, 출격시 가열해놓은 따뜻한 기름을 바로 보급하여 그 열로 단기간에 엔진을 데워서 시동시키는 것이었다.
이렇게 일본이 당시 동원할 수 있는 모든 기술과 궁여지책을 다 동원하여 어떻게든 기술적 난제들을 필사적으로 물리치고, 괜찮은 성능의 전용 함재기도 갖게된 센토쿠급은 정예 파일럿을 징발하여 엄청나게 많은 훈련을 거치게 함으로써[11] 잠수항모치고는 빠르게 함재기를 사출시킬 수 있었으며, 함재기가 적은 점을 빼면 일본군이 개발한 병기치고는 나름대로 괜찮은 병기가 될 수 있었지만 그 때는 이미 일본의 패전이 확정된 뒤였다...
5. 실전
본디 센토쿠급은 18척이 양산되어서 잠수항모로만 이루어진 전단을 꾸릴 예정이었는데, 센토쿠급 1기는 고작 3기의 항공기밖에 탑재하지 못하지만, 센토쿠급 18척으로 이루어진 전단은 단순계산상으로는 54기의 세이란 공격기에 탑재된 약 42톤의 폭탄을 미국 본토에 폭격할 수 있었다. 그러나 기술적 난제로 개발이 계속 늦어졌던데다 센토쿠급 계획을 입안한 야마모토 이소로쿠 제독이 미군의 P-38의 50구경 기관총을 맞고 사살되면서 건조계획은 지지부진해졌고 실제 양산수는 1/3 이하로 반토막난데다 실제로 건조되고 있던 것은 4척, 완성되어 작전에 직접 투입된 것은 2척이 고작이었다.(I-400,I-401) 4번함 I-403은 구레에서 건조중이었지만 구레 군항 공습으로 파괴되었다.게다가 센토쿠급이 완성되어 실전 투입된 것은 일본이 패망해가며 각지에서 해군을 완전히 말아먹은 이후였다. 이러한 상황에서 고작 2척의 센토쿠급, 6기의 세이란 공격기로는 공격다운 공격을 하는 것이 불가능했다.[12]
원래는 함재기인 세이란에 폭탄을 싣고 미국 본토를 공습할 목적으로 만들었으나, 이렇듯 줄어든 규모로는 폭격을 해봤자 별다른 피해를 입히지 못할 것은 자명했다. 이에 일본군의 막나가는 막장 장군들은 6기의 공격기로 할 수 있는 아주 효과적인 공격 방법을 생각했는데, 그것은 바로 세균무기를 미국에 투하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일본군 내에서도 반대의 목소리가 높았기 때문에 세균무기로 미국을 공격하는 안은 기각되었다.[13]
이후 좀 더 온건한 방향으로 노선이 바뀌어서 일본군 해군의 야마모토 치카오, 후지모리 야스지 함장은 파나마 운하의 가툰 갑문을 파괴해서 파나마 운하를 사용 불능으로 만든다는 작전을 입안한다. 그러나 당시의 시점에선 이미 미 해군 유럽 방면 함대가 죄다 태평양으로 넘어가버린 뒤라 실효성은 없는 것과 다름없었고, 파나마 운하는 매우 중요한 시설이었기에 엄청나게 튼튼한 구조로 지어졌으며, 각종 대공포로 중무장해 엄중한 방공망을 갖추고 있었다. 결국 이 작전의 목표는 미군 수뇌부와 미국의 시민들에게 충격을 주는 것이었다.[14] 두 함장은 파나마 운하 공격에 세이란 비행정 10기가 필요하다고 판단하고, 조종사들에게 은밀하게 초저공 비행을 해 파나마 지협을 건너 대서양 연안으로 비행해 대서양 방향의 가툰 갑문을 공격하는 임무를 주었다. 어뢰 6발과 폭탄 3,000kg을 투하하면 갑문을 파괴할 수 있으리라 생각했다.
일본군은 이로부터 더 앞서나가 폭격의 정확도와 위력을 높인다는 취지로 아예 함재기에서 플로트마저 떼버리고 파나마 운하에 카미카제를 하는 계획을 입안한다.[15] 이 작전을 수행하기 위해 매일같이 훈련을 하던 와중, 연합군이 오키나와를 공습하면서 파나마 운하 공격 작전은 취소된다.
