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5-10-15 20:06:44

정조의 왕자가 작가로 살아남기

정조의 왕자가 작가로 살아남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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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르 대체역사
작가 귀차
출판사 제이트리미디어
연재처 문피아
연재 기간 2025. 07. 14. ~

1. 개요2. 줄거리3. 연재 현황4. 등장인물
4.1. 조선
4.1.1. 주인공4.1.2. 왕실4.1.3. 관료4.1.4. 기타
4.2. 청국
5. 설정
5.1. 작중작
6. 개변된 역사
6.1. 조선6.2. 청국
7. 평가8. 기타

1. 개요

한국의 대체역사소설. 작가는 귀차. 약칭은 왕자작가/정조작가.

2. 줄거리

조선의 왕자로 태어났다.
그런데 아빠가 소설을 극혐한다.

3. 연재 현황

2025년 7월 14일 문피아에서 연재를 시작하였다.

4. 등장인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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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1. 조선

4.1.1. 주인공

1786년 11월생.[1][2] 아직 본명은 밝혀지지 않았다.[3] 현대에서는 대충 먹고살 만 했던 웹소설 작가. 하지만 본인의 고전 취향과 맞지 않아 성공한 축에는 끼지 못했던 듯하다. 효창공원에서 의문의 궁녀 복장을 한 혼령과 마주친 뒤 조선의 왕자로 환생한다. 고전문학사 전공이지만 전반적인 역사에 대해서는 거의 아는 것이 없는 역알못이라고 한다. 고등학교 때 배운 역사 수준을 희미하게 기억하는 정도라고.

원자였던 시절 우연히 정신과 시간의 방이라는 능력을 깨우쳐 몰래 소설을 쓰고 퍼뜨리기 시작하는데, 소설을 이용한 나비효과가 자신의 예상 이상인 것을 알고 이를 적극적으로 이용한다. 조선을 문화대국으로 만드는 것이 목표이며 자신의 소설이 널리 퍼지기 위해서는 대중들의 경제력이 올라야 하기 때문에 조선의 경제를 성장시킬 방법을 찾고 있다. 그 와중에 아버지의 과도한 성리학 공부에 스트레스를 받으며 진도를 따라가기 위해 정신과 시간의 방에서 어떻게든 공부를 하느라 개고생 중이다.

아버지를 닮아서 신하들을 노예 취급하는 성격이지만, 아직 어린 데다 아버지만큼 다혈질은 아니다 보니 약간 다른 방식으로 신하들을 이용하거나 압박한다. 전작의 주인공처럼 저도 모르게 주변인들을 광신도로 만들어 버리는 경우가 많지만, 본작의 특성상 그렇지 않은 사람들도 많다.

역알못이지만 전작의 주인공처럼 상당히 다재다능하다. 친모를 닮아서 미남이라 꾸준히 언급되고, 심미안 하나 까다로운 건륭제가 소설가로서 문필력과 글씨체를 인정할 정도이며,[4] 정조가 직접 성리학 공부를 시킬 당시[5] 그동안 가르쳐온 초계문신들보다 더 습득력이 빠르다고 칭찬하기도 했다. 아버지의 시선이라 다소 콩깍지가 끼었을 수는 있지만 고생을 하면서도 고난이도의 성리학 교육을 다 따라잡는 걸 보아 부모님을 닮아서 상당히 머리가 좋은 듯하다.[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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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본인만 모르는 출생의 비밀이 엮여 있었다.옷소매 붉은 끝동 읽은 독자들은 복선을 일찍 눈치챘다 카더라 그는 원 역사에서 태어나지 못하고 죽은 의빈 성씨의 막내 아이로, 본작에서는 수빈 박씨가 입궐하지 않아 순조가 아예 태어나지 않았다.[7] 원 역사의 의빈 성씨가 1786년 10월 24일에 사망했는데, 당시 의빈이 임신 9개월이었기 때문에 주인공의 나이가 1786년 11월생이 된 듯하다.[8]

1화에서 언급된 바에 따르면 21세기의 어느 날 절 입구에 조선식 베냇저고리를 걸친 덜 자란 이른둥이가 버려져 있었고, 주지 스님이 이를 부처님의 뜻이라 여겨 동자승으로 키웠다가 나이가 들어 독립했다고 언급된다. 거기다 여자 귀신을 만났다는 효창공원은 원래 의빈 성씨와 문효세자가 묻힌 효창원이 이장되기 전의 장소고, 여자 귀신과 주인공의 묘사를 보아 원 역사에서 태어나지 못하고 죽은 아이를 미래에 보내 성인으로 성장시킨 뒤, 다시 19세기로 보내 다 자란 아기로 만든 듯하다.

주인공이 유독 소설에 집착하는 것은 의빈의 뜻으로 보이는데, 소설을 좋아하던 의빈이 생전 정조에게 소설로 정조의 치세를 돕겠다는 약속을 했고, 주인공의 한글 필체는 정조조차 구별할 수 없을 만큼 의빈의 필체와 똑같으며,[9] 주인공이 쓴 소설이 정조의 치세에 도움이 되는 것을 보고 정조가 의빈과 한 약속을 떠올리며 의빈이 쓴 글일까 생각한 적이 있었기 때문이다.

주인공만 자신의 정체를 모르는 이유는 정확히 나오지 않으나, 생모가 자신을 낳던 중에 사망했다는 것이 알려지면 아직 어린 주인공이 큰 충격을 받을 것을 우려하여 왕비가 친모라 속인 것으로 보인다.[10][11] 그 외에 정조가 의빈의 묘에서 '우리 아이는 네가 바라는 대로 잘 크고 있다'고 한 것을 고려하면 의빈이 숨겨달라고 요청했을 수도 있다. 거기다 주인공이 고전문학사를 제외한 역사를 잘 모르는 탓에 자신이 효의왕후의 친아들이라 착각하고 있다.[12] 주인공의 외모는 친모인 의빈과 많이 닮아서 주변인들이 주인공을 아끼면서도 의빈이 떠올라서 심란해하는 경우가 많다고.

