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11-03 18:20:41

저하(호칭)

왕족 또는 귀족에 대한 경칭 (서열순)
폐하(陛下) / 성하(聖下) 전하(殿下) / 예하(猊下) 저하(邸下) / 은하(恩下) 합하(閤下) / 각하(閣下)
대하(臺下) / 절하(節下) 궤하(机下) / 안하(案下) 좌하(座下) / 귀하(貴下) 족하(足下)
조선의 용어 (서열순)
마마(媽媽) 마노라(抹樓下) 자가(自家) 대감(大監)
영감(令監) 원님(員님) 나리(進賜) 선생(先生)

1. 개요2. 설명3. 사용례4. 여담5. 직역으로서 恩下

1. 개요

, Your/His(Her) Grace[1]

조선에서 왕세자왕세자빈에게 사용한 경칭.

2. 설명

고려와 조선에만 존재했던 호칭으로 , 고려 이전의 신라 등이나 혹은 중국, 일본, 베트남 등의 주변국에는 존재하지 않은 호칭이다. 고려 시대에는 공작이나 후작 등에 봉해진 신하에게 사용했지만 조선 시대에 들어서는 왕세자와 왕세자빈의 호칭으로 변하였다.

원래 고려에서는 황태자를 전하로 불렀고 다른 왕자들도 전하라고 불렀다. 따라서 이러한 왕족에게 공작·후작·백작 작위를 내릴 경우 이들의 호칭은 '영공 전하(殿下)'였던 것이다. 하지만 왕족이 아닌 신하도 공작·후작·백작 등에 책봉되기도 했으므로, 왕족과의 호칭을 구분할 필요가 있다보니 등장한 호칭이 '영공 저하(邸下)'였다.

'저(邸)'라는 글자는 본래 제후가 임금을 알현하기 위해 상경하였을 때 머무는 집을 의미한다.

인터넷 상에서는 조선 때 통용된 건물의 격을 구분하는 어휘인 전(殿)-당(堂)-합(閤)-각(閣)-제(齋)-헌(軒)-루(樓)-정(亭)의 순서에 따라 호칭의 격이 구분되었다고 주장하는 경우가 많으며, '저하'에 쓰이는 '저(邸)'는 '궁(宮)'이나 '당(堂)'과 동격으로 대입하기도 한다. 하지만 궁(宮)은 전(殿)과 그 부속건물을 아우르는 통칭이거나 전과 동격의 건물군을 가리키는 어휘이며, 한자문화권에서는 '전(殿)'과 '궁(宮)' 아래의 격으로 '원(院)'과 '부(府)'라는 관저 개념이 존재한다. 조선시대에는 '원(院)'이 지방에 설치된 공공여관을 가리키는 개념으로 주로 쓰이면서 이러한 서열 구분에서 빠지게 된 것이다. 이런 오해의 연장으로 '당하(堂下)'라는 표현을 '저하'처럼 호칭으로 쓰인 것으로 오인하는 경우가 있는데, 이는 조선시대에 당하관(堂下官)의 약칭으로 쓰인 표현이다. 합하각하 또한 건물의 격에 따른 호칭이 아니라 단순히 정승의 집무처를 은유한 어휘로 쓰였던 것이며, 원래 고위 관료들을 지칭할 때 쓰인 표현은 '대하(臺下)'였다. 그 외에 사신이나 장군 등 군주에게 부절(符節)을 수여받은 고위 관료를 대상으로 '절하(節下)'라는 호칭이 쓰였다.

또한 인터넷에서는 사신을 뜻하는 곡하(穀下), 장군을 뜻하는 막하(幕下)·휘하(麾下)·당하(幢下)·기하(旗下)·마하(馬下), 부모를 뜻하는 슬하(膝下) 등이 호칭으로도 쓰인다는 말이 퍼져있으나, 이런 표현들은 호칭으로 쓰였던 게 아니라 어느 대상의 관할 아래에 있음을 은유하는 표현으로 쓰인 것이다.

그러나 원 간섭기 이후 고려 임금의 격이 낮아지면서 짐(朕)은 고(孤)로, 사(赦)는 유(宥)로, 폐하(陛下)는 전하(殿下)로, 태자(太子)는 세자(世子)로 각각 한 단계씩 호칭의 격도 따라 낮추어지며 자연히 세자의 호칭은 '저하'가 되고 말았다. 이것이 조선시대까지 이어져 고려와 조선의 독특한 왕세자 호칭으로 고착화하였다.

