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개요
키움 히어로즈 소속 우완 투수 장필준의 선수 경력을 모아 놓은 문서.2. 아마추어 시절
유원상(1년 선배), 장효훈과 함께 천안북일고를 이끈 뛰어난 투수로 인정받았다. 특히 김광현, 정영일과 더불어 1988년생 중 전국구 투수 트로이카로 이름을 날렸고, 이 때문에 2007년 드래프트[1]때 한화 이글스가 장필준을 1차 지명했다. 그러나 전년도에 유원상을 잡는 데 5억 5천이라는 거액을 쓴 한화 이글스는 그에게 계약금으로 1억 8천~2억 원 선을 제시했으나[2] 장필준이 계약금을 2억 5천만 원을 요구해 결국 입단 협상이 결렬되었고, 북일고를 졸업[3]한 후 군 입대를 선언하며 상무에 입단하게 된다.
상무에서 2년을 복무[4][5]한 후 전역한 그에게 지명권을 가지고 있던 한화 이글스가 다시 계약을 제시했으나, 그는 결국 미국행을 선언해 버리며 로스앤젤레스 에인절스 오브 애너하임와 마이너 계약을 맺었고, 2년이 지났기 때문에 당연히 한화 이글스가 갖고 있던 장필준의 지명권은 날아가 버렸다. 마이너 리그 베이스볼에서 2011년까지 뛰었으나 별다른 활약을 하지 못하고 애너하임에서 방출당한 후, 국내 팀 입단을 하지 않고 곧바로 해외 팀과 계약했을 시 최종 소속 팀과의 계약이 종료된 시점으로부터 2년간 국내 팀에 입단할 수 없다는 조항[6]으로 인해 유예 기간이 끝날 때까지 독립리그 라스 크루시스 바케로스 Las Cruces Vaqueros, 호주 프로야구 리그 팀인 퍼스 히트에서 뛰었다.
3. 삼성 라이온즈
2013년 12월 팔꿈치 부상으로 오스트레일리아 리그에서 2경기밖에 등판하지 못했고, 토미 존 수술을 받아 재활하다가 삼성의 2차 1순위 지명을 받아 2014년 8월 27일 삼성 트레이닝 센터에 입소했다. 삼성이기에 지명이 가능했다는 평이 있다.여담으로 유원상이 한창 한화에서 삽질만 하다가 LG에 트레이드된 2011 시즌에 한화 팬들 사이에서는 "차라리 유원상 줄 돈으로 장필준 잡았어야지!"라는 이야기가 나오며 유원상이 배로 까이기도 했다.
2014년 9월 16일에 정식으로 계약을 마쳤으며, 야구규약 105조 4항에 따라 계약금은 없고 연봉도 최저 연봉[7]만 받는다. 이후 언론에 일절 모습을 드러내지 않고 조용히 재활에 전념했다. 그의 지명 후 언론에 공개된 첫 모습이 2015년 1월 신인 교육에서 찍힌 팀별 단체 사진에서였을 정도였다.
3.1. 2015 시즌
삼성 라이온즈 입단 후 훈련하는 모습. |
배영수가 FA를 통해 이적함에 따라 5, 6선발 후보로 언론에 이름이 오르내렸으나 토미 존 재활의 정도가 팀 기대에 못 미쳐 1군 스프링캠프 합류에 실패했다. 이후 성준 코치가 이끄는 괌 단기 캠프에 김건필, 박민규, 이승우와 함께 가기로 했음이 알려졌다.
6월 말 라이브 피칭에 돌입했으며, 7월 초 3군에 실전 등판을 나설 정도까지 올라왔다. 팀에서는 빠르면 후반기에 1군 등판할 수 있을 것으로 예상한다고.
8월 10일 한화 이글스와 퓨처스 경기에 선발 등판하여 1이닝 5실점 5피안타 1탈삼진을 기록했다. 1회는 삼자범퇴 처리했으나 2회에 아웃카운트를 하나도 잡지 못한 채 연속 5안타를 허용하며 3실점하고 이후 홍정우와 교체됐으며, 홍정우가 김태완과 황선일에게 적시타를 허용하며 승계주자까지 홈인, 자책점은 5점이 되었다. 최고구속은 141km/h. 사사구는 허용하지 않았다.
