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항공우주연구원장을 역임한 조광래에 대한 내용은 조광래(1959) 문서 참고하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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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광래의 역임 직책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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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표팀 | |||||||||||||||||||||
68대 | |||||||||||||||||||||
클럽 | |||||||||||||||||||||
대행, 9대 | 5대 | 5대 | 2대 |
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팀 주장 | ||||
홍성호 (1981) | ▶ | 조광래 (1981~1982) | ▶ | 박성화 (1982) |
{{{#!wiki style="margin: -10px -10px" | <tablealign=center><tablewidth=320><tablebordercolor=#DD0129> | 부산 아이파크 역대 주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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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대 | 2대 | 3대 | 4대 | 5대 | |
유태목 (1983~1984) | 조광래 (1985~1986) | 정해원 (1987~1988) | 변병주 (1989) | 이태호 (1990) | |
6대 | 7대 | 8대 | 9대 | 10대 | |
정용환 (1991~1993) | 조덕제 (1994) | 김주성 (1994~1996) | 하석주 (1996) | 정재권 (1997) | |
11대 | 12대 | 13대 | 14대 | 15대 | |
정광석 (1998) | 김현수 (1999) | 이장관 (2000~2001) | 윤희준 (2002~2003) | 노정윤 (2004) | |
16대 | 17대 | 18대 | 19대 | 20대 | |
이장관 (2005) | 임관식 (2006) | 심재원 (2007) | 이정효 (2008) | 서동원 (2009) | |
21대 | 22대 | 23대 | 24대 | 25대 | |
박진섭 (2010) | 김근철 (2011) | 김창수 (2011~2012) | 박용호 (2013) | 이원영 (2014) | |
26대 | 27대 | 28대 | 29대 | 30대 | |
이경렬 (2015) | 이원영 (2016) | 박준태 (2017) | 이종민 (2018) | 한지호 (2019) | |
31대 | 32대 | 33대 | 34대 | 35대 | |
강민수 (2020) | 강민수, 박종우 (2021) | 김진규 (2021) | 박종우 (2022) | 이한도 (2023~ ) | |
* 세한자동차 시절은 제외된 불완전한 역대 주장 명단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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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광래의 수상 이력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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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 수상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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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스트팀 | ||||
| 1977 · 1978 · 1979 · 1980 · 1981 · 1983 · 1985 · 1986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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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88c1ea,#051d39> 대구 FC 대표이사 겸 단장 | ||
Daegu FC | ||
이름 | 조광래 趙廣來|Cho Kwang-rae | |
출생 | 1954년 3월 19일 ([age(1954-03-19)]세) | |
경상남도 진주시 | ||
국적 | [[대한민국| ]][[틀:국기| ]][[틀:국기| ]] | |
본관 | 함안 조씨 (咸安 趙氏)[1] | |
신체 | 171cm | |
직업 | 축구 선수 (중앙 미드필더, 수비형 미드필더 / 은퇴) 축구 감독 축구 행정가 | |
학력 | 봉래초등학교 (졸업) 진주중학교 (졸업) 진주고등학교 (졸업 / 43회) 연세대학교 상경대학 (응용통계학 74[2] / 학사) | |
병역 | 대한민국 육군 병장 만기 전역 | |
소속 | <colbgcolor=#88c1ea,#051d39> 선수 | 포항제철 축구단 (1978~1980) 상무 축구단 (1980~1982 / 군 복무) 대우 축구단/대우 로얄즈 (1982~1987) |
감독 | 대우 로얄즈 (1987~1992 / 코치) 대한민국 대표팀 (1992 / 코치) 대우 로얄즈 (1992~1994) 수원 삼성 블루윙즈 (1995~1997 / 코치) 안양 LG 치타스/FC 서울 (1999~2004) 경남 FC (2008~2010) 대한민국 대표팀 (2010~2011) | |
행정 | 대구 FC (2014~ / 대표이사·단장) | |
국가대표 | 100경기[3] 15골 (대한민국 / 1975~1986) | |
서명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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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대한민국의 축구 선수 출신 감독, 행정가. 現 대구 FC 대표이사 겸 단장.선수 시절 컴퓨터 링커라는 별명으로 불린 미드필더였으며, 지도자로서도 안양 LG 치타스/FC 서울, 경남 FC를 이끌며 실적을 인정받았으나, 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팀 감독을 맡아서는 국내파와 유럽파의 파벌 갈등을 유발해 국가대표팀 흑역사의 발단이 되었기 때문에 평가가 좋지 않다. 2014년에는 대구 FC 대표이사를 맡아 초반에는 부정적인 평가를 받았으나 2018 FA컵 우승과 2019년 새롭게 개장한 DGB대구은행파크를 잘 활용하여 관중을 약 300% 증가시키는 등 축구 행정가로는 성공적으로 정착하였다.
