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련 문서: 조광래호/2011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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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79003c> 조별리그 | A조, B조 | C조, D조 |
결선 토너먼트 | 8강 | 4강, 결승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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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 AFC 아시안컵 카타르 (바레인전 · 호주전 · 인도전 · 이란전 · 일본전 · 우즈베키스탄전)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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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조광래호의 2011 AFC 아시안컵 카타르 활약상을 정리한 문서.2. 엔트리
1 정성룡 · 2 최효진 · 3 황재원 · 4 조용형 · 5 곽태휘 · 6 이용래 · 7 박지성 C · 8 윤빛가람9 유병수 · 10 지동원 · 11 손흥민 · 12 이영표 · 13 구자철 · 14 이정수 · 15 홍정호 · 16 기성용 17 이청용 · 18 김보경 · 19 염기훈 · 20 김신욱 · 21 김용대 · 22 차두리 · 23 김진현 |
조광래 박태하 스태프 서정원 · 김현태 · 알렉산드레 가마 |
2010년 12월 24일 최종 결정된 23명의 엔트리는 다음과 같다.
2010 FIFA 월드컵 남아프리카 공화국을 끝으로 허정무 전 감독의 후임으로 조광래 전 감독이 선임되었다. 당연히 목표는 우승으로 잡았고 슬로건은 왕의 귀환. 특히 박지성, 이영표의 국가대표 은퇴 무대로 정해졌으며, 박지성은 은퇴 전에 국가대표로서 첫 우승을 하고 싶다며 전의를 다졌다.
본래 박주영도 대회 엔트리에 발탁되었으나 무릎부상으로 인해 아웃되면서 홍정호가 대체발탁되었다.
3. 조별리그 C조[16강]
3.1. C조 1차전 바레인전 | 2 : 1 승
2011 AFC 아시안컵 카타르 C조 2경기 2011년 1월 11일 화요일 01:15 (UTC+9) | ||
알 가라파 경기장 (카타르, 도하) | ||
주심: 압둘라흐 알 힐라이 (오만) | ||
관중: 6,669명 | ||
2 : 1 | ||
바레인 | ||
40', 52' 구자철 | 85' (PK) 파오지 아이시 | |
83' 곽태휘 | - | |
경기 다시 보기 | 경기 하이라이트 | ||
Man of the Match: 구자철 |
3.2. C조 2차전 호주전 | 1 : 1 무
2011 AFC 아시안컵 카타르 C조 3경기 2011년 1월 14일 금요일 22:15 (UTC+9) | ||
알 가라파 경기장 (카타르, 도하) | ||
주심: 압둘라흐만 압도우 (카타르) | ||
관중: 15,526명 | ||
1 : 1 | ||
호주 | 대한민국 | |
62' 밀레 예디낙 | 24' 구자철 | |
경기 다시 보기 | 경기 하이라이트 | ||
Man of the Match: 박지성 |
3.3. C조 3차전 인도전 | 4 : 1 승
2011 AFC 아시안컵 카타르 C조 5-1경기 2011년 1월 18일 화요일 22:15 (UTC+9) | ||
알 가라파 경기장 (카타르, 도하) | ||
주심: 칼릴 알 감디 (사우디아라비아) | ||
관중: 11,366명 | ||
4 : 1 | ||
대한민국 | 인도 | |
6', 23' 지동원 9' 구자철 81' 손흥민 | 12' (PK) 수닐 체트리 | |
경기 다시 보기 | 경기 하이라이트 | ||
Man of the Match: 구자철 |
4. 결선 토너먼트
4.1. 8강 이란전 | 0 (A.E.T.) 1 승
