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11-30 22:27:41

제주도와 오키나와 비교

파일:제주특별자치도기.svg
파일:오키나와현 현기.svg
제주특별자치도
대한민국
오키나와현
일본

1. 개요2. 자연환경3. 행정구역4. 인구5. 인문 환경
5.1. 요리
6. 역사7. 주민8. 교통9. 산업10. 정치 및 지역 감정11. 군사12. 영유권 분쟁13. 외교 공관14. 관련 문서

[clearfix]

1. 개요

한국제주도일본오키나와는 본토와 떨어져있고 관광도시로 유명한 대표적인 남쪽 섬이라는 점이자 과거 독립된 국가였으나 본토에 합병되고, 이로 인한 아픈 역사를 가진 점 등 서로 비교되는 경우가 많다.

아예 편의상 오키나와가 제주도 같은 곳이라고 표현하는 경우도 드물지 않을 정도로, 한국인에게 이 두 지역은 거의 비슷한 곳으로 여겨지는 편이다.[1] 본 문서에선 이러한 공통점과 차이점에 대해 서술해본다.

두 지자체는 2024년 11월 14일에 우호협력도시 협약을 맺었다.

2. 자연환경

제주도 오키나와
본토에서 꽤 떨어진 섬이다.
서울에서 제주까지는 약 450㎞, 전남 해남 땅끝 전망대에서는 약 80㎞ 거리이다 도쿄에서 오키나와까지는 약 1500㎞, 규슈 남쪽 끝인 가고시마의 사츠마(薩摩) 반도에서부터 재어도 550㎞나 된다.[2][3]
행정구역으로의 제주도의 면적은 1,845 km²로 오키나와보다 약간 작다. 그러나 행정구역 면적의 대부분을 제주도 본섬이 차지하여, 본섬으로만 치면 1,833km²으로 오키나와 본섬 1,206km²보다 1.5배 크다. 본섬 외에 다른 섬들은 많지 않은 편이다. 행정구역으로의 오키나와의 면적은 2,271 km²로, 제주도의 1.2~1.3배 정도 된다. 가장 큰 섬인 오키나와 섬이 현 전체 면적의 절반을 약간 넘는다(1,206km²).[4] 본섬 이외에도 미야코지마, 이시가키 등 규모가 꽤 되는 섬이 많다.
남북으로는 추자도[5]부터 마라도까지 약 90km, 동서로는 차귀도부터 우도까지 약 80km이다. 서쪽 끝 요나구니에서 동쪽 끝 다이토 제도까지 약 860km나 된다.
본토에 비해 더운 아열대기후이다.[6]
겨울에는 눈도 내린다.[7] 특히 한라산강원도 수준으로 눈이 쌓인다.
아열대 기후의 북쪽 경계선에 가깝다.
딱 두 번, 1977년 쿠메지마(久米島)와 2016년 나고(名護)시에 진눈깨비가 내린 기록이 있다.
오키나와 본섬은 아열대 기후의 남쪽 경계선에 가깝고, 이시가키 같은 경우는 아예 열대기후이다.
섬이다 보니 바람이 많이 분다.
제주도의 별칭 삼다도에 바람이 포함된다. 바람은 물론 태풍의 단골 코스이며 거의 높은 확률로 오키나와 열도를 지나간다.
특이한 지질 환경이며 동굴도 많다.
화산섬이다 보니 현무암 지대로 이루어져 있다.
만장굴 같은 용암동굴이 유명.
옛 산호초에 의해 형성된 석회암 지대이다.
교쿠센도(玉泉洞)와 같은 석회동굴이 유명.
대한민국에서 제일 높은 산인 한라산(1,947m)이 위치한다.
한라산을 빼더라도 산방산 같은 산과 오름이 널려있다.
그나마 가장 높은게 이시가키 시에 위치한 오모토다케(於茂登岳) 산. 해발 525.5m
비가 많이 오지만 물이 부족하다.
절리(틈)가 많은 현무암은 물이 잘 빠지기 때문[8] 오키나와는 산호초가 융기한 석회암지대로 되어있는데, 석회석이 물에 녹으면서 석회동굴과 같은 카르스트 지형을 형성, 물이 가둬지지 못하고 바다로 빠져나가버린다.
자연이 잘 보존되어 있고 특이한 동식물이 많다.
한라산의 노루, 제주등줄쥐, 제주 족제비[9] 딱따구리 등.
한라산에서는 해발 고도에 따라 식생이 달라지는 현상이 나타난다.
반시뱀, 이리오모테삵, 바다뱀 등.
2개 이상의 바다와 접해있다.
남해동중국해 동중국해필리핀해
바다가 맑고 깨끗한 편이다.