2. 선수 경력
자세한 내용은 조광래/선수 경력 문서 참고하십시오. |
3. 지도자 경력
자세한 내용은 조광래/지도자 경력 문서 참고하십시오. |
4. 행정가 경력
4.1. 대구 FC 대표이사 겸 단장
2014년 9월 12일, 대구 FC의 대표이사(사장) 겸 단장으로 선임되어 프런트로 일하게 되었다.단장이라고 하지만 키프로스 현지에서 팀의 전지훈련 과정을 지켜보았고, 과거 대구를 거쳐갔던 이영진 감독, 손현준 감독, 안드레 감독 등이 본인과 전술적으로 잘 맞는 사람이거나 과거 안양에서 한솥밥을 먹던 인물이었다. 그렇다 보니 실제로 행정적인 면뿐만 아니라 구단의 훈련이나 전술에도 관여하고 있으며, 실제로 조 단장이 역임하는 기간 동안 있었던 감독 모두 공격수 포함 11명 모두가 성실하게 수비하고, 간격을 촘촘하게 유지하면서 수비를 해낸 뒤 브라질 공격 트리오가 이끄는 역습으로 골문을 노리는 전술을 사용했으며, 이러한 점에 있어서 사실상 대구 FC의 상왕이자 실세라는 의혹이 제기되기도 했다.[4] 이러한 의혹을 의식했는지 해명하는 모습을 보여 주기도 했다. 안드레 감독이 외국인 감독이다 보니 상대의 세부적인 부분 분석에 어려움을 겪는 경우가 있어 기술 고문을 자처해 조언을 구할 때는 조금씩 도와 주는 정도라고 언급했다.#
하지만 비슷한 의혹이 있는 어떤 축구단과 다르게 대구 FC가 1부 리그 승격과 잔류 등의 좋은 성과를 거두고, 행정적인 측면에서도 유소년 육성 강화, 축구전용구장 건립[5]에 엄청난 공을 들였다.
특히 축구전용구장을 짓기 위해 대구광역시청과 시의회를 출근하듯이 방문하며 설득에 나섰고, 대구 FC 구단주인 권영진 대구광역시장이 그 집념과 의지를 인정했으며[6] 축구전용구장 건립은 조광래와 구단에 전적으로 맡기겠다며 물심양면 지원을 약속했다. 이때 조광래가 경남 FC 감독 시절 경험을 이야기하며 DGB대구은행파크에 지붕을 씌우기 위한 100억 원 가량의 예산 증액을 이끌어 내기도 했다.
시민 구단에 부정적인 사람은 고작 축구 때문에 전용구장까지 지어야 하냐 했는데, 사실 대구시민운동장 일대는 2000년대 중반부터 야구장, 종합경기장을 불문하고 안전등급 E등급이라는 결과가 나와서 철거나 리모델링을 꾸준히 요구받아 왔다. 축구단이 없었다 한들 대구시민운동장에 돈을 써서 뜯어고쳐야 한 상황이었던 건 맞다. 어쨌든 그의 제안으로 DGB대구은행파크가 탄생했다.[7]
2016년 승격 인터뷰에서 3년 내로 대구 FC를 K리그1 우승 경쟁을 할 수 있는 팀으로 만들겠다는 각오를 밝혔다.# 2018 시즌이 끝나고 2019년 목표를 리그 4위로 잡았다.#[8]
그리고 2018년 5월 13일 13라운드까지 단 1승에 승점 6점으로 최하위에 랭크되면서 강등 위기에 닥쳤으나, 월드컵 브레이크 이후 반등에 성공했다. 대구 FC 역사상 최초의 월드컵 출전 선수로 기록된 골키퍼 조현우 버프로 유료 관중이 대폭 증가했고, 조현우가 아시안 게임에 와일드카드로 차출되어 갔음에도 예전보다 많은 관중이 대구스타디움의 좌석을 채웠다. 거기에 조현우가 아시안게임 금메달을 따면서 병역 특례에도 골인하며 원군을 얻었다. 그리고 2018 시즌 막판 대구 FC의 기세가 하늘을 찌를 듯이 치솟고 있고, 5경기 연속 무패에 상위 스플릿 진출까지 노리고 있었으나 아쉽게 실패했다. 하지만 2년 연속 리그 잔류와 창단 첫 FA컵 우승을 하며 ACL 출전권을 획득했다는 것은 고무적이다. 이 과정에서 김대원, 정승원 등 젊은 선수들이 많이 기여하면서 조광래 유치원 이야기가 다시 나오기도 했다.