4.1.2. 왕실

  • 정조
    조선 제22대 국왕이자 주인공의 아버지. 주인공과는 34세 차이(1752년생)가 난다.[13] 동시에 원 역사에서 문체반정을 일으켰을 정도로 성리학과 어긋난 글에 경기를 일으키는 일명 유교 꼰대. 작중에서 정조 본인의 회상에 따르면 패설만 보면 말 그대로 경기를 일으킬 정도로 거부반응을 보였다고 한다. 주인공이 결코 작가라는 걸 들켜서는 안 되는 두 대상 중 하나다. 아버지와 할아버지가 소설 덕후인데 왜 본인만 소설을 극혐하냐면 아버지의 사후 아버지의 소설 취향[14]을 보고 대노한 할아버지가 이를 불태우며 '아버지같이 되지 마라'고 압박했고, 이것이 PTSD가 되어 소설만 보면 임오화변이 떠올라 경기를 일으키게 되어버렸기 때문이라고. 그래도 의빈 성씨와 부부생활을 하던 도중에는 완화되어 툴툴거리는 수준으로 끝났었지만, 의빈이 사망하면서 다시 심해졌다고 한다. 다혈질에 악덕 상사지만 의빈에게는 츤데레끼가 있는 로맨티스트였다.

    마지막 남은 아들을 무척 예뻐하지만 주인공이 공부를 잘한다는 이유로 어린 나이에 과도하게 공부를 시켜 주인공에게 스트레스를 주는 등 의도치 않은 아동학대(...)를 저지르기도 했다.[15] 아끼던 큰아들인 문효세자를 너무 어린 나이(2살)에 책봉해서 4살에 죽은 건가 싶어 일부러 막내아들은 세자 책봉을 늦췄다고 한다.[16] 조선시대 왕들 기준으로도 매우 보수적인 인물이지만 강희제는 인정한다고 하며, 건륭제도 가정사의 유사점을 알고 나서 공감을 표하기도 했다.

    가정사가 조선시대 왕들 기준으로도 매우 불우한 인물인데 어릴 적 아버지는 할아버지의 학대로 미쳐버려 비행을 저지르다 할아버지에게 엽기 살해를 당했고[17] 친할머니는 아버지의 상이 끝나자마자 의문사하고, 왕위계승을 위해 큰아버지의 양자가 되면서 족보도 단절되고[18] 30대에 들어서야 소꿉친구 애첩과의 사이에서 아들딸을 연달아 가져서 인생이 피나 했더니 자식들이 죄다 요절하고 애첩도 아들 죽고 4개월 뒤 만삭의 몸으로 사망해 버린다. 그나마 본작에서는 의빈이 막내아들이라도 낳고 죽었지 원 역사에서 딸, 아들, 애첩, 복중 아이의 죽음을 한꺼번에 겪었던 정조의 절망감은 엄청났을 것이다.[19] 이 때문에 독자들도 정조가 아버지처럼 완전히 미치지 않고 저 정도만 삐뚤어지고 끝난 게 정말 다행이라고 평했을 정도.
  • 효의왕후
    주인공의 어머니. 주인공과는 33세 차이(1753년생).[20] 주인공을 매우 아끼고 있으며, 주인공은 효의왕후를 자신의 친모로 알고 있다. 남편의 애첩이었던 의빈 성씨와는 생전에 친한 친구였다.[21] 이후 본인의 회상에 따르면 자신의 오랜 소꿉친구가 15년이 지나서 남편의 애첩이 되고 총애를 독차지한 것 때문에 내심 빡치기는 했지만 의빈이 죽기 직전까지 효의왕후에게 미안해하면서 효의왕후가 아들을 가지길 원한다는 유언을 남긴 것을 듣고 용서했다고 한다.
  • 혜경궁 홍씨
    주인공의 할머니. 주인공을 예뻐하고 있으며 주인공도 혜경궁을 할머니로 여긴다. 주인공과는 51세 차이(1735년생). 소설을 매우 좋아하지만 정조는 어머니의 소설 취향에 대해서는 태클을 걸지 않는다. <아미전>이 연재되던 당시 남주인공 취향이 효의왕후와 달라서 말싸움을 했던 해프닝이 있었다. 이후 부용에게 황태자와의 러브라인을 중점으로 한 순애 팬픽을 의뢰했다는게 밝혀졌다.
  • 정순왕후 김씨
    주인공의 증조부인 영조의 후처이자 주인공의 계증조모.복잡하다 주인공과 41세 차이(1745년생)가 나다 보니 주인공은 그냥 할머니로 여긴다. 가끔 언급만 되는 수준이지만 주인공을 예뻐한다고 한다.
  • 화빈 윤씨
    작중에서 존재감 없는 후궁이라고 지나가듯이 언급된다.
  • 의빈 성씨
    본편 이전에 사망한 정조의 애첩. 효의왕후와 동갑이다. 소꿉친구 히로인 포지션으로 정조가 연애적인 의미로 사랑한 유일한 여성이다. 매체에서의 묘사와 달리 본작에서는 의빈도 정조를 진심으로 사랑한 것으로 묘사되며, 은근 짓궂은 면이 있어 정조를 종종 놀려먹었다. 다만 정조 때문에 자신의 궁녀 생활을 망친 것에는 불만이 있었던 모양. 미녀였고 글씨를 무척 잘 구사했다고 하며[22], 소설을 무척 좋아해서 생전 정조에게 자신의 소설로 정조의 치세를 돕겠다는 약속을 했다. 어릴 때부터 궁중에서 여러 친구들이 있었을 정도로 사교적이었고, 오랜 소꿉친구였던 효의왕후를 제치고 정조의 애첩이 된 것에 미안함을 느껴서 정조에게 효의왕후를 자주 찾아가서 아들 좀 가지라는 유언을 남기기도 했다.