3. 행정구역

제주도 오키나와
특별자치도라는 특수한 행정구역이다. 그냥 하나의 이다.
하위 행정구역은 단 두 개, 제주시서귀포시. 11 시(市) 11 정(町) 19 촌(村)
제주시서귀포시의 면적은 800㎢가 넘는다. 인구가 밀집된 오키나와섬 중남부의 지자체들들은 대부분 면적이 각각 20㎢에서 50㎢ 정도에 불과한 작은 도시들이다.
가장 넓은 기초자치단체는 야에야마의 타케토미정으로 면적 334㎢.

4. 인구

제주도 오키나와
전체 국가 인구의 대략 1% 이상을 차지한다.(2015년)
67만여 명/5,160만여 명
(제주특별자치도 인구/대한민국 인구)
145만 여명/1억 2,688만여 명
(오키나와 현 인구/일본 인구)

5. 인문 환경

제주도 오키나와
본토와 구별되는 특이한 문화[10]를 지니고 있다.
본토 사람들이 알아들을 수 없는 사투리[11]가 있다.
본토 언어와 별개의 언어로 보는 경우 본토 언어와 같은 어족으로 분류된다.
유네스코에서 정한 소멸 위기에 처한 언어이다.
제주어는 한라산을 기준으로 산남(山南)과 산북(山北)이 약간 다른 정도. 멀리 떨어진 섬끼리는 말이 안 통하는 지경이어서 류큐어를 또 여러개의 언어로 구성된 류큐어파로 보기도 한다.
과거에 지역 방언을 못 쓰도록 압박을 당했다.
일제 강점기에는 지역 말을 쓰는 학생에게 방언찰(方言札)이라는 걸 매달아서 지역 언어를 탄압했다.[12]
제주 4.3 사건 이후 육지사람들에 의한 차별을 피하기 위해 방언을 쓰지 않으려고 노력할 수 밖에 없었다. 마찬가지로 내지인들에 의한 차별을 피하기 위해 방언을 쓰지 않으려 노력할 수 밖에 없었다.
본토와 색다른 종교 문화가 남아있다.
육지에서는 보기 힘든 한국 무속신앙에 관련된 자료가 많이 남아있는 지역이다. 토착 종교인 류큐 신토는 일본 본토와 구분되는 독특한 신앙체계를 가지고 있다. 유타(ユタ),[13] 우타키(御嶽),[14] 니라이카나이(ニライカナイ)[15] 등등.
대한민국에서 기독교 인구가 가장 적은 지역이다.[16] 일본에서 기독교 인구가 가장 많은 지역이다.[17][18]

5.1. 요리

제주도 오키나와
흑돼지 고기로 유명하다.
예전에는 똥돼지로 키웠다.
돼지고기가 들어간 국수가 유명하다.
미군정 때 들어온 밀가루 때문에 본격적으로 이러한 국수요리가 유행하기 시작했다.
제주 흑돼지
돼지뼈 육수[19]를 쓰는 고기국수
돼지 수육이 고명으로 올라간다.
오키나와 흑돼지(아구)
돼지뼈, 다시마, 가쓰오부시로 육수를 만드는 오키나와 소바
그 가운데 소키소바(ソーキそば)의 경우는 돼지갈비 고명
테비치소바(てびちそば)의 경우는 족발이 올라간다.
옛날에는 쌀밥이 귀했다.
지역의 독특한 주류가 있다.
좁쌀로 빚는 전통 소주 고소리술
한라산 소주
안남미로 빚는 전통 소주 아와모리
오리온 맥주