2018 FA컵에서 대구가 우승하면서 사상 첫 선수와 감독, 행정가로 우승을 모두 경험한 축구인이 되었다. 또한 2019년 고대하던 축구전용구장이 완공되면서 새롭게 맞이한 시즌 초반부터 두경기 연속 홈경기 매진을 기록했을뿐더러 대구도 이 매진된 경기에서 시즌 초반 무패 행진을 이어갔고, 리그와 ACL에서 기분 좋은 출발을 알리면서 대구 FC를 인기 구단으로 탈바꿈시키면서 흥행과 성적 두 마리의 토끼를 모두 잡는데 성공하면서 그야말로 대구 구단 최대 전성기를 열었고, 같은 축구인 출신의 대전 시티즌의 김호[9] 前 대표 이사와는 정반대 행보를 보이고 있다.#
세징야와 에드가의 재계약을 따낸 내용이 기사화되면서 대구 팬뿐 아니라 K리그 팬들에게도 칭찬받고 있다. 시민 구단인 대구 특성상 돈을 많이 주는 건 불가능하니[10] 세징야에겐 은퇴 이후의 지도자 생활과 아내[11]의 일자리를 챙겨 주었고 에드가에게는 은퇴까지 책임지도록 3년이라는 긴 기간의 계약을 제안하여 두 핵심 선수를 지켜내는 등 축구 행정가로서의 능력은 K리그 최상급이다. 하지만 만화 축구를 실제로 재현해 내고 있는데 스리백을 기반으로 한 탄탄한 수비에 이은 빠른 역습을 통해서 리그 최소 실점이란 기록과 강력한 공격력을 바탕으로 대체스터 시티 소리를 듣고 있다. 케빈 더브라위너의 벨기에를 많이 참고한 전술이라는데 냉정히 이야기해서 대구의 선수들의 면면은 전북, 울산에 비해서 국대 차출 경험이나 네임 밸류가 떨어지는 것은 사실이지만 유기적인 움직임을 통해 재미있는 축구를 보여주고 있다. 재미있는건 현재 대구 FC 전술이 국가대표팀 감독 시절의 자신의 전술과는 완전 상극이라는 것이다. FC 바르셀로나의 티키타카 전술을 모방하고 점유율을 중시한 과거 국가대표팀 시절에 비해 현재 대구의 속공, 역습 중심의 전술은 완전 반대라는 점이다.
이런 활약들을 바탕으로 구단 이사회에서 신임을 받아서 계약이 2년 연장됐다. 기사에서는 아직 할 일이 쌓여있다거나 대구가 K리그를 넘어 국내 프로스포츠 시장을 선도하고 다른 구단의 롤 모델이 될 수 있도록 활발한 활동을 펼치겠다는 식의 발언들을 남겼다. 2019 시즌을 마무리하면서 지켜내지 못한 우승공약을 다시 내걸며 2년 내 K리그 우승, 우승 이후 경기장 증축 등을 약속했다.#
그런데 안드레 감독이 팀에서 나가는 과정에서 논란이 생겼다. # 조 사장의 입장이 담긴 기사가 나올 때까지만 해도 대구 팬들은 안드레 감독을 배은망덕한 사람으로 봤지만[12], 안드레 감독은 기사를 보고 조광래 사장이 거짓말을 하고 있다[13]고 해명을 내놓은 것이다. 어떤 쪽이 진실이든지 간에 성공 가도만을 걷던 최근의 대구에 암초가 생겼다. 선수들의 타 구단 이적을 막고 과도하게 이적료를 부르거나 노예 계약이라는 비판도 있었다.
대구 구단 측은 이에 대해 해명했고 # 구단과 안드레 감독 간의 진실 공방전이 벌어질 모양새다.
2021년에는 초반 정승원 계약 논란, 구단 내 똥군기 묵인 의혹 등으로 여러 문제가 터지면서 초반 1승 4무 4패로 강등권까지 떨어졌다. 그러나 이후 이런저런 사건 사고에도 기어코 역사상 최고 순위를 갱신하면서 2021 시즌은 끝은 나쁘지 않게 끝났다.
