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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디 음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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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2. 풀이3. 역사4. 특징
4.1. 국내에서의 역사
5. 인디 음악 전문 유통사
5.1. 국내에서의 특징과 문제점
6. 참고 사이트7. 관련 문서

1. 개요

인디 뮤지션이 개인이나 소규모의 회사에서 자체적으로 제작하는 음악.

2. 풀이

인디 음악의 뜻을 좀 더 구체적으로 설명하자면, 타인의 자본(제작자의 자본)에 종속되지 않고, 자신의 돈으로 직접 앨범을 제작하고, 홍보 역시 자신의 돈으로 하는 등 독립적으로 활동하는 뮤지션을 인디 뮤지션이라고 하고, 이들의 음악을 인디 음악이라고 한다. Indie라는 단어는 'Independent'에서 유래된 것으로 여기서의 독립은 '대형 기획사의 통제로부터 독립한' 정도를 의미한다고 보면 될 것이다. 국내의 많은 대중들이 인디 음악의 정의에 대해 인도 음악이라 여기는 등 오해하기도 하지만, 인디 음악의 정의는 이것이 전부이다.

즉, '인디 음악 = 아마추어 음악' 이라는 인식은 잘못오해다. 물론 아마추어 뮤지션들은 대형 회사에서 받아줄리 만무하므로 소규모의 회사나 개인이 제작하는 인디 음악 형식으로 활동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다만 프로 뮤지션이고 대중적인 인기가 있다고 해서 반드시 대기업 레이블을 통해 음반을 내는 것은 아니다. 예를 들어 영국의 유명 밴드 라디오헤드는 대중적인 인기와 상업적 성공을 거둔 이후에도 인디 레이블을 통해 앨범을 내고 있다.

비슷한 이유로 흔히들 착각하는 "비주류 음악을 하는 뮤지션" 역시 인디 뮤지션이 아니다. 가령 잔잔하고 어쿠스틱한 음악을 하는 뮤지션을 인디 뮤지션으로 그런 음악을 인디 음악으로 오해하는 경우가 꽤 있고 심지어 일부 인터넷 찌라시 기자들 중에도 그렇게 오해하고 기사를 쓰는 경우가 있는데[2], 인디는 장르나 씬을 의미하는 단어가 아닌 제작방식을 의미하는 단어이다.

인디 뮤지션의 인디 음악은 대개 큰 돈이 없다보니 앨범이나 홍보에 큰 돈을 쏟아부을 수 없어, 앨범을 거창하거나 화려하게 제작하지 못하고 소박하게 만들어 소량으로 찍어내며, 홍보 역시 소박하게 이루어지는게 보통이다. 이런 예로 국카스텐의 데뷔 초기 모습을 들 수 있다. 이들은 데뷔 전 강원도에서 합숙하고 포장마차를 하며 번 돈으로, 자신들의 데뷔 앨범을 직접 제작했다. 이후에는 기획사(제작자)와 전속 계약을 맺게 되어 현재는 인디 뮤지션이 아니지만, 국카스텐의 데뷔는 전형적인 인디 뮤지션의 모습이었다. 국내 인디 음악의 성지라고 할 수 있는 홍대에서 활동하는 인디 뮤지션들도 다수가 이런 형태를 띄고 있다.

3. 역사

인디 음악이 정확히 언제부터 시작되었는지는 알 수 없다. 그나마 대중음악의 역사에서 인디 음악의 정의인 '독립성'이 하나의 흐름으로 나타나는 것은 70년대의 DIY(Do It Yourself) 원칙에 입각한 개러지 록 음악들로 추정된다. 브리티시 인베이전으로 감명받은 일련의 젊은이들이 집 차고에서 되든 안되든 일단 밴드를 하기 시작했는데, 이런 '차고'에서 만든 음악이 거칠고 단순한 모습을 보여 '차고에서 만든 록'이라는 의미에서 개러지 록이라 불리기 시작했다. 이 개러지 록은 벨벳 언더그라운드 같은 밴드들이 선험한 프로토펑크와 연계되면서 펑크 록의 중요한 단초로 남게 된다.

