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10-30 08:12:12

사근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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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정동 법정동
<colbgcolor=#009742> 왕십리도선동 상왕십리동 하왕십리동 도선동 홍익동
왕십리2동 하왕십리동
마장동 마장동
사근동 사근동 행당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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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수2가1, 3동 성수동2가
용답동 용답동 송정동
송정동 송정동 }}}}}}}}}
성동구행정동
사근동

沙斤洞 | Sageun-dong
<colbgcolor=#009742><colcolor=#fff> 광역자치단체 서울특별시
기초자치단체 성동구
행정표준코드 3030044
관할 법정동 #사근동·행당동(일부)
하위 행정구역 23통 175반
면적 1.10㎢
인구 12,123명[1]
인구밀도 11,020.91명/㎢
정치 {{{#!wiki style="margin: -0px -11px -5px"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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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회의원 | 중구·성동구 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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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현희 (3선)
서울특별시의원 | 제3선거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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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민옥 (초선)
성동구의원 | 다 선거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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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영희 (재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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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천수 (재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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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지만 (초선) }}}}}}}}}
주민센터 사근동길 37 (사근동 223-22)
사근동 주민센터
파일:사근동 행정구역 경계도.png
법정동 경계와 행정동 경계
1. 개요2. 동명 유래3. 역사
3.1. 남이장군 전설3.2. 치마바위 전설
4. 특징5. 관할 법정동
5.1. 사근동5.2. 행당동
6. 지리7. 교통
7.1. 도로7.2. 철도7.3. 버스
8. 주거
8.1. 공동주택
9. 상권10. 교육11. 시설
11.1. 의료
12. 출신 인물13. 기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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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서울특별시 성동구행정동으로, 법정동 #사근동과 법정동 행당동의 일부를 관할하고 있다. 동쪽은 청계천을 경계로 용답동, 서쪽은 경원선을 경계로 행당1동·응봉동, 남쪽은 중랑천을 경계로 성수1가2동, 북쪽은 마장동과 접하고 있다.

법정동 사근동과 행정동 사근동의 영역이 다른데 법정동 경계는 사근고개 입구를 지나고 행정동 경계는 경원선을 따라 간다. 사근고개 입구를 기준으로 동쪽이 법정동 사근동이며 서쪽은 법정동으로는 행당동, 행정동으로는 사근동에 속하는 지역이다. 한양대학교 서울캠퍼스는 법정동으로는 행당동·사근동 양쪽 영역에 걸쳐 있고 행정동 관할 구역을 기준으로는 전체가 사근동에 속하며 지번은 사근동 110이다.

이외에도 법정동 사근동은 행정동 용답동 관할 구역과 성수1가2동 관할 구역에 땅이 조금씩 걸쳐 있으며 행정동 사근동은 법정동 마장동·용답동·성수동1가의 일부 토지를 점유하고 있다.

2. 동명 유래

사근(沙斤)이라는 동명은 모래 사() 자에 도끼 근() 자를 쓴다. 이 지명에 관해서는 세 가지 설이 있는데 이 지역이 청계천변의 퇴적된 모래밭 지역이라는 데에서 유래하였다는 설과 신라 때 지금의 한양대학교 사범대학 건물 인근에 세워졌다고 전해지는 사근사(沙斤寺)에서 유래했다는 설, 절 이름이 원래는 사근사가 아니었는데 신라시대에 창건되어 너무 낡은 나머지 사람들이 '삭은절'이라 부르던 것이 사근사로 정착되었고 그것이 사근동의 유래가 되었다는 설이 있다.

일제강점기에 발간된 지도 중에는 사근동의 근이 도끼 근이 아니라 미나리 근()으로 표기되어 있는 것도 있는데 실제로 사근동은 1970년대까지만 해도 청계천변에 미나리밭이 펼쳐져 있었다. 다만 조선왕조실록 세종실록지리지 경도한성부(京都漢城府) 편에서는 이 지역을 사근사리(沙斤寺里)라고 기록하고 있으므로 사근사가 동명의 유래가 된 것이 확실하고 미나리 근 자는 표기의 오류인 듯하다.

3. 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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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olding 삼국시대 ~ 후삼국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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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75 고구려 북한산군(北漢山郡)
553 신라 신주(新州)
557 북한산주(北漢山州)
568 남천주(南川州)
604 한산정(漢山停)
660 한산주(漢山州)
757 한주 한양군(漢州 漢陽郡) }}}}}}}}}
{{{#!wiki style="margin: -0px -11px -5px"
{{{#!folding 고려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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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95 관내도 양주목(關內道 楊州牧)
1018 양광도 양주목(楊廣道 楊州牧)
1067 남경(南京)
1069 경기 남경(京畿 南京)
? 양광도 양주목
1104 남경(南京)
1308 한양부(漢陽府)
1390 경기좌도 한양부(京畿左道 漢陽府) }}}}}}}}}
{{{#!wiki style="margin: -0px -11px -5px"
{{{#!folding 조선시대
{{{#!wiki style="margin-top: -5px; margin-bottom: -11px"
1395 경기좌도 양주부(京畿左道 楊州府)
1413 경기도 양주부(京畿道 楊州府)
1424 한성부 남부 사근사리(漢城府 南部 沙斤寺里)
1721 한성부 남부 두모방
(漢城府 南部 豆毛坊)
보당리계
(補堂里契)
전관1,2계
(箭串一二契)
신촌리계
(新村里契)
1895 동서 인창방
(東署 仁昌坊)
남서 두모방
(南署 豆毛坊)
동소문외계 사근리
(東小門外契 沙斤里)
전관1,2계 전관동
(箭串一二契 箭串洞)
신촌리계 행당동
(新村里契 杏堂洞)
}}}}}}}}}
{{{#!wiki style="margin: -0px -11px -5px"
{{{#!folding 일제강점기 ~ 현대
{{{#!wiki style="margin-top: -5px; margin-bottom: -11px"
법정동은 파란색, 행정동은 분홍색
1910. 10. 1. 경기도 경성부(京畿道 京城府)
동서 인창방
(東署 仁昌坊)
남서 두모방
(南署 豆毛坊)
동소문외계 사근리
(東小門外契 沙斤里)
전관1,2계 전관동
(箭串一二契 箭串洞)
신촌리계 행당리동
(新村里契 杏堂里洞)
1911. 4. 1. 인창면 사근리
(仁昌面 沙斤里)
두모면 행당리 전관동
(豆毛面 杏堂里 箭串洞)
1914. 4. 1. 경기도 고양군 한지면
(京畿道 高陽郡 漢芝面)
사근리 행당리
1936. 4. 1. 경기도 경성부
사근정(沙斤町) 행당정(杏堂町)
1943. 6. 10. 경기도 경성부 성동구
(京畿道 京城府 城東區)
사근정 행당정
1946. 10. 9. 서울특별자유시 성동구
(서울特別自由市 城東區)
사근동(沙斤洞) 행당동(杏堂洞)
1949. 8. 15. 서울특별시 성동구
(서울特別市 城東區)
사근동 행당동
1970. 5. 18. 사근동 행당1동
1980. 7. 1. 사근동 }}}}}}}}}
고려 시대에는 양주목(楊州牧)에 속했다. 1067년(문종 21년)에 양주목이 남경(南京)으로 승격하자 그에 속했는데, 얼마 가지 않아 남경이 다시 양주목으로 격하되었다. 1104년(숙종 9년)에 다시 남경이 설치될 때에 그에 속해 쭉 유지되었다.