4.1.3. 관료

  • 정약용
    주인공이 원자였던 시절 교육 담당으로 등장. 음침 너드라서 아웃사이더라고 묘사된다.[23] 정조에게 충성하지만 마음에 안 드는 일들은 혼자 중얼중얼거리며 뒷담하는 모양. 배교자로 유명한 원 역사와 달리 본작에서는 진산 사건이 일어나지 않았으며, 주인공이 천주의 계시를 받은 사람이라 오해해서 배교하지 않고 가톨릭 신앙에 대한 확신을 굳혔다.
  • 김조순
    원 역사에서도 무협소설을 썼을 정도로 소설에 푹 빠진 만큼 주인공이 써내려 간 소설의 포로가 되어버렸다. 정조에게 인정받을 만큼 한문의 정체는 매우 잘 쓰지만 소설가로서의 재능은 꽝이라고 묘사된다.[24] 소설로 인해 주인공의 광신도가 되어버려 개그씬을 자주 찍지만 처세술에 능하며 일처리가 매우 유능한 인물로 묘사된다. 명문가의 도련님이지만 딱히 부정부패를 저지르지도 않는다고. 처음에는 주인공의 정체를 모르고 주인공이 시키는 대로 부하로 활동하다가 정조에게 <성균관 성채>의 작가로 오해를 사고, 이 때문에 정조가 원하는 어용 소설을 쓰라는 명령을 받자 이대로라면 사형이라고 벌벌 떨다가 주인공이 큰 맘 먹고 정체를 가르쳐줘서 주인공의 대리자가 된다. 장녀를 매우 예뻐한다고 종종 언급되는데, 순원왕후는 1789년생으로 주인공(1786년생 추정)보다 3살 연하인지라 세자빈이 되기는 힘들 것으로 추정된다.[25]
  • 박지원
    반골 기질이 있는 북학파의 일원. 젊은 시절 조선의 베스트셀러 소설가였지만 출사하면서 소설 업계에서 은퇴했는데, 본작에서는 주인공의 영향을 받아 다시 소설 업계로 복귀한다. 이때 한글 소설의 가치를 깨닫고 익명으로 한글 소설인 <탐관오리전>을 연재하는 등 다소 심경에 변화가 있었다고. 조선 제일의 베스트셀러 소설가답게 소설만 보고 주인공의 정체를 간파했으며,[26] 김조순과 주인공과의 관계도 빠르게 간파했다.
  • 채제공
    주인공이 원자였던 시절 좌의정으로 정조에게 실컷 부려먹히는 모습으로 나온다. 정조에게 종종 소설을 진상하며 소설에 적힌 당시 조선의 사회문제를 해설해주고 있다.
  • 박제가
    북학파의 일원이자 알아주는 식신. 돈 없는 북학파들이다보니 십시일반으로 돈을 내서 회식을 할 때도 박제가가 홀로 엄청나게 먹어치우는 탓에 박제가가 쏜다는 말을 들은 북학파는 전원이 순간 이해를 하지 못 했었다. 다만 원 역사에서부터 알아주는 초 인싸답게, 청에 사절로 갔을 때 낙화생(땅콩)과 마령서(감자)를 주인공이 준비한 돈보다 아득하게 싸게 입수하는데 성공했고[27] 남은 돈으로 청에서 돼지 품종을 들여오는 걸 주인공에게 허가받아 조선에 황회해흑저(黃淮海黑猪)[28]를 들여오는데 성공한다. 여담으로 그 와중에 이걸 성공한 보답으로서 주인공은 상평어음 500냥과 함께 현대의 솥뚜껑 삼겹살 조리법[29]을 알려줬다.

4.1.4. 기타

  • 부용
    작중의 오리지널 인물. 주인공이 원자였을 당시 생각시로 주인공이 소환(어린 환관)으로 변장해서 궁을 돌아다니던 당시에 만나 주인공이 환관인 줄 알고 있다. 편집자의 재능이 있어 주인공의 소설 집필 당시 편집자 노릇을 하고 있다. 주인공의 부탁으로 최상궁의 도움을 받아 지밀로 소속을 옮겼고, 주인공에게 한자를 배웠다. 환생 버프가 달린 주인공만큼은 아니지만 작중 묘사를 보면 상당히 똑똑한듯.
    주인공과 동갑이지만 생일이 더 빨라서 누나 행세를 하고 있으며 주인공과 썸씽을 보여서 독자들은 차후에 의빈 성씨가 그랬듯이 주인공의 승은후궁이 될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문제가 있다면 주인공에게 배운 한자와 한문 실력으로 아미전의 BL 성인팬픽을 쓰고 있었다. 그나마 주인공이 남색 소설을 발본색원하는 것에 내심 찔려서 중단했는데[30], 이게 천운처럼 검열을 피해갈 수 있었다. 대신 혜경궁 홍씨가 원하던 황태자 순애버전 아미전 팬픽을 높은 필력으로 완성하며 홍씨의 눈에 들게 된다.
  • 최상궁
    소설을 매우 좋아하는 중년의 상궁으로 주인공이 쓴 소설에 빠져서 정체를 숨긴 주인공의 부하 노릇을 하고 있다. 원고를 보는 과정에서 주인공의 정체를 간파하지만 모르는 척하고 있다. 의빈이 일반 궁녀였던 시절 절친이었던 궁녀로 추정된다. 68화에 나온 장면을 보면 이름은 경희인 듯.설마...
  • 계덕상
    한양의 방각업자. 주인공이 써낸 원고를 바탕으로 실제 책으로 엮어 유통하고 있다. 이후 주인공을 통해 김조순과 손을 잡고 사업을 확장해간다. 작중 공인 돈미새로 악덕 상인이라서 주인공이 종종 제재를 걸고 있다. 주인공의 정체에 대해 별 관심이 없는데, 주인공 덕분에 돈 많이 벌면 서로 좋은 거 아니냐는 마인드.
  • 원주 원씨 종회
    원균이 부당하게 모욕받았다고 주장하며 상경하여 김조순과 계덕상을 아주 달달 볶았다. 이걸 보다 못한 주인공이 왜 붓이 칼보다 강한지 보여주겠다며 팩트만 들이부은 충무공전 3부 '한산'을 내놓으면서 김조순 앞에서 제발 약조[31]를 거둬달라며 싹싹 빌게 된다.