2022 시즌, 대구가 9월 10일 전북 현대와의 홈경기에서 5:0으로 대패하고, 대구 팬들은 퇴근길에서 조광래와 직접 면담해야 한다고 기다리고 있었지만, 조광래는 끝내 모습을 보이지 않고 최원권 감독 대행, 주장 세징야 두 명이 팬들에게 사과의 말을 전했다. 대구 팬들은 조광래가 끝내 모습을 드러내지 않고 결국 도망쳤다며 조광래에 대한 비판이 계속해서 나오고 있다. 다만 이후 FC 서울을 2번 연속으로 꺾고 수원 FC까지 무찌르면서 비판이 다시 사그라들긴 했다.[14]
2023 시즌을 끝으로 대구와 계약이 만료될 예정이었지만, 2023 시즌 파이널 A행과 역대 최다인 11번의 대팍 매진, 역대 최다 관중 신기록 (208,340명) 등 성적과 흥행 모두 잡아내는 성과를 거두면서 시즌 종료 후 3년 재계약을 체결했다. #
그러나 2024년에는 팀이 또다시 강등권까지 떨어지면서 다시 비판을 받고있다.
5. 여담
- 위와 같은 활약상으로 조광래는 성적을 막론하고 자기 전술에 선수를 끼워 맞추는 경향이 심한 감독들에게 붙는 별명이 되었다. 축구 커뮤니티에선 그런 감독들의 이름 앞 글자에 광래를 붙여서 부르는 경우가 많다. 가장 많이 쓰이는 경우는 안드레 빌라스보아스를 보광래라고 부르는 것이다.[15]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FC 시절의 데이비드 모예스 역시 모광래란 별명이 붙었고 펩 과르디올라조차 펩광래라는 별명이 붙었다. 독일 축구 국가대표팀 감독인 요아힘 뢰프도 2014년 브라질 월드컵 16강 알제리전 때 이른바 포터백 전술로 인해 고전을 면치 못하는 모습을 보이자 뢰광래라는 별명으로 까였다.
- 뿐만 아니라 조광래는 삿포로 참사와 레바논전 이후로 해외파 선수들을 편애하다가 혹사시키다가 결국은 팀을 말아먹는다는 평가를 받아 조각내 감독이라는 별명까지 얻었다. 클럽팀 감독때와 마찬가지로 국가대표 감독직에서도 잦은 기행으로 구설수에 올랐다.
- 대표팀 감독 시절 지나칠 정도로 유럽파 선수들을 우선시하였다. 심지어 그 선수가 부상을 당하건 슬럼프를 겪든 2군에 내려가 있든 상관없이[16] 대표팀에 합류시켰는데 나이에 상관없이 수집에 가깝게 선발하고 실제 경기에서는 쓰는 선수만 줄기차게 써대며 종국에는 손흥민의 아버지 손웅정이 항명하는 사건이 일어났을 정도며 나이 어린 선수들을 1군에 기용하자 이들의 유럽 소속팀들이 올림픽 대표 선출을 거부하여[17] 홍명보의 선택지를 확 좁혀버려 올림픽 대표팀 선수를 구하기 위해 전국 팔도를 이잡듯이 뒤져 선수단을 구성하여 최종예선까지 치렀다. 올림픽 대표팀에서 가능성을 보인 선수마저도 조광래가 뽑아가서 올림픽 최종 예선보다 며칠 더 앞서 열리는 경기에 출전시켜서 홍명보 감독은 울며 겨자먹기로 또 선수를 찾아 나섰어야 했다. 거기에 더해 골키퍼를 제외한 전 포지션에서 사실상 유럽팀에 소속되어 있는 선수들은 베스트 11 내지 교체 1, 2, 3자원이 정해져 있으며 23명 중 해외파 14명을 제외한 9명 중 골키퍼 후보 2명을 제외하고 남은 자리 7명은 J리그나 다른 해외 선수들의 자리였고 그나마 차출이 어렵거나 남은 빈 자리를 K리그 선수들에게 주는 자리였고 대표팀 소집 훈련 시에는 1군과 2군을 해외파와 비해외파로 나누어 훈련을 하였다.[18] 유일하게 중용된 K리거 필드 플레이어가 이용래인데 그는 2011년 수원과 대표팀을 오가며 60경기를 넘게 뛰는 혹사를 당하게 된다. 심지어 풀타임 경기가 거의 대부분이었고 중동 원정도 예외 없었다. 이후 이용래는 폼이 죽어버려 그저 그런 선수가 되어 버리고 의경(안산 경찰청) 입대를 하게 된다.[19]
- 특유의 막말 화법은 클럽 감독 시절에도 유명했는데, 안양 LG 치타스 감독으로 재임하던 기간 중 서울로의 연고 복귀 당시 상심한 안양 팬들에게 "안양 시민들도 서울 월드컵 경기장까지 멀지 않은 거리이므로 변함없이 응원하러 와줄 것이라 믿는다."는 말로 아픈 데 소금을 뿌렸다.