1395년(조선 4년)에 개경에서 한양으로 천도할 때에 한양도성 내부만 한성부가 되고, 그 외 지역은 모두 양주군에 속하게 했는데, 지금의 사근동 지역도 양주군에 속하게 되었다. 1424년(세종 6년), 한양에서 떨어져 나온 지 29년이 지나서 다시 한성부 성저오리(城底五里)에 편입되어 동부 인창방(仁昌坊)에 예속되었다. 조선왕조실록 세종실록지리지 경도한성부 편에서는 마보단(馬步壇)·마조단(馬祖壇)·선목단(先牧壇)·마사단(馬社壇)이 모두 흥인문 밖 사근사리에 있다고 적혀 있다.

1721년(영조 27년) 행정구역 개편 당시 사근고개 동쪽 지역은 남부 두모방(豆毛坊) 보당리계(補堂里契)에 속하였고, 사근고개 서쪽 지역의 일부는 지금의 성수동 지역과 함께 남부 두모방 전관1·2계(箭串一二契)에, 다른 일부는 응봉동·행당1동과 함께 남부 두모방 신촌리계(新村里契)에 속하였다. 전관1·2계의 전관(箭串)은 '살곶이'의 한자 훈차로, 중랑천을 끼고 한양대학교 서편과 성수동 일대에 드넓게 펼쳐져 있던 살곶이벌(箭串坪)에서 유래한 것이며, 지금의 행당중학교 자리에는 한성부 4대 역원 중 하나인 전관원(箭串院)이 있었다. 신촌리계는 응봉동의 전신이 되는 행정구역으로, 1420년(세종 2년)에 살곶이다리를 건설하면서 그 일대에 살던 주민들을 응봉산 밑으로 옮겨 새 마을을 이루었다는 데에서 신촌리(新村里)라 한 것이다.

1895년 갑오개혁 이후에 사근고개 동쪽 지역은 보당리계가 폐지되고, 지금의 마장동과 함께 동서(東署, 舊 동부) 인창방 동소문외계(東小門外契)에 편제되었다. 한편 신촌리계에 속하였던 지역은 신촌리계 행당리동(杏堂里洞)으로, 전관1·2계에 속하였던 지역은 전관1·2계 전관동(箭串洞)이 되었다. 경술국치 이후인 1911년에는 신촌리계 행당리동과 전관1·2계 전관동 중 지금의 사근동과 행당동에 속하는 지역이 행당리 전관동(杏堂里 箭串洞)으로 통합되었다가, 1914년에는 행당리가 되었다.

1914년에 부군면 통폐합을 단행하면서 경성부에서 구용산신용산을 제외한 성저십리 지역이 모두 고양군으로 이관됨에 따라 이 지역도 고양군에 속하게 되었으며, 인창면(舊 동부 인창방)에 속하였던 사근고개 동쪽 지역이 사근고개 서쪽 지역과 함께 고양군 한지면(漢芝面)으로 이관되면서 지금의 성동구 중 중랑천 이서지역이 모두 같은 행정구역 안에 놓였다.

1930년대에 들어 이촌향도 현상이 심해짐에 따라 경성의 인구가 폭증하였다. 이에 따라 조선총독부는 경성의 인구를 감당하기 위해 경성 교외에 신규 택지를 조성할 목적으로 1914년에 고양군으로 편입시켰던 옛 성저십리 지역을 다시 경성부로 재편입하였으며, 이 지역은 사근정(沙斤町)·행당정(杏堂町)이 되었다.

이듬해인 1937년 2월 2일에는 토지구획정리사업 계획을 발표하였고, 번대방지구·용두지구·한남지구와 함께 사근지구가 제1토지구획정리사업지구로 지정되었다. 제1토지구획정리사업지구로 지정된 위 4개 지구는 전국 최초로 지정된 토지구획정리사업지구이며, 사근지구는 지금의 사근동·용답동·답십리동 일대로 계획되었다. 1940년부터 사업 시행에 착수하였으나, 이듬해인 1941년태평양 전쟁이 발발하면서 사업은 무기한 연기되었다.