4.2. 청국

  • 건륭제
    1791년 당시 총신들에게 정무를 떠넘기고 놀고 있는 늙은 황제로 등장. 이미 80대의 노인이다 보니 중요한 상황이 아니면 늘어진 말투를 사용하지만 특유의 날카로움에서 나오는 카리스마는 여전하다. 심미안이 대단한 인물이라 주인공이 쓴 필체만 보고 주인공의 연령을 정확하게 간파했으며[32], 주인공이 원 역사 후대인의 시를 베껴서 쓴(...) 시를 보고 꽂혀서 주인공의 정체를 알아내 감금하고 예술 소재를 쥐어짜낼 생각을 하고 있다. 예술품을 보는 눈은 최상급이지만, 문제는 그 최상급의 예술품들을 도장으로 죄다 작살내는 반달리즘 때문에 당대인들에게도 예술의 파괴자라며 뒷담을 듣고 있다. 주인공의 작품도 예외는 없어서 주인공이 이를 알고 뒷목을 잡았을 정도. 정조와 달리 특유의 심미안 때문에 주인공의 정체를 상당히 빠르게 파악한다. 워낙 취미가 고급스럽다 보니 원래 소설에는 별 관심이 없었지만, 청나라 3대 소설과 주인공의 소설들은 예외적으로 좋아한다. 주인공의 영향을 받아 과거의 의욕을 다시 되찾았으며 본인의 시짓기 능력도 리즈 시절로 돌아왔다고.[33]

    주인공이 쓴 소설 때문에 원래 예정보다 빨리 가경제에게 양위하고 대뜸 조선으로 놀러와서 각종 민폐를 끼치고 있어 모두의 뒷목을 잡고 있다.(...) 심지어 이 와중에도 청 조정의 비선실세 노릇을 하고 있어서 민폐가 2배다. 조선에서는 상황을 그냥 내버려둘 수도 없는지라 하는 수 없이 경희궁에 머물게 했다.[34] 주인공의 정체를 눈치채기 전에도 주인공을 매우 귀여워해서 할아버지(강희제)의 마음을 알 것 같다, 이런 손자가 있었으면 좋겠다며 아주 예뻐하고 있다. 조선에서도 그놈의 반달리즘은 여전해서 원 역사에서 무사한 조선산 고서화들이 반달리즘당해서 주인공은 속으로 절규했지만... 청나라 황제지만 만주어로만 말하다 보니 주인공과 독자들 모두의 얼을 종종 빼놓고 있다. 조선의 금강산이 명산이라 들었다는 이유로 80대의 나이에 금강산 유람을 가는 대단한 체력을 보여주기도 했다.

    정조와 마찬가지로 젊은 시절 우울한 가정사를 겪었다 보니 서로 공감을 표하기도 했다. 정조와 달리 황후 2명 후궁 49명이라는 차이가 있지만, 건륭제는 그중에서도 효현황후효의황후를 특히 사랑했다.[35] 자신의 첫번째 정실이자 첫사랑이었던 효현황후는 건륭제에게 선물로 만들어준 부싯돌 주머니를 상황이 된 시점에서도 늘 품에 넣어다녔고, 80대의 나이에도 여전히 그리워했다. 효현황후는 2남 2녀를 낳았지만 본편 초반(1791년)에 사망한 화경공주를 제외하고 모두 요절하였고, 자식들의 잇따른 사망에 충격을 받아 36세에 쇠약사하고 말았다. 이후 한(漢)계 만주 팔기였던 워이기야씨(魏佳氏)를 사랑하여 황귀비(皇貴妃)로 삼았고[36] 2남 4녀를 가졌지만, 황귀비도 1775년에 사망하였고,[37] 본편 시점(1790년대 초반)에서는 워이기야씨의 차남 가경제와 4남 영린(永璘)만이 살아있었다.[38] 80대의 나이에도 여전히 먼저 보낸 아내와 자식들을 떠올리며 슬퍼하는 등의 묘사를 보면 건륭제의 괴팍한 성격도 그로 인한 악영향이었을지도.
  • 니오후루 허션
    건륭제의 총신으로 1791년 당시에는 청나라의 정국을 쥐락펴락하고 있다. 그러나 어디까지나 건륭제의 총애에서 나오는 것이라 건륭제에게는 찍소리도 못하고 하인처럼 부려먹히고 있다.
  • 기윤
    1791년 당시 청나라의 이부상서. 당대 청나라 제일의 소설가이기도 하며, 주인공이 쓴 <성균관 성채>가 청나라의 입시 비리를 연상케 한다는 이유로 청나라풍으로 로컬라이징해서 출간했다. 이후 주인공의 소설에 눈 뜬 건륭제에게 번역기계로 실컷 갈렸다고... 건륭제 때문에 고생하는 모습이 주로 나오지만 이부상서 자리까지 올라간 인물인 만큼 상당히 음흉한 권신이라고 한다.
  • 푸아로 신부, 아미오 신부[39]
    1791년 당시 건륭제의 <황금 새장>에 갇혀 학문적 재능을 바치고 있던 前 예수회 신부들. 예수회가 해체되어 끈 떨어진 신세인 상황에서 정약용, 윤지충이 자신들을 찾아와 위패 문제에 대해 상담하자 조선에서 기적이 일어났다고 놀라워한다. 비오 6세가 조선에서 자생적으로 생겨난 가톨릭 집단에 매우 관심이 크다는 것을 고려해 교황청에 즉시 연락한 것은 물론, 이참에 동아시아 선교를 다시 활성화하기 위해 '특정한 조건 하의 제사'에 대해서는 허락해주자는 청원을 넣기로 한다.