그러나 파일럿들에게는 곤란하게도 이들은 다시금 미군 함대가 집결되어 있는 울리시 환초에서 카미카제로 연합군 함대를 최대한 저지하라는 명령을 받는다.[16] 그렇게 작전을 위해 I-400과 I-401은 울리시 환초를 향했지만, 주위에서 일본군 잠수함이 격침당하는 불상사가 일어나자 I-400과 I-401은 각기 다른 방향으로 선회, 접선하지 못하고 우왕좌왕하고 있었다.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 원자폭탄이 떨어지고 미·일 종전협정이 이루어진다. 이후 귀환 명령을 받고 아무런 활약도 하지 못한 채 일본으로 귀항하던 와중 산리쿠에서 I-400은 미 구축함 2척과 조우한다. 승산이 없는 것이 뻔했던데다 덴노의 항복 선언이 이루어진 다음이어서 그랬는지 I-400의 승무원들은 별다른 저항 없이 항복하였다. 이후 I-401도 미국 해군 잠수함과 조우하여 서로 함포를 조준하는 등 일촉즉발의 위태위태한 항해를 이어나가다가 도쿄에서 항복 명령이 내려오자 결국 끝내 항복하여[17] 미군에게 나포당함으로써 2척의 잠수항모는 변변찮은 활약도 하지 못한 채 그대로 함생을 마치게 된다.
전후에는 남은 자매함들과 같이 하와이의 진주만 미 해군기지로 옮겨져 미군에게 조사를 받았고, 소련이 자체 조사단을 보내 기술을 알아낼 것을 우려한 미국은 1946년 3월 26일에 폐기결정을 내리고 동년 5월 31일 어뢰의 시험사격용 표적으로 쓰여 격침된다.
6. 의외의 요소
- 함재기를 탑재하기 위해 덩치를 키웠기 때문에 운항 가능한 항속거리가 엄청나게 길어지는 장점을 보유하게 되었다. 센토쿠급의 항속 거리는 무려 6만 킬로미터에 달했는데, 이 항속 거리로는 이론상 태평양을 건넌 뒤 남아메리카 전체를 돌아서 워싱턴 D.C.를 타격할 수도 있었다. 결과적으로는 아무것도 못하고 죽만 쑨 셈이 되었지만 센토쿠급이 좀 더 일찍 취역했다면 전략적으로 활용할 수 있는 여지가 다분했던 셈. 물론 당대 잠수함 기술의 한계 때문에 결국 어려운 이야기였다. 애초에 계획대로 센토쿠급 3척을 건조해 작전을 실시한다 하더라도 달랑 공격기 9대가지고 어딘가를 의미 있게 공격하기란 불가능했다. 스텔스 정밀 폭격이 가능했던 시대도 아니고... 일본의 잠수함들은 타국의 잠수함들보다 크기가 컸던 데다가[18] 잠수함이라는 개념 자체에 잘못된 생각을 가졌기 때문에 급속 잠수는커녕 깊게 잠항하는 것조차도 할 수 없었다.
- 덤으로 수송량도 당대 잠수함 중 최고였다. 배수량도 잠수함 중 최대에 공격기 3대 + 그 공격기에 주입할 연료 + 그 공격기에 실을 폭탄을 실어나르니 당연할 수밖에. 6천 톤이 넘는 배수량에서 발휘되는 압도적인 수송 능력을 살려서 처음부터 수송용 잠수함으로 만들어 독일에 무기 수입하러 갔으면 수백 배는 더 쓸모있게 쓰였을지도 모른다.[19]
- 센토쿠급은 그 존재 자체가 1급 기밀이었기 때문에 승조원들 역시도 비밀 유지를 강요받았다. 이러한 노력 덕택에 종전까지 미국은 이러한 잠수항모의 존재를 알지 못했다고 한다.