1943년구제(區制)를 시행할 때에 신설 성동구에 속하였다. 해방 이후에는 1946년 10월 9일부터 동제(洞制)가 시행됨에 따라 사근동(沙斤洞)·행당동(杏堂洞)이 되었고, 1947년 6월에 지금의 행정동 제도의 전신인 동회(洞會) 제도가 시행됨에 따라 사근동회와 행당동회가 설치되었다. 1955년 4월 18일에는 동회 제도가 폐지되고 행정동가 시행되면서 사근동사무소와 행당동사무소가 설치되어 이 지역을 관할하였으며, 1970년 5월 5일에 행당동사무소의 관할 구역이 행당1동과 행당2동으로 나뉠 때 사근고개 서쪽 지역은 행당1동에 속하였다.

1970년 7월 1일에 행당3동이 행당2동으로 통폐합되고, 기존 행당2동의 일부 지역이 행당1동으로 편입됨과 동시에, 행당1동의 경원선 동쪽 지역은 행정동 사근동으로 편입되면서 행정구역 경계가 불일치하게 되었다.

3.1. 남이장군 전설

조선시대까지만 해도 사근고개는 호랑이가 자주 출몰하는 곳이었는데, 남이 장군(1441~1468)이 이곳에 출몰하던 호랑이를 바위에 던져 때려 잡았다는 전설이 있다. 그 후로 이 지역 주민들은 사근동 190-2번지에 남이장군 사당을 차리고 제사를 지냈는데, 현재는 헐려서 공영주차장이 되었다.

3.2. 치마바위 전설

일제가 도로를 확장하려고 현 한양대학교 미술대학 자리에 있던 치마를 두른 모양을 한 치마바위를 폭파하자 붉은 피가 흘렀다는 전설이 있는데 한양대학교에는 미술대학이 없다.

4. 특징

1960년대까지만 하더라도 완전히 뻘밭으로 이루어진 시골 동네였던 곳으로, 이곳에서는 미나리와 기타 채소를 많이 재배하였다고 한다. 1989년에 하이츠아파트가 세워지기 전까지만 해도 그 땅에 밭이 아직 남아 있었다. 한편 성민교회 쪽은 1953년까지만 해도 염전이 있던 곳이었는데, 전쟁 이후 서울로 사람들이 몰려들면서 사근동은 금세 주택가로 변모하였다.

역사 문단에서 말했다시피, 1937년 2월 2일토지구획정리사업지구로 지정되며 경성 교외의 신규 택지로 조성하려는 계획이 있었고, 1940년부터 공사에 착수하였으나, 이듬해인 1941년에 태평양전쟁이 발발하면서 지금의 천호대로의 일부 구간을 개설하는 데에 그친 채로 사업은 무기한 연기되었다. 해방 이후에도 6.25 전쟁이 발발하면서 토지구획정리사업은 재개되지 못 하였고, 휴전 이후에는 상경민들이 몰려들며 마구잡이로 주택이 지어지고 청계천변에는 판자촌이 늘어서는 등의 난개발이 심각해졌다. 사근지구 토지구획정리사업은 사업이 중단된 사이에 이미 무질서한 택지가 들어서게 되면서, 결국 1967년에 이렇다 할 성과를 내지 못 한 채로 사업이 종료되었다.

지금까지도 사근동이라 하면 서울에 오래 산 사람들은 청계천변의 판자촌부터 떠올릴 정도로 빈민촌의 이미지가 강하며, 장마태풍이 오면 거의 해마다 청계천이 범람하여 침수가 일어날 정도로 서울에서 침수가 가장 빈번하게 일어나던 지역 중 한 곳이기도 했다. 이렇게 물난리가 한 번 나면, 판자촌은 다 휩쓸려 나가고, 인명피해도 상당했다. 그래서 오죽하면 당시의 사근동은 빈민들이 저지대에 살고, 오히려 어느 정도 사는 사람들이 산동네에서 살 정도였다.[2] 판자촌은 청계천변에만 있었던 게 아니라, 경원선 동쪽, 지금의 서울숲 더샾 자리에도 있었다. 이쪽도 저지대라 중랑천이 범람하면 경원선과 함께 물에 잠겼다.

이처럼 사근동은 1970년대까지 도시 빈민들의 터전이었는데, 능동 서울어린이대공원 착공식 때 박정희 대통령이 사근동 쪽을 보고는 "도시 미관상 보기 좋지 않으니 철거하고 이주시키라"고 했는 이야기가 있다. 실제로 1976년 어린이대공원 개원 즈음하여 판자촌이 하루아침에 사라졌다는 사근동 주민들의 증언도 있다. 그렇게 판자촌이 사라진 후 약 10여 년 동안 청계천변은 모래밭으로 방치되어 있었다가, 80년대 후반부터 제방공사를 시작하여 1990년에 그 제방 위로 비로소 지금의 살곶이길이 개통되었다. 사근동을 잘 아는 사람들은 살곶이길을 흔히 뚝방길이라고 부르며 판자촌의 추억을 떠올리곤 한다.

현재 사근동은 사근고개를 기준으로 동쪽 지역과 서쪽 지역의 분위기가 아예 다른 동네라 여겨질 정도인데, 사근고개 동쪽의 원사근동은 대부분 주택가로 이루어진 지역이라 한적한 편이고, 사근고개 서쪽 지역은 왕십리역한양대학교 사이에 형성된 번화가로, 원사근동과는 달리 유동인구가 많은 지역이다. 원사근동은 1970년대까지만 해도 사근고개를 넘어서 들어오는 버스에 사람이 꽉 찼다고 하는데, 판자촌이 없어진 이후에는 인구 유출이 심해지고, 개발이 더뎌지면서 거의 잊혀진 동네가 되었다. 지형상 외지인이 사근고개를 넘어서 들어올 일도 웬만하면 없기 때문에 인지도도 거의 없는 편이고, 심지어 바로 옆인 행당동에 사는 사람들 중에서조차 사근동이 어디 붙어 있는 동네인지 모르는 경우가 종종 있다.

