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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내대표 | 천하람 | }}}}}}}}}}}}}}} |
<colbgcolor=#FF7210><colcolor=#fff> 개혁신당 최고위원 조대원 曺大元 | Cho Dae-won | |
출생 | 1970년 11월 2일 ([age(1970-11-02)]세) |
경상북도 영천군 금호읍 (現 경상북도 영천시 금호읍) | |
본관 | 창녕 조씨 |
호 | 동석(東石) |
현직 | 개혁신당 최고위원 개혁신당 국방안보특별위원장 |
학력 | 대구동성초등학교 (졸업) 경복중학교 (졸업) 덕원고등학교 (졸업) 육군사관학교 (안보학 / 학사)[1] 텍사스 A&M 대학교 대학원 (경제학 / 석사) 뉴욕 대학교 대학원 (정치학 / 석사) |
소속 정당 | |
경력 | 제17대 대선 한나라당 중앙선대위 전략기획위원 새누리당 부대변인 자유한국당 고양시 정 당협위원장 리서치한국 여론정책연구센터장 개혁신당 대구광역시당위원장 |
링크 |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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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대한민국의 군인 출신 정치인.2. 생애
1970년 11월 2일, 경상북도 영천군 금호읍(현 경상북도 영천시 금호읍)에서 태어났다. 이후 경상북도 대구시(현 대구광역시)로 이주하여 성장하였다. 대구동성초등학교, 대구경복중학교, 대구덕원고등학교[2], 육군사관학교 제49기[3], 미국 텍사스 A&M 대학교 대학원 경제학 석사, 뉴욕 대학교 대학원 정치학 석사 과정을 졸업하였다.육군사관학교 졸업 후 대한민국 육군 장교로 복무하였고, 육군 대위로 전역하였다. 병과는 포병.
정치 생활을 시작한 이후에도 대중 인지도가 낮은 정치인에 불과했으나, 2019년부터 2020년까지 박종진이 진행하는 일요서울 소속 유튜브인 '주간 박종진'에 대중 인지도가 높은 이준석, 정치 유튜브계에서 스타급인 유재일과 고정 출연하여 평론을 하면서 인지도를 올렸다. 그러나 2020년 총선 공천 탈락 후 '주간 박종진'도 없어지면서 다시 인지도가 적어졌다.
2021년 2월 24일 현재, 매주 금요일마다 진행되는 키워드 토크쇼 '정치변조'에 변희재 미디어워치 대표고문과 함께 출연했었다. 조대원은 보수지만 김진태 등 친박 세력을 신랄하게 비판한 바 있는데 반해 변 대표는 탄핵 반대 및 박근혜 복권을 주장하는 인물이라 개혁적 보수를 표방하는 조대원의 이미지와는 꼬이는 부분이 많다. 실제로 방송 중 변희재의 강성 발언에 딸려가는 장면이 많이 연출되어 그에게 좋은 인상을 가졌던 사람들의 우려를 샀다. 국민의힘 최고위원 선거에 출마하기 위해 21년 5월 27일분을 마지막으로 ‘정치변조’ 방송에서 하차하였다.
2.1. 정치 활동
2005년 고향인 경상북도 영천에서 실시된 2005년 재보궐선거에 예비 후보로 정계 입문했다. #2007년 17대 대선에서 한나라당 중앙선거대책위원회 전략기획위원으로 활동했으며, 새누리당 부대변인 등을 지냈다.
2015년, 우파를 표방한 시민단체인 맑고연(맑은 고양 만들기 시민연대)라는 단체를 만들고 대표를 맡은 적이 있으며, # 이 시기 최성(더불어민주당) 전 고양시장의 각종 의혹들을 파헤치기 시작하면서, 최 전 시장의 재임 기간 동안 상당한 법정 공방을 펼쳐왔다. #[4] 이 시민단체가 2010년부터 활동하던 지방선거 관련 중도 진보 시민단체인 '고양 무지개연대[5]'에 대항하기 위해 만들어졌다는 이야기도 있다. #
2018년 김영선이 당무감사 결과 당협위원장직을 박탈당하자 후임 경기도 고양시 정 당협위원장에 임명되었다.
2019년 2월 자유한국당 전당대회에서 최고위원 출마를 선언하였다. 원래 당대표 선거를 고려하였으나, 8명에 달하는 후보들 때문에[6] 컷오프되어 버리면 연설 기회조차 얻을 수 없기에 최고위원 선거로 바꿔서 출마했다.