이후 펑크 록이 본격적으로 등장하면서 '인디'라는 유통 방식이 본격적으로 정착하게 되었으며, 러프 트레이드나 4AD, IRS, SST, 팩토리 레코드, 도미노 레코드, 크리에이션 레코드 같은 전국구급 인디 레이블들이 속속이 등장하게 된다. 이들의 발전은 록 음악의 역사의 한 축으로 자리잡게 된다. 영국의 경우는 펑크 록의 시대를 거쳐 80년대 중후반부터 인디 밴드들이 본격적으로 수면 위로 부상하기 시작했으며, 그 후 마침내 인디 밴드들이 메이저에 대거 진출해 흥행하게 되는데, 그것이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90년 초중반의 브릿팝 밴드들이다. 미국의 경우는 영국보다는 다소 늦게 인디 그룹들이 메이저에 올라오게 된다. 이는 모타운, MTV 등으로 대표되는 메이저 음악의 상업화와 조직화가 영국보다 훨씬 더 빠르게 진행되었고, 워낙 땅덩이가 넓다 보니 각지의 로컬 씬만으로도 어느 정도 규모가 되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미국에서도 90년대를 강타한 얼터너티브나 2000년대에 전면적으로 등장하는 포스트록 등은 모두 인디에서 올라온 장르들로, 인디 음악은 오버그라운드에 새로운 장르를 수혈하는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었다.

인터넷과 SNS의 등장은 인디 그룹들이 자신들의 인지도를 폭발적으로 높이는 것에 크게 기여하였다. 2000년대 초중반이 되면 아케이드 파이어를 필두로 하여 오버그라운드의 지원 없는 인디 그룹들이 속속 빌보드의 문을 두드리고 세계적으로 자신들의 인지도를 높이기 시작하게 된다. 영국에서도 악틱 몽키즈가 인터넷을 통한 엄청난 인기로 데뷔함으로써 미국과 비슷한 현상을 보여주었다. 당시에는 마이스페이스를 활용한 마케팅이 유행하였으며, 이는 점차 SNS의 등장과 함께 페이스북 등으로 대체되기 시작하였다.

현 시대의 인디 음악은 과거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규모와 접근성이 커졌다. 물론 상업적인 지분은 그리 크지 않지만, 2010년대 들어서는 인디 그룹들만의 자체적인 페스티벌을 열 수 있을 정도고, 세계 투어를 다니면서 인디 레이블에 속해 있는 밴드들도 꽤 있다. 그러나 2020년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19 확산 후 공연 수익에 의존하는 인디 음악에 큰 타격이 오며 생계 곤란을 겪은 인디 뮤지션들이 음악을 그만두고 다른 일을 찾는 일이 많아졌다. 그나마 코로나 사태가 잦아들면서 이후부턴 서서히 회복되고 있는 중이다.

4. 특징

일반적으로 대규모 레이블이 아닌 인디 레이블을 통해 음반을 발매하며, 최근에는 홈레코딩 기술의 발전 등으로 아예 뮤지션 스스로가 직접 음반 발매까지 도맡는 경우도 많이 나타나고 있다. 대표적인 예가 국내 최초의 홈레코딩 음반으로 불리는 롤러코스터 1집. 다만 '인디 레이블'의 정의를 내리는 것이 어렵기 때문에 인디 음악으로서 성공하는 사람들이 점점 늘어나는 요즘의 특성 상 인디 음악의 정의도 점차 모호해지고 있다.

음악적으로는 유통사의 입김이 적잖이 작용하는 대규모 레이블에서 나오는 음반들에 비해 창작자의 개성이 잘 살아있는 특징이 있다. 상업성보다는 창작자의 의도를 더 우위에 두는 편이며, 이로 인해 메이저 레이블에서 나오는 음악들에 비해 상당히 다양하고 개성 있는 음악들을 많이 접할 수 있다. 다만 상업성이 우선 순위에서 밀리는 만큼 상업적으로 성공하는 경우는 메이저 레이블에서 나오는 음악들보다 적은 편이다. 물론 페이브먼트아케이드 파이어처럼 엄청난 성공을 거두는 경우도 있다.