2011 AFC 아시안컵 카타르 8강 4경기 2011년 1월 23일 일요일 01:25 (UTC+9) | ||
카타르 SC 경기장 (카타르, 도하) | ||
주심: 라브산 아르마토프 (우즈베키스탄) | ||
관중: 7,111명 | ||
0 : 1 A.E.T. | ||
이란 | ||
- | 105' 윤빛가람 | |
경기 다시 보기 | 경기 하이라이트 | ||
Man of the Match: 이용래 |
4.2. 4강 일본전 | 2 (3 PSO 0) 2 무
2011 AFC 아시안컵 카타르 4강 1경기 2011년 1월 25일 화요일 22:25 (UTC+9) | ||
알 가라파 경기장 (카타르, 도하) | ||
주심: 칼릴 알 감디 (사우디아라비아) | ||
관중: 16,171명 | ||
2 : 2 A.E.T. (PSO 3 : 0) | ||
일본 | 대한민국 | |
36' 마에다 료이치 97' 호소가이 하지메 | 23' (PK) 기성용 120' 황재원 | |
경기 다시 보기 | 경기 하이라이트 | ||
Man of the Match: 혼다 케이스케 |
승부차기 | ||||
일본 GK: 가와시마 에이지 | 3 : 0 | 대한민국 GK: 정성룡 | ||
선축 | 후축 | |||
혼다 케이스케 | 1 | (골키퍼 선방) | 구자철 | |
오카자키 신지 | 2 | (골키퍼 선방) | 이용래 | |
나가토모 유토 | (골대 빗나감) | 3 | (골대 빗나감) | 홍정호 |
곤노 야스유키 | 4 | - |
4.3. 3위 결정전 우즈베키스탄전 | 2 : 3 승
2011 AFC 아시안컵 카타르 3위 결정전 2011년 1월 29일 토요일 00:00 (UTC+9) | ||
자심 빈 하마드 경기장 (카타르, 도하) | ||
주심: 말리크 압둘 바시르 (싱가포르) | ||
관중: 8,199명 | ||
2 : 3 | ||
우즈베키스탄 | ||
45' (PK), 53' 알렉산데르 게인리흐 | 18' 구자철 28', 39' 지동원 | |
경기 다시 보기 | 경기 하이라이트 | ||
Man of the Match: 지동원 |
5. 평가
2010년 남아공 월드컵에서 단 6개월 만에 단 9명 만을 제외하고 전원 교체되었으며, 전체적으로 젊어졌다. 거기에 대표팀의 거의 유일한 수비형 미드필더였던 김정우는 부상 회복이 느려 엔트리에서 제외되었고, 박주영은 소속팀에서 결승골 넣고 세레머니하다가 동료들한테 깔리는 바람에(...) 부상 당하여 엔트리에서 제외되었다. 한편 염기훈은 K리그 맹활약을 바탕으로 다시 한 번 국가대표팀에 승선하였다.박주영이 부상으로 불참하여서 결국 공격수는 전부 새로운 얼굴들로 꾸려졌다. 김신욱(22), 유병수(22), 지동원(19)로 모두 상당히 어린 선수들이며 모두 K리그 소속. K리그 득점왕 유병수와 U-19 월드컵과 소속팀에서 인상적인 모습을 보여준 지동원의 활약이 관심을 끌고 있다.
중원에서는 K리그에서 맹활약한 젊은 미드필더들인 구자철과 윤빛가람이 합류하였다. 기성용과 함께 세 명의 조합에 대해서도 논쟁이 끊이지 않는 중. 최근 기성용의 폼이 부쩍 오르면서 기성용은 고정으로 보는 시선이 많아졌다.
독일에서 활약하고 있는 화제의 신성 손흥민이 합류되어 많은 이들을 설레이게 하고 있다. 조광래 전 감독은 조커로 활용할 계획이라고 하였다.
조광래 전 감독이 경남 FC에서부터 3백을 중시해왔고 이를 국대에서도 적용하고 있기에 많은 논쟁거리가 되고 있다. 부임 후 몇차례의 평가전에서 인상적인 모습을 보여주지 못하였기에 이번 아시안컵은 조광래 전 감독의 국가대표 감독 생활에 중요한 고비가 될 듯 하다.
결국 4강전 한일전에서 2:2 무승부를 기록, 어린 선수들이 통한의 승부차기 패배를 기록하며 아쉽게 3위에 머물렀다.
그러나 여러모로 어린 선수들의 가능성을 확인한 대회였으며, 성공적인 세대 교체로 평가할 만한 경기력을 보였다. 특히 일정이 꼬이고 결과가 안좋아서 그렇지 경기력 자체는 굉장히 훌륭한 편이었다. 눈에 띄는 선수로는 무명에 가깝던 이용래가 활발한 활동량을 바탕으로 조광래호의 새 아이콘으로 떠올랐다. 이 대회를 끝으로 박지성과 이영표가 대표팀에서 은퇴하면서 2002 FIFA 월드컵 한국·일본 세대는 사실상 차두리 혼자 남게 되었다.