8월 1일 경기에서는 3이닝 7피안타 2삼진 2볼넷 3실점으로 패전 투수가 됐고, 22일 경기에서는 5⅓이닝 7피안타 6삼진 무사사구 2실점으로 마찬가지로 패전투수가 됐다. 8월 24일 어깨 피로 누적으로 피가로가 1군 엔트리에서 제외되면서 25일 1군 엔트리에 등록됐다. 공교롭게도 과거 질긴 악연이 있던 한화와의 2연전을 앞둔 상황에서 1군에 올라오게 됐는데, 22일 선발로 등판했기에 한화와의 2연전 동안 등판할 가능성은 낮다.
8월 30일이나 31일[8] 중으로 LG 트윈스전에 선발 등판한다. 상대가 비록 털릴 대로 털린 팀이지만, 원정 홈런 2등이라 유의해야 한다. 단 LG가 영 방망이가 죽어있어서...
재활을 끝내고 투구 수를 점차 늘려가던 중에 1군 투수 부족으로 콜업됐기에, 류중일 감독은 여유 있는 상황에서 등판시켰으면 좋았겠지만 이왕 등판하게 됐으니 3이닝만 막았으면 좋겠다고 했다. 결국 그것이 실제로 일어나며 2이닝만에 6실점(6자책)하며 조기 강판당하고 평균자책점 27.00을 찍었다. 다행히 팀 타선이 9-1 상황을 기어이 뒤집어버리며 ND 처리됐고, 그를 이어 구원 등판한 김기태가 타선의 지원을 받으며 3승을 챙겼다. 공교롭게도 LG 트윈스의 패전투수는 유원상이었다.
9월 5일 알프레도 피가로가 복귀하면서 대신 2군으로 내려갔다.
3.2. 2016 시즌
오키나와 캠프에 합류했다. 2월 20일 넥센전 5회에 등판하여 2이닝 1피안타 2탈삼진 1사사구 무실점 호투를 펼치며 승리투수를 차지했다. 이날 고무적인 것은 2015 시즌에서 떨어진 구위가 이 경기에서 많이 올라왔다는 점과 원래의 공격적인 투구와 제구력도 떨어지는 모습이 아니라는 점. 류중일 감독은 일단은 선발보다는 필승조를 맡길 계획이라고.2월 23일 경기는 졌으나 시속 150km/h까지 뿌리며 재활이 성공적으로 끝났음을 입증했다.
2월 27일 한신과의 연습 경기에서도 최고 148km/h를 뿌리며 선전했으나 연습 투구 중 팔꿈치에 통증을 느껴 결국 다음날 28일 귀국했다. 다행히 29일 검진 결과 단순한 통증으로 밝혀져 3월 1일 다시 오키나와로 돌아왔다. 선수단은 3월 3일 귀국하지만 차우찬, 윤성환, 안지만 등과 오키나와에 남아 1주일 가량 개인훈련을 하고 귀국했다.
팔꿈치 통증의 영향 때문인지 정규시즌 개막 후에는 오키나와 연습경기 때의 좋았던 구위를 보여주지 못하면서 시즌 전 기대치에는 영 못 미치고 있다. 그래도 류중일 감독이 시즌 전 공언한대로 기회는 꾸준히 받고 있는 편. 선발진의 이탈로 인해 원래 4월 28일 선발로 내정됐으나 27일 경기가 우천 취소되는 바람에 28일에는 27일 선발로 내정된 김건한이 그대로 등판했다. 대신 김건한이 2⅔이닝만에 강판되면서 두번째 투수로 등판해 3⅓이닝을 2실점으로 잘 막았고, 6회에 팀이 역전하면서 KBO 데뷔 첫 승을 기록했다.