대전에서 열린 충청, 호남 합동 연설회에서 당 대표 후보 김진태와 김진태 지지자한테 “그래, 김진태 데리고 좀 우리 당을 나가달라! 우리가 무슨 대한애국당입니까?”[7]라고 비판해 뉴스에서 화제가 되기도 했다. 그는 데일리안과의 인터뷰에서 원래 연설문에 없던 내용인데 그날 즉석에서 집어 넣은 것이라고 한다. 단상에서 내려온 뒤 다른 캠프로부터 칭찬받았다고. 그리고 김진태 지지자들은 반대의 표시로 야유와 함께 풍선 막대로 X자를 만들며 화답했다.
연설 말미에 한 '아빠가 자유한국당원이야, 당협위원장이야 당당히 말할 수 있는 보수정당을 만들겠다'는 말은[8] 당 지도층들의 각종 강경 발언으로 국민들의 지지율이 떨어진 상황에서, 중도 성향의 유권자들의 마음을 얻기 위해서 최선을 다해야, 선거에서 살아남을 수 있는 수도권의 당협위원장인 자신의 고뇌를 잘 반영해서 보여준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영상 풀버전 (1시간 30분 전후)
당 중앙선거관리위원회는 조대원 후보에게 특정인을 비방한 일[9]로 주의/경고 처분을 내렸다.
전당대회 결과, 당원들 사이에서는 3.6%(6,774표)를 얻어 꼴찌를 기록하였으나 국민 여론조사에서는 10.7%(8,669표)를 얻어 다소 선전했다. 비록 선거에서는 떨어지기는 했지만, 지금까지 거의 무명에 가까운 정치인이었는데 인지도를 올리는데 큰 도움을 얻었기 때문에 성과를 거둔 전당대회 출마였다고 평가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 후, 여의도연구원 원장을 맡고 있는 김세연 의원으로부터 여의도연구원 부원장직에 임명되었으나, 당직 임명 보류되었다. # 정확한 이유는 알려지지 않았지만 내부의 반대가 있었다는 '설'이 있다. 결국 다른 인물이 임명됐다.
같은 해 10월 시사저널에 의해 대한민국의 미래를 이끌 차세대 리더 100인에 선정됐다.
21대 총선을 앞두고 고양시 정 예비후보로 등록했다. # 김현아 비례대표 의원과 경선을 치를 것으로 보였지만, 경선 없이 김현아 의원이 전략공천을 받았다. #
21대 총선 기간 중 물론 자신이 공천에 탈락한 이유도 있지만 김형오 공천위원장과 황교안 당 대표에 비판적이었고, 당내 친박 세력에 대해 줄곧 비판각을 세웠다. 그리고 KBS 시사프로에 나와서 미래통합당의 총선 예측을 현재로서는 100석도 안 나올 것이고, 여당이 3분의 2를 장악할 것이라고 호소하며 읍소 전략으로 가야한다고 보수 인사 중에 사실상 유일하게 정확히 예측해 총선 후 재평가받았다. #
2021년 서울시장 보궐선거 경선에서는 컷오프되었다. 무당층도 없이 국민의힘 지지자로만 경선을 진행하겠다는 당내 경선 때의 토론을 언급하며 '문재인 정권에 실망한 정의당 지지층까지 끌어모으는 개혁 후보를 내세우겠다'는 등의 발언을 뒤집은 것을 비판하였다. #
2021년 5월 국민의힘/제1차 전당대회에 최고위원으로 출마하였으나, 10명의 후보 중 9위에 그쳐 낙선하였다.
2022년 20대 대선에서 이준석과 윤석열의 갈등이 극에 달하자 이준석에게는 당원들의 탄핵 여론이 들끓고, 윤석열에게는 여론에서의 후보 교체 요구가 많다고 모두 비판했다. 그리고 둘 다 사퇴한 뒤, 홍준표와 유승민이 단판 오픈 프라이머리를 벌여 1위가 대선 후보를, 2위가 비대위원장을 맡을 것을 제안했다. # 하지만 그런 일은 벌어지지 않았다.
2022년 8회 지선에 고양시장 후보로 출마했으나, 이동환 후보에게 밀려 공천에서 탈락했다.