- 상기한 비밀 유지 문제 덕분에 세이란의 조종사들을 비롯한 승조원들에게는 제한 사항이 많았는데, 그 대신 승조원들에 대한 대우는 당시 일본 해군 내에서도 파격적으로 좋은 대우였다.[20] 일본 해군에서는 잠수함 승조원들에 대한 대우가 원래부터 상당히 좋았던 점을 감안한다면[21], 센토쿠급 승무원들은 일본 해군, 아니 일본군 전체를 통틀어 거의 최고의 대우를 받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 종전 후 미군은 나포한 센토쿠급을 하와이의 미 해군 기지로 옮겨서 설계를 연구하였는데, 소련 측에서 자신들도 조사를 하겠다[22]며 함을 양도해줄 것을 요청했지만, 소련에게 잠수함 기술이 넘어가는 것을 원하지 않았던 미국측에서는 이를 씹고 센토쿠급 잠수함을 모두 사격 표적으로 써서 자침시켜버린다.
- 전쟁 말엔 함재기인 세이란을 귀함용 플로트도 떼버리고 자폭공격으로 운용하려고까지 했었는데, 재미있게도 이러한 운용 개념은 발사체가 무인이냐 유인(…)이냐 여부만 빼면 현대의 미사일 잠수함과 같다. 함재기를 탑재한 잠수 항모라는 개념은 미사일이라는 더 훌륭하고 효율적인 대체품으로 인해 사장되었지만, 장거리 항해가 가능해 단독으로 영해를 넘나들며 적의 본토에 직접 타격을 입힐 수 있는 잠수함이라는 개념 자체는 냉전시기 급속도로 발달한 핵잠수함의 원형이라는 일뽕성 썰도 있다. 그렇지만 이러한 잠수함 발사 미사일이라는 개념 자체는 독일에서도 구상된 바 있었다. 그리고 미국은 센토쿠급에 대한 정보 없이, 2차대전 중에 독일의 V1을 복제한 미사일을 해상에서 발사하는 잠수함을 개발해 1947년에 완성해 시험 발사했기 때문에, 센토쿠급이 현대 무기 체계에 남긴 유산은 없다.외부 링크
7. 여담
2009년 11월 12일, 하와이 근방에서 I-201을 찾다가 2번함인 I-401함을 발견했다고 한다.# 종전 후 미국에 항복한 뒤 어뢰 표적함으로 쓰였던 바로 그 놈이다. 해당 영상이 공개되었다.그리고 2013년 8월에는 1번함 I-400도 하와이 대학 연구진에 의해 하와이 근방에서 발견되었다. 해당 뉴스
2013년 12월 3일 하와이 대학 탐사팀이 미국과 일본을 통해 잠수함의 실체를 밝혔다.# # 일각에서는 인양을 하자고 하지만 탐사팀은 역사적 가치를 고려하여 수중박물관으로 만들기로 했다.
2015년 7월 4일경, 닛폰 테레비의 모 프로그램 취재팀이 나가사키현 앞바다에서 3번함 I-402로 추정되는 잔해를 발견했다. # 이것이 I-402로 확실시된다면 당시 건조된 센토쿠급 전원의 행방이 밝혀지게 되는 격.
디스커버리 체널의 세계의 탑10의 잠수함 편에서는 의외로 미국의 조지 워싱턴급(10위), 독일의 21형 유보트 (9위), 러시아의 타이푼급(8위)등 쟁쟁한 후보들을 제치고 7위를 차지했다. 운용기간과 전투성과는 낮음, 전투력은 보통이지만, 제대로된 잠수항모라는 점을 높이 샀는지 잠입성과 혁신성, 공포지수에서 높은 평가를 받았다. 나머지 순위는 영국의 엑스-크래프트(6위), 미국의 USS 노틸러스(5위), 영국의 T급(4위), 미국의 가토급(3위), 미국의 시울프급(2위), 독일의 7형 유보트(1위)이 차지했다.
인류 역사상 최대의 재래식 잠수함 타이틀을 지니고 있다. 2014년 중국에서 이에 버금갈만한 크기와 배수량의 청급 잠수함(6,628t)이 취역했지만, 크기에서나 배수량에서나 아주 근소한 차이로 센토쿠급이 더 크다.
8. 창작물에서의 출연
- 네이비필드에서 일본의 6차 잠수함으로 등장한다.