6월 4일 한화전에서 7회초에 등판해 아웃카운트를 1개도 못 잡고 3실점을 하면서 패전투수가 됐고, 6월 8일 LG전에서는 3회말 2사에 등판해 삼진을 잡았으나 4회말에는 안타에 이어 몸에 맞는 공 2개를 내주면서 그대로 강판됐고 박근홍의 분식회계로 2실점했다. 5월 동안은 월간 평균자책점이 3.52로 5점대였던 4월보다는 나아진 모습을 보였지만 5월 27일 SK전에서도 0⅓이닝 3실점을 하는 등, 5월 말부터는 아웃은 못 잡고 실점하는 모습이 점점 많아지면서 6월 9일 1군 엔트리에서 제외됐다. 6월 26일 부진한 박근홍을 대신해 1군에 복귀했다.
8월 들어 140대 후반까지 구속이 올라왔고, 본인도 구위에 자신이 붙었는지 변화구 구사를 줄이고 속구 구사를 늘리면서 조금이나마 좋아진 모습을 보이고 있다.
2군에 부상으로 내려간 심창민 대신 임시마무리를 맡게되었다. 임시 마무리를 맡게 된 이후의 성적은 4세이브를 기록했고 현재까지는 세이브 상황에서는 세이브를 모두 기록하였다. 심창민이 1군에 복귀한 뒤에도 심창민이 컨디션 조절할 동안 계속해서 마무리직을 맡게 되었다. 그러나 제구력에서 난조를 보이면서 불안한 모습을 보였고, 심창민이 복귀한 뒤에도 심창민의 몸상태가 100%가 아닌지라 마무리를 맡다가 9월 9일 롯데전에서 4대4 동점인 9회말에 등판해 끝내기 홈런을 허용한 뒤 셋업으로 복귀했다.
9월17일 블론세이브를 저질러 팀의 패배에 일조했다.
이렇게만 보면 시즌을 완전히 말아먹은 것 같지만 마당쇠 역할을 하면서 나름대로 분투한 시즌이었다. ERA가 5.12인데, 조정 방어율이 102.9로 최소한 리그 평균급의 투수는 됐다는 것이다. 이제 풀타임 1년 차이기도 하고. 어찌됐든 구속이 나오는 날의 구위는 꽤나 수준급이었기 때문에 삼성 팬들은 내년에 더 나은 활약을 해 주길 기대하고 있다.
시즌 종료 후, 2017년 연봉이 6,500만원으로 전년 2,800만원에서 무려 132% 인상되었다. 전년 연봉에 각각 100% 인상된 구자욱, 백상원보다 높은 인상률을 기록하면서 2017년 삼성 라이온즈 선수단 연봉 인상비율에서 1위를 차지했다. 여러모로 어려운 팀 불펜 상황에 리그 평균급의 투구를 보여주며 제 역할을 다해준 것에 대해 프런트가 좋은 평가를 내리고 있는 듯.
3.3. 2017 시즌
자세한 내용은 장필준/선수 경력/2017년 문서 참고하십시오. |
3.4. 2018 시즌
자세한 내용은 장필준/선수 경력/2018년 문서 참고하십시오. |
3.5. 2019 시즌
자세한 내용은 장필준/선수 경력/2019년 문서 참고하십시오. |
3.6. 2020 시즌
자세한 내용은 장필준/선수 경력/2020년 문서 참고하십시오. |
그리고 이 시즌부터 장필준은 하락세에 빠진다
3.7. 2021 시즌
자세한 내용은 장필준/선수 경력/2021년 문서 참고하십시오. |
3.8. 2022 시즌
자세한 내용은 장필준/선수 경력/2022년 문서 참고하십시오.3.9. 2023 시즌
자세한 내용은 장필준/선수 경력/2023년 문서 참고하십시오.3.10. 2024 시즌
자세한 내용은 장필준/선수 경력/2024년 문서 참고하십시오.4. 키움 히어로즈
2024년 12월 5일, 키움 히어로즈에 영입되었다. 계약 기간 1년에 연봉 4000만원. #4.1. 2025 시즌
5. 국가대표 경력
5.1. 2017 아시아 프로야구 챔피언십
경기 | 선발 | 이닝 | ERA | 승 | 패 | 홀드 | 세이브 | 피안타 | 피홈런 | 실점 | 자책점 | 볼넷 | 삼진 |
2 | 0 | 2⅓ | 0.00 | 0 | 0 | 1 | 1 | 2 | 0 | 0 | 0 | 0 | 6 |
|
2017 아시아 프로야구 챔피언십에서 끝내기 삼진을 잡고.[9] |
생애 첫 국가대표로 선발되었다. 원래 나이규정으로만 따지면 승선이 불가능하지만 프로입단 기준으로 장필준이 해당되기 때문에 국가대표팀에 합류했다.
