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5-03-23 19:46:59

인버루리 전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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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버루리 전투
영어: Battle of Inverurie
시기 1308년 5월 22일 ~ 5월 23일
장소 스코틀랜드 왕국 에버딘셔 인버루리
원인 로버트 1세와 코민 가문의 갈등
교전국 파일:스코틀랜드 국장.svg 스코틀랜드 왕국 파일:Arms_of_Ranulf_de_Blondeville,_6th_Earl_of_Chester_(died_1232).svg.png 코민 가문
지휘관 파일:Arms_of_Bruce.svg.png 로버트 1세 파일:Arms_of_Ranulf_de_Blondeville,_6th_Earl_of_Chester_(died_1232).svg.png 부컨 백작 존 코민
병력 700명 1,000명
피해 미상 미상
결과 스코틀랜드 왕국의 승리.
영향 로버트 1세의 스코틀랜드 지배력 강화
1. 개요2. 상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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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제1차 스코틀랜드 독립 전쟁 시기인 1308년 5월 22일 ~ 5월 23일, 스코틀랜드 왕국 에버딘셔 인버루리에서 로버트 1세가 코민 가문의 수장인 부컨 백작 존 코민을 물리친 전투.

2. 상세

1306년 2월 로버트 1세와 추종자들이 덤프리스의 프란치스코회 교회에서 그를 스코틀랜드 국왕으로 받들길 거부한 바데녹 영주 존 코민 3세를 암살한 이래로, 스코틀랜드 중부 하이랜드의 강력한 씨족이었던 코민 가문은 로버트 1세를 불구대천의 원수로 여기고, 잉글랜드 왕국의 편에 서서 로버트 1세에 대적했다. 하지만 1307년 7월 에드워드 1세가 사망하고 새 국왕 에드워드 2세가 재정난과 귀족들과의 불화로 인해 스코틀랜드 문제에 개입하지 못했고, 로버트 1세는 이를 틈타 스코틀랜드 내 잉글랜드 세력을 연이어 물리치며 세력을 확장했다.

1307년 11월, 로버트 1세는 스코틀랜드 북부의 요충지인 인버로키 성을 함락했다. 이에 위협을 느낀 로스 백작 윌리엄 2세는 에드워드 2세에게 지원을 요청하는 편지 여러 통을 보냈지만 아무런 응답이 없자, 결국 로버트 1세와 휴전 협약을 맺었다. 로버트 1세는 여세를 이어가 존 코민 3세의 사촌이자 가장 강력한 정적인 부컨 백작 존 코민을 향해 진군했고, 그의 심복인 제임스 더글러스는 별동대를 이끌고 더그러스데일, 어퍼 클라이즈데일, 셀커크 숲, 그리고 제드버러를 잇달아 석권했다.

1307년 크리스마스 이전, 발랑스의 가신이었던 셀커크와 트위드데일의 스코틀랜드 귀족들이 로버트 1세 편으로 돌아섰다. 뒤이어 레녹스, 멘티스, 파이프, 스트라선, 아솔, 앵거스 출신의 많은 스코틀랜드인들도 로버트 1세에 가담했다. 그러나 로버트 1세는 인버루리로 진군했다가 중병에 걸려서 몸져누웠고, 추종자들은 그가 죽을까 봐 두려워했다. 한편 부컨 백작 존 코민은 군대를 이끌고 적을 만나러 진군했다. 로버트 1세의 부하들은 주군의 상태를 고려해 드럼블레이드의 슬리오치로 후퇴했다. 부컨 백작은 슬리오치로 진군했지만, 적군과 직접 교전하지 않고 궁수대에게 적진을 향해 사격하도록 했다. 로버트 1세의 군대는 응사했지만 사흘 후 질서 있게 후퇴했다.

그 후 스트라스보기로 후송된 로버트 1세는 건강을 어느 정도 회복한 뒤 1308년 4월부터 부컨 백작령으로 다시 진격해 발베니 성, 타라데일 성, 스켈보 성 을 공략했고, 엘긴 성을 일부 병력으로 포위했고, 5월에 병사 700명과 함께 인버루리로 돌아왔다. 당시 그는 아직 병에 시달렸지만, 부컨 백작과 일전을 벌이기로 작정했다. 5월 22일, 부컨 백작은 즉각 병사 1,000명을 이끌고 인버루리 시 앞으로 진군했지만, 공격을 주저하다가 올드 멜드럼에 주둔지를 세웠다. 다음날인 5월 23일 새벽, 부컨 백작의 부관인 브레친 영주 데이비드는 부컨 백작과 상의하지 않고 인버루리로 진군했고, 그의 병사들은 로버트 1세의 전초 기지 중 하나를 공격해 여러 명을 살해했다.

로버트 1세는 이 소식을 접하자 침대에서 일어나 말을 타고 군대를 소집한 뒤 반격에 착수했다. 부컨 백작은 로버트 1세가 다가오는 걸 보고 급히 군대를 모아서 바라 힐과 로크터 번 습지 사이의 길목에 전투 대열을 편성했다. 이때 그는 전방에 기사와 무장병을 세웠고, 징집병을 후방에 세웠다. 그러나 로버트 1세가 다가오는 모습을 본 징집병들은 전의를 상실했다. 그들은 애초에 로버트 1세가 중병에 걸려서 옴짝달싹 못한다는 이야기만 믿고 영주의 소집령에 응했지, 건강해진 스코틀랜드 왕 로버트 1세에게 검을 들이댈 생각은 추호도 없었다. 결국 그들은 무기를 내던지고 달아났고, 후방에서 대량 탈영이 발생한 걸 본 전방의 무장병까지 동요한 끝에 달아났다. 부컨 백작은 군대가 제대로 싸워보지도 못하고 무너지는걸 보고 별 수 없이 잉글랜드로 망명했고, 로버트 1세의 스코틀랜드인들은 도주하는 적을 추격해 대거 살해했다.

그렇게 손쉽게 승리를 거둔 로버트 1세는 부컨 백작령을 대거 습격해 수많은 주민을 학살하고 가축을 도살했다. 이에 부컨 주민들은 코민 가문에 대한 충성 맹세를 철회하고 로버트 1세에게 복종했다. 그 후 로버트 1세는 모레이로 이동해 그곳 주민들의 환영을 받았고, 1308년 여름까지 스코틀랜드 북동부에서 엘긴, 포레스, 네언, 인버네스 성들의 복종을 받아냈고, 1305년 이래 코민 가문이 소유했던 블랙 아일의 어콰트 성과 타라데일 성을 접수했다. 이리하여 로버트 1세의 최대 정적이었던 코민 가문은 몰락했고, 로버트 1세는 스코틀랜드 하이랜드를 석권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