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2-09-25 18:27:48

조규찬(독립운동가)

파일:조규찬2.jpg
출생 1909년 8월 14일
전라남도 능주군 주내면 거석리
(현 전라남도 화순군 능주면 석고리 거석리마을)
사망 1997년 6월 26일 (향년 87세)
서울특별시 성동구 사근동 한양대학교병원
본관 창녕 조씨
산남(山南)
가족 부친 조혁순, 모친 전주 최씨
부인 김자옥[1], 슬하 3남 3녀
학력 광주고등보통학교
경성제국대학 예과 (이과 / 수료)
경성제국대학 의학부 (의학 / 학사)
국방대학교 (행정학사 / 1기)
종교 유교(성리학) → 개신교 (한국기독교장로회)
묘소 국립대전현충원 독립유공자 2묘역-650호
서훈 대통령표창 수훈
건국훈장 애국장 수훈

1. 개요2. 생애3. 여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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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대한민국독립유공자, 의사, 교수. 1986년 대통령표창,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수여받았다.

2. 생애

조규찬은 1909년 8월 14일 전라남도 능주군 주내면 거석리(현 화순군 능주면 석고리 거석리마을)에서 아버지 조혁순과 어머니 전주 최씨 사이의 아들로 태어났다. 1928년 광주고등보통학교를 졸업하고, 경성제국대학 예과(제5회, 이과)에 입학했다. 이때 경기도 경성부 효제동(현 서울특별시 종로구 효제동)으로 이주하였다.

1930년 예과를 수료하고 경성제국대학 의학부로 진학한 그는 2학년으로 진급한 1931년 4월 1년 후배인 법문학부의 신현중 등과 함께 동교 내의 비밀결사인 독서회(讀書會)를 조직해 활동하였다. 또한 발전적인 반제부(反帝部)로 개편하고 시내 각급 학교와 연계하여 공작조직을 확대하고 반제학생협의회(反帝學生協議會)를 결성하였다.
파일:조규찬(1931년).jpg
좌측·중간 : 1931년 10월 25일, 경성부 본정경찰서에서 촬영된 사진.
우측 : 1931년 11월 30일, 서대문형무소에서 촬영된 사진.

1931년 9월 만주사변이 발발한 뒤 일본제국주의에 반대하는 반제신문(反帝新聞) 및 격문을 간행하여 반포하고 활동하다가 체포되었다(경성제대 반제동맹 사건). 1932년 11월 24일 경성지방법원에서 소위 치안유지법 위반 혐의로 징역 2년형, 집행유예 3년(미결 구류일수 중 180일 통산)을 선고받고 출옥했다.#

출소 후 대학에 복학하여 동기들보다 5년 늦은 1939년 3월 경성제대 의학부를 졸업하고 의학사가 되었했다. 또 조선공산당(ML당) 당비서 김준연의 장녀 김자옥과 결혼하여(참조) 김준연의 맏사위가 되었다.

이후 성대 의학부 약리학 제2강좌 담임교수 스기하라(杉原)의 약리학교실에서 조수로 근무하면서 1942년 3월 26일부터 29일까지 도쿄제국대학에서 열린 일본의학회(日本醫學會) 총회에 참가해 약리학 논문 '漢藥常山에 관하여'를 발표하였다. 1942년 9월에는 내과교실로 옮겨 연구를 계속했다. 1944년 4월 광산군 송정면 송정동(현 광주광역시 광산구 송정동)에 개인병원을 개원했으며, 1945년 2월 모교 경성제대에서 의학박사를 취득했다.

8.15 광복 직후인 1945년 11월 광주의학전문학교(현 전남대학교 의과대학) 교수로 부임해 약리학교실을 창설하고 건물을 직접 설계했다(출처). 광주의학전문학교가 광주의과대학으로 개편되면서 1947년 광주의대 부교수가 되었다. 그러다가 의학전문학교 교수직과 개업의 직임을 양립할 수 없다는 양심상의 이유로 1949년 교수직을 사퇴하고 시간강사로 강의만을 담당하기로 했다. 이후 서울특별시로 개인병원을 옮기고 1952년부터 서울대학교 의과대학에 강사로 출강했으며, 1955년부터는 서울대학교 사범대학 부교수를 역임했다. 1962년 4월 서울의 개인병원을 폐업하고 광주로 내려가 전남대학교 의과대학장(1962~1966)에 부임하였으며, 전남대학교병원장(1962)을 겸임하고 이어 전남대학교 대학원장(1962~1968) 등을 역임했다(대한약리학회 참조).

1968년 10월에는 대한약리학회장에 취임했고 1974년 8월 정년퇴임하고 서울 성북동에 개인의원을 개업했지만, 이후에도 의사학(醫史學) 강의를 맡아 1992년까지 출장 강의를 했다.

이후 여생을 보내다가 1997년 6월 26일 서울특별시 성동구 사근동 한양대학교병원에서 노환으로 별세했다.#

대한민국 정부는 1986년 조규찬에게 대통령표창을 수여했고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했다. 그리고 1997년 6월 28일 그의 유해를 국립대전현충원 독립유공자 2묘역에 안장했다.

3. 여담



[1] 김준연의 장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