- 동남권 사투리가 굉장히 심하다. 일례로 대표팀 훈련 때 무슨 말인지 모르는 경우가 많아서, 박주영이나 윤빛가람 등 경상도 출신 선수들이 통역을 해 준적도 있었다. 다만 안드레 감독은 그나마 조금 알아듣는다고 한다.
- 평준화 이전 서부 경남 최고의 명문 학교인 진주고등학교를 특기생이 아닌 입학 시험을 보고 진학을 했다.
- 대구 FC 대표직을 수행하면서 열정적인 모습 때문에 이런 의혹이 있기도 했지만 본인이 이 의혹에 대해선 전면 부인했다. 오히려 초보 감독인 안드레가 조언을 구하러 온다고. 그리고 이런 의혹을 제기한 기자는 크게 비판받는 중이다.[20] 그러나 2020년 지역 신문인 영남일보에서 외혹도 아니고 미담인 것처럼 선수단 개입을 전했다. 같은 해 이병근 감독 대행은 아예 조 사장께 SOS를 요청했다며 당연한 일처럼 생각하는 듯한 인터뷰를 남겼다.
- 코엘류를 매우 적대시했다.
6. 둘러보기
{{{#!wiki style="margin:0 -10px -5px" {{{#000,#191919 {{{#!folding [ 펼치기 · 접기 ] {{{#!wiki style="color: #121230; margin:-6px -1px -11px" | <colbgcolor=#88c1ea> 구단 기본 문서 | <colbgcolor=#0072bc> 연고지 | 대구광역시 |
구단 | 대구 FC | 대구 FC B | 대구 FC U-18 | ||
주요 인물 | 현재 | 대표이사·단장 조광래 | 감독 박창현 | 주장 홍철 | 선수단 | |
역대 | 역대 감독 | 역대 주장 | 10주년 베스트 XI | 프랜차이즈 선수 | ||
구단 시설 | 홈구장 | 현재 DGB대구은행파크 | B팀 대구스타디움 | |
클럽하우스 | 현재 스카이 포레스트 | 이전 대구육상진흥센터 | ||
연습구장 | 대구강변축구장 | ||
역사 | 구단 역사 | 창단 | 도약 | 역대 시즌 | |
기록 | 역대 성적 | ACL 기록 | 역대 유니폼 | 역대 등번호 | 역대 캐치프레이즈 | 기타 기록 | ||
코리아컵 | 2018 | ||
현재 시즌 | 2024 | B팀 2024 | ||
문화 | 팬덤 | 서포터즈 그라지예 | 엔젤클럽 | 응원가 | 응원단 | |
팬커뮤니티 | 대구스토 | ||
마스코트 | 리카 | 빅토 | ||
라이벌전 | 경북 더비 | 달빛 더비 | ||
논란 | 사건·사고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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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 AFC 아시안컵 카타르 참가 감독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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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정성룡 · 2 최효진 · 3 황재원 · 4 조용형 · 5 곽태휘 · 6 이용래 · 7 박지성 C · 8 윤빛가람9 유병수 · 10 지동원 · 11 손흥민 · 12 이영표 · 13 구자철 · 14 이정수 · 15 홍정호 · 16 기성용 17 이청용 · 18 김보경 · 19 염기훈 · 20 김신욱 · 21 김용대 · 22 차두리 · 23 김진현 |
조광래 박태하 스태프 서정원 · 김현태 · 알렉산드레 가마 |