2011년 조광래 전 감독은 국가대표팀과 올림픽 대표팀의 선수 중복 차출을 거부해, 축구협회와 심각한 불화를 빚었다. 2011년 8월 10일, 한일전에서 3대 빵으로 발리며 일이 꼬이기 시작하더니 2011년 11월 15일, 브라질 월드컵 지역 예선 레바논전에서 제대로 추태를 작렬시키며 결국 2011년 12월 7일 자로 감독에서 짤렸다. 조광래호 시절에 있던 일들
4강전에서 삼연뻥 사건이 터지며 비난 여론이 크게 일었다. 2002 FIFA 월드컵 한국·일본 등 굵직한 경기 경험도 없는[2] A매치 경험조차 일천한 젊은 선수들에게 4강전의 승부차기 같은 중압감이 높은 임무를 맡긴 것에 많은 이들이 불만을 표하는 상황.[3]
이 부분에선 사실 굉장히 중요한 사실을 네티즌들이나 축빠들이나 하나같이 간과들을 하고 있는데, 이 때는 조광래가 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팀 자리를 맡은지 겨우 6개월도 채 지나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허정무는 2007년부터 2010년까지 장장 3년 동안 감독직을 수행한 끝에 자신의 색깔을 입히는데 성공했는데, 6개월밖에 시간이 없고 또 실질적인 시간도 부족한 감독에게 4강에서 그깟 승부차기에서 패배했다고 다짜고짜 짜른다고? 사우디아라비아가 2000년 이후 수십명의 감독을 교체했다가 이번 2011년 카타르 아시안컵에서 3전 전패로 광탈하는 망신을 당하며 8강도 들지 못한 사례[4]를 상기시켜 보자. 조광래보다 1달 더 늦게 부임한 알베르토 자케로니는 일본 축구 국가대표팀에 본인의 색깔을 어느 정도 입혔다는 것에서 이것마저 비겁한 변명이라며 까는 사람도 있다. 허나 정작 4강 한일전 당시 조광래 전 감독이 홍정호, 손흥민 등을 후반에 투입하여 4-6-0의 제로톱을 중심으로 한 선 굵고 수비적인 축구를 구사하며 경기 분위기를 다시 되찾은 반면, 알베르토 자케로니 전 감독은 카가와 신지와 혼다 케이스케의 동선이 겹치는 문제를 해결하지 못한 점과 체력이 방전되어 전반만큼의 압박과 공격을 보여주지 못하는 일본 축구 국가대표팀의 전술 변화를 꾀하지 못하고 있다가 연장 전반 PK로 한 점을 따내자 우주 방어에만 몰입하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색깔을 입혔다느니 뭐니 하는 것은 승부차기로 패한 결과에 지나치게 집작하여 정작 경기 내용을 고려하지 않은 의견일 뿐이다.
예선전에서 이런저런 선수들을 뽑았지만, 현 2011년 국대의 주축이 되는 신예들은 2009 당시에는 모두 실력이 좋지 않거나 검증이 덜 된 상태였다. 이승렬도 잠깐 반짝했다 다시 삽질 중이였으며, 이승렬보다 더 심각한 선수들이 정성훈과 이근호이다. 본선 진출의 최고 원동력이었다고 볼 수 있던 이 두 공격수가 월드컵을 앞에 두고 부상과 부진에 빠져 결국 월드컵 본선에 공격진이 얇아지는 결과를 낳았다. 이근호는 다행히 다시 폼이 좋아졌지만, 정성훈은 영 좋지 않았고, 결국 이후로는 잊혀졌다. 실제로 세대 교체가 제대로 안 된 자리는 박지성, 이영표, 이운재 이 세 자리 정도인데, 2002년 한일 월드컵 이후에도 오만 쇼크, 몰디브 참사를 겪으며 황선홍, 홍명보를 그리워하는 목소리는 있었지만, 그렇다고 거스 히딩크 전 감독이 비난받지는 않았다. 결국 성적을 내야 하는 월드컵 본선인지라 세대 교체보다 성적이 더 중요할 수밖에 없는 것이 사실이다. 물론 후임 감독들이 그 설거지를 어느 정도 하는 입장이라는 것도 이해해 줘야 한다.
조광래호에서도 구자철 등의 활약이 있었지만 박지성, 기성용의 역할이 매우 중요했고, 지동원은 박주영의 공백을 완전히 메우지는 못해 양박쌍용의 의존도는 너무 컸으며, 정작 지동원을 백업할 원톱 자원도 전멸에 가까웠다. 결국 어린 나이부터 혹사에 가까운 경기수를 소화하면서 선발되어 대회 끝에는 얼굴이 반쪽이 되었다. 특히 허정무가 구축해 놓은 중앙을 이용한 공격루트가 거의 단절되면서[5] 공격 루트가 측면에 한정되었으며, 수비에서의 빌드업도 황재원의 롱패스를 통해 단조롭게 풀려나갔다는 단점도 지적될 필요가 있다. 또한 허정무가 벨라루스에게 패한 것도 있지만, 이는 어디까지나 평가전일 뿐이었고, 허정무의 마지막 경기에서 4강 팀인 우루과이를 상대로 대등, 혹은 관점에 따라 우위라고 할 만한 경기 능력을 보여주고도 거센 비판을 받았던 점을 고려해보면[6] 이는 조광래도 감수해야 할 부분이다.
