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5-02-27 09:36:17

이종욱/플레이 스타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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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2. 주루3. 타격4. 수비5. 총평

1. 개요

이종욱의 플레이 스타일을 서술한 문서.

2. 주루

파일:이종욱도루.gif
역대 9번째 개인 통산 300도루 달성 순간[1]
김경문 감독 시절 육상부로 불리던 두산 베어스 발야구의 선봉장으로 이름을 떨친 만큼 당대 리그 최고 수준의 빠른 주력을 가졌으며 동시에 탁월한 주루 센스 또한 가지고 있었다. 2006년 51도루로 도루왕을 차지했고, 2007년과 2008년은 2년 연속 47도루를 기록해 2년 연속 도루 2위에 올랐다.[2] 2010년부터는 여러 차례의 잔부상, 부진 등의 이유로 도루 횟수와 성공률이 뚝 떨어지기도 했으나, 두산에서의 마지막 시즌인 2013시즌에는 다시 30도루를 기록하며 죽지 않았음을 보여줬다. NC 이적 후에는 30대 중반으로 접어드는 나이로 인한 주력 하락과 FA 고액 계약 이후의 부상 우려로 도루 숫자가 크게 줄었지만, 그래도 특유의 주루 센스는 은퇴하는 순간까지도 살아있었다. 2018년까지 선수 생활을 하면서 개인 통산 도루 340개를 기록해 KBO 리그 역대 11위에 올라 있으며, 통산 도루 성공률도 78.7%로 훌륭하다.

도루 뿐만 아니라 베이스러닝에서도 특유의 주루 센스와 강점이 잘 살려서 공격적인 주루를 펼쳤다. 타구와 상대 수비를 읽고 한 베이스를 더 만들어내는 플레이가 최대 강점으로, 중견수 옆으로 애매하게 떨어진 타구를 2루타로 만들어 낸다던가, 애매하게 짧은 단타에 전력으로 홈으로 쇄도해서 점수를 올리는 등의 플레이를 자주 볼 수 있었다. 물론 다소 무리한 추가 진루를 시도하다가 아웃된 적도 없지는 않으나[3] 기본적으로는 굉장히 수준 높은 베이스러닝 실력을 보여줬다.

이러한 이종욱의 베이스러닝 실력이 유감없이 드러나는 장면이 이른바 내야수 희생 플라이라는 진기명기. 2007년 한국시리즈SK 와이번스를 상대로 2루수 희생 플라이를 만들어낸 적이 있으며[4], 2010년 10월 8일 대구시민운동장 야구장에서 열린 플레이오프 2차전에서는 6회 때 유격수 희생 플라이라는 명장면을 만들어냈다.##[5]

3. 타격

파일:이종욱타격.gif
이종욱의 타격 폼[6]

타격에서는 아주 빠른 스윙을 가진 것은 아니지만 투수의 습관이나 승부 패턴을 읽는 눈이 뛰어나 상황에 맞는 타격을 했다. 2006년 이후 기습번트 시도는 확연히 줄었으나 그 후로 적극적으로 타구를 외야로 보내는 스윙을 하면서 타격 능력은 더 좋아졌다. 해설자에게 욕을 먹기도 했는데, 1번 타자가 테이블 세터로서 공을 길게 보고 뒷 타자들이 노려 칠 수 있도록 기다려줘야 하는데 너무 잘 쳐서 문제가 있다는 지적을 받았다. 실제 부상으로 무너졌던 2009, 2012 시즌을 제외하면 항상 3할을 기록했으며 포스트시즌에서는 기습적으로 3번 타자로 나와 활약하기도 했다[7]. 장타툴을 보면 이용규같은 순 똑딱이들과 비교할 때 이쪽은 최소한의 갭파워 정도는 갖춘 편으로, 극심한 부진에 시달린 2012년을 제외하면 꾸준히 5개 내외의 홈런을 기록했다. 전성기 시절에는 3할 이상의 타율과 3할 7-8푼대의 출루율을 갖추어 클래식 관점과 세이버 관점에 모두 적합한 1번타자였다.

큰 경기에 강한지에 대해서는 의견이 갈릴 수 있는 선수로, 두산 시절에는 준플레이오프플레이오프에서는 시리즈 MVP급으로 날아다니다가, 위로 올라가서 SK만 만나면 버로우하는 모습을 자주 보여주었다. 이는 비슷한 시기에 팀 프랜차이즈로 떠올랐던 김현수의 이미지에 가려서 보기보다 잘 알려지지는 않은 사실. 이것도 그나마 전성기 때 이야기고, NC 다이노스 이적 이후에는 포스트시즌만 가면 삽질만 적립하곤 했다. NC가 매년 포스트시즌에서 물먹는 요인 중 하나로 꼽힐 정도로 NC 이적 이후 포스트시즌 성적은 2014년 10타수 무안타, 2015년 18타수 3안타, 2016년 26타수 6안타, 2017년 10타수 1안타로 부진했다.

국가대표에도 꾸준히 차출되었는데 2008년 올림픽에서는 전 경기를 1번으로 출장해 나쁘지 않은 성적을 찍었으나 2번 타순에서 4할대 타율로 날아다니던 이용규의 맹활약에 묻혔고, 2009 월드 베이스볼 클래식까지 주전 1번으로 뛰다가 2010년 아시안 게임 하위 라운드에서 삽질한 후로는 그를 국제전에서 볼 수 없게 되었다.