중국에서 황태자가 아닌 황자나 황태손의 경칭이 저하라고 아는 사람들이 많은데 잘못된 것이다. 중국 기준으로는 황자나 황태손 역시 '전하(殿下)'로 불렀다. 조선에서는 왕세자 부부만 '저하'로 호칭했다보니, 왕세손이 등장하면 그 부모와 동일하게 '저하'로 호칭하게 되는 것에 부담을 느낀 신하들이 많았고, 때문에 왕세손이 등장할 때마다 임의로 '각하'나 '합하'로 낮춰 부르다가 논쟁이 발생하길 반복했다. 정식 후계자 이외의 왕자나 왕손을 후계자보다 낮춰 호칭한 것은 조선의 사례가 유일했다.

조선 중후기로 가면 수빈 박씨흥선대원군등 일부 예외도 생긴다. 원래 조선 궁중 호칭은 우선 혼용되다가 논의를 거쳐 바로잡히는 경우가 종종 있고, 반대로 존중이 필요할 시엔 높여부르는 등 예외가 많았기 때문에 호칭의 사용례를 알고 싶을 땐 특정인의 구체적인 사례를 통하여 호칭을 확인하는 것이 적합할 것이다.

영어식 표현인 Your Grace의 경우, 비단 공작뿐만이 아니라, 대주교 저하를 부를때도 사용한다.

조선시대 기준 각하~저하는 모두 무품이며, 대감, 합하로 불리는 정2품~정1품 관료보다 더욱 높은 특별 신분이다. 왕자공주들이 무품으로, 왕의 적자녀는 무품 상계, 서자녀는 무품 하계다. 덧붙여 왕은 상감(上監)이다. 조선시대 기준으로 세자저하이며, 대원군 혹은 대군은 합하이며, 부원군 혹은 왕세손각하에 해당하나, 세자 저하와 세손 각하를 제외한 일반 왕자들인 대군이나 군에게는 합하와 각하 등이 허용되지 않고 자가라고만 경칭했으며, 공주나 옹주의 경칭으로도 자가를 사용했다. 영감, 대감, 합하와 각하 등은 실제 관료로서 품계를 받아 직무를 맡은 사람에게만 쓰는 용어기 때문이다. 흥선대원군의 경우엔 원래 대원군(대원위) 합하였으나, 말년에 대원군 저하 혹은 국태공 저하라고 불렸으며 독립신문에 따르면 대원군 전하라고도 불렸었다.

3. 사용례

예종 9년(1114) 6월. 예의상정소(禮儀詳定所)에서 다음과 같이 건의했다.

“근래 조정(朝廷) 안에서 오가는 표장(表狀)과 서간(書簡)에 사용하는 칭호가 바르지 못하니, 이는 명분을 바르게 하는 뜻에 어긋납니다. 저희들이 바라옵건대, 올리는 모든 표문에서는 성상폐하(聖上陛下)라 칭하고 전(箋)에서는 태자전하(太子殿下)라 칭하며, 제왕(諸王)은 영공(令公)이라 하고, 중서령(中書令)·상서령(尙書令)은 태사령공(太師令公)이라 하며, 양부(兩府) 집정관(執政官)은 태위(太尉)라 하고, 평장(平章)·사공(司空)·참정(參政)·추밀(樞密)·복야(僕射)는 각각 현재의 직위에 따라 이를 칭하며, 3품 이하의 원료(員寮)는 모두 상공(相公)이라 칭하지 말고 직접 관명(官名)을 부르게 하십시오.”
동아대학교 석당학술원 역주, 2008, 『국역 고려사』, 경인문화사, 공문서를 주고받는 규정(公牒相通式)

고려시대 문종 이후 '영공(令公)'은 공·후·백으로 봉작된 왕족이나 재상급 고위 관료들을 지칭할 때 사용하는 공식 표현이 되었다. 이에 따라 왕족은 "영공 전하(殿下)"로 호칭되었으며, 작위를 받은 신하는 "영공 저하(邸下)"로 불리게 된다.

