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11-10 20:10:19

정용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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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제19대 공군참모총장
정용후
鄭用厚 | Jeong Yong-ho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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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생 1934년 7월 26일
경기도 파주군
사망 2004년 5월 24일 (향년 69세)
서울특별시
직업 前 군인, 관료
복무 대한민국 공군
1958년 ~ 1990년 (32년)
재임기간 제19대 공군참모총장
1989년 ~ 1990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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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우자 미상
자녀 미상
학력 공군사관학교 (졸업)
임관 공군사관학교 (6기)
최종계급 대장
최종보직 대한민국 공군참모총장
주요보직 제15전투비행단 작전부장
공군본부 기획관리참모부 정책기획처장
공군본부 기획관리참모부 차장
제15전투비행단장
제30방공관제단장
한미연합사 정보참모부장
공군본부 인사참모부장
공군교육사령관
공군참모차장
경력 미상 }}}}}}}}}

1. 개요2. 생애3. 제19대 공군참모총장
3.1. 율곡사업과 참군인의 자세

[clearfix]

1. 개요

대한민국군인. 1989년부터 1990년까지 공군참모총장을 지냈다.

2. 생애

1934년 7월 26일 경기도 파주군에서 태어났다. 서울 용산고등학교를 졸업했고 1954년에 공군사관학교 6기로 입학해 1958년에 임관하였으며, 특기는 조종이었다. 임관 이후 공군 전투비행단장, 방공관제단장, 한미연합사 정보참모부장, 공군 인사참모부장, 교육사령관, 참모차장을 지냈다.

3. 제19대 공군참모총장

1982년에 장성으로 진급했고, 7년이라는 시간 이후에 노태우 정부 시절 1989년에 공군참모총장으로 승진했다. 그러던 중 1990년에 공군 진급 비리 관련 사건으로 조사를 받다가 경질되었다.[1] 보안사에서 25일간 강도 높은 조사를 받았고 조사 이후 그는 이취임식은 물론, 전역식도 열지 못하고 사실상 강제전역해야만 했다. 후임자는 한주석 대장이었다.

3.1. 율곡사업과 참군인의 자세

파일:정용후 공군대장.jpg

노태우 정부 이후에 출범한 김영삼 정부 시절인 1993년에 진실이 밝혀지는데 진급 비리가 아닌 전투기 도입 사업 때문이었다. 공군 측에서는 F-18을 밀었으나 청와대실세들은 F-16을 주장했고 이를 받아들이지 않은 그가 경질된 것. 후임자로 총장에 오른 한주석 장군은 F-16으로 기종을 바꾼다. 1993년의 이 폭로로 율곡사업에 대한 대대적인 감사가 벌어진다. 이 사건은 창군 이래 최악의 군수비리로 이름을 떨치게 된다. 그리고 1993년에는 하나회도 모가지가 신나게 날아갔다. 물론 하기의 내용과 같이 절차상의 하자나 비리와는 별도로 공군이 F-16을 도입했던 건 이후 기체 운용상이나 개량 상황에서 F-18에 비해 더 유리한 상황을 만들어 주었다.

세세하게 분석해 보면 이때 F/A-18이 원안대로 도입되었다면 비싼 만큼 성능도 F-16 보다 뛰어난데다(AIM-120 암람 외에도 AIM-7 스패로우 운용과 AGM-84 하푼 및 AGM-84E SLAM 운용이 별도의 업그레이드 없이도 가능했다) 그 후 FX 사업에서 F-15와 라팔을 놓고 벌어진 국론분열의 난맥상 없이 F/A-18의 후계기를 도입한다는 명분을 들어 매끄럽게 F/A-18E/F 슈퍼호넷과 EA-18G 그라울러를 차세대 전투기로 도입할 수 있었을 것이란 아쉬움을 민간인 아마추어 매니아층의 일부에서 보이기도 했다. 레거시 호넷-슈퍼 호넷 연계론은 심지어 사업 당시에 KIDA의 보고서에까지 언급된 바 있다. 또한 2021년 한국형 경항공모함 사업이 결정된 후에는 그때 함재기 출신인 F/A-18을 도입했더라면 함재기를 새로 살 필요 없이 경항모가 아닌 중형항모를 보유하는 게 가능했을텐데 아쉽다는 주장도 있다. 그러나, 호넷과 슈퍼호젯은 쏘나타1과 LF쏘나타만큼이나 다른 기종이기 때문에 F-18이란 번호만 같지 다른 비행기다.[2] 그래서 호넷은 F-16 블럭 52를 블럭 70 사양으로 업그레이드하는 방식과 동일하게 슈퍼호넷으로 올리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래서, 만약 80년대말에 호넷을 결정했다 해도 빨라야 2천년을 전후한 FX사업때나 구매후보에 올랐을 슈퍼호넷과 연결짓는 것은 완전히 무리.