6. 역사

제주도 오키나와
선사시대 유물이 풍부하다.
육지보다 이른 시기에 만들어지기 시작한 고산리식 토기가 유명하다. 일본 본토에서 보기 힘든[20] 야마시타 동굴인(山下洞人), 미나토가와인과 같은 화석인류가 여럿 발견되었다.
본토와는 독립된 국가였다. 이후 본토의 정부에 복속되고, 흡수당했다.
탐라국의 시작은 기원전 2337년으로 전해진다.[21][22] 11~12세기가 되어서야 농경문명 사회인 구스쿠 시대(グスク時代)에 진입하며, 15세기가 되어서야 통일 류큐 왕국이 세워진다.
성주(星主) 제도가 시작된 고려 시대부터 반 복속상태였으며, 조선 시대에는 완전히 흡수되어 중앙정부의 통제를 받기 시작했다. 류큐 왕국이 일본에 복속된 것은 1609년 사츠마 번의 침공 때이며, 메이지 시대에 합병됐다.
나라가 본토에 반 강제 합병되었다. 나라가 본토에 강제 합병되었다.
고려 때부터 탐라 지배층이 벼슬살이를 시작해 현으로 복속되어 조선 때 완전히 복속되었다. 에도시대 때부터 사츠마가 정벌하여 메이지 시대 때 완전히 합병되었다.
독립성을 상실한 뒤 이전과 다른 이름이 붙여졌다.
탐라→제주 류큐→오키나와
독립성을 상실한 뒤 붙은 이름은 본토에서 새로 지은 이름이다. 독립성을 상실한 뒤 붙은 이름은 본토에서 새로 지은 이름이 아니다.[23]
본토 입장에서 '바다 건너(濟)에 있는 고을(州)'이라는 의미로 자기 중심적으로 새롭게 명명했다.[24] 본래 류큐에서 가장 큰 섬만을 가리키는 말이었던 오키나와를 기존 류큐 전체(아마미 군도[25]는 제외)를 가리키는 이름으로 바꿨다.[26]
본토 사람들에게 착취당한 흑역사가 있다.[27]
조선시대 제주도의 진상품 고난 문서 참고 1609년 이후 류큐 왕국을 복속시킨 사츠마 번은 과도한 공물을 요구했다. 요구를 맞추기 위해서 류큐 왕국 정부는 미야코지마 등 멀리 떨어진 섬 주민들에게 무거운 인두세를 부과하는 지경에 이르렀고, 인두세를 피하기 위해 마을에서는 인구 조절[28]을 해야 했다.
태평양 전쟁 당시 군사기지를 짓는 데 주민들이 동원되었고, 아직도 남아있는 땅굴들이 있다.
등록문화재로 지정된 알뜨르 활주로를 비롯하여 여러 지하요새와 땅굴들이 남아있다. 자세한 내용은 결7호 작전을 참고할 것.
잘 알려지지 않았고 규모도 작았기는 하지만 미군은 제주도를 공격하기도 했다.
토미구스쿠의 해군사령부호(舊海軍司令部壕)를 비롯한 많은 땅굴들이 남아있으며 오키나와 전투 당시에 철저하게 활용된다.
본토인들에 의해 섬 인구 상당수가 학살을 당한 흑역사가 있다.
제주 4.3 사건 오키나와 전투

7. 주민

제주도 오키나와
섬 바깥으로 떠나서 살게 된 주민들이 많다.
일제강점기 때부터 오사카 등지의 공장에 취업한 제주도민들이 많았으며, 제주 4.3 사건 당시 학살을 피하기 위해 일본으로 떠난 사람들도 매우 많았다. 재일 한국인 1세대 가운데 약 1/5이 제주도 출신이라고 한다. 그리고 이후 도시화 과정을 거치며 전국적으로 불어닥친 이촌향도 현상으로 육지로 상경한 주민들도 상당하다. 일본 제국 시기 소철지옥(ソテツ地獄)[29]이라는 불황을 겪고, 수많은 현민들이 하와이 등지로 대규모 이민을 갔다. 그래서 2015년 기준으론 하와이 주지사도 오키나와계일 정도다.(제8대 하와이 주지사 데이비드 이게).
유전자상 남방계 유전자가 가장 높고 본토보다 유전자 구성이 특이하다.
제주도는 유전자 검사상, 한반도 지역 중 남방계 유전자가 가장 높은 지역이다. 제주도인은 본토 사람들과 달리 동남아시아인에 가까운 특이한 생김새를 지녔으며 유전자 구성도 본토보다 특이한 편이다. 제주도의 하플로그룹 유전자를 무작위로 검사한 결과 아랍인, 동남아시아, 오스트로네시아족 등 남방계 민족[30]몽골의 유전자가 섞여 독특한 구성을 이루고 있다. 오키나와를 이루는 민족의 대부분이 남방계인 조몬인의 후손이며 동남아시아와 대만, 오스트로네시아의 교류로 인해 남방계 유전자들로 구성되어있다. 그래서인지 오키나와인들은 본토 일본인보다 털이 많고 피부색이 짙으며 이목구비가 이국적인 전형적인 남방계의 모습을 하고 있다.