《동국이상국집》 19권에는 이규보최충헌에게 보낸 서간문 등을 보냈을 때 "영공 저하(邸下)", "영공 합하(閤下)", "영공 각하(閣下)" 등으로 호칭한 사례가 나와 있다. 최충헌의 경우 작위와 식읍을 수여받고 자신만의 부(府)를 운영하는 '제후' 신분이었기에, "영공 저하" 또는 "저하"로 불린 것이다. 또한 《동국이상국집》의 사용례를 통하여, 고려 당시에는 '저하'가 합하나 각하보다 높은 격의 호칭은 아니었음이 파악된다.

이후 원 간섭기에 원나라의 요구에 따라 충선왕이 제후국 관제를 도입하면서, 태자(太子)를 세자(世子)로 낮추고, '저하'를 세자 부부의 전용 칭호로 부르게 했다. 이후 조선에서도 이때 제정된 격식을 그대로 도입했다. '저하'가 왕세자 부부의 전용 칭호로 쓰이게 되면서 고위 관료들에게 사용할 수 있는 '합하'나 '각하'가 '저하'보다 낮은 격의 호칭이 된 것이다.

정조사도세자 사후 세손임에도 이름을 고쳐 동궁 마마, 왕세손 저하로 불렸다.[2] 영조가 고쳐 정리한 족보에 마지막 항을 추가할 때도 ‘사 왕세손 저하(嗣王世孫邸下)’라고 쓰게 하였다.

조선시대의 경우 혜경궁이 정조 즉위 이후 자궁(慈宮)[3]이라는 궁호를 받게 되면서 공식 호칭으로 저하라고 불렸다.[4]

왕세자의 생모 자격으로 아들이 즉위하자 수빈 박씨 또한 후궁이지만 자궁(慈宮) 혹은 '수빈 저하'라고 불렸다. 왕의 사친인데다가 수빈 박씨는 간택을 거쳐 입궐한 무품빈이어서 세자빈과 위상이 동일했기 때문이다.[5]

흥선대원군 역시 흔히 알려진 '대원위 합하(大院位閤下)'뿐만 아니라 '국태공 저하(國太公邸下)'로도 많이 불렸다. 그 밖에도 승정원일기의 기록을 보면 죽은 대한제국의 황족인 완평군 이승응(李昇應)을 저하로 부른 기록이 존재하며 # 특이하게도 '친왕' 시절 영친왕을 저하로 부른 기록도 있다. #

4. 여담

  • 왕세자를 저하로 불렀던 전통 때문인지 최근 종종 한국서브컬처 문학에서 왕세자/왕세녀를 저하, 그 아래의 왕자나 왕녀를 전하라고 부르는 것을 볼 수 있는데 전하는 저하보다 상급의 경칭이므로 왕위 계승자와 왕위 계승자가 아닌 왕족의 경칭을 구별하고자 한다면 이는 완전히 틀린 표현이다. 당장 조선시대에 왕을 주상전하, 왕세자를 세자저하라고 불렀음을 생각해보면 알 수 있을 것이다. 굳이 저하와 전하의 2가지로 구별을 한다면, 당연히 급이 더 높은 전하라는 경칭은 왕위 계승자에게 쓰고 기타 왕족들을 저하라고 불러야 한다.

5. 직역으로서 恩下

성공회에서 대주교(Archbishop)의 경우에는 은하(恩下 = Your Grace)라고 특별히 칭하기도 한다.[6]

하지만 이는 사실 Grace(은혜로운)의 뜻을 직역한 것에 불과하다. 왕족이 아닌 가신으로서 공작 저하의 경우 똑같이 Grace를 쓰는 데 이는 저하로 번역된다. 우리나라에서 전통적으로 공작에 대해 저하라고 경칭해왔고, 영국 공작의 경칭도 Your Grace인 걸 고려하면 공작이랑 동급인 대주교의 경칭에 대해서도 똑같이 저하라고 번역하는 것이 옳을 것이다.[7]


[1] 귀족의 경우.[2] 영조 38년 7월[3] 대비의 명칭은 한단계 높은 자전.[4] 정조 2년 3월[5] 비슷하게 대한제국 당시 황귀비는 '황귀비 전하'라고 불렸다. 황귀비황태자의 생모이며 황후를 대신하는 위치였기 때문이다.[6] 가톨릭에서는 대주교는 주교와 같이 각하를 쓴다. 정교회에서는 불교에서 유래한 경칭인 '예하'를 쓰기도 한다.[7] 추기경의 경우도 예하라고 오역되는 경우가 있는데, 제후국의 군주랑 동급이므로 전하가 올바른 번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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