[1] 30세 래(來) 항렬[2] #[3] 1980년 올림픽 예선 6경기 4득점 포함. 올림픽 예선 경기가 끼어 있어 FIFA 센추리 클럽 회원으로는 인정 받지 못하나 대한축구협회에서는 국가대표 100경기 출장으로 기록하고 있다.[4] 조광래 대표 본인도 이걸 인식하고 있는지, 2018 시즌에는 되도록이면 안드레 감독과 독대를 하는 모습은 잘 안 들어내려고 한다.[5] 야구단이 대구스타디움 근처로 오고, 축구단이 야구장 옆의 종합 경기장으로 가는 상황. 야구장은 중앙석을 제외한 내외야석 모두를 철거하고는 현재 중고교 엘리트 선수 및 사회인 야구를 위한 구장으로 리모델링했으며, 기존 종합경기장 자리에는 축구전용구장을 짓게 되었다.[6] 도심 재생 사업을 고민하던 권영진 시장이 대구시민운동장 주경기장을 축구전용구장으로 리모델링하자는 조광래의 의견을 수용했다고 한다. 시 외곽의 신 구장으로 떠난 삼성 라이온즈의 공백을 대구 FC로 메운다는 역발상이었다.[7] 그리고 이는 도심재생사업 측면에서도 신의 한수가 되어 고성동 일대가 기어코 살아나는데 큰 역할을 하고 있으며, 접근성 측면에서도 대구에서도 외곽이나 다름없는 대구스타디움에 비해 개선되면서 신규 팬들을 유입시키는데 한몫했다.[8] 재미있는 건 2019년 3~4위를 오르내리며 끝내 상위 스플릿에 안착했는데 시즌 개막 직후 얇은 선수층이 부상 악재 등으로 찢겨나가기 전까지 우승 경쟁도 하면서 저 2016년에 얘기한 3년 내 우승경쟁 인터뷰도 어느 정도 맞아떨어졌다.[9] 김호와는 수원 삼성 블루윙즈 시절 감독과 수석 코치 사이로 지냈는데, 이후 둘의 불화로 인해 조광래가 안양 LG 치타스의 감독으로 떠나게 되며, 서로 대척하게 되었다. K리그의 유명한 더비 매치인 지지대 더비는 바로 이들 두 명의 관계로 인해 탄생하게 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10] 다만 세징야는 2020, 2021 시즌 K리그 연봉 1위였다. 물론 세징야의 능력에 비하면 비싸다고는 할 수 없다.[11] 축구 선수 출신으로, 유소년 지도사 자격증이 있다.[12] 그럴 만도 한 것이 조 사장의 입장을 전한 기사에는 안드레 감독의 재계약 협상 태도가 미진했고 훈련 지도도 불성실했으며 퇴단할 때 보도 자료에 돈 때문에 나간다는 인상을 안 주도록 보도 자료에 그런 표현을 넣지 말라는 말까지 했다는 내용이 들어 있었다.[13] 안드레 감독의 입장은 자신은 애초부터 대구를 떠날 생각이 없었고, 그 때문에 전지훈련지인 중국 쿤밍까지 날아가서 미계약 상태로(즉 무급이다) 10일 동안 훈련 지도를 했다는 것이다. 이쪽이 사실이라면 조광래 사장은 계약도 못했으면서 대구에 남을 생각으로 브라질에서 중국까지 달려와 팀을 지도한 안드레 감독을 언플로 매장하려 한 셈이 된다.[14] 여담으로 최원권 감독 대행이 P급 라이센스를 가지고 있지 않기에 유예 기간이 지나면 감독을 구해야 하는데 이때 조광래 단장이 지휘하는 거 아니냐는 우스갯소리가 나왔다.[15] 사커라인에서 광래라고 검색하면 2013년 12월 즈음 글에 조광래보다 보광래가 훨씬 많이 등장한다.[16] 컨디션에 문제가 있음에도 계속 출전시켜 혹사시키는 경우가 많았다. 특히 해외파라는 특성상 바다 건너 와서 시차 적응까지 해야 한다는 점과 이동 시간 동안 소속팀에서의 적응이나 컨디션을 추스릴 시간도 빼앗겼기 때문에 많은 비판을 받았다.[17] 유럽 팀들은 23세 이하의 선수라도 성인 대표팀에 선출되어 뛰게 될 경우 성인 선수로 분류하여 U-23 대표팀 이하의 대표팀 차출을 거부한다.[18] 히딩크 감독의 경우, 선수들이 식사할 때 선후배로 나뉘어 앉은 것조차도 좋지 않다며 비판하고 시정했을 정도였다.[19] 대표팀에서 뛸 때 비판을 많이 들었지만 그렇게 망가질 정도로 못하는 선수는 아니었다.[20] 해당 기자 자체가 야구쪽에서 라커룸에서 우동을 먹다 걸린, 그리고 이와 같은 행위(외부인의 라커룸 무단 출입)를 금지했던 감독에게 악감정을 갖고 비방 기사를 써제낀 기레기라 팬들도 저 기사를 별로 신뢰하지 않긴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