8. 교통

제주도 오키나와
국제공항[31]이 있으며 현재 거의 포화상태이다.
본토와의 이동에서 항공 교통의 비중이 크다.
궤도 교통이 아예 존재하지 않는다.[32][33] 오키나와 도시 모노레일선이 존재한다.

9. 산업

제주도 오키나와
물이 잘 빠지는 지질 특성상 쌀농사를 짓기가 힘들다.
그래도 짓기는 짓는다.[34]

10. 정치 및 지역 감정

제주도 오키나와
트라우마가 된 역사적 사건이 있으며 역사왜곡 시도를 당하고 있다.
일부 보수 우익 단체에서 제주 4.3 사건이 '빨갱이 폭동'이었다고 역사왜곡을 하는 사례들이 있다. 그런 연장선상인지 4.3 사건을 다룬 영화 지슬이 별점테러를 당하기도 했다. 일본 극우파들은 오키나와 전투 당시 미군이 오키나와 사람들을 학살했다는 억지 주장을 한다.[35] 하지만 널리 알려진 대로 오키나와 전투에서의 민간인 피해는 주민들에게 옥쇄를 강요하거나 심지어 인간방패로까지 썼던 일본군의 책임이 훨씬 더 크다.
지역에서 본토를 이르는 단어가 따로 존재한다.
육지: 본토
뭍것: 본토 사람
곤밥 먹은 소리: 서울말[36]
나이치(内地), 야마투(ヤマトゥ)/야마토(ヤマト)[37]: 본토
나이챠(ナイチャー), 야마톤추(ヤマトンチュー): 본토 사람
야마토구치(ヤマトグチ): 일본어
정당 구도가 본토와 매우 다르다.[38]
정당보다는 궨당[39]에 따라 정세가 자주 결정되는 지역이다. 다만 2010년대 들어선 타 지역에서 이주해온 사람들이 꽤 늘어서 그런지 예전보다 그런 경향이 많이 약해졌다.[40] 심지어 제주시 을[41]에서는 해당 선거구 출신의 새누리당 부상일 후보가 서귀포시 남원읍 출신인 더불어민주당 오영훈 후보에 밀려 낙선하기도 했다.[42] 2024년 기준 도지사는 더불어민주당 오영훈이고 국회의원은 3석 모두 더불어민주당 소속이다.[43] 일본에서 드물게 자유민주당이 영 힘을 못 쓰는 지역이다.[44] 지역 정당으로 오키나와 사회대중당[45], 정당 소조, 가리유시 클럽[46] 등이 있다.
'분리 독립 운동이 없다. 분리 독립 운동이 있다.
분리 독립을 주장하는 정당이나 정치인이 없다.[47][48] 분리 독립을 주장하는 가리유시 클럽이라는 정당이 존재한다.

11. 군사

제주도 오키나와
군사기지 관련 문제로 중앙 정부와 갈등을 겪고 있다.
제주민군복합형관광미항 주일미군
제주도 해군 기지 건설 논란 참고. 오키나와 전투 이후로 미군이 눌러앉으면서 반세기 넘도록 문제가 이어지고 있다. 오키나와/역사 문서 참고.