사근고개 서쪽 지역은 왕십리역과 붙어 있어 넓은 의미에서 일컫는 왕십리의 범위에 포함되기도 한다. 사근고개 동쪽의 원사근동은 왕십리역과의 사이에 사근고개가 있기는 하지만, 남쪽은 한양대학교 서울캠퍼스, 동쪽은 청계천, 북쪽은 산등성이로 막혀 있어[3] 사근고개가 사실상 동네의 주된 출입구가 되며, 고개를 넘나들며 왕십리역을 이용하는 사람들이 많으므로, 넓은 의미에서 일컫는 왕십리와는 분리되어 있으나, 왕십리역 생활권에 들어가는 편이다.

주민들의 연령대는 크게 양분된 형태를 보인다. 사근동에 최소 40년 이상 터를 잡고 살아오신 어르신들과 대학생들이다. 학원가가 형성되지 않아 교육여건이 열악하여 자녀교육에 대한 불안감으로 중장년층이 없다 보니 청소년 인구가 거의 없다. 서울사근초등학교는 입학생이 20명 남짓이다.

5. 관할 법정동

5.1. 사근동

성동구법정동
사근동

沙斤洞 | Sageun-dong
<colbgcolor=#009742><colcolor=#fff> 광역자치단체 서울특별시
기초자치단체 성동구
법정동코드 1120010600
소속 행정동 사근동
면적 0.67㎢
인구 6,717명[4]
인구밀도 10,025.37명/㎢
행정동 사근동의 관할 구역에서 법정동 사근동에 속하는 지역으로, 사근고개 동쪽 지역에 해당한다. 보통 사근동이라고 하면 이 지역을 말하며, 1980년 이후에 행정동 사근동으로 편입된 지역과 구분하기 위해 편의상 원사근동(元沙斤洞), 혹은 본사근동(本沙斤洞)이라고도 한다. 사근동주민센터가 이곳에 있다. 남쪽으로는 한양대학교 서울캠퍼스가, 동쪽으로는 청계천이 있으며, 서쪽과 북쪽으로는 고지대가 있어서 지리적으로 고립되어 있다는 특성을 보이며, 대부분 주택가로 이루어진 지역이기 때문에 유동인구가 거의 적은 편이다.

면적은 0.67㎢이며, 면적의 절반 넘은 땅을 한양대학교가 차지하고 있다. 1954년에 한양대학교가 처음 이곳에 자리잡을 때만 해도 부지가 지금처럼 크지는 않았으나, 점점 교세(校勢)가 커지며 사근동 방향으로 캠퍼스를 확장하였고, 한양대학교병원, 한양여대, 한양대 기숙사 등이 지어졌다. 특히 최근 기숙사를 늘리면서 사근동 주민과의 갈등이 커지고 있는데, 이는 사근동이 대학가 원룸촌이기 때문이다. 기숙사가 수용할 인원이 워낙 적다보니 나머지 수요를 사근동 원룸촌 등지에서 충당하고 있었으나, 한양대 측에서 사근동 방향으로 부지를 계속 사서 기숙사를 추가로 지으려 하자, 사근동 주민들이 생계 위협을 이유로 반대한 것. 또한 사근동 주민들 입장에서는 동네 면적이 자꾸 줄어드릭도 하거니와, 한양대 기숙사 때문에 재개발이 지연되는 측면도 있다는 이유로 한양대학교 측과 갈등이 있는 편이다. 그래서 향후 준공될 6,7생활관은 사근동 주민편의시설로 일부 개방되는 것으로 합의된 상태이다.

한양대학교 서울캠퍼스를 제외한 나머지 주택가 지역은 2010년대 들어 급격히 재개발이 이루어지며 변모하고 있는 성동구에서도 시간이 멈춘 듯한 느낌이 들 정도로 개발이 더딘 곳이다. 서울 중심부에 있음에도 불구하고, 동서남북으로 두루 막힌 지형적 특성상 외부로부터의 접근성이 좋지 않아 유동인구가 거의 없다. 때문에 원사근동에 가면, 서울이 아닌 어느 시골 읍내에 온 듯한 정겨운 느낌도 들며, 특히 서울 버스 4211을 타고 강남왕십리의 번화한 거리를 지나다가, 사근고개를 넘어서면서부터는 1980년대로 시간여행을 하는 듯한 느낌도 든다.

주택가는 다세대주택·빌라 등의 일반 주택들과 1~2개 동 내외의 아파트, 그리고 한양대학교 재학생들을 위해 세워진 기숙사들로 이루어져 있다. 이 중 다수의 주택들은 노후 주택이며, 차 한 대도 못 지나갈 정도로 비좁고 구불구불한 골목들을 통해야만 접근할 수 있는 곳들도 많다. 과거에 비해서는 주거 환경이 점차 개선되고는 있으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직까지는 낙후된 곳이 더 많이 남아 있다.

사근고개 서쪽에 비하면 유동인구가 적지만, 주민 인구는 근소하게 사근고개 동쪽이 조금 더 많다. 한양대 기숙사에 거주하는 학생들, 자취생들 혹은 30~40년 이상 터를 잡고 살아온 노인들이 인구의 대다수를 차지한다. 원래는 압도적으로 고령화가 진행된 동네였지만, 2010년 전후로 한양대 기숙사가 관내에 하나 둘 세워지며 현재는 한양대 학생들이 많이 유입되었고, 인구 분포가 중간층이 없이 노년층과 청년층의 극과 극으로 양분된 상태이다.