이런 창작자의 개성이 보존되는 인디 음악은 역사적으로 대중음악의 발전을 '밑에서' 이끌어 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특히 록 음악의 경우 인디 음악의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해 왔다. 가장 단적인 예가 너바나를 위시한 얼터너티브 붐으로, 흔히 '시애틀 그런지'라 불리는 너바나를 비롯한 그룹들은 모두 인디에서 출발한 그룹들이다. 이 외에도 더 스미스, 소닉 유스, 페이브먼트, 픽시즈, 마이 블러디 밸런타인과 같은 그룹들은 인디에 남아 있었지만[3] 록 음악의 역사에 한 획을 그은 밴드들이고, 최근에도 아케이드 파이어, 애니멀 콜렉티브 같은 밴드들이 활동하고 있다.

2000년대 후반에 들어서는 소프트웨어의 발달로 개인이 전자음악을 보다 쉽게 할 수 있게 됨에 따라 비교적 록 음악에 치우쳐져 있던 예전보다 다양한 장르의 음악들이 쏟아져 나오고 있고, 인디 음악 자체가 매우 활성화되어 있다. 비치 하우스그리즐리 베어처럼 인디 그룹임에도 불구하고 빌보드 차트 상위권에 오르고 세계적인 인지도로 월드 투어를 다니는 뮤지션들도 여럿 존재하며, Sub Pop 같은 인디 레이블은 인디 레이블임에도 불구하고 꽤 높은 인지도를 가진 뮤지션들을 여럿 산하에 두고 있기도 하다. 이런 현상으로 인해 시간이 갈수록 인디 음악과 소위 '메이저 음악'이라고 불리는 음악 사이의 경계가 점차 모호해지고 있고, 인디 음악이 더욱 직접적으로 대중음악에 영향을 미치기도 한다.

실력은 아마추어와 프로 사이라 보면 된다. 물론 인디 음악가들도 많다보니 케바케라 어떤 인디 음악가는 딱 아마추어 수준이기도 하고, 어떤 인디 음악가는 프로 뺨치기도 한다.

창작자의 개성뿐만 아니라 제작과 홍보 등 대부분의 것에서 아티스트 본인이 직접 관여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자본의 흐름이 뚜렸하게 보이는 것 역시 장점이라면 장점이 되기도 한다. 아티스트가 직접 움직여야 할 수록 힘들고 피곤해지는 것은 맞지만, 그만큼 인건비가 줄어들고 설령 스탭고용 등의 인건비가 나간다치더라도 아티스트의 승인하에 고용이 되기 때문에 거대 기획사에서 늘 나오는 아티스트간의 수익배분 문제 등에서는 그나마[4] 깨끗한 편이다.

4.1. 국내에서의 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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왼쪽 위부터 시계방향으로 뷰렛, 페퍼톤스, 언니네이발관, 델리스파이스
국내에서 이른바 '인디 음악'은 보통 1990년대 이후 홍대 앞을 중심지로 하는 록 관련 음악들을[5] 지칭하는 용도로 많이 쓰이고 있다.[6] 한국 인디 음악의 시작은 서구와 비슷하게 90년대 얼터너티브 록, 펑크를 구사하던 뮤지션들이 주도했다. 더 거슬러 올라가면 1970~1980년대 신촌을 중심으로 하는 언더그라운드 뮤지션들도 있지만, 본격적인 '유통 방식'으로서 인디 음악은 전술했듯 1990년대 중후반 홍대 뮤지션들을 시초로 본다.

국내 최초의 인디 음반은 1996년에 발매된 크라잉 넛옐로우키친의 스플릿 앨범 <Our Nation 1>을 그 시초로 보는 경우가 많지만, 날짜상으론 배드 테이스트의 <Bad Taste> 앨범이 1996년 1월 발매로 더 빠르긴 하다. 다만 <Our Nation Vol.1>이 상업성이나 저명도 측면에서 압도적으로 높다보니 이쪽을 홍대 인디 음악 활성화의 시초로 보는 것. 참고로 이때 앨범은 홍대 라이브 클럽의 시초격인 드럭의 사장이 크라잉 넛의 가능성을 보고 본인 전세 자금 빼서 만들어줬다고 한다. 1500만원의 예산으로 CD 5천장, 카세트 테이프 15000개를 손수 제작해 판매했는데 이게 대박이 나서 당시 드럭 앞에 대기줄이 쭉 늘어섰다고 한다. 이때부터 홍대 라이브 클럽들이 우후죽순 생겨나기 시작한 것.[7][8]