4. 수비

파일:이종욱호수비.gif
이종욱의 몸을 날린 호수비[8]

이종욱은 수비력 역시 매우 좋은 평가를 받는 선수로, KBO에서 가장 수비범위가 넓은 외야수 중 하나였으며 동나이대 선수들 중에서도 김강민, 이우민과 함께 최고의 외야수비로 평가받았다. 빠른 발과 훌륭한 타구 판단 능력, 좋은 글러브질을 겸비하여 최고 레벨의 중견수 수비를 선보였다. 전성기에는 현역 최고의 외야수로도 곧잘 뽑혔을 정도. 특히 머리 위로 넘어가는 타구를 워닝 트랙까지 따라가 잡아내는 모습은 명불허전이었다. 어깨도 준수한 편이지만[9] 두산 베어스 시절 외야 동료 임재철, 민병헌이 워낙 송구능력이 좋았던지라 다소 묻힌 감이 있다. 허나 NC 다이노스 이적 후에는 노쇠화의 여파인지 송구에 특출난 강점이 있다고 평가받기는 어려운 애매한 활약을 펼쳤다.

5. 총평

파일:이종욱허슬.gif
이종욱을 상징하는 넓은 수비범위와 허슬플레이[10]

몸을 사리지 않는 플레이, 빠른 발, 파인플레이 이후의 기합과 삼진이나 땅볼 이후에도 기죽지 않는 이종욱의 성격은 김경문 감독이 추구하는 야구의 결정판이라고 봐도 무방하다. 그런 면모 때문에 현역 시절 팬들의 많은 사랑을 받았다. 타격에서 김경문 감독이 추구하는 바를 김현수, 김동주, 최준석이 보여줬다면, 수비와 주루에서는 이종욱이 보여줬다고 생각하면 될 정도. FA때 두산 베어스 팬들이 (같이 풀린) 손시헌, 최준석은 몰라도 제발 이종욱만은 잡아달라고 했던 것은 그가 ‘허슬두’라는 두산의 팀 컬러를 상징하는 선수였기 때문이다. 이를 증명하던 당시의 별명이 바로 '종박 베어스'. 다만 결과적으로 그 김경문 감독이 있는 NC 다이노스로 떠나면서, 이래저래 두산 팬들 입장에서는 감정이 복잡한 선수가 되었다.

이 후 NC 다이노스의 감독으로 자리를 옮긴 김경문은 2012년 전력보강 선수 지명 때 이종욱과 비슷한 스타일의 외야수로 눈여겨 보았던 김종호삼성 라이온즈에서 지명했다. 그리고 김종호는 2013년, 도루왕을 차지한다.

NC 이적 후에는 노쇠화 때문인지 위에 언급한 장점들을 거의 보여주지 못했다. 3할 30도루가 보장되는 리드오프 겸 S급 수비력의 센터라인 외야수로서 50억이라는 거액을 들여 영입했으나, 20도루는 한 시즌도 없고, 3할을 넘긴 것도 2016, 2017 시즌 두 차례에 불과하다. 정작 영입 당시 덤 취급받던 손시헌이 훨씬 팀 기여도가 높은 아이러니한 상황이 되어버렸다. 2016 시즌엔 반등의 모습을 보이긴 했지만 이미 나이가 많아진 상황이었고, 2017년에도 타율 3할은 넘겼지만 리빌딩 기조로 인해 줄어든 기회로 규정타석도 채우지 못하며 안타수도 100개를 넘지 못했다. 2017 시즌 이후 얻은 두 번째 FA에서도 1년 5억의 계약을 맺었지만, 결국 무릎 부상으로 인해 단 43경기만 뛰고 현역 은퇴를 선언하면서 FA 기간 내내 돈값에 맞는 성적을 기록하지는 못했다는 NC 팬들의 평을 받았다. 즉 NC 입장에서 이종욱의 영입은 후배들에게 경기 내외적으로 큰 도움을 주었고, 또 클래식 스탯만 놓고 보면 나름 제 몫을 했기에 정답이라고 할 수 있지만 50억이라는 가격에 대해서는 이름값 클래스에 비하면 아쉽다는 의견이 대다수다.


[1] 2015년 4월 15일 롯데 자이언츠전.[2] 사실 보통 시즌같으면 2006년에 이어 3년 연속 도루왕을 먹어도 이상하지 않았을 수준이지만, 하필 이때 경쟁자가 이대형이라서 아쉽게 밀렸다. 참고로 이대형은 2007년과 2008년에 각각 53도루-63도루를 기록했다.[3] 그마저도 오심에 의한 억울한 아웃도 있었다.[4] 뒤에 나오는 삼성전 유격수 희생플라이가 김상수의 실책성 플레이가 꽤 섞인 점과 다르게, 이때는 타구가 내야와 외야 애매한 사이에 떴고 정경배가 뒤쪽을 향하면서 잡아야 했기 때문에 수비하기 쉬운 상황은 아니었다.[5] 김상수의 정줄 놓는 수비도 한 몫했다.[6] 2015년 5월 10일 롯데 자이언츠전.[7] 사실 이는 김현수의 4번 전환 시도와 연계된 것이었다. 결과적으로 4번 김현수는 김경문 시대 이래 2014 시즌까지 꾸준히 실패만 했지만.[8] 2015년 6월 5일 삼성 라이온즈전.[9] 마른 몸매라서 어깨가 약해보이지만 현대에서 같이 뛰었던 심정수가 자신보다 더 어깨가 좋은 사람을 처음 본다고 할 정도로 강했다.[10] 2014년 5월 17일 두산 베어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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