조대원을 밀어내고 국민의힘 경기도 고양시 정 당협위원장 직을 꿰찬 김현아 전 의원이 불법 정치자금 수수 혐의로 경찰에 수사 중인 것으로 뉴스타파 단독 보도로 확인됐다. # 따라서, 경찰 수사 후 기소 여하에 따라 공석이 될 수 있는 국민의힘 경기도 고양시 정 당협위원장 자리 탈환을 노릴 수 있게 됐다. 그러나 현재 친윤일색인 국민의힘 지도부에서 비윤 성향을 보였던 조대원을 당협위원장으로 임명할지는 지켜봐야 할 듯.
2024년 제22대 국회의원 선거을 앞두고 이준석 신당에 합류하여 학창 시절을 보낸 대구 수성구 을 선거구에 출마하겠다고 밝혔다. 본인은 비윤에 속하지만 그렇다고 새로운보수당계나 친이준석에 속하지는 않는데, 사실상 처음으로 합류 의사를 직접적으로 밝혔다. 유튜브에서 본인도 이준석이 다 마음에 드는 건 아니지만, 제시한 비전이 마음에 들었고 대구에 새로운 시대정신을 구현하겠다고 밝혔다. "(지역구 상대로) 국민의힘 후보군 중에서는 이인선 후보가 쉬울 것 같다"고 언급하기도 했다.
이준석 대표 중심의 개혁신당이 출범한 이후 대구시당 위원장을 맡게 되었으며, 예정대로 대구 수성구 을 선거구에 개혁신당 후보로 공천을 받아 출마했다. 최종적으로 이 지역구 현역인 국민의힘 이인선 의원, 더불어민주당·진보당·새진보연합의 야권 단일 후보인 새진보연합 오준호 대표 대행, 무소속 박경철 후보와 겨루게 되었다. 하지만 2024년 4월 10일 투표 종료 후 개표 결과 7.38% 득표에 그쳤으며, 72.84%를 득표한 이인선 후보와 15.56%를 득표한 오준호 후보에 밀려 3위로 낙선하였다.
낙선 후 2024년 5월 19일로 공표된 개혁신당 제1차 전당대회에 당대표 경선 후보로 출마하겠다고 선언했다. 개표 결과 3위로 당대표에서 낙선했지만 최고위원으로 선출되었다. 조대원은 이에 당선소감에서 감격찬 목소리로 개혁신당은 나의 마지막 정당이 될 것이라고 밝혔다.[10]
3. 소속 정당
소속 | 기간 | 비고 |
| 2005–2012 | 정계 입문 |
[[새누리당|]] | 2012–2017 | 당명 변경 |
[[자유한국당|]] | 2017–2020 | 당명 변경 |
[[미래통합당|]] | 2020 | 합당[11] |
| 2020–2024 | 당명 변경 |
[[무소속(정치)| 무소속 ]] | 2024 | 탈당[12] |
| 2024–현재 | 창당 |
4. 선거 이력
<rowcolor=#373a3c> 연도 | 선거 종류 | 선거구 | 소속 정당 | 득표수 (득표율) | 당선 여부 | 비고 |
2024 | 제22대 국회의원 선거 | 대구 수성 을 | | 6,768 (7.38%) | 낙선 (3위) |
역대 선거 벽보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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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대 총선 (대구 수성구 을) | }}}}}}}}} |
역대 후보 이력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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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여담
- 육사 49기 동기로는 이승오, 서진하, 박재열 (이상 중장), 김흥준, 문병삼, 어창준, 류승민, 최성진, 김수광, 박춘식, 강관범. 김진익, 오병석, 오혁재 (이상 소장), 석용규, 조용근, 박정환, 김병기 (이상 준장) 등이 있다. 당시 육사 수업에서 현대사를 발표하며 전두환을 부정적으로 언급하다가 큰 문제가 생길 뻔했다고 밝히기도 했다.
- 개혁신당 중앙당에 대한 서운한 감정을 드러낸 적이 있다. 이외에도 이준석에게도 불만이 많은 것으로 보인다. 자신의 라이브 영상에서 당대표를 준석이라 부르며 자기 아랫사람으로 취급했으며 그 지지층에 대해서도 극렬 지지충이라 폄하했다. 개혁신당의 1차 전당대회에서 이준석 살리느라 나머지 지역구 출마자들 다 죽었다라든가 자신이 이준석에게 반말을 했기 때문에 표를 얻은 것이라는 발언을 하기도 했다.
이 때문인지 전당대회에서 조대원이 받은 당원 투표는 3.60%로 꼴등인 천강정과 크게 다르지 않았으나, 일반 여론조사, 대학생 및 언론인 평가단에서는 3위로 선방하여 무난히 최고위원직에 당선되었다.