그렇게 1990년대 말부터 성장한 한국 인디 1세대 음악은 크라잉 넛노브레인으로 대표되는 조선 펑크델리스파이스언니네 이발관으로 대표되는 모던 록 2가지로 큰 흐름을 형성하여 진행되었다. 그 외 노이즈가든, 레이니 썬, 어어부밴드처럼 위의 두 분류에 넣기 어려운 독자적인 스타일을 구축한 밴드들도 여럿 있었다. 이 시점의 뮤지션 및 인디 밴드들을 '인디 1세대'라 불렀으며 이후 크라잉 넛, 노브레인, 델리스파이스, 언니네이발관, 자우림, 체리필터 등이 메이저 시장에서도 인지도와 호응을 얻기 시작하면서 인기를 얻었다. 동 시기 , , 피아, 피터팬 컴플렉스와 같이 라디오헤드의 영향을 받은 얼터너티브 밴드들도 등장하였다. 이는 같은 시기 영국에서 콜드플레이, 뮤즈가 등장한 것과 유사한 패턴이다.

하지만 2000년대 중반이 되면서 기존 인디 1세대 밴드들이 점차 인기를 잃기 시작했고 후발 주자로서 대중의 인기를 끌만한 밴드들도 좀처럼 나오지 않는다. 음반 시장 자체가 음원 시장으로 교체되면서 죽어가던 시기라 여러모로 힘든 시기였고, 한국 인디 밴드의 원류가 되는 영미권 록 음악 시장에선 포스트 펑크 리바이벌 붐이 일었지만 90년대 얼터너티브 록 붐에 비하면 규모가 작아[9] 서서히 록 음악이 주류에서 밀려나기 시작한 것도 한 원인이였다. 여기에 설상가상으로 2005년 발생한 생방송 음악캠프 알몸노출 사건은 당시 인디 음악을 향한 대중의 시선을 부정적으로 바꿔버린 치명타가 되었다. 직접적으로 연관된 조선 펑크씬은 이때 대거 몰락해 지금까지도 제대로 회복이 안되고 있으며, 2000년대에 등장하던 다른 장르의 인디 밴드들 역시 공중파에 자신들을 홍보하고 인기를 얻을 기회를 대거 박탈 당한다.

다시금 인디 음악에 활기가 돈건 그로부터 몇년이 지나 2세대 인디 뮤지션들이 출연하는 2000년대 후반부터였다. 인디밴드의 방송 출연이 사실상 금지된 2000년대 중반 암흑기를 지나 서서히 방송 규제도 풀리면서 국카스텐, 10CM, 브로콜리 너마저, 장기하와 얼굴들, 갤럭시 익스프레스, 검정치마, 쏜애플, 달빛요정 등이 데뷔하였고 평론과 대중에게 인지도를 얻었다. 물론 이때도 인디 음악 시장의 양적인 규모는 1세대 시절에 비해 많이 위축되어 있는 상태였지만, 해외 록 음악이 몰락하기 시작한 2000년대 후반~2010년대 초반 모순되게도 국내에선 다양한 인디 음악이 대중과 언론의 주목을 받게 된다. 슈퍼스타K가 국내 가창 오디션 붐을 일으키면서, 번외격으로 TOP밴드 시리즈와 밴드의 시대 등 밴드 관련 경연 방송도 제법 나왔고, 온스테이지처럼 인디 음악을 중심으로 한 미디어도 생겼으며, 국카스텐나는 가수다 2 출연 10CM, 장미여관, 장기하와 얼굴들 등 여러 인디 밴드들이 지상파 방송에 출연하며 인디 시장이 활성화되었다.