5. 설정

5.1. 작중작

  • 아미전(阿彌傳)
    주인공이 처음으로 조선에서 쓴 로맨스 소설. 작가의 전작 공민왕의 혼혈왕자에게 조선은 없다의 셀프 패러디이다. 전작 주인공의 여동생인 왕아미와 원나라 황태자, 그리고 호위무사와의 삼각관계를 담은 듯하다.
  • 왕진전(王瑨傳)
    주인공이 쓴 아미전의 스핀오프. 마찬가지로 작가의 전작 셀프 패러디이다.
    전작 주인공이 그대로 나오는 영웅소설+무협소설의 형태인 듯하며, 기연 역할 겸 무공 스승으로 전작에서의 관계 그대로인 인물이 등장한다.원자는 종묘에 셀프 기도를 올려 당사자(17대조 할아버지)와의 문제를 해결했다고
  • 탐관오리전
    박지원이 쓴 소설. 탐관오리가 상태창을 숨김의 패러디이다. 작가 코멘트에 따르면 원작자인 코락스의 허락을 받고 패러디했다고. 소설 내용의 특성상 전주를 중심으로 한 지방에서 인기가 많다고 한다.[40]
  • 도술 천자문
    주인공이 쓴 소설학습도서. 마법천자문의 패러디이다. 한자 입문자가 한자를 쉽게 익히게 하기 위해 만든 학습도서로 주인공의 작품 중에서 가장 상업적으로 큰 성공을 거두었다. 이 때문에 아이들처럼 막 한자를 익히거나 한자 교육에 거금을 들이기 힘든 평민들에게 큰 인기를 끌었다고. 작중에서 마령서(감자)와 낙화생(땅콩)의 대중화에 사용되기도 했다. 게다가 분명 주인공이 당연히 손오공, 즉 서유기도 베이스가 되었음에도 정조가 읽어보고는 성리학에 충실한 책이라고 감탄할 정도로 성리학 지식을 녹여내서 정조가 용납한 드문 소설.[41]
  • 성균관 성채
    주인공이 쓴 소설. SKY 캐슬의 패러디이다. 청나라에는 유학(儒學)[42] 성채로 로컬라이징되었다. 조선과 청나라의 문화가 다르다 보니 청나라의 문화에 맞춰 로컬라이징했다고. 원래 2부는 더 글로리로 연재할 예정이었으나 정조가 김조순에게 한 명령으로 인해 2부가 취소되고 상단집 막내아들이 연재되었다. 당시 조선의 입시 비리와 양반댁 문화를 매우 잘 묘사했다고 한다. 이 소설이 유행해 정조의 귀까지 들어간 결과, 원역사의 문체반정 대신 과거 비리 척결을 명분으로 한 대규모 숙청 사태가 벌어지게 된다.
  • 상단집 막내아들
    주인공이 쓴 소설. 재벌집 막내아들의 패러디이다. 청나라에는 상방(尙幫)집 막내아들로 로컬라이징되었다. 상인단을 배경으로 한 소설이다 보니 일반 평민들에게 큰 화제가 되었다. 특히 사실상 영조-정조대의 상단이 배경인지라 일반 평민들에게는 매우 익숙한 배경이라 더 인기를 끌었다고 한다. 건륭제가 읽고는 작중 주인공의 할아버지가 주인공을 인정하는 내용에서 강희제와 건륭제 사이에 있던 일화를 떠올리고 울먹인 것이 결정적인 계기가 되어, 건륭제가 태자에게 사실상의 양위를 하고 조선으로 넘어오는 사건이 벌어지게 된다.
  • 환생상인전
    박지원이 쓴 소설. 봄 마령서가 맛있다고 하는 소녀가 나오는 게 특징이다. 웬 뜬금없는 츤데레 히로인 등장인가 싶었지만 원 역사에서 실제로 박지원이 20세에 지은 소설 마장전(馬駔傳)에 그대로 나오는 내용을 근거로 한 고증임이 밝혀지며 주인공을 경악케 했다.독자들도 이왜진을 외쳤다 건륭제의 은 폭격으로 일어난 인플레이션으로 압록강 다이브하는 영웅이 호걸이들이 늘어나자 선물 거래의 위험성을 경고하기 위해 집필되었다.
    중간에 작가 박지원이 주인공의 영향을 받아 새드엔딩으로 급드리프트를 밟았고, 그 결과 분노한 독자들이 상여시위까지 해 가며 결말을 수정하는 해프닝이 벌어진다. 그 결과 수정 전 결말과 수정 후 결말을 각각 지지하는 독자들이 한양과 전주로 나뉘어 팬덤 싸움까지 벌이는 중[43]. 어쩌다보니 왜관을 통해 일본[44]으로 흘러들어가기까지 하며 선풍적인 인기를 끌고 있다.
  • 황제의 여인
    주인공이 쓴 소설. 작중 명시되진 않았지만 제목은 황제의 딸 패러디고 내용은 보보경심, 연희공략, 옹정황제의 여인강건성세 궁중을 다룬 드라마와 비슷한 모양. 건륭제에 얽힌 일화를 알게 된 주인공이 건륭제를 빨리 조선에서 청으로 되돌려 보내려고 쓴 로맨스 소설이다. 형식적으로는 명나라 시대를 배경으로 했지만 청나라 강건성세 시절 티가 난다고 한다.[45] 여주인공과 남주인공이 결혼하고 황제와 황후가 되어 행복하게 사나 했더니 주인공들의 아이가 요절하고 여주인공도 일찍 죽는 엔딩 때문에 논란이 되었다가 '고증입니다'라는 말로 상황을 수습한 뒤, 세월이 흘러 남주인공도 죽은 뒤 사후세계에서 서로 재회하는 후일담으로 마무리했다고 한다. 문제는 이걸 보고 건륭제가 완전히 리미터가 풀려버려 당장 작가를 찾으라고 노발대발하기 시작했다.역효과 그러나 이 소설이 의빈 성씨의 에피소드와 유사점이 있어 이걸 정조가 봤다가는 폭발할 것을 우려한 궁중 사람들과 채제공은 이 소설을 정조에게 숨겼다.
  • 충무공전
    주인공이 쓴 소설. 정조가 이충무공전서를 간행하자 이걸 원 자료집 삼아 쓴 임진왜란 당시의 충무공의 명랑해전과 노량해전을 소재로 하는 소설로 총 2부 구성이었……을 예정이었으나, 원주 원씨 일가가 원균옹호론을 들이대며 계덕상과 김조순까지 달달 볶자 화가 난 주인공이 왜 칼보다 붓이 강한지 알려주겠다프리퀄인 3부 '한산'을 내놓으며 정면대응에 들어갔고, 결국 원균옹호론을 위해 원주 원씨 일가가 머리를 맞대고 쓴 '맹장원균논고'가 대놓고 비교대상이 되어 원주 원씨 일가는 비웃음만 사게 됐다.
  • 맹장원균논고
    충무공전에서 원균을 삿되이 모욕한다고(?) 화가 난 원주 원씨 일가가 충무공전으로 비틀린(?) 인식을 바로잡겠다며 일가의 선비들을 모아서 가문의 행장을 모아 쓴 역사서…를 빙자한 불쏘시개. 김조순을 달달 볶은 원씨 일가가 해당 서적을 한양 전역에 퍼트릴 것을 강요했는데, 이걸 이용해서 주인공이 역으로 충무공전 제3부 한산을 쓰는 것으로 한산도 대첩부터 원균이 얼마나 폐급이었는지를 이충무공전서 몇쪽에서 인용했다는 식으로 고증을 극한까지 끌어올려서 아주 작정하고 원균을 마구 까버리는 바람에 비웃음만 사게 된 서적이다.