- 그리자이아의 낙원 TVA에서도 등장. 본격적인 등장은 8화 끝부분이지만 엔딩 영상에도 뻔하게 나오는데, 잘 보면 이 항목의 측면도와 완전히 판박이다(...). 원작에서도 마키나와 타나토스의 대사를 보면 伊号라는 게 나온다. 정확히는 밀덕(...)이 만든 레플리카라고 언급됐다.
- 스트라이크 위치스 2기 10화에 I-400이 그대로 나온다. 함재 위치는 에리카 하르트만과 한나 유스티나 마르세이유.
- 푸른 강철의 아르페지오에서 I-401이 모에화되어 이오나란 이름으로 등장한다. 게다가 주인공이 탄다. 잠수 항모임에도 불구하고 함재기를 사용하는 묘사가 일절 등장하지 않았는데 나중에 밝혀진 사실로는 '해역강습장악함' 즈이카쿠, 렉싱턴같은 항공모함들을 비롯해 본래 안개의 함대 측도 함재기를 보유하고는 있었지만 함재기만큼은 클라인 필드를 펼칠 수 없어서 인류의 대공병기로도 격추당했기에 아예 탑재 자체를 포기했다고 한다.. 고 했으나 72화에서 세이란을 전투용으로 사용하는 장면이 나오고 그 이전화 등에서 자매함들도 세이란을 일단 가지고는 있었다고 확인되었다.
고증을 지켜 3기만 탑재하고 있더라 - 함대 컬렉션에서도 I-400과 I-401을 모티브로 한 칸무스가 등장. 이쪽은 '시온', '시오이'라고 읽는다.
- 스틸 오션에서 일본 잠수함 최종 티어로 등장한다. 업그레이드 트리에 따르면 함재기까지 구현되어있는 걸로 나온다(...).
- 배틀스테이션 시리즈에서도 등장한다.
- 전함소녀에서는 운영사의 해적판에서만 등장. 의외로 일러는 괜찮았다.
- 워십 배틀에서 한정판으로 등장했다. 여기서는 함재기는 1대뿐이다.
- 스나이퍼 엘리트 5에서는 함재기 대신 V-2 로켓발사용 튜브를 탑재하기 위해 개조된 I-400이 파괴 목표물로 등장한다.
9. 모형화
- 1/350
- 타미야
I-400이 모형화 되었다.
- 1/700
- 아오시마
I-400, I-401이 모형화 되었으며 항공기가 잠수함에서 이륙 준비를 하는 모습, 해상에 착륙한 항공기를 잠수함의 크레인으로 인양하는 모습 등의 장면을 선택해서 만들 수 있다.
[1] 최초는 영국의 M급 잠수함 다만 M2 의 경우 후일 수상기 잠수 모함으로 용도가 변경된 것이어서, 설계 단계에서 부터 공격용 잠수 항모로 개발된 것은 센토쿠급이 최초이긴 하다.[2] 순잠 갑형 이13과 14도 추가 개장을 하여 세이란 운용을 가능하게 만들었었고 센토쿠급의 축소형으로 불린다.[3] 미국식 롱톤 기준. 현대의 metric ton으로 환산했을시 수중 배수량 6,665톤.[4] 이때의 일본은 무슨 수를 써서도 몇 만 리 떨어진 미국 본토에 피해를 입히기 위해 갖은 수를 다 썼는데, 이러한 삽질 중 가장 대표적인 것이 풍선폭탄이다.[5] 현대의 아쿨라급 잠수함과 오스카급 잠수함이 이 구조다.[6] 대략 오토바이 두 대를 옆으로 나란히 연결하고 가운데에 짐칸을 놔둔 형상(...)[7] 전간기였으면 이 정도면 순양함으로 분류된다.[8] 레이센의 경우날개에 연료 탱크가 내장되어 있기 때문에 날개 끝만 조금 접혔다. 물론 F4F 와일드캣같은 미 해군기는 그런거 없고 잘만 접고 다녔다. 그래도 세이란처럼 압축 수준으로 접지는 못했다.[9] 위 그림에서처럼 갑판 위쪽의 구조물 전체가 센토쿠급의 세이란용 격납고이다.