12. 영유권 분쟁

제주도 오키나와
중국과 영유권 문제로 갈등을 빚는 지역이 있다.[49]
+
중국이 아닌 국가가 실효지배하고 있다.[50]
이어도[51] 센카쿠 열도

13. 외교 공관

제주도 오키나와
양쪽 모두 외교 공관은 있다. 제주도에는 중국, 일본 총영사관이 모두 개설되어 있고, 오키나와에는 나하시미국 총영사관과 중화민국(대만) 경제문화사무처 나하 사무소가 설치되어 있다. 그러나 나하시에는 과거에 대한민국 총영사관이 설치되었으나 1995년 운영 적자를 이유로 철수되어 현재는 후쿠오카시에 주재하고 있는 대한민국총영사관이 이키, 쓰시마 등 주변 섬과 마찬가지로 오키나와도 관할하고 있다.
중국, 일본 총영사관 미국 총영사관, 중화민국(대만) 경제문화사무처

14. 관련 문서



[1] 한강 작가의 대표작인 "작별하지 않는다"를 일본어로 번역한 사이토 마리코 번역가도 제주도와 오키나와의 비슷한 점을 고려해 제주 방언을 오키나와 방언으로 번안했다.[2] 오키나와에서 서울까지의 거리(1,211km)가 오히려 도쿄까지의 거리(1,495km)보다 더 가깝다.[3] 여담으로, 오키나와-서울, 오키나와-오사카, 오키나와-홍콩/마카오, 오키나와-마닐라의 거리가 거의 비슷하다. 그리고 그 거리보다 가깝게 부산, 상하이, 타이베이 등이 위치한다. 오키나와의 지정학적 위치를 알 수 있는 대목.[4] 본섬으로만 치면 제주도보다 작으나, 한라산 같이 높은 산이 없고 길쭉하기에 여행을 다녀보면 제주도보다 작다는 느낌을 받기 힘들다. 대신 미군기지들이 많다...[5] 행정구역상 제주특별자치도이지만, 사실 전라남도 문화권이다.[6] 오키나와산 설탕과 바나나, 심지어 열대과일까지 존재할 정도다. 경작지가 좁기에 생산량이 적어 잘 눈에 띄지 않을 뿐.[7] 당연하겠지만 그래도 본토에 비하면 극히 적게 내린다. 제주도의 평균 적설량이 생각보다 높게 측정되는 것은 한라산때문. 그리고 한라산 정상 부근은 냉대습윤기후를 띈다.[8] 주상절리를 생각해보자.[9] 육지의 족제비와 다른 아종으로 분류되기도 함[10] 제주특별자치도, 오키나와/문화 참조.[11] 제주어, 류큐어, 오키나와어 참조.[12] 이는 일제강점기 당시의 한국어나, 일본이 표준어를 강력하게 획일화할 때 일본 본토의 다른 사투리도 마찬가지긴 했다. 문제는 일본 본토인들을 기준으로 유난히 알아들을 수 없는 류큐어(오키나와어)나 조선어를 더 차별한 정황이 있다는 점이다.[13] 오키나와의 무당을 말한다.[14] 오키나와 사람들이 제사를 지내는 성소(聖所)로, 원시적인 형태의 신사의 모습이 남아있다고 여겨지기도 한다.[15] 오키나와 신토에서 먼곳의 바다에 위치해 있다고 여겨지는 낙원. 죽은 사람들이 가는 곳이라고 하며, 제주도 이어도 전설과 비슷하다.[16] 여기서 기독교는 가톨릭, 개신교 모두 해당되며, 이는 역사적으로 중요한 사건인 신축민란제주 4.3 사건하고 밀접한 관련이 있다. 자세한 사항은 항목 참조. 물론 통일 한국으로 넓히면 북한 지역이 현재 기독교 인구가 가장 적긴 하지만 이건 북한 정권의 종교 탄압으로 그런 거니 예외로 한다.[17] 유일신 예수를 자칭하는 마타요시 미츠오라는 정치인이 오키나와현 출신이고 그가 만든 세계경제공동체당도 원래 오키나와현 지역 정당이었다. 마타요시는 오키나와현지사 선거에도 출마한 적이 있다. 일본/정당 문서 참고.[18] 다만 이건 본토와 비교해봤을 때고, 둘만 놓고 비교해보면 제주도는 2015년 조사기준 17.9%, 오키나와는 1996년 조사기준 약 3% 정도라고 한다. 