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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모체라고 볼 수 있는 전북 버팔로가 1994시즌에 K리그에 참가했으나 재정 문제로 시즌 후 공식적으로 해체했다.1994년 12월 현대자동차 지원 아래 독립법인체인 전북 다이노스 축구단을 창단했다. 2000년에 현재의 명칭으로 변경해 오늘날에 이르고 있다.
공식적으로 한국프로축구연맹은 전북 버팔로와는 별개의 구단이라고 규정하므로 역사와 기록을 승계하지 않고 있으며 구단의 공식적인 연혁 또한 전북 다이노스의 창단부터 시작한다.
2. 호남 최초의 프로 축구단 전북 버팔로
1991년 국내 최초로 컨소시엄 형태의 프로 축구단을 표방한 전라 진돗개프로축구단이 출범을 선언했으나, 자금 부족으로 처음 목표로 잡은 1992년 리그 참가가 무산되었고, 1993년 1월 스포츠 용품 업체인 푸마를 끌어들이면서 완산 푸마[1]로 구단명을 변경하여 그 해 리그 참가를 노렸으나 구단을 둘러싼 악성 루머, 제 7구단 입단이 예정된 선수들의 드래프트 거부 등으로 곤란을 심하게 겪었다. 이로 인해 황선홍[2]은 완산에 지명되었지만 이흥실 등의 선수들을 상대로 한 사상 초유의 4+4 이적 및 트레이드 합의로 포항 아톰즈에 입단하게 된다. 완산 푸마는 결국 선수 등록 시한을 지키지 못하고 리그 참가를 이듬 해로 연기해야 했고, 이 과정에서 선수단 월급을 엄청나게 체불한 사실이 알려졌다.완산 푸마 엠블럼 | 전북 버팔로 엠블럼 |
3. 전북 버팔로의 침몰
하지만 만성적인 자금 부족 문제는 시즌 중에도 선수단에게 고스란히 부담으로 전가되어 훈련장은커녕 선수단 숙소도 마련하지 못했고, 홈경기 수입으로 원정 비용을 마련하는가 하면 담당 기자들이 출장비를 모아 전북 버팔로 선수단의 식사비를 마련하는 일까지 벌어졌다. 1994 히로시마 아시안 게임을 앞두고 국가대표 선수들을 비롯한 다른 구단 선수단에서 전북 버팔로를 돕는 모금 운동을 벌이기도 했다.당시 구단주였던 문수기 보배주조 대표는 사비를 4억 원이나 들여 구단을 지원했으나 결국 힘에 부치기 시작했고 메인 스폰서였던 보배주조 내부에서도 전북 버팔로 지원에 대해 부정적인 견해가 많았다. 결국 1994년 9월 6일 연맹 이사회에서 구단 해체를 전제로 그 해에 한하여 전북 구단의 운영을 맡는다는 결정이 내려졌다. 즉 이때부터 해체될 때까지 전북 버팔로는 K리그 역사상 전무후무한 연맹 직영 구단이었다.
4. 전북 다이노스로 재탄생
전북 다이노스 엠블럼 |
전북 현대 다이노스 엠블럼 (1997~1998) | 전북 현대 다이노스 엠블럼 (1999) |
이 당시만 해도 현대그룹은 전북 현대 다이노스와 울산 현대 호랑이 등 K리그 두 개 구단을 동시에 운영했다. 지금은 현대그룹이 계열 분리를 거치며 규모가 줄어들었지만 정주영 회장이 살아있던 당시에는 축구단 두 개뿐만 아니라 현대 야구단과 현대 농구단까지도 동시에 운영할 정도로 현대그룹의 사세가 매우 강했다. 그리고 현대家의 일원인 정몽준이 대한축구협회장에 재임하며 대한민국 축구계를 꽉 잡고 있었다. 현대자동차가 전북 현대 다이노스와 울산 현대 호랑이를 모두 운영하던 당시에는 울산의 유니폼에 엑센트 등 현대자동차의 제품 로고를 삽입하기도 했다. 그러나 1998년에 울산 현대 호랑이의 운영권이 현대자동차에서 현대중공업으로 넘기면서 1998년 후반기부터는 울산의 유니폼에서 더이상 현대자동차의 제품 로고를 볼 수 없게 됐다.
5. 전북 현대 모터스로 새로운 시작
2000년에 현재의 구단명인 전북 현대 모터스로 변경하며 모기업인 현대자동차의 이미지를 전면에 부각시켰다. 2006년에는 영문 표기 중 Chonbuk을 Jeonbuk으로 변경했다. 전북 현대 모터스 엠블럼 (2000~2005) | 전북 현대 모터스 엠블럼 (2006~2012) | 전북 현대 모터스 엠블럼 (2013~2017) | 전북 현대 모터스 엠블럼 (2018~ ) |
버팔로와 다이노스, 그리고 지금의 모터스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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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완산'은 전주의 옛 지명인 완산주에서 따온 명칭이다. 완산이라는 이름은 현재도 전주시 남부지역의 일반구 명칭으로 남아 있다.[2] 사실 이런 식으로 신생 팀의 지명을 피해 우회하는 경우가 많았다. 김대의의 경우 대전 시티즌에 지명되는 것을 피하기 위해 일본으로 건너갔다가 3년 뒤에 안전하게 귀국해 성남 일화 천마의 지명을 받는다.[3] 전북지역을 대표하던 소주 회사로 '보배소주'를 생산했다. 그러나 전북 버팔로 운영을 지원하던 당시에도 회사 사정은 녹록지 않았고 결국 1995년 회사가 부도를 맞게 된다. 이후 보배주조는 하이트맥주에 인수되어 하이트소주로 명맥을 이어갔으나, 그마저도 진로와 합병하고 하이트진로가 되면서 전북 소주 시장은 참이슬이 꽉 쥐고 있는 상태. 참고로 아랫동네의 대표 소주 회사인 보해양조와는 다른 회사이다.[4] 이 과정에서 메인 스폰서인 제우정보의 후원 금액이 당초 알려진 12억이 아닌 3억에 불과했음이 드러났다.[5] 당시 언론보도를 보면 현대자동차와 ㈜현양 측에 전북 다이노스의 창단을 주선한 것은 1993년 대한축구협회 회장이 된 정몽준이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쉽게 말해 현대家에서 위기에 빠진 전북을 건져낸 셈이다.[6] 김덕중, '잊혀진 K리그 제7 구단', 《스포츠 2.0》제91호(2008.2.18); 홍재의, <K리그 꿈의 구장> 제9, 10탄 '전주종합운동장'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