여기에 한국대중음악상을 비롯한 평단에서도 호평을 받는 인디 음악들이 많이 생겨났다. 이러한 흐름에 외국에서도 'K-ROCK', 'K-INDIE' 란 이름으로 인기를 얻었으며 다양한 밴드가 미국 음악 페스티벌인 <SXSW>에 참가하면서 한국 인디 음악은 제2의 도약기를 맞았다고 평가받았다. 하지만 2010년대 중반 이후 신인 부재, 기성 인디 음악가의 부진 혹은 잠적[10], 주무대였던 홍대 인근의 상업화 문제와 인디 음악을 향한 대중의 관심이 감소하면서 다시 부진에 빠지게 된다. 이 외에도 갤럭시 익스프레스의 대마초 사건, 인디계 성추문 미투 운동 등이 일어나며 다시금 인디 음악의 이미지가 악화되었다. 특히 2020년 코로나19 사태는 당시 여러 인디 공연장들이 폐업할만큼 홍대 인근 인디 씬에 큰 타격을 주었다. 물론 이런 힘든 여건에서도 볼빨간사춘기, 신현희와김루트, 멜로망스, 혁오, 잔나비 등이 음원 차트에서 흥행하며 분위기 반전을 이끌어냈으며, 국카스텐하현우복면가왕에서 9관왕을 거두며 밴드의 인지도를 크게 높였다.

2020년대 초반은 실리카겔, wave to earth, LUCY, 새소년, SURL, 터치드, 유다빈밴드, 나상현씨밴드 등의 음악가들이 출연하며 3세대 인디 음악계에 활기를 불어넣었으며, 특히 이 시점부터 포스트락 마이너 갤러리, 힙합엘이 등 여러 인터넷 음악 커뮤니티 출신 인디 음악가들이 등장하게 되었다. 대표적으로 포스트락 마이너 갤러리 등지에서는 슈게이징, IDM, 포스트락 등 기존의 주류 음악 계층과는 달리 보다 다양한 언더그라운드 음악가들이 활동하면서 음악 활동을 이어나가고 있는데, 파란노을의 2집이 국내외에서 주목을 받자 갤러리 내부에서는 파란노을에게 영향을 받아 창작 활동을 더욱 활발히 이어나가고 있으며 몇몇은 자신의 앨범을 무료배포하거나 자체적으로 모여 컴필레이션 앨범을 만드는 등 활발한 움직임을 보여주고 있다. 게다가 해당 갤러리에서 활동하던 파란노을, 아시안 글로우와 같은 음악가들이 입소문을 타고 해외의 힙스터들 사이에서 알음알음 알려지기 시작하며 피치포크 등지에서 고평가를 받는 등, 기존의 한국 음악계에서는 상상도 하지 못했을 일들이 일어나기도 했다.

5. 인디 음악 전문 유통사

인디 음악 전문 유통사는 국내 믹스테입이 있으며 글로벌 업체는 루트노트가 있다.
믹스테입의 경우 가입부터 금액이 발생한다는 단점이 있으나 국내 업체라는 장점이 있다.
글로범 유통사인 루트노트는 최근 한국 사무소를 운영하며 공격적인 마케팅을 하고 있지만 아직 웹사이트가 영어라는 단점이 있다.

5.1. 국내에서의 특징과 문제점

현재 한국 음악 시장에서 가장 확고한 열쇳말은 케이팝이다. 그만큼 다른 어떤 나라보다도 기획사의 입김이 대중음악에 미치는 영향이 큰 나라이고, 인디 음악이 대중음악에 미치는 영향력이 적은 나라이다. 물론 온라인 음원 시장의 성장 등의 요인도 있지만, 가장 큰 원인은 1세대 그룹들이 인지도를 올리던 과정에 벌어진 생방송 음악캠프 알몸노출 사건일 것이다. 이는 점차 인지도를 올리고 있던 그룹들의 성장세를 꺾어버리기도 했지만, 인디 뮤지션들이 잠시 방송에서 사라져 있는 동안 거대 기획사들이 내놓는 그룹들이 대중음악 시장을 지배하게 되는 결과도 불러일으켰다. 물론 거대 기획사들이 내놓는 그룹들의 음악 질이 모두 낮은 것은 아니지만, 인디 음악이 빌보드 차트에도 가끔씩 올라가는 미국과 같은 상황이 한국에서 일어나기 힘들어진 것은 사실이다.

다만 이러한 현상은 인디 음악의 인지도가 과거에 비해 많이 올라간 현재에 와서는 조금씩 해결되고 있으며, 생각보다 많은 인디 뮤지션들이 방송에서 얼굴을 비추고 있는 것을 알 수 있다.