6. 개변된 역사

6.1. 조선

  • 삼지(麻紙)의 도입
    주인공이 쓴 소설로 인해 한양에 종이 부족이 발생하자 주인공이 김조순에게 일러 안동에서 많이 기르던 삼을 이용한 삼지를 대량으로 수급해온다.
  • 문체반정의 소멸
    원 역사에서는 문체반정이 일어났으나, 본작에서는 세자가 소설을 써내며 발생한 여러 나비효과에 의해[46], 문체반정이 아니라 과거의 비위를 파헤치는 과거반정으로 바뀌어버렸다.
  • 진산 사건의 소멸
    주인공이 진산 사건을 일어나지 않게 하기 위해 도술천자문 신간 내용에 위패와 관련된 당시 교황청의 입장 교리를 적어넣었고[47], 이를 본 정약용이 실제로 청에 사신으로 갔다가 청에 있던 예수회 선교사[48]들을 통해 해당 교리의 진위여부를 알게 되어 진산 사건이 소멸하게 된다.
  • 조선 방각협회 설립 및 민관 합동 우편시스템 확충
    상단집 막내아들 사건, 환생상인전 사태 등등에 더하여 북충(北衝) 소설[49]의 등장에 경각심을 가진 주인공이 판권법의 필요를 느끼고 김조순을 통해 전국 상인들과 대표 방각업자들을 모아 결성했다. 특히 판권법은 주인공이 김조순을 통해 정조의 재가를 받은지라 어기면 어명을 어긴 죄인 취급이 된다. 관에서는 방각협회 소속의 방각업자에게만 일거리를 제공한다는 당근을 준비했다. 여기까지는 사실상 방각업자들의 자체적인 움직임이며 여기에 추가로 김조순이 정조의 재가를 받아 우편 시스템을 확충하는 것으로 전국의 모든 방각업자들이 한날 한시에 책을 출간할 수 있도록 하는 시스템이 추가된다. 정조는 이걸 재가하면서 지방에 가야 하는 신하들이 중앙의 일을 할 수 있게 굴릴 수 있다라는 장점을 찾았고, 이걸 바로 앞에서 듣게 된 김조순은 벌벌 떨고 있는 중. 심지어 이걸로도 안 끝나, 조선의 우편제도 개편을 들은 건륭제가 자신이 개편된 조선 우편제도를 개시하겠다며 벼르고 있다.

6.2. 청국

7. 평가

8. 기타

초반부 무료 연재 당시에는 독자들의 유입 부족 때문에 여러 차례 제목을 개명했다가 최종적으로 현재 제목으로 자리잡았다.