[10] 일본의 1등 잠수함인 순잠 1급들은 처음 설계될때부터 정찰목적의 수상기를 1대씩 싣고다닐 격납고가 구비되어 있었다.[11] 생존한 조종사의 증언에 따르면 1,2,3번기를 최대한 빨리 출격시키는 훈련을 셀수도 없을 정도로 반복했다고 한다.[12] 당장 일본 자신들이 별거 아니라고 깎아내리고 실제로도 공습피해 자체는 크지 않았던 둘리틀 특공대의 공격이 세이란에 비해 1기당 탑재량이 거의 2배인 쌍발 폭격기 16기로 이루어짔다. 둘리틀 특공대의 1/5 이하의 화력으로는 대공방어가 아예 없는 곳이 아니라면 유의미한 전과를 올리기 힘들 수 밖에 없다.[13] 반인륜적 범죄라는 이유도 있지만일본군이 언제 인륜을 따진 적 있었던가, 그보다는 일본이 먼저 세균병기를 사용한다면 미국 역시도 보복 격으로 세균병기 내지는 그 이상의 보복을 가할 가능성이 높았기 때문이다. 실제로 일본과 미국이 둘 다 서로에게 세균병기를 사용했다면, 보급물자가 항시 부족하며 보병용 보호장비를 지급할 사정이 되지 못하는 태평양 전쟁 개전 후 일본이 더 피해가 컸을 것이다. 같은 이유로 2차 대전의 독일군 역시도 독가스를 무기로 사용하지 않았다. 대신 강제수용소에서 잘 써먹었다 왜 태평양 전쟁 개전 후냐면, 중일전쟁 초기 중국에서 일본군은 독가스를 매우 애용했기 때문이다.[14] 대공포가 닿지 않는 고고도에서 공격하는 것도 가능했겠지만, 이 경우 명중률이 극악하게 감소한다. 게다가 파나마 운하의 내구성을 감안하면 제대로 맞춘다 해도 파괴하는 것을 장담할 수 없었다. 애초 댐이나 갑문에 큰 피해를 주려면 어뢰나 물수제비 방식의 폭탄투하를 해야하는데 둘 다 고고도에선 불가능하다.[15] 그런데 센토쿠급의 전용 함재기 M6A 세이란의 생산비는 안그래도 기체 자체가 특수하게 설계 제작된 기체였기에 대당 단가가 무려 제로센 50기의 가격에 달한다.[16] 일본군은 본 작전을 성공시키기 위해서 세이란을 미군기 색상으로 도색하기까지 했다. 당연히 국제법 위반이다. 이후 종전 이후 귀항하던 I-400은 이 국제법 위반 사실을 은폐하려고 미군기로 도색한 세이란을 전부 바다에 버렸다.[17] 연합국 포로들을 잠수함에 매달아서 수장시켰던 전쟁범죄 사건인 티살락 호 사건의 주범이자 당시 일본 잠수함 I-8 함장이었던 아리이즈미 타츠노스케 대좌는 당시 잠수전대 사령관으로서 I-401에 승함하고 있었다. 아리이즈미는 항복하여 미군에 함을 넘긴 이후 처벌이 두려워 사령실에서 자살했다.[18] 다만 이건 활동 무대가 태평양인 탓에 어느 정도의 거대화는 원활한 직전 활동을 위해 필요하긴 했다.[19] 센토쿠급은 기획 자체는 태평양 전쟁 초창기부터 시작되었고, 개발 기간의 대부분은 전용기를 개발하느라 아등바등 허송세월을 해 댄 걸 감안하면 처음부터 대형 수송 잠수함으로서 개발하면 독일이 아직 일본에게 무기를 지원해줄 여력이 있을 때 야나기 작전에 동원할 수 있었을 것이다.[20] 일본 센토쿠급 승조원들과 비슷한 대우를 받은건 똑같은 결전병기 취급이였던 야마토급 전함 승조원들밖에 없다.[21] 특히 일본군의 그 유명한 똥군기 부조리도 잠수함에선 매우 덜한 편이었다.[22] 당시 이런 형태의 강습상륙잠수함을 만들 계확을 세우고 있었기 때문에 나름대로 데이터 확보가 필요했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