1차전에서 8회말을 안타 하나 맞고 아웃카운트를 모두 삼진으로 막아냈다. 그러나 이후 김윤동, 함덕주, 이민호의 부진으로 인해 대역전패 당하면서 결국 선동열 감독은 김윤동 대신 장필준을 마무리 투수로 보직변경을 하였다.
대만전에선 8회 2사 2,3루에 나와서 삼진을 잡아주면서 위기를 벗어났다. 그리고 9회초에도 마운드에 올라와 안타 하나를 1사후 허용했지만 이후 두 타자 연속 삼진으로 솎아내며 1⅓이닝 무실점으로 대표팀의 대회 첫 승을 마무리짓는 세이브를 거뒀다. 지금까지 잡은 7개의 아웃카운트 중 6개가 삼진이다. 이러한 대활약을 펼쳐주면서 국내 야구팬들에게 수많은 칭찬을 받고 있다.
대만전까지의 성적은 2⅓이닝 1피안타 1홀드 1세이브 6K. 결승전은 완패한 관계로 장필준은 결장했다.
5.2. 2018 자카르타-팔렘방 아시안 게임
아시안게임 엔트리 교체 때 허리부상이 있던 정찬헌의 대체선수로 국가대표팀에 승선했다.아시안게임에서의 최종 성적은 4이닝 1실점 2피안타 1사사구 4K.
6. 연도별 주요 성적
6.1. MiLB
- 한 연도에 동일 구단 산하 여러 레벨의 기록이 존재할 경우, Rk → A- → A → A+ → AA → AAA 순으로 서술.
역대 기록 | ||||||||||||||||
<rowcolor=#fff> 연도 | 소속팀 | 경기수 | 이닝 | 승 | 패 | 세 | 홀 | 승률 | ERA | 피안타 | 피홈런 | 4사구 | 탈삼진 | 실점 | 자책점 | WHIP |
2009 | AZL 에인절스(Rk) | 14 | 82⅓ | 8 | 3 | 0 | 0 | .727 | 3.83 | 77 | 5 | 16 | 72 | 42 | 35 | 1.06 |
2010 | 오렘 아울스(Rk) | 15 | 75 | 2 | 3 | 0 | 0 | .400 | 3.96 | 88 | 7 | 21 | 39 | 49 | 33 | 1.35 |
랜초쿠카몽가 퀘이크스(A+) | 2 | 10 | 1 | 0 | 0 | 0 | 1.000 | 2.70 | 10 | 1 | 1 | 9 | 4 | 3 | 1.10 | |
2010 시즌 합계 | 17 | 85 | 3 | 3 | 0 | 0 | .500 | 3.81 | 98 | 8 | 22 | 48 | 53 | 36 | 1.35 | |
2011 | 오렘 아울스(Rk) | 1 | 6 | 1 | 0 | 0 | 0 | 1.000 | 0.00 | 1 | 0 | 1 | 3 | 0 | 0 | 0.33 |
시더 래피드 커널스(A) | 14 | 74⅔ | 2 | 6 | 0 | 0 | .250 | 5.06 | 89 | 5 | 32 | 45 | 51 | 42 | 1.54 | |
2011 시즌 합계 | 15 | 80⅔ | 3 | 6 | 0 | 0 | .333 | 4.69 | 90 | 5 | 33 | 48 | 51 | 42 | 1.45 | |
MiLB 통산 (3시즌) | 46 | 248 | 12 | 12 | 0 | 0 | .500 | 4.10 | 265 | 18 | 71 | 168 | 146 | 113 | 1.29 |
6.2. KBO
- 진한 표시는 리그 5위 내 기록.