확실히 평균적으로는 대한민국의 기독교 비율이 일본보다 훨씬 높긴 하다.[19] 멸치육수가 들어가기도 한다.[20] 화산, 지진 등이 활발하여 구석기 유적이 보존되기 힘들기 때문. 하지만 후지무라 신이치가 날조한 것들을 빼더라도 구석기시대 유적이 여럿 존재하기는 한다.[21] 다만 이는 신화적인 연대이다.[22] 그래도 중국 측 기록인 후한서위서 동이전에도 나오기 때문에 늦어도 3세기 이전임은 분명하다.[23] '오키나와'는 오키나와어로 오키나와섬을 가리키는 지명인 '우치나'를 한자로 沖縄로 적은 것을 일본 본토 식으로 훈독한 것이다.[24] 단 한자 문화권 국가 곳곳에 같은 이름이 붙여진 지명들이 존재했던 적은 있다(현재는 폐지).[25] 사쓰마 번의 류큐 정벌 후 사실상 류큐의 지배 지역에서 벗어나 있긴 했지만 형식적으로는 상당 기간 류큐의 영토로 취급되었다. 하지만 폐번치현을 거치면서 가고시마 현의 일부가 되었다.[26] 왜 바꿨는지는 명확하지 않다. 하지만 류큐가 명나라·청나라와의 책봉을 받은 국호이기 때문에, 일본이 청나라 측의 종주권 주장을 최대한 차단하기 위해 다른 이름으로 바꿨을 것이라는 게 정설이다.[27] 각각의 도가/현가에도 이를 반영한 비슷한 느낌의 가사가 있다. (지난날 버림받던 설움을 씻고 새나라 건설하는 아침을 맞아/시련의 역사를 넘어서 지금 영광의 아침에 선다. 각각 제주도의 노래 3절/오키나와 현민의 노래 1절 中)[28] 사람을 죽여서 숫자를 줄였다는 이야기다.[29] 오키나와의 경제 기반이던 설탕의 가격이 폭락했고, 이로 인해 현민들이 소철이라는 나무로 연명하던 시절을 말한다. 소철에는 독이 있어서 복잡한 가공을 거쳐 독을 제거해야 먹을 수 있는데, 사정이 급하다 보니 독이 빠지지 않은 소철을 먹고 앓다가 죽은 사람들이 꽤 되었다고 한다.[30] 동남아시아의 교류와 몽골제국의 침략으로 인해 남방계 민족(동남아시아인, 오스트로네시아인 등)과 몽골계 유전자가 타 한반도 지역보다 매우 높은편이다.[31] 제주국제공항, 나하 공항[32] 제주의 경우 1929~1931년간에 제주도순환궤도라고 하는 철도가 잠시 존재했었는데 몇년 가지 못하고 일제가 철거하였고 현재는 그 흔적을 거의 찾아보기 힘들다. 제주도에서도 아주 극소수 고령의 노인 일부를 제외하면 그런게 있었는지도 모른다...[33] 관광용으로 테마파크에 작게나마 존재하긴 한다.[34] 서귀포시의 하논 일대가 대표적. 람사르 총회 등에서 세계적으로 보존가치를 인정받는 습지인데 제주도에서 매우 드물게 논농사가 가능한 지역이다. 그 외에도 조선시대에 제주 전역을 통틀어 3~4곳의 논농사 가능한 답이 있었다고 하는데 현재까지 논농사가 가능한 지역은 하논 뿐이다. 그 외에 제주도의 각 지역에서 논농사가 아닌 밭벼 재배 형태로 벼농사가 이루어지기도 했었다. 물론 지금은 그런 거 없다.[35] 미군에 의한 오키나와 민간인의 피해가 적지 않았던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미군에 의한 무차별적인 학살은 확인할 수 없다. 민간인 피해사례는 동굴에 들어간 사람들을 쫓아내기 위해 연막탄을 썼는데 주민들이 피하지 못하고 연막에 질식사한 경우와 같이 의도치 않은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미군은 전투 후 주민 생활 복구를 위해 여러 노력을 다했다. 하지만 이후 미군기지를 짓고 눌러 살면서 민폐를 끼친다.