중심 도로인 사근동길은 2차선 도로이며, 사근동길을 중심으로 소상권이 형성되어 있다. 2010년 이전까지만 해도 이곳에는 편의점도 없을 정도였고, 주민들은 오래된 동네 마트나 가게를 이용했었으나, 이곳에 한양대학교 기숙사들이 점점 많아짐에 따라 대학생 인구도 많아졌고, 카페와 각종 식당이 점점 늘어나고 있으며, 동네 가게들은 하나 둘 편의점으로 대체되는 등의 변화를 보이며 조금씩 활기를 띄는 모양새이다. 대학생 인구가 늘어나면서 이곳으로 들어오는 서울 버스 4211과 인근 용답역의 이용 인원도 많아졌다.

이전에도 재개발을 하려던 시도는 여러 차례 있었으나, 주민들 간의 이권 갈등으로 인해 번번히 좌초되었다. 더군다나 이 지역 토지들의 실소유주들은 이곳에 30~40년 이상 터를 잡고 살아온 노인들이기 때문에 재개발로 인한 이주를 극도로 꺼리고 있었다. 결국 2019년 4월 서울시 도시재생활성화 지역으로 선정되어 벽화마을이 조성되었는데, 열악한 주거 환경과 불편한 통행은 개선하지도 않은 채 담벼락에다 벽화만 그린 이 사업은 결국 성공하지 못 했다.

도시재생활성화 지역으로 지정되면서 재개발은 완전히 물건너가는 듯 보였으나, 오세훈 시장 취임 후인 2022년 12월, 성동구 사근동 293번지 일대가 서울시 신속통합기획 2차 후보지로 선정되었다. 이 지역은 신속통합기획 1차 후보지로 선정된 마장동 382번지 일대와 주택재건축정비구역으로 선정된 마장동 세림아파트와 경계를 맞대고 있어 향후 10년 내 주거지로서의 큰 변화가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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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2. 행당동

성동구법정동
행당동

杏堂洞 | Haengdang-dong
<colbgcolor=#009742><colcolor=#fff> 광역자치단체 서울특별시
기초자치단체 성동구
법정동코드 1120010700
소속 행정동 사근동
면적 0.45㎢[5]
인구 5,410명[6]
인구밀도 12,022.22명/㎢
행정동 사근동의 관할 구역에서 법정동 행당동에 속하는 지역으로, 사근고개 서쪽, 경원선 동쪽에 해당하는 지역이다. 한양대학교 서울캠퍼스 부지의 절반 가량이 이 지역에 걸쳐 있으며[7], 왕십리역과 한양대학교 서울캠퍼스 사이에 있는 지역은 대학 상권과 대학생들이 주로 거주하는 원룸촌이 형성되어 있는 번화가로서, 사근고개 동쪽 지역과는 달리 유동인구가 많다. 때문에 보통은 이 지역을 사근동이라고 부르지 않으며, 따로 한양대, 혹은 한대앞이라고 부른다.

이곳은 본래 행당1동에서 관할하던 지역이었으나, 1980년 7월 1일부로 행정동 사근동으로 이관되었다. 따라서 현재 이 지역의 행정 업무는 사근동주민센터에서 관할하고 있으며, 이곳에 거주하는 주민들은 주소는 행당동으로 쓰지만, 행정 업무는 사근동주민센터에 가서 처리해야 한다. 이곳에 살면서 주민센터에 방문할 일이 없다면, 전출을 갈 때까지도 본인이 사근동에 살고 있었다는 것을 모르는 사람들도 많다.

왕십리로 이남 지역은 행당도시개발구역으로 재개발되었으며, 서울숲 더샵성동소방서가 이곳에 있다. 행당도시개발구역 동쪽에는 행당중학교와, 지금은 위례신도시로 이전한 덕수고등학교 옛 교사가 있다. 이곳은 원래 6.25 전쟁 이후에 서울교육대학교주한미군 기지가 자리잡았다가, 미군이 철수한 부지에는 행당여자중학교(지금의 행당중학교)가 개교하였고, 서울교육대학교는 1977년서초구 서초동으로 이전, 을지로6가 18-1(지금의 두산타워 부지)에 있던 덕수고등학교가 1978년에 이곳으로 자리를 옮겨왔다.

2022년에는 이 일대의 학령인구 감소로 인해 덕수고등학교의 일반계 학급은 위례신도시에 새 교사를 마련하여 이전하고, 실업 계열은 덕수고등학교 행당분교라는 이름으로 이곳에 남아 있다가, 2024년경기상업고등학교로 통합되면서 현재는 비어 있는 부지가 되었다. 서울특별시교육청에서는 덕수고등학교 옛 부지를 미래교육파크로 개발하겠다 발표하였다.

6. 지리

동쪽으로는 청계천이 돌아나가고, 사근동의 남쪽에서 중랑천이 합류하여 한강으로 흘러 들어간다. 본래 이곳은 청계천과 지금은 복개된 전농천이 합류하는 곳에 모래가 퇴적되어 드넓은 모래사장이 형성된 범람원 지역이었는데, 사근동의 동명에 모래 사() 자가 들어가는 것은 이러한 지형적 특성에서 유래한 것이다. 청계천변의 드넓은 모래사장은 오래 전부터 미나리밭으로 개간되어 농민들이 마을을 이루고 살았으나, 1960년대 이후로는 서울의 인구가 폭증함에 따라 이곳에 도시 빈민들이 모여들면서 판자촌으로 바뀌었다.

남쪽에는 한양대학교 서울캠퍼스가 자리잡은 행당산이 있으며, 해발고도가 96m에 이른다. 이는 최고점이 해발고도 94m인 응봉산보다 높은 것이다. 이 산은 남산에서 뻗어내린 산줄기가 응봉산을 거쳐 청계천 앞에 이르러 끝을 맺는 곳이며, 풍수지리적으로는 화산(火山)[8]에 해당한다고도 본다. 행당산은 주변에 높은 산이 없이 탁 트인 지대에 홀로 솟아 마치 봉화(烽火)와 같은 형상을 하고 있으므로 화기가 강하다는 속설이 있으며, 학교를 세우면 학문의 불꽃이 꺼지지 않고 타오르는 곳이라고도 한다. 한양대학교가 유달리 남초 학교인 것도, 풍수지리적 속설로는 이 행당산의 양기(陽氣)가 남학생들을 불러모으기 때문이라는 해석이 있다.