다른 큰 문제는 '라이브 방송 환경의 부재'이다. 보통 록밴드들이 많은 인디 뮤지션들이 방송에 나오지 못하는 가장 큰 이유는 대부분의 가요 프로들이 이런 밴드들의 라이브 무대를 꾸밀 수 있는 환경을 보유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는 외국과 한국의 가장 큰 차이점이자 문제이다. 외국에서는 밴드 형태의 그룹들도 TV 프로에서 손쉽게 라이브 무대를 보여줄 수 있는 반면에 한국에서는 심지어 인디 뮤지션이 아닌 씨엔블루 같은 그룹들도 가요 프로에서는 여지없이 핸드씽크를 해야 한다.

그렇다고 해서 한국의 인디 뮤지션들의 책임이 아주 없는 것은 아니다. 한국이라는 땅이 좁은 탓도 있겠지만, 한국의 인디 음악들도 결국은 인기 있는 몇몇 장르에 국한되어 있다. 이는 '독립성'을 통한 '다양성'을 전제로 하는 인디 음악의 특징에 맞지 않는다. 또한 한국의 인디 밴드들이 안고 있는 고질적인 문제로 본인들의 색을 개발하려는 노력 없이 해외 음악들을 레퍼런스로 삼기만 한다는 지적도 있다. 물론 과거 번안곡이 판치던 시대보다야 나아졌겠지만, 다양성을 지향해야 하는 인디 음악에서 레퍼런스가 훤히 보이는 음악을 하면서 '신선한 음악'으로 평가받고, 이중 몇몇은 스스로 그렇게 주장하기까지 한다는 것은 상당히 위선적인 태도라고 할 수 있다. 물론 한국 인디 신 자체가 좁다보니 정규 앨범도 내기 전 몇몇 이슈만으로도 쉽게 주목 받을 수 있는 환경이 인디 뮤지션들에게 본인들의 스타일을 발전시킬 시간을 주지 못한 채 논란의 중심으로 내모는 현상도 한 원인이라고 할 수 있지만. 이는 혁오의 표절 논란에서도 드러났다.

한편, 대중들에게 인기를 얻지 못한다고 판단한 인디 뮤지션들은 아예 대중들과의 소통 자체를 포기하고 '그들만의 리그'를 만들어 버리기도 한다. 자립생산음악조합도 이러한 리그에 포함되는데, 정치 성향의 표출과 이권단체적인 모습 때문에 비판 여론도 꽤 있다. 특히 사케르[11] 소도라는 음악잡담 커뮤니티에서 자립하면 청국장 운운하며 이를 갈 정도로 까대거나 유동닉들이 뒷담화를 깐다. 만일 당신이 자립음악생산조합 혹은 조합의 가입 뮤지션 입장을 옹호하는 의견을 보이면 거기서 욕을 한바가지로 얻어먿을 가능성이 높다. 다만 위땐스처럼 예외적으로 인정받는 뮤지션도 있으나 자립과 관계된 누군가가 밀고있다고는 의혹으로 여전히 안좋게 보는 고정닉들도 많다. 위댄스는 2013년 3월 비트볼 레코드가 영입했다.

반대로 자립에서도 사케르 안티한국인디 여론층, 현재는 소도 유저들의 디스질을 무시하고 있다. 웨이브 게시판 유저를 전신으로 하는 해당 사이트의 고정닉 몇몇과 동 웹진의 칼럼니스트로 활동하기도 했던 해당 조합의 대표뮤지션 중 하나인 단편선 간의 악감정[12]도 한몫했지만. 이러저러한 연유로 한국의 인디 음악은 오버vs인디의 이분법적인 구도로 고착화되었으며, 이는 더 큰 단절감만을 불러일으킬 뿐이다.
마지막으로 음악을 수용하는 대중들의 인식도 잘못되어 있다. 유독 한국에서는 '인디 음악'을 그 자체로 하나의 '음악 장르'로 인식한다는 큰 문제점이 있다. 물론 한국 밖에서도 인디 음악의 중추를 이루는 장르가 록 음악이지만, 헤비메탈브릿팝이 같은 '록'이라는 이름으로 불릴 수 있다는 점을 감안하면 수많은 인디 음악 뮤지션들을 전부 '인디 음악'으로 싸잡에 부르는 것은 어떻게 보면 그들의 수많은 개성을 무시하는 행위이다. 그런데 서구에서도 인디 록 음악 하면 얼터너티브 록 아니면 포스트 록에 기반한 음악이란 인식은 있다. 원래 얼터너티브 록이 밴드마다 다양한 개성을 보여주기 때문에 그런식의 '싸잡는 방법'이 100퍼센트 틀렸다고 볼 순 없다. 하지만 어쿠스틱 팝 계열의 달달하고 대중적인 10CM같은 뮤지션도, 국카스텐같은 실험적인 록 뮤지션도 인디신 내에서 존재한다는, 그 둘 사이에도 차이가 있다는 인식은 필요하다.