이후에 보면 F-16이 버전업을 통해 암람 미사일을 운용하게 된 상황에서 F/A-18의 절대적 우위는 사라진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F-16이 더 대중적인 기종이며 가성비가 더 높고, 주 사용자인 미 공군의 백업도 완벽한 측면에서 F-16의 배치가 대한민국 공군의 전력을 약화시켰다고 보긴 어려워졌다.

"당시 국내 주력기 선택시 도그 파이팅만 강한 기체, 단순히 무장탑재량만 높은 기체보다는 전천후 작전 수행이 가능한 기체가 필요 하였다. 호넷을 도입했다면 팬텀은 제때 퇴역했을 것이다"는 이야기가 이전 버전에 적혀 있었는데, 공군이 하푼다는 걸 꺼리는 걸 보면 만약 F-18에 훨씬 무거은 팝아이를 달 수 있어도 공군이 그렇게 운영하지 않았을 것이다. 팬텀은 호넷보다 크고 중량물을 달기에 낫기 때문에 퇴역시키지 않았을 것이다. 그리고, 저것은 당시 공군의 실정을 전혀 모르는 2000년대의 상상이다. KFP사업을 진행하던 당시 공군이 가진 전투기는 F-4가 하이급이었고 (피스브릿지사업으로 소량 들여온 F-16 32대가 있고) 그 아래에 F-5, 그리고 그 아래에 F-86D가 있었다. 당연히 F-16/F-18에 기대된 역할은 당시 기준으로 현대적인 방공전투기와 제공전투기지 장거리 전폭기 획득을 우선삼아 KFP사업을 시작한 게 아니다.[3]

이후 F-18호넷은 미국 해군만이 운용하는 데다 슈퍼호넷을 새로 개발하며 구형을 퇴역시킴으로써 호넷의 개량길이 끊어졌으며, 다른 F-18A/B/C/D 보유국도 별다른 개량을 하고 있지 않다. 반면 F-16 팰콘은 미군도 지금까지 운영하며 전세계에서 대량구매해 운용하게 된 관계로 유지보수하기 좋은 데다, 호넷과 슈퍼호넷과는 달리 국군 구매시점부터 지금까지 팰컨의 블럭은 기체 기본은 공유하고 있어 개량도 수월하다.[4]

결론적으로 말해, KFP및 FX 사업의 기종선정은 그 과정에서 미숙한 의사결정과 방산비리가 있었지만, 결과적으로는 선택이 잘 된 몇 가지 사례 중 하나다. 물론, 그 과정에 대해서 시비를 따지고 개선할 것은 당연히 논의해야 할 별개의 문제다. 다음에도 운이 좋기를 바랄 수는 없는 일이기 때문이다.

2004년에 향년 70세 일기로 별세했고 고인의 뜻에 따라 시신은 대학병원에 기증되었다. 그의 손자가 공군 학사사관후보생(131기)로 공군에 복무 중이다.
[1] 당시 뉴스기사[2] F-15와 F-16 정도의 차이는 아니더라도 F-18E/F 자체가 미 해군에서 기존 F-15와 같은 하이급 전투기였던 F-14를 대체하기 위해 제작되었기 때문. 적어도 F-15C/D와 F-15E(F-15K 기반기) 간 차이보다는 크다.[3] F-4를 대체하는 장거리 전폭기를 위한 사업은 이후 FX 사업으로 별개 추진되어 1~2차로 F-15K가 도입되었으며, 3차로 F-35가 선정되어 도입 중에 있다.[4] 대만은 대한민국 공군의 KF-16(F-16C/D BLOCK 50/52)은 물론이고 F-16PB (F-16C/D BLOCK 30/32) 보다도 구형 버전인 F-16A/B BLOCK 20을 가지고 있었으나, 최근 보유 F-16을 최신형인 F-16V BLOCK 70/72로 개량하고 있다. 대한민국 공군도 동일 개량 사업을 진행 중. 즉, F-16은 모든 BLOCK이 기본 뼈대를 공유하기 때문에, 버전 상관없이 다 동일 내용의 개수가 가능하다. 미 공군 또한 BLOCK 70 정도까지는 아니더라도, 일정 부분에서는 동일한 개량을 진행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