남산에서 뻗어내린 이 산줄기는 행당산에서 다시 북쪽으로 뻗어 마장동 방향으로 이어진다. 사근고개가 이 산줄기를 뚫고 지나간다. 사근고개 이북으로 이어지는 산등성이는 한양대학교사범대학부속고등학교의 뒷산으로서, 초록동산이라는 애칭으로 불린다. 초록동산 뒤편은 사근동과 마장동의 경계를 이루는 지역으로, 원래 이곳에는 염전이 있었으나, 1950년대부터는 달동네로 바뀌었다. 이곳은 현재 한양대학교 제2캠퍼스로 조성되고 있으며, 사근동 293번지 일대가 서울시 신속통합기획 2차 후보지로 선정되면서 재개발이 이루어질 예정이다.

1970년대청계천의 대부분 구간이 복개되었으나, 고산자교에서 중랑천 합류부까지는 복개되지 않고 직강화 공사를 하는 데에 그쳤다. 사근동 앞 청계천을 똥물이 흐르는 상태로 방치되고 있었고, 거의 매년 장마태풍 때에는 청계천이 범람하여 침수로 인한 인명 피해와 재산 피해가 심각하였다. 이 피해는 1990년대 초까지 계속되었으나, 청계천을 따라 제방이 축조되고, 2002년에 사근빗물펌프장이 완공되면서부터는 홍수 피해가 사라졌다. 아직도 호우 때에는 제방을 넘칠 듯 말 듯 물이 차오르기는 하지만, 사근빗물펌프장에서 제어를 하고 있기 때문에 홍수 피해가 발생하고 있지는 않다. 제방을 쌓으면서 청계천 쪽으로는 지대를 높였기 때문에 사근고개에서 쭉 낮아지던 고도가 청계천에 가까워지면서부터는 높아진다.

전체적으로 보면 사근동은 산이 말굽 모양으로 감싸고, 하천으로 동네를 감싸고 돌아나가며 사방이 두루 막힌 지형인데, 이로 인해 동네 밖으로 통하는 도로가 몇 개 없다. 왕십리역 방향으로는 사근고개를 지나야 하고, 용답역 방향으로는 청계천을 건너가야 하는데, 청계천 위로 놓인 사근용답간인도교용답나들목교의 2개 교량이 모두 인도교라 차량은 통행할 수 없다. 이밖에는 청계천 제방 위로 놓인 살곶이길을 통해 제2마장교성동교 방면으로 진출할 수 있으며, 사근고개에서 분기하여 마장동 세림아파트 방향으로 넘어가는 샛길이 있다.

이것도 과거에 비하면 상황이 나아진 것으로, 과거에는 외부와 통하는 길이 사근고개 하나 뿐이었다. 1980년용답역이 개업하면서 사근용답간인도교가 가설되었고, 1988년에 살곶이길이 개통되면서 사근동길 이외에 외부로 통하는 도로가 하나 더 생긴 것이다.

7. 교통

7.1. 도로

사근동을 동서로 관통하는 사근동길이라는 2차선 도로가 현재 사근동의 메인 스트리트이다. 이 길을 중심으로 주민센터를 비롯하여 사근동의 상권이 몰려 있다. 노상주차 때문에 거의 1차선 도로나 다름 없다. 이 길로 시내버스도 다니는데, 차끼리 마주치면 아주 좁은 틈으로 비껴가거나 아니면 한쪽이 후진해서 양보해야 할 정도. 특히나 한양대학교 면접이나 논술 시험 치는 날에는 주차공간을 물색하던 학부모들이 사근고개까지 밀고 들어와서 그때는 버스기사가 버스 몰다 말고 교통정리를 하는 모습을 볼 수 있다. 한양지구대는 뭘 하는지 교통상황이 그 지경이 되도록 안 오고 있었다.

청계천 제방을 따라 살곶이길이 있다. 고산자교에서 시계 방향으로 마장동과 사근동을 끼고 한 바퀴 도는 노선이며, 한양대병원 교차로에서 끝난다. 교통량은 한산한 편이다.

사근삼거리에서 마장동 쪽으로 꺾으면 내부순환로 사근램프가 나오는데, 이름과는 달리 정작 사근동 쪽으로 나있지 않고 마장동 쪽으로 나있다. 마장동 쪽으로 가다가 유턴을 해서 이용할 수 있다.

성수대교 방면으로 빠르게 진출하려면 사근고개를 넘어서 왕십리로타리로 나가지 말고, 살곶이길을 이용해 성동교로 진출한 다음, 성동교를 건너 광나루로를 이용하는 쪽이 빠르다.

원사근동 밖으로 나가면 왕십리로마조로가 지난다.

7.2. 철도

행정동 사근동의 서쪽 경계로 왕십리역이 있고, 법정동 사근동의 동쪽에는 용답역이 있다. 왕십리역에 정차하는 노선의 수가 훨씬 많고, 같은 2호선이라고 해도 용답역은 성수지선이라 신설동역에서든 성수역에서든 갈아타야 하는 불편함이 있으므로 대개 용답역보다는 서울 버스 4211을 타고 나와서 왕십리역을 이용하는 편이다.[9] 마장역이나 답십리역도 도보 10여분 거리에 있으나 너무 멀고 버스로도 접근이 불가능해서 메리트는 없다. 다만 버스가 끊긴 심야 시간에 천호, 군자 방면에서 사근동으로 올 때는 답십리역이 근소하게 유리하다.[10][11]

본래 서울 지하철 2호선은 왕십리역에서 분기해서 사근고개를 지나는 지선을 뚫어 군자차량기지 인입선으로 사용할 계획이었지만, 1970년대라는 시대적 특성상 기술력이 부족한 관계로 사근고개 밑을 뚫고 지나가는 노선은 포기할 수 밖에 없었다. 또, 그렇게 되면 사근동 주거지 밑을 정면으로 뚫고 들어가야 하는 어려움이 있었다. 그래서 대신에 성수역에서 분기하는 지금의 성수지선이 만들어진 것이다.