6. 참고 사이트

7. 관련 문서



[1] 위키백과에서 이 단어를 항목명으로 사용하고 있다.[2] 사실 이건 후술되어있듯 국내에서 소위 '인디 음악'은 90년대 이후 홍대거리를 중심으로 늘어난 록 음악(특히 모던록, 포크록)을 지칭하는 용도로 많이 쓰이기 때문도 있어보인다.[3] 굳이 따지자면 소닉 유스는 메이저에서 잠시 활동한 경력이 있다.[4] 돈 문제가 아예 없다고 말하기는 힘들다. 회사 자체가 쪼들리거나 아티스트 자체가 무명이라서 그냥 돈이 안될 경우(...) 돈 문제가 생기는 경우도 간혹 있다.[5] 장르적으로는 록 음악 중에서도 모던 록이 가장 주류고, 그 외 포크 록이나 사이키델릭 록, 홍대 인디 초창기를 수놓은 조선 펑크 등이 있다.[6] 물론 힙합과 같은 다른 장르의 인디 신 역시 엄연히 존재하나 한국에서는 첫 시작이 이 장르였다보니 보통 '인디'하면 록 음악부터 떠올리는 경우가 많다.[7] 이에 당시 정치권도 법 개정을 해주며 홍대 인디 음악 붐에 호응했다. 1970년대 제정된 식품 위생법 때문에 당시만 해도 유흥업소가 아닌 라이브 클럽에선 2인 이상 공연이 불가했는데(때문에 초기엔 걸리면 벌금 물고 공연했다고 한다), 이에 당시 홍대 인디 밴드들을 중심으로 법 개정 운동이 일어나 1999년 라이브 클럽 공연이 합법화된다.[8] 참고로 이때만 해도 홍대 인디 뮤지션들은 돈을 받는 경우는 드물었고, 받아도 소액이거나 식당 술 무료 등 다른 서비스를 제공받는 수준이었다고 한다. 다만 연습실 대용이라 그 돈 굳는 것 + 홍보 효과 + 청중들한테 노래할 수 있다는 만족감 때문에 다른 일로 돈 벌면서 앨범 준비하는 등 계속 했다고 한다. 걔중엔 크라잉넛처럼 진짜 사장이 자기 돈 투자해서 앨범 내주는 경우도 있었지만 애초에 사장님들도 임대 받아서 가게 하는 처지가 많았던걸 감안하면 많진 않았을듯. 이후 이런 홍대 인디 뮤지션들의 성장 루트는 시간이 지나면서 성공했을 시 평일 클럽 공연->주말 클럽 공연->각종 음악 페스티벌 오프닝-5시-7시-9시 헤드라이너 순으로 점점 발전했다고 한다.[9] 영향이 전혀 없는건 아니었고 검정치마 같은 개러지, 포스트 펑크 색채를 띄는 밴드도 등장했다.[10] 대표적인 1세대 인디 록 밴드인 언니네이발관은 2010년대 중반 해체되었고 리더 이석원은 음악을 그만두었으며, 달빛요정역전만루홈런의 사망, 2세대 록 밴드의 얼굴마담 격인 장기하와 얼굴들 역시 해체되었다.[11] 2013년 분열 사태 이후 안티-한국인디적인 의견은 소도로 다 빠져나가서 지금은 이런 성향이 사케르 내에서는 많이 줄어들었다. 항목 참조.[12] 웨이브 사이트 리부트 이전 말기부터 이러한 갈등이 많이 표출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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