장필준의 역대 KBO 기록 | ||||||||||||||||
<rowcolor=#fff> 연도 | 소속팀 | 경기수 | 승 | 패 | 세 | 홀 | 이닝 | ERA | 피안타 | 피홈런 | 볼넷 | 사구 | 탈삼진 | WHIP | ERA- | sWAR |
2015 | 삼성 | 2 | 0 | 0 | 0 | 0 | 4 | 15.75 | 10 | 2 | 0 | 0 | 4 | 2.50 | 327.46 | -0.26 |
2016 | 56 | 4 | 6 | 4 | 9 | 72 | 5.13 | 82 | 9 | 26 | 5 | 57 | 1.50 | 94.22 | 1.60 | |
2017 | 56 | 4 | 8 | 21 (5위) | 3 | 67⅓ | 4.68 | 82 | 6 | 26 | 4 | 82 | 1.60 | 87.95 | 1.22 | |
2018 | 61 | 5 | 5 | 6 | 13 | 66⅓ | 4.34 | 65 | 6 | 25 | 6 | 74 | 1.36 | 77.19 | 2.05 | |
2019 | 61 | 3 | 3 | 11 | 15 | 69⅔ | 3.62 | 64 | 7 | 33 | 3 | 53 | 1.39 | 79.65 | 1.12 | |
2020 | 31 | 0 | 3 | 0 | 4 | 36 | 5.75 | 46 | 6 | 16 | 0 | 26 | 1.72 | 112.66 | 0.38 | |
2021 | 41 | 0 | 0 | 0 | 2 | 34⅔ | 7.27 | 46 | 4 | 27 | 1 | 24 | 2.11 | 155.79 | -0.75 | |
2022 | 19 | 0 | 3 | 0 | 0 | 30 | 5.70 | 38 | 1 | 15 | 3 | 17 | 1.77 | 134.45 | 0.02 | |
2023 | 17 | 1 | 1 | 0 | 1 | 19⅓ | 7.91 | 28 | 2 | 12 | 2 | 11 | 2.07 | 184.80 | -0.38 | |
2024 | 1 | 0 | 0 | 0 | 0 | ⅓ | 135.00 | 5 | 0 | 0 | 0 | 0 | 15.00 | 2592.79 | -0.16 | |
KBO 통산 (10시즌) | 345 | 17 | 29 | 42 | 47 | 399⅔ | 5.29 | 466 | 43 | 180 | 24 | 348 | 1.62 | 106.62 | 4.83 |
[1] 2천년대 들어 1차 지명을 2명 할 수 있었던 유일한 연도이다.[2] 고2 까지는 동기생 중 김광현, 정영일과 함께 전국구 투수 유망주 트로이카로 평가받았으나, 이후 부상으로 평가가 약간 하락하였다. 무엇보다도 앞서 말했듯이 전년도에 5억 5천이라는 거액을 써서 입단시킨 유원상의 실패 사례도 한 몫 했다. 한화 이글스가 최종적으로 제시한 계약금도 이에 따른 것이다.[3] 정확히는 졸업도 하지 않은 상태인 고3 신분에서 11월 중에 입대한 후 백일휴가 때 졸업식을 참가했다.[4] 복무기간은 '06.11.27~'08.11.26[5] 복무기간을 보면 고등학교를 졸업하기도 전에 입대하여 전역 당시 나이가 만 20살밖에 되지 않는데, 일반인으로 쳐도 상당히 어린 나이에 군 복무를 마친 편이고, 야구선수로서는 아주 빨리 병역문제를 해결한 축에 속한다. 덕분에 스프링캠프를 떠날 때 나이가 꽉 찬 미필 선수들의 발목을 잡기도 하는 해외여행허가를 받을 필요가 없다.[6] 미국 및 일본의 독립리그와 오스트레일리아 리그 등 군소 리그들은 규제 대상이 아니다.[7] 2014년까지 2,400만 원이었으나 2015년부터 2,700만 원으로 인상됐다.[8] 우천 연기시 31일, 연기될 가능성이 높다.[9] 일본과의 결승전 당시 SBS Sports의 객원해설을 맡고 있었던 이승엽은 장필준이 경기를 마친 후 저렇게 포효를 하는 모습은 처음 봤다고 회고를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