본래 용답역을 이용하고자 하면 높이가 꽤 높은 사근용답간인도교를 이용하여야만 했는데, 계단이 너무 많아서 노인들은 이용하기가 상당히 힘들었고, 젊은 사람들조차 이용에 불편을 겪었다. 사근동 쪽에서 다리로 올라갈 때에도 계단을 타고 올라가야 하는데, 용답역 1번 출구로 들어가서부터는 엄청나게 많은 계단을 타고 또 내려가야 했기 때문이다. 다행히도 뚝방 밑으로도 다리를 하나 놓아 용답역 대합실로 바로 들어갈 수 있게 되었다. 다만 장마철에 청계천 수위가 올라가면 폐쇄되기 때문에 그럴 때는 부득이하게 사근용답간인도교를 이용해야 한다.

7.3. 버스

원사근동 안으로 들어가는 버스 노선은 서울 버스 4211이 유일하다. 본래 원사근동을 경유하는 노선은 77-1번과 77-2번의 두 개가 있었는데, 77-1번은 강남까지 나가는 노선이고, 77-2번은 왕십리역까지만 가는 거의 사근동 전용 마을버스였다. 이후 응봉역까지 연장되며 도시형 버스로 전환되었다.

서울 시내버스 개편 이후 77-1번 버스는 서울 버스 2411로, 77-2번 버스는 서울 버스 2220으로 개편되었고, 2411은 이후 마장동으로 종점이 바뀌며 원사근동에는 응봉역까지만 가는 2220번 버스만 남게 되었고, 강남으로 가려면 무조건 왕십리역에서 환승을 해야 하는 불편함을 감수하게 되었다.

2014년에 2411번 버스와 2220번 버스가 통합되어 서울 버스 4211이 신설됨에 따라 10년 만에 사근동에서도 버스를 갈아타지 않고 강남으로 갈 수 있게 되었다. 물론 사근동에서 4211번을 타고 강남까지 가는 사람들은 거의 없고 대부분 왕십리역까지 가는 인원들이다. 사근동에서 강남을 가려면 왕십리역에서 수인분당선을 타던지, 용답역에서 성수지선을 타고 성수역에서 2호선 본선으로 갈아타는 편이 훨 빠르기 때문이다.[12]

4211번은 본래 왕십리역 이후로는 꽤 한적한 노선이었지만, 사근동에 유입된 인구가 많아지면서 출퇴근시간에는 옛날처럼 사람을 꽉꽉 채워다니기도 한다.[13]

또한, 성동03-2번 마을버스가 한양대학교로 연장됨에 따라 한양대병원에서 승하차하여 골목길을 이용해 사근동으로 오고갈 수 있다.

이외에도 서울 버스 121, 서울 버스 302, 서울 버스 2012, 서울 버스 2013, 서울 버스 2014, 서울 버스 2016, 서울 버스 2222, 서울 버스 N62, 서울 버스 N73이 사근동을 경유하는데, 해당 노선들은 사근고개 바깥에서 왕십리로마조로를 경유하는 노선들이다.

8. 주거

대부분 낡고 오래된 주택가로 구성되어 있다. 특히 주택가로 들어가는 골목길이 대개 1950년대에 마구잡이로 만들어진 것이라 매우 좁아 자동차가 집 앞까지 접근을 못 하는 곳들이 꽤 많다. 이런 사정 때문에 사근동길은 말이 2차선 도로지, 사실상 1차선 도로라고 할 만큼 가변에 주차된 차량들이 많다.

돈이 부족한 대학생을 상대로 한 방쪼개기 성행으로 언론에서 불명예스러운 자리에 오르기도 했다. 사근동에 있는 꽤 많은 건물에서 겉으로 보기에 작은 다세대주택 건물 옆에 15개가 넘는 가스계량기가 붙어있는 모습을 확인할 수 있는데, 이런 건물들은 모두 불법 방쪼개기 건축물이다. 한 층에 4가구에서 5가구가 살고 면적은 5평도 되지 않는다고 한다.

아직 한양대학교 쪽에는 달동네가 존재한다. 이 지역은 추후 한양대학교 기숙사가 들어설 예정이다. 이외에도 한양대 기숙사가 사근동 여기저기 들어서는 중이다.

2022년 8월 서울시 신속통합기획 2차 공모에 사근동 212-2번지 일대(1차 공모 탈락), 293번지 일대가 지원하였고 동년 12월 293번지 일대가 2차 대상지역으로 선정되었다.

8.1. 공동주택

주택명 건설사 입주 동수 세대수
사근동 벽산아파트[14] 벽산건설
이연건설
2000. 5. 1 133
사근동 중앙하이츠 중앙건설 1989. 9. 2 270
드림시드아파트 2001. 12. 1 20

9. 상권

소위 한대앞으로 불리는 지역이 이 지역이다. 마조로를 따라서 늘어선 상가는 왕십리역과 연계되어 상권이 커지고 있다.