작중 묘사에 따르면 주인공은 현대 웹소설 메타를 조선 후기에 갖고 와서 성공한 잘 나가는 상업 소설가에 속한다. 원래부터 조선 후기 한양의 출판사들은 20~30짜리 에피소드를 주기적으로 연재하는 연재본과 1권씩 묶어서 파는 정발본이 따로 있었는데, 주인공은 당시 조선에서 전례가 없던 빠른 연재 속도로 몰아치는 웹소설 연재 메타를 통해 수많은 독자들을 유입시켰다고 한다.
[1] 건륭제에게 병오(1786)년 9월생이라고 말하는데, 시헌력을 기준으로 하므로 그레고리력으로는 11월생이 된다.[2] 이전 항목에는 건륭제에게 말한 생일이 병오년 10월생이라 적혀 있었으나 작가가 오류를 발견해 수정했거나 착오가 있었던 듯. 하지만 1786년 09월 14일은 율리우스력으로는 10월 24일, 그레고리력으로는 11월 4일이므로 뭐가 되었든 현대 기준 11월생은 맞다.[3] 순조와 동명이인일 가능성이 있다. 다만 본명이 밝혀지지 않은 이유는 간단한데 조선 왕실의 적장자는 왕세자로 정식으로 책봉되기 이전에는 이름 대신 원자 아기씨(元子阿只氏)라고 불렸기 때문에 원자라고만 불리는 것. 보통 세자 책봉과 함께 종묘와 사직에 책봉 사실을 고하며 이름을 받는다. 후기로 갈수록 임시 이름인 아명조차도 붙이지 않게 되었다고. 참고 링크[4] 한글은 어머니를 닮아서 귀부인 스타일의 여성적인 글씨라고 하며, 반대로 한자는 매우 남성적인 분위기가 강하다고 한다.[5] 정신과 시간의 방에서 빡세게 공부한 것도 있지만[6] 현대에서도 친구피셜 명문대 출신이라고 했다. 하지만 취직 잘되는 과는 안가고 소설이나 썼다[7] 작중에서 왕비 외에 '아버지에게 없는 사람 취급받는 후궁 하나가 있다'고 하며, 요절한 형을 제외한 어떤 형제도 언급되지 않는다.[8] 아니면 이른둥이라는 언급을 봤을 때, 원역사 그대로 의빈의 사망일=주인공의 생일이고 현대로 보내 성장시켰기에 미숙아로 생존할 수 있었을지도. 참고로 시헌력 1786년 9월 14일을 율리우스력으로 변환하면 10월 24일이 되고, 그레고리력으로 변환하면 11월 4일이 된다.[9] 한자 필체는 다르다[10] 정조가 매년 주인공의 생일 전날이 되면 의빈의 묘를 찾아간다는 묘사가 있는 걸 보아 본작에서는 산후병이 아니라 출산 중 사망했을 가능성이 높다.[11] 어차피 정조의 유일한 자식이자 아들이라 후계자가 되려면 요절한 형처럼 왕비의 자식으로 입적될 필요가 있기도 했다.[12] 한권으로 읽는 조선사라는 개론서가 정신과 시간의 방에 운 좋게 남아있어 이 책 내용을 기반으로 역사적 사건들을 파악하는데, 정조와 의빈 성씨의 로맨스가 수록되지 않았던 듯하다.[13] 조선시대에 34세 차이이면 조손뻘에 가까웠다. 이 때문에 1782년 30세가 되어서야 문효세자가 태어나자 '비로소 아비란 소리를 듣게 되었으니, 이것이 다행스럽다'고 말했을 정도.[14] 단순 소설이었다면 삼국지연의 애독자였던 영조가 그렇게 화를 내지 않았겠지만 실제로 사도세자의 수집품 중에는 천주교 소설과 변태 수준의 음란 소설, 심지어는 BL소설까지 있었다.[15] 이 때문에 주인공은 정조의 공부 강요에 시달리면서 '할아버지(사도세자)가 게장왕(영조)에게 느낀 감정이 이거였냐'고 속으로 까기도 했다. 영조도 사도세자 때의 공부 실패를 반성해서 정조는 나름 진도를 조절한 걸 고려하면 정조가 더 막나가는 걸지도.[16] 이 말을 들은 건륭제는 요절한 자식들을 떠올리며 공감을 표했다.[17] 임오화변은 살해 과정 때문에 인류사 전체를 통틀어서도 가장 엽기적인 비속살해 사건 중 하나로 꼽히는데, 아무리 별 괴담이 다 나오는 전근대 왕실사라지만 너무 엽기적이라서 재앙이라는 뜻의 화변(禍變)이라 불리게 된다.[18] 훗날 고종이 칭제건원할 때 사도세자를 조(祖)로 추존하면서 간접적으로 복적시키긴 했다.[19] 실제로 실록이나 일성록, 어찰에 남은 기록을 보면 저 시기 이후 정조는 흰머리가 생기고 이빨이 빠지며 살이 찌는 등 안 좋은 신체 변화란 변화는 전부 나타나는데 중년에 접어든 나이탓도 있겠지만 스트레스를 상당히 심하게 받은 것으로 추정된다.[20] 10대 중반에 결혼해서 자식을 가지던 조선의 특성상 33세 차이는 조손이 되는 것도 가능하다.[21] 효의왕후 문서에도 서술되어 있지만 정조가 지은 제문에 의하면 실제 역사에서도 동갑내기 의빈을 형제처럼 여기며 특별히 친애했던 듯. 의빈 성씨가 정조를 두 번이나 찼을 때도 효의왕후를 이유로 댔다.[22] 고증이다.[23] 어두운 분위기가 풀풀 풍겨서 코드가 맞지 않는 사람들이 다 꺼린다는 묘사가 있다.[24] 자신이 쓴 무협소설은 재미없다는 이유로 출판을 거부당했고, 주인공이 쓴 한글 소설을 한문으로 번역했는데 건륭제에게 '안 어울리는 문체로 글을 망쳐놨다'고 까였다. 아예 건륭제 스카우터 피셜 공문서는 잘 쓰지만 필력은 없다라고.[25] 조선의 왕세자빈은 워낙 어릴 때 입궐시키다 보니 1~2살 연상을 입궐시키는 경우가 많았고 연하의 경우에도 1~2살이 넘어가지 않게 했다. 순원왕후도 순조보다 1살 연상이었다.