물론 조광래의 측면 위주의 플레이는 지동원이 박주영만큼 중앙에서 역할을 수행할 수 없어서 측면으로 이동해서 경기를 풀어나갔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조광래호는 측면에서의 움직임에 비해 중앙을 비워놓고 측면에서 경기를 풀어가는 경향이 강했다. 여기에 무한 스위칭과 패싱 플레이를 강조하는 조광래호는 필연적으로 심한 체력적 부담을 안을 수 밖에 없는 구조였지만, 이러한 체력 부담에 대해 딱히 대응 방안을 보여주지도 못했다. 특히 안 그래도 얇은 공격진에 체력 부담은 더해지는데 한창 뜨는 손흥민이라는 교체 카드를 적극적으로 사용하지 못했다. 물론 조광래호가 출범한지 고작 몇 달 밖에 되지 않았으니 이런 문제 해결의 필요성은 조광래도 앞으로 해결해 나갈 문제점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이 모든 것을 다 제쳐놓고 감독의 경질설을 뒷받침해줄 수 있는 것이 바로 아시안컵 4강에서 탈락해서 3위한 감독들이 백이면 백 모두 사퇴했다는 사실이 있고 들 수 있는 예는 2006년 딕 아드보카트 전 감독이 사퇴한 후 대표팀을 이어 받은 핌 베어벡 전 감독을 들 수 있는데, 핌 베어벡 전 감독은 비록 수면 축구라 불릴 만큼 거지같은 경기력(2007 AFC 아시안컵 인도네시아·말레이시아·태국·베트남 때의 선수 명단은 거진 2군이라서 핌 베어벡만의 잘못은 전혀 아니다.)을 보여줬지만, 대회 3위를 차지했다. 하지만 각종 언론의 집중 포화 및 박지성&이영표의 공백을 제대로 메꾸지 못했다는 비판에 중압감을 견디지 못하고 결국 사퇴했다. 그러나 3득점, 3실점 하고 토너먼트 3경기를 모두 승부차기로 때운 그 때와 지금의 차이는 너무나도 확연하므로 쉽게 단정지을 수 없는 일이다. 경기력 제끼고 결과만 봐도 전경기를 4강까지 이기면서 온 조광래랑 토너먼트 전 경기를 무재배한 감독과의 비교가 필요하지 않을 것이다. 케이스 바이 케이스인 만큼 조광래는 사퇴도 하지 않고 감독직을 유지했었다.
[16강] [2] 사실 이는 결과론일 뿐이다. PK는 경험보다 배짱 싸움이다. 2002 부산 아시안 게임에서 이영표가 PK 실축을 하면서 결승 진출에 실패, 결국 이동국은 꼼짝없이 김천 상무 FC로 가야만 했고, 박항서 전 감독은 목이 날아갔다.[3] 그러나 당시 경기장에 남아있는 선수 중 그나마 최선의 키커 구성을 한 것이다. 고참들인 박지성과 이영표, 차두리 모두 끔찍한 실패 경험이나 배짱 부족을 이유로 PK를 안 차는 선수들이기 때문이다. 박지성, 이영표, 차두리는 억지로 떠밀지 않는 한 나오지 않을 키커였고, 좋은 키커라 볼 수 없는 상황인지라 키커의 경험 부족을 까는 것은 에러. 그런 이유에서 키커로 뽑혀 나온 3연뻥의 주인공 중 두 명인 이용래와 구자철은 나이는 어리지만 킥력은 고참에 밀리지 않기에 괜찮은 선택이었지만, 원래 보직이 수비수인 홍정호는 괜찮은 선택이 아니었다.[4] 특히 전패도 전패였지만, 최종전인 일본전에서 0:5로 참패한 게 최고 압권이었다.[5] 이 부분은 중원을 책임지던 김정우의 공백과 박주영의 공백을 생각할 필요가 있다. 즉 전술적 미스가 아닌 선수선발 옵션의 한계이다.[6] 허정무의 대 우루과이전은 경기 직후에는 비난이 넘쳐났으나, 오히려 해외 언론은 우루과이전에서 보여준 대한민국의 패스 플레이와 경기력을 높이 평가했고, 이로부터 어느 정도 시간이 흐른 뒤의 사커 라인 등 국내 커뮤니티 분위기는 허정무가 우루과이전에서 보여준 플레이를 높은 수준으로 평하고 있다. 사실 허정무의 월드컵에서의 비판의 9할은 우루과이전이 아닌 아르헨티나전이다.