한대부고 앞에서 꺾어들어가는 사근동길 입구는 한양대학교병원이 위치해 있어서, 약국들이 많았었다.[15] 그러나 한양대병원 입구를 지나서 원사근동으로 들어가는 길목은 완전히 불모지로 남아있었지만 최근에는 한대앞 상권이 많이 성장하면서 사근동길을 타고 사근동 쪽으로 점점 레스토랑이나 카페 등이 파고드는 추세다. 한양대학교 기숙사가 사근동 내에 많이 만들어지면서 사근동에 사는 한양대 학생들도 많아졌는데,[16] 그 영향으로 원 사근동 내에서도 젊은 사람들이 찾는 식당이 많아지고 있다. 요즘은 점심시간에는 사근동의 식당들이 아예 꽉 찰 정도. 그렇지만 사근고개 안쪽과 바깥쪽(왕십리역 방면)의 상권이 사근고개에 의해 갈라져 있어서 완전한 연담화는 아직까지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원래는 사근시장과 사근동길 일원이 사근동의 생활상권을 이루었지만, 현재는 사근시장이 먹자골목 및 유흥가로 바뀌는 추세고, 사근동은 완전히 왕십리역 생활권으로 넘어갔다. 사근고개 안쪽은 식당 외의 상권이 다소 빈약하기 때문에 왕십리역 이마트까지 왔다갔다 해야하는데, 사근동의 어르신들이 장 보러 다니기 힘들다고 하신다.[17]

10. 교육

대개 초등학생의 경우는 서울사근초등학교로 배정된다. 관내에 한양초등학교가 있긴 하지만 사립이기 때문에 사근동보다는 외지에서 많이 온다. 특히 사근초는 현재 초미니 학교로 한 학년에 20~30명 내외 밖에 되지 않는다.

중학교는 한양대학교사범대학부속중학교, 행당중학교, 동마중학교가 있다. 본래 한대부중과 행당중이 여중이었으므로[18] 남학생들은 성수동성수중학교경일중학교로도 많이 배정되기도 했으나 동마중학교가 생기고 행당중학교가 남녀공학으로 바뀐 후로는 성수동 소재 중학교로는 배정되지 않는다. 해가 갈수록 사근동 내 학령인구는 계속 줄어서 이제는 멀리 배정 보내지 않아도 가까운 학교에서 모두 수용 가능하기 때문. 현재 사근동에 거주하는 초등학생이라면 한대부중으로 배정된다.

고등학교는 관내에 한양대학교사범대학부속고등학교가 있다. 한대부고는 자사고이기 때문에 일반고 배정을 할 경우에는 남학생들은 성수동의 소재 성수고등학교경일고등학교로 배정되는 편이고, 여학생들은 무학여고나 성수고 등으로 배정된다. 한대부고도 본래 여고였지만, 자사고로 전환되면서 일반고를 지망하는 여학생들은 통학거리가 조금 늘어났다는 점이 아쉽게 되었다. 덕수고등학교 행당분교가 관내에 있었으나 폐교되었다.

관내 대학교로는 한양대학교, 전문대학은 한양여자대학교가 있다.

11. 시설

11.1. 의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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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 출신 인물

13. 기타


[1] 2024년 5월 주민등록인구[2] 1980년대 이전에는 사실 대한민국의 모든 동네가 다 그랬다. 지금은 걸어다니기 편한 저지대의 평지가 집값이 더 높은 것이 보통의 상식이지만, 한강에 홍수 통제 시스템이 구축된 것은 1980년대에서 1990년대였고, 그 이전까지 서울에서 저지대의 평지들은 장마태풍이 오면 거의 잠기는 곳들이었다. 한남동이태원동의 재벌집들이 괜히 그 산동네에 형성된 것이 아니다.[3] 동쪽은 사근용답간인도교와 용답나들목교가 개설되며 그나마 나아졌으나 여전히 마장동으로 가는 벽화마을 경유 루트는 매우 불편해서 양 쪽 큰길인 마조로와 살곶이길을 통해 두 동네 사이를 이동한다.[4] 2024년 4월 기준[5] 법정동 행당동에서 사근동 관할 구역 면적[6] 2024년 4월 기준, 법정동 행당동에서 행정동 사근동 관할 구역에 거주하는 인구[7] 대표 지번은 사근동 110이다.[8] 진짜 화산(Volcano)가 아니라, 오행의 화(火)에 해당하는 산이라는 것이다.[9] 다만 신설동, 우이신설선 연선, 1호선 연선, 2호선 성수~잠실 정도의 구간으로 갈 때는 용답역이 유리한 편이다. 4211번이 막차가 이른 편이라 버스가 끊긴 후 성수지선으로 대체하여 이동하기도 한다.[10] 왕십리역에서 사근동으로 걸어가려면 경사진 사근고개를 넘어야 하나 답십리역에서 들어오는 길은 싹 다 평지라 거리는 비슷하나 답십리역이 도보 접근성은 더 나은 편이다.[11] 마장역과 사근동 간을 오갈 때 벽화마을을 경유하는 경로는 복잡하니 마장역으로 가는 건 비추천한다.[12] 물론 3호선 압구정역 일대는 거리가 짧고 다른 방법으로 가기 불편해서 메리트가 있다. 단 학동역과 언주역, 역삼역은 분당선에서 환승을 하는 경우가 많다.[13] 한양대동문, 한양여대 방면의 통학 수요도 많다.[14] 본래 '사근동 벽산이연 아마빌레'라는 이름이었지만 언젠가부터 벽산아파트로 단순하게 이름이 바꼈다.[15] 반대로 사근고개 동쪽 지역은 지금도 약국이 하나밖에 없다. 의원도 없어서 아프면 한양대병원으로 가야 한다.[16] 기숙사뿐 아니라 사근동 쪽으로 문이 들어서며 자취생이 매우 많다.[17] 그나마 젊은 사람들은 쿠팡 등으로 해결하는 경우도 많다. 쿠팡 주문량이 꽤 되는지 원사근동 내에도 쿠팡 차가 자주 드나들 정도다.[18] 한양여중, 행당여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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