[26] 학습도서인 <도술천자문>을 보고 정체를 확신했다.[27] 청에 존재하는 인맥을 통해 순식간에 입수해버렸다. 작중 언급으로는 그의 임무를 버스 태워줄 사람이 북경 현지에 말 그대로 깔린 수준이라고 표현할 정도.[28] 중국 황하, 회하, 해하 인근을 비롯한 광범위에 서식하는 흑돼지 품종. 각 지방마다 다른 이름으로 불리지만 전원이 같은 품종이기 때문에 하나로 통일된 이름이 바로 황회해흑저다.[29] 솥뚜껑에 돼지고기를 구워, 가운데 모인 기름에 김치를 튀기듯 굽는 방법[30] 쓰려고만 하면 주인공 얼굴이 아른거려서 못 쓴다고. 여담으로 주인공도 부용이 뭔가 수상하다고는 여기고 있다.[31] 김조순이 해당 소설을 퍼트린 장본인이라 생각해서 김조순 앞에서 가문의 권위를 들이밀며 자신들이 쓴 책을 한양에 퍼트리라고 강요했었다.[32] 다만 주인공은 자신이 초서를 쓸 수 있다는 사실을 숨기고 아직 전서를 익히는 것도 버거워 다른 글씨체는 익히지 못했다는 핑계를 대서 넘어갈 수 있었다. 초서를 쓸 수 있는 이유는 21세기 당시 고전문학을 전공한지라 초서가 눈에 익을 정도로 접했기 때문이라고.[33] 건륭제는 즉위 전에는 아주 뛰어난 수준까지는 아니지만 무난하게 좋은 시를 쓰는 인물이었는데, 즉위한 뒤 시 수준이 나락으로 가버린다...[34] 당시 정조를 비롯한 왕실 일가는 창덕궁-창경궁의 동궐(東闕)에 거주하고 있었다. 당시 경희궁은 서궐(西闕)이라 불릴 정도로 규모가 컸기 때문에 북궐(北闕)인 경복궁이 터만 남아있던 당시에는 경희궁밖에 보낼 데가 없었다.[35] 효현순황후와 효의순황후는 건륭제 사후 건륭제의 시호인 순황제(純皇帝)의 순(純)을 추가한 것이라 건륭제 생전에는 효현황후와 효의황후였다.[36] 효현황후의 직속 궁녀였다는 설정이다. 실제로도 효의황후는 내무부 포의 가문 출신으로 수녀 선발에 통과해 입궁한 신분이었고, 이들은 대부분 궁녀로 일하는 게 일반적이었다. 건륭제가 지은 추모시에도 그녀가 효현황후 옆에서 교양을 배웠다는 걸 암시하는 구절이 있다고 한다.[37] 자신의 장녀인 고륜화정공주가 19세에 요절하자 충격을 받아 급사하였다.[38] 워이기야씨는 자신의 아들이 황제로 즉위하자 건륭제가 효의황후로 추존시켰다. 영린은 개망나니였던 탓에 가경제는 영린을 싫어했다고 한다.[39] 본명은 장 조제프 마리 아미오. 실제로 1700년대 청에서 활동한 프랑스 예수회 소속 신부다.[40] 당시 전주에는 한성 못지않게 출판사가 발달했었다. 한성의 경판본과 쌍벽을 이루는 전주의 완판본이 유명했을 정도.[41] 한자를 사람들이 쉽게 익히게 만들기 위한 학습도서라는 점이 성리학의 근간에 충실한 것으로 간주되었다. 당대 조선의 윤리도 초등학교 교과서처럼 설명해주고 있다고.[42] 청나라에서는 각 지방에 설치된 관학을 이렇게 불렀다.[43] 한양은 수정 후 결말을, 전주는 수정 전 결말을 더 높이 치고 있다. 이는 전주 방각본자들에게 계덕상이 수정 전 판본을 팔아치우면서 발생한 일.[44] 불치병 히로인 속성이 먹혔다고 한다.[45] 당시 중국과 조선에서는 現 왕조 에피소드를 바로 쓰기 찜찜하다 싶으면 전대 왕조의 이름만 빌려서 눈 가리고 아웅하는 경우가 많았다. 백거이당현종양귀비의 일화를 따서 지은 장한가한무제로 구라를 쳤다.[46] 특히 상단집 막내아들에서 주인공이 조선 후기의 상인들이 실제로 쓰던 악덕상술을 전부 기재해버린다거나, 성균관 성채에서 과거시험 관련 문제를 싹 기재해버린게 크다.[47] 흔히 당시 가톨릭이 유교식 제사를 전면 금지했다고 알려져 있으나, 당시 교황청에서는 공자에 대한 제사는 완전히 금지한게 맞으나, 단순한 조상에 대한 제사의 경우 칙령을 통해 위패의 망자의 이름 위에 이는 부모를 공경하는 천주교의 도리다(天主敎孝敬父母之道理)라는 문구를 적어넣았을 때는 위패를 쓰는 제사를 허용하는 예수회의 우회 교리를 인정하고 있었다. 다만 당시 청의 교구를 담당하던 주교였던 구베아 주교가 그 전까지의 선교사들이 소속되어 있던, 현지 문화에 적응한 선교를 주장하던 예수회에 반감을 가지고 순수한 교리로만 선교하는 프란치스코회 소속이라 해당 문구를 사목교서에서 해당 내용을 아예 빼고 알리는 바람에 동아시아의 신자들에게 알려지지 않았던 것. 덕분에 원 역사에서는 배교한 정약용이 조선의 천주교 탄압을 나몰라라 하는 구베아 주교에게 아주 악담을 쏟아내기도 했다.[48] 당시 청나라에는 아담 샬 이후 대대로 흠천감 소속으로 선교사가 몇 있어서 역법과 천문 관련으로 기여를 하고 있었다.[49] 등 뒤를 찌른다라고 해서 북충이다. 사방을 신체로 비유하면 北은 등 뒤를 의미하기 때문. 마찬가지 이유로 조선의 팔도는 임금이 전방(南)을 바라보는 기준으로 우측(東)과 좌측(西)으로 나누어 특정 강이나 산을 기점으로 우도와 좌도로 구분하여 절도사가 파견되었다. 임금이 남쪽을 바라보는 기준으로 매겨진 것이라 실제 지도상으로는 서쪽이 우도, 동쪽이 좌도에 해당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