[36] 곤밥은 쌀밥이란 뜻으로, 제주도는 쌀이 귀하지만 육지 사람들은 쌀밥을 자주 먹는다는 데에서 온 말이다.[37] 원래 오키나와어는 AIU 3모음 체계로 오(O) 모음을 잘 쓰지 않아 야마투라고 발음했으나, 이후 본토와 교류가 늘면서 야마토라는 발음을 많이 쓰게 되었다.[38] 다만 원래 한 나라 안에서도 지역마다 우세한 정당이 제각각이긴 하다. 다만 제주도와 오키나와는 그걸 감안해도 따로 특기할 사항이 있을 정도로 특이한 점이 있기 때문에 따로 정리한다.[39] 제주어로 친척이라는 뜻. 괸당으로도 적은다. 한자어 권당(眷黨)에서 왔다. 인맥과 친목이 지방 정치에 큰 영향을 끼치기 때문에 나온 말.[40] 그래서인지 2022년 제20대 대통령 선거에서 이 지역에서 1위를 한 더불어민주당 이재명이 낙선하여 처음으로 지역 내 1위 후보가 당선된다는 징크스가 깨졌다.[41] 제주시 중앙로 기준 동쪽 지역. 즉 조천, 구좌, 우도.[42] 그렇다고 오영훈이 제주시 을에 연고가 없다곤 할 수 없는데, 을 선거구에 소속되어 있는 동네에 있는 지방 국립대 출신에다 도의원도 을 선거구에 포함된 제주도 2선거구(일도2동 갑)에 출마하여 2006년 당시 열린우리당 소속으로 신승했고 그걸 발판으로 하여 재선까지 했다.[43] 참고로 22대 제주도 지역 국회의원들은 3명 전부 지역구와 출생지가 불일치 한다.(제주 갑: 문대림/서귀포시(舊 남제주군) 대정읍, 제주 을: 김한규/서울특별시, 서귀포: 위성곤/전라남도 장흥군)[52][44] 2014년 제47회 일본 중의원 의원 총선거에서는 오키나와 4개 선거구에서 각각 일본공산당, 사회민주당, 생활당과 야마모토 타로와 친구들, 무소속 후보가 당선되었다. 2016년 제24회 일본 참의원 의원 통상선거에서도 자민당 후보가 완패하며, 오키나와에서는 중의원4석/참의원2석 모두 비자민당 의원들이 차지하게 되었다.[45] 참의원에 의원이 한 명 있는 원내정당이다.[46] 류큐의 독립을 주장한다.[47] 4.3사건을 두고 분리주의 운운하는 경우도 있으나, 봉기를 일으킨 남로당 제주도당의 명분 중 하나인 단선단정 반대에서 볼 수 있듯이, 제주도민의 민족정체성(National identity)은 명백히 한민족이었으며 제주도민 정체성은 어디까지나 지역정체성(Regional identity)에 가까웠다. 즉 아무리 제주도민 정체성을 강조해봐야 지역정체성에 그쳤으며 민족정체성으로서 '한민족' 개념과 양립한다거나 심지어 대체하는 일은 없었다. 그리고 이후로도 봉기를 일으킨 측에서 독립을 주장한 사례는 전무하며 무장대 총책 김달삼은 아예 월북하여 빨치산으로 다시 내려오기도 했다.[48] 게다가 한국의 경우 분리 독립을 주장할 경우 현행 국가보안법에 저촉되어 코렁탕을 먹을수 있다.[49] 허나 이어도는 육지가 아니어서 영토(領'土')가 아니기 때문에 영토 분쟁이라는 단어 자체가 부적합하다. 실제로 중국 정부에서도 이어도는 영토 분쟁의 대상이 아니라는 점을 발표한 적이 있다. 이어도를 둘러싼 한중 간의 갈등은 양국의 배타적 경제수역(EEZ)의 경계선을 어떻게 그어야 하느냐 하는 문제이다. 이어도는 양국이 서로 자국 EEZ 내에 있는 암초라고 주장하는 중이다.[50] 센카쿠 열도는 일본이 실효지배하고 있고 이어도에도 한국의 이어도해양과학기지가 있다.[51] 알다시피 섬은 아니고 수중초이며, 기지가 설치되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