▲ 조대원 위원장의 페이스북 댓글 |
6. 둘러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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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당대회 의장 | <colbgcolor=#fff,#1f2023> 이원욱 | 전당대회 부의장 | <colbgcolor=#fff,#1f2023> | ||||
당무심의 · 의결기구 (최고위원회) | |||||||
당대표 | 허은아 | ||||||
원내대표 | 천하람 | 정책위원회 의장 | 이주영 | ||||
최고위원 | 이기인 (수석) · 조대원 · 전성균 | ||||||
당무집행기구 (중앙사무처 · 대표 자문보좌기관) | |||||||
사무총장 | 김철근 | ||||||
전략기획부총장 | 정재준 | 조직부총장 | 이경선 | ||||
홍보부총장 | 김민 | 당무본부장 | |||||
대외협력본부장 | 이근구 | 당대표 비서실장 | 곽대중 | ||||
총괄특보단장 | 조응천 | 수석대변인 | 김성열 | ||||
대변인 | 문성호 (선임) · 경민정 · 김민규 · 조용진 | ||||||
부대변인 | 이혜숙 · 이유원 · 정국진 | ||||||
정책 입안 · 심의기구 (정책위원회) | |||||||
정책위원회 의장 | 이주영 | ||||||
정책위원회 부의장 | 황영헌 · 권상기 · 조동운 · 최현수 · 황세연 | ||||||
독립기구 | |||||||
개혁연구원장 | 이준석 | 중앙당후원회장 | 김종식 | ||||
상설위원회 | |||||||
정책자문위원장 | 곽노성 | 법률자문위원장 | 하헌휘 | ||||
홍보위원장 | 이성진 | 인재위원장 | 이준석 · 허은아 | ||||
미래희망위원장 | 전성균 | 소상공인위원장 | 신민철 | ||||
특별위원회 | |||||||
디지털특별위원장 | 정보경 | 교육문화특별위원장 | 송재열 | ||||
지방자치특별위원장 | 천강정 | 국방안보특별위원장 | 조대원 | ||||
젠더특별위원장 | 문지숙 | 국제관계특별위원장 | 박경애 | ||||
원내기구 (의원총회) | |||||||
원내대표 | 천하람 | }}}}}}}}}}}}}}} |
[1] 49기[2] 덕원고, 육사 3년 선배가 현 박안수 육군참모총장이다.[3] 동기들 중 선두 그룹은 현재 중장이다. 이승오 합참 작전본부장, 서진하 제3군단장, 박재열 제7군단장 등이 육사 49기다.[4] 최성 전 시장이 5차례 고소를 진행하였으며, 이중 3건은 무혐의, 1건은 고소 취하, 나머지 1건만 벌금형이다. (주요 쟁점, 1심 판결, 2심 판결)[5] 주요 활동은 지방선거 기간 동안 고양시 출마자들(도지사·도교육감·시장·도의원·시의원)에 대한 '좋은 후보' 추천이다.[6] 결국 대부분이 보이콧하면서 황교안, 오세훈, 김진태 3명만 남았다.[7] 중간에 "그래가지고(그래서) 우리가 수권 정당 할 수 있습니까? 여러분!"이 생략됐다.[8] 노년층들은 여전히 자유한국당을 지지하지만, 50대 이하 유권자들로부터 자유한국당은 외면받고 있는 현실을 꼬집은 것이다.[9] 위에 볼드 처리한 내용을 지적했다.[10] 조대원은 자유한국당과 국민의힘 시절에도 결국 비주류의 한계를 극복하지 못히고 번번이 낙선하였다. 개혁신당에서도 총선 기간 중 이준석을 포함한 당 지도부를 자주 비판했기에 비주류였던 건 마찬가지였는데, 똑같은 비주류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최고위원에 당선되었다. 당원들의 비토가 상대적으로 강해서 이준석계 당원들이 일부러 허은아/이기인을 뽑고 나머지 한표는 전략적으로 전성균에 투자하는 방식으로 조대원을 떨어트리려했고(심지어 천강정에 전략 투표하는 당원도 있었다), 실제로 조대원의 당원 득표율은 고작 3%에 지나지 않았으나 여론조사와 기자/대학생단의 득표로 최고위에 당선되었다. 조대원의 입장에 있어선 개혁신당도 비주류에게 기회를 주는 소중한 터전이 된 것이다.[11] 새로운보수당, 미래를향한전진4.0과 신설 합당[12] 개혁신당 합류를 위한 탈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